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건지, 찡그린건지, 알수 없는 비죽임이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남은 거라곤 그저 평소보다 더 주체할 수 없는 자신,
손을 잡아 떼어놓으려는 부드러운 손길에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대신 능글맞은 웃음으로 먼저 남아있던 감정을 천천히 지워나갔다. 잠깐 망설이는가 싶다가도 이내 결심한듯 과감하게 놓는 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만큼은 불손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어차피 늑대는 늑대, 기대하지도 않는 걸요~"
그의 인내심을 부러 시험하는지, 본래 성격이 그러했는지, 그녀는 그에게 충분히 자극이 될 말을 하면서도 적당한 선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잡히면 꼼짝없이 먹히게 될지라도 할 말은 하는게 피식자의 본능 아니던가,
예고라는 말에 그는 쓴 표정을 지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는 그곳을 꺼려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그 이유를 말할 일도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유치찬란한 이유였고, 개인적인 고집에 불과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없었고, 이해받을 생각 또한 없었다. 그저 자신만의 가슴에 품으면서 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입을 꾹 닫았다.
"그냥 저도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편이에요. 자세히 선배를 아냐고 하면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부할 수 있는걸요."
단순히 자신 같은 이일 뿐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한 옥타브 아래에서 도리미파솔라시도를 누르는 그 모습에 그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야 완전 편하게 있을 순 없잖아요? 저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예의라던가 그런 것도 있는 법이고요."
방금 톡 쳐진 콧등을 괜히 손으로 가볍게 문지르다가 그는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작게 숨을 내뱉은 후, 눈을 감고 젓가락 행진곡의 첫가닥을 잠시 연주하다가 멈추면서 그는 두 손을 가볍게 털었다. 아주 편해보이는 자세로 연주에 임하긴 했으나 그것도 아주 잠시. 연주가 끝나자 다시 괜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면서 몸에 힘이 조금 들어간 자세가 절로 이어졌다.
"그래도 방금 연주할때는 편해보이지 않아요? 그때만큼은 딱히 다른 이를 의식하거나 하진 않아서요."
네가 싫다면 얌전히 굴게. 지구의 목소리가 낮게 속삭인다. 포식자가 다 잡은 먹이에게 상냥하게 구는 것은 변덕일까, 가소로운 지배층의 여유일까. 또 그 무엇도 아니라면. 풀밭에 마주 앉아, 제 힘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긴 새슬의 몸집은 너무도 작았고, 꽉 끌어안으면 바스라져버릴까 조심스러웠다. 너무도 말랑하고 폭신할 것 같아서 손아귀에 꽉 쥐었는데, 그것은 뭉개지며 날아가 저 하늘 위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가진 줄 알았는데 눈에 보일 뿐 형체는 달콤한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는 성급하지 않았다. 다정하고 느릿한 손짓과 그녀를 안고도 남는 너르고 따뜻한 품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가엾은 토끼를 외롭게 두지 않을 테지. 새슬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부드러운 두 뺨을 잡고 제 눈과 시선을 맞춰 고개를 들게끔 하며. 차가운 눈빛이, 녹빛의 눈을 관통하여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파도 참아."
네가 너무 달아서. 그래서 그런거니까. 늑대는 맛있는 것을 놓칠 리가 없고, 그녀의 달큰한 체취는 물리지 않고 담긴 본능을 살살 달래며 안달나게 한다. 이마를 마주 대어 새슬의 녹빛을 한참 들여다보던 지구는, 살짝 눈웃음 지으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서로의 코끼리 마주 부볐다가, 그녀의 무른 뺨 체취를 맡듯이 고개를 돌렸다.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단내. 나는 이것을 원하는 만큼 갈취할 수 있고. 천천히 옆선을 따라 코에서 뺨으로, 또 뺨에서 매끄럽게 미끄러져 어느새 입가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닿았다. 참을 수 없는 내음에 길게 숨을 뱉어내고, 먹이의 앞에 입을 연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라는 것을, 감히 그 누가 알아주려나.
"잘 먹을게."
선홍빛의 사이로 붉고 하얀 것이 엉켜 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신경이 가득한 얇은 피부 위에 닿겠지. 아플지도, 간지러울지도 몰라.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이다. 어느 모습이 진짜인지 모를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면. 과연, 그의 따스한 품을 뿌리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가냘픈 토끼야, 지금이 기회야. 어서 빨리 도망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외친다.
눈물은 애저녁에 멈췄다. 잔울음 정도가 남아 작게 훌쩍거릴 뿐이었다. 원하는 만큼 옆에 있어준다는 말에 신경이 조금 누그러졌다. 평생은 바라지 않는다는 말로 얻은 안정이라니. 기껏 맞는 퍼즐조각을 찾아 끼웠더니 그림은 딴판인 상황 같았다. 내가 양만 아니었어도 나를 퍼즐조각처럼 여기진 않았을 텐데. 혼자로는 완전하지 못한 것처럼, 누가 꼭 옆에 있어야 땅에 발 붙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깨에 묻었던 고개를 들고 턱을 걸쳤다. 극심한 외로움에 오히려 다른 쪽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뭐가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은지 구분하는 판단이 흐렸다. 너도 내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잖아. 아닌 척 하지 마. 속으로 되뇌인다.
"오인을 받아 억울하게 혼나게 되었다면?" 강하늘:해명해야지. 그냥 조용히 수긍하고 싶진 않아. 강하늘:그래도 혼낸다면 그냥 잊을 것 같아. 피아노 치면서.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강하늘:그럼 너는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강하늘:사람 속 모르는건 피차 마찬가지잖아. 알아줬으면 한다면 말을 하던지. 강하늘:말을 하지 않는 건 몰라줘도 상관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