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유독 체구가 작았던 것도 있지만 원래 사람이 이렇게까지 컸나 싶었던 의문은 빠르게 해소된다. 학생의 제안에 고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주저앉아 있었다. 너는 활짝 웃는다. 앉아있어서 커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너는 눈앞의 학생이 아주 크다고만 생각했다.
"아야?"
볼을 물던 감초사탕이 날아가자 하는 말은 고작 그거였다. 이내 "응, 일어나는거 잘해요?" 하며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너는 무릎을 내려다본다. "이노리 빨개?" 하고 말하는 걸 보니 공교롭게도 네 무릎이 쓸려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아픈기색 하나 없어보였는데, 아마 감초사탕이 이곳저곳을 물고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감초사탕 하나가 손가락을 잽싸게 깨물었지만 너는 그걸 입에 앙 물었다. 볼 한켠에 가득하게 찬 감초사탕이 제법 잔인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빵빵한 볼 때문에 선명하게 드러난 감초사탕의 깨문 자국도 도드라지는 것이다.
"감초 마이써요? 이노리가 많이많이 나눠줄거야?"
감초사탕이 입안에서 날뛰자 볼이 떨렸다. 너는 사탕을 데굴데굴 굴렸고, 감초사탕은 머지않아 잠잠해진다. 기절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들린 소리는 오도독 하고 단단한 네 치아로 깨물어 부수는 소리다. 손 안에 가득한 감초사탕들이 일순 깨물던걸 멈췄다. 공포심을 느낀 것이다. 너는 눈을 깜빡, 하고 감았다 떴다.
"사탕 찾아주면 돼요? 병은 이노리가 구할 수 있어요. 이노리 아씨오 마법 아주아주 잘 써요."
반절로 조각낸 사탕을 다시 깨문다. 너는 손을 휘적휘적 하면서 아씨오 주문을 외웠다. 날아온 유리병 두 개는 감초사탕을 담던 유리병의 반절 크기였는데, 너와 친할리가 없었다. 마법을 잘써도 후속대처는 못하기 때문이다. 유리병은 차례대로 네 머리를 때리고 팔 안으로 들어온다. 너는 뒤로 젖혀진 고개를 우뚝 다시 젖혔다. 피가 나는 일이 없어 다행이다.
레오는 이히히, 하고 작게 웃었다. 중의적인 의미였다. 넓은의미에서 인간은 포유류로, 동물에 들어간다. 다른 의미라면 레오는 이제 애니마구스로 정말 동물, 짐승이 될 수 있었으니까. 왜인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떨어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레오는 팔에 조금 더 힘을주고 조금더 깊이 파고들었다.
" ..맞아. 그 녀석은 위선자야. 사기꾼이야. 거짓말쟁이, 모사꾼이야. 믿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야. "
여지껏 혼자 방어기제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것에 대해 처음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여전히 눈을 감고있던 레오는 천천히 미소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미소가 퍼졌다.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공감해주고 받아들여주었다. 심지어 레오 자신마저도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고 ㅆ을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 훌륭하게.. 해냈어..? "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레오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래, 마치 애완동물이 그러하듯이. 주인의 손길을 더욱 원하는 애완동물이 그러듯 고개를 살짝 낮추었다. 훌륭하게 해냈다-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된 이야기를 들어보자할때 들을 필요도 없다며 주먹을 날렸다. 나중에서야 그게 과연 잘한 일일까 싶었고 거기서부터 지독한 인지부조화와 자기혐오, 자기합리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게 만일 훌륭하게 해낸것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어지지 않을까.
" 그치..? 난 틀리지 않았잖아. 그렇지? 틀린건 내가 아니야. 잘못된건 내가 아니야.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있었어. 그 간사한 혀로 다른 모두를 속인거야. 그리고,그리고 지금도 속이고 있을거야.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능멸하고, 비웃고, 무시하고.. 기만,기만하고있어. 속이고 비웃고 무시하고있어. "
레오는 둘러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고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조금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속고있는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던 레오는 천천히 눈을 뜨고 뱀과 같았던 그 세로동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이제야 하늘이 조금 높아지고 목을 조르던 손이 조금 풀어진 기분이다.
