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듯이 윤재의 눈빛이 도끼눈으로 바뀌어서 빤히 예미에게 향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자신인 물은 대상은 그녀였다. 허나 돌아온 대답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이 그로서는 조금 애매한 느낌인 모양이었다. 허나 이해는 한다는 듯이 그는 더 그 관련으로 말을 하진 않으며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빅토리아 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안에 있는 로봇들은 앞으로 얼마나 필사적인 사투를 하게 될지. 그것은 피할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윤재는 고개를 돌려 구멍이 있었던 곳을 바라봤다. 물론 거기엔 더 이상 구멍이 없었다.
"...가족은 괜찮대? 나는... 말리지만, 그래도 네가 꼭 해야겠다면 하래. 대신 다치진 말라더라."
자신의 부모님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윤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가족이 되어준 존재. 그렇기에 그런 두더지 같은 이가 설치는 것은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절로 몸을 부르르 떤 후, 윤재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다가 괜히 소리를 내어 피식 웃어보였다.
"말은 이러지만, 빅토리아 호는 싸우진 못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그 점만큼은 미안하네. 직접 같이 할 수 없어서."
"그래도 나는 직접 맞는 입장은 아니잖아. 그 아이들은 진짜 맞는다고, 저번에 검룡이 머리에 드릴 맞았을때, 나는 잠깐 찌릿 하고 말았지만 걔는 맞고 성질 부리더라, 야."
물론 윤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싸우는 걸 보자면 자신보다는 기가톤케일이 더 열심히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보다는 기가톤케일 쪽이 좀 더 걱정이 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리 답한 것이리라. 물론 윤재의 도끼눈은 애써 회피하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걱정하시더라. 그 걱정이 우리가 다치는게 아니지만."
그리고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그만큼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강한 힘이 주어졌고, 그럴수록 힘에 휘둘리기 십상이었으니,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하지 말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달라는 조언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내렸다는 말을 윤재에게 전하면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가 도와주겠다고 하긴 하셨는데.... 모르겠네, 응.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버지도 난감하지 않으실까?"
실제로 생각해보면, 로봇타는 고등학생들을 어떤 사람들이 법률적으로 문제을 제기할까란 생각에 그녀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던 와중 팔찌를 통해 기가톤케일의 상태를 바라보던 그녀가 풉, 하고 웃음을 내뱉고야 만다.
"얘네..... 함선에 꼬리 박아두고 자는데? 무슨 충전지인가?"
실제로 기가톤케일의 출력은 굉장했다. 그런 다량의 에너지를 뿜어내고서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소비하는 양보다 월등했으니까. 그렇기에 그 남은 잉여분의 에너지를 전부 빅토리아 호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리라.
"...군인이나 경찰이 와서 사적 무기 소유로 문제 삼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것 같은데."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고 로봇은 따지고 보면 병기였다. 그런 이들이 개인 소유를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되는 일이었고 윤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뽑힌 이상,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서 고등학생은 전쟁터로 내보낼 수 없는 존재들이니 결국 충돌할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윤재는 난감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그땐 부탁할게. 너네 아버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커피 좋아하면, 끓여줄 순 있어."
당장 자신이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카페에서 배우고 연습한 커피를 끓이는 정도의 일이라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윤재는 괜히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히 다가가 그녀의 팔찌를 바라봤다.
"충전식 로봇이야? 그럼 전투 하다가 충전이 다 되면 다시 빅토리아 호에 와서 충전하고 싸우는거야?"
뭔가 정말로 살아있는 로봇 같다고 생각을 하며 윤재는 작게 감탄하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다 순간 헛기침을 하면서 살며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것보다는, 얘네가 빅토리아 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인거 같은데? 잉여 에너지분을 싹다 빅토리아 호에 공급중."
팔찌를 보여주자 화면으로 도식이 보인다. 실제로 기가톤케일의 에너지원을 과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보면 계속 순환을 일으키면서 천천히 에너지를 사방으로 뿌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에너지는 그렇게 퍼지고 또 소모되면서 기가톤케일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말하는 와중 꼬리를 제외하고 천천히 몸을 말고 자는 모습은 말그대로 생명체의 그것과 가까웠다. 각자 자는 방식마저 다른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아버지라면 기꺼이 찾아가실껄, 바빠서 가실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버지라면 종종 찾아가실지도 몰라."
