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민규 선배가 자리를 뜨자 홍현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민규 선배가 손에 든 것을 본 홍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배의 손에 딸기 마카롱이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먹으라는 짧은 말에 홍현은 차가운 말 뒤에 따뜻함도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그 '우리 집에 고양이 있는데 보러 갈래?' 라는 것일까? 의도야 좀 다르긴 하겠지만 목적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후후후... 물론 글쎄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라는 전제가 좀 깔리긴 하겠지만요~"
고양이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이상하게 생긴 고양이라 해도 사랑해줄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고양이들의 외모에 주로 신경쓰곤 하니까. 가령 먼치킨은 좋아해도 스핑크스는 특유의 외모 때문에 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메인쿤의 경우에는... 겉모습은 귀여울진 몰라도 크기만큼은 강아지들에 견줄 정도로 크게 자라니, 아무래도 그런 태생부터 압도적인 사이즈-심지어 더 커질 가능성까지 있다고 하니...-는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침착하게 대꾸하든 꺼내는 목소리와 다르게 얼굴에 써진듯한 기대감,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재밌는 사람이라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 조금이냐고 하면... 분명 순하기보단 날카로운 인상이고 명찰만 봐도 선배인게 확실하지만, 조심스러운 행동이나 평범한 사람들처럼 고양이에 굶주린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귀여운쪽이 먼저 다가와서 그런것 아닐까? ...저보다 약간 작은 키도 한몫 했겠지만...
"저도 잘 부탁드려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가 자신이 요리부라는걸 말하자 꽤 놀란 것같은 반응을 보이는 그녀를 보고 덩달아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감탄과 함께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물어오자 그녀는 살짝 그러쥔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대고선 잠시 고민하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뭐... 여러가지 하죠? 이따금씩 과제겸 투표받은 경우나 추천받은 메뉴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대체적으론 이것저것 만드는 편이니까요~ 최대한 인도스타일에 가까운 카레라던지, 시카고 딥 디쉬(피자)에서부터... 아, 스타게이지 파이도 부탁받아서 만들어본적은 있네요! ...네, 사람들이 정어리 파이라고 하는 그거 맞아요~"
어떻게든 살려냈었지만 개인적으론 딱히 더 만들고 싶진 않았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다가온 그런 요리였을런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작게 젓는다. 어차피 일어나야할 시간이었고 아마 깨우지 않았다면 학교가 마치는 시간즈음 일어났을테니까. 진짜 그렇게 오랜 시간 잘꺼면 차라리 집에 가서 자는게 맘 편하다. 그러다 시험이 끝나면 온다는 말에 나는 슬쩍 웃으며 얘기했다.
" 뭐야, 데이트 신청하는거야? 가예랑 데이트라면 나는 언제던 환영인데~ "
사실 가예가 반에 올때마다 얼굴을 보긴 하지만 굳이 아는척을 하지는 않았다. 가예도 바쁠테고 볼일만 보고 가는걸 굳이 아는척하기엔 그랬으니까. 반에서 내가 그렇게 바쁘냐고 물어보면 반에서는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지만 ... 우선 대외적으론 여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곤 했으니까 주변에 친구들이 자주 모여있기는 했다. 그래도 가예랑 단 둘이 이렇게 얘기하는건 확실히 간만의 일이기는 하지.
" 늑대의 재능은 저주야. 적어도 나한테는. " " 그냥 회사 들어가서 평범하게 사는게 목표야. 적당히 좋은 회사 들어가서 평범하게. "
재능을 사용해서 인생에서 행복해본적이 손에 꼽는다. 그나마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재능을 좋은 쪽으로 사용해보는거지 그전까지는 어찌나 시달렸는지 아직까지도 악몽을 꿀 정도니까.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좋아하기도 힘들어서 지금까지도 관계는 소원한 편이다. 예전의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눈빛이 잠깐 흔들려 시선을 피한다.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은 떠올릴때마다 고통스럽다.
그녀의 손이 머리카락을 살며시 정리해준다. 생각보다 곱슬기가 있는 내 머리카락은 뻗치면 잘 정리가 안되는데 역시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카락이 뻗쳐나가는 모습을 보면 한번 미용실에 들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가예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 굶주린 늑대 앞에서 고기를 흔드는거야? "
나른한 웃음을 지어보이지만 굶주린 늑대는 어떻게든 양을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지금이 엄청 굶주렸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만 다가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힘들기도 했다.
" 나는 너가 필요해, 백가예. " " 하지만 너도 내가 필요할까? "
변함없이 웃는 표정으로 얘기한다. 내용을 듣지 못한다면 그저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그런 웃음으로.
반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다 조금 생각하더니 하는 말. <글쎄가 싫어하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혼자 하는 사랑에 취미는 없다만, 고양이라면 짝사랑 상대로도 나쁘지 않지. 물론 상대가 질색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싫어하면…… 그냥 울면서 자리 피해주면 된다. 싫다는데 계속 들이대면 더 싫어할 거 아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안 먹히는 경우도 있는지라. 좋아하는데 괴롭게 하기 싫어. 같이 좋아해주길 바라진 않아도 미움받고 싶진 않아.
같이 놀라는 슬혜를 본 사하는 약간 민망해진다. 워낙 부서가 다양하니까 다 알 수는 없더라도, 요리부가 엄청나게 특이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하에게 요리란 나름 별세계에 가까웠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를 따라하는 데 그친 제 실력에 비하면, 슬혜의 이력은 아주 화려했다. 사하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옥장판을 들이밀어도 끄덕거릴 판이다.
"아하, 정어리파이……."
그 생선머리 빼꼼 나와 있는 파이. 떠올린 사하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사하에게 정어리 파이는 진짜 붕어가 들어간 붕어빵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한데, 진짜 신기하긴 한데 딱히 먹어보고 싶지는 않은. 어쨌든 대단하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종류도 무진장 많은데다 전부 시도할 생각도 못 해본 것들이라.
물속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탐사하며 돌아다니는 금붕어 인어! 배에 타고 있다가 사고로 바닷속에 떨어진 선원이 격하게 몸부림치다가 물 속에서 들리는 희미한 노랫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춰서 가까스로 구조됐다던가, 아니면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던가 하는 전설, 어느 배가 실수로 해류가 거세서 들어서면 안 되는 항로에 들어서고 폭풍까지 밀려드는 가운데 간신히 폭풍을 뚫고 중심에 도착했더니 바닷속에 가라앉은 수많은 보물이 모여 있는 보물섬에 도착했는데, 다시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자신들도 그 보물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던가... 하는 구전이 전해져내려올지도 모르지.
예기치 못한 소음에, 멀거니 다시 시내 방향으로 떠나려던 문하의 시선이 규리에게로 되돌아왔다. 와르르 따라붙어서 와르르 말을 쏟아내는 게- 이런 비유를 하는 것은 실례지만, 별생각 없이 쓰다듬어주었더니 꼬리를 치며 달라붙는 강아지 같다. 귀찮아. 하고 문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굳이 규리를 쫓아내거나 규리에게서 멀어지거나 하려고 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것도 귀찮으니까.
"어."
학교 학생이냐고 묻는 질문에 문하는 무성의하게 코대답했다. 작년 1월경에 이리로 이사와서 산들고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생각해보니 어느덧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산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발만 붙어있을 뿐 그 외에 그 어떤 것도 여기 붙지 못했지만.
"하. 문 하. 외자 이름."
규리가 통성명을 해오자 그제서야 문하는 자기한테 명찰이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스포츠백에 담겨있는 교복 외투에나 명찰이 달려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지금 문하가 입고 있는 것은 예의 그 아디다스 져지였고.
"...... 재밌는 분이시네요 선배님~ 음~ 다행히도 글쎄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약간 확신에 찬듯한 그녀의 반응, 어딘가 조금 어색한거 같다 싶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고양이가 싫어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얌전할지언정 사람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종은 아니었으니... 물론 같은 아이들에 비해서 약간은 활달한 편이긴 해도 그저 놀기만 좋아할 뿐 행동거지는 집에 콕 박혀있눈 사람과 딱히 다를게 없었다. 특히나 그 덩치 때문에도 더더욱 작은 사람과 함께 사는 기분이었을까,
고양이에게 무시당하는 거면 몰라도 미움받으면 그렇게 서럽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녀가 그렇듯 자신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뭐... 가끔 '신호등 치킨을 맛있게 해달라.'는 의뢰 아닌 부탁도 있다보니 항상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드는건 아니지만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건만, 간혹 어떤 사람들은 '비주얼은 크리피하되 맛은 있어라.'라는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식문화의 붕괴라면서 극대노하던 파란머리 남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갔을까, 당연하지만 자신 또한 요리에 있어 나름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 어쩌다보니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습관이란게 참 무서운 거란 말이죠~"
어릴때 먹었던 돈가스가 너무 퍽퍽하고 기름진나머지 '고기가 너무 말라비틀어져서 돼지가 영양실조로 허덕이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대차게 말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았을까...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듯 반짝이는 그녀의 눈길이 약간은 부담스럽긴 해도 싫진 않았는지 그저 멋쩍은듯 웃어보일 뿐이었다.
잔뜩 신이 난 규리한테 글 쓰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무뚝뚝하다 못해 무심한 대답이다. 동영 체육관? 하고 목적지를 되묻는 말에도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말 뿐이다. 그저 규리가 그 체육관 근처로 간다는 말에, "그러네, 잘 됐네." 하고 맞장구를 칠 뿐이다.
규리가 인정사정없이 언어의 격류를 와르르 쏟아내는 게 적응하기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그 쏟아지는 말들 중에서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답하지 않으면 저절로 그 다음으로 쏟아지는 말들이 그것을 덮어준다는 정도일까. 음료수 줄게, 하는 말에 문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들었다.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 이쯤되니 나 진짜 재밌는 사람인가 싶다. 제 말에 웃는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재밌는 사람 축에는 끼지도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재미를 나만 모르고 있나? 사람들은 다 나 재밌다고 하는데 나 혼자 모르는 그런 거. 하지만 역시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내가 그 정도로 웃기면 TV에 나오고 있겠지.
"어… 조금?"
그래도 아주 최근에 두 번이나 들은 말을 아주 부정하고 싶진 않아서 애매한 대답을 뱉었다.
"그렇구나. 고양이 매너 익혀서 환심도 사볼까 봐요."
고양이 키우는 친구를 간절히 바랐는데, 주변에 다 저 같은 사람밖에 없었다. 액정 속 고양이들만 보며 부럽다는 말 반복한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물론 친구라고 하기엔 오늘 본 후배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글쎄랑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눈 마주치면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것 참 곤란한 의뢰네요……."
사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맛있는 신호등 치킨?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말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클래식한데 모던한 디자인 같은 거. 애초에 과일맛 치킨이 맛있을 수 있는 걸까. 생과일로 만든 소스라면 고민 좀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음, 그것도 다음에 만날 때까지 고민해볼게요."
<엄청 친절하다. 처음 만난 사람 간식도 챙겨주고.> 사하가 웃으며 말했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던데, 이 말은 꽤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들려온 대답은 애매했지만 애초에 대답을 예상하고 했던 말이 아니다보니 살짝 의문을 가진 그녀에게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 생각만큼, 생각보다 착한 사람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가 스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고양이의 안위와 기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
"후후후... 그것도 나쁘지 않죠~ 평범한 사람과 매너를 제대로 알고 지키는 사람의 차이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겠네요~
고양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몇 안되는 역사 깊은 동물 중 하나기 때문에 사람의 의사소통이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쓴다구요~"
어떤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서 고양이 외계인 설이 돌기도 하니, 물론 그만큼 눈치가 빠른 동물이란 의미일까.
"그래도 뭐, 그런 경우는 정말 거의 없으니까요~ 연중행사정도라고 할까~ 대명절 같은 수준의 패턴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하기 꺼려지는 도전일 뿐이지 막상 하고나면 나름의 뿌듯함도 있기에, 괴식도 미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 물론 그녀나 자신이 그것을 진심으로 믿을지는 미지수지만.
"후후... 어떤걸 부탁하실지,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어쩌면 단순히 뭔가 만들어주는걸 좋아할 뿐일 수도 있고, 같은 관심사로 묘하게 정이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원래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고 하니 말이다.
"아... 하긴, 나도 옛날에는 그랬어. 나, 사실 둥둥 뜨는 법보다 발장구 치는 법을 먼저 매웠을걸?"
선하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물에 뜨지 못할까봐 좌불안석한 것도 아니었고, 부유하는 감각을 참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몸을 맡기는 것이 불편하고 답답했었다. "나도 제법 속 섞이는 학생이었지 아마?" 참지 못하고 물장구부터 쳤다. 무형의 물을 이기려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엿다.
"그래도 물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머지 않아 선하가 푸핫,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풀장 안에서 가만히 서있을 사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습고-나쁜 의도 아님- 귀여울 게 분명했다. 안오면, 뭐 어때. 아쉽고 말 생각이었다. 굳이 수영장 아니어도 만날 일은 많았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뭐라도 입에 쥐어주던가."
간식이라도 사주게? 제 성격 못버린다고 걱정하는 상대의 주머니를 털어먹으려 했다. 심보가 고약하다. 삼시세끼에 밥 버금가는 간식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입장에서 굳이 사하에게서 음식을 뜯을 필요는 없었지만 약속이나 한 번 더 잡아서 얼굴 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선하는 입 작은 척 한동안은 입다물고 있을 생각이었다.
"둘 다 대단하니까 닮은 거 맞네!"
라고 박수치며 말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아무거나 붙들고 접점 찾으려 난리다. '나중가면 우리 이목구비 개수가 똑같네? 닮았다.'라는 망발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레스를 쓰면서도 어? 아닌가? 짝수가 되어야하나 하고 혼동이 왔던 이.) (캡틴이 참여를 하면 이라고 생각했으나 캡틴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조금 애매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이.) (그러면 어차피 주말에 못 오니 내가 또 빠져도 상관없다고 해야할까라고 생각한 이.) (이 모든 사고 방식이 1분만에 완성된 이.)
첫눈에 반했다는 말 같은 건 안 믿었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순간의 얄팍한 호감.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일 자주 있으면 큰일나죠."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사하가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 한군데엔 큰일이 생길 거다. 그러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 한군데엔 반드시 큰일이 생길 수밖에. 물론 사하의 생각이다.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머리 열심히 굴려야겠네."
만들 수 있는 간식이라면 역시 디저트가 떠오르는데, 그쪽으론 조예가 깊지 않아서. 애초에 깊게 파는 게 거의 없었다. 한 우물만 파는 쪽이랑은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얕게 여러 개 파는 것도 아니고. 아마 선천적인 게으름과 연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안 해서 불리할 일 아니면 굳이 열심히 안 하는 거. 그냥 적당히 선선한 곳에서 가만히 숨이나 쉬면서 멍 때리는 일이 좋다. 눈 앞에 스크린이나 커다란 그림이 있으면 더 좋고. 그거 보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
"다음 번에 만날 때 우리 할 거 많은데요."
무릎을 짚고 일어난 사하가 작게 웃었다. 왼팔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하니 대충 짧은 영화 한 편 끝나있을 시간이다.
