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라를 바라본다. 서로 어렴풋이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정도는 시아도 알고 있었다. 그저 서로의 관계가 그저 단순한 늑대와 양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랬기에, 둘 다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바보같은 시아라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이렇게 괴로워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시아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 많이 괴롭지? 많이 힘들지? 많이 배고프지? "
자신을 밀어내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능이 솟아오른 늑대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시아는 알지 못했다. 평상시의 늑대도 어떤지 모르는데, 만월의 늑대를 자신이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자신의 타는 듯한 외로움을 향한 갈증은 이미 사라를 만나면서 가라앉았지만, 오히려 사라의 굶주림은 커져가는 것만 같아보였다. 하지만 왠지 무섭진 않았다.
" 있잖아, 일단 내 눈을 똑바로 봐줘, 사라야. "
그래서 사라가 어떻게 행동하든 시아는 사라를 평소처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본능이 지배해서 번뜩이는 사라의 눈을 부드럽게 자신의 초콜릿색 눈동자로 마주하며 조금 더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착하지, 사라야. 조금만 천천히 생각해보자. 일단 천천히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날 따라오는거야. 그냥 눈을 뜰 필요도 없이, 내 손을 잡고 내가 이끄는대로 따라와주면 분명 좋아질거야. "
널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시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라의 손을 상냥하게 잡아주었다. 그리곤 한손을 뻗어 천천히 사라의 눈을 덮어준다. 마치 늑대나 개에게 잠시동안 안대를 씌워 진정을 시키려는 것처럼 천천히 눈을 가리는 손길은 따스했고, 들려오는 목소리도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가 아니라, 절호의 기회야- 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 조그만 늑대에게 감히 다른 길로 새지 못하도록 절대 벗을 수 없는 목줄을 채울 수 있는? 의지를 꺾어버리고 생각을 죽여버리고 착하지, 하고 어르는 말 한 마디만으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완동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손으로 눈을 덮자, 사라는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시아의 손이 눈을 가리도록 놓아둔 채로, 나직이 심호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시아가 건넨 질문에, 사라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나 머리가 아파."
맥없이 어리광을 부리고는, 사라는 자신의 눈을 덮고 있는 시아의 손 위에 자신의 작은 손을 톡 포갰다.
"...알것도 같네요~ 귀여운 사람... 하지만 그대야,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론 허기는 채워지지 않아요."
비로소 입을 가져다대어야, 풍부한 크림이 잔뜩 올려진, 케이크 속에 상큼한 과일이 알알이 박힌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즐길수 있을 것이다. 바라보는 것은 그저 마음의 위로, 그것을 먹는 것은 몸의 포만감, 양과 늑대를 그런것에 비유해도 좋을지는 알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러했다.
오히려 입을 대는 순간엔 놀랍게도 진정이 된다던가? 그렇게나 안달난 그라 해도 마냥 본능에 몸을 맡겨 달려들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못된 늑대에게 유린당하지는 않을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라 해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야 훨씬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처사일 테니까.
"후후후... 그 모든 걱정과 번뇌, 절박함을 모두 담아서... 마음껏 즐기면 되는 일 아닌가요? 아무쪼록 후회없을, 다만 지나간 나날에 확실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만큼... 그대야, 모쪼록 주린 배를 양껏 채우다 탈나는 일이 없기를..."
행여나라도 도망갈까 잡는 것인지, 천천히 맞잡아오는 손을 뒤로 살벌하지만 애틋한 기운이 목덜미에 저릿하게 전해져오는 감각을 음미하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이라도 자유로웠다면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주기라도 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억지로 지배된다 한들 그녀가 그것에 학을 뗄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거칠면 거칠수록 즐거울 뿐이고, 상냥하면 상냥할수록 더 마음이 편할 뿐일까? 어차피 어느 한쪽만 채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갈증을 채우는 행동은 양이건 늑대건 방식만 다를뿐 결국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외로움이건,
애절함이건,
안타까움이건,
그녀에겐 딱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만족할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누군가 잘라내어 이가 빠져버린 케이크를 리필하는 정도는 그녀로서는 손쉽게 할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의 행동에 잠깐 몸을 맡길 뿐일까, 숨통을 조이듯 물고 있는 목덜미에서 전해지던 금방이라도 녹아내릴것 같은 짙은 숨결이 조용히 물러나기 전까지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