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는 싫어해? 민트초코. 역시나 새슬에게는 눈 앞에 들이밀어진 민초사탕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사실 이것저것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는 새슬의 입장에서, 자신을 ‘민초맛 사탕형’에 처한다는 것은.. 입이 심심한 차에 간식거리 하나를 쥐어주는 고마운 일이나 다름 없을 터. 새슬의 시선이 천천히 사탕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한 층 정도는 괜찮잖아아. 지금 호야가 했던 것보단 나을 걸.”
3층에서 올라왔잖아? 호야랑은 나무타기 시합을 해도 재미있겠다. 어느새 난간에 쏠랑 붙어서서는, 자신이 있을 교실과 옥상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듯이 고개를 슬쩍 내밀어 살피는 시늉을 한다.
“백 번밖에? 나라면 오백 번은 했다.”
대체 다른 친구들은 그걸 어떻게 참지? 아리송한 얼굴로 머리를 싸매보아도 도저히 새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참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미래를 사는 것은 미래의 나이지, 현재의 내가 아닌데. 허리를 반쯤 난간에 걸친 퍽 아슬아슬한 자세로, 콘크리트 덩어리에 가려진, 학생들이 있을 그 너머를 응시하며 눈만 껌뻑이는 것이다. 그래도 다들 행복해? 진짜로?
“아ㅡ 그건 선인장이었는데.”
헤ㅡ ( ᐛ ). 하지만 호야가 그렇다면 동물인 걸로 하자. 토끼? 토끼 어때? 태연스럽게 눈웃음치며 웃는다.
“하늘은 맨날 바뀌니까 괜찮아. 그러는 호야도 또 땡땡이잖아?”
교실 책상은 숨 막히고 답답해서 싫어. 창가가 아니면 햇볕에 데워지는 따뜻한 맛도 없잖아. 옥상에 누워 있는 편이 오백 배는 낫다, 뭐. 시답잖은 소리를 해 대며 키득거렸다.
댕.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지구는 볼일을 보러 간다며 친구들을 제쳐두고 3학년 교실과 가까운 1층의 뒤뜰로 익숙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 건물의 뒷편치고는 꽤 그늘지고 구석진 곳이라 학생들이 굳이 찾아오지 않는 장소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발치에는 여러 학생들의 꽁초가 가득했고. 날씨가 맑고 적당히 화창했으나 지구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원체 하늘 따위나 일기예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고 날씨가 우울하든 맑든 그런 것따위에 영향받을 무른 인간이, 늑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 가지의 기분이 평생토록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내려온 이유는 단지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또 깊은 생각을 태워버리기 위해서. 간단했다. 학교 건물에 등을 기대서고 막대를 입에 물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멀리서부터 들렸으니 귀찮게 할 인물은 없다고 판단했고, 손으로 바람을 막고 불꽃은 칙 소리를 내었다. 지구나, 학생회장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있고 또 그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면 담배 냄새가 가끔 난다거나 땡땡이를 치고 불량스럽게 어디든지 누워있다거나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기에 알 사람들은 알았다. 지구는 개의치 않았고. 그럼에도 선생들이 사실을 묵살하고 학생회장 자리에 앉혀놓고 있는 이유는 어른들의 이야기일까. 교실로 돌아갈 땐 손이나 깨끗하게 씻고 근처 자리 여자아이에게 핸드크림이나 바르면 되는 것이다. 연기가 탁하게 피어오르며 흩어 사라지는 것만 좇고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이내 담요를 두르고 있는 남학생이 놀란 기색을 보인다. 그 모습이 근처 토끼장에 토끼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번 훑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는데. 커다란 바람이 불었고, 곧 커다란 형체 모를 것이 펄럭이며 지구의 얼굴을 명중했다. 시야가 검게 가려진 지구는 좋지 않은 예감을 확신했고.. 한가롭게 불량스러운 짓을 하던 중에 방해를 받게 된 것에 화가 난다기 보다는.
"후배."
담배를 건드리지 않은 손으로 담요를 걷어낸 지구의 얼굴은 정말로, 평소랑 다를 바 없었다. 좋게 말하면 평온한, 나쁘게 말하면 무정한 얼굴. 그런 얼굴로 담배를 꼬나물고 웅얼거리듯 세인의 명찰 색을 확인한 지구가 그를 나른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담요를 대충 훑어보던 지구는, 갑작스레 담요를 일자로 길게 쥐고 한쪽 어깨 위로 걸치고서 시선을 세인에게로 옮겼다. 정말 태운지 얼마 안 된 것이고, 아직 상당히 부족하지만. 저쪽의 후배님이 꽤 싫어하는 것 같았으므로 피던 것을 발치에 던지고 불씨를 짓밟았다. 꽤 거리가 있는 그를 이쪽으로 부르면.. 회장 주제에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으니까. 지구는 직접 행동하며 세인의 쪽으로 다가가려했다. 아직 담배냄새가 조금 나려나, 그다지 오래 핀 것이 아니니 금방 빠졌으면 하고.
"한세인?"
가까워진 거리에 그제서야 명확하게 보이는 명찰 속 세인의 이름을 부르며 세인의 얼굴을 건너보았다. 지구의 표정엔 딱히 감정이랄 게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까.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닌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친구를 한두명 데려올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며 지구는 습관적으로 뒷머리를 헝클이듯 긁었다.
"담요 새로 사줄게."
지구는 교복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검은 반지갑을 꺼내서 현금을 세어보고 현금이 낫나,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설명할 생각이 없는 건지 그의 행동은 그 정도가 다였다. 굳이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자면 담배를 피던 중에 담요가 얼굴 쪽으로 날라온 탓에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불씨 끝에 연약한 담요가 붙은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회색의 동그란 모양에 담배빵이 남는 것이겠지. 지구는 말 주변이 없어 어떻게 이 상황을 순탄하게 해쳐나가야 할지 곤란했다. 그래서 한숨이 푹 떨어지고. 차가운 색의 눈동자는 세인을 지켜본다.
