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고등학교 학생회. 이 학생회는 다른 학교의 학생회들과는 다르게 학교 내부의 동아리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 물론 돈이 들어가는 것들은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가능한 일이니까 보통은 학교와 동아리 사이의 소통 창구가 주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불만이라던가 요구 사항을 학생회에 전달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불만 사항이 접수 되었다.
' 약학부에서 밤늦게까지 빛이 새어나온다고? '
약학부. 처음에 동아리 목록을 봤을때 이게 고등학교에 있을법한 동아리인가 싶었다. 물론 우리 학교는 동아리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해주기에 부원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지만 원래라면 대학교에 있을법한 것이 고등학교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불만을 해결해야하긴 하니까 나는 약학부가 위치한 동아리실로 향했다.
" 실례합니다. 학생회에서 나왔습니다. "
약학부의 앞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린다. 학교가 끝난 시간이라 동아리가 있는 사람들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여기도 적어도 한명 정도는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669 간단해! 시간상 산들고 오기도 전의 일이니까! 주원이가 그동안 '꾸준히 말을 걸어온 것'도 그렇고 '아무리 쓴 소리를 해도 담담한 것'때문에 자꾸 예전 기억이나서 싱숭생숭할거야! 양아치라서 그걸 표면에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스스로도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고 덧씌우는 것도 있고! 열쇠를 가져간 것도 반은 그런 골댕이에게 흥미를 느껴서, 반은 정말 자신이 이걸 가질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야!
평범한 일상을 보낸 홍현은 늘 그렇듯 약학부 모임을 끝내고 혼자 동아리실에 남아 집중하며 비타민 알약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 만들려는 비타민 알약은 상당히 진한 농도로 제작시키며 조금 큰 감이 있던 지난번 알약에 비해 최대한 크기를 줄이려 하고 있었다. 창가에 놓인 가루가 들어있는 비커를 조심스레 들어 올린 홍현은 창문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지만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비커를 책상 옆에 놔두었다. 가루 몇 숟가락을 넣고 뚜껑을 닫은 홍현은 마스크를 벗고 강장제라도 조금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때, 갑자기 정적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것과 함께 학생부에서 나왔다는 말이 들리자 홍현은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 싶어 불안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뭔가 실수라도 할 것 같았지만 일단 홍현은 문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확실히, 자신도 학생회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가끔 동아리 공지가 내려오면 뭐가 이렇게 또 바뀐대, 하고 투덜대고 마는 정도. 그것마저도 육상부 특성상 그다지 체감이 안 되기도 했다. 최민규가 동아리 부장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서 다른 학교보다 일이 많은지도 몰랐다. 과로가 아니라 하니 다행이지만.
"그런데 지구가 튀었다는 거구나."
한 마디 툭 던지고 씩 웃었다. 나름 농담이라고 한 말이다.
억누른 웃음 소리가 났다. 바람 섞인 웃음이 처음에 이어지다가, 그 다음에는 조금 큰 소리로. 하하하, 하하..
"남자라면 한번쯤 쥐는 권력 치고는 영 소박한데. 꿈을 크게 가지라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다. 두세 번 더 호흡 섞어 웃은 뒤에는 언제 그랬냔 듯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최민규를 둘러싼 분위기가 약간 풀어졌을지도 모른다. 긴장을 푸는 데엔 웃음만한 게 없다.
"하기야... 대학 갈 거면 힘들지."
최민규는 대학 진학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열 아홉이 간절하지 않은 축에 속했다. 어쩌면 태평한 것도 그 영향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냥 이러다가 농사나 짓겠지, 나중에 여행이나 한번 가지 않을까, 정도가 최민규가 그리는 20대의 전부였다. 그래서 최민규는 대학 진학을 바라는 동기들에게 기묘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해인처럼 남들보다 더 '무언가'를 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어느 학과 가고 싶은데?"
별관에 쌓인 책은 꽤 양이 되었다. 확실히 해인 혼자서 하기엔 무리가 많아 보였다. 최민규는 양 팔에 책뭉치를 안아들었다. 힘이 좋은 게 이럴 때 쓰일 줄이야.
다행히 안에는 사람이 있었는지 인기척이 들리고 잠깐 기다려달라는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문이 열린다. 짙은 남색의 머리카락이 길게 길러져있는 여학생 한명이 흰 가운을 입은채 서있었다. 이름이 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흰 가운에 가려진 명찰이 보이지 않아서 우선 내 소개부터 하고 볼 일을 얘기하기로 했다.
" 부학생회장 강해인이라고 해요. 혹시 본인이 부장? 아니면 부장이 안에 있을까요? "
명찰색도 안보이니까 이 학생이 몇학년인지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찰은 가급적 보이게 착용하는게 좋은데. 교복에 관련된 학칙은 잘 안지켜지니까 어쩔 수 없지. 나만해도 지금 사복을 입고 있는 형편이니까. 나는 문 안쪽으로 보이는 풍경을 한번 쓱 둘러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 여기가 약학부구나 ... 평소에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긴 했는데. "
고등학교 동아리 같지 않은 이름. 그래도 나름 전문적인지 안쪽에는 비커도 보이고 여러가지를 계랑할 수 있는 도구들이 늘어져있었다. 다들 장래희망을 약학쪽으로 잡은 사람들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하다보면 대학도 좀 더 쉽게 갈 수 있을테고. 좋네.
