레오는 가만히 빙글빙글도는 윤을 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옆에서는 계속 싸우고 있는듯 한데, 우선 저기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지. 첫 째로는 누군가는 이 정신나간 학생을 봐줘야한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버니의 명령이었다. 각시탈을 도와주라는 것. 하지만 모두의 적인 탈을 도왔다간 무슨 후폭풍이 불어올지 장담할 수 없기에 레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잘 되었지.
" 후.. 야, 니가 이해해라. 인카서러스! "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정도만 되어도 되겠지. 적당히 묶어서 여기다 내려놓고 앞 쪽 상황을 지켜보던가 해야겠다-는 철저한 관망의 태도와 함께 최소한의 배려를 하겠다는 셈이었다.
물론 지금은 어느정도의 위협에 그쳤다. 그것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고 불러낼 수 있는 기회는 저번이 끝이었으니까. 이제 더 불러내려면 의도치 않게 산제물을 바쳐야 한다. 적아도 산제물은 이 학교 학생이 되게끔 내버려둘수 없었다. 저 탈의 애완동물이 출동한 이상은 결국 그거나 그거나겠지만은.
"저주를 안 쓰는 사람과, 저주를 밥먹듯 써대는 너희. 둘중 더 많은 손실을 보아야 할 건 당연히 너네니까~ 그것만은 삼가달라는 이야기야."
한 마디로 손해를 보는 싸움은 싫다는 것이다. 뒤이어 제 애인이 저주 마법에 맞자마자 주양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너는 그 애만큼은 건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람 잘못 건드린거라고 생각해. 날선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며 그때 제 애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애인을 꼬옥 안아주고 괜찮냐며 다독여준 다음 지팡이를 각시탈에게 향했다.
"전에 너랑 양반탈이 같이 왔을때는 제대로 못 싸웠으니까, 이번엔 한번 누가 먼저 끝장나나 해볼까? 엑스펄소."
눈과 눈 사이를 누르던 손을 미끄러트려서 단태는 식은땀으로 젖은 자신의 목을 훑어내며 지팡이 끝을 가볍게 까딱, 움직인다. 잠긴 목소리가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비슷했다. "목을 노리고 썼어야했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웃음을 히죽- 지어보이며 단태가 중얼거렸다. 날아온 부적에 불이 붙은 채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각시탈의 모습이 시야에 닿자, 단태가 낄낄 웃었다.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안그래도 때이른, 이유모를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몸뚱이에 크루시오는 큰 타격이였다. 비집고 새어나오려는 소리를 참고, 지팡이를 놓치지 않는 게 최선이였다. 터지려는 신음을 짓씹어 삼키는 바람에 안그래도 가파르던 호흡이 튀면서 휘청-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단태는 자신의 지팡이를 있는 힘껏 쥐었다.
스베타는 무심하게 독설을 쏘아내고서, 다시 부적 두 장을 손에 쥔다. 고열에 상대가 고통스러워 하긴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성가시지. 까맣게 불타버렸을 각시를 건너다보다, 귓전에 맴도는 말에 순간적으로 흠칫 몸을 떤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수록 위험도는 배가 될 것이다. 조급함에 스베타는 입술을 씹어대다, 다시 각시를 향해 부적을 내던진다. 이번에는 각시의 팔을 향해서. 손에 화상을 입으면 지팡이를 잡기 힘들지 않을까.
등 뒤로 마법이 튀는 소리가 들린다. 불이 타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들리기만 할 뿐 그녀의 걸음을 되돌리지는 못 했다. 떨리는 손이 찾는 건 지팡이가 아니라 윤이었으니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눈이 숲과 근처를 헤메이다 누군가의 주문 읊는 소리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인카서러스. 주문과 공시에 밧줄로 묶이는 윤을 발견한다. 그녀의 눈에 그의 모습이 담기자마자 다리가 곧장 움직인다. 조금 전까지 비틀거리던 걸음은 어디가고 쏜살같이 달려가 묶인 윤을 끌어안으려 한다.
"선배... 한참, 찾았잖아요..."
설마하니 그가 홀렸을 줄은 몰라서, 그럴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에. 그녀는 안심하여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윤을 붙들고 있으려 했다. 그 와중에 힐끔, 레오를 보긴 했으나, 그 어떤 말도 ㅏ지 않고 오직 윤만 챙긴다.
