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밤은 유난히 길었다. 오묘한 새벽 공기는 널 떠올리게 했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 맺힌 꽃들이 내리는 꽃비도 너를 닮았다. 피고 지는 꽃 들이며 바닥에 깔린 꽃잎도 그 무엇 하나 너를 닮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왜 피어난 것들에서 너를 찾는지. 너는 이미 져버렸는데.
다닥다닥 붙은 집들 달빛조차 들지 않고 깨진 창틈 새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이 전부였던 퀴퀴한 냄새가 맴도는 방 안에서 너는 외로움을 피워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잠든 시간에도 신음할 틈도 없이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삶이 가장 버거웠던 너는 어스름한 새벽 파랗게 떠올랐다 져버렸다. 곧잘 죽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던 너는 무얼 하고 싶었을까. 겨우 남들만큼 딱 그만큼만 살고 싶었겠지. 가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날아오르기엔 넌 너무 어렸다고.
사실 나는 그런 네 무력한 모습도 사랑했을지도. 가끔 너는 자신의 속을 무심코 꺼내 우울까지도 내어주었고 자신이 한 말은 꼭 지키겠다고 몇 번이고 말해댔고 너는 결국 내게 한 말을 지키지 않았다. 너는 그리 가볍게 뱉어냈던 한숨만을 이뤄냈고 사실 나는 네 부고에 쓰러져 울었다. 너를 좋아했고 너로 인해 밤 새 설레했고 조금은 원망했다. 사실 내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활짝 피어있었음을.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도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매사에 서투르고 남을 피해 다니기 급급했던. 사람도 사랑도 싫다고 이상하다고 매일 밤 의미 없는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고. 냉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몰랐던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변하는 건 오직 세상일 거라고. 나는 항상 어리고 서투르고 메마르며 늘 청춘이므로.
오늘 밤은 달이 높게 걸렸으니 나는 시든 꽃처럼 낮게 몸을 웅크리고 숨죽여 너의 외로움을 삼켜야지. 너는 보지 못하게. 너는 듣지 못하게. 눈을 감았음에도 새어나가는 작은 흐느낌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 좀처럼 잠은 이루지 못하고 옷자락을 적셨다.
TMI: 문하는 외형을 작정하고 늑대스럽게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었어. 의외로 늑대들 중에 나 늑대요 하고 얼굴에 써붙인 애가 없어서 말야. 그런데 이제 거기에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 스타일의 담백한 겉바속촉 성격인데, 거기다가 버림받아서 조금 곪아있는 유기견 속성을 곁들여서 탄생한 게 문하. (취향 고약)
헛소리하며 피실피실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웃었다. 어릴 때 눈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만화영화는 본 적 있다. 결말이 엄청 슬퍼서 볼 때마다 울었던 것 같은데. 요즘 움직이는 눈사람은 올라프가 대세인가. 걔는 안 녹는 것 같던데. 눈사람 하나에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줄줄이 이어진다. …근데 내가 한 말이 한숨 쉴 정도인가?
"알았어, 파라솔 얘기 안 할게."
<잠깐.> 이란 말로 쉽게 제지당한 사하가 금방 발언을 철회한다. 그렇게 간절한 것도 아니었다, 뭐. 근데 끊어먹을 정도로 골 때린 말이었나. 잠깐 생각해본다. 그래도 말은 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 반항심이 끓는다. 그래, 나는 한 마디여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수십 마디일 수도 있지. 마무리는 인정이다. 지구에게는 피곤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굳이 하나 더 보태고 싶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파라솔을 접어 저쪽으로 던졌다. 내가 우산 가지고 다니면 되니까. 그러다 정신차려보니 손을 잡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잡혀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손은 왜? 핸드크림은 한참 전에 발라서 별 냄새 안 날 텐데.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지구를 본다. 많이 피곤했나. 내가 많기 귀찮게 굴었나. 평소에는 얌전하고 온순한 편 아니었나.
"어?"
