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똑똑한 사람은 최악의 경우부터 상정하곤 한다. 그래서 사라의 입에도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건강에 발목 잡히면 어쩌려구,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쳐올라왔다. 그러나 사라가 그걸 입밖으로 내뱉는 일은 없었다. 어설프게 똑똑한 정도에서 차스푼 한 숟갈쯤 덜 똑똑해서 그런 건지, 한 숟갈쯤 더 똑똑해서 그런 건지. 사라는 해인을 조금 걱정되는 눈길로 올려보다가
"푼돈 벌려다 병원비 나가지 않게 조심하셔."
하고 말할 뿐이었다. ...성공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해야 할 텐데.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게 해인을 몰아붙이는 현재가 원망스러워, 사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슴을 퍽퍽 치는 해인의 반응에 헤헤헤 하고 웃어버린 것은 입술 깨문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리라.
"그런가? 후헤헤헤헤."
꿀밤 마려운 웃음을 웃어보인 사라는, 해인의 질문에 해인에게로 빙글 돌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바람에 브리프케이스 가방이 한번 흔들렸다.
복불복이라 하니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액젓이 생각났다. 그걸 보며 다들 비염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리 그래도 냄새로 알지 않나. 사실 안 해봐서 모른다. 그리고 설마 식당 메뉴 복불복이 그 정도 수준이겠어. 기껏해봐야 밥 남기는 수준에서 그칠 게 분명했다.
"으음.."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사하를 바라보았다.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죠-'하는 것에 결국 손을 풀어버렸다. 애초에 그렇게 화난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장난에 가까웠다. 기대하던 반응은 모두 봤으니까. 아마 그냥 사과가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줄게."
웃으며 말했다. 다 먹은 메로나 막대 끝을 질겅거렸다.
"시간 빨리 가네.."
시계 한번 보고 머리 긁적였다. 슬슬 집에 가볼 시간이었다. 더 늦으면 누가 잔소리해서 말이야, 하고 덧붙이며 일어섰다.
"내일 보자, 떡볶이 맛있게 먹었어."
막상 작별 인사를 해놓고선, 아마 사하가 가는 방향 쪽으로 조금이나마 걸으면서 나머지 대화를 나눌 게 분명했다. 횡단보도 같은 것에 다다라서야 제 집 방향으로 뛰어가겠지. 저도 뻔히 알면서, 괜히 하는 인사였다.
역시 잠깐 자리를 비우고 오니 다시 화력이 살아났어.. 🔥🔥 제가 아는 이벤트는 소원 이벤트밖에 없었는데 차근차근 준비하고 계셨다니. 우리 캡틴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 (격한 감동) 돌아온 주원주, 민규주 선하주 다들 반가워요 🤗 픽크루도 너무 예쁘고 맛있는 진단까지 기쁜 마음으로 덥썩! 🥰
이제 천천히 일상을 구해보려고 해요. 손이 비거나 일상 고프신분 계시다면 저와 함께 손뼉 맞춰봐요 XD
>>37-38 민규주 사라주, 손이 부족하시다니 아쉽게 됐네요. 다음에 꼭꼭 뵙도록 해요 😥 저도 우리 산들고 애기들 너무 아끼고 있어요 (ˊᗜˋ) >>39 물론 너무 좋아요 🥰 드디어 첫 일상이라니 ㅜㅜㅜㅜ 그것도 지구캡이랑 같이 말이에요 😉 시작하기 전에 상황이나 장소를 정해볼까요?
그래도 열심히 벌어서 한달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기왕이면 주말까지 할애해서 돈을 더 벌고 싶었지만 체력이 따러줄지도 의문이었고 그러다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질 것이 뻔했다. 돈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나 절박하게 만드는지. 지금 나도 이러한데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절박하셨을까. 그렇기에 원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존경할 수도 없었다.
" 그래 오늘은 시간도 많으니까. "
사라랑 이렇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도 오랜만이었으니까 간만에 하고싶은대로 따라가줄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뒤를 따라서 벚꽃나무로 향했디. 여러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가까이 가서 바라본 벚꽃나무는 가장 오래 되었다는 말에 걸맞게 주변 나무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위용이 남달랐다. 나는 나무 기둥에 보이는 움푹 파인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기에 소원을 적은 쪽지를 잘 접어서 넣어두고 눈을 감은채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면 쪽지가 사라진다고 하던데? 만약 제대로 하지 않으면 쪽지가 그대로 있고 다음날엔 바닥에 버려져있다고 하더라. "
3년 내낸 지겹도록 들어서 외우기 싫어도 남아있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학교라면 무조건 있는 이런 전설은 대부분은 미신이지만 놀랍게도 산들고등학교에서는 정말 이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쪽지가 사라지는 것도 특별한 현상이고. 하지만 나는 고장난 시계도 하루 2번은 맞는다고,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한다. 쪽지도 어디 바람에 날려가는게 아닐까.
" 나는 별로 빌 생각 없는데, 너는 빌고 싶으면 빌어. 그래도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쯤은 있잖아? "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 근처에 구깃구깃해진 분홍색 메모지 하나도 굴러다니고 있겠지. 남들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질러볼수도 있겠지만 소원을 비는 순간부터 괜히 기대감만 생길 것 같아서 그만둔 것이었다. 기대감이 생기면 필시 실망도 같이 따라올테니까.
바닥에 머리 꿇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보다, 단지 한마디 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에서 더 많은 슬픔이 느껴진다. 이래서 싫었다. 표정 관리를 좀 더 잘했어야 했을까. 좀 더 둔감해도 될 텐데, 선배는 너무 민감해서 상처 입어버려. 설령 상대가 당신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해도, 당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해도 벌어지는 일이겠지. 아마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겠지만...
“ ...그치마안,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는 미신도 있으니까요. 바꿔 말하면 이루어진 후에는 말해도 괜찮다는 거겠죠~ ”
되도록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받았다면 그 상처가 최대한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빨리 아물기를. 바라며 아랑은 빙긋 미소 지었다.
“ ... ”
이뤄지지 않아도 슬퍼지지 않을 소원을 빌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그건 간절하지 않은 소원이 될 텐데. 어렵다아. 씁쓸함이 배어 나오는 미소란 걸 알지만, 상처 준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에 도리어 섣불리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은 어렵고... 슬픈 일이다.
주원이 소원을 써내려도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도리상 눈을 감았다. 의외로 빨리 결정 되었다며, 너도 다 쓰면 함께 내러 가지 않겠냐고 물을 때까지.
“ 그렇게 해요~ ”
평소처럼 방긋 웃으며 펜과 메모지를 받아들고 뒤돌아선 주원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 소원... 뭐라고 쓰지. 가장 간절한 소원은 따로 있지만, 쉽게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이기에 올해도 쓰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2-1반의 귀염둥이가 빌만한 적당히 깜찍한 소원을 썼겠지만.
아마 올해의 소원은 적당히 깜찍한 소원은 될 수 없겠다. 귀여운 메모지에 또박또박 소원을 적어 넣었다. 한 번, 또 한 번, 그러고도 또 접을 수 있었다면. 다시 한 번 접었을 메모지에 써진 글자들은 당분간은 벚나무만 알 것이다. 주머니에 넣은 후에.
“선배애. 가요~! ”
밝은 목소리로 주원 선배를 부르고, 벚나무를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염원을 담아 정석대로 소원을 빌었겠지.
>>8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떡해... 글에서 진짜 서러움이 묻어나오는거.... 🤣 >>87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ω°̥̥̥̥̥̥̥̥`) 우동이뿐만 아니라 민규도, 다른 아이들도 복잡한 길 사이를 하나쯤은 걷고 있겠죠? 청춘물이라는 밝은 분위기속에 가려서 매번 그런 모습을 찾을순 없겠지만요. 좋은 시 선물해주셔서 고마워요 민규주 😊
착하다는 말에 그제서야 선하는 기쁜 듯 웃었다. 마치 그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인양 아이처럼 천진한 얼굴이었다. "고마워." 작지만 분명한 의사표현. 그건 분명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목적를 이룬 소녀는 금방 조용해졌다. 아까보다는 성의 있는 반응이 돌아온다. 경청하는 듯 눈을 말갛게 뜨고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는 빈도가 높아질거라는 소리다.
"그래, 거짓말은 나쁘지."
순순히 수긍해준다. 자신은 정작 때에 따라 적절히 거짓말을 애용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굳이 입밖에 그 사실을 내놓을 정도로 사교성이 없진 않았다. 당장 떠오르는 감상도 안 들키면 그만 아닌가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원하는 걸 가지고 있지 않다는 오해를 굳이 풀어주지 않았다. 다만 주원을 스치는 시선에 웃음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칭찬 받고 인정받는 것은 날적에 아로새겨진 각인과도 같아서, 그 별 것 아닌 몇마디 말에 차가운 집착이 느껴질 정도였다.
"으음, 늑대였구나."
늑대라는 말에 선하가 급격히 성의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양들 앞에서 유독 내숭부리는 기질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뜸 잘 대화하고 있는 늑대한테 시비를 거는 일은 결코 없었다. 물론 가끔, 아주 이따금씩 그런 충동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럼 넌 곧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신 선하가 집중한 건 그의 능력과 성향이다. 선하는 솔직해지기로 한다. 괜히 속이기 어렵고 칭찬도 박한 사람에게 잘보이려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짓말이 더 좋거든." 넌지시 중얼거린다. 어떻게든 웃음을 지어내던 안면근육이 탄력감을 잃는다. 미소가 거두어지니 한층 무심해진 얼굴이 보인다.
"너, 가만보니 못됐네. 자기만족적인 선행에는 내가 그다지도 중요하지 않잖니. 네 기분을 위해 날 이용했다면 적어도 티는 내지 말았어야지. 나 역시 이렇게 노력했는데 말이야. 안타까운 일이야."
모두에게 주어지는 친절에는 감흥을 잃고 만다. 특별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파문 없이 고요한 얼굴이 맥없이 기울어진다. 동시에 기민하게 주원을 훑어본다. 아, 기분 나쁘게 하고 싶다. 저열하고 원초적인 욕망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따뜻한 손이 제 손 위로 겹쳐졌으나 선하의 손은 여전히 차갑기 그지 없었다. 비를 흠뻑 맞고 내려간 체온이 여실히 느껴진다.
"터그 놀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지? 짐승이 되게?"
그건 선하의 주종목이었다. 따라 미소지은 선하가 손에 힘을 준다. 헛으로 수영을 한 것은 아닌지 약한 힘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우산을 미는 척하더니 갑자기 제게 우산을 끌었다. 깨져버린 힘의 균형에 차칫하면 누구 하나 넘어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선하는 그런 걸 신경쓸 정도의 문명인은 못된다. 확실한 건 우산이 마구 흔들리며 둘 다 비를 고스란히 맞게 될것이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웃는다.
사라는 입을 뾰족거렸다. 사라의 아버지는 생일선물이나 이런저런 축일을 빌미삼아 사라에게 선물을 주는 일은 잦았지만, 오히려 사라에게 주는 용돈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돈 귀한 걸 가르쳐주는 것이라나. 그렇지만 사라는 자기 처지가 해인에 비하면 천하에 복에 겨운 것을 알았기에 그 이상 투덜대진 않았다.
"아하, 그런 식?"
하며 사라는 거대한 나무를 한번 훑어보았다. 해인은 세 번째로 접하는 일이고, 사라는 두 번째로 접하는 일이다. 사라가 세 번째로 이걸 접할 때는 이 고목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의 기억에도 남아있을까?
사라는 해인보다도 키가 한참 작은 탓에, 그것을 훑어보기 위해 해인보다 고개를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결정적으로 그 "구멍" 이라는 게 거의 자기 목 높이께쯤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사라는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으음... 하고 못마땅하게 목을 골랐다. 배사라. 산들고 숏다리 넘버원.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
"이루고 싶은 소원이라─"
사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이루어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래, 배사라라는 아이는 그랬다. 자신만만하고, 높은 콧대에 걸맞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시건방지고 줏대있는 꼬맹이. 그렇지만 겨우 늑대 한 마리의 능력으로도,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나 하나 발버둥친다고 못 이루는 것들도 있더란 말야..."