>>172 뭐, 사실 이번에는 조금 나도 이기적이 되어볼까 해서 참여신청을 내보긴 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미안한 것도 있어서 말이지. 누가 하늘이의 마니또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것저것 준비해도 주말이라던가 그땐 내가 친구와 놀면서 상판 좀 볼게 하고 상판 접속하진 않기 때문에 반응도 없을 것 같고. 대신에 돌아오면 바로바로 하나하나 다 해줄거야! 이건 저 인간은 정말로 진지한 인간 밎나?! 라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르는 하늘주의 진지한 멘트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널부렁)
🍎 마니또 (A.K.A 비밀친구) 'who'는 > '윤비랑'의 마니또 입니다. 비랑이를 잘 부탁해! '아메리카노'는 > '한슬혜'의 마니또 입니다. 슬혜를 잘 부탁해! '콜라'는 > '유새슬'의 마니또 입니다. 새슬이를 잘 부탁해! '우렁이'는 > '백가예'의 마니또 입니다. 가예를 잘 부탁해! '하노'는 > '화연호'의 마니또 입니다. 연호를 잘 부탁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햇살에 말린 이불'은 > '은사하'의 마니또 입니다. 사하를 잘 부탁해! '펭귄'은 > '최민규'의 마니또 입니다. 민규를 잘 부탁해! '수박'은 > '금아랑'의 마니또 입니다. 아랑이를 잘 부탁해! 'Mary'는 > '양홍현'의 마니또 입니다. 홍현이를 잘 부탁해! '체리'는 > '신이현'의 마니또 입니다. 이현이를 잘 부탁해! '쿠우'는 > '문하'의 마니또 입니다. 문하를 잘 부탁해! '웰치'는 > '강해인'의 마니또 입니다. 해인이를 잘 부탁해! '삶은계란'은 > '강하늘'의 마니또 입니다. 하늘이를 잘 부탁해! '몽몽'은 > '남주원'의 마니또 입니다. 주원이를 잘 부탁해! '보리차'느 > '강규리'의 마니또 입니다. 규리를 잘 부탁해! '삼다수'는 > '이시아'의 마니또 입니다. 시아를 잘 부탁해! '제리뽀'는 > '곽려문'의 마니또 입니다. 려문이를 잘 부탁해!
마니또 결과입니다! 각자 작성하신 별명을 잘 기억하시고, 아이의 사랑스러운 수호천사가 되어주세요 ㅎ▽ㅎ! 미리 공지했듯이, 마니또 선물or편지 etc.. 웹박수는 최소 3개 이상 작성 해주셔야하며, 또한 마니또에게 받은 선물을 확인하신다면 캐릭터의 짤막한 반응 레스를 달아주시면 마니또가 기뻐할 거에요.
헷갈리실까봐 일일히 멘트 적어 넣었습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헷갈리시는 점이 있다면 질문해 주시고, 오늘부터 월요일 밤10시까지 친구의 수호천사가 되어 마니또가 되어주시고, 선물이나 편지등의 웹박수를 "이벤트용웹박수"함에 넣어주시거나, 일상으로 친구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하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선하의 뒤쪽에서 비치는 빛을 언뜻 본 것 같기도 하다. 희망의 빛이다.
"그럼 너한테 배워볼까. 물에 뜨는 거."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반쯤은 진심이지만, 나머지 반은 농담이었다. 대회 준비로 바쁜 사람 시간 뺏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놀러가도 방해 안 하고 초심자용 풀에서 벽 잡고 발장구나 조금 치고 있겠지. 많은 시간은 서서 선하 하는 걸 구경하게 될 것이다. 사실 수영장 냄새도 좋아하거든.
"턱까지 오는 물 정돈 괜찮아. 숨 쉴 수 있으니까."
이런 나 제법 용감해요. 칭찬도 아니고 다행이라 했을 뿐인데 금방 우쭐한 태도가 된다. 이상하네. 오늘 처음 만난 건데 꼭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지. 아무리 외부활동이 잦아도 이런 애가 친구가 없는 게 가능한가? 사하가 홀로 고민에 빠졌다. 많고 적고는 주관적이니까, 곧 개인의 판단이겠거니 넘겨버린다.
"못 할 건 없지. 지금도 그럴 수 있는데?"
짐짓 으스대는 표정으로 어깨 으쓱이며 말한다. 지난 번 재벌 놀이의 여파가 덜 가셨나. 근데 거짓말도 아니고, 나쁜 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친구 손에 간식 좀 들려보내겠다는 건데 좀 거들먹거리면 어떤가 싶다.
"말이 그렇게 되네."
사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눈가와 입가가 모두 보기 좋은 호선을 그렸다.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입술을 꼬집어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공통점이었다.
"나는 영화감상부. 근데 영화 추천은 너무 기대 안 하는 게 좋아. 나는 아무거나 잘 봐서."
저는 재밌게 봤는데 추천받은 친구들은 미묘한 반응이었던 영화가 꽤 됐다. <못 만든 영화도 욕하면서 보면 재밌던데.> 얘기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아서. 사하가 머쓱하게 웃는다.
무슨 말이 오간 것인진 알 수 없었으나 상담실에서 나온 하늘의 표정은 그리 개운한 편은 아니었다. 어쩌면 심각한 이야기를, 어쩌면 정말로 형식적인 말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개운하지 못한 표정을 관리하려는 듯, 하늘은 자신의 뺨을 톡톡 쳤다. 어느덧 방과 후 시간이었고, 야자가 면제 된 하늘은 얼마든지 집에 갈 수 있었다. 일단 책가방을 가지고 온 후에 생각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1층에서 3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려고 했다.
3학년 교실이 있는 2층 계단을 지나는 도중, 하늘은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잠시 창 밖 풍경을 바라봤다. 특별히 뭐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다가 잠시 멈춰서서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창가를 향해 걸어가다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며 하늘은 깜짝 놀라 몸을 옆으로 치우려고 했다.
"아. 죄송합니다. 부딪친 곳 없었죠?"
여긴 3학년 교실이 있는 라인. 즉, 여기서 만나는 이는 선배일 확률이 높았다. 하늘은 바로 사과를 하며 고개를 돌려 누구인진 확인하려고 했다. 아는 이라면 괜히 더 사과를 할지도 모르고, 모르는 이라면 더더욱 사과를 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의 활동은 바로 인터뷰다. 우연찮게 만나는 학생을 만나 이것 저거 물어보며 학교생활에 관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고민이 있다면 그 고민을 잘 들어주고.... 그 다음은 바로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로 입부를 시키는 것이다....! 새카만, 아니 새하얀 속셈을 가지고 복도를 걷던 도중 옆에서 튀어나온 학생과 부딪칠뻔 했지만 주원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청춘코메디에나 있을 법한 서로 부딪치고 프린트를 떨군 후 줍는걸 도와주는 그런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 프린트를 들고 있지도 않았지만.
"어어. 괜찮아. 너는 다친데는 없고?"
주원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기에 가볍게 대꾸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잠깐. 우연히라면 지금 아닐까? 좋아. 해보는거야!'하고 가던 길을 멈춰선 뒤 하늘에게 말을 건다.
"너말이야. 혹시 지금 시간 괜찮아?"
지금 보니, 하늘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연히 하늘의 시선이 명찰로 향하려고 했다. 3학년이라는 것을 파악했다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조금 몸에 힘을 줬을 것이다. 물론 3학년을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상이니까 어느정도 예의를 갖출 생각이었다. 아무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괜히 자신의 주머니를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핸드폰, 이어폰, 지갑. 모든 것이 다 제대로 있었기에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아. 네. 딱히 야자 안해서, 시간은 있는데요. 무슨 일인가요?""
시간이 괜찮냐는 그 말에 하늘은 별 생각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지금부터는 자신의 자유시간이었고, 오늘은 음악실에서 연습할 예정이 없었다. 애초에 다른 동아리가 쓴다는 것 같으니 자신이 쓸 수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콩쿨도, 대회도 잡혀있지 않았으니, 적당히 군것질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깐 나가서 별을 보다가 돌아와서 잠을 잘 생각이었으니 시간은 널널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 익숙한 연호의 속닥거림에 옆구리라도 찔린 양 까르르 웃어대는 새슬이었다. 네 발로 땅을 기어 달리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늑대처럼 재빠르게 달리지는 못 하겠지만, 양도 어쨌든 본래 네 발로 걷는 생물이니 틀린 모습은 아닌가. 키득거리며 자신의 모습을 고이 접어 묻는다. 호야라서 가능한 걸걸, 하지만 네 발 달리기 시합이 하고 싶다면 연습은 해 볼게.
새슬은 조용히 나무에 기대 앉아서, 소원을 적는 연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휘갈겨 적고, 정말로 간절한(그것은 자신이 소원을 비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습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을. 둘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 쪽지에 적힌 연호의 소원이 무엇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벚나무만 한 눈사람ㅡ호야가 그런 소원을 비는 목적은 뭐야?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제대로 펼쳐 볼 겨를도 없이 연호가 돌아와 앉는다.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물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새슬은 가만히 웃는 것을 택했다. 평소와 다른 연호의 이질적인 모습을 봤기 때문일 수도, 그냥 그리 궁금하지 않았을 수도, 어쩌면 그녀의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겠지. 호야의 소원, 이뤄지면 좋겠네! 특유의 나른한 어투로 중얼거리면서, 기지개를 쭉 켰을 뿐이다.
“낮잠은 어때~? 나, 조금 졸린데.”
녹빛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이며 연호를 보더니, 헤헤헤, 하는 천진한 웃음소리와 함께 담뿍 휘었다. 봐봐, 날도 좋고, 바람도 솔솔 불고오.
“아님ㅡ 벚나무 위에 올라가서 낮잠자기.”
그것도 싫으면, 꿈 속에서 만나서 하늘 날아보기ㅡ. 장난스레 조잘거리는 목소리에는 이미 하나둘씩 졸음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앗..어..아앗.. 크윽 ㅠ▽ㅠ감..감동..첨에 웹박수 이름에 지구가 들어가있어서 너무 당황했어요 지구? 아 푸른별 지구를 말하는 거구나 싶었는데 진짜 인간 지구였습니다....... 크윽...... 청춘 사이에 끼고 싶어서 찔찔거리는 캡틴을 챙겨주셔서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큰절 받아주세요 센스쟁이..ㅠ▽ㅠ 챙김 받다니 저는 행복한 캡틴입니다.......선물도 센스넘치셔.....그그래서 누구실까요 ㅠㅠ▽ㅠ
주원은 허리를 숙여 명찰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똑바로 읽는다. 그 다음 허리를 편 뒤 하늘을 보다가 "흐음, 흐음." 하고 무언가 고민하더니.
"좋아. 오늘은 너로 정했다!"
하곤 하늘에게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두운 얼굴 하고 걷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이 걱정한다? 괜찮은가? 하고.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내가 들어줄게. 아, 내 이름은 남주원. 이미 명찰에서 봤겠지만."
이어 하늘이가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오늘 내가 너의 카운셀러가 되어줄게. 마침 오늘 누군가를 인터뷰할 생각이었거든. 그게 누구든간에. 그런데 넌 어딘가 고민이 있어보이기도 하고, 흥미가 생겼거든. 우리 부실로 가자!"
하곤 막무가내로 하늘을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의 부실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만약 하늘이가 따라온다면, 하늘이가 따라온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는 동아리방 치곤 가장 구석의, 다른 동아리방의 반쯤 되어보이는 크기의 교실일 것이다. 교실이라고 하기도 뭣한것이, 본래는 창고로 쓰려고 했던 남은 방을 동아리실로 쓰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작은 캐비넷, 소파, 의자, 책상 등 필요한 것은 구비되어 있었다. 그덕에 장소는 꽤 협소했지만.
>>270 제게 선물을 보내주신 분은 익명의 모브 여학생이 지구의 마니또가 되어서 보내주셨다 생각하시고 보내주신 것 같은데 (아이디어 진짜 천재같다구 생각합니다..) 그거랑 별개로 마니또가 아니더라도 진짜 익명으로 선물을 줄 수도 있겠죠?ㅎ▽ㅎ 학교니까요! 학교에서 익명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건 자유죠 ㅎ▽ㅎ!!!
하늘은 침착하게 이 순간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위해 침착해지려고 시도했다. 메조피아노, 피아노, 피아니시모, 디미누엔도, 데크레센토, 크레센도, 코모도, 돌체, 트란퀼로. 참으로 많은 음악기호를 떠올리면서 최면을 걸려고 하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가야하는 분위기가 된 것에 하늘은 순간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다시 한 번 음악 기호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자신의 표정이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어째서 갑자기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고, 카운셀러가 되어준다고 하고 인터뷰를 한다는 것일까? 그것도 모자라서 부실로 납치 비스무리한 것을 당하는 것에 하늘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어딘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실 안에 들어가있었고, 그는 더더욱 당황했다. 뭔데? 여기? 여기 정말 동아리 부실 맞아? 책상, 의자, 소파, 캐비넷 등등 있을 것은 있어보였으니 맞는 것 같긴 한데 애초에 여긴 뭐하는 동아리인건데?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하늘은 이야기했다.
"일단 가자고 해서 오긴 했는데. 선배. 카운셀러는 뭐고, 인터뷰는 또 뭔가요? 고민이라니. 고민까지는 아닌데 아무튼 뭐예요? 대체. 여긴 어디고요? 그리고 무슨 인터뷰를 하려는 거예요?"
피아노 관련인가? 그런 김칫국을 먹기도 하면서 하늘은 괜히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인터뷰라는 거 여러 번 해보긴 했지만 우선 상대가 인터뷰가 괜찮은지부터 확인을 해야한다고요. 그래서 뭘 알고 싶은 거예요?"
거의 납치하다시피 하늘을 부실로 데려온 주원은 누가 있나 없나 문 바깥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좌우를 살핀 뒤 부실의 문을 조심히 닫는다. 이어 캐비넷을 열고 "그게 어딨더라~"하고 뒤적거리던 주원은 적당한 판과 종이. 그리고 펜을 꺼낸 뒤 하늘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찌 보면 카운셀러나 인터뷰가 아닌, 취조처럼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으응? 무슨 인터뷰? 글쎄. 그냥 이것 저것?"
주원에게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아무튼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눈 앞의 남학생의 이름과 학년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인터뷰를 여러번 해봤다고? 너 대단한 사람인가보구나! 오늘 첫 물고기가 대어일줄이야. 운이 좋은걸?"
주원은 실실 웃으며 펜을 가볍게 돌린다. 그러다 뚜껑을 찰칵 누르고 판 위의 종이를 톡톡 치며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것 저것 알려줄래? 좋아하는거나, 관심 있는거나, 취미라던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이라던가."
하고 하늘에게 묻는다. 그의 태도는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하늘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것으로 봐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로 하늘은 강하게 두 손을 휘저었다. 이것으로 확실한건 이 선배는 자신에 대해서 알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피아노 관련이 아니로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괜히 김칫국을 마신 하늘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안한 마음에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데굴 굴리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물음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하늘은 주원을 가만히 바라봤다. 인터뷰를 한다더니, 이건 그냥 신상 조사가 아닌가 하는 물음에 하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딱히 숨기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대답을 해볼까 싶어 하늘은 하나하나 물음에 대답했다.
"피아노를 좋아하고 그 관련으로 관심이 있어요. 취미는 피아노 연주라던가, 자전거 타는거 좋아하고, 음악 듣는거 좋아하고 고민은 프라버시잖아요. 선배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저는 선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걸요. 그러니까 그건 패스할게요."
살면서 어떻게 사람이 고민 한 번 안하고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야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초면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하늘로서는 조금 힘든 일이었다. 때로는 그조차도 다른 이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법이었다. 설사 이야기한다고 해도 친분이 있는 이, 정말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 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며 하늘은 괜히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하라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궁금한데 답해줄 수 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사적인 개인신상에 대해서 하나하나 질문받는 것은 또 처음이거든요."
주원은 나름 정곡을 찌르는 대답으로 응수했다. 학교에서 인터뷰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면, 성적 우수자. 혹은 특기생일테니까. 그중에서도 특기생으로서 인터뷰를 많이 받았다면, 그것은 정말로 유망주일 뜻일테니까 말이다. 주원은 하늘을 보곤 어딘가의 유망주려나, 하고 생각했다.
"피아노? 피아노 연주? 잠깐, 그러고보니까..."
별로 학교의 소문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2학년중 굉장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늑대인지, 양인지, 어느쪽도 아닌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역시나 늑대겠지.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으니까!'하는 이야기를 쉬는시간에 슬혜에게 연락을 보내던 도중 흘려들었던 기억이 난 것이었다.
"너구나! 그 대단한 2학년의 '늑대 피아니스트'가!"
