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감고 그저 손의 흐름에 맡기며 멜로디를 흘려보내니 음악실이 특유의 음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아노의 음을 밖으로 끄집어내며, 그 멜로디를 울리게 하는 것 뿐이라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니 절로 하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음악실을 쓰는 이가 없다고 해서, 음악 교사에게 음악실을 써도 좋다고 허락을 받아 하늘은 작게 숨을 내쉬며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음을 즐겼다.
대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콩쿨이 잡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어쩌면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것조차 조금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그는 이런 연주에 만족했다. 아무도 듣지 못할 자신만이 만족하는 그런 연주에 푹 빠지는 입가의 미소가 한 박자 흘러갔다.
"......"
조금 더 박자를 바꿔보기도 하며, 차분한 멜로디를 울리니 두 손이 한 쌍이 되어 피아노 건반을 무도회 바닥 삼아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흘렀다. 만날듯, 만나지 않는 기묘한 거리가 유지하며 스스로 울리는 연주를 음악 삼아 춤을 추니, 열 손가락은 정말로 예쁘게 춤을 췄다.
스포트라이트가 될지도 모를 불빛은 필요 없었다. 자신이 눈을 감아 들리는 연주는 자신에게 울리는 것이었으니 그 자체에 만족하며 그는 더더욱 멜로디를 흘려보냈다. 여유롭게, 유연하게, 음표로 이뤄진 강을 흘려보내며.
만월의 밤이라도 억제제는 야무지게 3알 챙겨 먹었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을까. 별관 도서관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좀 늦은 시간이어도 택시를 타면 괜찮겠지. 묘하게 불안해진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무시하고, 아랑은 학교 정문을 벗어나려고 했다.
아, 그러나. 무시하려 애썼던 불안감이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옥죄고, 아주 가벼운 응석으로 숨기고 있는 깊은 외로움을 깨워낸다. 양은 맡을 수 없는 페로몬이 억제제 같은 것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마주치게 된다면, 평소에 응석을 부리던 상대이든 그렇지 않든 참지 못하고 응석을 부려버릴 것만 같아서 아랑은 눈물샘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흐려지지 않은 시야로 누군가가 보였고, 아랑은 그에게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응석이라고 부려본 적 없는, 늑대라고 의심하고 있는 종잡을 수 없는 소년에게로- 뛰어가 절박하게 옷자락을 붙들었다.
“ 도와줘어... ”
제발 누군가 나를 도와줘. 외로움 속에 날 혼자 두지 마. 하지만, 날 겁먹게 하고 상처 입혀선 안 돼. 멋대로인 소망이, 도와달라는 음성 속에 그대로 느껴졌으면 어쩌지. 아랑은 울먹울먹한 얼굴로 연호를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커피향이 약간 가미된 달고 쌉싸름한 헤이즐넛 초콜릿 냄새가 그를 자극할 것이라고는, 아직은 깨닫지 못한 채로.
//연호주... 제가 그만 길이 조절에 실패해버리고 말았습니다...ㅇ<-< 더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져 버렸네요! 88 연호주는 길든 짧든 편한대로 답레 올려주십셔! 수많은 레스 속에서 눈에 띄어보려고 눈물팡 금아랑 픽크루를 첨부해 봅니다.. 저도 팝콘 줘요ㅕ... (쓰느라 관전하지 못하는 자) https://picrew.me/image_maker/186583/complete?cd=sfjpPhyDhd
분명 집에서 나올때 이런 상황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내가 공교롭게도 학교에 늦게 남아있었고 그때 마침 붙이고 있던 패치가 떨어져나갔고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은사하를 딱 맞추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적으로도 확률이 너무나도 낮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확률을 나는 마주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문을 열었을때 바닥에 넘어져있는 사하의 모습이 보여졌다. 문이라는 장애물이 가운데에 있을때는 그나마 생각이라는걸 할 수 있었지만 문을 열었을때 풍겨나오는 이 단내는 이성의 끈을 잡고 있던 손을 강하게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오지마, 라는 말이 들렸지만 사하는 모른다. 너의 향기가 나를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를.
" 괜찮아? "
당장 달려들어서 물고싶다, 라는 욕구는 간신히 누를 수 있었다. 어릴때 만월에 패치를 붙이지 못해서 고통에 떨었던 경험이 지금은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본능을 내가 언제까지 누를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했다. 나는 재빠르게 사하의 옆에 다가가서 부축해주기 위해서 자세를 낮추면서 말했다.