하며 사라는 팔에 걸치고 있던 브리프케이스의 지퍼를 열고, 손바닥만한 메모장과 볼펜을 꺼냈다.
"뭐,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고,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이야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따금은 바보같이 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정작 이런 말을 한 본인은 이따금이 아니라 평상시에 바보라는 점은 잠깐 외면해주자. 사라는 메모장에 뭔가를 슥슥 적어서는, 그것을 꼬깃꼬깃 접어서 북 찢고 나무에 난 옹이구멍 안에 떨어뜨렸다. 쪽지는 곧장 나무구멍 옹이 깊숙한 곳, 손 닿지 못할 곳으로 굴러떨어져내렸다. 사라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며 손을 모아서 소리없이 기도했다. 아주 타이밍좋게도, 산들바람이 불어 사라의 머리카락과 꽃잎이 흩날렸다.
"뭐 이런다고 딱히 당장 뭐가 바뀔 리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이런 것도 해볼 만하겠지."
따분하다. 지겨운 곳. 1층에 위치한 양호실 창가에는 그녀가 키우는 자잘한 식물들의 화분이 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제각각 달랐지만 그것은 그저 그녀가 기분에 따라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한들 소용없었다. 그중에서도 아끼는 것은 자그마한 선인장 화분일까. 이름은.. -그때 창밖에서 아이들의 간드러지는 웃음 소리가 흐른다. 창밖의 풍경엔 학교의 운동장이 가득 담겨있다. 그녀의 할일은 그저 게임 속 npc처럼 이곳에서 갇혀 학생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약품 등의 잡일을 처리하고. 또 퇴근 시간만을 기다린다. 학교를 벗어난 그녀에겐 자유가 있다. 창밖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시끄러웠고 또, 훈련받지 못하는 짐승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 꾸중을 먹곤 한다. 뭔 상관이래.
지루한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책이 들려있다. 커버의 색은 초록이었고, 꽂힌 책갈피는 이미 반을 갈라놓았다. 그녀는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아 그러니까 정말로 창문틈 바깥쪽에 있는 조그만 시멘트 공간 위에 걸터 앉아서. 책장을 넘겼다. 오늘의 책 제목은.. 그쪽에겐 별로 알려 주고 싶지 않으니 그 내용은 그녀만이 알겠다. 나늘, 그녀는 나른하게 뜬 눈으로 눈꺼풀을 조용히 깜박이며 시간을 죽이다 책의 내용이 절정에 다다랐을 즘에 네모난 창틀 벽에 상체를 기대고 펼쳐 놓은 책을 얼굴 위에 덮었다. 오늘은 별달리 구르는 바보 학생은 없나보군. 그녀는 위험한 창가에 여전히 걸터 앉아 얼굴은 책으로 가린 채 팔짱을 끼고 낮잠을 잘 생각인 듯했다. 이젠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을 것 같은 너무나도 익숙한 양호실의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나늘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게, 정말 되바라진 양호 선생이구나 싶은 것이다.
아무래도 사라는 나보다 키가 한참 작아서 옹이구멍이 목 부근에 위치해있었다. 뭐 쪽지 하나 넣는거니까 어려운 일은 없겠지만 순간 내가 들어줄까? 라는 장난을 치려고 말이 목구멍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가 꿀꺽, 하고 들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라한테 쪼인트를 까일만한 말이기도 하고. 키로 놀리는거 싫어하니까 오늘만 봐주자(?) 라는 생각이기도 했고.
" 항상 자신감에 넘치네. "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면서 그녀가 소원을 비는걸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오만에 가까운,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옆에서 사라를 봐온 나는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사실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고자 하는 것은 해내는 것이 배사라였으니까. 하지만 또 그녀 말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이 되어있기에 고독한 늑대는 혼자만의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 쓸쓸히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 그럼 나도 빌어볼까. "
소원은 빌지 않는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옆에서 비는걸 보고 있으니 나도 빌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로 밑져야 본전이니까 일말의 기대감 하나 없이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에 추억을 하나 더 새긴다는 생각으로 메모지를 꺼내들어 소원을 적었다. 그리고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접어서 옹이 구멍에 조심스럽게 넣고 눈을 감은채로 두 손을 모아 가볍게 소원을 빌었다. 너무 진심이 되어버리면 기대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 소원 이루어지면 좋겠네. "
이젠 정말 하교만 하면 끝이다. 소원을 빌러 오는 다른 학생들을 뒤로 하고서 나는 다시 교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얘기했다.
" 자 그럼 집에 갈까? 오랜만에 이 오빠가 데려다줘? "
어릴때 내가 막 데려다준건 아니었지만 등교도 하교도 같이 했던 날이 많다 보니까 내가 사라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일도, 그 반대의 일도 많았다. 지금에서야 바쁘니까 같이 하교하는 것도 시간이 잘 안맞지만 오랜만에 기회가 왔으니 기왕이면 예전처럼 데려다줄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원은 흰 이를 살짝 드러내며 쾌활하게 미소지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아랑이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은 것이었다.
아랑이 소원은 적는동안 주원은 담요에 앉아 나긋한하게 불어오는 봄향기에 보이지 않게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응, 괜찮아.' 그렇게 혼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되뇌었다.
아랑이 소원 작성을 끝내고 가자고 말하자 주원은 일어서서 "가자!" 하고 밝게 대답했다. 그녀의 보폭에 맞추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거대한 벚나무로 향한다.
아직 완전히 변하지 못했던 1학년. 그 때의 소원은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이었지만, 마음 속으론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이 변하기를 빌었다.
편안하게 진짜 자신을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미소지을 수 있게 된 2학년.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소원은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이었지만, 마음 속으론 타인에게 빛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빌었다.
그리고 3학년. 글쎄, 무엇을 빌까. 그에게 남은 1년의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지만, 그것은 위선적인 소원이었다. 단지 스스로를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자애를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그런 소원. 주원은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주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 따위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소원. 그저 행복과 같은 막연한 것이 아닌, 그가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누군가가 슬퍼지더라도.
누군가가 상처받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주원은 아랑이와 함께 내려다보는듯한 벚나무 아래에 서서 그 종이를 나무 기둥 틈에 넣어두고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두 눈을 감고 그다지 평소엔 기대지도 않는 신에게. 어느 신일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 벚나무의 신? 아니면 다람쥐의 신?
누구에게 비는지도 정확하지 않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다니. 편리하기도 하지. 적당하기도 하지. 하나, 그 신이 변덕쟁이 신이라면 그의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다. 모두 ~하길 따위가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타인따윈 신경쓰지 않은 이기주의의 극을 달리는 소원이었으니.
소원을 빌고난 뒤, 벚나무에서 작은 벚꽃잎 몇개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본능적으로 떨어지는 벚꽃 하나를 시선으로 쫓다보니, 그 벚꽃은 취한 것 마냥 봄바람을 타고 흔들흔들거리다 소원종이를 넣어둔 나무 기둥속으로 들어가 주원이 방금 넣어두었던 자신의 종이 위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머지.. 반달가슴곰이랑 다람쥐랑 곰 검색하다가 이거 조금 민규 생각난다.. 하는 이미지를 찾은 것입니다... :3 무해한 게 민규같아 ㅎㅁㅎ
인사해주신 분들 다들 곰마워... 하지만 아랑주는 기절잠할때까진 깨있고 싶고, 새벽에도 같이 놀고 싶은 것입니다.. ㅇ(-(
졸림이라서 레스가 잘 안 읽히는데 선하 나쁜 여자의 매력...이 이런걸까 싶고... 사라주는 저랑 마음 통했나요...?? 저 아랑이 만들고 있던 픽크루가 저거 였는데...oO 사라 귀엽다.. 이 분이 아랑이 친구시다.. (사방팔방 자랑) 양호쌤과도 일상 너무 끌리네요.. 엄청.. 귀찮게하고 싶은데 그러나 양호실에서 쫓겨날 것... 8_8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칭찬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집중하지 않을 때의 사라는 별생각 하지 않는 마음편한 꼬맹이였고, 사라는 잘난체하는 웃음을 얼굴에 함빡 걸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오는 해인의 손에 발돋움을 해서 머리를 디밀었다. 이래서야 늑대라는 이름이 웃기다. 그렇지만 웃기다고 하더라도 들어줄까? 라는 말은 안 하기를 잘했다는 것을 고지해둔다. 방금 그 정도면 쪼인트가 아니라 어디 한 군데를 와그작 물렸을 테니까.
"간단하게 타로점 보는 느낌으로 빌어보라구. 심지어 이 나무는 복채*도 안 받잖아?"
별 무게 싣지 말고, 가볍게. 내가 빌었던 것처럼. 사라는 해인이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물러서 주었다. 소원 이루어지면 좋겠네- 하는 말에,
"글쎄 소원따라 다르지."
하고, 대체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째 불신이 묻어있는 것 같은 시선으로 해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라는 닫는 것을 깜빡했던 브리프케이스를 탁 닫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너한테 득이 되는 소원이면 좀 이뤄졌으면 좋겠는데 말야."
이젠 정말 하교만 하면 끝이다. 하교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잠오는 데 도움되는 진정음료를 사주는 것을 빼면 말이다. 해인을 따라 교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사라는 아까 관뒀던 장난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 집에 가자구. 다만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는 들러주셔야겠어. 오. 빠."
사라는 짐짓 사악하고 짓궂은 미소를 얼굴에 씨익 띄웠다. 물론 편의점에서 사주게 될 것은 테아닌이 충분히 든 진정음료였지만, 편의점에 도착할 때까지는 고추튀김맛 과자나 불닭치즈맛 찰떡아이스나 계란후라이맛 감자칩 등으로 신나게 놀려먹어줄 작정이다. 얘 세상에 끔찍한 혼종이 이렇게나 많단다.
# 슬슬 일상 마무리각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마무리해주면 돼! # 다만 다음 레스가 잇기 좋은 레스라면 이어올게!
흐억... 주원주 장편 고퀼 레스와 반전 내용에 아랑주 반쯤 잠ㄲ깬취가 되어버려.... ㅇㅁㅇ ((띠용)) 일단 자고 일어나서 레스를 경건히 쓰겠ㅅ습니다... 지금 약간 졸림취와 깬취를 왔다갔다해서 안 되겟어요.... 헉... 주원주 넘 멋있다... (스포? 긁고 있는 내용에 띠용함)
>>127 그런 말 하시면 엄청 쓸데 없는 거 선물하는 민규에게 선물하는 아랑이 생각나잖아요....ㅋㅋㅋㅋㅋㅋ 아냐.. 쓸모 있는 거 선물할 거야...
>>128 (쓰담 받음) (행복한 졸림취가 되었다) 선관스레에 잇고 왔어요... 아마 12시쯤 기절할 거 같지만, 보고 오셔요... <:3
>>129 졸림취인 상태에서도 느껴져요... (두근) 근데 양한테는 착한 여자 해준다면 더 두근해버려... ㅇ.<....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레스입니다)
>>아랑주 >>138 고퀄이라니 아니에요 그냥 막 쓰고 싶은거 늘어놨을 뿐인걸.. 경건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럴 필요 없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물론 피곤하면 당연히 나중에 써줘도 되는데 <<경건히>>는 괜찮다는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몸 마음 에너지 충분할 때,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대로 써주세요! 마음 가는대로. 멋.. 없다.. 으아.. ㅇ<-< 아랑주 언제나 말을 너무 이쁘게 해줘서 마음이 벌렁벌렁해.. 저 공략하시는거죠?🥰🥰🥰
속삭이는 바람과 미소짓는 꽃,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마주쳤을법한 흔한 비유다. 흔해빠진 글토막은 그 장을 덮어내리는 순간 미련없이 곁을 떠나간다. 당연한 일이다. 보이지 않고 느낄수 없을테니.
