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쉬는 날이기도 하다. 신도 일요일은 쉬었다는데 나도 일요일 하루쯤은 쉬어도 되잖아. 학교 가느라, 알바 가느라 정신없었던 일주일은 이렇게 고요한 휴일로 마무리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께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는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곤 한다. 공부도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책상에 가서 앉는 것은 좀 더 대단한 결심을 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누워있으면 잠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 나는 어느새 얕은 잠에 들어버렸다.
[안녕! 내 이름은 강해인이야. 너 이름은 뭐야?] [피자! 완전 맛있어요!!] [엄마 저 오늘 잘했어요? 헤헤.]
죽을 때도 안됐는데 어릴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나름 행복하게 지냈고 먹고싶은 것은 마음껏 먹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가끔 먹는 피자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꿈은 대부분-
[요 꼬맹이가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네.] [저기, 저기 저 남자애 잡아!] [해인아, 진짜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니까, 응?]
눈이 번쩍 뜨인다. 어제도 그렇고 계속 비슷한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최근에 말을 너무 많이 한걸까. 조절할 수 없는 재능이라는 것은 족쇄나 마찬가지다. 이런 재능을 갖지 못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자를 마냥 부러워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피로는 쉽사리 나가 떨어질 생각이 없는지 내 눈꺼풀을 살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선잠이 아니라, 깊고도 깊은 잠에.
"아..하늘? 조..좋은 이름이네..! 2학년 1반이면 내 반이랑 반대쪽에 있는 반이고.."
홍현도 말을 어렵사리 놓으며 내심 테스트를 받길 바라며 기대했다. 그리고 탁자로 다가가 앉으며 테스트에 응하겠다는 하늘의 대답을 듣자 홍현의 얼굴은 밝아졌다.
홍현은 마치 점프라도 뛰고 싶은 기분이었다. 홍현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종합 비타민제를 만들고 맛을 보게 했지만 그건 다 합쳐서 10명도 안되는 부원들과 친구 몇명에게 권해본게 전부였고,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집하기에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홍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홍현은 빠르게 컵을 꺼낸 뒤 물을 따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내..내가 직접 만든거야. 아직 내가 만드는건 기초 수준에 불과하지만 어렵긴 정말 어렵더라고..! 하지만 만들다 보면 너..너무 재밌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아도 좋아!"
그렇게 잠깐 미소를 짓던 홍현은 정신을 차리고 한쪽 구석에 있던 평가지와 펜을 가지러가며 손떨림에 대한 답을 했다.
"그..그리고 부작용은 확실히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거야..! 우리도 가루로 된 약재들을 혼합하다 보니 손떨림 만큼 치명적인게 어..없거든!"
빈 평가지를 찾던 홍현은 안심을 주기 위해 잠시 뒤돌아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 후 펜과 함께 빈 평가지를 가져왔다. 평가지는 상당히 간결했다. 이름과 반/번호를 쓰는 칸, 그리고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다섯가지 맛이 어느정도인지를 5단계로 나타내는 선택지가 전부였다.
"이건 효과보단 맛을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조..종합영양제이자 발포형 알약을 겸하고 있으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홍현은 기쁨에 살짝 흥분한 것 같았다. 종합영양제를 가지러 가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홍현은 진정하기로 했다. 밀폐된 원형 플라스틱 통을 연 홍현은 그 안에서 쏟아지지 않게 조심히 기울여 종합영양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주위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히 분홍색 종합영양제를 컵에 떨어뜨렸다. 종합영양제는 빠르게 녹아 물에 뒤섞였다. 종합영양제가 섞인 물은 마치 딸기우유에 물을 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종합영양제의 맛은 적당히 달지만 쓴맛도 느껴지고 신맛도 뒤섞인 맛이에요. 거기에 특이한 짠맛도 조금 느껴지죠.
피아노를 칠 때의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그렇게 느끼며 그는 이내 안심하며 그녀가 종합영양제를 주는 것을 기다렸다. 알약일까. 아니면 액체일까. 그렇게 괜히 기대를 하는 와중, 평가지는 물론이며 곧 딸기우유같은 느낌의 액체를 가져오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괜히 신기하다는 듯이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녹여서 먹는거구나. 딸기우유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어디 한 번."
컵을 받아든 그는 잠시 그 색을 바라보고 향을 맡아보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컵에 입을 댔고 이내 꿀꺽꿀꺽 원샷을 하듯이 그 내용물을 마셨다. 이내 아주 잠깐 멈칫하면서 그는 잠시 목운동을 멈췄다. 이게 무슨 맛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났다. 단 것 같기도 하고 쓴 맛에 신 맛이 합쳐진 것 같기도 한데, 그 와중에 짠 맛. 이거 먹는 거 맞는거지? 그런 불안함이 눈동자에 그대로 녹아내렸고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래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긴 한데 보통 이렇게 복합적인 느낌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지만 일단 시음을 하기로 했으니 그는 어떻게든 목을 움직여 천천히 마시고 마침내 그 내용물을 비웠다.
"어, 엄청 개성적인 맛이네."