크윽........다들...그렇게........바들바들 하셨지만 역시 모두들 누구보다 캐릭터를 잘 풀어내주시고 계시네요 ㅠ▽ㅠ(왈칵 모두들의 필력 너무 맛있고.. 논란 될 것을 예상했지만 지르고 바로 잡자 생각하고 세운 스레였음에도 지금의 이벤트 일상을 관전할 수 있는 것에 ㅠ▽ㅠ 한 치에 후회도 없습니다..이 자리에서..캡틴은.......(사르륵 그리고 하늘주와 가예주, 규리주도 무사히 일상을 돌리시고 선관을 나눠주시고 계셔서 제가 부족했지만 다들 너무 천사셔서 눈물 바다입니다ㅠ▽ㅠ횡설수설~!!
만월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위험한 때라고 누누히 들어왔던 때, 가뜩이나 심란한 상황에 안부를 묻는 메시지 또한 가득했기에 쉽게 진정이 되지 않던 그녀는 오늘 자신이 삼켰던 약의 갯수를 확인해보았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셋, 틀린게 없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거지?
"......"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잔뜩 가라앉는 기분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알다. 이럴줄 알았으면 집에나 일찍 들어갈걸, 만월일 때는 알아서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오가던 찰나... 부실의 문이 멋대로 열리는 소리가 나자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제가 뭘 해드릴 기분이 아니거든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를 보내기위해 손사래를 치던 찰나, 단순한 위기감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팽팽하던 무언가가 놓여진듯 풀린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 풀린건 닻의 밧줄이었는지 아까와는 다르게 몸이 눈에 띄게 무거운 기분이 들었고, 익숙하되 알수 없는 감정 앞에서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인상을 풍기는 그에게 하소연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들 앞에서 추태부리기 싫으니까요..."
어차피 시간도 시간이니 여긴 둘만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주변에 아무도 없길 바라면서, 이상하게도 그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건 이미 글렀을지도, 그녀는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기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박준,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中
하늘에는 둥그스런 달이 말갛게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물에 녹아 부서지는 알약 세 개를 의미했다. 만월마다 억제제 세 알. 평소에는 한 알, 하지만 만월에는 언제나 세 알. 최민규는 이 규칙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단순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하여 오늘도 평범한 날들 중 하나로 지나갔어야 했다. 분명, 그랬어야 하는데.
마치 1년 전 같았다.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다는 말은 불행히도 거짓말이다. 1년 전, 깜박 잊고 억제제를 한 알만 먹었던 그 날.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듯 굴었던 날이 있었다. 정확히 1년이 지난 오늘, 민규는 또다시 홀린 듯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분명 봄이다. 그런데 왜 몸이 차갑지, 이상하다. 혼자 중얼거리며 운동장을 서성였다.
차갑다. 아니, 허전하다. 아니, 이건 허전함이 아니다. 추위다. 몸에 구멍이 나버렸다. 텅 빈 구멍으로 서리가 맺혀 시리다. 아무나 제발 도와줘, 작게 신음하려던 그 순간,
"..안녕."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헛웃음이 이어졌다. 이건 마치 1년 전과 같지 않던가. 최민규는 성우동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유난히도 달이 크다 생각했던 밤, 아직 잠들지 않은 토끼들이 이따금씩 건초를 바스락거리는 소리. 철망 옆에서 숨죽인 채 웅크려 고개를 묻은 인영.
이상한 날이었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는데, 변함없이 옥상에서 햇빛을 쬐고,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조금 자고, 발길 닿는대로 마구 돌아다니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무서울 정도로 온 몸을 잠식하는 이 외로움은ㅡ 오늘 약을 먹었던가? 아니면 먹지 않았던가? 몰라. 이미 머릿속에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담을 여유는 조금도 없다. 그토록 싫어했던, 없애려 했던 것에 구속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운지.
정신을 차리자 이미 발걸음은 토끼장 앞에서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작은 실소. 작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토끼들한테 기대어서라도 달래 보려는 거야? 누군가 비웃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대는 것 같았으나, 그딴 거 알 게 뭔데? 한데 뭉쳐 새근대는 토끼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멀리서나마 기대어 보려는 심정인 영 토끼장 옆에 주저앉아 웅크려 고개를 묻은 것이다.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토끼. 낯선 남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면 눈에 보이는 것은 키가 큰 남성의 실루엣.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당장이라도 애정과 온기를 갈구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 속이 메슥거렸다. 무기력함과 공허함에 얕게 떨리는 눈동자가 남학생을 마주했다.
“….하하. 술래잡기?”
맘대로 정해 버리다니 너무하네.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망칠까? 글쎄. 평소대로의 새슬이라면 분명 등을 돌려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을 터다. 만월의 밤에, 갑자기 눈 앞에 이끌리듯 찾아온 누군가.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너무도 자명했지만, 애석하게도 도망칠 마음 따위는 들지 않았다. 사막에 내던져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이처럼, 누군가를 목적 없이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시한 술래잡기야."