갑자기 날아오는 질문에 멍청한 대답을 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다. 아니, 진짜 맞았나? 물리적 충격으로 정신이 돌아왔나? 퍼즐이 착착 맞기 시작한다. 내 말 끊어먹은 거, 갑자기 손 끌어간 거. 설마.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돌리던 사하가 지구에게 묻는다.
산들고등학교에서 학교에 가장 오래 있는건 역시나 3학년 학생들일테다. 선생님들보다 조금 늦게 오지만 야자를 하는 학생들은 선생님들보다 한참 늦게 집에 가고, 야자를 하는 학생들 중에선 3학년의 비중이 가장 높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데이트마저 교내 데이트라니 시험이 끝났을때 정도는 시내에서 가볍게 나들이를 하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텐데. 아무래도 3학년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회색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좀 더 자세히 보이는 거리. 그녀가 손을 뻗어서 내 머리카락에 닿을 정도의 거리. 잠에서 방금 일어났을땐 몰랐지만 정신을 차린 지금에서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심 페로몬의 향기가 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 너는 늑대 앞에서 겁먹지 않는 강인한 양이니까. 옵션을 제시하더라도 결국 원한건 이게 아니었어? "
내가 아는 백가예라는 사람은 양의 입장에서 늑대를 다룰 줄 알고 있다. 특히나 나 같이 재능의 소모량이 심한 사람에게 그녀의 존재는 노숙자 앞에 멋들어지게 차려진 뷔페와도 같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왜? 굳이 빠져나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기를 몇초, 대답이 들려오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 오늘 밤이 좋겠는걸. "
뭐든 빠른게 좋지 않을까. 물론 야자가 끝나는 시간은 열시니까 그 이후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기숙사는 열시 반까지 들어가야하니까. 하지만 맛있는 먹잇감이 눈 앞에 있는데 아침까지 기다릴 늑대는 그렇게 많지 않다.
" 내 재능이 탐나지? "
내가 필요하다는 말은 양으로써의 의미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도 있을터였다. 화술, 달변 .. 태어날때부터 지니고 있던 재능. 세치 혀로 사람들을 홀릴 수도 있는 재능. 많은 사람들이 원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사하가 정말로 눈사람 따위의 존재였다면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옥상 위에 파라솔 정도는 놔둬줄 수 있었겠다. 그럴 리가 없어 하는 소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눈사람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따위에 훨씬 더 가까웠으니까. 녹지 않으려 그늘에 숨은 것 하며. 이 달큰한 체취하며. 단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바닐라향은 좋아하는 냄새였으니 솔직한 감상으론 날도 선선하니 이 바보같이 순진하고 단 것을 취하고 싶었다. 그것을 나무랄 사람도 없었고. 나는 그저 숨어있는 디저트를 찾아 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눈앞의 뭣 모르는 사하는 파라솔이나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이 지구의 한숨을 자꾸만 끌어들였다.
"양?"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한 듯 얼빠진 얼굴로 제게 꽤 실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하를 보며 지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언뜻 스치는 그것은 포식자의 여유넘치는 코웃음 같은 것. 원래라면 사하의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약을 받으러 가자며 꽁꽁 숨겨 양호실에 데려다 주었겠지만, 평소 마이페이스로 보였던 사하의 빈틈은 꽤 흥미를 자극해서 지구는 스위치가 들어가는 것을 직감한다. 꽤 재미있는 질문이었다고.
"내가 너랑 같다고?"
그리 무해하게 보였나? 실소가 나왔다. 뭐 평소엔 남들한테 퍽 관심 끄고 사니 그럴 수도 있겠다. 또 더 깊이 말하자면 애초부터 노린 것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나약한 양까지 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큭큭거리다 낮게 뜬 푸른 눈으로 사하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이 살피며 고개를 기울여 제 어깨 기대었다.
"..맞지. 나 양 맞아."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이던 지구는 잡았던 사하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 깨무는 시늉을 하려하며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상황이 퍽 재밌어 보였다.
"그럼 먹어도 되는 건가?"