잘생겼단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지만 싫어보이진 않는다. 뒤따라오는 휘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시험을 잘 본 줄 알았는데 그다지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그건 안타깝네. 하지만 잘 본 줄 알았다는건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틀렸다는거잖아? 그럼 그게 틀렸다는걸 알았으니, 더 잘 알 기회가 됐겠네." 하고 그다지 고심을 거치지 않은듯 하지만 마음이 담긴 대답을 해준다.
이어 저녁 메뉴의 이야기에도 "회전 초밥? 나도 좋아하는데! 초밥이라. 나는 밥이 촉촉한게 좋아. 너무 물기가 많으면 좀 그렇지만, 아예 물기가 없는건 목넘김이 힘드니까."하고 자신의 취향을 대답한다. 주원은 휘영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그러나 깊은 고심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그를 부실까지 데려온 주원은 휘영의 낮가린다는 말에 가볍게 "아무도 없으니까."하고 흘리듯 말해주었다. 이어 연 만들 재료를 찾는 동안 뒤에서 휘영이 소파를 만지작거리며 뭐하는 곳이냐며 묻자
"내 아지트, 이자 나 혼자 뿐인 부의 부실이지. 신입은 언제든지 모집중!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나 혼자지만."
하고 캐비넷을 뒤적이며 대답한다. 재료를 다 찾았는지 그것들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리며 휘영의 장난스런 말을 듣곤 "푸하하."하고 짧게 마른웃음을 터트렸다.
"코로 사이다 마시는건 대단하네. 코 아프지 않아? 익숙해지면 아프지 않나? 아무튼, 사이다는 입으로 마시는게 좋아. 아닌가? 코로 마셔도 맛을 느낄 수 있나?"
하고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말투로 말한다. 이어 조심한다는 휘영을 옆에서 지켜보며 톱질을 살펴본다. 단번에 초보자의 손짓이라는걸 눈치챈 주원은 휘영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피카츄? 푸하하하하핫! 왜? 머리색이랑 눈 색이 이래서? 나쁘지 않은 별명이네. 전기를 쏘는건 불가능하지만!"
아무래도 휘영이 피카소를 말하려고 했던 것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한듯 싶다. 휘영이 주원이 만든 연을 보며 불평하듯 말하자 "이왕 만들려고 한거잖아? 끝까지 만들어보자. 내가 도와줄게." 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어루듯이 대답한다. 이어 케비넷에서 방금 휘영이 부러트린 나무와 동일한 것이 들어있는 통을 꺼내어 책상 옆에 두었다.
>>687 참을성이 없는 댕댕이군요! >:3 이것은 밀당이 아니라 단순히 양아치만의 관점의 차이다!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을 확신하도록 만드려면 직접 부딪혀서 진상을 알아내는 거야요! 오너인 참치들끼린 알고 있어도 캐릭터들은 모르는 상태니까!! 아, 근데 그러려면 양아치 한번 더 물려야 하는데. 또 냠냠엔딩인가, (얼감)
일단 다음번에는 사람 말고 제대로 밥 먹기로 약속했으니깐... 그 다음에? 만약 밥을 자취방에서 먹는다면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암튼 그럼! 사실 나도 빨리 써먹어보고 싶다 ㅋㅋㅋㅋㅋㅋ
파란색의 명찰. 2학년이구나. 명찰에는 양홍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잘 보이게 적혀있었다. 물론 귀에 들려온 자기소개로도 그녀의 이름이 양홍현이라는걸 알 수 있었지만. 근데 말하는게 좀 더듬거리는게 긴장을 했나 싶었다. 내가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닌데.
" 그럼 말 편하게 해도 괜찮죠? "
기본적으론 모르는 사람에겐 말을 높이지만 같은 학생들을 대할 때는 말을 편하게 하려는 주의였다. 어차피 같은 학교에서 다니는 학생들이니까 편하게 하는게 더 가까워지기 좋을 것 같고. 지금은 3학년이니까 나랑 같은 학년이거나 후배일테니 무조건 말을 높여야하는 사람도 없었다.
" 아, 딴건 아니고 약학부가 밤에 빛이 새어나온다는 말이 있어서요. "
새어나와봤자 얼마나 새어나오겠냐만은 근처에 사는 기숙사생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다.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위험하거든.
>>704 양아치주가 바라는 목표도 그거야!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자신이라고 가면이 필요 없이 당당하게 내비치는거! 그래서 얘가 친해질수록 자기 본성을 드러내니까 점점 양아치가 된다 그런거구... >>705 입술? 음... 🤔🤔 얼굴에 매직클로 3연타 맞고 싶다면야. ^^...
>>706 (찔림)(뜨끔) 사실 만월일상때 주원이가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면 오히려 양아치가 물었을 거야. 마치 사냥할줄 모르는 새끼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치듯... 얘! 니가 사냥감이 되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