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가 정말로 눈사람 따위의 존재였다면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옥상 위에 파라솔 정도는 놔둬줄 수 있었겠다. 그럴 리가 없어 하는 소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눈사람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따위에 훨씬 더 가까웠으니까. 녹지 않으려 그늘에 숨은 것 하며. 이 달큰한 체취하며. 단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바닐라향은 좋아하는 냄새였으니 솔직한 감상으론 날도 선선하니 이 바보같이 순진하고 단 것을 취하고 싶었다. 그것을 나무랄 사람도 없었고. 나는 그저 숨어있는 디저트를 찾아 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눈앞의 뭣 모르는 사하는 파라솔이나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이 지구의 한숨을 자꾸만 끌어들였다.
"양?"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한 듯 얼빠진 얼굴로 제게 꽤 실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하를 보며 지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언뜻 스치는 그것은 포식자의 여유넘치는 코웃음 같은 것. 원래라면 사하의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약을 받으러 가자며 꽁꽁 숨겨 양호실에 데려다 주었겠지만, 평소 마이페이스로 보였던 사하의 빈틈은 꽤 흥미를 자극해서 지구는 스위치가 들어가는 것을 직감한다. 꽤 재미있는 질문이었다고.
"내가 너랑 같다고?"
그리 무해하게 보였나? 실소가 나왔다. 뭐 평소엔 남들한테 퍽 관심 끄고 사니 그럴 수도 있겠다. 또 더 깊이 말하자면 애초부터 노린 것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나약한 양까지 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큭큭거리다 낮게 뜬 푸른 눈으로 사하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이 살피며 고개를 기울여 제 어깨 기대었다.
"..맞지. 나 양 맞아."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이던 지구는 잡았던 사하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 깨무는 시늉을 하려하며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상황이 퍽 재밌어 보였다.
"그럼 먹어도 되는 건가?"
무방비한 네가, 먹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진짜 깨물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가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면 손 정도야 깨물 의향이 있었다.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 늑대라고 밝혀진다 한들 나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제게 걸린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가 생각하기엔 그녀가 지구와 마주치고 내뱉었던 첫마디에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평소에 꽤 얌전히 군다고 해서, 그 짐승이 먹이 앞에서도 얌전할 거란 보장은 없지.
금아랑 테마곡... <:3 (후보 no.1이지만 더 맘에 드는 곡 찾으면 바뀔수도 있어요) (영상에 조커 있습니다. 무서운 거 싫어하시는 분은 주의!)
테마곡으로 고른 이유는 가사만 보면 밝은데, 들으면 왠지 슬픈 느낌이 듬. 이곡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Dance Monkey는 톤즈 앤 아이가 호주에서 버스킹을 할 때 겪었던 이야기라고 해요. 톤즈 앤 아이는 6시간 동안 버스킹을 해서 얻었던 돈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았고, 공연이 끝나고 '정말 죄송하지만, 공연이 끝났어요' 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빨리 노래해 줘', '지나가던 날 멈추게 한 건 너야', '한 번만 더 노래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인 게 마음에 들어서 입니다 <:3
여러분들이 금아랑 밝고 귀엽게만 보시면 ((아냐 여러분 그거 아냐....8ㅁ8 쟤가 완전 귀엽고 완전 밝지도 않아...)) 하고 싶은 맘도 들어서 테마 살짝 올려봐요!
>>533 앗 이 독백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코난이 나타나주시길 기다렸는데 려문이었군요 ㅎ▽ㅎ!!! 그림도..잘 그리시는데..글까지..잘..쓰신다.. 그런데 몇몇의 아이들의 슬픈 옛 첫사랑이 있는 것 같아 캡틴의 코를 적시네요.....엔딩까지 열심히 달리다보면 다 풀어주겠죠..? 그리구 친구 사귀면서 치유되면 좋겠다..그런..감상..ㅇ<-<
>>571 헉 제가 엄청 좋아했던 노래네요! 하루에 반복재생해서 엄청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고 아랑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보이네요...! 곡 선정 굿굿... 아직 아랑이랑 일상돌려본 적 없지만 다음 일상 돌릴때 마냥 밝고 귀엽지만은 않다는 걸 꼭 기억해둬야겠네요...!
