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그거 들었어? 학교 정원의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산들고의 전설 이야기입니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 중에서 실제로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학생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학교 정원의 커다란 벚나무 기둥에는 조그맣게 움푹 패여있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맘때쯤이면 학생들이 염원을 담아 소원을 적은 쪽지를 그 공간 안에 넣어두곤 합니다.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소원을 담은 쪽지를 나무 기둥 틈에 넣어두고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 뒤 간절히 소원을 빌면 쪽지가 꽃잎처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벚나무의 요정님이 가져간 걸까요? 아니면 다람쥐? 위의 규칙 중에서 하나라도 어긴다면 쪽지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왔을 땐 누가 쪽지를 뱉기라도 한 듯 땅에 버려져 있다네요.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유치하지만 한 번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벚나무 요정 이야기입니다. *학교 정원에 위치한 오래된 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이 담긴 쪽지를 넣어두고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다면 쪽지가 뾰로롱 사라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에 참가하시려면, 반드시 캐릭터들이 일상에서나 독백으로 벚나무 아래에 가 위의 행동을 취하는 레스를 작성해주시고, 쪽지는 웹박수에 적어 넣어주시면 됩니다. *웹박수 양식은 이름/캐이입이담긴소원/행동레스>>? 를 써놓고 웹박수를 작성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소원은 반드시 모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라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이벤트 기간은 이번 주 일요일까지입니다. 아이들은 무슨 소원을 마음속에 품고 있나요? 벚나무 요정님에게 조금 나눠주세요. *https://forms.gle/yME8Zyv5Kk6RJVsB6 웹박수 주소이며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위의 사항을 반드시 정독해주세요. 또한 행동 레스 작성 후 웹박수를 보내주세요. 많은 참여 바랍니다.
>>28 글쎄요 ㅎ▽ㅎ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소원의 영향력은 분명히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의 소원이 전부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누군가는 확실히 또 누군가는 소소하게라도 이루어진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지구 멸망 시켜주세요<같은 소원을 빌어도 애매한 것과 비슷하네요.
평소보다 조금 활발하다는 말에 주원은 느긋하면서도 나긋한 말투로 대답한다. 방금 전보단 조금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산의 크기 덕에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어깨가 젖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마주보고 있을 때, 슬혜는 고개를 들어 비스듬한 눈짓으로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매와 함께 희고 가지런한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미소지었다. 주원은 그 미소를 보며 어쩌면 지금까지 본 미소와는 조금 다른 처음 보는 미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 적이 없었다. 그 의미가 어떻든, 이유가 어떻든간에 말이다. 언제나 조금씩은 다른 미소. 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선배로서어? 그런건 귀찮잖아. 거기에 한 살 차이기도 하고. 별로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선배로 보지 않아도... 라고 말을 이으려고 했던 주원이었지만, 가까워져오는 그녀의 검지를 보고 자연스레 말꼬리가 흐려져간다. 슬혜의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우아한 움직임으로 톡. 톡. 톡. 닿을듯 말듯 주원의 코 끝을 놀리다 보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마술사의 손놀림같이 펼치곤 사라진다. 손가락은 닿지 않았을지 몰라도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져온 차갑고 간지러운 공기에 주원은 자기도 모르게 코끝을 매만졌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걸. 나에게 있어 슬혜는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따라오지도 않았다구?"
하고 방금 전의 간지럽고 오묘한 공기를 잊으려는 듯 두 입술 끝을 잔뜩 당겨 짓궂은 개구장이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또 함께 석양 내리쬐는 부드러운 빗길을 걷다, 슬혜의 말에 주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빗소리가 둘의 말의 간격을 채울 동안 침묵했다.
"상관 없잖아. 네가 상관 있다면 돌아가겠지만. 끝까지 데려다줄게. 그러려고 따라온거고."
이내 결심한듯 말하지만 결심에 가득찬 목소리나 힘 들어간 목소리가 아닌 그저 당연하다는 말투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빗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누군가 덜 잠긴 수도꼭지를 잠군 것 같이 갑자기 뚝 그쳐버린다. 주원은 우산을 거둔 뒤에도, 비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만큼 우산의 범위에 들어가기 위해 가까이 했던 거리를 굳이 벌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슬혜와 함께 걸었다.