효과보단 맛을 평가하는 거라고 했으니, 일단 맛을 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약 임상시험이 다 이런 것일까. 오늘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하며 그는 평가지에 천천히 내용을 기술했다.
단맛이 제일 크게. 하지만 쓴 맛과 신 맛이 그보다 조금 아래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느껴지듯이, 거기다가 짠 맛은 조금 더 적게. 감칠맛 부분은 조금 애매해다고 느끼며 평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는 평가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일단 맛 말인데, 하나로 통일시켜보는게 낫지 않을까?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만, 이건...맛이 응. 너무 개성적이야. 그러니까 뭔가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통일된 멜로디가 아니라 조금 흐트러진 악단 느낌이라고 해야좋을까. 표현이 어렵네. 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그건 확실해."
홍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종합영양제를 마시는 하늘을 바라봤다. 물론 자신도 마셔봤고 다른 사람들도 마셔봐서 맛도 알고 있었고 반응을 대략적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딱 두 가지, 제발 중간에 뱉거나 버리는 일만 생기지 않길 바랐다.
하늘이 다 마시자 긴장한 홍현의 표정은 안심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중간에 멈췄다는 게 걱정스럽긴 했지만 약이 맛있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지의 작성이 끝난 하늘이 내밀은 평가지를 받으며 평가를 들은 홍현은 속으로 개선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금 흐트러진 악단이라.. 재.. 재밌는 비유인데?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고 평가지를 잠시 읽던 홍현은 자신의 뒤에 평가지를 잠시 놔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노트를 들고 앞에 놔둔 뒤 개선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홍현은 고개를 숙이고 개선사항을 적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에게 질문했다.
"그.. 그런데 아까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음악부.. 인 건가?"
"그것만 개선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물론 영양적 효과는 내가 잘 모르고, 영양제는 만화가 아니면 먹는다고 바로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
보통은 오랫동안 꾸준히 먹으면서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영양제니, 그것에 대한 평가는 그로서는 하기 어려웠다. 물론 맛만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너무 말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그 정도로 말을 마치며 자신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음악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난 동아리는 하지 않아. 여러모로 나 때문에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대회나 콩쿨이 있으면 동아리고 뭐고, 정말 피아노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활동도 잘 못 할 것 같고."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 하나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콩쿨 연습을 음악부 안에서 하면, 피아노를 혼자서 계속 독점해야하고 다른 이들과 같이 연습하기보단 개인 레슨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동아리에서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 각오하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긴 했는지 그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가끔 음악실에서 혼자 칠 때는 있어. 지금 이렇게 혼자서 약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위에 오르기도 힘들고."
양과 늑대. 어쩔 수 없는 격차를 떠올리면서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연습하고, 좀 더 시간을 늘려서 열정을 쏟아부으면 될 일이라고 스스로 마무리지으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그렇다면 음악부는 아니었던 거구나.. 피아노 연주... 지금은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대회나 콩쿠르에도 나갈 정도라면 나중에 한번 꼭 들어보고 싶네..!"
잠시 하늘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상상하던 홍현은 장차 무엇이 꿈이냐는 질문을 받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꿈은... 약사는 아니야. 약사가 아니라 제약회사에 들어가 신약을 개발하는 그런 연구원이 되어보고 싶어."
약사도, 한때 생각했던 꿈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약을 제조해 처방하는 것보다 직접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연구원을 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소극적인 모습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성격 때문에 약사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개선사항의 작성까지 완전히 끝마친 홍현은 테스트에 응해준 하늘에게 무언가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캐러멜도 생각나 잠시 자신의 가방으로 가 뒤져 딸기맛 캐러멜을 찾아내 조심스레 전달하며 말했다.
"만약 들으러 온다면 사양하진 않을게. 물론 내가 학교에서 연주하는 일은 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연주하거든. 음악실에서."
물론 정말로 그녀에게 연주를 들려줄 일이 있을지는 하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온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말로 좋은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건 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는만큼,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연주를 하고 싶었으니까. 설사 그게 이뤄지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라. 와. 공부 되게 잘해야 할 것 같네. 하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만들 정도면 좋은 결과 있지 않겠어? 그럼 나중에 잘 되면 이것을 인연으로, 약을 만들면 한번씩 사볼게. 도움 되는 약이라면 주변에 홍보도 하고 말이야."
좋아하는 것을 쫓는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도 정말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괜히 엄지를 앞으로 내밀다가 그녀가 내미는 딸기맛 커러멜을 받으면서 그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물론 커러멜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덕분에 좋은 체험도 했는걸. 이런 작은 자극 등이 음악적 감각을 깨우기 좋기도 하고... 언제 이런 체험을 또 해보겠어? 나야말로 고마워!! 아. 그러면 슬슬 가볼게. 열심히 약 만드는 것 같은데 너무 방해되면 미안하기도 하고, 동아리 외부 사람이 동아리 실에 오래 있기도 좀 그렇잖아?"
너무 맛없는 것만 아니면 별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다음에 또 테스트가 필요하면 2학년 1반으로 와서 찾아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나설 채비를 했다.
/다음으로 막레를 가면 될 것 같기도 하고..이걸로 막레를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편하낻로 해줘도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