>>571 그렇지. 여기서도 누군가 한번 말했었는데, 누구나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는 거지. 능숙하게 감추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차이 정도뿐. 아랑이가 마냥 귀엽고 마냥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말은 그만큼 아랑이가 잘 만들어진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만큼 당연히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573 내 야광봉이 어딨더라.. 3.3 (주섬주섬) 뭔가 꼴라주같으면서도 레트로한 느낌이 오히려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사람의 웃음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저 웃음은 뭐지? 확실한 건 호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웃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저렇게 웃는 지구는 낯설다. 제가 기억하는 지구는 낯을 가리고, 얌전하고, 온순하고…… 아무튼, 늑대보다는 양에 가까웠다. 그럼 지금 눈 앞에 있는 지구는? ……일단 양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와 보니 양 같은 점이 눈꼽 만큼도 없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변하는 게.
<내가 너랑 같다고?> 이 말에서 망했음을 직감했다. 양은 무슨. 온지구는 늑대다. 내가 약을 안 먹었나? 그럼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을 텐데. 달은 커녕 지금 햇볕 뜨거워 죽겠는데.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경계하는 눈초리로 지구를 바라봤다. 양 맞다는 말에 헛웃음 터진다. 내가 이상한 소리할 때 다른 사람들 이런 기분인가. 깨무는 시늉에 긴장해 한쪽 눈가가 실그러진다.
"양은 양 안 먹어."
잡혀있던 손을 빼고 한숨 쉬며 앞머리를 넘겼다. 뭐, 굳이 평생 비밀로 간직하는 일이 불가능할 거라는 건 알았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사람도 있겠거니 예상은 했다. 그래도 그냥 먹이 취급은 좀 억울한데.
"그렇구나. 그거면 누가 밑에서 받쳐주면 되지 않을까? 그거정도라면 나도 해줄 수 있겠다."
수영 대회가 끝나면 시간이 남을테니까 그때 한 번 불러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영을 도와주면서 겸사겸사 스킨십도 하고 친해져보려는 속셈이었다. 흑심이 그득한 것이 머리에 마구니만 가득 든게 틀림없었다. 선하의 속눈썹 사이로 눈동자가 교묘하게 움직인다. 사하의 손을 향해있었다.
"그렇지? 신기해. 이름도 닮았고, 성격도, 취향도..."
은근 슬쩍 단어를 확장시킨다. 어리숙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로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되는 결론이었지만, 고개 기울이며 웃는 선하의 얼굴을 보면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손이 깍지를 끼고 파르르 떤다. 눈이 둥글게 접히고 입꼬리고 올라간다. 복도에 줄지은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자 괜히 더 밝아보이는 기분이었다.
"나도 스릴러랑 액션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추리나 미스테리는 썩 즐기지 않았다. 짐승이 그런 고차원적인 장르를 제대로 이해할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그 말은 쏙 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뽑아서 재잘거렸다.
"그 긴장감을 좋아하나봐.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온 몸이 떨리기도 하더라."
선하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숨긴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혀를 굴리는 입은 뱀처럼 은밀했다.
"그러고보니 그거 알아? 사람이 공포와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대. 그런 걸 흔들다리 효과라 하는 것 같더라. 어쩌면 그래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지."
손끝으로 유인물의 끝을 쓸어내린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선하가 유인물을 사하의 품에 내어주었다. "동아리에서 영화볼때 나도 불러줄래? 기왕이면 너랑 내가 좋아하는 장르로." 방금 꺼낸 말을 고려하면 의도가 상당히 불순한 제안이었으나 선하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