피식, 흐릿한 웃음을 지었다. 성큼거리며 다가오는 발걸음을 내칠 몸짓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웅크려서, 가라앉은 눈으로, 눈 앞의 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맘때면 미칠듯한 외로움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이를 누군가를 원하는 절망에 가까운 갈증이라 했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꽃이 되어 주변을 돌아다니는 늑대를 유혹하기 위해 달콤한 꽃향기를 흩뿌리는 것이라 했다. 시아 역시 만월이 찾아오고 나서 평소에는 그저 의무감으로 삼키던 알약을 어떻게든 자신을 억누르려 세알이나 다급하게 챙겨먹었다. 그럼에도 목을 죄여오는 듯한 외로움은 가실 줄 몰랐지만.
그럼에도 온몸에선 원치 않게 흘러나가는 향기가 존재할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이래선 안돼, 시아는 자신을 다독였다. 그저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그런거야. 그러니까 가볍게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어두운 밤하늘 아래 깔린 어둠 속을 걷는다면, 혹시나 자신의 향기에 이끌린 늑대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미칠듯한 갈증 같은 외로움도 바람에 날려 사라질짇 몰라.
그렇게 시아는 핏 좋은 검정색 트레이닝복 팬츠와 흰색 오버핏 셔츠를 걸치곤 밖을 나선다. 편의점이라도 가서 단 과자라도 사오면 기분의 전환이 될거라 생각하면서. 하짐나 자신의 생각은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골목을 나서 몇분인가 걸었을 때였다.
" 사라...? "
왠지 어딘가 힘들어보이는 자그마한 아이가 쭈그려 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아는 그게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야,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온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둘 사이에 어렴풋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던 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역시 걱정이 앞섰기에 조심스럽게 중얼거린 시아는 걸음을 서둘러 사라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사라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하며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 사라야, 나 시아야. 괜찮아? 어디 아픈거야? "
이 말 한마디가 무엇을 불러올지 모르는 체로 살며시 말을 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눈 앞에 있는 것이 사라이기에 외면 할 수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냐고 묻는 말에 입술을 꾹 물었다. 다들 이 정도의 외로움은 지고 산다고.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저를 실컷 비웃어주고 싶었다. 이런 걸 어떻게 감당하고 살지? 아무한테나 곁에 있어달라고 빌고 싶었다. 이 곤두박질친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만. 아니, 한 시간만. 5분이라도 좋으니까.
"너는 또 아무렇지도 않지."
몸을 낮춰 다가온 해인을 보며 말했다. 목이 메어 목소리가 엉망이었다. 낯익은 웃음에도 함께 웃지 못했다. 대신 손 잡아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바닥도 없는 곳으로 계속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해인은 그 진창에서 저를 꺼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평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겠지. 근데 하필 오늘,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거잖아. 내 잘못이야?
"너는 또 날 두고 갈 거잖아."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필연적으로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결말을 알았다. 아는데, 분명히 잘 알고 있는데. 사하의 손이 작게 떨렸다.
사람의 말을 인식하고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련의 행위 자체가, 지금 주원의 뇌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슬혜는 분명 그를 거절하고 밀어내고 있었다. 허나, 언젠가 슬혜가 목소리에는 색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원은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서 색이 아닌, 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귀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간지러운 달콤함. 그 감각은 말의 의미조차도 마비시키고, 변색시키고, 아예 뭉개트려 그저 주원을 부르는, 주인을 부르는 소동물의 울음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허락하는 거리를 넘어, 데드라인을 넘으려고 한 그 순간.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이성이 아닌 주원의 슬혜를 향한 신념과 같은 어떠한 부분이 그의 본능으로 녹아내릴대로 녹아내린 뇌에 찬물을 끼얹었다.
만약 여기서 참지 못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모른다. 그만의 방식으로 슬혜를 먹어치우려 했을지도. 그녀가 케이크와 겹쳐보이는 것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보다 더 큰 것. 스스로 바뀌길 결심했던 이유. 그것과 관련된 것이 마음 속에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럼 남들 없는 곳으로, 가자."
주원은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날카롭고 목에서 그렁거리는 늑대와도 같은 목소리르 최대한 억누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일으키려 했다. 무엇보다 자신 말고 다른 늑대도 이 냄새를 맡는다면, 슬혜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을테니까.
