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이 너무 많다. 부네를 돕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부터 시작해서 계속되는 인지부조화에서부터 자기혐오. 그리고 그것에 내려온 동앗줄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 이상의 것들. 레오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덮어주었던 하오리를 꼭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있던 레오는 아기가 우는소리와 방울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부네가.
" 일단, 가야겠지. "
이럴땐 생각보다 움직이는게 낫다. 레오는 이노리를 만난다면 돌려줄 요량으로 하오리를 몸에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전개상 가는 방향은 어차피 한 곳이다. 금지된 숲. 아, 그러고보니 울음소리라면 그 때 그 짐승. 죽음에 엄습했던 공포가 다시 한 번 몸을 뒤덮어 레오는 주저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너는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이것저것 챙긴다. 양피지, 깃펜, 잉크… 지팡이까지. 모두 챙겼지만 하오리가 없다. 허전한지 괜히 어깨를 두어번 손으로 문지른다. 짐을 싸들고 품에 안았는데 오늘은 바깥이 조용하다. 수업을 하는 날이 아닌가 싶어서 시간표를 봤지만 날짜를 헷갈리지도 않았다. 너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지? 일단 짐을 내려놓았을 때, 아기 울음소리와 방울 소리가 들렸다. 방울 소리가 익숙해서 가면을 썼던 얼굴을 매만졌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맨얼굴이라는 소리다.
그러고보니 이런 적이 있다고 했다. 창밖을 보니 교수도, 학생도 어딘가로 향한다. 창문을 열어 어디가요? 하고 외쳐봐도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고요한 복도는 발소리만 가득하다. 모두 너를 놀리는게 아닌가 싶어 문을 열고 학생을 잡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다. 너는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서 가면을 챙겨 얼굴에 쓴다. 평소엔 코와 입을 드러냈다면 이번에 새로 만든 가면은 얼굴을 모두 가리는 것이다. 너는 맨발로 금지된 숲을 향했다.
"고조."
아이 울음 소리를 내어 사람을 꾀어내는 신비한 생물. 먹이는 인간, 개체는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탈이 소유중. 혜향 교수의 보호가 닿지 못한다. 고조. 너는 다시금 고조라는 발음을 내어보곤 가면 속에서 아이처럼 맑게 미소지었다.
현궁의 기숙사.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질끈, 감고 있던 단태의 눈이 슬몃 치켜떠졌다. 어둑하게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는 여전히 선득한 빛을 품고 있었으나 아주 조금 피곤한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아기의 울음소리와 방울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지만 단태는 그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익숙한 통증에서부터 시작된 두통이 거셌다.
"염병할-"
식은땀과 통증으로 침대에 가라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 막혀 있던 숨을 내쉬며 욕설을 중얼거리던 단태의 걸음이 침대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아기의 울음소리보다 방울소리가 더 거슬렸다. 외투를 걸치고 지팡이까지 집어든 단태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홀린 것처럼 움직이는 학생들과 같이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몸이 안좋았다. 그믐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땃태가 너무 철인이여서 살짝....오너가 디버프를 넣어봤다. ((오너가 캐릭 굴리는데 진심인편))
익숙한 울음소리. 지난번과 같은 기현상. 그래. 올 게 왔구나. 주양은 씩 웃었다. 선비탈이라는 그 친구가 잊지 않고 그 이야기를 전달해줬거나, 아니면 그저 늘 있는 탈들의 습격이겠지. 어느 쪽이든 환영이었다. 그것을 불러낼 기회는 이미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밀고 나갈 차례인것이다.
그 날, 하얀 머리칼의 웃는 얼굴이 바닥을 구르던 그 장면은 오래도록 눈커풀 뒤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그의 슬픔이 어린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죄책감, 미안함 따위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대한 충격에 버무려져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로 인해 잠은 물론 식사까지 거부하게 만들었다. 음식을 두고 입에 넣으려 하면 헛구역질이 올라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새의 죽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생한 죽음을 목도한 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갖고 있던 생각을 뒤엎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날은 바뀌고 수업은 들어야 했으며 새로운 위협 역시- 찾아오는게 당연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비척비척 걸어가던 그녀에게 언젠가 들은 적 있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주변 학생들이며 교수들까지 멍한 눈을 하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한다. 저번처럼 듣지 말라며 귀를 막아주는 이는 없었으나 그녀의 정신은 홀리지 않았는지 멀쩡했다. 그랬으니, 그녀는 이들의 행선지를 찾으려면 직접 걸어가야만 했다. 아. 어째서.
"...싫어...!"
스쳐지나가는 학생과 교수들 사이에서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이전과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걸 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멈추어있건만 홀린 그들은 계속해서 간다. 멈춘 그녀를 두고 전부 가버린다.
"......"
이내 더이상 그녀보다 뒤쳐진 자가 없을 쯤,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들을 따라갔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 탓에 내려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언뜻 보기에 그녀도 홀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비틀거리는 걸음도 아마 그러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