나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초침을 주워다 엎어버렸다. 이게 벌써 몇번째인지 책상 모퉁이에 펜을 대보지만, 금세 잊었다. 의미없는 행동을 읊조리던 흔적은 이미 새카매졌다. 지우개가 까만 자리를 훑고 지나가면, 뭉친 가루는 파스스 한무리의 새가 되어 교실 천장으로 피어오른다. 조막만한 것들이 경망스러운 날갯짓을 펼쳐 창백한 손길에 붙들린 펜이며 고요함에 익숙해진 귀를 예민하게 괴롭혀온다. 물론 아는 체하려 들지 않았다. 짓궂은 공상은 금세 거짓말처럼 허공에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테니.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다른쪽에 있었다. 빈손을 옆으로 뻗자 옷깃 사이로 가려진 작은 패치가 손가락 끝에 닿는다. 때이른 반창고는 다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조심스레 떼어냈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는 펜이 머문 붉은 자국이 남았다. 시끌벅적한 세상이 다시 잠들고 고개를 돌리면, 무채색을 입힌 교실이 나를 반긴다. 가지런히 놓인 책상과 의자, 구석에는 오늘 청소 당번이 몰래 숨겨놓은 먼지덩어리가 수줍게 몸을 감추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활짝 열린 교실 문 근처에서 껍데기만 앙상한 가방을 들어올렸다. 덩그러니 놓인 책에는 필기체로 휘갈겨 적은 글씨가 수두룩했다. 고집스런 글씨들이 강한 주장을 펼치기 전에 얼른 책장을 덮어야했다.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청개구리 같은 속삭임은 나를 순식간에 잠겨온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래기 위해 가끔씩은 약이 필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주 그랬다.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양호실 문가에 닿는다.
"들어가도 될까요? 선생님.."
소극적인 손짓 다음으로 작은 목소리가 뒤따른다. 들어와도 좋다는 형식적인 대답이 들려온다면 허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설테고, 늘 그랬듯이 머뭇거리는 말투로 머리가 아프다는 둥 말을 우물대겠지. 뻔한 레파토리가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머리를 들이미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고양이 같은데. 하지만 사라도 늑대 같을때는 분명 있으니까 고양이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하자. ... 지금은 늑대 옷을 입은 고양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어보이지만. 복채를 안받으니까 소원도 랜덤으로 들어주는건가. 쪽지 중에 몇개 줏어서 이번년도엔 이거다! 싶은거지. 뭐 어찌됐던 그건 여기에 눌러앉아 사시는 신님이 결정할 일이다. 제비뽑기던 선착순이던 별로 관심은 없으니까.
" 너한테 득이 되는 소원이 아닐까? "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표정으로 말을 하고서는 교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니까 밀린 집안일을 좀 해놓고, 장이라도 봐둘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정말 사악한 기운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어, 아직도 포기 못했다 이 말이야?
" 이럴때만 오빠지 아주 그냥. 안먹어! 안먹는다고! 어제 그거 먹은 손님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 "
강렬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지고선 한입 먹어보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가는 내내 편의점에 존재하는 다양한 괴식들로 인해 고통을 받을건 교문을 막 나서고 조금을 더 걸어갔을 때의 이야기. 그래도 잠시나마 상념을 모두 잊고서 즐겁게 걸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날이다.
>>173 오자마자 바로 이렇게 질문을 던져주다니. 그렇다면 신입으로서 당당하게 답할 수밖에 없겠지! 하늘이는 그냥 평범하게 잠옷 파자마를 입고 자고 있어. 색은 푸른색 계열을 주로 하지만 하늘색만큼은 피해. 이유는 별 거 없고 어릴 때 하늘색 파자마를 입었다가 살짝 이름 관련으로 친척들에게 놀림받은 적이 있어서 그때 이후로는 하늘색 계통은 피하는 그런게 있어.
아이의 머뭇거리는 자그만 목소리가 문을 넘겨 들어온다. 그 바깥에서 대답을 기다리며 우물쭈물 기다리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녀는 따분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눈을 데구륵 굴리며 저 뻔한 질문에 구태여 입을 열어야 하는걸까 하는 꽤 사나운 생각을 하고 있다. 보아하니 대답을 계속 내주지 않거나 '아니' 같은 심술진 말을 내놓으면 금방 풀이 죽고 돌아가겠거니. 나늘은 초를 세었다. 분명 속으로 세었으니 그게 과연 몇초까지 였을지는 그녀밖에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발소리는 나지 않고, 숨죽여 있을 학생이 문 뒤에 서있는 것은 여전했다. 나늘은 그를 쫓을 생각이 없었다. 얼굴을 덮었던 두꺼운 책을 창가에 도로 내려두고 흘러 내린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붕 떠있던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변덕일 뿐이다.
"안녕, 학생."
답답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늘은 문가로 또각거리는 굽소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가 문을 열기도 전에, 그리고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하기도 전에 멋대로 문을 큰 소리가 나게 벌컥 열고서 상냥하게 휘어진 눈꼬리로 그를 다짜고짜 맞이하며 문틈에 기댄 팔꿈치를 머리 위로 들고 기대었다. 생각외로 꽤 올려다보아야 하는 점이 거슬렸지만 짜증을 낼 정도는 아니다. 나는 어른이니까.
"다치진 않았고, 마음이 아픈가?"
싱글싱글 웃어대며 여전히 우동을 안으로 들일 생각은 없는지 그 자리에서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근처에 지나가는 선생이 본다면 까무러칠 것도 같았지만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었을 테다. 나늘은 따분했으니까. 평범하고 시시한 일상은 주인공에게 걸맞지 않다. 그녀는 주인공이 될 생각도, 될 수도 없겠지만. 따분한 걸.
"들어갈까?"
들어가고 싶어? 나늘은 고개를 기울이며 팔꿈치로 옆문틈에 기대었던 곳에 어느새 손을 짚고 팔을 쭉 뻗었다. 당연한 질문을 하는 이 이상한 양호 선생을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른 곳과 다르게 양호실은 목적이 있으니 찾아오는 곳이잖아? 그러니 퀘스트가 주어져도 가뿐히 깰 줄 알아야지. 주인공이라면. (무)해한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있다.
"림보로 통과하면 특별히 들여보내 줄게."
나늘의 소문은 그래, 뻔하지만 정확했다. '또라이' 정도였을까. 나늘은 소리내어 하하, 웃으며 20cm 이상은 차이날 것 같은 키차이도 무시하고. 양호실의 입구를 가로 막은 채 팔을 뻗어 낸 조그만 공간으로 괴상한 요구나 하는 것이다. 글쎄,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앞전의 여러 복합적인 게 섞이지 않았을까? 응? 너는 어떡할거니? 별안간 이 정도는 통과해주면 좋겠네. 양호실이잖아? 그것도 내가 있는. 나늘의 얼굴에 따분함이 사라지고 서늘한 웃음꽃이 만개한다.
>>208 이렇게 빈틈을 찌르다니. 하늘이 TMI라고 한다면 대체 뭘 풀어야할까? 정말 별 거 없는 것을 꼽자면 하늘이가 타는 자전거는 붉은색이야. 자물쇠 비밀번호는 자기 생일이지! 생일을 말하면 자전거 비밀번호를 풀고 가져갈지도 모르니 공개하지 않겠다라고 막 아무말대잔치를 하고 이러는 것으로 보아 내가 잘 시간이 다가오긴 하는구나. (시선회피)
사하주 쫀밤... 쫀꿈... 해인주랑 선관... 마무리 했으니 이제 잘 수 이써... 예쁜 선관 감사합니다 ㅇ<-< 우동아 우리반 친구 들어왔대 과자 파티하자.... (아랑이 : 매점 과자 쓸어옴) (하늘이&우동이 : 도망감)
주원주... 저 오타투성이 레스를 예쁘게 보는 주원주의 마음이 더 예쁘고 따땃한 것... ㅇ<-< 지금 졸려서 못 읽은 레스도 있는 거 같아서 죄송해요... 8_8
>>173 잠옷이라면 여러개 있는데... 걍... 집에서 입는 편한 옷도 있고, 스파오? 같은데서 파는 세트 잠옷도 있고, 가운형 잠옷도 있고... 수학여행이나 어디 다같이 놀러가면 입을, 디자인 비교적 평범한 파스텔 잠옷이나 동물 잠옷도 있을 거예요... 때 되면 버리고 새로 삽니다.. <:3 내년에 키 크면 또 새로 살 거야...
주원의 이유를 납득한 착하다는 말에 그녀는 바라던 칭찬을 받은 어린아이마냥 기쁨을 순수하게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어쩌면 그녀에겐 그것이 진실인인지 거짓인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납득을 해야 했던 것은 주원의 아주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었지만. 그녀의 고맙다는 말로부턴 확실하게 감정이 느껴져왔다. 착하다고 말 해줄 이유를 물어본 것 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순수한 호의가.
거짓말은 나쁘다며 그녀는 말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주원에게는 그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감정 없는 말로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괜히 드러내진 않았다. 누구나 그런 것인걸. 거짓말이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은 관계를 위한 윤활류인 것이니까. 그 윤활류를 싫어하는 주원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어 늑대라고 짧게 고백함에도 그녀의 반응이 급격하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마 양은 아닐 것이다. 양일 경우엔 늑대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작은 동요라도 보일테니까. 늑대에 익숙한 인간. 아니면 늑대. 주원은 어렴풋이 그렇게 예상했다.
"싫어하게 된다니?"
선하의 말에 고갸를 갸웃한 주원은 이어지는 거짓말이 더 좋다는 말에 막연하게 납득했다. 이런 경우도, 흔치 않진 않다. 역시나 스스로도 거짓을 말 하더라도 그저 관계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언제나 겪는 나 자신과의 갈등. 웃음을 만들어내던 선하의 가면도 점점 흐릿해져가고 처음 그녀를 보고 느꼈던 무심한 얼굴이 드러났다.
"이용했다, 라. 그게 맞아.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해. 내가 널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사과할게."
주원은 순순히 사과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우산을 씌운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자신에겐 우산이 있고. 비를 맞고 걷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우산을 씌웠을 뿐이었다. 단순한 충동으로. 그것이 누구인진, 주원에겐 관계 없었다. 그렇다고 변덕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우산을 씌운 이상 가능한만큼 비를 피하게 하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은 지워지지 않았다.
"글쎄. 어느쪽이든. 원래부터 짐승-"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선하는 손에 힘을 넣었다. 힘에 대한 재능은 없거니와, 그것 말고도 특별하게 힘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균. 그것보다 조금 이상은 되더라도 늑대의 재능인 체력을 갖고 단련한 그녀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대비되어 있지도 않았고. 주원은 그저 그녀의 손에 잡혀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뒤늦게 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다리를 벌려 균형을 잡고 우산을 제대로 세우려고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우산은 거칠게 흔들리고 내려오는 비에 둘의 머리와 어깨는 젖어가기 시작했다.
"각오하지 않았어. 솔직히, 그냥 같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학교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다."
주원은 스스로의 생각이 짧았다고 통감하며 그녀의 상냥한 음성에 조금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기분이 풀어져? 이 우산 쓰고 갈래? 포기하길 원한다면 포기할게. 널 상처입히려는 생각은 없었어."
스스로 거짓을.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상대방은 상처 받는다. 그녀의 상냥한 음성으로부터는 작은 가시가 느껴져왔다. 주원을 향한 가시가 아닌, 선하 스스로를 향한 가시가. 주원에게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에 가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것을 통감하자 가슴이 옥죄어오고 죄책감으로 물들어간다.
"미안해."
