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 그것은 남주원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동아리였으며,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에 걸쳐 부원은 자기 혼자인 1인동아리인 것이다. 부실을 갖기 위해 그럴듯한 동아리를 신청하는 학생들을 많았으나 남주원이 애매한 형태로나마 동아리 부실을 받고 동아리로 인정받은 이유는,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을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사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슬리기도 했지만.)
물론 조건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이 내건 조건은 2개. 하나는 활동 내역을 레포트로 작성하고 제출할 것. 그리고 하나는 부원을 5명까지 늘릴 것. 이었던 것이다. 첫번째 조건은 클리어 했지만, 아쉽게도 두번째 조건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개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고 싶은 학생들은 정해져있지 않은 활동에 난색을 표했고, 하나는 단순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동아리를 찾는 학생들은 반대로 무언가 해야한다는 것이 귀찮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노력하기 위한 동아리와 땡땡이치기 위한 동아리. 그 어느쪽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으며 결국 아직까지 1인동아리인 상태였다.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은 그 판단을 2학년 때 학생회장을 맡은 가예에게 맡겼고, 가예는 1학년 때의 학생회장과는 달리 난색을 표했다.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하지만 주원의 필사적인 설득 끝에 아예 폐부가 되는 것은 막아내고, 정식 동아리에서 격하되어 '특별활동부' 가 된 것이었다.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결국엔 '동아리'로서 인정받지 못한 학생 주관의 활동이었기에 동아리 활동비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부실도 배정받지 못할 터였다. 가예의 배려라고 해야할지, 동아리로 배정하기 애매한 낡고 다른 동아리들보단 좁은 애매한 동아리방 하나를 배정받았고, 현재는 주원 혼자 그 곳에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며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바로 학생회장 '지구'와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에 대한 존폐를 갖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 아마 잔뜩 털리고 폐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 주원에게 있어서는 학교의 성적표를 받는 것보다 더 떨리고 중요한 날이었던 것이다. 상대는 온지구. 주원이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주원은 지금까지의 학생회장중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동아리->특별활동부->폐부 의 절차를 밟더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아직, 주원의 고교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주원은 학생회의 문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고, "으음..." 하고 할 말을 떠올리거나 노크를 하려다 그만두는 등 망설임의 망설임 끝에 학생회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
'제발 아무도 없어라. 그리고 어떻게든 도망쳐 다니면 애매하게나마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산들고등학교의 학생회는 어떻게 보면 다른 학교의 학생회와 별반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나름대로 학교 내의 동아리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일이니까 학생들의 최고 기관인 학생회에서 관리한다는게 모토인 것 같았지만 사실 귀찮아서 학생회에 일임해버린 것일지도? 학생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해결해주고 그게 아니라면 학교 측에 연락해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학기 초에는 동아리들 관련해서 새로운 동아리 창설이라던가, 동아리를 폐부 시키는 일들을 하곤한다. 작년 기준으로 활동이 미비했거나 인원이 부족한 동아리를 폐부하는 것은 작년에도 지켜보았지만 하는 입장에서도 잘 내키지는 않는 일이다. 이번 학기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거니해서 학생회에 도착하자 몇명의 학생들이 신청서를 건네주었다. 어차피 동아리를 만드는건 자유로운 일이고 웬만한 동아리들은 기준에만 맞는다면 허가해주니까 겉치레이긴 하지만.
" 들어오세요. "
아직 학생회 인원들이 많이 안왔는지 나 혼자 뿐이었다. 사실 사람이 많이 필요한 일도 아니라서 받은 신청서들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서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누군가 학생회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소리에 문쪽을 바라보자 금발과 금빛 눈이 기억에 남는 남학생이 모습을 보였다. 굉장히 인상적인 외모라서 잊어버리기 힘들지. 같은 3학년이라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 애초에 작년에도 이렇게 학생회에 온 적이 있던 것 같은데.
" 어서와. 이름이 ... 아마 남주원이었지? "
그가 여기 온 이유도 나름 짐작이 되었지만 일부러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마침 나 말고는 학생회 인원들도 없어서 아무 곳에나 앉아도 된다고 말한 뒤에 뒤쪽에 올려져있는 주스를 한잔 따라서 가져오며 얘기했다.
노크를 하고 문에 귀를 갖다대는 주원. 부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노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들어오세요.'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큿, 누가 있었구나!'마음을 졸이는 주원은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전 "후으으." 하고 힘 빠지는 한숨을 한 번 뱉어내었다. 동아리가 아니라도 괜찮지 않겠어? 하고 이미 거의 포기한채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생회실엔 지구는 없는 대신 대화는 나눠본적 없지만 기억 속엔 남아있는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반곱슬의 보라색머리를 한 차분해보이는 인상을 한 남학생. 그러고보니 2학년 때 동일한 안건으로 가예와 대화를 나눌 때도 앉아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복도에서 한 번 쯤은 마주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어, 어어."
상대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기억하기론 아마 같은 학년. 이었을 것이다. 지구는 없는걸보니 눈 앞의 남학생이 대신 심사를 하게 되는걸까? 하고 얼핏 생각했다.
주원은 해인의 쥬스를 어색하고 경직된 손놀림으로 받았다. 대화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말이지.
"고마워. 잘 마실게."
받아든 쥬스를 한 모금 마셔본다. 그의 말대로 미지근하긴 했지만 지금 주원에게 있어선 쥬스의 맛이라던가, 시원함이라던가는 아마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거, 때문에 왔는데."
주원은 활동 레포트와 함께 동아리 갱신 서류를 해인에게 건네주었다. 활동 레포트는 지금까지 주원이 해왔던 여러가지 활동들. 가령 옥상에서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기. 좋은 낮잠 스폿 찾기. 학교 내 비밀장소 찾기. 옥상에서 별구경.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 맛있는 디저크 카페 찾기 등 굳이 동아리로서 활동해야 하나 싶은 것들과 이런걸 해서 어쩌자는거지 싶은 활동들이 적혀 있었다.
동아리 갱신 서류는 여타 갱신 서류들과 다를바 없었다. 동아리 인원에 1명이라고 적혀있는 것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