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하렴. 아기를 달래듯 천천히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어깨에 머리를 파묻자 한 손길이 머리로 옮겨간다. 그리고는 손에 담긴 따스한 선의로 상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눈에 담긴 걱정으로 상대를 쓸어내리며, 몸에 담긴 달콤한 향을 풀어 상대의 벽을 허물고 자신과 상대만의 편안한 공간을 새로 만든다. 이건 그의 천성적인 재능이었다. 상담과 소통의 재능. 지금까지는 동생에게만 썼던.
"힘들었어? 무슨 일이 널 힘들게 했을까?"
선하가 괴롭다는 듯 목을 긁자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손과 목 사이에 자신의 두 팔을 끼어넣어 목을 꼭 끌어안는다. 그렇게나 괴로운 거구나.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널 더 괴롭게 했다면 미안해. 아무 도움도 못 되어줘서 미안해. 네 안에 있는 널 위해 울어도 될까? 다정한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보는 내가 다 부끄러웠다고, 울보라고 놀릴지 모른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고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냐고 놀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놀림 당해도 괜찮다. 지금까지 해왔던 상담자 중에서 그를 놀리며 부끄러워했던 사람이 없던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쑥스러워해도 아름답게 웃어줬다. 이 달둘인 공간에서만큼은 오로지 자신 하나만을 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쁘게 울어줬다. 너도 그렇게 내게 웃어주고 울어준다면 좋을텐데.
"배고프면 식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그렇지? 오히려 안 먹겠다고 땡깡부리면 부모님 속 썩이는 나쁜 아이가 되는 거라고, 후후."
넌 아직 충분하지 않잖아, 응? 정말로 네 안까지 가득 채울 정도로 배부르니? 나긋한 목소리로 나긋하지 않게 안을 들어내려한다. 이리 그냥 두었다간 다시, 이번엔 더 깊숙히 네 본심을 집어넣을 듯해 마음의 준비도 못한 틈에 억세게 파고드는 방법을 선택한 나를 용서해줄 수 있을까?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미안해. 나는 친절을 무기로 삼지 않아서,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구나."
그래, 무기 대신 음식으로 삼는 건 어떨까? 즐거운 기색이 담긴 말을 가볍게 던지고 있지만, 한 손으로 선하의 머리를 부드러이 밀어 입을 자기 목에 대게 하는 걸 보면 농담은 아닌 모양이다.
"조금만 먹는 정도는 괜찮단다.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건데, 문제 될 건 없지. 자아, 어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는다. 달빛이 그의 눈에 고인 눈물과 머리카락에 부딪혀 찬란하게 부서져갔다.
눈을 감고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남의 연주하는 선율에 한껏 집중하고, 그것을 그대로 이어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응,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지."
협력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혼자 있다보면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타게 되니까. 이 생각을 대변하듯 혹은 뭉뚱그리듯 외롭잖아, 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보이는 여자다. 숨기려 함이 아닌 하늘의 연주를 방해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수면 위로 떠오른 선율로 이루어진 견고하고 연약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 사그라든 낙엽같은 눈을 마주하면 그 세계에 잠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언어로 형상화될 때 즈음엔 민망한 기색으로 웃는다.
"대답을 들으니 내가 확신시켜달라고 말한 것 같은 걸.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 더 다가가도 될지 살펴보려는 거였지만, 고마워 하늘아. 나 포함 사람이 좋다니 다행이네. 네가 사람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아."
사실 싫어한대도 여자에겐 크게 신경쓰일 부분은 아니었다. 네가 싫어하는 인간상을 보이지 않으면 될 일이니까. 바깥이 어두워지고 있었기에 그것을 의식하며 너와 함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자기도 기지개를 펴고 싶다는 듯 가벼운 몸짓으로 허리를 양 옆으로 돌려보더니 으쌰, 뒤로 젖히기까지 한다. 허리를 뒤로 35도 가량 젖힌 채 하늘의 얼굴로 시선을 돌려 웃는다.
"그럴까? 좋지. 더 이야기할 수 있겠네."
집에 가면 계속 연습할 수 있어서 좋겠다, 스몰 토크로 막연한 추측을 뱉으며 하늘과 함께 음악실을 나서는 가예다.
/ 저도 음악 플리 들으면서 답레를 썼는데 정말 그 안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걸 막레로 해도 좋고 막레 주셔도 좋아요! 수고하셨습니다, 하늘주~ ^^
>>408 대충 선렛거리로 생각했던 건 1.벚나무 아래에서 낮잠 자던 비랑 2.쓰레기 줍는 비랑 3.복도에서 빨간사탕줄까 파란사탕줄까 하는 비랑 4.화단 앞에 앉아서 구경하는 비랑이었지만... 이제 보니 진짜 같은 반이네? 아닛. 적당히 Half에 있는 낭낭이를 데려오겠어.
그러고 보니 정주행하다가 소꿉친구 선관 같은거 본 것 같은데 이건 또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 하늘이가 아마 (느껴졌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상에서 조금은 보이는) 벽을 어지간하면 거의 다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상대가 될 것 같기도 해서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차마 구할 순 없을 것 같지만.
지금은 점심시간.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하는 다소 계절에 맞지 않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뛰는(따라하지 말아요!) 한 학생. 누구나 알듯 오늘도 활기가 넘치는 비랑입니다. 평소에 비하면 조금 기운이 없지만요. 무슨 일일까요? 혹시 아주 슬픈 일이 생겨서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지경인 걸까요?
"급식이 맛없으며헌~ 밥이 안 넘어가요호~"
이럴 수가. 그냥 맛없어 보인다고 안 먹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받아서 버리는 것보단 낫다고 해야 할지, 겉만 보고 포기하지 말고 맛이라도 봐 달라고 항의해야 할지. 음식에 입이 없는 게 다행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교실 문을 열어젖힌 비랑은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추고 맙니다. 교실에 사람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럴 수가. 이 수치심 누가 해결해 준답니까. 한창 점심시간인 이 시간, 밥을 안 먹는 학생들도 다 매점에 가 있을 거라 계산했겠지요.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요? 비랑의 눈동자가 교실 안에 있던 누군가를 빠아안히 쳐다보며 반응을 살피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작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하늘의 귀를 잘 보면 푸른색 이어폰이 끼워져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가 듣는 곡은 더 홀 뉴 월드를 피아노로 커버한 곡이었다. 점심은 가볍게 해결했고 남은 시간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보낼 생각인지 그는 한창 음악에 심취되어있었다.
아마 말을 거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고, 가볍게 흔들거나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들거나 하면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대로 보는 것도 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였다. 일단 특정 곡의 멜로디를 가볍게 흥얼거리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하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시선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안 좋은 버릇이라면 안 좋은 버릇이었으나, 결국 푹 빠져말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연주해볼까. 이거."
그저 그런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던 하늘은 이내 다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음악에 더욱 깊게 심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