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캐논의 도입부를 연주하자 그의 시선이 자연히 피아노 건반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에 집중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녀가 연주를 멈추자 아주 자연스럽게 그 뒷부분을 조금 더 연주하다가 두 손을 멈췄다. 정말로 다른 이와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로구나. 그것이 그가 가진 그녀에 대한 인상이었다. 친해질 마음이 더 생기냐는 물음에 그는 결국 소리를 내 웃었다.
"적어도 꺼려지진 않네요. 연주라던가 그런 것은 상관없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저도 원하는 거니까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친해지는 것에 대한 확신을 받고 싶은 것인지. 뒤이어 눈을 감고 잠시 멈췄던 캐논을 마저 이어나가며 그는 미소를 가볍게 지었다. 아무런 말 없이 연주를 이어나가다 끝내며 그는 약한 숨을 후우 내쉬었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다시 그녀를 시야에 담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확인차 안 물어도 괜찮아요. 갑자기 냉소적으로 변한다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싫어하거나 하진 않아요.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지. 물론 피아노가 조금 더 좋긴 하지만, 그게 다른 쪽을 싫어한다가 되진 않잖아요?"
결론은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그런 의미의 대답이었다. 두 손을 피아노 건반에서 내리면서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뒤이어 시계를 확인해보며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시간이란 어느 순간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것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저도 슬슬 준비하고 나가봐야겠네요. 기숙사 근처까지만 같이 갈래요? 어차피 하교하는 길에 잠시 들릴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사람들. 대체 잠은 언제 자는거야?! 물론 터질 것 같긴 했지만 밤을 샌 사람들이 있구만!! 아무튼 마무리를 하는 느낌으로 가지고 답레를 가지고 와봤어! 뭔가 잔잔한 영화느낌이어서 진짜 좋았다! 갱신이야!
아무튼 요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이건 내가 설정으로 안 정했으니 지금 이 다이스가 공설이다!!
.dice 1 5. = 3 1.오오오오오오오 브금이 뜨는 특급요리사 실력 2.그냥 나름 요리 되게 잘하는 실력 3.적어도 굶어죽진 않는 평범한 실력 4.차라리 나가서 도시락을 사서 먹는게 나을 정도의 실력 5.요리? 그게 뭔가요? 일단 이 쌀을 세제에 씻으면 되는거 맞나요? 정도의 실력
무슨 일이 있던간에 내가 사하에게 한 짓은 잘못이니까. 나를 동정해달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약점을 마음껏 쥐고 흔들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처음으로 내 의지로 상처 입힌게 너니까. 그래서 나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이었다. 차라리 그쪽이 마음이 편할테니까.
" 용서해달라고 한 말은 아니야. "
밉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한때는 행복했지만 지금은 이렇다니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른다는게 정말인가보다. 몸에 힘을 빼고서 조금 기대듯이 껴안는다. 언젠가 이런 날도 희미한 기억이 되어서 잘 생각나지 않을 때도 오겠지. 그때쯤 되면 서로에 대한 감정도 너무 희석 되지 않았을까.
그의 고개가 느릿하게 움직여, 이마에서부터 시작해 콧등, 볼. 차례로 살며시 누르는 듯한 입맞춤을 하고 나서 완전히 뒤로 떨어질 때까지. 아랑은 숨을 참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당황스러움을 넘어 유혹으로까지 느껴지려는 게 곤란했다.
“ 미쳤나봐아, 화연호오... 농담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뽀뽀해주면 어떻게 해애....? ”
아랑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를 안고 있으니 그의 목덜미나 가슴팍쯤에 얼굴을 묻었겠지. 붉어진 뺨은 아마 못 봤을 거야. 보였더라도 달빛에 가려져 덜 보였을 거야. 화연호가 나빴다. 사람을 아주 당황스럽게 만들어 놓고, 본인은 여유 있어 보이는 게 아주 나빴다. 부끄러움과 억울함에 페로몬이 더 달짝지근하고 뭉근하게 퍼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늑대가 아닌 아랑은 제 페로몬을 체감하지 못한다.