최민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역으로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 일'에는 극단적으로 게을러진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청소는 그 '좋아하지 않는 일'에 해당되었다. 물론 집 청소는 했다.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했다.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청소 당번이라든가, 주번에는 여간 꾸물대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역으로 행동이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2학년 때에 나름대로 터득한 스킬이 있었다. 빗자루로 최대한 넓게, 그리고 대충 교실을 쓸고, 언젠가 대청소 때에나 발견되겠지- 하는 바람을 담아 사물함 밑에 쓸어넣는다. 그리고 적당히 열심히 한 척을 하다 보면 청소가 끝나있는 것이다.
그 날도 그랬다. 최민규는 먼지를 몽땅 사물함 안에 밀어넣었고, 여유롭게 가방을 챙겨 하교를 하려 했다. 집에 가서 떡볶이나 해먹을까, 하며 교실 뒷문을 잠갔다. 이상하게도 청소를 한 날에는 떡볶이를 먹고 싶어졌다. 아마 2학년 때의 버릇인 성 싶기도 했다. '이런 게 파블.. 걔가 누구였더라, 걔. 개 가지고 실험하던 그 놈. 아니,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서는데, 2학년 때의 동지를 마주쳐버린 것이다.
"떡볶이 먹을래?"
그러니까 이 뜬금없는 제안은, 최민규 입장에서는 아주 논리적인 제안이었다. 사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청소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스트레스를 청소나 정리정돈으로 푸는 사람도 있다곤 하던데. 아무래도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팔을 대충 휘적이며 분필 흔적이 남은 칠판을 지웠다. 칠판에 적힌 <주번> 옆의 제 이름도 지우고 싶었다. 지워봤자 내일 또 적힐 게 뻔해서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교탁 위 먼지를 손으로 쓸어 바닥에 버린다. 이젠 바닥을 청소할 차례다. 큰 쓰레기를 대충 주워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다섯 개 중 세 개는 안 들어갔다. 괜히 시간만 더 썼다. 쓰레기통 옆에 떨어진 걸 주워서 버리고 빗자루를 들었다. 이제 작은 먼지들을 청소할 차례. 괜히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하자고 했나. 둘이 했음 벌써 끝났겠다. 잡생각을 하면서 슬슬 바닥을 쓸었다. 무성의한 움직임에 먼지가 날려 재채기도 한 번 했다.
바닥을 빛낼 필요는 없겠지. 대청소도 아니고. 적당히 깨끗해진 바닥을 보고 생각한다. 청소도구함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쏟아내듯 넣었다. 창문도 꼼꼼히 닫았다. 떡볶이……. 세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왜지? 교실문을 잠그다 떠오른 의문은 다른 반을 향해 가다 알았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순순히 그러자고 할 것 같아?"
한쪽 입꼬리만 씰룩대며 말하다 결국 웃음이 터진다.
"맞아, 가자."
어깨를 툭툭 치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 민규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였고, 동시에 떡볶이 연합의 재결성에 대한 기쁨의 표시였다.
역시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사하를 보며 옅게 웃었다. 사람 버릇 어디 안 간다는 옛말은 사실이었다. 한달이나 지난(봄방학까지 합하면 두 달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시점에서도, 청소를 하면 이상하게 달짝지근하고 매운 떡볶이가 땡기는 것이었다. 매운 것 못 먹는 주제에, 언젠가 매운 것을 도전해보겠답시고 더 매운 떡볶이를 시켰다가, 결국은 절절매며 콧잔등에 맺힌 땀을 찍어내던 여름이 떠올랐다.
맵기는 보통 맵기로. 덧붙이며 분식집을 향해 갔다. 분식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초에 먼 곳이었으면 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도착한 분식집은 예전 기억과 비슷했다. 문을 밀어 열자 금붕어 풍경이 부딪혀 소리를 냈다. 자리잡고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떡볶이는, 먹을 거고. 순대도 먹을 거고.
씩 웃었다. 피로 맺은 의리니 어쩌니 하지만, 제일은 떡볶이일 거라 생각했다. 피나 떡볶이 국물이나 빨간색 아닌가. 그리고 피는 아프거나 징그럽기만 하지, 떡볶이 국물처럼 맛있지도 않으니까 어느 쪽으로 보든 떡볶이의 승리다.