패치, 패치... 패치를 붙였던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분명 아침에 붙였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이내 모두 잊었다. 지금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불쾌함이 그를 감싸고 있다는 것. 그걸 떨쳐버리려 체육관에서 샌드백만 몇백번을 두들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있었다. 이건 그딴 운동으로는 간단하게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결국에 그것은 시답잖은 체력 낭비였을 뿐이라는걸.
하지만 또한, 이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기에 기분이 그나마 조금 나아진 틈을 타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났다. 평소라몀 초콜릿 냄새 정도야 평범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 ...... "
무언가 더 생각하기도 전, 삽시간에 향기가 가까워졌고, 그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옷자락이 붙들렸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저항하려는듯, 천천히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진한 향을 내뿜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잘 알고있는 사람이었다. 평소 팔을 물어도 괜찮냐며 장난치는 친구였다. 금아랑. 그의 목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확인하고서 그의 마음은 잠시동안 혼란에 빠졌다. '왜 네가 여기있어, 왜 그런 향이 나는거야, 얼른 다른데로 가...' 여러가지 생각이 어우러졌다. 그것은 이성이라고 할법한, 하지만 제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엔 너무 작은, 그런 생각이었다...
헉 저도 늦게 봤다... 슬혜주..... ㅠㅠㅠㅠㅠㅠ 괜찮더라도 내일 꼭 병원 가시기...
그리고 연호주... ㅇ<-< 이걸 보고 입맛까지 바꿔버리는 미미라고 하는 거예요... ㅇ<-< 큐아악... 모두가 치명적임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금아랑만이 안치명해서 죄송스러워졌다 8^8 저야말로 입맛에 맞게 써드릴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저 답레 어케 쓰지... ((힘내자))
산들고에서 제일 조그맣고 하찮을 늑대가 거기 쪼그려앉아 있었다. 반바지에 샌들에 커다란 티셔츠 차림. 채 신경써서 입지도 못하고, 어디론가 급하게 가기 위해 차려입은 옷차림을 하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고, 코 밑으로 그려지는 검붉은 선을 손으로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로 사라는 코피를 뚝뚝 흘리며 멍하니 시아를 주시하고 섰다.
사라가 하지 않을 법한 흐리멍텅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은 그러나 시아가 기억하고 있는 사라가 맞았다. 사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가누지 못한 고개가 비스듬히 똑 떨어지다시피 기울어졌다. 피가 흘러나오던 조그만 콧구멍이 벌름이는 게 보였다. 사라는 홀린 듯이 시아에게 두어 발짝 다가왔다.
그러나 시아의 손이 사라에게 툭 닿을 때, 사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초점을 되찾았다.
"......"
떨리는 눈으로 시아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사라는, 어깨에 올려진 시아의 손을 꾹 밀어냈다. 아니, 시아의 손목에 손을 얹었다고 하는 게 말이 되겠다. 그것은 분명히 시아의 팔목을 밀어내고는 있었지만 그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냥 손을 팔목에 얹은 것과 별다르지 않았으니까.
"시아야."
사라는 시아를 알아본 것 같다.
"떨어져줘. 어서... 네가, 네가 떨어져줘야 해..."
어딘가를 크게 다친 늑대가 낑낑대는 것처럼 애처롭게 앓는 소리가 사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달이 가득 차오른 밤. 착란의 시간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아무리 쉬어도 불편함이 가시질 않는 마음에 가슴 위에 손을 올려보지만, 닿은 자리는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고. 손가락 사이에 묶인 가엾은 펜은 우지끈 부러져 교실 바닥 위로 추락한다.
거울에 비친 소년의 모습은 바보같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둥근 패치가 하나 둘 셋. 급하게 붙인 티가 역력했지만 창가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은 거짓말처럼 소년의 형태를 잠겨왔다. 이제 떠날 시간이야. 어두운 승강장 위에 홀로 서있던 우동은 고요한 경적소리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너는 아마 무언가에 잔뜩 취한 얼굴을 하고 있을거야.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삐그덕거리는 걸음은 여전했고, 야경에 비친 눈동자는 빛을 머금어 반짝였다. 그렇듯 밤하늘에는 달빛이 가득했지만, 소년의 밤하늘에는 별도 달도 사라져 어두운 밤길 하나만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서 있었다. 안녕.
"상상친구."
서로는 쌀쌀한 땅거미 너머로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는 미소가 피어오른다. 만월이 피어오르면 마주치는 얼굴, 짧지만 강렬했기에 쉽게 잊지 않았다.
"졸업은 아직이야?"
그때의 작은 이야기는 닿은적 없던 두 이름을 연결해주었다. 가깝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사이는 되지 못했지만, 서로는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동의 얼굴에는 너무도 당당하게 감추고 있던 패가 드러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