무방비한 네가, 먹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진짜 깨물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가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면 손 정도야 깨물 의향이 있었다.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 늑대라고 밝혀진다 한들 나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제게 걸린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가 생각하기엔 그녀가 지구와 마주치고 내뱉었던 첫마디에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평소에 꽤 얌전히 군다고 해서, 그 짐승이 먹이 앞에서도 얌전할 거란 보장은 없지.
금아랑 테마곡... <:3 (후보 no.1이지만 더 맘에 드는 곡 찾으면 바뀔수도 있어요) (영상에 조커 있습니다. 무서운 거 싫어하시는 분은 주의!)
테마곡으로 고른 이유는 가사만 보면 밝은데, 들으면 왠지 슬픈 느낌이 듬. 이곡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Dance Monkey는 톤즈 앤 아이가 호주에서 버스킹을 할 때 겪었던 이야기라고 해요. 톤즈 앤 아이는 6시간 동안 버스킹을 해서 얻었던 돈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았고, 공연이 끝나고 '정말 죄송하지만, 공연이 끝났어요' 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빨리 노래해 줘', '지나가던 날 멈추게 한 건 너야', '한 번만 더 노래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인 게 마음에 들어서 입니다 <:3
여러분들이 금아랑 밝고 귀엽게만 보시면 ((아냐 여러분 그거 아냐....8ㅁ8 쟤가 완전 귀엽고 완전 밝지도 않아...)) 하고 싶은 맘도 들어서 테마 살짝 올려봐요!
>>533 앗 이 독백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코난이 나타나주시길 기다렸는데 려문이었군요 ㅎ▽ㅎ!!! 그림도..잘 그리시는데..글까지..잘..쓰신다.. 그런데 몇몇의 아이들의 슬픈 옛 첫사랑이 있는 것 같아 캡틴의 코를 적시네요.....엔딩까지 열심히 달리다보면 다 풀어주겠죠..? 그리구 친구 사귀면서 치유되면 좋겠다..그런..감상..ㅇ<-<
>>571 헉 제가 엄청 좋아했던 노래네요! 하루에 반복재생해서 엄청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고 아랑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보이네요...! 곡 선정 굿굿... 아직 아랑이랑 일상돌려본 적 없지만 다음 일상 돌릴때 마냥 밝고 귀엽지만은 않다는 걸 꼭 기억해둬야겠네요...!
>>571 그렇지. 여기서도 누군가 한번 말했었는데, 누구나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는 거지. 능숙하게 감추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차이 정도뿐. 아랑이가 마냥 귀엽고 마냥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말은 그만큼 아랑이가 잘 만들어진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만큼 당연히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573 내 야광봉이 어딨더라.. 3.3 (주섬주섬) 뭔가 꼴라주같으면서도 레트로한 느낌이 오히려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사람의 웃음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저 웃음은 뭐지? 확실한 건 호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웃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저렇게 웃는 지구는 낯설다. 제가 기억하는 지구는 낯을 가리고, 얌전하고, 온순하고…… 아무튼, 늑대보다는 양에 가까웠다. 그럼 지금 눈 앞에 있는 지구는? ……일단 양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와 보니 양 같은 점이 눈꼽 만큼도 없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변하는 게.
<내가 너랑 같다고?> 이 말에서 망했음을 직감했다. 양은 무슨. 온지구는 늑대다. 내가 약을 안 먹었나? 그럼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을 텐데. 달은 커녕 지금 햇볕 뜨거워 죽겠는데.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경계하는 눈초리로 지구를 바라봤다. 양 맞다는 말에 헛웃음 터진다. 내가 이상한 소리할 때 다른 사람들 이런 기분인가. 깨무는 시늉에 긴장해 한쪽 눈가가 실그러진다.
"양은 양 안 먹어."
잡혀있던 손을 빼고 한숨 쉬며 앞머리를 넘겼다. 뭐, 굳이 평생 비밀로 간직하는 일이 불가능할 거라는 건 알았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사람도 있겠거니 예상은 했다. 그래도 그냥 먹이 취급은 좀 억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