주원은 실실 웃으며 하늘을 보곤 펜을 휙휙 돌렸다.
"걱정하지 마. 나도 늑대니까. 아, 난 너처럼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하늘의 태도는 꽤나 주원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주원은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하늘의 심기를 건드리는 양 말했다.
"아무튼! 부럽다. 난 너처럼 그렇게 드러나는 '재능'이 아니거든. 이야~ 이런 거물을 만나게 될줄이야. 오늘은 운이 좀 따라주는걸?"
사하가 교실 문을 열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고 책상 쪽을 바라봤다. 존재감을 뽐내는 저 하트무늬 포장지가 제 것이 맞나 싶어서.
올해도 어김없이 마니또 철이 다가왔다. 세 번째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매번 마주칠 때마다 놀랐다. 당연히 좋은 의미의 놀람이다. 포장지를 뜯기 전, 편지를 먼저 봤다. <선배님이라 해놓고 똑같은 3학년이면 배신감 쩔겠는데.> 대답해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 중얼거린다. 편지를 가방에 넣고 나서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눈에 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니까 정 드는 것 같다. 조심조심 뜯어 접힌 자국대로 접어 또 가방에 넣었다. 상자를 여니 나오는 건 자두가 올라간 케이크. <나 자두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역시 대답은 돌아올 리 없다. 고개를 두리번거린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케이크를 빤히 보던 사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 중이었다. 참고로 행복한 고민이다. 당장 먹어서 지금의 행복을 쟁취할 것이냐, 아껴 먹어 미래에 행복할 것이냐. 고민은 짧다. 사하가 케이크를 한 입 물었다. 막말로 내가 3분 후에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자두야 원래 좋아하고, 생크림에 박힌 초코칩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있는 거랑 맛있는 거? 당연히 더 맛있는 거. 기대한 것보다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 방금 하루치 행복 다 채웠는데.
책상을 뒤적거리던 사하가 수첩 한 장을 죽 찢었다. <이불아, 너 뽀송뽀송하겠다. 나 자두 좋아해. 잘 먹었어. 이건 너 먹어.> 쪽지 접어 서랍에 넣고 옆에 새콤달콤 딸기맛 두 개를 놓아둔다.
물론 상대가 사람을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늑대 피아니스트라던가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존재는 하늘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어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하늘은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정말 간혹 듣는 말이기도 했기에 하늘은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정말로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저는 늑대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배가 찾는 그 늑대 피아니스트는 아닐 거예요."
그렇게 하늘은 언제나처럼 자신은 늑대가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전달하고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신이 늑대가 아니라는 것 뿐이었다. 허나 그것은 그에게 조금 씁쓸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을 괜히 느끼면서 아주 가벼운 쓴 웃음을 뱉었으나 적어도 하늘에게서 불쾌함이나, 상대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은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주 잠시, 정말로 잠시 아쉬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저는 재능은 없어요. 아하하하. 뭔가 죄송하네요. 기대한 것에 부흥하지 못해서 말이에요. 저는 그저 피아노를 칠 뿐이에요. 제가 느끼는 분위기를, 제가 치고 싶은 감정을 그저 그것으로 연주할 뿐인걸요. 그저 그런 평범한 2학년일 뿐이에요. 정말로."
차분하게, 침착하게 이야기를 마치며 하늘은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하늘은 주원에 대해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어! 그냥 단순히 뭐지? 뭐인거야? 뭐임? 아무튼 뭐임?! 대충 그런거였는데 내 표현력을 높여야겠구나!
🎁 익명의 학생, 모브 양 → 온지구 (지구의 책상 서랍에 접은 쪽지와 물빛 돌고래 열쇠고리가 들어 있다. 열쇠고리를 흔들면 푸른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기분 좋은 찰랑 소리가 난다.) <회장님, 팬이에요. 그리고 이번 회장님의 마니또고요. 아마 회장님이라도 제가 누군진 앞으로도 모르시겠죠? 괜찮아요. 몰라야 재미있는 거니까. 이건 마니또로서 선물이니까 마음에 들면 가져주시고, 아니면 버려주세요.> 🍎 학생회 덕분에 아침 일찍 등교 한 지구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자리에 가방을 올려두고 가기 위해서 익숙하게 학년실에서 3-1 교실 키를 챙기고 교실 문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교실은 텅 비어있었고 창가 근처 자리에 무심하게 검은 가방을 툭 올려두었다. 그러고보니 책상 서랍에 불을 놔뒀던 거 같은데. 여분으로 놔두곤 하던 초록색의 직사각형의 그것을 챙기기 위해 책상을 뒤적거리던 지구는 평소와 다른 것이 손에 접히는 감촉에 허리를 숙이고 책상 서랍 안을 들여다보았다. 뭔가..있는데. 뒤적이며 꺼내보니 찰랑거리는 물빛 돌고래와 작은 쪽지가 있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둘러보다 돌고래 열쇠고리를 햇빛에 비추어 높이 들었다. 푸른 물빛이 햇살에 비춰 찰랑이는데, 꽤 마음에 든 것 인지 쑥스러웠던 건지 귀 끝이 붉게 물들며 황급히 손을 내렸다. 지구는 잠시 고민하다 그가 매고다니는 크로스백 앞쪽에 열쇠고리를 걸어두었다. 그가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일은 흔치 않아 다른 아이들이 보면 놀릴까 싶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을 거고... 남은 쪽지를 펼쳐 읽었다. 그러고보니 마니또 시즌이랬다.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르는데 덥썩 걸어 버린 제가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뭐. 다시 쪽지를 처음처럼 접어두고 가방의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아쿠아리움을 다녀 온 아이가 사준 것일까(..) 어차피 마니또가 끝나는 다음주엔 정체를 밝히는 게 룰이 아니던가? 힌트라도 주지. 머릿속에 돌고래가 가득해진 지구는 학생회실에 가서도 아이들에게 돌고래 얘기나 나불거릴 게 뻔하겠다.
교내에 피아니스트가 한 명 두 명은 아닐테니까. 어쩌면 소문으로 듣던 그 피아니스트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보네. 미안."
주원은 순순히 사과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눈 앞의 남학생이 그 소문의 피아니스트는 맞지만, 늑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진 않는 것일까?
"말하는걸론 평범한 2학년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나 하늘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말 해서 느끼는 그런 종류의 아쉬움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 같은, 그런.
"그럼 늑대가 아니면 뭔데? 양? 인간?"
상대가 늑대인지 양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 얼마나 실례인지. 그리고 그것을 대답하는게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 주원이 모를리 없었다. 늑대나 보통 인간에 있어서는 큰 리스크가 될지 몰라도, 양의 경우엔, 특히 상대가 늑대의 경우엔 말 그대로 먹잇감이 '나는 먹잇감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테니까. 그러나 주원은 그런 사회적인 암묵의 룰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것인지, 하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주원은 다시 펜을 돌리며 어떤 대답이든 상관 없다는 듯 하늘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상담사치곤 꽤나 건성인 태도다. 펜을 돌리다 다시 판 위에 올린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듯이 보인다. 지금의 각도에선 하늘이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318 zzzzzzzzzㅋㅋㅋㅋㅋㅋㅋㅋ 하ㅠㅠ 진짜 연호 일기 읽으면 동물의숲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몽글몽글 해져요..귀여운 여노... >>319 앗 그러면 저는 좋아요 ㅎ▽ㅎ지구를 양으로 봐주는 귀여운 사하!! (파닥) 원하시는 상황 있으실까요 혹시? 없으시면 제가 뚜껑을 열겠습니다
"어딜 봐서요. 저처럼 평범한 2학년이 어디에 있다고요. 눈 두 개죠? 귀 두 개죠? 입 하나죠. 짜잔! 평범한 2학년 맞죠?"
그건 그렇고 정말로 늑대 피아니스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하늘의 귀에 들어왔다. 딱히 그런 건 들어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자신이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자 순간 위기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속으로 굳게 다짐하면 나중에 핸드폰에 꼭 해야할 일 란에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양이냐 인간이냐라는 물음에 하늘은 아무런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당황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 또한 꽤 들어본 질문이었다. 나는 늑대가 아니다. 그러면 자연히 나올법한 질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오는 말 역시 꽤나 익숙한 형식적인 무언가였다.
"선배가 생각하는 그 무언가요. 양일 것 같나요? 인간일 것 같나요? 사실 어느쪽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대답하지 않는 것은 몰라도 상관없는 것. 자신의 가치관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하늘은 답을 마쳤다. 그 와중에 종이 적는 뭔가가 굉장히 신경쓰이는지 하늘의 눈이 자연히 그족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거 뭐예요? 인터뷰 내용 적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 신문부인가요? 여기?"
아무 물건이나 던지고 쌓아 뒀던 사물함을 깨끗히 정리하고, 책상에 씌여 있는 낙서를 지우고, 책상 서랍에 마구 꽂혀 있는 교과서도 몇 개 뺍니다. 평소에 더럽게 쓰다 보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끝내 놓으면 뿌듯한 일이죠. 그렇게 청소를 끝내고 나면 책상 서랍이든 사물함이든 뭔가 넣어 둘 공간이 충분히 남았을 겁니다. 커터칼로 긁어내서 다 떨어져 나간 책상 위의 스티커 자국 위로 깨끗한 라벨 스티커를 붙이고, 네임펜으로 또박또박 굵은 글씨를 적어 놓네요. 2학년 1반 11번 윤비랑. 오늘은 왜 이리 유난을 떠는 걸까요? 혹시 불심검문이라도 오는 걸까요?
당연하지만 그럴 리는 없습니다. 비랑이 이렇게 열심히 청소한 건 모두 이번 마니또 행사를 위해서니까요. 누군가 편지나 선물을 두려고 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머쓱하게 쓰레기장(비유) 위에 올리거나 어디 잘못 두고 가는 바람에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게 무슨 수난이래요. 1학년 때 그런 일은 충분히 겪어본 비랑에게 준비는 충분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순간을 두근거리며 즐겁게, 혹시 스쳐지나가는 호의 중에 마니또가 섞여 있는 건 아닐까 즐거운 의심도 하면서 시간은 흘러갑니다.
"이거!"
그리고 드디어, 비랑이 손댄 적 없는 물건이 비랑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네요.
" 꽃인가... "
비랑은 뭔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가방에서 클리어 파일을 하나 꺼냅니다. 악보라고 적힌 노란 표지를 넘기자 흰 종이나 회색 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악보들이 보입니다. 꼭 합창 악보만 끼어 있는 건 아니고, 비랑의 성격에 맞지 않아 보이는 찬송가 악보도 있네요. 비랑은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파일 사이에 들꽃을 끼운 다음 꼭 덮어서 꾹 누릅니다. 일반 종이로 된 책에 꽃을 끼우면 벌레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클리어 파일은 종이와 종이 사이에 두 겹의 비닐이 있으니까요. 이걸로 안심입니다.
비랑은 또 가방을 뒤적거려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금색으로 테두리가 된 붉고 네모난 성냥갑이네요. 성냥을 하나만 남기고 가방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비랑은 가방에서 미니 스파클러(손에 들고 화약 부분에 불을 붙이면 반짝반짝하는 불씨가 튀는 장난감입니다.)를 꺼내 가위로 똑 자릅니다. 자른 정도의 길이면 넉넉한 성냥갑에 들어가기 충분합니다. 미니 스파클러를 집어넣고 성냥갑 뚜껑을 닫은 다음 짧은 글을 씁니다.
<사랑은 피고 또 지는 타 버리는 불꽃> <빗물에 젖을까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책상 한쪽에 올려놓습니다. 이게 누굴 위해 준비된 답례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늘의 태도는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누가 자기를 평범하다고 주장할 때 눈 두 개 귀 두 개 입 하나를 증거로 삼겠는가. 자신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태도. 주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주원의 물음에도 하늘은 어떤 감정도 내색하지 않고 어느쪽도 상관 없지 않냐며 말한다. 주원은 그 물음에 "으으으으으으음."하고 깊게 고민하는 소리를 내었다. 주원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질문이었을지도.
"상관 없다라. 상관 없진 않은데 말이야. 뭐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늑대는 아니라는거지? 음음."
주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어 하늘이 주원에게 인터뷰 내용을 적는거냐며 묻자 주원은 "짜잔!" 하고 판에 대고 종이에 펜을 움직이던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삐뚤빼뚤하고 적어도 그린 사람이 그림에 소양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모자, 와 비슷한 것을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옆에서 본 중절모? 모자라고 보기엔 왼쪽의 엷은 챙 부분에 검은색으로 눈 비스무리한게 찍혀 있었지만.
"신문부는 아냐. 정확히는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 부원은 나 혼자고. 그건 그렇고, 이거 뭘로 보여?"
>>329 만월이 아닌 날에 사하가 페로몬을 흘리고 있어서 얌전한 지구가 캐치하는 일상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지구가 난처한 상황에 사하가 도와줘서 서로 oO(역시양이야!)(역시늑대구나)Oo 하는 상황도 괜찮을 것 같고 또 아니면 마니또 이벤트 중이니까 서로 너가 내 마니또냐 억추리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서로 옥상에서 낮잠자려다 마주친다거나.. ㅎ▽ㅎ 편히 골라주세요~!
>>337 저희 첨에 선관 짰을 때 정체 밝혀지면 재밌겠다구 생각했었지! 그래서 1번도 재밌을 것 같구 2번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깊어가는 오해... 얘들아 그거 아니야... 느낌으로 재밌을 것 같아 마니또는 이미 제가 지구가 아닌 걸 알아버려서 눈물좔좔... 앞에 말해준 두 개중에 하나로 굴림 재밌을 것 같네요! 둘중에는.. 고르기 조금 어려워서 지구주가 더 내키는 거 있음 골라주고, 아니면 다이스로 결정해도 좋아 '-^
괜히 목소리에 힘을 줘서 이야기를 하며 하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고 말을 하나, 그 이후에도 말을 할진 아직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분명한건 하늘에게 있어선 그건 정말로 상관없는 일이었고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양이건, 인간이건. 그저 중요한 것은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아무튼 주원이 보여주는 그림에 하늘은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림을 바라봤다. 모자 같이 생겼는데 챙 부분이 검은색으로 눈이 찍혀있는 무언가. 눈 비슷한게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사물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요? 죄, 죄송해요. 그런 부 처음 들어봤어요. 부원이 혼자요? 근데 동아리가 완성이 되는 거예요? 아무튼..음."
저 검은색 눈 같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생물. 생물이라면 대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순간 뭔가를 떠올리며 하늘은 작게 웃어보였다. 어쩌면 이건...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Bite/%EB%A7%88%EB%8B%88%EB%98%90?action=show 앞으로 마니또 이벤트 선물,편지는 위 주소 위키에 전부 올리겠습니다! 혹시 선물이 왔을까 수시로 사물함을 열어보는 마음으로 위 주소로 가서 직접 확인 해주세요! ㅠ▽ㅠ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또한 마니또 선물 답변도 본스레에 한번, 또 여유가 나신다면 위키에도 작성하여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니또 선물은 위키에 올라옵니다. 본스레에서 찾지 못했다고 선물을 받지 못했다며 오인하지 말아주세요<<
피아노를 치는 너라면 좋아할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동봉할게. 언제나 네 연주에서 힘을 받고 있어.
남겨져있는 메시지를 하늘은 세 번 정도 더 읽었다. 마니또야 작년에도 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참 묘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연주에서 힘을 얻고 있다니. 자신의 연주를 마치 들은 적이 있다는 것처럼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나름이었다. 누구일까.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떠올려보나 금방 떠오르는 이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몰래 연주를 엿듣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면, 이란 말을 할 법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확신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언제나 자신의 연주에서 힘을 받고 있다'라는 말을 할 정도의 사이가 최근 있었던가. 추리는 거기까지였다. 지금은 이 피아노 앨범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나중에 집에 가서 들어아겠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그 앨범을 미소와 함께 챙겼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알게 된다면 나도 당신에게 감사 선물을 보내줄게. 내 연주로 힘을 받는다면, 내 연주를 들려줄게. 누군지 모를 삶은 계란 씨."