주원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산이 잔뜩 흔들려 주원의 손 또한 젖은 탓에, 그리고 그녀의 손이 차가웠던 탓에. 열기를 품고 있던 주원의 손도 어느새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그나저나 선하 되게 매력적이다.... 진짜.... 엄청 매력적이야.... 선하주 글도 잘 쓰고 선하고 되게 매력적이고.... 대다내...😆
선하는 미간을 모으며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시선을 맞추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일련의 과정이 무척 굼떴다. 애초에 비 피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전에 말하지 않았나. 선하가 원하는 건 하찮은 말 몇마디뿐이었다고. 이미 목적을 이룬 상태에서, 굳이 화가 날 이유는 없었다. 여전히 선하가 판단하기에 주원은 선행을 하며 기뻐하는 자였다. 남 돕기를 기뻐하는 자는 남 돕기를 냉소하는 자보다 낫다. 그런 면에서 주원은 저보다 나았다. 그정도의 판단 능력은 있었다.
"왜 미안해, 주원아. 넌 잘못한 거 별로 없어. 이때는 화 내야지. 안 그래? 나만 나쁜 사람 되잖아."
말 그대로 대차게 터그 놀이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뻔뻔한 태도였다. 서로 물어뜯고 으르렁거렸지만 어디까지나 놀이라고 생각하는 늑대처럼, 선하는 딱히 상처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눈 앞의 이 늑대 친구는 정말로 괴로워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화낼 줄 모르는 것 같아서 조금 즐거워진다. 입술을 만지작거리고는 입을 벌려 웃는다. 가지런한 이와 교묘하게 숨겨진 송곳니가 드러났다. 우묵한 두 눈이 짙어진다.
"나 별로 화 안났어. 상처 입지도 않았고. 우리 오늘 처음 만났잖아? 내가 어떻게 너한테 화내겠니."
방금 우산을 이리저리 흔든 건 정말 화가 나지 않았다치더라도 아까 심술부렸던 건 전부 잊어버린 모양이다. 하하, 가볍게 웃고는 툭툭 물 묻은 것 같은 주원의 옷을 티나지 않게 털어주었다. 그래봤자 이미 젖어버린 어깨가 마를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네."
탁 소리나게 우산을 놓아준다. 평소처럼 잘 연습된 미소와 함께 선하가 앞서 나간다. 우산으로 가려진 영역을 벗어나자 비가 새차게 쏟아졌다.
결승점은 어느새 코 앞, 언제라도 자신을 앞지를 것처럼 매섭게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심장박동을 더한다. 조금만 더, 한 발자국만 더. 이제 몇 발자국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벚나무를 향해 쭉 손을 뻗었다. 손 끝이 딱딱한 나뭇결을 스치는 감각. 전력으로 달려온 몸이 반동을 이기지 못해 벚나무에 가볍게 부딪힌다. 어라, 이겼나? 아닌가? 숨이 차 머릿속이 어질어질한 감각이 어느 정도 나아졌을 때.
“ㅡ으앗, 이겼다!”
흐아~, 환호인지, 긴장이 풀리며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내며 기둥을 등지고 주저앉았다. 너무 열심히 뛰었다, 이길 줄은 몰랐네ㅡ 호야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갛게 웃으며 중얼거리는 새슬이었다. 아마 호야가 교실에 들렀다 오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졌겠네! 지인짜 빠르다, 호야. 그러고는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른다. 후, 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벚꽃향으로 폐가 채워지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신기하지? 똑같은 학교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잖아.”
숨 막히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고, 수업 중인 교실이랑은 전혀 다르지. 그래서 좋아. 조용히 흙 위로 튀어나온 뿌리 틈새로 파고들어 몸을 묻었다. 가끔 이렇게 앉아 가지를 올려다 보면, 자신이 나무와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차게 뛰던 맥박이 조용히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새슬은 흩날리는 꽃잎 따위를 가만히 눈에 담다가, 나지막히 연호를 향해 물었다.
[4명의 단톡방] A : 오늘 D방에 모여서 스마브라 대회 콜? D : ??? B : 오 콜. 내가 과자 가져감. D : ?????? C : 그럼 난 마실거 가져감. D : 아니 A : ㅇㅋㅇㅋ 그럼 내가 겜기 가져감 D : 아니 내 의사는 A : 네 의사는 중요하지 않아 친구야. D : 그치만 내 방인데... B : 우리 사이에 무슨! 넣어둬 넣어둬 D : ??? 좀 다른거 같은데? C : 친구 좋다는게 뭐냐. D : 아 쉐에에에끼들....
문이 덜컥 열리고 문지방 틈으로 팔이 걸쳐지면 억척스러운 장난기에 찰흙으로 빚어놓은듯 단단하게 굳은 표정도 조금씩 벗겨진다. 눈동자는 좌우로 빠르게 굴렀고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는 끝이 치켜올려진 바람에 마치 웃음을 참는것처럼 보였다. 그래, 적어도 여기에서 오해가 그쳤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표정이 진정되고나서 몇초동안 대답없이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서, 언제 건너올테냐고. 호선을 그린 눈꼬리가 그렇게 물어오는것 같았다. 사실 나는 선생님에 대해서 잘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그냥 머리가 아프니까 약이나 한알 타가면 그걸로 끝이었거든. 그래서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치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힘없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터져나온다. 회색빛이 전부일뿐인 세상에선 나는 한없이 작은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은 대담해진다. 가령 예를 들자면.
선생님의 짓궂은 장난에 친절히 따르는척 허리를 숙인다. 목각인형이 삐그덕거리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몸짓이다. 무료한 선생님의 작은 놀이에 떠밀려 잠시동안 장단을 맞추는 아이처럼,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의 뺨을 꼬집었다. 정말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웃는 얼굴로 선생의 뺨을 꼬집어오는 학생이라.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일수밖에 없었다. 진짜같은 감촉에 신기한듯 한번 주욱 늘리다가 손을 뗀다. 불과 선생님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피로가 잔뜩 칠해진 얼굴에 화색이 피어오른다.
"허들이 너무 낮아요 선생님."
이 모든 순간이 공상의 일부라 치부한뒤로 선생님의 반응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느긋하게 한마디를 흘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자 이제 다시 눈을 뜨면 굳게 닫힌 문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겠지. 작게 숨을 내쉬고 몇초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제자리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여전히 선생님은 제자리였다....
무언가 상황이 꼬였다는것을 직감한 것은 선생님과 시선을 마주한 직후였다. 나에게 걸어온 짓궂은 장난과 손가락 사이에 닿은 보드라운 뺨도 모두 허구가 아닌 진짜였다. 공상에서 벗어난 소년은 또다시 작은 아이가 되었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다려야했다. 아마 화를 내시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뒤에서 맹렬히 항의해보지만 딱히 신빙성은 없다. 그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연호가 그런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1밀리그램도 들지 않을테다.
아무튼 그는 중간에 교실에 들러 종이와 펜을 가져오면서 확연하게 새슬에게 뒤쳐졌다. 물건을 챙긴 뒤에 평소처럼 창문을 통해 나갔더라면 새슬을 앞지를 수도 있었겠으나, 그래서야 반칙에 불과하다. 이미 옥상에서 연호가 행동을 중단한 것으로 인해 둘 다 그런 행위는 하지 않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거기서 행동을 중단한 본인이 직접 그 규율을 어겨버려서야, 서로에게 상처밖에 안된다. 그는 둘째치더라도 새슬의 실망이 꽤나 클테다. 아무리 그가 천진난만하고 철없어보인다지만, 그의 나름대로 긍지는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테다.
" 으아아악! "
새슬의 손이 벚나무에 닿자마자 반사적으로 나온 소리였다. 아무리 긍지를 지켰고, 후회없는 싸움(달리기)였다곤 하지만 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종이만 아니었어도... 라며 안타까운듯이 중얼거리고는 새슬의 옆에 등을 대고 같이 앉았다. 그는 숨이 찬 기색은 적었다. 한두번 심호흡을 몇번 하고서 숨을 가라앉혔다.
" 다음번엔 안질거야. 네 발로 뛸거야! "
벌써부터 다음 승부를 기약하는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싶지만 졌다는게 분하긴 한 모양이다. 새슬이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그렇게 달렸다곤 해도 아직 학교 내부인데 풍경이 상당히 달라졌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다가 다시 눈을 떴다.
" 음...... 비밀! "
이라고 하면 화낼거야? 라며 장난스레 웃으며 새슬을 돌아보았다. 사실 비밀로 할 마음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입술을 장난스레 비죽거리며, 괜히 툴툴대는 체 했다. 사실 이기든, 지든, 네 발로 달리든, 한 발로 깽깽이를 하든, 냅다 구르든 상관 없는 게임이었다. 새슬에게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데에 의미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야 운이 좋아 이겼다지만, 평소에 보았던 연호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그가 진심으로 부딪혀온다면 십중팔구 지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애초부터 연호가 어느 정도의 공정함을 위해 편의를 포기하고 자신을 봐 준 것이다. 애초부터 네 발로 달리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안 된다고는 어느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렇게 분해하는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으응, 그래, 다음을 기대할게. 나도 지지 않을 거지만! 새슬이 가볍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앗, 나는 호야한테만 가르쳐 줬는데~.”
정말로? 여전히 등을 기둥에 편안히 기댄 채, 고개를 살짝만 틀어 옆에 앉은 연호를 흘깃 바라보았다. 장난기가 담긴 익숙한 웃음. 화 내면 알려주는 거야? 그럼 해 볼래. 마찬가지로 장난스레 응답하고는, 또 금새 말갛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치만 사실은 알려 줄 거지? 다 알거든~, 궁금한데. 호야 소원.
“저기에, 던져 넣고 빌면 된대.”
이렇게 손 모으고, 눈 감고. 다른 곳보다 유난히 움푹 패인 기둥면을 가리켜 보이면서, 소원을 비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던진 쪽지는 사라졌을까? 다른 아이들이 던진 쪽지는? 갑작스런 호기심에 고개를 쭉 빼어 구멍을 살펴보려 했지만 딱 거기까지. 아주 잠깐 훑어보나 싶더니, 새슬은 고개를 다시금 나무에 기대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일어서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체력 소모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니까. 묘한 나른함이 스멀거렸다.
그는 어딘가의 광고처럼 속닥속닥 새슬에게 말했다. 네발 달리기란 사실상 엄청 어렵다. 항상 두 발로만 움직이던 인간에게 갑자기 네발로 달리라고 하면 다들 스텝이 꼬이거나 이동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 야생성을 간직하고있는(...) 그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일테지.
아무튼 갑작스럽게 성사된 대결은 웃음을 불러왔다. 졌다고는 해도 그는 재밌었다. 분하긴 해도 즐거웠으면 된거다.
" 너도 거짓말. 화 안낼거면서? "
새슬과 만난 시간이 그렇게 길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는 새슬이 화내는 것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가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 태평한 얼굴에서 화낸다는 것은 정말로 생각해내기 아려운 발상이었다. 새슬이 화내면 어떻게될까. 평소에 웃고 잘해주는 사람이 화내면 엄청 무서워진다는 말처럼, 새슬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 그럼,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달성해볼까. "
그는 새슬이 가르쳐준대로 쪽지에 소원을 적고나서, 그것을 집어넣고 손을 모은채로 눈을 감았다. 혹시나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평온하게 소원을 빌고있을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는 간절한게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려고 하는것처럼, 손을 모은채로 인상을 팍 찌부려트린채 '으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루어질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 자, 다 됐다. "
그는 정말로 쪽지가 사라졌나 확인하지도 않고 다시 새슬의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 전설의 내용처럼 쪽지가 사라졌나 사라지지 않았나는 확인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사라지지 않았다면 안그런척 해도 조금 실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비는게 이 소원 전설의 중요한 점이라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간절함이 사라질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서겠지.
아무튼 그는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편안한 표정을 취했다. 잠시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가, 어느샌가 다시 평소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띄운채로 새슬을 보았다.