"와, 대박. 벌써 배고파."
걸음이 빨라졌다. 며칠 굶은 것도 아니고 몇 시간 전에 점심 먹었는데. 괜히 성장기라는 좋은 구실을 내세워본다. 키는 더이상 크지 않는데도.
분식집은 벽이 낙서로 빼곡했다. 이름과 날짜를 적은 낙서 위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적은 낙서, 그 위엔 다시 <숙제 하기 싫어.> 같은 푸념을 적은 낙서가. 무의식 중에 벽을 봤다가 한참이나 낙서들을 읽기도 했다. 그중 몇 개는 천장에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저기까지 닿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듬튀김에 튀긴 만두도 있지? 좋아."
테이블에 있는 주문서와 연필을 끌어왔다. 떡볶이 2인분에, 삶은 계란이랑 모듬튀김이랑 순대랑 쿨피스. 거침없이 종이를 채워나가던 손이 멈췄다. 잠시 고민한다. 이러다 옆으로 크는 거 아닌가.
"나… 하나만. 너는 몇 개 먹을 거야?"
나 원래부터 양심 같은 거 없었어. 그래도 하나만 먹잖아. 속으로 정신승리하며 민규에게 물었다. 낡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이따금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퍽 뻔뻔한 얼굴로 실없는 소리를 했다. 표정만큼은 한없이 진지했다. 아니 뭐, 떡볶이 먹는 연맹 배신하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하지 않겠어
메뉴판만 뚫어져라 보다가, 사하가 뭐하나 살펴봤더니 벽이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 제 시선도 옮기자 빼곡한 낙서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걸 읽고 있었구나. 낙서를 읽다 보니 꽤나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공부 하기 싫다.', 'ㅇㅇㅇ 선생님 사실 대머리', '학교 폭파시켜주세요', '여기 떡볶이 맛있어요' 등등. 심지어 천장에도 몇 자 끼적여놓은 것들이 있었다.
"왜, 너도 적고 싶어서?"
천장 바라보던 사하 보고 입 열었다. 적고 싶어한다면야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진짜 하나만 먹을 거야?"
주문서 채워나가는 것 보다가 일부러 짓궂게 물었다.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래놓고선 제 몫 주문서에는 두 개 적었다. 털털거리며 선풍기가 돌아갔다. 선풍기 바람에 풍경이 닿을 때마다 조금씩 방울 소리가 났다.
>>165 딱히 식도락 여행이 아니었고 애초에 여행도 아니었던데다 일정도 꽤 바빴으므로 먹는 재미도 못 봤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바다 구경은 원없이 실컷 했으니 1승 2패를 거두고 왔다고나 할까 1승이나마 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해인주는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 ͡~ ͜ʖ ͡°)
살짝 떠본 자신의 말에 오히려 나긋나긋하게 받아치는 그를 보니 괜히 어긋난 투로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인걸 알고 있을뿐더러 혹여 아니라 해도 문제될건 없었으니까,
"후후... 선배님 가끔 보면 은근히 능구렁이같은 말 하는거, 자각하고 계신가요?"
자연스럽게 말꼬리를 흐리며 조용해진 그의 바로 앞에서 멋대로 이리저리 오가던 손가락은 마치 '한살 차이 가지고,'라 운을 뗀 그가 빌미를 주었다는양 장난끼를 가득 담은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일난답니다? 세상에 있는 누군가는, 정말 그 말을 철썩같이 믿어버리니까요."
그녀가 개를 싫어하는 이유일까, 한결같이 주인을 따른다 하지만서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고양이와는 달리 개는 항상 은밀한 구석을 찾아내 어쩔수 없이 넘어가도록 만든다. 그런 성향 또한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만,
"그것도 말은 되네요... '같이 있으면 즐겁기에 함께한다.' 음... 꽤 괜찮은 말 같아요."
짓궂은 개구쟁이의 미소, 잠시 입을 닫고 있던 그가 꺼낸 말은 무언가 정한듯 결심에 가득찬 목소리가 아닌 그저 언제나 그랬을법한 평온하고 일상적인 어조로 이루어져있었다. 그것 또한 당연하다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어떤쪽이든 좋다는 걸까.
어찌되었건 자신의 행동은 달라질게 없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네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죠..."