아저씨는 성공했기에 가족들과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때부터 사라네 집의 분위기를 부러워했고 커가면서 가족이 생긴다면 절대 우리집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불행에 의해서 불행을 물려주는 연결고리를 내 손으로 끊어버리고 싶었다. 늑대의 재능은 필요 없이, 오롯이 나의 노력으로만.
" 그랬던가? 아주 남이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들으셨네요? "
속 편하게 하는 말을 듣고서 열불이 터지는척 가슴까지 두드려가면서 얘기했지만 사실 사라랑 알고 지낸게 몇년인데 이런 일로 속이 터지면 아마 속이 남아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사라가 꼬맹이라는 말에 면역이 된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비단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 소원이라도 빌려고? "
가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벚꽃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정 아래로 학생들이 오고가는게 보인다. 누군가는 쪽지를 소중히 들고있고 누군가는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있다. 모두가 간절하게 이루고픈 소원을 담아서 쪽지에 써놓았겠지. 그런 학생들을 한명 한명 보면서 벚꽃나무 앞에 가서 섰다.
" 과연 이 나무가 소원을 정말 이루어주는걸까? 그냥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아닐까? "
정말 이루어주는 거라면 모두를 이루어줘야지 굳이 몇명만 이루어주는 이유는 서로의 간절함 대결을 보기 원해서일까? 가장 간절한 사람 몇명만 골라서 소원을 이루어주는걸까.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사실 다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을테니까.
그는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 민초라는 것은 치약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 이 사탕을 건네버리면 그녀에겐 포상이 되어버릴 테다. 애초에 새슬은 아무것도 안했으니 포상이고 뭐고 할것도 없지만, 아무튼 그는 초조해졌다. 그래서 실수를 저질렀다.
" 그, 그, 그럼 불닭맛 소스는 어떨까?! "
사탕을 까고는 그 위에 불닭소스를 들이붓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죄질이 무거운 것으로 소문이 자자한(?) 음식으로 장난치기! 그는 훗날 지옥에서 저 끔찍함 음식을 직접 맛봐야하는 고통에 몸부릴칠 것이다.
본인도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 새슬과 사탕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번갈아가면서 봤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새슬의 입장에선, 그대로 방관하고 있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안 돼. 적어도 내가 있는곳에서 해. 삐끗하기라도 하면 내가 구해줄 수 있을거야. "
그는 본인이 다치는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남이 다치는 것엔 민감해했다. 이 무슨 모순인가 싶지만 그는 이유같은건 설명하려 들지 않고 '아무튼 그럼!' 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난간에 올라 걸터앉았다. 그녀만큼 위태한 모양새였지만 서로간에 그런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건 일상다반사였다.
" 토끼랑 선인장이라... 공통점이 많으니까 그런걸로 하자! "
과연 어떤 공통점이 둘 사이에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갈까마귀와 책상만큼은 공통점이 있겠지.
" 그건 맞지! 탁 트인곳이 훨씬 좋기는 해. "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야외수업을 해도 좋을텐데.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중얼거리며 난간에 눕듯이 했다.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하는 몸짓이었다.
" 오늘은 뭐할래? 멍때리기? 구름 수 세기?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학교가 부숴지지 않도록 누가 안전하게 던지나 내기하기? "
어째 마지막에 정신나간 내기가 튀어나온 것 같ㅈ만 무시하도록 하자. 안전하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노벨상을 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건 지나가는 돌멩이도 알 사실이다.
얼굴에 담요를 뒤집어쓴 게 제법 웃겨서 잠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는 것은 생략하고, 저를 '후배'라고 부르는 것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 이래도 되나? 만 19세 이하 청소년이 재학 중인 학교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선배고 학생회장인데. 한세인의 안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유교 보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 아니 학생회장이고 뭐고 알게 뭐람. 학생회장 그러니까 3학년 붉은 명찰을 달고 계신 온지구 선배님을 쳐다보며 한세인의 뇌는 빠르게 그리고 정신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담배를 피고 있는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아니 그 전 어제 일본 양키 영화를 보았을 때부터 문제였을 지도. 한세인은 최근에 본 영화와 지금 상황을 겹쳐서 보고 있었으니까. 담배를 끄는 장면은 조금 클로즈업 하고, 불쌍한 어린 양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카메라를 조금 멀리해서...
"아, 옙."
그런 도중 불려오는 제 이름에 정신을 차렸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소 떨떠름해 뵈는 목소리가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학생회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분노는 없다는 점? 그리고 그 한치의 흔들림 없는 차분함이 한세인을 더 두렵게 하는 데 있었다. 보통 화를 더 안내는 놈이 무섭고 잔인한 최종 보스 같은 거 아니었나, 그래 어제 본 영화에서 그랬지.
"아니 거 자국 좀 난거 가지고 수선 맞기면 되는 걸 새로 사라는... ..."
젠장. 담요 그거 얼마 한다고 발끈해서 생활감 넘치는 말이 튀어나간 거냐고. 사실 얼마 피우지도 않은 장초를 짓밟을 때부터 신발 바닥의 상태까지 온갖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세인은 넘쳐흐르는 자괴감에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와중에도 한편에서 만화 속 제벌 3세가 재수 없는 대사와 함께 돈을 뿌리고 쌩 가버리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꼭 여기서 주인공은 돈은 됐으니 사과하라며 붙잡지... 한세인은 딴색각들을 떨쳐내려 애쓰며 할 수 있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집에 담요가 많아서요, 별로 그러시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학생회장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