" 자, 그럼 목적도 달성했고, 여기서 대충 놀다가 들어갈까? 수업시간도 곧 끝날테니까. "
사실 이루어진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것을 볼 수 있을테다. 새슬은 이미 소원이 내용이 뭔지 알고있을 테다. 그가 쪽지를 쓰는 동안 눈을 아주 조금만 옆으로 돌렸어도 그가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건 8살 시절의 이야기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좋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꾸는 어린 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는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고했다. 허나 꿈을 키우는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이유를 묻자 들려오는 답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말이지. 정말로 뛰어난 실력이 없으면 사실 성공하기 힘들어. 그리고 하늘이는 양이잖니? 아마 열심히 연습해도 결국 한계를 느끼게 될거야.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천성적인 거니까 선생님으로서는 그냥 취미로 하고, 다른 것을 꿈으로 삼는건 어떨까 싶어."
그게 무슨 말인지 당시의 어린 소년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아무리 피아노를 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이 이렇게 피아노를 배우고 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혼나야 하는 것일까? 표현을 하긴 힘들었으나 어린 소년의 마음은 울적한 멜로디도 가득 차올랐다.
그것이 약 10년 전 이야기.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소년의 마음 속엔 아직 그 당시의 기억이 똑똑하게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을 걱정하고 한 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철저한 패배주의자의 발상이라는 것을. 물론 어쩔 수 없는 격차가 있다는 것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이를테면 자신이 죽어라 연습하고 노력을 해도 결국 그건 늑대의 재능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는 자연히 어릴 적의 그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긴 싫어."
절대적인 격차가 있다면 그것을 깨부숴버릴 정도로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하고 연습하면 언젠간 좁혀지지 않을까. 그것만이 그의 동앗줄이었다. 자신은 천재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좋아해서 시작했을 뿐이니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것은 뒤떨어진만큼 열심히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 앞길이 무엇이건, 나중에 후회를 하건 그저 달릴 뿐이었다.
좋아하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더 높게 서기 위해서. 절대적인 격차에 애써 눈 돌리며.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독백을 써보지만 결론은 그냥 고집쟁이에 무작정 달리고 보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아이라는 것 정도가 되겠네!
>>507 저번에 잠깐 얘기 나눈거에서 생각난건데, 슬혜는 요리부니까 해인이가 학생회 회의 같은 곳에서 먹을 간식 같은걸 부탁한다던가! 음료수 보관을 부탁한다던가 ... 하는 사이 어떨까요! 그리고 본가도 근처에 있다고 했으니 해인이 편의점에서 볼 것 같기도 하고! >:3
원래 하늘은 동아리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학창생활을 보냈으나 오늘은 예외였다. 알고 지내는 친구 중 하나가 바쁜 일이 있으니까 가방만 조금 갖다놓아달라고 했기에 그는 친구의 가방을 들고서 동아리실로 향했다. 그러니까 그 친구 동아리가.. 동아리를 하나하나 돌아보다 그가 멈춘 곳은 약학부라는 곳이었다.
"의대 가려는 애들이 모이는 곳인가. 여긴."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이런 동아리도 있다는 것에 정말 신기함을 느끼며 하늘은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노크하고 들어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동아리실의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실례합니다. 안에 있나요?"
문을 바로 열고 들어가기보다는 역시 안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일단 안에서 대답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대답이 전혀 없다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15분 정도는 기다린 후에 그렇게 행동을 할 예정일 정도로 우선 그는 안의 반응에 좀 더 집중했다.
홍현은 혼자 동아리실에서 조심스럽게 약재들을 혼합하고 있었다. 오늘 치의 동아리 실습은 이미 끝난지 오래였지만 직접 약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홍현 혼자 남아 있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다. 혼합 과정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고, 홍현은 마지막으로 저울에 정확히 재본 다른 혼합 가루를 조심스레 떠서 부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안에 누가 있는지 찾는 소리도 들렸다. 홍현은 깜짝 놀라 약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리고 놀란 자신이 가루를 엎진 않은건가 확인했다. 다행히도 가루는 멀쩡히 그 자리에 있었다. 홍현은 약 숟가락을 놓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나늘의 때 아닌 장난에 그는 웃었다. 아니, 웃은 게 맞나? 저건 비웃음에 가깝나? 키도 한참 작은 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긴 했다. 알게뭐람. 어쨌든 그녀는 선생이었으니까. 그리고 학창시절 중 난해한 선생을 보는 것도 추억 속 별미지. 어쨌든 그녀는 국가에서 인정한 어른이었기 때문에 꿇릴 게 없었다. 그녀를 가르치고 타박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학교에선. 그래서 나늘은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듯한 학생의 반응을 가늘게 휘어있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장난은 고작 몇 번으론 그치지 않았고, 그녀를 거친 학생들의 수많은 반응을 봐왔으니 뭐든 넘길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나늘은 어쨌거나 사람 좋은 눈꼬리를 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사근하게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단 사람을 홀리고 삼켜 먹어 버리는 여우나 뱀 종류에 더 가까웠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 우동의 싱거운 웃음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흐린다. 진짜 웃네. 나름 참으려곤 한 것 같은데 노력까진 아니었고, 이 정도면 대놓고겠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장단에 맞춰 줄 고민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귀여워서? 그건 좀 건방지니 아닐테고.
림보를 하랬으니 그것에 응한다면 몸을 뒤로 숙여 꽤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게다가 그 대상이 키나 덩치가 크다면 더. 그래서인지도 모르지. 순순히 장단에 맞춰주는 듯한 모습을 보며 해사하게 방긋 웃는 나늘의 얼굴은 천진해 보였다. 언뜻 비쳐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까지 더해서. 학생들은 순진하니까 이렇게 의문을 가지면서도 순순히 따라주는 모습은 꽤... 거기까지 감상했을 때 갑작스러운 낯선 촉감에 나늘의 눈이 크게 깜박였다. 그녀의 말캉한 뺨은 그의 손끝에 잡혀 있었고 잠깐 의아한 듯한 얼굴로 뭐? 입을 벌리고 고개를 얕게 갸웃거리자 그것을 주욱 늘려버리는 그가 눈앞에 있었다. 나늘은 잠깐 표정을 깜짝 찡그리며 동작을 따라가다 놓인 것에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무언가 화를 낸다기보다는 그저 말없이 깜박, 쳐다보았다. 한가지 그가 성공한 게 있다면 그녀가 팔을 뻗은 쪽의 볼을 그가 건드렸기 때문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뻗었던 팔을 거두고 훔쳐진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허들은 무너졌다. 얘 좀 봐. 보기보다 당돌하네.
"그래서 가뿐히 넘었니?"
재밌네. 다음엔 더 높이 준비할까. 당한 것에 어이가 없는지 그녀는 틈새로 실소를 흘리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냥 단순히 넘어갈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의 말대로 낮은 허들은 사라지고 없다. 어쩌면 흥미를 잃었을지도. 그의 속사정을 알 리가 만무한 그 선생은 그를 뒤로 한 채 양호실의 안쪽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차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마주했을 때 얻은 명찰의 정보를 빈칸에 대충 휘갈겨 적다, 아직까지도 밖에 덩그러니 서있는 듯한 그를 뒤돌아보며 웃음은 온데간데 없는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삐딱인다.
"계속 거기 서있을 거야?"
상관은 없지만 목소리를 소란스럽게 주고 받고 싶진 않아서. 볼펜을 입가에 툭툭 가져다대며 그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해결하길 바랬다. 또 언제 변덕을 부릴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 나늘은 얌전해 보였다. 그리고 나른하게 하품을 했던가.
"어디가 고장났니."
나늘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상냥한 것 같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 얼굴은 무해해 보였으니 다른 딱딱한 감정이 담길 틈은 없다.
다행히 안에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기에 하늘은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사람이 없다면 정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들어가거나, 혹은 가방을 이 앞에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었을테니까. 일단 안의 사람에게 용건을 말하고 들어가서 가방을 놓으면 되겠지. 계산을 마치며 하늘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어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 친구가 동아리실 안에 가방을 좀 놓아달라고 해서요. 괜찮으면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가면 안되면 가방만 가지고 안에 놓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약학부라고 하니, 어쩌면 들어가기 힘든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테면 자신 역시 피아노 연습을 할 때 누군가가 함부로 들어오는 것은 꺼렸으니까. 일단 모든 것은 안의 대답에서 이어지는 일이었으니 그는 두 걸음 정도 물러서서 문과 거리를 두었다.
"혹시 약 관련으로 뭐하는 중이라서 곤란하면, 바로 앞에 가방 놓아놓고 갈게요. 그것만 나중에 챙겨주시겠어요?"
선택지 세 개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도 크게 상관없는일인만큼, 다시 한 번 하늘은 안의 사람의 대답을 기다렸다.
가방을 놓는다는 말에 홍현은 가방을 놓는 자리 중 한곳이 비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옅은 웃음을 띠었다. 아마 실수로 여기에 놓지 않고 자신의 책가방과 함께 들고나간 모양이겠지.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할까, 홍현이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고 원래였다면 가방만 놓고 가달라고 말했겠지만 여기선 좀 달랐다. 자신과 함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약재들이 있었다. 자신의 친구와도 같은 약재들에 둘러쌓여있으니 홍현의 자신감을 끌어올려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와도 딱히 방해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들여보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생각해 보니 아까 새롭게 만들었던 종합 영양제에 대한 평가를 부탁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말에 하늘은 알겠다는 말을 하며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뒤이어 문이 열리자 보이는 짙은 남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의 모습을 하늘은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바라봤다. 하얀 가운을 입는 것으로 보아 정말 동아리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약학부의 분위기에 걸맞게 뭔가 이런저런 것이 많이 있다고 느끼며 작게 감탄하던 하늘은 일단 당장의 목적인 가방을 내려놓기 위해 근처 비어있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여기가 그 애의 자리인진 알 길이 없으나, 어디에 놓으라고는 하지 않았으니 적당히 여기에 내려놓으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하늘은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뭔가 대단하네요. 이 동아리는 들어오는거 처음인데. 아."
문뜩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뭔가 조합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도구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정확히 어떻게 쓰이고 뭐에 쓰는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오기 전 뭔가를 하던 것은 분명했기에 그는 괜히 미안함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선배인지 후배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말은 계속 높여둘게요. 참고로 전 2학년. 아무튼 뭐라도 만들고 있었나봐요? 그렇다면 그냥 놓고 가라고 해도 괜찮았을텐데. 방해했다면 미안해요."
"아..아니에요.. 가루들이 엎어지진 않았으니까요.. 지금 하던건 나중에 해도 상관 없고요. 근데 그..그쪽도 2학년이었어요? 저..저도 2학년인데.."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홍현이지만 다시 좀 떨리는 것 같았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동아리실에 단 두사람만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홍현은 급하게 자신의 자리 옆에도 놓여있던 강정제를 따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빌었던 소원이 떠오르자 너무 강장제와 딸기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좀만 보류하기로 했다. 동아리실로 들어온 진한 갈색머리의 남학생이 제자리에 가방을 놓은걸 확인한 홍현은 어색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이렇게 만난 김에 통성명이라도 할까요? 전 야..양홍현이라고 해요. 2학년 3반에 다..다니고 있고요."
홍현은 어렵사리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자신이 약품을 조합하던 탁자 앞에 비어있는 탁자를 조심스레 가리키며 말했다.
"저..근데 혹..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저기 앉아서 테..테스트를 좀 해줄 수 있을까요? 물론 위험한 임상실험을 부탁드리는건 아..아니에요! 그...그냥 제가 최근에 만든 종합영양제를 먹어보기만 하면 되거든요..!"
"아. 그쪽도 2학년이었구나. 아무튼 엎어지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다행이네. 뭔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들어오거나 하면 되게 신경쓰이고 그렇잖아? 나도 그럴 때가 있거든."
