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할 수 없어- 가 아니라, 절호의 기회야- 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 조그만 늑대에게 감히 다른 길로 새지 못하도록 절대 벗을 수 없는 목줄을 채울 수 있는? 의지를 꺾어버리고 생각을 죽여버리고 착하지, 하고 어르는 말 한 마디만으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완동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손으로 눈을 덮자, 사라는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시아의 손이 눈을 가리도록 놓아둔 채로, 나직이 심호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시아가 건넨 질문에, 사라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나 머리가 아파."
맥없이 어리광을 부리고는, 사라는 자신의 눈을 덮고 있는 시아의 손 위에 자신의 작은 손을 톡 포갰다.
"...알것도 같네요~ 귀여운 사람... 하지만 그대야,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론 허기는 채워지지 않아요."
비로소 입을 가져다대어야, 풍부한 크림이 잔뜩 올려진, 케이크 속에 상큼한 과일이 알알이 박힌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즐길수 있을 것이다. 바라보는 것은 그저 마음의 위로, 그것을 먹는 것은 몸의 포만감, 양과 늑대를 그런것에 비유해도 좋을지는 알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러했다.
오히려 입을 대는 순간엔 놀랍게도 진정이 된다던가? 그렇게나 안달난 그라 해도 마냥 본능에 몸을 맡겨 달려들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못된 늑대에게 유린당하지는 않을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라 해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야 훨씬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처사일 테니까.
"후후후... 그 모든 걱정과 번뇌, 절박함을 모두 담아서... 마음껏 즐기면 되는 일 아닌가요? 아무쪼록 후회없을, 다만 지나간 나날에 확실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만큼... 그대야, 모쪼록 주린 배를 양껏 채우다 탈나는 일이 없기를..."
행여나라도 도망갈까 잡는 것인지, 천천히 맞잡아오는 손을 뒤로 살벌하지만 애틋한 기운이 목덜미에 저릿하게 전해져오는 감각을 음미하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이라도 자유로웠다면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주기라도 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억지로 지배된다 한들 그녀가 그것에 학을 뗄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거칠면 거칠수록 즐거울 뿐이고, 상냥하면 상냥할수록 더 마음이 편할 뿐일까? 어차피 어느 한쪽만 채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갈증을 채우는 행동은 양이건 늑대건 방식만 다를뿐 결국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외로움이건,
애절함이건,
안타까움이건,
그녀에겐 딱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만족할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누군가 잘라내어 이가 빠져버린 케이크를 리필하는 정도는 그녀로서는 손쉽게 할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의 행동에 잠깐 몸을 맡길 뿐일까, 숨통을 조이듯 물고 있는 목덜미에서 전해지던 금방이라도 녹아내릴것 같은 짙은 숨결이 조용히 물러나기 전까지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늑대는 제 생각보다도 능숙한 데가 있었다. 지나치게, 위험할 정도로.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 늑대의 이성을 끊어놓기에는, 아직 새슬의 정신이 너무 물렀다. 돌아왔던 약간의 이성이 흩날리는 모래에 덮여 다시 스러져간다. 눈가로 다가오는 입술을 바르작거리며 피해 보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찔거림으로만 보일 뿐이다. 다시 뜬 흐릿한 시야에 비친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분하다는 듯 꾹 깨물린 입술이 하얗게 바랬다.
“나쁜,”
자식. 새슬이 힘없이 지구의 품으로 끌려들어가며 낮게 신음했다. 손바닥과는 또 다른, 뜨거운 체온이 뺨으로 전해지니 한층 더 빠르게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다. 열이 펄펄 끓는 감기에라도 걸린 기분이었다. 이마에 닿는 입술이 서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근, 두근, 이건 누구의 고동소리지? 나? 아니면 너? 어쩌면 둘 다. 조금 빠르지만 규칙적인 박자에 맞추어 하나둘씩 끊어지는 선. 마침내 새슬은 잠시 참았던 숨을 가냘프게 토해냈다. 얇디얇았던 이성의 조각이 심해 속으로 찬찬히 가라앉는다. 난 누구지? 뭘 하는 거지. 몰라, 그렇지만 지금은 끌어안아 줄 온기를 원해. 머리를 쓰다듬는 큰 손을 느끼며, 흐릿하게 풀린 눈이 지구를 다시금 응시한다.
“부탁이야.”
제발. 얕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배고프니 더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보챘다. 조금 아파도 괜찮으니까. 이미 능숙한 사냥꾼이었던 늑대의 앞에서, 어린 토끼의 발악은 실패했다. 이빨자국 하나 남기지 못 하고. 옷자락을 쥐었던 손이, 조금 더 올라가 지구의 어깨부근을 힘없이 거머쥐었다.
더 냉정해질 수 있다는 말에 대답은 없이 그저 미소만 지어보였다. 얼마나 냉정해질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금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중적인 내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꺼야 강해인. 무슨 소리야, 평생을 이렇게 살기로 마음 먹어놓고.
" 그래 사하야. 지금 외로움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건 나 밖에 없어. "
그리고 내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것도 너 밖에 없고. 손을 뻗어서 목을 끌어안아 내 품으로 가져온다. 떨어져있을 때 살짝 옅어졌던 달달한 향이 다시금 가득 코를 타고 들어온다. 불안해졌던 감정이 순식간에 안정을 찾아가고 동시에 긴 한숨이 터져나온다.
" 그러니까 너도 하고싶은걸 나한테 다 요구해. 들어줄테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런 관계잖아? "
외로움을 충족시키는게 너가 하고싶은 전부겠지만. 지금이라도 목덜미를 콱하고 깨물고 싶었지만 그것은 최후의, 최후의 이성이 저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