작게 웃어보이며 하늘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마니또를 해야만 했다. 자.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하늘의 표정엔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미소가 가득했다.
최민규는 편지를 여러 차례 되읽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삐뚤한 글씨를 두세번 곱씹듯 읽었다. 집에 가져갈까,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군지는 알지 못해도, 최민규는 이 마니또가 퍽 배려있는 편이라 생각했다. 무난한 간식들이다. 가장 대중적인, 학생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정말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한' 느낌이었다.
아니, 집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최민규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떠올렸다. 분명 털릴 게 분명하다.
조심스레 초코우유를 뜯어 마시고, 그 다음엔 마들렌, 그 다음엔 오리젤리. 그 다음에는 사탕. 천천히, 꾹꾹 씹어담듯 먹었다. 이온음료는 맨 마지막에. 어쩌면 운동하며 마실지도 모르겠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그 위에 글씨를 꾹꾹 눌러 썼다. 악필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는 전부 다 좋아서, 전부 다 먹었어. 고마워.'
그리고 매점에서 산 초콜릿 하나를 꺼냈다. 그렇게 편지와 함께 자리에 두고 떠나려다가, 괜히 장난기가 동해버렸다. 다시 자리에 앉아 서툴게 종이배를 접었다. 이곳저곳 찌그러져 못생겼다. 종이배 안에 초콜릿을 넣고, 원래 편지가 있던 곳에 두고 자리를 떴다. 입 안에서 콜라맛이 아직까지 맴돌았다.
>>361 역시 그렇죠? 센스쟁이 해인주 ㅎ▽< 우리 부회장님 짱된다!! 또 첫번째 선물 두번째선물..첫번째 답변 두번째 답변 또 이렇게 폴더 안에 폴더를 접으면 보기 편하겠지만 거기까진 기력이 안가네요 ㅇ<-< >>363 앗 천천히 써주세요~! 두근두근 ㅎ▽ㅎ!!!!
새슬이 솜사탕 맛 날 것 같아요 ㅠ▽ㅠ귀여웟! 문하주도 어서오세요~!!! 반가워요 ㅎ▽ㅎ
세상에 마니또 이벤트 크게 기대안했는데 정말 최고다 코피 쏟을 것 같아요 다들 고운 마음으로 선물이랑 편지 주는 것도 너무 귀엽고.. 마니또 선물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도 너무너무 사랑쓰럽고...... 앞으로 펼쳐질 추리도 기대되고.......청춘미 낭낭해서 너무 행복하네요 ㅠ▽ㅠ왈칶!
주원은 하늘이 강하게 목소리를 눌러 담으며 고개를 젓자 의미심장한 탄성을 낮게 내며 씨익 웃음지었다. 무언가를 알아챘다는듯한 확신에 가득찬 미소였다. 이어 판에 그린 그림을 보여준 주원은 눈을 빛내며 과연 하늘이 어떤 대답을 할까 하고 굉장히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책에서 봤다고 했지? 어떤 아이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는데 어른들은 그걸 모자라고 봤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그림과는 전혀 관계 없는걸? 아. 참고로 이건 장식."
주원은 검은색 눈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때. 억울하지 않아? 만약 네가 모자라고 했다면, 나는 이걸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
그리곤 판에서 그림을 떼어 하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만약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아니라고 했으면,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맞는데 괜히 아니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할걸?"
이어 주원은 말을 이었다.
"나는 '중절모'를 그렸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 배경지식에 연관되는 어떤 이야기가 있든. 그것처럼 보이는 '눈'이 있든. 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닌건 아닌거니까.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으론, 분명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을테니까."
주원의 목소리는 점점 낮고, 침착해져갔다.
"언제까지나 아니라고 하는 것만으론 통하지 않을 때가 오겠지. 떳떳하게 이것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이상은. 단순히 남이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가 아냐. '떳떳함'과 관련된거지."
예전같았으면 눈쌀을 찌푸리고 뭐라 반론을 했을 정도로 지독하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들에 반론이나 반박 따위를 할 기운도 없다.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린다. 인연이니, 뭐니, 결국 그래도 너희들도 나를 두고 사라져버릴 거잖아. ...얼굴에 반감을 드러내는 일마저 이제는 귀찮아서 문하의 얼굴은 아무 변화 없이 정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있어, 그건."
문하는 스포츠백을 흔들어보인다. 무기력하게 흔들리는 그것 안에는, 굳이 꺼내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스포츠드링크가 들어있기는 하다. 보답은 나를 동영체육관까지 안내해주는 것으로 충분한데. 그러다 규리의 가방에서 더 이상한 게 나오자, 문하는 앞으로 향해있던 고개를 규리에게로 돌리고 되물었다.
"가만... 그게 왜 나와, 가방에서?"
너무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온 그것에 대해 거부의사도 표현하지 못하고 잠깐 멍청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멍하니 두어 호흡이 지나고서야 문하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학생회실에 들어오니 다른 인원들이 수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내 책상 위에 치즈 케이크 한조각과 라떼 커피 한잔, 그리고 피곤할텐데 먹으면서 하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허어, 생각해보니 전교생 대상의 마니또가 시작했었지 참. 이건 철저하게 선생님들이 주관으로 하는거라서 학생회도 아무 것도 모른다.
" ... 근데 나 쓴 커피 안마시는데. "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보는 눈도 있어서 이걸 쏟아버릴수도 없다. 보는 사람이 없었어도 어떻게 처리할지 대략 난감이었겠지만. 나는 하는 수 없이 치즈 케이크를 작게 썰어서 입에 넣었다. 풍부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면서 뒤로 올라오는 케이크의 달달함이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이 커피 ...
" 으윽 ... "
잔뜩 찡그리면서 쳐다봤자 커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며 커피를 딱 한모금, 그것도 아주 약간 마셔보았다.
옆에서 본 중절모라는 말에 하늘은 한방 먹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나오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하기사 중절모라면 중절모일수도 있을테니 그에 대해서 반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떳떳함이라. 그렇게 보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은 눈을 잠시 감고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자신도 진지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저는 강하늘. 그 뿐이에요. 인간이건, 양이건 어느 쪽도 상관없어요. 강하늘이에요."
자신이 양인 것이 부끄러운가? 아니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늑대가 아닌 것이 원망스러운가?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은 늑대가 아닌 존재일 뿐이었다. 재능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보이는 것이 싫었기에 그는 언제나 늑대가 아닌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그 이외에 대체 무엇이 필요할까.
"그걸로는 안되는건가요? 반드시 어느 쪽이어야만 하는건가요? 인간이냐, 양이냐. 그 차이로 인해 저는 다른 존재가 되는건가요?"
이어 살며시 표정을 풀면서 하늘은 다시 미소를 지어 그저 주원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대답할 뿐이었다.
"저는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2학년, 강하늘이에요. 남들이 절 어떻게 보든, 제가 인간으로 보이던, 양으로 보이던,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없는 강하늘이란 학생 뿐이에요. 이걸로 괜찮을까요?"
동아리 시간에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나와 옥상 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다들 영화에 정신 팔려 한 사람쯤 나오는 건 눈치도 못 챘다. 선생님마저도. 사실 영화에 제일 집중한 사람이 선생님 같았다.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하더라, 덕업일치? 어쨌든 행복해보이시니 됐다. 부서 학생이, 심지어 3학년이 중간에 탈출했다는 걸 알고 나서도 행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며 생각했다. 요즘 부쩍 간이 커진 것 같다. 지난 번에는 아예 동아리를 째고 학교 밖을 나가질 않나, 지금은 또 무단으로 나와 있고. 차라리 아프다 하고 양호실을 갈 걸 그랬나. 그게 나 같은 애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땡땡이 방법인데. 어쩌면 다음에는 땡땡이 선배님으로 불리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불릴 예정이든, 일단 옥상에는 올라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를 수도 없지 않은가. 문을 열자마자 햇빛이 쏟아졌다. 학교가 어둡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나오고 나니 동굴 속에 갇혀 있던 기분이다. 사방이 탁 트인 데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쨍하지만 그늘에 앉아 있으면 딱 좋을 정도의 날씨. 난간 근처로 가 내려다보니 벚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모습도 보였다. 꽤 예쁜 풍경이다.
근데 봄볕도 무시할 거 못 된다고, 계속 받고 있으려니 뒷목이 따가워질 것 같다.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두리번대던 사하가 적당한 그늘이 진 곳을 찾아 웅크리고 앉았다. 그늘이 좁아서 자세에 선택지가 없었다.
주원은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흘러가는 듯한 대답임과 동시에, 하늘의 의견에는 정확히 반대되는 태도로.
"반드시 어느쪽이어야 해. 그 차이로 인해 다른 존재가 되니까. 인간은 인간. 양은 양. 늑대는 늑대."
주원은 하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강하게 부정하며 대답한다. 하늘이 주원의 눈을 바라보는 눈빛만큼, 주원도 진지한 눈빛으로 하늘의 눈을 바라본다. 흔들림 없는 하늘의 미소. 그러나 주원은 미소짓고 있지 않았다.
"분명 그렇지. 늑대가 아닌 2학년의 피아노를 치는 강하늘 학생. 하지만 늑대가 아니라면, 뭔데? 네가 늑대가 아니라고 말 한다면 순순하게 '아 늑대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거야.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능력이 아닌 재능으로 인해 일궈냈다는걸 들키기 싫어서 늑대가 아니라고 하는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주원은 이제 처음의 장난스럽고 건성스런 태도에서 하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는게 아냐. 하지만 하늘이 네가 결국은 인간이면서 다른 무언가인 이상. 그리고 네가 계속 피아노를 쳐가는 이상. 언젠가 그것에 짓눌려버릴 것처럼 될 날이 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말 해두는거야."
그 말투는 마치 자신이 무엇이라도 되는듯한 태도이다.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듯한. 분명 눈 앞의 강하늘 학생과는 겨우 1년차고, 1살 차이일터인데. 전부 '이해'했다는듯한 태도로.
"언젠가 네 정확한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반대로 그 압박에 네가 짓눌릴 날이 올지도 몰라. 그저, 알아두길 원하는거야. 지금은 그대로 좋을지도 몰라도, 네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점점 커지게 된다면, 너는 네 입으로 분명히 밝혀야 할 날이 올테니까."
>>399 야광봉 요정 하늘주.... ㅎㅁㅎ! 안녕하세요! 이벤트 ? 마니또 이벤트 하고 있어서 화력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ㅋㅋㅋㅋㅋ 이번헤는 하늘주도 이벤트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요! (방방)
>>401, 403 어째 요새 오면 항상 해인주의 쓰다듬을 받는 기분이에요 ㅎㅁㅎ (좋음) 해이니도 귀엽고 소듕해... <:3 쓴 거 못 먹는 게 너무 귀여워요.... 해인주도 그거 알고 계시죠! 쓴 거 잘 못 먹는 해인이가 귀여운거!
>>40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민규주 말투가 넘 귀여워.... 와기민규주... <:3 (귀 여 워) 안녕하세요! 쫀밤이에요!! 헉... 저 갑자기 생각났다... 아랑이가 민규한테 >>사투리<< 들으려면 뭘하면 좋을까요! 사투리 듣고 싶어요!
>>406 전 저걸 평행세계 (아랑이랑 같은반) 사하가 땋아준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ㅇ,< 현생... 현재세계에서도 땋아주는 거 보고 싶은데... (짧머 금아랑....) (너 왜 긴머 아니냐...ㅠ.ㅠ) 크흡... 대신 아랑이가 사하 머리 땋아보자.. 사하 넘 조아요...
>>407 아랑주가 1시반쯤에 잘 생각이라서.. 중간에 선관짜다 사라지겠지만... <:3 (그래도 캡틴의 아이디어 뱅크를 너무 보고 싶음...) 괜찮다면 와주세요!!
>>408 헉... 순정만화 미소녀st라고는 처음 들어보네요....!! 저 사실 려문주 그림 보고 왔어요..... (심장 부여잡음) 려문이 너무 잘생겼어.... 요즘 웹툰 남주st 예요.... 안녕하세요, 려문주! 시트에서 뵙고 왠지 인사는 처음 드리는 거 같네요 ㅎㅁㅎ!
>>422 키까지 생각해보면 함부로 까불 수 없는 인상이겠는걸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는 민규가 귀여운 걸 알고 있지.... >>423 평행세계 사하는 아랑이랑 같은 반이야? 그 세계를 나에게도 보여줘라! ㅋㅋㅋ큐ㅠㅠㅠㅠㅠ 너무 간절해져.... 사하도 머리 짧아서.. 심지어 층도 나서 안 땋아질 텐데 ㅠ 아랑아 땋는 대신 머리핀 예쁜 거 골라 바쳐도 되겠니....s2
"그럼 서로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선배의 가치관은 그쪽이고 저는 이쪽이니까요. 일단 걱정해줘서 하는 말이라면 마음은 감사하게 받을게요."
마음은 알겠으나 그 말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은 없다는게 그가 선택한 답이었다. 늑대가 아니라면 늑대가 아닌 존재였을 뿐이고 자신은 쭉 그 자세를 고수했다. 인간이냐 양이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고, 반드시 뭔가를 선택해서 밝혀야만 하는 것일까. 자신은 자신일 뿐이라는 생각에 흔들림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미숙함일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 존재가 크게 알려지고, 점점 커지게 된다고 해도, 저는 저에요."
자신이 양이면 이런 태도가 되고, 자신이 사람이면 저런 태도가 된다면 그렇게 두면 될 일이었다. 양이라는 것을 굳이 비밀로 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굳이 먼저 말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작은 차이 하나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눈빛이 달라지기에. 그리고 그것을 어린 시절 분명하게 느꼈었기에.
그런 아무래도 좋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적당히 넘겨버리면서 하늘은 가볍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
새슬이 초콜릿을 집어 앞뒤를 살핀 뒤, 포스트잇을 살며시 떼어냈다. 누구의 글씨인지 머리를 굴려 보지만,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누군가 이 쪽을 살피는 기색은 없고, 그저 각자의 할 일을 하느라 왁자지껄할 뿐.
이런 걸 책상에 올려놓은 사람은 누구일까아.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을 붙잡고 물어보기엔 조금 귀찮으니까. 나중에 할래. 새슬이 초콜릿 봉지를 뜯어 한 입 베어물었다. 파각, 얇은 초콜릿 판이 손쉽게 조각나는 소리. 입 안에 퍼지는 달곰씁슬함, 생글거리며 배어나오는 웃음. 필통에서 작은 네임펜을 꺼내어 책상에 무언가를 뽀득뽀득 적는다.
[ 맛있다ㅡ 고마워ㅡ ( ᐛ ) ]
보겠지. 응. 분명. 한 번 더 조각낸 초콜릿을 입에 물고, 새슬의 발걸음이 교실 밖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없는 주인을 견디는 데 이미 한참 익숙해진 자리에, 검은 글씨만이 낯설게 남아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늘이는 주원이와는 다른 의견을 고수할 모양이었다. 주원은 이제 되었는지 "걱정, 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뭐 됐어." 하곤 대답한다. 사람의 수만큼 의견도 천차만별인거니까. 그것 또한 잘 아는 바이기도 했고.
"스스로의 존재가 달라지지는 않지."
다만 타인이 달라질 뿐이지. 라고 주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어찌됐든 정답이란 없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 메꿔가는 것일 테니까. 아니라면, 아닌 것이겠지.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가치관이 형성되고 스스로의 생각이 굳어간다. 태어난 조건이 다르고, 함께 해온 사람들이 다른만큼 의견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 또한 완벽한 정답은 없을테고.
문하는 차가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관자놀이께가 지끈 아파오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쓰잘데없는 이벤트같은 게 많은지. (※ 캐릭터인 문하의 독립적인 생각이며, 문하주는 산들고와 캡틴의 빵빵한 이벤트진행을 적극 지지합니다.)