상대가 2학년이라는 말에 편하게 말을 아래로 내리면서 그는 조금 더 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선배나 후배가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같은 시기에 학교에 들어온 동갑이 제일 편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만 상대는 아닌 것일까. 어색해하는 분위기도 그렇고 긴장하는 듯한 표정도 그렇고, 오래 있으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결론을 내리며 문 쪽을 힐끗 바라봤다. 어차피 가방을 갖다줬으니 굳이 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허나 곧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고 자신 역시 통성명을 했다.
"2학년 1반인 강하늘이라고 해. 순수 우리말인 그 하늘. 동갑이니까 편하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테스트?"
그녀가 가리키는 탁자를 바라보고 테스트라는 말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곧 탁자로 다가간 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종합영양제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으니까. 허나 한가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은 있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 정도라면 괜찮긴 한데, 혹시 손떨림이나 그런 부작용이 있는건 아니지? 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어서 손이 떨리거나 감각에 문제가 생기면 조금 곤란하거든. 물론 종합영양제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런데 직접 만든거야? 와. 대단하네. 약 만드는 거 되게 어렵지 않아? 되게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아는데."
오늘은 일요일.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쉬는 날이기도 하다. 신도 일요일은 쉬었다는데 나도 일요일 하루쯤은 쉬어도 되잖아. 학교 가느라, 알바 가느라 정신없었던 일주일은 이렇게 고요한 휴일로 마무리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께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는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곤 한다. 공부도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책상에 가서 앉는 것은 좀 더 대단한 결심을 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누워있으면 잠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 나는 어느새 얕은 잠에 들어버렸다.
[안녕! 내 이름은 강해인이야. 너 이름은 뭐야?] [피자! 완전 맛있어요!!] [엄마 저 오늘 잘했어요? 헤헤.]
죽을 때도 안됐는데 어릴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나름 행복하게 지냈고 먹고싶은 것은 마음껏 먹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가끔 먹는 피자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꿈은 대부분-
[요 꼬맹이가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네.] [저기, 저기 저 남자애 잡아!] [해인아, 진짜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니까, 응?]
눈이 번쩍 뜨인다. 어제도 그렇고 계속 비슷한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최근에 말을 너무 많이 한걸까. 조절할 수 없는 재능이라는 것은 족쇄나 마찬가지다. 이런 재능을 갖지 못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자를 마냥 부러워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피로는 쉽사리 나가 떨어질 생각이 없는지 내 눈꺼풀을 살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선잠이 아니라, 깊고도 깊은 잠에.
"아..하늘? 조..좋은 이름이네..! 2학년 1반이면 내 반이랑 반대쪽에 있는 반이고.."
홍현도 말을 어렵사리 놓으며 내심 테스트를 받길 바라며 기대했다. 그리고 탁자로 다가가 앉으며 테스트에 응하겠다는 하늘의 대답을 듣자 홍현의 얼굴은 밝아졌다.
홍현은 마치 점프라도 뛰고 싶은 기분이었다. 홍현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종합 비타민제를 만들고 맛을 보게 했지만 그건 다 합쳐서 10명도 안되는 부원들과 친구 몇명에게 권해본게 전부였고,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집하기에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홍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홍현은 빠르게 컵을 꺼낸 뒤 물을 따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내..내가 직접 만든거야. 아직 내가 만드는건 기초 수준에 불과하지만 어렵긴 정말 어렵더라고..! 하지만 만들다 보면 너..너무 재밌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아도 좋아!"
그렇게 잠깐 미소를 짓던 홍현은 정신을 차리고 한쪽 구석에 있던 평가지와 펜을 가지러가며 손떨림에 대한 답을 했다.
"그..그리고 부작용은 확실히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거야..! 우리도 가루로 된 약재들을 혼합하다 보니 손떨림 만큼 치명적인게 어..없거든!"
빈 평가지를 찾던 홍현은 안심을 주기 위해 잠시 뒤돌아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 후 펜과 함께 빈 평가지를 가져왔다. 평가지는 상당히 간결했다. 이름과 반/번호를 쓰는 칸, 그리고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다섯가지 맛이 어느정도인지를 5단계로 나타내는 선택지가 전부였다.
"이건 효과보단 맛을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조..종합영양제이자 발포형 알약을 겸하고 있으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홍현은 기쁨에 살짝 흥분한 것 같았다. 종합영양제를 가지러 가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홍현은 진정하기로 했다. 밀폐된 원형 플라스틱 통을 연 홍현은 그 안에서 쏟아지지 않게 조심히 기울여 종합영양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주위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히 분홍색 종합영양제를 컵에 떨어뜨렸다. 종합영양제는 빠르게 녹아 물에 뒤섞였다. 종합영양제가 섞인 물은 마치 딸기우유에 물을 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종합영양제의 맛은 적당히 달지만 쓴맛도 느껴지고 신맛도 뒤섞인 맛이에요. 거기에 특이한 짠맛도 조금 느껴지죠.
피아노를 칠 때의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그렇게 느끼며 그는 이내 안심하며 그녀가 종합영양제를 주는 것을 기다렸다. 알약일까. 아니면 액체일까. 그렇게 괜히 기대를 하는 와중, 평가지는 물론이며 곧 딸기우유같은 느낌의 액체를 가져오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괜히 신기하다는 듯이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녹여서 먹는거구나. 딸기우유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어디 한 번."
컵을 받아든 그는 잠시 그 색을 바라보고 향을 맡아보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컵에 입을 댔고 이내 꿀꺽꿀꺽 원샷을 하듯이 그 내용물을 마셨다. 이내 아주 잠깐 멈칫하면서 그는 잠시 목운동을 멈췄다. 이게 무슨 맛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났다. 단 것 같기도 하고 쓴 맛에 신 맛이 합쳐진 것 같기도 한데, 그 와중에 짠 맛. 이거 먹는 거 맞는거지? 그런 불안함이 눈동자에 그대로 녹아내렸고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래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긴 한데 보통 이렇게 복합적인 느낌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지만 일단 시음을 하기로 했으니 그는 어떻게든 목을 움직여 천천히 마시고 마침내 그 내용물을 비웠다.
"어, 엄청 개성적인 맛이네."
효과보단 맛을 평가하는 거라고 했으니, 일단 맛을 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약 임상시험이 다 이런 것일까. 오늘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하며 그는 평가지에 천천히 내용을 기술했다.
단맛이 제일 크게. 하지만 쓴 맛과 신 맛이 그보다 조금 아래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느껴지듯이, 거기다가 짠 맛은 조금 더 적게. 감칠맛 부분은 조금 애매해다고 느끼며 평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는 평가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일단 맛 말인데, 하나로 통일시켜보는게 낫지 않을까?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만, 이건...맛이 응. 너무 개성적이야. 그러니까 뭔가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통일된 멜로디가 아니라 조금 흐트러진 악단 느낌이라고 해야좋을까. 표현이 어렵네. 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그건 확실해."
홍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종합영양제를 마시는 하늘을 바라봤다. 물론 자신도 마셔봤고 다른 사람들도 마셔봐서 맛도 알고 있었고 반응을 대략적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딱 두 가지, 제발 중간에 뱉거나 버리는 일만 생기지 않길 바랐다.
하늘이 다 마시자 긴장한 홍현의 표정은 안심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중간에 멈췄다는 게 걱정스럽긴 했지만 약이 맛있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지의 작성이 끝난 하늘이 내밀은 평가지를 받으며 평가를 들은 홍현은 속으로 개선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금 흐트러진 악단이라.. 재.. 재밌는 비유인데?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고 평가지를 잠시 읽던 홍현은 자신의 뒤에 평가지를 잠시 놔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노트를 들고 앞에 놔둔 뒤 개선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홍현은 고개를 숙이고 개선사항을 적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에게 질문했다.
"그.. 그런데 아까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음악부.. 인 건가?"
"그것만 개선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물론 영양적 효과는 내가 잘 모르고, 영양제는 만화가 아니면 먹는다고 바로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
보통은 오랫동안 꾸준히 먹으면서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영양제니, 그것에 대한 평가는 그로서는 하기 어려웠다. 물론 맛만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너무 말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그 정도로 말을 마치며 자신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음악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난 동아리는 하지 않아. 여러모로 나 때문에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대회나 콩쿨이 있으면 동아리고 뭐고, 정말 피아노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활동도 잘 못 할 것 같고."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 하나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콩쿨 연습을 음악부 안에서 하면, 피아노를 혼자서 계속 독점해야하고 다른 이들과 같이 연습하기보단 개인 레슨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동아리에서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 각오하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긴 했는지 그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가끔 음악실에서 혼자 칠 때는 있어. 지금 이렇게 혼자서 약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위에 오르기도 힘들고."
양과 늑대. 어쩔 수 없는 격차를 떠올리면서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연습하고, 좀 더 시간을 늘려서 열정을 쏟아부으면 될 일이라고 스스로 마무리지으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그렇다면 음악부는 아니었던 거구나.. 피아노 연주... 지금은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대회나 콩쿠르에도 나갈 정도라면 나중에 한번 꼭 들어보고 싶네..!"
잠시 하늘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상상하던 홍현은 장차 무엇이 꿈이냐는 질문을 받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꿈은... 약사는 아니야. 약사가 아니라 제약회사에 들어가 신약을 개발하는 그런 연구원이 되어보고 싶어."
약사도, 한때 생각했던 꿈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약을 제조해 처방하는 것보다 직접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연구원을 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소극적인 모습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성격 때문에 약사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개선사항의 작성까지 완전히 끝마친 홍현은 테스트에 응해준 하늘에게 무언가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캐러멜도 생각나 잠시 자신의 가방으로 가 뒤져 딸기맛 캐러멜을 찾아내 조심스레 전달하며 말했다.
"만약 들으러 온다면 사양하진 않을게. 물론 내가 학교에서 연주하는 일은 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연주하거든. 음악실에서."
물론 정말로 그녀에게 연주를 들려줄 일이 있을지는 하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온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말로 좋은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건 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는만큼,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연주를 하고 싶었으니까. 설사 그게 이뤄지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라. 와. 공부 되게 잘해야 할 것 같네. 하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만들 정도면 좋은 결과 있지 않겠어? 그럼 나중에 잘 되면 이것을 인연으로, 약을 만들면 한번씩 사볼게. 도움 되는 약이라면 주변에 홍보도 하고 말이야."
좋아하는 것을 쫓는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도 정말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괜히 엄지를 앞으로 내밀다가 그녀가 내미는 딸기맛 커러멜을 받으면서 그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물론 커러멜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덕분에 좋은 체험도 했는걸. 이런 작은 자극 등이 음악적 감각을 깨우기 좋기도 하고... 언제 이런 체험을 또 해보겠어? 나야말로 고마워!! 아. 그러면 슬슬 가볼게. 열심히 약 만드는 것 같은데 너무 방해되면 미안하기도 하고, 동아리 외부 사람이 동아리 실에 오래 있기도 좀 그렇잖아?"
너무 맛없는 것만 아니면 별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다음에 또 테스트가 필요하면 2학년 1반으로 와서 찾아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나설 채비를 했다.
/다음으로 막레를 가면 될 것 같기도 하고..이걸로 막레를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편하낻로 해줘도 좋을 것 같아!
"음악실..잘 기억해둘게..! 그리고 너..너도 잘나가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으..응원할게."
