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리오에 걸린 사람을 제압하는 주문은 알고 있었다. 배웠고, 실습도 해봤지만 실전에서는 단 한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주문. 크루시오에 맞았던 몸은, 뒤이은 주문에 맞았음에도 통각이 무뎌졌는지 은은한 통증만 주고 있었다. 참을만 하다는 소리였다.
주양을 붙들어 안고 있던 한팔에 힘을 주면서 단태는 지팡이를 다시 명확하게 각시탈을 향해 겨눴다. 통각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이유없는 통증과 크루시오로 인한 고통. 그 위에 덧씌워진 엑스펄소 주문까지 연이어 겹겹히 쌓인 통증에 잘게 손이 떨리는 것과 흐릿한 시야를 바로 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레오는 어깨를 으쓱하곤 뒤를 돌았다. 여기 더 있어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으니 둘이 알아서 상황을 잘 해결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뒤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하니까. 정말 가고싶지 않았는지 느린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던 레오는 대판 싸우고있는 모습을 보곤 머리를 쓸어넘기며 후- 하고 한숨을 쉬곤 그 자리에 털퍽 하고 앉았다.
" 그러니까.. 저걸 도와줘야한다는건데.. 그러면서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면은.. "
일단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떠오르는 방법이라면 몇 가지 있다.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프로테고를 쳐서 우리를 가둬버려 각시에게 공격이 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 네뷸러스를 펼쳐서 우리를 숨긴다는 명목으로 시야를 가려 공격을 막는 방법. 마지막으로 가장 심플하게 표범으로 변해서 달려드는척을 하며 공격을 대신 맞아버리는 방법. 레오는 으으.. 으으으.. 하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아프다.
" 이것도 저것도 뭔가 좀 그렇단.. 말이지... 안하고싶지만서도.. 하지만 버니의 명령인걸..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아니면.. "
레오는 그냥 다 쳐죽여버릴까, 하는 말까지 뱉어냈다. 그리곤 마음을 잡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도 없으니, 일단 여기서 변신부터. 레오는 옷을 가지런히 정리해 내려놓고 이제는 익숙하게 검은 표범으로 변했다. 달려들어서 한 두대 정도 대신 맞아주면 적어도 의심할 틈은 없겠지. 게다가 이 몸이라면 몇 대 맞더라도 견딜 수 있다. 좋아. 가자.
어두운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표범은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 으르릉 하고 몸을 낮췄다.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그래도 직격으로 맞으면 견디지 못할수도 있으니 살짝 흘려맞는다는 느낌이라던가, 궤적을 바꾼다는 느낌으로. 몸을 낮추고 학원의 사람들과 각시탈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마법이 캐스팅되는 순간에 눈을 번쩍뜨고 지금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날아올랐다.
황홀함에서 벗어난 주양은 역으로 자신이 제 연인에게 안겨있는 꼴을 보고는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상황 파악은 금방 끝났다. 중간에 갑자기 기억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땐 여전히 그 장소였으나 자신의 자세만 바뀌었을 뿐이다. 중간에 기억을 잃을 이유는 역시. 입술을 슬쩍 물어뜯으며, 제 연인의 품 속에서 몸을 꼼지락거렸다.
".. 우리 여보. 내가 여보에게 큰 실수를 범한 것 같은데-"
다음에도 또 내가 조종당하게 된다면 그땐 그 어떤 공격이라도 가해줘.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자신의 내기 친구가 될지도 모를 선배에게 크루시오가 향하는걸 보며 표정이 살짝 굳었다. 기어코 그렇게, 내 주변 사람들만 근드리겠다는 말이지.
"내 공격때문은 아니지만~ 아까 쿨찐인 척 할때보다 훨씬 볼만한 표정인데! 어때. 아까전보다 훨씬 재밌지~?"
분노로 이글거리는 각시탈의 눈빛을 보면서도 경박스럽게 웃음을 터트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역시 이런 시비와 도발이 없으면 이젠 자기 자신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지팡이를 바로잡아, 다시 각시탈에게 겨누었다.
기껏 마음먹고 손을 휘둘렀는데도 윤은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휘청이는 그의 몸을 받쳐 안으며 그녀는 초조함에 재차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힘조절을 했어도 그정도면 정신 차리기에 충분했을텐데. 뭔가, 뭔가 다른 걸 해야 하는 건가? 잇새로 뭉개지는 입술에서 새빨간 피가 번진다. 창백한 얼굴에 유일하게 색을 띈 입술은 어색하기만 하다.
"......"
애꿎은 입술만 괴롭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론 안 된다. 생각, 생각하자. 전에 같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그가 어떻게 해서 그녀를 막아줬었지? 소리를 들은 직후에 손으로 귀를 막아줬었다. 하지만 그건 들은 직후였지 지금처럼 이미 홀린 후가 아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찌어찌 기억을 더듬던 그녀가 떠올린 그 날에 고개를 확 들었다. 설마 그게 통할까 싶은 의구심이 먼저 들었지만 지금은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때리기까지 했는데 그 정도를 못 할까. 좀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숨을 한번 쉬곤 얼마 안 되는 키차이를 좁히려 발꿈치를 들었다. 윤이 넘어지지 않게 꼭 끌어안으면서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친다.
얄량한 세 치 혀로 도발이 먹혀든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늘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법은 아니다. 상대는 금지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두번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주문 뒤로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저번처럼 울부짖으며 가족을 찾거나 살려달라 빌지 않았다. 모습이 바뀌지도 않았다. 사람은 위기의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곤 한다. 다행히 오늘은 행운이 따르는 날이다.
바닥을 구르는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동안 고통 때문에 몸을 벌벌 떨고 중심을 잃을 뻔 하다가도, 너는 기어이 우뚝 섰다. 가면을 써서 다행이었다. 그 고통을 견디는 시간동안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손톱은 주먹을 파고들었고, 희게 쥔 손에서도 피가 떨어졌다. 너는 그 상황에서도 욕 한번 하지 않는 독한 녀석인 것이다. 그렇지만 충격은 있는지 숨을 몇번 씨근덕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