핸드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하는 핸드폰을 더플백에 푹 쑤셔넣었다. 일주일 정도, 정말이지 귀찮게 됐다. 이런다고 뭔가 바뀔 거라 생각하는 걸까? 극적인 전환점 같은 거라도 되기를 바라는 걸까? 기억하건대 작년 이맘때- 하늘이 이렇게까지 삭막하게 잠겨있지는 않았던 무료한 나날들이었다. 지겨운 하루하루에 뭔가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시작한 이벤트였건만 별 건 없었다. 그냥, 시답잖은 간식 몇 개만 오갔던 이벤트였지.
누구였는지 모를 그 사람도 내 마니또가 된 게 탐탁치 않았는지 마니또 게임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고, 나도 그 의사를 존중해서 딱히 마니또가 누군지 밝혀내는 데에 열의 따위를 두지 않았다. 그야,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마니또로서 담당하게 된 녀석은 별생각 없는 시커먼 운동부 동기였고. 운동부 동기라고 한다면 이래저래 아무도 모르게 마니또 노릇 해줄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그냥 일주일 정도 운동기구 뒷정리라거나 하는 자질구레한 운동부 잡일에 조금 더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 내 마니또 활동의 전부였다.
내가 받은 문자를 보건대, 이번 마니또 게임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딱히, 모르는 이름.
다른 이들은 마니또 놀이에 신이 나서 왁자지껄 몰려다니면서 누가 누구인지 찾아내려고 분투하고, 그 탐정들의 시선을 피해 비밀스레 마니또 역할을 수행하려 모든 노력을 다하고, 마니또인 거 다 보였다면서 누군가를 놀려먹거나 팔을 수도꼭지 모양으로 치켜들며 놀라곤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좋은 친구며 자기 마음을 기대도 좋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문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작년의 마니또 이벤트는 문하에게 딱히 무언가 특별하게 여겨질 만한 무언가를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올해의 마니또 이벤트 역시도 문하를 다시 일으켜세워줄 만한 무언가를 가져오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당연하다. 잘 안다. 남들이 청춘이라고 부르면서 마음껏 향유하는 이 나날들은 이미 내게서는 그 주어진 모든 빛과 향을 다 발해버리고 소진되어서 빛이 바래어버렸으며, 이제 내 앞에 남은 것은 삭막한 흑백의 어두운 나날들뿐이라는 것을.
나와 함께 있어주지 않을 거잖아. 내게로 왔다가 금방 나한테서 떠나버릴 거잖아. 나를 이대로 혼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둬.
이번에 지원금이 나온 동아리 회비를 댄스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지구는 학생회실로 돌아가는 계단을 차근히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은 동아리 활동 시간이라 가득한 동아리 실에는 저마다의 아이들이 제 취미와 특기를 즐기고 있는 참이겠다. 그럼 학생회는 뭐지? 생기부용일까. 알 바는 없었다. 지구는 학생회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음에도 무시하고 계단을 좀 더 올랐다. 저번엔 1층에서 딴청을 피우다 다른 학생과 마주쳐 불화가 생겼으니 오늘은 옥상이겠다. 매일 땡땡이를 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불려간 선생님께서 '이거 댄스부 아이들에게 전해줄래?' 라고 하셨지 돌아오라곤 안하셨으니까. 상관없지.
옥상에 도착한 지구는 익숙하게 문을 따고..가 아니라 오늘은 번거롭지 않게도 열려 있었다. 이미 누가 왔다 간 거겠지. 지구는 익숙하게 난간 쪽으로 가 상체를 기대고 주머니에서 파란곽을 꺼내고 있었다. 커다란 구름들이 흘러가며 그늘을 만들었다가, 다시 맑은 햇살을 비춘다. 은은하게 부는 봄바람은 왠지 단내가 나는 것만 같다. 그것도 마치 구름에서 날 것만 같은 눅진한 바닐라잼의 향. 그거 정말 수상하네. 이미 연초를 입에 물었던 지구는 불을 붙이기 전에 웅얼거리 듯 중얼거리고 난간에서 등을 돌려 옥상 위를 훑었다. 어쩌면 학교 밖에서 타고 오는 향일까. 그렇다기엔 냄새가 뚜렷한 게 근처인 게 분명하다. 옥상이래도 학교 안인데 뭐하는 건지. 휘말리고 싶진 않았지만 일이 더 커지는 게 귀찮았으므로 지구는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거리며 바닐라향이 뚜렷하게 나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확실히 구석으로 가니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잿빛의 소녀가 눈에 띄였다. 그것이 시야에 들어오자 확 풍기는 페로몬의 체취에 지구는 인상을 쓰고 임시 방편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신사적으로 참아 내어야지. 물었던 것을 도로 제자리에 넣어두고 곽은 주머니에 넣었다. 지구는 웅크리고 있는 작은 그녀에게 다가가 같이 쪼그려 앉아 고개를 기울여 그 학생의 숨은 얼굴을 들여다보려하며 입을 열었다.
"뭐하냐."
언뜻 보이는 사하의 이마에 검지와 엄지로 딱밤을 놓으려 시도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짧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페로몬의 체취가 진득하게 풍겨와, 지구는 습관적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참아야 되지, 내가 또.
결국 혼자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 그리 좋은 습관은 아니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적어도 지금의 하늘에게는 주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대로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가 마련이다. 그 와중에 늑대임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저, 많은 것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믿고 밀어주는 부모님에게도,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준 선생님에게도,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피아노에게도. 그런 속마음은 애써 씹어버리며 하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아리를 하지 않다보니 이런 곳이 있다는건 몰랐는데, 다음에 내키면 또 놀러와도 되나요? 선배의 조언은 별개로 치고, 이렇게 인연이고 알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아. 부원이 아니면 못 오나요? 아. 그러면 아예 못 들어올 것 같은데. 저, 동아리는 못해서."
부원이 하나. 어쩌면 다른 부원이 정말로 필요할지도 모르나, 자신은 동아리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즐거운 것을 하는 부. 자신이 들어가게 되면 필시 이 선배에게 있어서는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주원도 더이상 하늘의 의견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는지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였다. 결국 주원의 자기멋대로의 행동에, 자기 의견을 부딪쳤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진심도 있는 법. 미움 받더라도, 이렇게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아냐아냐. 어어어언제든지 와도 된다구? 거기에 조오오오금만 더 인심써서 이름만이라도 올려주지 않을래..? 유령회원이라도 좋으니까..!"
주원은 간절한 얼굴을 하고 두 손을 비비다가 이내 "푸하핫." 하고 웃으며 "장난이야. 하지만 정말 언제든지 와도 되니까. 언제나 있는건 아니지만." 하고 대답한다.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어김없이 햇볕은 밝다. 옅게 인상을 찌푸린 사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포기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정수리만 따끈따끈한 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거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인기척을 낸 당사자야, 용건이 있으면 올 거고 없으면 제 볼 일 보고 가겠거니 했다.
묻는 말에 대답이랍시고 오래된 노래의 가사를 읽는다. 음절도 없이 읽는 게 성의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이마에 딱밤을 맞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여기 다 좋은데 그늘이 너무 없어."
<파라솔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학생회장 앞이라고 은근슬쩍 제안을 던져본다. 바람 솔솔 부는 파라솔 그늘 아래서 낮잠이나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낮잠 아니라도, 뭐… 그냥 앉아서 하늘 구경이나 해. 여름 되면 더워져서 다 때려치고 싶겠지만, 봄까지는 그늘만 있으면 그럭저럭 쾌적할 것 같은데.
"너는 여기서 뭐해?"
궁금한 눈으로 지구를 보며 물었다. 지금 한참 동아리 시간인데, 옥상에서 활동하는 동아리는 없잖아. 학생회실은 따로 있고.
마침 오전 트레이닝을 마치고 와서 당이 딸리던 참이라, 별사탕 정도는 고맙게 먹어두기로 했다. 그냥 설탕맛이 아니라 소다맛이 도는 게 조금 별나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별난 물건이 별사탕 옆에 있다. 문하는 해마 모양으로 조각된 크리스탈 장식과 옆에 놓인 쪽지를 집어들고 가만히 살펴보았다. ...별다를 건 없다. 그냥 평범한 장식물이다. 문하는 다른 손을 사물함 안쪽으로 깊숙이 찔러넣었다.
언젠가 스포츠용 손목시계를 살 때 그것을 담고 있었던 양철 케이스가 딸려나왔다. 문하는 양철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까마귀 수집품을 방불케 하는 잡다한 잡동사니가 몇 개인가 들어있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소라껍질, 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외국 동전, 낡은 드림캐쳐... 문하는 그 양철 케이스 안에 그 크리스탈 해마를 집어넣고는 케이스를 닫았다.
데이트라는 말에 하하, 호흡 섞인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도 좋지. 교내 데이트가 되려나? 모처럼 하는 데이트가 학교 안이라니, 고삼이란."
여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치 자조하는 말투로 말했다. 반은 농담이 섞여 있고 반은 진심이 섞인 투였다. 여자에게 해인은 싱거운 치레도 진심인 것처럼 들리게 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아, 지금도 재능을 사용하는 중이려나. 흑색과 백색 사이 어드매에 있을 색상의 눈동자로 시선을 피하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백가예는 재능은 쓰임새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강해인이 지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진행되던 행동을 억지로 멎게 한 것처럼 좀 전보다 경직된 턱끝을 응시하다가 보라색 머리카락에서 손을 뗀다. 이 머리카락은 염색이려나. 다탁 하나만을 최소한의 방벽 삼아 사이에 두고 늑대와 양이 있었다. 오늘치 약은 아침에 복용하고 온 상태라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을 거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굶주렸다고 해도 달려들지 않을 걸 알아, 늑대야. 흔든다는 표현은 호전적으로 들리네. 어디까지나 옵션을 제시하려던 거였는데..."
너한텐 그렇게 보이지 않겠구나, 빠르게 생각의 속도를 높인 여자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를 앞에 둔 양이라기엔 지나치게 차분한 태도였으나 숱한 경험으로 평정심을 잃어도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기에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고른 숨소리, 자연스러운 몸짓을 유지했다. 너도 내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은 어쩐지 다각적으로 들려서 몇 초 정도의 간극을 두다가 대답했다.
"필요해.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거야."
확신이 깃든 목소리였다. 다수의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내 편이라면 그 사람들마저 제 편일 것이요, 적으로 돌린다면 그 사람들마저 내 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백가예는 결과적으로 본인마저 늑대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잠시 미안함을 느꼈지만 결국 이기적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나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일 테니까. 중요한 건 너도 내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결론을 굳히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린다.
"페로몬 억제되어 있는 건 느껴질 테고... 약발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야자 끝나고 볼까, 내일 아침에 볼까."
빨리 보는 게 좋겠지? 불에 장작을 넣듯 부추기며 상체를 네 쪽으로 가까이 기울이며 은밀히 말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더 아닐 테고. 아니여야 될 텐데. 뒷말은 삼켰다. 운도 나쁘다는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와 지구의 눈이 가늘어지긴 했지만 곧 이어지는 사하의 헛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가 왜이렇게 칠칠맞지? 일부러 이러나? 게다가 그녀와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애초에 친한 인물이 몇 없는 거지만.. 가까이 다가간 그녀의 행색을 보니 정수리와 머리 끝 색이 달라 기억하기 쉬운, 동급생의 은사하였다.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딱밤을 맞았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형편 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 사하는 무시하고, 지구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잠깐." 이라고 중얼거리며 웅크리고 있는 사하의 얇은 손을 불쑥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제 코 끝에 가까이 가져다대어 강아지처럼 킁킁 냄새를 맡더니 결국 사하를 묘하게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잡아당긴 그녀의 손등에 턱을 괴려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는데 확인 사살을 해버렸으니 그녀가 도망갈 곳은 없겠고. 마침 옥상이겠다 구석진 곳이겠다 먹어 버려도 상관은 없을 텐데. 어쨌든 그녀는 꽤 맛있어보였고, 바닐라향은 지구가 좋아하는 추억의 것이었다.
"너, 늑대 아니었나?"
건조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건네진다. 그의 얼굴은 꽤 피로해보였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그렇다고 불의를 지나치는 성격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피곤한 사람. 사하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왠지 장난이 치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던 것 같고. 나름의 갈등에 빠지며 욕구를 참아내고 입술을 달싹이듯 핥았다. 날카롭게 뜬 눈과 꽤 신경질적인 말투는 평소의 땡땡이 치기를 좋아하던 나른한 학생회장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으려나.
능청스레 대꾸한다. 만약 찾아온다면 정말 선심써서 도와주겠다는 투였다. 유한 얼굴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우습다. 그렇지만 잘 보이고 싶은 애 앞에서 허세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보이면서 엄청 겉멋을 신경쓴다. 정작 찾아왔을 때 당장 도와줄 확신도 없는 주제에 낯짝이 두껍다.
"왜 힘 빼기가 힘든 거야? 음, 심리적 요인인 것 같으니까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하다는 듯 제법 공들이고 있었다. 사하의 고민은 눈치채지 못한다. 만일 알았대 해도 어차피 친구 몇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 찔릴 일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 자신 있나봐?"
으쓱해하는 사하의 모습에 불쑥 못된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선하가 입꼬리를 만지작거린다. 마사지의 일환으로 혹여나 제 속내가 튀어나올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얌전히 주는 거 받아먹을까 싶었는데, 이것저것 집어서 울상지게 만들면 어쩔까 싶다. 곤란해 하려나? 화내려나? 어느쪽이건 관계가 틀어질만한 일이었다. 간식 사준다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사서 곤란하게 만드는 건 일반적으로 무례했으니까. "곧 수업 시작하니까, 나중에. 나중에 사줘..." 느린 템포로 말했다. 걸음 역시 한층 느려졌기에 약간 뒤로 쳐졌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영화감상부 좋지. 사실 나도 영화는 아무거나 잘 봐."
아무거나 잘 보는게 아니라, 뭘 틀어주던 상관 없다는 표현이 맞았다. 덜 자극적인 것보다는 자극적인 영화를 더 즐겨하긴 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중요한가 싶다.
봄의 밤은 유난히 길었다. 오묘한 새벽 공기는 널 떠올리게 했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 맺힌 꽃들이 내리는 꽃비도 너를 닮았다. 피고 지는 꽃 들이며 바닥에 깔린 꽃잎도 그 무엇 하나 너를 닮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왜 피어난 것들에서 너를 찾는지. 너는 이미 져버렸는데.
다닥다닥 붙은 집들 달빛조차 들지 않고 깨진 창틈 새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이 전부였던 퀴퀴한 냄새가 맴도는 방 안에서 너는 외로움을 피워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잠든 시간에도 신음할 틈도 없이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삶이 가장 버거웠던 너는 어스름한 새벽 파랗게 떠올랐다 져버렸다. 곧잘 죽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던 너는 무얼 하고 싶었을까. 겨우 남들만큼 딱 그만큼만 살고 싶었겠지. 가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날아오르기엔 넌 너무 어렸다고.
사실 나는 그런 네 무력한 모습도 사랑했을지도. 가끔 너는 자신의 속을 무심코 꺼내 우울까지도 내어주었고 자신이 한 말은 꼭 지키겠다고 몇 번이고 말해댔고 너는 결국 내게 한 말을 지키지 않았다. 너는 그리 가볍게 뱉어냈던 한숨만을 이뤄냈고 사실 나는 네 부고에 쓰러져 울었다. 너를 좋아했고 너로 인해 밤 새 설레했고 조금은 원망했다. 사실 내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활짝 피어있었음을.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도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매사에 서투르고 남을 피해 다니기 급급했던. 사람도 사랑도 싫다고 이상하다고 매일 밤 의미 없는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고. 냉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몰랐던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변하는 건 오직 세상일 거라고. 나는 항상 어리고 서투르고 메마르며 늘 청춘이므로.