홍현은 응원하는 의미에서 양손 주먹을 쥐어 보여줬다. 홍현도 꿈을 향해 열심히 쫓는다는 점에서 왠지 하늘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쫓으려 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늘이 나설 채비를 하며 일어나자 자신도 같이 문으로 가서 열어주었다. 짧은 인사 후 하늘이 나가자 홍현은 다시 만들다 만 약을 만들기 시작하려고 했다. 그때, 자신이 놔두었던 평가지를 떠올리고 책장에서 평가지들을 모아두던 종이파일을 꺼냈다. 홍현은 평가지를 집어넣기 전에 잠시 바라보더니 파일에 집어넣고 책장에 꽂아넣었다. 그리곤 다시 가루들 앞으로 와 약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소원이 이뤄지면 말해줘야 해? 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생각했다. 말해도 괜찮은 소원을 빌 테지만, 그것의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 말해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다며언, 그때는 이야기 하겠지요~ ”
생각 끝에 똑부러지는 대답을 하곤 빵긋 웃었다. 이야기 한 대로 판단이 선다면 이야기 해주고, 판단이 안 선다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원은 아랑이 빈 소원을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지만. 아랑은 주원의 소원이 크게 궁금하진 않았다. 본인이 아까 전에 말해준 것처럼,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소원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음, 어쩌면 부원이 늘게 해달라는 소원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번에 입학한 1학년이 주원에 부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불꽃놀이가 끝나면, 축제가 끝난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직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며 아랑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여기서 더 구경하는 것도 애매한 기분이고, 부로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그렇고, 오늘 모임은 여기서 파하는 게 좋을까나.
“ 오늘은 이만 빠이빠이 할까요~? ”
//그리고 요것이 막레입니다! 오늘 이벤트 참여하려고 하면 멀티가 안 될 것 같아서... <:3 같이 일상 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각잡고 썼는데도 레스가 짧아서 죄송합니다... ㅇ<-<)
>>675 화력이 워낙 좋고, 제가 졸릴 때가 많아서 ㅋㅋㅋㅋㅋㅋㅋ 놓치는 게 많아서 동질감 느껴지는 걸요! 안녕 선하주!
>>678 나는 판 세워질 때 본 거 같아! (근데 기억 흐릿함) >:D 정주행? 하다가 본 거 같은데 하늘주는 원래 선관을 먼저 찌르진 않는구나! 나도... ㅋㅋㅋㅋ 나도 초면 만남 좋아하고, 선관 다 기억할 자신 없어서 선관 안 짤 줄 알았는데 우리집 다람쥐가 생각보다 너무 뾸뾸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걸고 다니는 거야.. :3 (잡아다 햄스터 집에 넣어버리고 싶음)
>>676 해인이의 다크한 맛도 친절한 맛도 전부 좋아합니다! ㅇ.< 아랑이 비설 너무 어둡지 않게 짜고 싶은데 뇌가 파업하려든다... <:3 그래서 비설 생각 안 하고 늘어져 있어... 뭘해야 적당히 깜찍하고 덜 어둑한 비설이 될까 <:3
>>685 사실 짤 그런 것이 있으면 짜는 것도 좋아해! 다만 굳이 억지로 관계를 만들어서 짜는 것은 조금 비선호할 뿐이야. 이를테면 하늘이를 예로 들자면 혹시 피아노 경험이 있다거나 피아노 학원에 간 적이 있다거나 한다면 중학생때나 초등학생 때 같은 학원 출신이다! 같은 것으로 짜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냥 다른 반이고 만난 적도 없는데 우연히 하늘이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자주 들으러 온다...식으로 첫 만남 스킵 느낌으로 짜는 것은 조금 비선호한다 정도? 설명이 애매하긴 하다!
>>687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만약 피아노 경험이 있거나,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있다면 그건 좋은 접점이 될 것 같네에! 하늘이 시트 읽어보면 >> 말을 걸 때 대답을 잘 안 할 때가 있는데 이때 귀를 잘 보면 이어폰을 끼고 있다. 이 이어폰으로 피아노 곡을 듣거나 자신이 연주한 곡을 녹음하고 부족한 부분을 생각할 때가 있다.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주면 바로 이어폰을 빼고 대답한다.<< 가 있는데 바디 터치 없이 하늘이 부를 방법... 생각하다 보니까 약간 떨어진 시선 앞 손 흔들흔들이 생각나는데 하늘이 그러면 눈치 채 주니...? :3 하늘이가 자주? 종종 이어폰 꼽고 있는다면 아랑이가 무슨 곡 듣고 있어~? 라고 물어본 뒤에 하늘이가 알려준 곡 들어볼 것 같다. 아랑이가 자주 듣는 건 춤 출 수 있는 뮤직 종류일 것 같은데 (k팝, 팝송 다 들음). 하늘이가 자주 듣는 건 어떤 종류려나...?? 왠지 아랑이가 자주 들어본 적 없는 종류 듣고 있을 것 같아!
고민중이고, 하늘주 시간이 괜찮다면 선관스레 갈까? >:D 나... 잠깐 생각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어...ㅋㅋㅋㅋㅋㅋ
아랑은 대답할거라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말해도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그녀 다운 대답이었다. 신중하고도 귀여운 대답.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중 하나도 그런 점에 있을 것이다. 허투로, 마음 없이 말한다고 말 하는 것이 아닌 신중하더라도, 실망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주는 것.
"그렇게 말 해줘서 고마워."
주원은 괜시리 그녀의 말에서 배려를 느끼며 베시시 웃음지었다. 그녀는 주원이 이미 늑대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고, 주원은 그것에 대해 아주 어렴풋이 본능적으로 낌새를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아랑은 주원의 재능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할테니까. 그것이 배려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아랑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그 우연이 주원에게는 배려가 된 것이니.
"그러네. 더 꽃을 볼 마음이 들진 않네."
왠지 지쳤다. 마음을 다해 소원을 빌어서인지 금방 지쳐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주원은 평소같이 그녀를 붙잡고 좀 더 같이 있자고 칭얼거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전날 밤 늦은 시간까지 만화를 봐서 그런 것일까?
"응. 그럼, 안녕."
언젠가 다시 볼 수도 있겠지. 또 부실에 찾아줄지도 모른다. 아랑에게 그럴 맘이 든다면 말이다. 주원은 아랑과 함께 거대한 벚나무에서 정원까지 나와 아랑이를 먼저 보내고 담요를 가지고 돌아, 가려다가.
"조금만 더 있을까."
하곤 혼자 그 담요에 앉아 깍지를 끼고 베개 삼아 누워 금방 또 잠에 빠졌다. 어쩌면 오늘 밤은 이 벚나무들 사이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깨우지 않는 한은. 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마 감기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692 일단 이 물음에 답부터 하자면 시선에 들어오게 흔들흔들하면 눈치를 챌거야! 아무리 깊게 집중해도 그런 것까지 눈치를 못채긴 조금 힘드니까! 오히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 것 같네. 그리고 하늘이가 자주 듣는 곳은 역시 피아노 관련 곡들인데 클래식을 들을 때도 있고, 자신이 직접 연주한 곡을 들을 때도 있고, 혹은 피아노로 커버한 곡을 들을 때도 많아. 굳이 말하면 하늘이의 취향은 클래식보다는 커버곡이어서 커버곡일때가 더 많을 것 같네! 물론 클래식을 들을 때도 많고..아무튼 피아노 곡을 주로 들어!
곤란하다는 말을 하는 이는 일정 땜에 참여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 아무튼 난 언제 해도 상관없다 파라서! 다만 캡틴이 오늘 하기로 했다면 일단 나중에 출석을 받아보고 결정해도 좋지 않을까? 사람이 너무 적으면 내일 할 수도 있는 걸테고 적당량이 있다 싶으면 오늘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싶어!
사실 홍현이 같은 경우에는 페로몬을 본인도 원치않게 뿌리고 다닐 수 있는 캐릭터긴 해요. 설정상 똑같이 생긴 영양제와 억제제가 섞여있고 매일 랜덤으로 2개씩 뽑아서 먹는 설정이라 평상시에는 운좋게 1대1이고 운이 나쁘면 다 영양제라 페로몬을 풍기거나 아니면 다 억제제라 컨디션이 급 하락하는거죠
>>711 그렇죠 ㅎ▽ㅎ 그렇게 되신다면 일상을 하실 때 미리 조율하시고 상황을 꾸려나가면 되겠네요! 아침 등교 때는 학생들이 매우 많으니 일일히 억제제를 챙겨 먹었는지 확인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가끔씩 선도부가 서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편하게 상황을 짜시면 됩니다 >>712 오히려 좋아(???
맞아. 캡틴. 질문이 있어! 일단 하늘이 같은 경우는 딱히 동아리는 하지 않지만 혼자서 피아노 대회나 콩쿨 같은 곳에 나가서 수상을 하기도 하거든. 물론 그 빈도가 항상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경우라면 야자면제의 조건에 해당되는걸까? 아니면 학교 소속 동아리가 아니니까 그게 인정되지 않는걸까?
>>745 >>748 어깨 아픈 거 괜찮아 ㅠㅠ?!?! 물론 선하 만난다? 가문의 영광입니다.....s2 음 무슨 상황이 좋을까.. 아직 봄이니까 그늘에서 바람 쐬고 앉아 있다가 만날 수도 있을 것 같구,, 한 명이 심부름 하다 떨어뜨려서 주워다주는 것도 좋을 것 같구,,, 선하주는 혹시 원하는 상황 있을까 ?.?
시아주도 안녕~ 시아랑도 돌려보고 싶은데, 이벤트 참여하려면 당장 일상은 못할 거 같아! <:3 아랑이 과거 생각하면서 생각한건데. 시아나 사라가 아랑이 머리 쓰담쓰담하고 있고, 그 쓰다듬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고개 갸웃갸웃할 거 같은데. 시아나 사라는 아랑이가 자기 손을 머리에 얹고 갸웃갸웃 하고 있으면 어떤 반응일지 알고 싶다... <:3 반대로 아랑이가 쓰담쓰담하면 어떤 반응일지도 알고 싶고!
>>750 앗 혹시 말씀드리면 제가 말한 길이에 대한 얘기는 제 얘기라<<< 필력이 좋지 못하고 늘어놓는다는 느낌만 있네요 저는.. 아랑주도 그렇고 다른 분들은 다 길이도 퀄리티도 너무 좋아서 뭔가 레스 쓰기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도 퀄리티 높아지고 싶다. <:3c
운이 나빴다. 이건 좀 너무한가? 그럼 <운이 그닥 좋지는 못했다.>로 정정하기로 하자. 하필 담임선생님 눈에 띄는 바람에 유인물을 떠안게 됐다. 갱지에 인쇄되어 한 장 한 장이 흐물대는 종이는 바람에 잘도 날렸다. 혹시 헨젤과 그레텔처럼 하나씩 떨어뜨리며 가기라도 할까 봐 양손으로 잘 끌어안고 가는데도 끄트머리가 날렸다. 날씨가 좋아 복도 창문을 죄 열어놓은 탓에 더 그랬다. 밖에서는 살랑살랑 좋기만 하던 봄바람이 이런 일에 끼어드니 귀찮았다. 사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의욕을 찾아볼 수 없는 걸음 만큼 팔에도 기운이 넘치진 않았다. 그래서였을 거다. 유인물이 아래로 빠진 건. 얇은 종이는 멀리도 미끄러졌다. 바람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네. 귀찮은 건지 슬픈 건지 구분 안 가는 얼굴을 하고 허리를 숙였다. 근처에 떨어진 것부터 줍고, 그대로 앞으로 가며 한 장씩 주웠다. 추수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한 번 무언가를 놓치고 나면 그 뒤로도 계속 뭘 놓치게 되는 날이 있다. 아무래도 그게 오늘인 것 같았다. 시야 확보는 중요한 일인데, 하필 그걸 잊어서. <어이쿠.> 다소 작위적인 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안…, 미안합니다."
반사적으로 <미안.>을 먼저 뱉고, 그 뒤로 의식한 존댓말이 나왔다. 마지막 유인물을 주우며 일어난 사하의 눈에 명찰이 들어온다. <양선하>.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얼굴. 아하, 너였구나. 금방이라도 아는 척할 것처럼 입술이 벌어지지만, 튀어나온 건 상관없는 말이다.