" 내가 바로잡아야해. 내가, 내가 해야해. 다들 속고있으니까 제대로 알고있는 내가 해야해. 위선자는 지옥으로, 거짓말쟁이는 벌을 받아야하잖아. 버니, 그렇지? 내가 맞는거지? "
>>271 앟! 저도 그거 느끼고 있었어요! 몬가 오버랩되고 있었슴당 :ㅇ!!! >>272 해방..이긴한데 조금 안 좋은 의미의 :ㅇ? 일련의 사건들을 주르륵 겪으면서(치명타는 백교수가 탈이었다는것) 모랄까.. 조금씩 조금씩 안 좋은 쪽으로 해방되면서 망가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어찌됐든 성장의 또 한 걸음임당!
— 20xx년 x월 x일. 날씨는 눈이 가득 쌓였고 춥다. 아침기온 영하 2도, 낮기온 3도. 밤에도 눈이 왔다.
한서가 저녁 늦게 본가에 내려왔길래 무슨 일이냐 했더니 방학이라 한다. 벌써 방학이냐 물었는데 옆에 아이가 없다. 애는 어디갔냐니까 자기는 모른단다. 또 학교에서 아이를 괴롭힌 건 아니냐니까 오만상을 쓰면서 기숙사가 달라서 정말 모른다고 항변했다. 억울해보여서 일단 믿기로 했다. 데려가려고 학교에 직접 찾아갔더니 이미 보호자가 데려갔다지 않은가. 심장이 철렁했다. 이노리가 아는 사람이라며 따라갔으니 안심하라 했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그 말을 믿겠는가.
(중략)
수소문을 하고 찾아다녀도 아이는 라온에도 없고 가온에도 없었다. 그러다 혹시라도 아이를 본적이 있냐 묻기 위해 지팡이 가게에 들렀는데, 드라이어드는 아는 것 같았다. 머리 검고 비쩍 마른 학생과 루가루의 털을 가지고 지팡이 심을 만들러 왔단다. 또 그 장의사놈들이 우리 애를 채간 것이다. 냉큼 언더테이커 가문으로 갔더니 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성질 같으면 리덕토로 산산조각을 내고 싶지만 그랬다간 이번엔 정직 당할게 분명했다. 우리 애는 정원에서 가주 놈팽이와 왈츠를 추지 뭔가. 다친곳 하나 없고 해끼친 곳 하나 없어 다행이지만 화가 치밀었다. 언질도 주지 않고 왜 남의 아이를 데려가는 건가? 아이쪽으로 다가가니 술냄새가 진동했다. 이제 열여덟 올라가는 애한테 대체 왜 이런 냄새가 나나하고 테이블을 보니 술이 말라붙은 잔이 두개나 있고 코냑 한병에 와인 한병까지 비워져있지 뭔가. 당장 아이를 붙들었는데 가주도 아이도 잔뜩 취해서 몸도 못가눈다. 그 모습으로 왈츠를 출 생각을 하니 또 화가 치미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비틀대다 우뚝 멈춰서더니 글쎄 자기는 유령이 싫다 하지 무언가. 무슨 뜻이냐 하니까 애가 뭐라 했는줄 아는가?
원이라도 있더라면 후부키에 남아있었을 터인데 그 작은 아이는 원조차 없어 아무것도 남지 않아 분합니다. 그런데 이 유령들이 기숙사를 떠돌거나 지상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줄 아십니까? 내 곁을 빙빙 맴돌며 네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유령입니다. 대체 무얼 알고 제게 이리도 귀히 대하는지 증오스럽고도 한탄스러우며 달상하여 차라리 죽어버렸어야 하는데 하고는 내 손을 뿌리치고 간원하니 이번 방학만큼은 자신을 찾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