오늘 밤은 달이 높게 걸렸으니 나는 시든 꽃처럼 낮게 몸을 웅크리고 숨죽여 너의 외로움을 삼켜야지. 너는 보지 못하게. 너는 듣지 못하게. 눈을 감았음에도 새어나가는 작은 흐느낌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 좀처럼 잠은 이루지 못하고 옷자락을 적셨다.
TMI: 문하는 외형을 작정하고 늑대스럽게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었어. 의외로 늑대들 중에 나 늑대요 하고 얼굴에 써붙인 애가 없어서 말야. 그런데 이제 거기에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 스타일의 담백한 겉바속촉 성격인데, 거기다가 버림받아서 조금 곪아있는 유기견 속성을 곁들여서 탄생한 게 문하. (취향 고약)
헛소리하며 피실피실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웃었다. 어릴 때 눈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만화영화는 본 적 있다. 결말이 엄청 슬퍼서 볼 때마다 울었던 것 같은데. 요즘 움직이는 눈사람은 올라프가 대세인가. 걔는 안 녹는 것 같던데. 눈사람 하나에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줄줄이 이어진다. …근데 내가 한 말이 한숨 쉴 정도인가?
"알았어, 파라솔 얘기 안 할게."
<잠깐.> 이란 말로 쉽게 제지당한 사하가 금방 발언을 철회한다. 그렇게 간절한 것도 아니었다, 뭐. 근데 끊어먹을 정도로 골 때린 말이었나. 잠깐 생각해본다. 그래도 말은 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 반항심이 끓는다. 그래, 나는 한 마디여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수십 마디일 수도 있지. 마무리는 인정이다. 지구에게는 피곤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굳이 하나 더 보태고 싶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파라솔을 접어 저쪽으로 던졌다. 내가 우산 가지고 다니면 되니까. 그러다 정신차려보니 손을 잡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잡혀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손은 왜? 핸드크림은 한참 전에 발라서 별 냄새 안 날 텐데.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지구를 본다. 많이 피곤했나. 내가 많기 귀찮게 굴었나. 평소에는 얌전하고 온순한 편 아니었나.
"어?"
갑자기 날아오는 질문에 멍청한 대답을 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다. 아니, 진짜 맞았나? 물리적 충격으로 정신이 돌아왔나? 퍼즐이 착착 맞기 시작한다. 내 말 끊어먹은 거, 갑자기 손 끌어간 거. 설마.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돌리던 사하가 지구에게 묻는다.
산들고등학교에서 학교에 가장 오래 있는건 역시나 3학년 학생들일테다. 선생님들보다 조금 늦게 오지만 야자를 하는 학생들은 선생님들보다 한참 늦게 집에 가고, 야자를 하는 학생들 중에선 3학년의 비중이 가장 높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데이트마저 교내 데이트라니 시험이 끝났을때 정도는 시내에서 가볍게 나들이를 하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텐데. 아무래도 3학년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회색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좀 더 자세히 보이는 거리. 그녀가 손을 뻗어서 내 머리카락에 닿을 정도의 거리. 잠에서 방금 일어났을땐 몰랐지만 정신을 차린 지금에서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심 페로몬의 향기가 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 너는 늑대 앞에서 겁먹지 않는 강인한 양이니까. 옵션을 제시하더라도 결국 원한건 이게 아니었어? "
내가 아는 백가예라는 사람은 양의 입장에서 늑대를 다룰 줄 알고 있다. 특히나 나 같이 재능의 소모량이 심한 사람에게 그녀의 존재는 노숙자 앞에 멋들어지게 차려진 뷔페와도 같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왜? 굳이 빠져나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기를 몇초, 대답이 들려오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 오늘 밤이 좋겠는걸. "
뭐든 빠른게 좋지 않을까. 물론 야자가 끝나는 시간은 열시니까 그 이후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기숙사는 열시 반까지 들어가야하니까. 하지만 맛있는 먹잇감이 눈 앞에 있는데 아침까지 기다릴 늑대는 그렇게 많지 않다.
" 내 재능이 탐나지? "
내가 필요하다는 말은 양으로써의 의미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도 있을터였다. 화술, 달변 .. 태어날때부터 지니고 있던 재능. 세치 혀로 사람들을 홀릴 수도 있는 재능. 많은 사람들이 원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사하가 정말로 눈사람 따위의 존재였다면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옥상 위에 파라솔 정도는 놔둬줄 수 있었겠다. 그럴 리가 없어 하는 소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눈사람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따위에 훨씬 더 가까웠으니까. 녹지 않으려 그늘에 숨은 것 하며. 이 달큰한 체취하며. 단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바닐라향은 좋아하는 냄새였으니 솔직한 감상으론 날도 선선하니 이 바보같이 순진하고 단 것을 취하고 싶었다. 그것을 나무랄 사람도 없었고. 나는 그저 숨어있는 디저트를 찾아 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눈앞의 뭣 모르는 사하는 파라솔이나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이 지구의 한숨을 자꾸만 끌어들였다.
"양?"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한 듯 얼빠진 얼굴로 제게 꽤 실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하를 보며 지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언뜻 스치는 그것은 포식자의 여유넘치는 코웃음 같은 것. 원래라면 사하의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약을 받으러 가자며 꽁꽁 숨겨 양호실에 데려다 주었겠지만, 평소 마이페이스로 보였던 사하의 빈틈은 꽤 흥미를 자극해서 지구는 스위치가 들어가는 것을 직감한다. 꽤 재미있는 질문이었다고.
"내가 너랑 같다고?"
그리 무해하게 보였나? 실소가 나왔다. 뭐 평소엔 남들한테 퍽 관심 끄고 사니 그럴 수도 있겠다. 또 더 깊이 말하자면 애초부터 노린 것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나약한 양까지 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큭큭거리다 낮게 뜬 푸른 눈으로 사하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이 살피며 고개를 기울여 제 어깨 기대었다.
"..맞지. 나 양 맞아."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이던 지구는 잡았던 사하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 깨무는 시늉을 하려하며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상황이 퍽 재밌어 보였다.
"그럼 먹어도 되는 건가?"
무방비한 네가, 먹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진짜 깨물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가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면 손 정도야 깨물 의향이 있었다.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 늑대라고 밝혀진다 한들 나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제게 걸린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가 생각하기엔 그녀가 지구와 마주치고 내뱉었던 첫마디에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평소에 꽤 얌전히 군다고 해서, 그 짐승이 먹이 앞에서도 얌전할 거란 보장은 없지.
금아랑 테마곡... <:3 (후보 no.1이지만 더 맘에 드는 곡 찾으면 바뀔수도 있어요) (영상에 조커 있습니다. 무서운 거 싫어하시는 분은 주의!)
테마곡으로 고른 이유는 가사만 보면 밝은데, 들으면 왠지 슬픈 느낌이 듬. 이곡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Dance Monkey는 톤즈 앤 아이가 호주에서 버스킹을 할 때 겪었던 이야기라고 해요. 톤즈 앤 아이는 6시간 동안 버스킹을 해서 얻었던 돈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았고, 공연이 끝나고 '정말 죄송하지만, 공연이 끝났어요' 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빨리 노래해 줘', '지나가던 날 멈추게 한 건 너야', '한 번만 더 노래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인 게 마음에 들어서 입니다 <:3
여러분들이 금아랑 밝고 귀엽게만 보시면 ((아냐 여러분 그거 아냐....8ㅁ8 쟤가 완전 귀엽고 완전 밝지도 않아...)) 하고 싶은 맘도 들어서 테마 살짝 올려봐요!
>>533 앗 이 독백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코난이 나타나주시길 기다렸는데 려문이었군요 ㅎ▽ㅎ!!! 그림도..잘 그리시는데..글까지..잘..쓰신다.. 그런데 몇몇의 아이들의 슬픈 옛 첫사랑이 있는 것 같아 캡틴의 코를 적시네요.....엔딩까지 열심히 달리다보면 다 풀어주겠죠..? 그리구 친구 사귀면서 치유되면 좋겠다..그런..감상..ㅇ<-<
>>571 헉 제가 엄청 좋아했던 노래네요! 하루에 반복재생해서 엄청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고 아랑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보이네요...! 곡 선정 굿굿... 아직 아랑이랑 일상돌려본 적 없지만 다음 일상 돌릴때 마냥 밝고 귀엽지만은 않다는 걸 꼭 기억해둬야겠네요...!
>>571 그렇지. 여기서도 누군가 한번 말했었는데, 누구나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는 거지. 능숙하게 감추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차이 정도뿐. 아랑이가 마냥 귀엽고 마냥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말은 그만큼 아랑이가 잘 만들어진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만큼 당연히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573 내 야광봉이 어딨더라.. 3.3 (주섬주섬) 뭔가 꼴라주같으면서도 레트로한 느낌이 오히려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사람의 웃음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저 웃음은 뭐지? 확실한 건 호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웃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저렇게 웃는 지구는 낯설다. 제가 기억하는 지구는 낯을 가리고, 얌전하고, 온순하고…… 아무튼, 늑대보다는 양에 가까웠다. 그럼 지금 눈 앞에 있는 지구는? ……일단 양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와 보니 양 같은 점이 눈꼽 만큼도 없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변하는 게.
<내가 너랑 같다고?> 이 말에서 망했음을 직감했다. 양은 무슨. 온지구는 늑대다. 내가 약을 안 먹었나? 그럼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을 텐데. 달은 커녕 지금 햇볕 뜨거워 죽겠는데.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경계하는 눈초리로 지구를 바라봤다. 양 맞다는 말에 헛웃음 터진다. 내가 이상한 소리할 때 다른 사람들 이런 기분인가. 깨무는 시늉에 긴장해 한쪽 눈가가 실그러진다.
"양은 양 안 먹어."
잡혀있던 손을 빼고 한숨 쉬며 앞머리를 넘겼다. 뭐, 굳이 평생 비밀로 간직하는 일이 불가능할 거라는 건 알았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사람도 있겠거니 예상은 했다. 그래도 그냥 먹이 취급은 좀 억울한데.
"그렇구나. 그거면 누가 밑에서 받쳐주면 되지 않을까? 그거정도라면 나도 해줄 수 있겠다."
수영 대회가 끝나면 시간이 남을테니까 그때 한 번 불러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영을 도와주면서 겸사겸사 스킨십도 하고 친해져보려는 속셈이었다. 흑심이 그득한 것이 머리에 마구니만 가득 든게 틀림없었다. 선하의 속눈썹 사이로 눈동자가 교묘하게 움직인다. 사하의 손을 향해있었다.
"그렇지? 신기해. 이름도 닮았고, 성격도, 취향도..."
은근 슬쩍 단어를 확장시킨다. 어리숙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로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되는 결론이었지만, 고개 기울이며 웃는 선하의 얼굴을 보면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손이 깍지를 끼고 파르르 떤다. 눈이 둥글게 접히고 입꼬리고 올라간다. 복도에 줄지은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자 괜히 더 밝아보이는 기분이었다.
"나도 스릴러랑 액션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추리나 미스테리는 썩 즐기지 않았다. 짐승이 그런 고차원적인 장르를 제대로 이해할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그 말은 쏙 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뽑아서 재잘거렸다.
"그 긴장감을 좋아하나봐.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온 몸이 떨리기도 하더라."
선하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숨긴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혀를 굴리는 입은 뱀처럼 은밀했다.
"그러고보니 그거 알아? 사람이 공포와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대. 그런 걸 흔들다리 효과라 하는 것 같더라. 어쩌면 그래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지."
손끝으로 유인물의 끝을 쓸어내린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선하가 유인물을 사하의 품에 내어주었다. "동아리에서 영화볼때 나도 불러줄래? 기왕이면 너랑 내가 좋아하는 장르로." 방금 꺼낸 말을 고려하면 의도가 상당히 불순한 제안이었으나 선하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럼 나는 양이 아닌가보다, 그렇지? 뒷말을 덧붙여 중얼거리는 지구의 목소리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묻어있다. 저를 양으로 착각해 준 것은 꽤 흥미로운 발상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다. 평소의 지구라면 뭐, 응. 아니. 정도의 대답에 곤란한 이야기가 오고가면 슬쩍 자리를 피해 사라지고 없던 학생회장 정도였을까. 애초에 지구를 알려 하기도 전에 차단 시키는 게 대다수였으니 지구를 얕잡아 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굳이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고.. 지금은 단순히 그녀의 체취가 마음에 들었고, 그게 또 거슬렸기 때문이다.
저를 경계하는 눈초리의 사하는 영락없이 순진한 양일 뿐이었고. 이때까지 그녀가 늑대라고 생각했던 착각은 무엇 때문이었지? 긴장한 듯한 해보이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그런 형편없던 생각은 말끔히 지워진다. 움츠러드는 양을 보며 딱히 우월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니. 말은 아끼라고 있는 거지. 제게서 잡혔던 손을 빼내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사하는 머리를 굴리는 듯했다. 혹은 여유를 되찾을 생각이거나.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걸까. 그것은 그녀가 정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하. 네가 지금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할 처진가."
신경을 건드린 듯 지구는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리더니, 겁이라도 줄 생각인지 사하 뒤에 있는 벽을 뻗은 한 손으로 짚어 그녀를 구석에 완전히 가두려했다. 동급생인 그녀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지만, 안일하게 그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구야 참는 게 일상이었으니 굳이 그녀를 위험한 상황까지 몰고 가진 않을 테지만, 그가 아니었더라면? 평소에 양을 접하는 게 쉽지 않은 늑대였다면? 도발하는 것으로 여유를 부릴 정도로 바보였나 그녀가? 한 순간 픽 웃음 짓는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스쳤지만 낮은 한숨을 길게 내뱉는 것에 그쳤다.
"부탁은 네 역할이지."
그는 애초에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 줄 생각도 없었지만. 담배 한 대 태우려 왔다가 이게 무슨 장난인지. 지구는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도발해대는 그녀를 철없다는 눈빛으로 노려 볼 뿐이었다. 어찌보면 그녀가 늑대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데, 나는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뭣도 아니니 오지랖을 넓힐 생각은 없다. 그냥 여기서 충격 요법으로 목덜미 한번 깨물어 주면 정신을 차릴까. 애초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성을 잃지 않고 참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넌 절대 모르겠지. 지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그녀를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지구는 조금 생각에 빠진 얼굴로 무의식적으로 남은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대어 만지작거리려 하며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기껏해야 교내 정원이나 생각하던 여자는 바깥 이야기가 나오자 반색을 했다. 실외에서 노는 게 더 좋은데 학교는 너무 갑갑하다고. 그러던 차에 해인의 입에서 시내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치뜨고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맞아. 내 감정을 억지로 충족시켜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물었어."
예의상 말이야. 뒷말은 마음 속으로만 했다. 늑대와 양이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결핍을 충족하는 행위는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사전 확인은 꼭 필요한 절차니까.
해인의 대답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협상이 체결되어 기쁘다는 듯이 느긋하게 마주 웃으며 만족스러운 숨소리를 낸 여자의 머릿속은 다시금 연산으로 분주하다. 기숙사 통금은 열 시 반. 약효는 곧 다하고, 더 지체하면 제때 출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수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던 중 귀에 해인의 목소리가 꽂혔다. 여자는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켰을 때의 섬짓함을 느끼며 늑대롤 천천히 돌아보았다.
"......"
내 재능이 탐나지? 좀 전 본인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듯한 말. 저지르려던 악행을 꼬집는 말. 그 뒤로 따라오는 말은 가져도 좋다는 말. 허락의, 또는 동의의 뜻. 혹은 둘 다. 아무 말 없이 눈꺼풀만 깜빡이던 양은 해당하는 말에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누군가 다치는 걸 싫어하는구나. 알아둘게."
내가 다칠 것 같거나, 이미 다친 경우엔 예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로 팔짱을 끼웠다. 전자의 경우에 아끼고 아껴서 네 능력을 사용해달라고 부탁할 순 있겠지만 내 사사로운 복수에 너를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이상으로 줄 수 있는 건 아직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끈을 입에 문 채 머리를 틀어 묶었다.