>>773 헉... 사라 반응 다양한 게 넘 뽀쟉해... 8ㅁ8... 사라 is 큐티... ㅇ<-< 아닠ㅋㅋㅋㅋㅋ 아랑이 쓰다듬는데 발돋움까지 해야할... (둘이 11cm 차이던가...? 시트 보고 올게!) 헉... 사라주 직접 확인해보라니... 사라랑 일상 돌리는 날이 기대되는데! >:3 개인적으로 아랑이가 늑대인 걸 짐작하는 친구들 중에선 사라를 제일 무해한 아이? 로 보고 있어서 뺨 쪼물해도 쫌 놀라긴 하는데 " 아하아~ (아파아~) " 정도의 반응으로 끝날 거 같아... <:3 아랑이 눈에는 (여태 본 늑대친구 중에 최고로) 무해뽀쟉한 쟈근 늑대 사라... 만약에 사라가 아랑이보다 더 컸으면 덜 무해해 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쪼금 했어! <:3
날이 좋다. 하늘에는 먹구름 한 점 없었고 바람은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불어왔다. 그래서일까, 복도를 걸어다니는 족족 바람이 스치운다. 선하는 부유하는 먼지 한 점 한 점에 집중하지 않으려 부던히 애쓰며 눈을 감는다. 하루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금세 피로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남아도는 체력은 선하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턱을 들고 허리를 꼿꼿히 새운다. 바람이 불며 교복이 머리카락과 함께 반대편으로 펄럭인다. 쭉 뻗은 선하의 몸이 교복속에서도 뚜렷히 느껴졌다. 창틀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선하는 배배꼬인 속내와 상반되게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인기척을 느낀 선하가 눈을 뜬다. 굴러가는 눈동자에 조금은 무기력하고, 조금은 우울한 사람이 담긴다. 선하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비틀린 본능이 이성조차 거치지 않고 선하의 몸을 채찍질한다. 아니, 어쩌면 이성조차 본능의 편을 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선하는 사하를 향하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 툭, 부딪히기까지의 머뭇거림은 전혀 없었다.
"아...!"
선하가 작게 탄식했다. 허리를 굽히자 머리카락이 길게 늘여진다. 허둥지둥 유인물들을 줍는 모습이, 떨리는 양 손과 곤란한 듯 한데 모인 미간이 선하를 무고한 사람으로 만든다. 완벽 범죄다. 자신이 주운 유인물을 섬세한 손길로 정리한다. 내리깐 눈에 붙은 속눈썹이 학의 날개처럼 뻗는다. 선하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내 유인물을 사하에게 건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잘 꾸며진 얼굴이 곤란한 낯을 하고 있다.
부딪힌 건 저였는데 어째 저쪽이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나도 미안한데 내가 더 미안한 티를 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관둔다.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면 미안함 배틀이라도 하듯이 계속 더 많이 미안한 기색을 내비쳐야 할 것 같았다. 착한 애구나. 첫인상은 쉽게 정립된다.
"아니야, 내가 앞을 안 보고 가서 그래."
창밖을 흘긋 본다. 벚꽃이 늘어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이 날씨 좋을 때 많이 구경해야지.> 덧붙이곤 고개를 끄덕인다. 선하게 내민 손은 물끄러미 보다 제 손을 뻗어 끄트머리를 살짝 잡았다. 곧 악수하자는 뜻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불에 덴 사람처럼 놀라며 손을 뗐지만. <이게 아니구나.> 머쓱하게 덧붙였다.
"이거 되게 가벼운데……. 그럼 지금 들고 있는 것만 들고 같이 가줄래?"
<교탁에 두고 나오기만 하면 돼.> 최대한 쉬운 일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한 말이었다. 다짜고짜 몸통박치기를 하더니 심부름까지 시키는 애……. 제 첫인상을 생각해보니 참담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같이 걷기 쉽도록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나 사실 너 알아. 가끔 착각하고 네 이름으로 바꿔부르는 애들 있었거든. 아, 내 이름 은사하야."
같은 반이었던 적도, 동아리를 같이 하지도 않아서 만날 기회는 없었는데, 고작 이름 조금 들은 걸로 혼자 친밀감이 쌓였다.
"어떤 앤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네. 도와준다고 해서 고마워."
그런데 또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선하쪽을 흘끔 쳐다봤다. 착해서 다 받아주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782 엌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뭐시다냐... 별 큰 문제는 아니고, 응. 슬혜가 싫어하는것 키워드 중에 하나가 거짓말이니까!! 물론 안지켰다고 무조건 흥칫뿡 하는건 아니고 '상대방이 충분히 지킬만한 사항이지만 말해놓고 잊는것'이 아닌 '상대방이 지킬만한 사항이 뻔히 아닌데도 지킨다말하는 것'에 극혐한다는 느낌이야~
사하의 시선을 선하가 뒤따른다. 벚꽃이 보기좋게 흐드러진다. 마음만 같아서는 '왜, 나랑 구경가고 싶어?'따위의 망발을 던지고 싶다만 선하는 꾹 참아냈다. 노골적으로 친해지고픈 티를 냈다가는 좋은 꼴 보지 못한다. 그런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빙그레 웃는다. 속으로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난리다.
손이 닿자 선하가 파르르 떤다. 눈을 크게 뜨고 사하를 보는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서린다. '왜 나한테 끼부려?'라는 개소리를 하고픈 마음도 꾹 참아낸다. 평소 태도를 생각하면 젠틀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대신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다. 떠나가는 손이 못내 아쉬워 손가락을 살짝 굽힌다. 사하의 손끝이 살짝 닿는 것이 선하의 시선에 잡힌다. 괜히 의심받지 않게 잽싸게 팔을 거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 엄청 재미있다."
들고 있는 유인물을 갈무리하며 품에 안는다. 확실히 바람이 안 부는게 아닌지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부 날아갈 것 같았다. 아, 일부로 날려보내면서 시간 끌면 싫어할려나. 태평히 생각하며 사하 옆으로 따라붙는다. 이쪽 역시 걸음을 맞추기 위해 느리게 걷는다.
"네가 사하였구나! 알아, 알아. 친구들이 자주 헷갈리더라고.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치 오늘 처음 봤다는 얼굴로, 이것도 다 인연이라는 밑밥을 깔며 재잘거린다. 경쾌한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 상태였다. 고맙다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입끝을 만지작거렸다. 그 말 한 마디가 제법 감명깊게 다가온 모양이지? 작게 콧노래 부른다. 안그런척 따라붙는 시선이 제법 집요한 동시에 은밀했다.
닿은 손끝이 이상하게 좀 간지러웠다. …꽃가루 알러지인가. 오늘도 어김없이 생각은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다행히 금방 돌아오긴 했다. 도와주겠다고 뻗은 손을 악수하자는 줄 알고 덥석 잡은 제 기행을 <재밌다>는 말로 상냥히 포장해준 선하 덕분에.
"가끔 그런 말 들어."
진지하게 대답하는 것보단 농담이 분위기 풀어줄 것 같아 가볍게 말한다. 근데 뱉고 나니 뻐기는 것처럼 들렸을까 싶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거든. 제일 잘 하는 합리화로 술렁이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3학년 돼서 새 친구 사귈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고 생각한 기회가 찾아오자 삐걱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속으로만 그렇다.
"너도 사하라고 불린 적 있어? 우리가 여태 못 만난 게 신기하네."
<친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였다. 고3이지만, 공부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잘 한다곤 안 했다. 변명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둘러댈 말을 만든다.
"나는 3반. 그래서 못 봤구나. 그래도 이제 이름이랑 얼굴도 알고, 이렇게 인사도 했으니까 오며가며 알아볼 수 있겠다."
선하를 보곤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 애, 붙임성도 좋다. 예쁘게 생긴 애가 착한 데다 성격도 좋네. 신이 공평하다는 말은 역시 다 개소리다. 혹시 믿는 신 있으면 미안.
"…혹시 외부 활동 뭐 하는지 물어봐도 돼?"
<불편하면 한 대 쥐어박아줄래?>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고, <말하기 싫음 비밀이라고만 해줘.> 말했다.
🌕滿月 "오늘은 어디가지 말고 꼭 집에 일찍 들어오렴." 어릴적부터 당신이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어라 날짜 확인도 안한 거야? 그러다 너...
오늘은 당신의 몇번 째 보름달인가요? 한 달에 거진 두 번 꼴로 찾아오는 이 날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겁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당신에게는 성가신 날일 뿐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당신은 가냘프게도 짐승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어제의 뉴스에서도 내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아른거리고, 부모님의 잔소리는 왠지 오늘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착각이겠지요. 그래서 조심성 많은 당신은 몸 어딘가에 패치를 숨겨 붙이고, 평소에도 삼키기 껄끄러웠던 알약을 세 개나 삼키고 오늘도 평범히 등교에 나섭니다. 익숙한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평소 2배의 인원의 선도부가 길을 가로막고 아이들을 붙잡아 무언가 확인하고 있네요. 하지만 다행히도 당신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따분한 일상과 달리 특별한 무언가, 즐거운 이벤트가 생겨날 것만 같았지만.. '차렷, 경례' 소리와 함께 종례를 마친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어라.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어요, 당신의 친구들이 얼른 일어나지 않고 뭐하냐며 재촉하잖아요. 그래서 당신은 오늘도 매우 평범하게, 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석식을 먹고 야자를 합니다. 동아리실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느새 스마트폰 속 휴대폰의 9:0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며, 또 창밖의 소름끼치게 둥그런 달을 보며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분명 그런 줄 알았습니다. 너와 마주치기 전까진.
*개개인으로 1:1씩 짝을 지어 진행되는 이벤트입니다. *당신은 분명 오늘, 패치를 정확히 붙였거나 억제제 3알을 분명 챙겨 먹은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을까요? 혹은 일부러였을까요. *당신은 흘러넘치는 페로몬의 파급력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아주 깊이 잠재된 당신의 외로움을 토하고싶어 참을 수 없습니다. 거기, 누구, 아무도 없나요? *당신은 쇳덩어리를 삼킨 듯 암울한, 또는 흥분된, 예민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내가 왜이러는 걸까요? 이건 내가 아닌데. 나는 너무 배가 고파. 저건 케이크인가? *모종의 이유로 마주친 당신과 당신의 운명이 과연 불행일지 행운일지. 아니면 그저 따분한 만남에 불과할지. 그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감정이 가득 실린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당신은 과연 움직일 수 있나요? 계산적인 행동은 하품만 나올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본능"일 뿐입니다. 그야, 양과 늑대잖아요? 인간이라고 착각하셨나요? 그렇다면 유감입니다. *본능에 충실해주세요. 머뭇거리다간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제 역할 구실도 못하는 엑스트라가 되진 말아주세요. *하지만 반드시 수위는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이니 마지막에 넣겠습니다. 수위를 조심하시며, 완결형과 캐조종에 주의해주시고 수위의 선은 공중파 15세 드라마 정도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허벅지에 손을 대진 않겠죠. *빠른 핑퐁 권장드립니다. 滿月의 시간은 단 24시간 뿐이거든요. 이벤트의 기한은 8월 8일 9:00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돌리신다면, 마법에 풀린 것처럼, 벌거 벗은 두 사람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나저나 아랑주.... 어떻게 하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제 머릿속에서 제가 상상한 목소리를 끄집어내 이름을 알아오셨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김장 성우님! 남도형 성우님도 주원이에게 되게 잘 어울려서 놀랐다.... 저보다 주원이를 보고 계신 것 같아 신기하네요.
홍현주도 어서 와라!! 아무튼 이벤트 잘 읽었어!! 아무튼 양이 더 많구나. 그러면 1:1은 아무래도 조금 힘들 수도 있겠네. 그러면 캡틴. 일단 7:8이라는거네? 그렇다면 일단 여기선 내가 빠져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새로 막 온 이기도 하고 비율도 안 맞고 그런걸 보면 누구 하나는 빠져야 할 것 같은데. 양 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