참우습게도, 봄비라는 것이 그러했듯 오래가진 않았다. 적게 내리든 많이 내리든 제스스로 내리고싶은 만큼만 내리고 돌연 끊기는게 여우비와 다를게 없었을까? 그나마 여우비는 낮에 내리기라도 하지만 말이다. 비도 그쳤으니 이미 우산은 치워졌고, 그녀 역시 꽤 가까워진 거리감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멋대로 좋을대로 정하는 변덕이라도 통한건지 거리를 다시 벌리진 않았다.
새슬이랑 사라 시트보면서 쪼끔 후회하고 있는 게 아랑이 키를 150cm으로 할 걸 <<< 요거 입니다... 큽... 원래 150으로 설정했다가 다들 너무 큰 거 같아서 5cm 줬는데, 사라 앞에서는 애매하게 크고, 새슬이 앞에서는 더 애매하게 작아버려서... ㅋㅋ큐ㅠㅠㅠㅠㅠㅠ.... 그라데이션도 된다고 해서 팬톤 컬러 로즈쿼츠&세레니티 찾아왔는데... oO 호련주 예시 색에 이미 있어버려서 어쩌지 하고 있습니다.. :q... 무슨색을 퍼스널로 하지...
>>206 "아이스크림! ..이 없으면, 얼린 물통을 껴안고 있어요!!" >>209 보이 컬러 & 걸 컬러로 아무 색이나 집은 거라서 바꾸면 되긴 허는뎁?! 🙄 무엇보다 내가 들고 온 건 unofficial이니까 눈여겨보지 않아도 괜찮아 :3c 이벤트... 이벤트 넘나 기대하고 있어 😊 아직 초기라서 연애소원이 얼마 안 나올 것 같긴 하지만!
...대단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주인한테 혼날 때 꼬리를 말고 고개 숙여 낑낑거리는 대형견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겨우 들어 표정을 살피는 주원을 보자니,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나쁜 주인... 아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든다. 그런 기분을 표내지 않고 활짝 웃으며 쇼파에 폴짝 앉아 먹여달라고 입 벌리는 주원을 보았다. 아직까지 떨어지지 않고 제자리에 있던 기특한 솜사탕을 열고 잠깐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일회용 포크 두 개를 꺼내 한 입 크기로 떼어낸다. 손가락으로 떼어내면 편하겠지만, 그럼 손가락에 솜사탕이 묻으니까!
한 입, 두 입, 세 입, 네 입... 컵솜사탕의 절반이 빌 때까지 주원에게 먹여주다가, 절반만 남아있을 때가 되면 고정 역할을 했던 포크로 자신이 알아서 솜사탕을 먹을 것이다. 먹을 것은 당연히 나누어 먹지만, 간접 키스는 방지하는 아랑의 야무짐을 주원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른다. 입안에서 달짝지근하게 녹는 솜사탕은 딸기우유의 맛이어서, 아랑은 괜히 진짜 생딸기가 먹고 싶어졌다. 4월, 아직 딸기가 맛있을 때지.
“ 딸기 뷔페 가고 싶네요오. ”
반쯤 남은 솜사탕에서 한두 입 더 먹으면 끝날 시점에, 아랑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 딸기를 작은 동산처럼 쌓아두고 먹고 싶어요~ 첫 알은 그냥 먹고, 두 알째는 연유나 생크림에 찍어 먹고, 세 알째는 초코 퐁듀에 담가 먹고오~”
묘사만 했을 뿐인데 군침이 돌지. 딸기 뷔페 광고 문구로 삽입해도 손색없을 아랑의 말을 듣는 주원 또한 군침을 흘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면, 아랑은 마지막 한두 입은 자기가 먹는 대신에. 주원이 먹던 포크로 솜사탕을 찍어 그의 입가에 가져갈 것이다.
알아요, . . 어떤 일이라도 섣부른 기대는 독이 된대요. . . 그래서 냉철한척 하는 머리는 나를 바보라고 놀려요. . . 작은 쪽지 안에 담긴 한마디는 조금 유치할지 몰라요. 소원이라고 할수나 있을까요. . . 하지만 간절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잠시동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볼게요. 겁쟁이 반쪽짜리에게는 어울릴법한 부탁이겠죠. . . 무채색 같은 세상은 너무나 무서워요. 남몰래 몽상이라는 색을 끼얹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 . 하지만 알아요.