응, 이미 들르셨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버지를 떠올린 그녀였지만,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법정에서 그렇게 열변을 아버지를 떠올리고 만 그녀는 풉하고 재차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그대로 비상식적인 장면이니 말이다.
"용이라기 보다는 강한 존재를 연상시킨거겠지? 그게 카이저 기도라였고 말이지."
잠시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그녀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은 기가톤케일과 비슷하지만, 좀더 사악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였다. 동일 개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갭이 존재하는 괴수의 모습.... 그것이 기가톤케일의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에너지를 공급한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말에 윤재는 당황해서 예미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도 그렇지 않은가. 에너지를 받아가면 모를까. 오히려 줘버리면 나중에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에너지원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중이니, 일단 지금은 저대로 두는 것으로 하며 윤재는 나중에 빅토리아 호에 가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로 다짐했다.
"...적어도 난 만난 적 없어."
들르셨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에 윤재는 만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어른들과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만난다면 인사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든든한 아군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와중 카이저 기도라라는 말에 윤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 그러니까 용의 한 종류야?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그런 거?"
이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곧 윤재는 기가톤케일과 이미지를 비교했다. 그러다가 괜히 풋 소리를 내면서 정말로 닮았다는 말을 하면서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 윤재는 빅토리아 호를 바라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그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었으니까.
"...나는 딱히, 빅토리아 호를 연상한 적이 없어. 너희들은 다들 스스로 만들었지만, 나에겐 있는 것이 주어졌어. ...왜 나만 그랬던걸까. 그리고 말이야. 봤어? 구멍 속에서 보였던 그 전함."
"아니, 잉여 에너지분만, 자기네들이 위험하지 않고 그렇다고 빅토리아 호에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일종의 자체 소형 발전기 같은 느낌?"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로 기가톤케일이 공급하는 에너지 출력을 보여주며 머리를 내젓는다. 자기 입으로 내뱉긴 그렇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유일한 약점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과계열, 아무리 공부하고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듣더라도 이해하는 것은 단 한순간, 결국 순식간에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가 이런 복잡한 그래프를 이해하는건 절대 무리.
"용이 아니라, 우주 괴물. 정확히는 악역이야. 왜 고지라 있지? 고지라랑 맞장 떠서 사생결단까지 내려 했던 놈이야."
그래서 기가톤케일이 악역이란 말에 민감한 걸지도 몰랐다. 기껏 사력을 다해서 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동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괴물 취급을 한다. 그것만큼 짜증나고 회의감 드는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성향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형 모습은 완연한 성기사, 그자체의 모습이었다. 마치 디지몬의 그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아 그거."
막판에 육탄전까지 불사해가며 응전했던 그녀였다. 가까이서 그 모습을 봤으니 절대로 기억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간 이상하다는 듯이 윤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딜 봐도 용 같은데. 고지라는 있긴 하지만 보진 못했는데 유명한가보네. 그 카이저 기도라 말이야."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윤재는 흥미로운지 조금 관심을 보였다. 물론 정작 집에 간 후에 찾아볼지는 또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무심한 목소리에 아주 조금 흥미가 올라온 것을 보면, 어쩌면 찾아볼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구멍 속에서 나오던 전함이 뭐가 어떻냐는 듯이 묻는 예미의 말에 윤재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사실 정말 별 거 없었으나, 아주 조금은 신경이 쓰였기에 윤재는 고민을 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자신이 느낀 이상함. 그리고 자신이 느낀 무언가를.
"그 전함. ...빅토리아 호와 너무 닮았어. 색만 다를 뿐이지. 이거 우연인걸까?"
처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전함이 적의 모함과 색만 다를 뿐, 완전히 닮았다는 것이 영 신경이 쓰였는지 괜히 윤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정확히는 구멍이 있었던 그 포인트를 바라보았다. 그때 자신이 모니터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괜히 손가락으로 하늘에 구멍을 그리고, 자신이 봤던 그 실루엣을 손으로 가만히 그리다가 윤재는 손을 아래로 내렸고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억지로 잇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냥 전함이니까 비슷하게 생긴걸 수도 있겠지. 미안. 이상한거 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