"또 두 가지 옵션이 있어. 이번엔 고르는 재미 있을걸."
머릴 높게 묶고 네 옆으로 자리를 옮겨 의자에 앉았다. 맥박이 뛰는 부위가 드러나면 향이 조금이라도 나지 않을까 싶어서. 고개도 설레설레 흔들어 보았다.
"야자를 마치고 와서 억제제의 효과가 거의 없어졌을 때 먹기. 두 번째. 지금은 거의 안 느껴지겠지만 꽉꽉 물고 씹어서 배어 있는 단물이라도 마시기. 아, 통금 시간은 사감 선생님한테 미리 말할 거니까 걱정 말고."
본인을 음식에 비유하는 묘사를 쓸데없이 잘했다는 생각에 잠깐 해탈해지려고 했으나 지독한 외로움이 충족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것을 가려주는 듯했다. 전자의 경우 충족치는 보장되지만 기다려야 하고, 후자의 경우 깔끔히 끝내고 야자를 하러 갈 수 있지만 입맛만 돋우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지금 냄새 나? 여자는 눈으로 물으며 해인을 쳐다보았다.
선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사하가 선하를 돌아봤다. 천사라도 본 얼굴이다. 대회준비 때문에 바쁠 텐데. 물론 도와주겠다는 건 나중에 한가할 때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쉬어야……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대답은 감사의 인사다. 선하가 베풀어준 호의를 넙죽 받겠다는 뜻이다.
"네가 도와주면 나도 든든하지."
10년 친구는 된 것처럼 말한다. 근데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지.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갑자기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물론 혼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게, 우리 은근히 닮은 점이 많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도대체 어떤 애길래 매해 이름 바꿔부르는 애들이 있는지.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하의 웃는 얼굴을 보곤 홀린듯 납득하며 끄덕였다.
영화 이야기를 하는 선하의 말에 사하가 반색했다. 좋아하는 장르가 겹쳐 기뻤다. 물론 사하가 말하는 영화는 잘 만든 것들을 넘어서 괴작, 혹은 망작으로 불리는 것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지만.
"맞아. 나도 그래서 좋아하는데. 영화 취향은 진짜 많이 닮았네."
사하가 웃으며 말했다. 느긋하게 말을 이어가는 선하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듣기에 좋았다. 잘 들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사하는 맞장구 치듯 사이사이 끄덕이며 들었다.
"아, 들어본 것 같아. 운동할 때도 비슷한 일 생긴대. 심장 빨리 뛰어서."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덧붙인다. 단순히 심장이 빨리 뛰는 걸 사랑에 빠진 걸로 착각하다니. 사람이 참 섬세한 듯 하면서도 단순하다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어느새 교실 앞이었다. 혼자 왔다면 더 빨리 오기야 했겠지만, 오늘처럼 즐거운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사하가 선하에게서 유인물을 받아들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재밌게 왔어. 놀러가겠다는 말도, 간식 사주겠다는 말도 진짜니까 꼭 또 봐."
<네 말대로 같이 영화도 보자.> 덧붙인 사하가 웃으며 선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 이걸로 막레해도 좋아~! 당연히 더 이어줘도 좋구! 선하주 편한대로 해줘 '-^ 아까 인사했지만 굿밤~~
우선, 선물 잘 받았어요. 받자 마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더니, 반 친구들이 모두 놀라며 저를 쳐다봤어요! 뭘 받던 기뻤겠지만, 왠지 더욱 기뻐요. 먹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그런가? 물론 먹을게 싫다는건 아니고요! 헤헤. (^-^) 몽몽씨는 절 아는 분일까요? 제가 생각나서 사주셨다니. 어쩌면 저는 모르지만 저를 아시는 분 일수도. 아니면 저도 아시는 분일지도요. 어느쪽이든, 정말 기뻐요. 마침 그립톡 하나 구하려고 했던 참이었거든요. 제가 필요로 하는 물건까지 알아내시다니, 도대체?! Σ(°ロ°) 정말 천사인가?! ((((;゜Д゜))) 장난이에요. 아니, 사실은 장난이 아닐지도? (*゚ェ゚*) 언젠가 몽몽씨에게 꼭 보답하고 싶어요. 제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꼭, 꼭 알려주세요. 제가 찾지 못하더라도, 절 찾아주세요. 날개달리지 않은 천사씨.
- 선물을 너무 뛸듯이 기뻐해 그만 다리를 다칠 뻔 한 남주원이. - (민트색 편지지에 조심스럽게 편지를 넣어 책상 속에 넣어둔다.)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은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게만 얘기하면 내가 거절할 이유도 없을텐데. 언제나 강하게만 보이는 가예도 속으로는 외로움을 겪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양의 숙명이라는걸까. 늑대의 재능과 더불어서 정말 필요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지금 이 자리의 늑대에게 양의 외로움이란 스스로 늑대의 아가리 안에 들어오게 만드는 편리한 시스템이 아니던가.
" 옛날에도 내 재능을 탐내는 사람은 많았어. 그리고 하나 같이 눈빛이 비슷했거든. "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어보인다. 별거 아니라는듯한 웃음이지만 가예한테도 그렇게 느껴질까. 아니면 일부러 알아채라고 티를 낸걸까? 그것까지 생각하기엔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예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긍하고 넘어가는 것, 다른 사람과는 또 다른 반응.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어쨌든 내가 꺼낸 얘기니까 그녀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됐던간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 맛있는 음식은 아껴먹는 편이라서. "
그니까 야자 끝나고가 좋을 것 같은데. 그녀가 옆으로 다가오자 희미하게 페로몬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만월이었다면 진즉에 달려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고. 배고플때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무작정 달려들지 않는 것처럼 나도 때와 장소를 기다릴 줄 알았다. 물론 저 새하얀 목덜미는 일부러 나를 유혹하는게 분명했기에 더더욱.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손을 뻗으며 얘기했다.
" 아니면 너의 외로움이 견딜 수 없어졌다던지? "
만월도 아닌데 그럴리가 없다. 그냥 서로 주고 받는 티카타카 느낌의 대화. 하지만 여기서 나는 평소에는 얘기하지 않았던 다른 주제를 꺼내본다.
" 외로움이 싫다면 각인이란 것도 있으니까. "
그만큼의 리스크가 따르겠지만 너라면 그 정도는 계산이 가능할꺼라 생각해. 평소처럼의 미소를 지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예도 야자를 가야하니까 여기서 무작정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침 시간이 아슬아슬하기도 했고.
좀비사태 시작시기 : 2043년 7월 이름 : 남주원 시신 위치 : 공중화장실 내부 생존 시간 : 157일 7시간 53분 무기 : 자판기 처치한 좀비 수 : 111 사망 원인 : 숨을 너무 오래 참음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07278
숨을 너무 오래참아서 죽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주원의 사망플래그 대사 ::
"전부 다 끝나면, 여행을 가자."
시체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shindanmaker #당사플 https://kr.shindanmaker.com/867786
여행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벽한 사망플래그네...
서적 【남주원】 완결권. 551페이지, 마지막 문장 발췌중. … …… 『돌이키고 싶다고 해봤자, 무의미할테니까.』 #shindanmaker #당이그 https://kr.shindanmaker.com/1060545
좀비사태 시작시기 : 2030년 10월 이름 : 강해인 시신 위치 : 공영주차장 내부 생존 시간 : 163일 14시간 24분 무기 : 병뚜껑 처치한 좀비 수 : 324 사망 원인 : 식량을 훔치다 들킴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07278
병뚜껑으로 어케 죽인ㄱㅓ냐구?!
서적 【강해인】 완결권. 296페이지, 마지막 문장 발췌중. … …… 『"마지막 디저트는 레몬 타르트가 좋겠어요."』 #shindanmaker #당이그 https://kr.shindanmaker.com/1060545
1. 수고했다고 말하기를 사랑스럽게 말합니다 2. 마니또의 연락을 3분 내에 확인합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80485
서적 【현슬혜】 완결권. 888페이지, 마지막 문장 발췌중. … …… 『복숭아 익어갈 무렵의 일이었어요.』 #shindanmaker #당이그 https://kr.shindanmaker.com/1060545
현슬혜의 사망플래그 대사 ::
"이 일이 마지막이야."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말을 후회하나요? #shindanmaker #당사플 https://kr.shindanmaker.com/867786
당신은 어느 정도 버텼습니다.
좀비사태 시작시기 : 2034년 4월 이름 : 현슬혜 시신 위치 : 철물점 생존 시간 : 94일 8시간 34분 무기 : 거북선 모형 처치한 좀비 수 : 437 사망 원인 : 우박 맞음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07278
우박 아프지. 응... 미국에서도 난리라던데. 나도 3분요리야! 차 타고 틈틈히 답레랑 선물반응 써야지~
해인의 말에 여자는 무마하고 싶다는 신호로 코로 길게 숨을 내쉬며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당겼다.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기에. 거의 모든 가치 판단이 필요라는 기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탓이다.
"글쎄,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이게 편해서."
늑대들도 양한테 대놓고 널 잡아 삼키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양으로서 겪는 외로움과 인간으로서 겪는 외로움―이른바 털어놓을만한 외로움과 그렇지 않은 외로움―을 구별하는 일은 고도의 자기 탐색을 요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을 바엔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랬구나."
말을 돌리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 꿰뚫어 봤다는 듯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하는 해인에 가예는 약간 굳어진 얼굴로 의례적인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기에는 드러낸 부분이 많았고, 공감하기에는 본인이 짐승처럼 느껴져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인이 언급했던 저주라는 단어 선택이 가슴 언저리를 쿡쿡 찔렀기 때문일까. 맛있는 음식이라, 아껴뒀다 먹는 게 좋지. 공감이 되었으나 객체가 본인이라는 사실이 미묘했다. 접수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지금 접촉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에 슬며시 기울여 손길을 피했다. 완전히 피하려 한 것이 아니라 미온의 손끝이 목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인정할게. 주기적으로 외로움을 충족하는 편이 아니라 힘에 부치네."
일정한 대화 주제를 주고 받는 걸 즐기며 선뜻 긍정하던 여자는 다음으로 부상한 주제에 눈썹 끝을 늘어뜨리며 네가 각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는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각인 말이야? 조건을 보면 거진 애인이던 걸."
하긴 정상적인 결혼이 가당키나 할까. 시뮬레이션을 해보던 여자는 새삼스레 떠오른 의문을 삼킨 채 자리를 뜨려하는 해인을 불렀다.
"해인아."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던 가예는 고개를 젓고는 해인과 마찬가지로 씩 웃으며 같이 학생회실을 나섰다.
책상 위에 쪽지와 함께 놓여진 도넛 작은 한상자, 그냥 도넛도 아닌 금방이라도 고양이를 연상시킬 수 있는 먼치킨이라니 나름의 센스가 돋보이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보통 도넛들보다는 먹기에 비교적 편한 부분도 있으니까,
화룡점정으로 끼워진 쪽지는 이러했다.
[넌 강하다... 그 누구보다 강해지거라...]
"누가 보면 모험을 떠나는 용사인줄 알겠네요~"
다소 황당하다 느껴질 수 있는 쪽지에 금방 웃음이 터져버렸지만 얼추 이해할만한 것이었을까? 본디 사람이란 하루하루 저마다의 임무를 할당받은 시간제 용사인 법이다. 단순히 격려해주는 것일뿐인 글귀에 이런 의미부여까지 하는 자신이 좀 우습긴 했지만, 보고 힘이 난건 사실이니 딱히 문제는 없지 않을까?
[아메리카노님도 오늘 하루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랄게요~ 칭찬냥이 스티커 하나 추가랍니다!]
1.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를 섹시하게 말합니다 2. 마니또의 연락을 3분 내에 확인합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80485
서적 【백가예】 완결권. 499페이지, 마지막 문장 발췌중. … …… 『덧없는 소원이 사그라들었습니다.』 #shindanmaker #당이그 https://kr.shindanmaker.com/1060545
백가예의 사망플래그 대사 ::
"괜찮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누군가를 지키고 죽었습니다. 그 사람만은 당신을 기억할테죠. #shindanmaker #당사플 https://kr.shindanmaker.com/867786
당신은 얼마 못 가 죽어버렸습니다.
좀비사태 시작시기 : 2055년 11월 이름 : 백가예 시신 위치 : 대형마트 생존 시간 : 36일 22시간 1분 무기 : 나무막대기 처치한 좀비 수 : 497 사망 원인 : 원인불명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07278
수학의 정석을 꺼내려 사물함을 열어본 백가예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귀에 놓인 선물과 편지지였다. 내용물과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여자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음...
"수상한 사람은 없는데."
하긴 이 반에 내 마니또가 있다면 대놓고 티를 낼 리가 없지. 몇 번 접었는지 구깃한 편지지를 다시 열어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마사지 패드를 옆에 두고 열심히 썼을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귀여웠다. 메모지를 가져와 선물이 있던 자리에 대고 골똘히 고민을 하며 답장을 작성한다.
< 고르고 사느라 고생 많았네. 안 그래도 보호대를 사야 하나 싶었는데 이거 하고 있으면 되겠다. 나 바이올린 켜는 건 어떻게 알았지? 현악부 공연 와본 적 있어? 궁금한 게 많네. 고마워. 너도 좋은 선물 받았으면 좋겠다. 유용하게 잘 쓸게. 좋은 하루 보내. >
약간 굳어진 얼굴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얘기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불신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너무 집요하게 파고 들었나 싶었다. 손을 뻗었지만 살짝 피하는 것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걸까. 그렇게 대놓고 유혹하듯이 왔으면서 피하는건 좀 섭섭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 대신 아까의 약속은 유효해. "
내 재능을 이용해도 좋다는 말. 그건 진짜였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줄은 나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녀가 주는만큼 나도 그녀에게 주는게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양의 외로움을 달래줘?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거래는 나만이 갖고 있는 카드로 하는게 확실한 법이다. 처음부터 너무 강력한 카드를 꺼낸게 아닌가 싶었지만 급한건 나니까 이 정도까진 어쩔 수 없다.
" 그럼 내가 너를 찾듯이 너도 나를 찾아. 공평하게 말이야. "
양의 외로움은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하던데. 우리가 재능을 사용하고나서 굶주림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처럼 양 또한 그 정도의 외로움인걸까. 내가 양이 되어봐야지 뭘 알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척점에 있기에 서로에 대해서 딱 배운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내 고충을 토로하고, 네 고충을 듣는다고해서 서로 얼마나 이해할까. 그냥 서로가 원하는대로 해주는게 정답이라 생각한다.
" 외로움이 싫다면 그런 방법도 있다라는 거니까. 딱히 누군가에게 속박 되는 것도 아니고. "
그냥 지나가듯이 해본 말이라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귀에 내 이름이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자 가예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반 앞으로 데리러가겠다는 말을 끝으로 학생회실을 나섰다.
야자가 끝나기 약 2분전. 그래도 학생회실에서 자뒀던 보람이 있는지 오늘 해야할 분량은 거의 다 끝낼 수 있었다. 조금 못한 부분은 집에 가서 마무리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져 온 알림을 본다. 먼저 귀가했으니 기숙사 앞으로 와달라는 내용. 나는 야자가 끝나고 평소처럼 학교를 내려갔지만 교문이 아닌 기숙사쪽으로 향했다.
굳이 필요 없는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늑대인 건 이미 알았는데. 도대체 왜 지금껏 양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지구가 덧붙인 말은 들어서 유쾌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딱히 기분 상하지는 않았다. <건방진가?> 궁금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원하는 게 있으면 부탁하는 거잖아. …아, 알았다. 너 배 안 고프구나?"
<그럼 그럴 필요 없지.> 사하가 짧게 덧붙였다. 역시나 납득이 빠르다. 짧은 시간에 나온 것치곤 꽤나 명쾌했다. 사하가 지구를 보며 태연하게 눈을 깜빡였다. 애초에 벽에 붙어있어서 물러설 데도 없었다. 구석에 몰린 양이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겁 먹지 않은 모습이다. 사하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다. 지금은 달이 뜬 밤도 아니고, …물려봤더니 생각보다 별거 없는 것 같던데.