너는 가면을 양 손으로 잡고 들어올리는 시늉을 한다. 이윽고 비밀 이야기를 하던 아이처럼 입가에 양 주먹을 가져다대고 쿡쿡 웃는다. 가면속의 눈을 휘어낸다. 진실 없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우스운 소문으로 전락한다. 구어로 내려오는 역사가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와전되는 것도 그 탓이다. 말의 힘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작은 돌 하나가 호수에 큰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아무도 몰라- 언니가 아무것도 안 알려주면 의심한대로 학교에서 퍼지고 그럴까봐.."
지팡이를 다시금 겨누고 너는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정말 모른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언니가 안 알려주니까- 그 다음 일은 이노리도 안 알려줄게요."
살인 저주가 아니면 무엇이든. 너는 흘끔 지팡이를 본다. 그건 이쪽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탈이 죽었다고 해도 여기 교수진은 죄다 눈감고 넘어갈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백번의 선행을 해도 한번의 악행으로 평생 악인 취급을 받고 살 것이니, 차라리 악행을 여러번 저지르는게 수지타산에 맞다. 자연은 약육강식, 머리를 굴려도 죽을 자는 죽는다.
지금 자신의 마법이 아무리 막히더라도, 정말 그것을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더 초조하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훗날. 지금 받은것의 제곱으로 상대에게 돌려주면 그만이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는 때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기도 했다. 당장 탈들과 그들의 주인에게 왠수 비슷하게 찍힌 자신이 하기에는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이었으나, 그걸 자각하고 멈춘다면 그건 주양이 아니었다.
".. 어머나,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 당신의 뜻대로."
아니. 그게 아닌데. 하는 이성마저도 달콤한 황홀경 뒤로 파묻히고야 말았다. 지팡이는 각시탈이 아닌 제 연인을 향했으며, 그 행동에는 한치의 머뭇임조차 없었다.
금지된 저주가 난무하고 공격하는 사람은 단 둘밖에 없을 상황에 처한다. 너는 이런 상황을 놀이라고 생각할 사람이었다. 무지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새 배운 것이 몇 있답시고 기분이 또 나빴다. 네가 알기로 붉은 머리의 후배는 아주 좋은 사람인데 괴롭히기 때문이다. 너는 고개를 기울인다. 그리고 잠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과연 영민하신 분이십니다."
몸을 날리더니 손을 쭉 뻗어 향한 것은 목이다. 제 또래를 훨씬 웃도는 악력과 더불어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난 손으로 목을 틀어쥐려 한다. 너는 그리고 낮게 "이매 경과 같은 길을 걸으시려 하다니, 두분의 우애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속삭이고는 아이처럼 쿡쿡 웃는 것이다.
빗나가는 부적을 보고 아랫입술을 짓씹다, 까칠한 어조로 또다시 말을 쏘아낸다. 이렇게 대치만 하는 사이에 시간은 계속 더 흘러갈 뿐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자, 생각이 많아지고 짜증이 쌓인다. 이내 익숙한 두통이 찾아와 뇌를 압박해오자 스베타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안 좋은 예감은 언제든, 틀린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방금 전과 같이 상대의 팔에 화상을 입힐 생각으로 부적 두 장을 쥐고 내던진다.
정신을 잃거나 하지 않은 건 통증이나 고통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겪고 있는 고통에 더 큰 고통을 덧씌우면 도리어 무뎌지고 만다. 단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호흡이 딸려서 두통이 더 심해지고 조금 더 아플 뿐. 자신을 안고 다독이는 연인의 모습이 뿌옇게 흐릿한 시야에 닿아서 단태는 연인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다가 능청스레 웃음을 흘렸다. 부러워? 하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단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어진 주문은 임페리오였다.
"하."
헛웃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문을 막지 않고 그대로 맞으면서 단태가 주양의 몸을 붙들어 끌어당겼다. "내가 널 어째야할까. 응?" 들리지 않을 말을 주양의 귓가에 나직히 속삭이고 단태는 지팡이를 들어 각시탈을 겨냥했다.
그토록 찾던 윤이 품에 안겼음에도 그녀는 순수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줄이 떨어진 꼭두각시마냥 멍한 표정을 한 모습에 되려 마음이 아팠다. 빈자리 하나가 그에게 어떤 상실감을 안겨줬기에 이렇게까지 된 걸까. 그녀는 모르는 일이기에 입술만 꾹 깨물었다.
뒤에서 레오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그녀와 윤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디핀도로 잘린 밧줄을 성급하게 풀어 내쳐놓고 재차 윤을 끌어안는다. 여전히 멍하게 늘어진 제 연인을 안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그녀 역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윤을 보고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요. 같은 말을 다시 중얼거리고서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한박자 심호흡을 하고, 휙 하고 움직인다. 윤의 뺨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한번이 뭐 그리 힘들었는지, 그 새 입술이 터져 붉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