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제 품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냥감의 꼴을 보는 것이란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악취미라고? 그래서 발버둥 칠 수나 있고? 먹이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게 당연하다. 덫을 걸고, 올가미에 붙잡아 두고. 미련하게 잡혀버린 제게 재롱을 부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구는 그 감정을 평생토록 느끼지 못할 것이며, 이해해 줄 넓은 아량이 있다 한들 그것이 한낮 먹이에게 적용될 리 없다. 지구는 그저 느긋하게 째로 삼키고 싶었을 뿐이다. 꿀꺽, 늑대가 양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런가."
가엾고 순진한 그녀가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든다. 참는 게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고. 그는 흐릿한 조소를 흘리며 찌푸린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다, 눈물에 젖어 있는 그녀의 속눈썹을 혀로 핥아주려 했다. 그리고선 얼굴을 간질거리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려 했겠지. 참는 것은 힘들지 않다. 감정을 누르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 받은 짐승에게 그런 것은 일도 무엇도 아니겠다. 그저 이 달디 단 여유를 진득히 맛보고 싶을 뿐이다. 허기에 허겁지겁 먹어 치워버리고 난 뒤에 남는 것은 상실감의 뼛조각 뿐이다. 그러니 지구는 새슬과 이렇게 밀착하여 끌어안고 있는 순간만으로도 포만감을 채울 수 있었으나 글쎄, 이 애달픈 먹이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애간장이 녹는 듯했다. 그렇다면 좀 더 갈망하며 애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맛있는 먹이는 음미하며 집어 삼키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싫은데."
그녀는 그가 원한 애원과 달리 다른 숨의 절망을 내뱉는다. 지구는 그런 새슬을 보며 짓궂게 큭큭 웃음소리를 낮게 내뱉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감정을 토해내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달리 지독히도 다정한 품 안으로 끌어 안았다. 짐승은 체온이 높아서, 차가운 말과 눈빛과 달리 그 품은 뜨겁다 못해 달은 설탕을 끈적한 잼으로 졸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는 그렇게 품에 넣은 먹잇감의 심장고동 소리를 가만히 듣는 것을 좋아했다. 공포와 애정이 하염없이 뒤섞여 구분되지 않을 만큼 범벅이고 결국 얼룩지고만 두근거림을. 그는 품에 담긴 그녀의 둥근 이마에 입을 맞추며 느른 숨을 뱉는다. 졸여진 달큰한 체취가 뇌를 가득 메우고, 애태우지 말라고 한입에 물어 삼키라고 명령한다. 건방진 토끼라고 생각한다.
"토끼가 너무 아픈 건 싫대."
이전에 네가 했던 말이잖아. 기억은 해? 지구는 다정한 손짓으로 달게 웃으며 공포에 떨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그만 토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어차피 먹을 삼킬 것에 굳이 어르고 달래는 이유는 단지 소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울면 머리가 울리잖아. 남들의 시선을 집는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뿐이라고.
네가 가장 잘 알 수 밖에. 우리 사이에 그어진 선은 맨 처음 네가 그린 거니까. 네 손으로 직접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너로 하여금 비롯된 것이다. 갑자기 책임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네게 떠넘긴다. 억지스럽다고? 그때 그랬잖아. 난 상처 받지 않으려면 뭐든지 한다고.
사하는 지금 이 상황이, 플롯이 엉망으로 짜인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한참이나 뒤에, 그것도 이런 시간을 빌어 알게 되는 사건의 전말이라니. 이런 식으로 쓰면 욕 먹어요, 작가님. 해결되는 것도 없는 데다 감정 낭비라구요. 애초부터 잘못됐어요. 양과 늑대라니. 동화도 이렇게 유치하진 않겠어요. 누구라도 붙잡고 비난하고 싶었다. 그러나 각본을 쓴 사람은 없고, 감독이라고 있을 리 없다. 아무리 외로움에 시달려 이성이 무뎌졌다고 해도 현실과 영화는 구분할 줄 알았다.
"걱정하지 마."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려줘야 하는 것 같은데, 그냥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다. 그마저도 누가 있다고 바닥까지 치진 않는다. 마른 눈꺼풀을 움직인다. 해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녀가 캐논의 도입부를 연주하자 그의 시선이 자연히 피아노 건반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에 집중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녀가 연주를 멈추자 아주 자연스럽게 그 뒷부분을 조금 더 연주하다가 두 손을 멈췄다. 정말로 다른 이와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로구나. 그것이 그가 가진 그녀에 대한 인상이었다. 친해질 마음이 더 생기냐는 물음에 그는 결국 소리를 내 웃었다.
"적어도 꺼려지진 않네요. 연주라던가 그런 것은 상관없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저도 원하는 거니까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친해지는 것에 대한 확신을 받고 싶은 것인지. 뒤이어 눈을 감고 잠시 멈췄던 캐논을 마저 이어나가며 그는 미소를 가볍게 지었다. 아무런 말 없이 연주를 이어나가다 끝내며 그는 약한 숨을 후우 내쉬었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다시 그녀를 시야에 담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확인차 안 물어도 괜찮아요. 갑자기 냉소적으로 변한다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싫어하거나 하진 않아요.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지. 물론 피아노가 조금 더 좋긴 하지만, 그게 다른 쪽을 싫어한다가 되진 않잖아요?"