“ 너어, 입술 간수 좀 잘 해라아. 불쌍한 사람들 심장 떨어뜨리지 말고오...! ”
얼굴을 살짝 틀어, 숨 쉬고 말할 틈을 확보해, 그래도 네 품에선 벗어나지 않아. 자그마한 목소리로 불만 같은 것을 꿍얼거렸다. 어련히 간수 잘할까 싶은 맘도 있었는데, 간수 못 할 것 같은 마음도 있었다. 이상한 놈 –이상한 늑대- 처럼 구는 연호는, 나쁜 남자 –나쁜 늑대- 가 될 소지도 다분해 보였다. 아니면, 농담이라는 말로는 멈추지 않는. 어떠한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면 뭐 하는데...? ”
동물 늑대는 먹잇감을 관찰하거나, 쉬거나, 자거나... 하는 걸 알 수 있지만. 사람 늑대는 뭘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늑대 -사람 늑대를 말하는 거다- 를 조심하기 때문에, 이런 걸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너네는 평소에 뭐 하고 사니? 늑대도 양도 사람이라서 결국에는 사는 게 다 똑같은가...?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감정은 제각각 다르긴 할 거야. 아마도오. 피식자 –나- 는 외로움을, 포식자는 —너- 는 갈망을 느끼겠지. 양은 아직까지도 늑대가 무서웠다. 품에 안겨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데도 그랬다.
“ 그러게에, 그게 언제일까... 너무 붙잡아두면 너도 곤란할 텐데... ”
본인의 곤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호의 곤란도 생각한 말이었다. 말한 대로 너무 붙잡아두면 곤란해할 텐데, 지금은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대로 안겨서 동이 터 올 때까지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만월의 밤이 끝나고 대체 연호를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일말의 이성처럼 떠올랐다.
“ 한 입만 더야...? ”
곤란함, 갈등,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과 얄미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섞여서. 아랑은 고민하는 듯. 혹은 떠보는 듯 정말 한 입만 더 먹을 거냐고 물었다. 한 입만이 두 입이 되고, 세 입이 될 때도 있는데. 한 입- 두 입째긴 하지만 - 만으로 끝내는 건가...? 꼼지락꼼지락 조심스레 움직여서 가슴팍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포옹도 한껏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불안과 걱정과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한데 섞인 듯, 달밤이라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로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으응, 허락할게. ”
일말의 이성이 너 그러지 말라고 붙잡는 것도 같지만, 어쩌겠는가. 보름달이 충동질한 감정이 허락의 말을 이미 내뱉고야 만 것을.
마치 친구를 집에 초대한듯 큰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라곤 해도 역시 컴퓨터는 최후의 보루인가보다. 다만 그것을 억지로 열 생각도, 의욕도 들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예상외의 친절함(?)에 감탄 아닌 감탄사를 흘려보냈을까? 아무리 그녀가 고양이같은 훼방꾼의 성질을 가졌다 한들 가죽은 사람, 그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에 드러누운 지금만큼은 그저 사람의 탈을 쓴 고양이나 마찬가지였을까, 단순히 눕는 것도 모자라 뒤척이다가도 똑바로 누워선 한참 윗공기에 있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신발을 정리하는 모습, 책상 위에 안경을 내려놓고선 눈 주변을 마사지하는 모습까지 주욱 지켜보던 그녀는 이쪽 가까이 다가왔던 그가 슬쩍 내려다보는것 같다가도 이내 양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 양 옆에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살아생전 벽쿵은 들어봤어도 바닥쿵은 들어본적이 없었을까? 그런데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걸 수행하고야말았다.
"음~ 이 상황은 뭘까요~?"
위아래로도, 양옆으로도 옴짝달싹 못하게된 그녀였지만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눈매를 휘며 웃어보였을까? 날선 눈이 계속 자신을 눈여겨보다가 이내 오른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그것에 대해 알려주자 그녀는 못말리겠다는듯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만약 그를 밀쳐낸다면? 예상하건데 별 힘을 주지 않아도 저항했다는 그 자체에서 그는 순순히 물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예의바른 늑대라면... 그럼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그 뒤는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겠지. 최후의 순간에도 선택권을 주다니, 자신의 영역에까지 먹이를 몰아넣은 포식자의 행동치고는 꽤나 관대해보였다.
넥타이가 흘러내리는 모습에 열쇠가 쥐어진 손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다른 손은 그의 생각대로 위를 향해갔다. 하지만 그것은 넥타이를 휘어감아 잡아당기려는 것이 아닌,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그의 얼굴까지 닿으려 했을까?
"......"
딱히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애틋하면서도 그만큼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려 했다. 차분한 웃음과 상냥한 손길, 그럼에도 여전히 냉랭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적막한 실내였지만 그녀는 그런 풍경이 제법 마음에 들었을런지도 몰랐다. 그래도 언젠가 넘겨야 할 고비라면, 이렇게나마 그에게 도움받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하는 그녀 역시 이 공간에 함께 있었기 때문일까? 분명 고양이는 없는데도, 어디선가 기분좋게 골골거리는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