"부탁하면 들어줘?"
부탁은 저만 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왜 자꾸 노려보나 싶기도 하지만, 일단 그냥 넘어갔다. 오히려 은근한 저자세로 실실 웃었다. 들어준다고 하면 뭐 부탁하지. 얼굴 가릴 것 좀 빌려달라 할까. 그러다 들려온 말에 고민하는 기색을 띄우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이미 물려봤어."
제 목덜미를 건드리는 손 위로 제 손을 얹으려 했다. 피할 생각 없다면 사하는 지구의 손을 잡아 제가 물렸던 자리를 짚어줬을 것이다. <여기쯤인가.> 긴가민가하다는 듯 말하며.
뭉툭한 손톱으로 긁어서 약간만 붉게 부어오른 정도가 아니라면 아예 30분 안에 낫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아마 비유겠지만, 응. 그래도 잘못 헛디뎌서 발목이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거나 하면 30분 안에 안 낫겠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무서운 생각을 하지만, 그에게 딱히 악의가 있는 건 아니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튼튼해도 다치긴 하니까 말야. 세상에 안 다치는 사람은 없으니 조심해야 해?"
그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자신이 튼튼하다는 것을 아필했지만, 글쎄. 이현이 말한것과는 논점이 다르다. 어쩌면 이 언쟁은 창과 방패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난 그것도 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신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믿고 따르고 매달리는 듯한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하거든. 넌 아닐 수도 있지만... 하하."
당차게 말하다가 머쓱한 듯 손으로 목 뒤를 쓸며 바보처럼 웃는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거니까, 그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설득할 요량으로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아하하하, 그럼 되겠네! 그렇지만 복도에선 뛰면 안 되니까 그런 데에서는 빨리 걸어가는 정도로 할까!"
마찬가지로 그도 인사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짤막한 근황을 주고받고 곧바로 연호에게 다시 집중하는 것을 보면, 그가 그런 사람이란 걸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응?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한 살 차이고, 나는 반말 써도 괜찮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애들 중엔 존대를 더 좋아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다음번엔 주의하는 게 좋겠네."
고개를 저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본인을 탓해도 그것을 회피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늑대의 재능을 이용하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을 것이며, 그걸 알고 있는 나마저도 네 재능을 놔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또한 너도 내가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모종의 합의에 동참하고 있으니 놓아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널 찾으라는 말에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인면수심보다 책임 없고 누구나로 대체될 수 있는 안이함이 여자에겐 더 모멸적이다. 그것은 무기명의 질권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숙사에 먼저 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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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전 먼저 기숙사로 들어가 사감 선생님에게 특별 활동으로 늦을 수 있다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진땀을 뺐다.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고, 허락을 받지 못했어도 선약을 했기 때문에 점호 이후 빠져나왔을 것이며 벌점을 매긴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튼 환복을 하고 나온 여자는 기숙사 건물 어귀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서 해인과 눈을 마주치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이 시간을 기다렸기에 학교에서 보던 얼굴인데도 퍽 반갑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겨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기존의 세일러복이 아닌 사복으로 보이는 여름에 입을 법한 슬립 나시 위에 가디건을 걸친 여자가 기숙사 뒤쪽을 가리켰다.
"공부는 잘 했고?"
가볍게 안부를 물으며 뒤쪽을 가리키는 이유는 사람의 이목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누군가 보고 이러쿵저러쿵해대면 곤란해지기 때문일까. 그 후엔 거절해도 된다는 듯 느긋이 손을 내밀며 웃었다.
아는 사람들 중에 기숙사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쪽으로 올 일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향하는 학생들 무리에 뒤섞여 도착하자 건물 어귀에서 익숙한 사람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든다. 나는 기숙사 건물로 향하는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교복차림이 아니라 사복 차림의 가예가 있었고 슬립 나시에 가디건이라는 차림에 약간 설렐 수 밖에 없었다.
" 평소처럼 했지 뭐. "
가까이 다가가며 들려온 물음에 가볍게 답한 나는 이제 조금씩 따뜻해지는 날씨에 입고있던 저지를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곧 중간고사가 시작할테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5월. 여름만큼 덥지는 않겠지만 슬슬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일 날씨일테다. 그녀가 가리키는 뒤쪽으로 향하며 내미는 손을 자연스럽게 꼭 잡는다. 거리가 가까운만큼 페로몬의 향이 코를 확 찔러왔지만 일단 손을 잡자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 누가 보면 몰래 사귀는줄 알겠네. "
그런 구설수가 돌까봐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것이겠지. 이 시간에 기숙사 뒤쪽으로 오는 학생은 거의 없을테니까. 손을 잡은채로 어느정도 걷자 가로등 불빛 사이로 작은 벤치 하나가 보인다. 서있는 것보다는 앉아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벤치로 다가간 나는 같이 앉자는 말과 함께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그대로 앉았다.
" 기숙사에서는 그렇게 입고 있는거야?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
어떻게 보면 취향 저격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옷차림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그런 옷차림이란. 그녀에게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페로몬과 어우러져 내 마음을 계속해서 뒤흔들고 있었다. 물론 자제를 못 할 정도는 아니라서 계속 손만 잡고 있었지만. 가예가 벤치에 앉으면 무릎에 덮어주기 위해서 넣었던 저지를 꺼낸 나는 그렇게 그녀를 쭉 바라보고만 있었다.
'숙면은 중요하지'. 최민규는 쪽지를 읽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마니또가 누군지 알기만 하면, 사실 나는 숙면을 너무 취해서 문제야, 라고 답장을 해주고 싶었다. 당장 어제도 1교시에 누워서, 점심시간에 깼다가, 다시 석식까지 쭉 잤다. 운동장에 나가려 몇 번 일어난 걸 제외하곤, 정말 푹 잤다.
베개를 한번 꾹 눌러봤다. 푹신하니 보들거렸다. 한번 얼굴을 폭 기대봤다. 새 물건 특유의 냄새와 함께, 몸이 나른히 노곤해졌다.
그러니까 오늘도 또 잤단 소리다. 그것도 아주 푹 잤다. 오른쪽 뺨에 자국을 남긴 채 급식실로 가, 친구들에게 잔뜩 놀림받았단 소리도 된다.
편지를 읽어보면 나를 모르는 사람 같은데, 선물을 보면 꼭 남들이 잘 모르는 내 성향을 아는 사람 같지. 금아랑은 또 신기해했다. 사실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담스러운 선물은 싫은데, 아이스티 정도라면 부담스럽지도 않고... 센스 있잖아. 글투도 조심스러우면서도 상냥하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쪼꼼 더 호감도가 올라갔어. 아는 사람이라도 쪼꼼 더 호감도가 올라간 걸까?
수박씨는 귀여워 보이는 외견과 달리 의외로 내면은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다람쥐의 마음에 어제보다 조금 더 호감도 점수를 적립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 혹시 공략서가 없어도 공략 게임 잘하는 타입인가?
< 수박씨는 쪼꼼 신기한 사람이야. ‘나’를 모르는 사람 같으면서도, ‘나’를 아는 사람 같아. 있지이, 이름이 수박씨라서 이런 거 사봤는데에... 너무 단순한 답례일까? 수박씨 취향 쪼꼼만 알려줘. 나도 수박씨 취향을 저격해보고 싶어!
수박씨도 오늘 즐겁게 보내! 나는 수박씨 덕분에 이미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어~ (*・ω・) >
금아랑은 어제 썼던 포스트잇을 두 장 이어 붙여서 - 수박씨가 다람쥐를 골랐다면 다람쥐, 토끼를 골랐다면 토끼에 - 어제보다 더 긴 메모를 남겼다. 아이스티와 편지가 있었던 자리에 포장된 작은 선물을 올리고 포스트잇 메모를 붙여두었다. 포스트잇을 떼고 포장을 열어보면 귀엽고 심플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여백이 있어 실용성도 있는, 그러면서도 마니또인 수박의 네이밍에 맞는 떡메모지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다. 금아랑은 아이스티를 쪽쪽 마시면서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했다. 수박씨가 남겼던 편지도 가방 안 -편지가 구겨지지 않게끔 공책 사이로 잘 끼워두었다- 에 잘 챙겨두었다.
애껏 다이소에 가서 사온, 크리스탈 장식이 딱 하나 들어갈 사이즈의 조그만 아크릴 진열대를 손에 든 채로 문하는 무표정으로 그 두 번째 크리스탈 장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크리스탈 장식 두 개- 해마와 알바트로스를 한꺼번에 조그만 진열대 하나에 다 넣어보려고 지혜의 고리 퍼즐이라도 하듯이 문하는 한동안 머리를 굴려봤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해마와 알바트로스라는 기괴한 구성의 브레멘 음악대가 되던가, 아니면 둘 중 한쪽이 부러지던가밖에 될 수 없기에 문하는 한숨을 팩 쉬고는 우선 먼저 받은 해마 쪽을 먼저 진열대에 넣어 사물함 안에 진열해두기로 했다. 알바트로스는 먼저 해마를 넣어두었던 양철 케이스에 일단 넣어두기로 했다.
문하는 포스트잇- 학기 초에 사두고 한 번도 안 썼던 그것을 집어들어 익숙치 않은 볼펜으로 글을 써서 진열대 앞에 붙여놓았다.
1. 알바트로스를 넣을 진열대는 다음번에 사둘게. 2. 3개가 끝이지? 3. 탄수화물은 곤란해. 다음번에는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걸로 부탁해.
...그렇다고 기왕 선물받은 걸 먹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어제 자신이 마니또를 맡은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러 시내의 스포츠 식품점에 들렀다가, 선물만 사고 정작 문하가 필요한 것을 사는 걸 깜빡했기에 오늘 또 시내에 들렀다 가야 될 참이었다. 시내를 들렀다가 집까지 가는 걸 차를 타지 않고 가볍게 뜀걸음을 하면 그 정도 칼로리 소모가 되려나, 하고 문하는 머핀을 베어물며 생각했다.
동아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하늘이기에 사실상 동아리 부실 쪽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연히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가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제의 일 덕분에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하늘은 동아리 부실, 정확히는 동아리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제 자신이 들어간 그 방의 문 앞에 멈춰섰다. 당연하지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부원이 아니고 외부인이니 가끔이라면 몰라도 너무 자주 가는 것은 민폐였다. 물론 부장인 그는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나 하늘의 생각은 그러했다.
이어 하늘은 손에 들고 있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문고리에 살며시 걸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정말 싸게 파는 USB 하나와 딸기 주스, 그리고 전에 음악이 담겨잇는 USB를 돌릴때처럼 메시지를 쓴 종이 쪽지였다. 떨어지지 않게 잘 걸어두고서 하늘은 살며시 자리에서 떨어졌다.
"네 피아노. 기대하고 있을게라."
애초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본 것도 아니면서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것만으로 기대를 한다니. 역시 뒷조사라도 해서 자신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어 하늘은 괜히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희안하면서도 그리 나쁜 느낌은 들지 않는 선배였다. '늑대'라고 했었던가. 자신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늑대건, 양이건, 사람이건. 물론 자신을 어떠한 목적으로 노리거나 달려든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으나, 그런 것이 아니면 상대가 늑대건 뭐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기에 하늘은 그 들은 정보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 방의 주인은 그저 남주원. 3학년 선배일 뿐이었다.
-선배는 바쁘니까 직접 들려주긴 힘들테니. -그 분위기. 사실 이미 있는 피아노 곡이라서 작곡한 건 아니지만 음악으로 연주했지만 버릴거면 버리세요. -부원 찾아서 꼭 정식 동아리가 되세요.
쪽지가 잘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하늘은 살며시 뒤로 돌아 그 곳에서 완전히 떠났다. 너무 여기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었으니 다시 교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늘은 어쩔까. 음악실에 가서 음악실 써도 되는지 물어볼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며 하늘은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내가 앉는 책상 위에 저번이랑 비슷하게 먹을 것들이 놓여있었다. 보라색 웰치 주스와 제과점에서 파는 버터 쿠키. 웰치 주스에는 포스트잇에 쿠키 만들기를 하다가 태워먹어서 제과점에서 사다 놓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 혼자 먹으라고 했으니 나눠주지도 못하겠네. "
낮 시간이라 조금씩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쿠키를 먹기도 좀 뭐해서, 나는 가방에 주스와 과자들을 잘 넣어두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깐동안 할 일을 하고서 다시 반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났을때, 여기에 뭐라도 적어두고가면 마니또가 보고 가지 않을까 싶어서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간단하게 감사인사를 적고서 책상에 붙여두었다.
- 다음엔 직접 구운 쿠키가 궁금하네요. 잘먹었어요.
이 정도면 되겠지? 집가서 밤늦게 먹을거 없을때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반으로 돌아간다. 이번 마니또는 잘 챙겨주네.
<세이브 추천 포인트> Event 03. 관심없음 Event 05. 하고 싶은 말은? Event 08. 화났어?
<공략 Tip> 멘탈 중심으로 공략하자. 매력에 주의!
<공략 실패시 한마디> "민감한 이야기는 조심해야죠."
가장 인기가 많은 루트는 "끝없는 후회"입니다. #shindanmaker #상대의_공략루트 https://kr.shindanmaker.com/935187
/개그엔딩만 세 개일 느낌이 훤히 보이는걸. 공략난이도기 높은 이유는 모든 선택지가 하나라도 삐끗하면 개그엔딩으로 치닫기 때문인가?! 그러면서 스탯만 높으면 자동으로 진입한다니, 다른 스텟 높아야 공략할 수 있는 아이들을 공략하려다 비랑이가 달라붙어서 커뮤니티에 하소영하는 플레이어가 있을 느낌인걸... 그리고 대체 누가 그 모든 선택지를 완벽하게 골라서 민감한 이야기로 비랑이의 멘탈을 터트리고 메리배드엔딩까지 몰고 가는 걸까.
보통 콩쿨이나 연주회 같은 게 열리는 극장이나 홀에 가면 밀실이라서 향기가 은근히 관객들에게 전달이 잘 되거든! 특히 무대와 가까운 위치일수록 무대에서 향이 느껴지기도 해. 케바케이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랬어.. 그래서 그 경험 때문에 향수가 독특한가봐!! 하고 넘겼던 것....() 이건 내가 미리 말을 못한 거다... 미안하다..........ㅠ
>>987 지금대로만 해줘도 하늘이는 되게 만족스러워할 것 같은데. 이미 피아노 앨범만으로도 기분 완전 하이텐션이었고 말이지. 참고로 그 앨범은 하늘이가 자신의 책장에 아주 소중하게 꽂아뒀으니 누군진 몰라도 하늘이가 매우매우 고마워한다는 TMI를 대신 전달해주겠어! 사실 여기서 내가 답을 해버리면 뭔가 정답을 스스로 알려주는 것 같잖아? (글러먹음) 사실 어지간하면 만족스러워할 것 같지만!
>>992 호오. 하지만 난 아직 TMI에 배고프다구! 하늘이가 (상대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특별히 싫어하거나 거부할 만한 건 있을까? 예를 들어서 특정한 행위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던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뭔갈 못 먹는다던가. 굳이 '특별히'를 붙인 건 당연히 상식적으로 싫어할 만한 건 빼고라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TMI를 풀어보자면 하늘이가 동아리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실 진짜로 하늘이가 체험한 일이었다고 카더라. 딱히 비설은 아닌 부분이야. 이쪽 사건을 알고 싶다면 하늘이와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 라고 하면 그 캐릭터는 알고 있다라는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암튼 그렇다. (뒹굴)
>>994 거부할만한 거? 음.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자신이 분명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늑대'로 생각하고 치부하는 것 정도가 되겠네. 이건 내가 시트로도 안 쓴 거지만, 한두번은 그냥 그러려니 늑대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계속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면 진짜 정색하고 화내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