결론은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그런 의미의 대답이었다. 두 손을 피아노 건반에서 내리면서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뒤이어 시계를 확인해보며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시간이란 어느 순간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것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저도 슬슬 준비하고 나가봐야겠네요. 기숙사 근처까지만 같이 갈래요? 어차피 하교하는 길에 잠시 들릴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사람들. 대체 잠은 언제 자는거야?! 물론 터질 것 같긴 했지만 밤을 샌 사람들이 있구만!! 아무튼 마무리를 하는 느낌으로 가지고 답레를 가지고 와봤어! 뭔가 잔잔한 영화느낌이어서 진짜 좋았다! 갱신이야!
아무튼 요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이건 내가 설정으로 안 정했으니 지금 이 다이스가 공설이다!!
.dice 1 5. = 3 1.오오오오오오오 브금이 뜨는 특급요리사 실력 2.그냥 나름 요리 되게 잘하는 실력 3.적어도 굶어죽진 않는 평범한 실력 4.차라리 나가서 도시락을 사서 먹는게 나을 정도의 실력 5.요리? 그게 뭔가요? 일단 이 쌀을 세제에 씻으면 되는거 맞나요? 정도의 실력
무슨 일이 있던간에 내가 사하에게 한 짓은 잘못이니까. 나를 동정해달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약점을 마음껏 쥐고 흔들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처음으로 내 의지로 상처 입힌게 너니까. 그래서 나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이었다. 차라리 그쪽이 마음이 편할테니까.
" 용서해달라고 한 말은 아니야. "
밉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한때는 행복했지만 지금은 이렇다니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른다는게 정말인가보다. 몸에 힘을 빼고서 조금 기대듯이 껴안는다. 언젠가 이런 날도 희미한 기억이 되어서 잘 생각나지 않을 때도 오겠지. 그때쯤 되면 서로에 대한 감정도 너무 희석 되지 않았을까.
그의 고개가 느릿하게 움직여, 이마에서부터 시작해 콧등, 볼. 차례로 살며시 누르는 듯한 입맞춤을 하고 나서 완전히 뒤로 떨어질 때까지. 아랑은 숨을 참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당황스러움을 넘어 유혹으로까지 느껴지려는 게 곤란했다.
“ 미쳤나봐아, 화연호오... 농담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뽀뽀해주면 어떻게 해애....? ”
아랑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를 안고 있으니 그의 목덜미나 가슴팍쯤에 얼굴을 묻었겠지. 붉어진 뺨은 아마 못 봤을 거야. 보였더라도 달빛에 가려져 덜 보였을 거야. 화연호가 나빴다. 사람을 아주 당황스럽게 만들어 놓고, 본인은 여유 있어 보이는 게 아주 나빴다. 부끄러움과 억울함에 페로몬이 더 달짝지근하고 뭉근하게 퍼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늑대가 아닌 아랑은 제 페로몬을 체감하지 못한다.
“ 너어, 입술 간수 좀 잘 해라아. 불쌍한 사람들 심장 떨어뜨리지 말고오...! ”
얼굴을 살짝 틀어, 숨 쉬고 말할 틈을 확보해, 그래도 네 품에선 벗어나지 않아. 자그마한 목소리로 불만 같은 것을 꿍얼거렸다. 어련히 간수 잘할까 싶은 맘도 있었는데, 간수 못 할 것 같은 마음도 있었다. 이상한 놈 –이상한 늑대- 처럼 구는 연호는, 나쁜 남자 –나쁜 늑대- 가 될 소지도 다분해 보였다. 아니면, 농담이라는 말로는 멈추지 않는. 어떠한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면 뭐 하는데...? ”
동물 늑대는 먹잇감을 관찰하거나, 쉬거나, 자거나... 하는 걸 알 수 있지만. 사람 늑대는 뭘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늑대 -사람 늑대를 말하는 거다- 를 조심하기 때문에, 이런 걸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너네는 평소에 뭐 하고 사니? 늑대도 양도 사람이라서 결국에는 사는 게 다 똑같은가...?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감정은 제각각 다르긴 할 거야. 아마도오. 피식자 –나- 는 외로움을, 포식자는 —너- 는 갈망을 느끼겠지. 양은 아직까지도 늑대가 무서웠다. 품에 안겨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데도 그랬다.
“ 그러게에, 그게 언제일까... 너무 붙잡아두면 너도 곤란할 텐데... ”
본인의 곤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호의 곤란도 생각한 말이었다. 말한 대로 너무 붙잡아두면 곤란해할 텐데, 지금은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대로 안겨서 동이 터 올 때까지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만월의 밤이 끝나고 대체 연호를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일말의 이성처럼 떠올랐다.
“ 한 입만 더야...? ”
곤란함, 갈등,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과 얄미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섞여서. 아랑은 고민하는 듯. 혹은 떠보는 듯 정말 한 입만 더 먹을 거냐고 물었다. 한 입만이 두 입이 되고, 세 입이 될 때도 있는데. 한 입- 두 입째긴 하지만 - 만으로 끝내는 건가...? 꼼지락꼼지락 조심스레 움직여서 가슴팍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포옹도 한껏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불안과 걱정과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한데 섞인 듯, 달밤이라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로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으응, 허락할게. ”
일말의 이성이 너 그러지 말라고 붙잡는 것도 같지만, 어쩌겠는가. 보름달이 충동질한 감정이 허락의 말을 이미 내뱉고야 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