저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무채색으로 그려진 작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걸. . . 그래서 항상 막연한 그리움이 가슴 한 켠을 간질여 오나봐요. 원래는 나도 무채색이었을테니까. . . 기도를 마치면 흐드러진 벚꽃잎처럼 금방 사라지고 말겠지만. 잠시동안 마음은 편안해지겠네요. 까맣게 닫힌 시선과 작은 정적이 흐르고 잠시동안 즐거운 상상을 했어요. 고마워요. 안녕.
>>227 호련이 시트에 첫사랑이라고 적혀 있고, 열린 관계 선관 보니까 궁금해져서요! 호련이 첫사랑을 선관으로 열어두고 계신건지, 아니면 과거 회상에만 나오는 a군 b양... 이런 느낌으로 생각하고 계신건지요! 라일락 좋아하는 이유가 첫사랑 때문인가 해서요.. :3 (신경이 쓰였다)
>>228 열번이요?!?! 전... 좀 더 학기 초라고 생각해서 서너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 아랑이... 맨날 사라시아네반 놀러가진 않고 엎드려 자거나, 다른 반 애 & 다른 학년 선배 만나거나& 혼자 놀거 있거나 & 매점 가 있거나 & 공부하거나... 되게..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요... ㅋㅋㅋㅋㅋㅋㅋ 중간고사 시점이라면 아랑이는 일곱번쯤 놀러갔을 거 같네요! 이미 아는 사이여도 이상치 않다! 셋이서 친구란 걸 아는 게 자연스럽겠네요! (친해진 이유도 알게 될 것 같고!)
>>230 새슬주 천사... ? 감샤합니다! (((꼬옥)))
>>231 oO (띠용) 빠르셔 우동주.... 혹시 설마 아랑주가 모르는 사이에 다들 올리신 건가... 아랑주는 손이 안 비어있어서 아직 못 적었어요! 아랑이가 소원을 빌까...? (흠티콘)
>>233 슬혜주도 천사인가봐... ! 구글 검색해봤는데 새슬주랑 슬혜주가 찾아주신 게 맞는 거 같아요!
>>240 그래서 rgba(255, 255, 255, 0)으로 해야 되는 케이스가 많더라고... :3c
>>249 열어두고 있어!!! 이 기회에 말한다! 호련이는 모든 선관을 열어두고 있다!!! >:3 그리고 엄청 예리하구나. 비설을 이렇게 일찍 들키다니. 라벤더 좋아하는 이유도 첫사랑 때문이야! (일단은 첫사랑이었던 양의 페로몬이 라벤더 향이었다는 설정.. 이건 선관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어서 일단은 미정으로 해 놨어)
원래 호련이 퍼스널 컬러도 핑크와 검정인데(이었는데), 라벤더 염색을 한 건 첫사랑에게 물들었다는 의미지.... 음음. 선관이 정해지지 않으면 그때까지 첫사랑 설정은 a양 b군으로 유지되는 것이야. 😌
주원은 전혀 모르는 타인 얘기를 하는 것 마냥 대꾸한다. 정말 모른다는 것인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그녀의 장난스런 손짓 후
"세상에 있을 누군가씨에게 말해줘야겠네. 철썩같이 믿어도 된다고. 아니면 누군가양인가?"
하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양, 저 멀리 상관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양 대꾸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라고 하든, 스스로 믿지 못할 말을 한 기억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니.
"누군가와 함께 있는건 즐거운걸. 사람마다 그 즐거움의 형태는 다르지만, 난 그걸 찾는게 좋아. 함께 하는 사람마다 느껴져오는 즐거움의 크기나 형태가 다르니까."
주원이 말하는 것은 아마 자신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 자체와,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
"상관 없는 일이라는 말. 무슨 의미로 받아들일지는 너에게 맡길게."
당연한 말을 굳이 슬혜에게 건넨다. 굳이 한 번 더 말함으로서 생각하게 하려는 것일까?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행동이다. 비 그친 거리를 말 없이, 그 거리를 유지한채로 함께 걷는다. 평소 같으면 스스로 이것 저것 말을 쏟아 내었을 주원이지만 갑자기 말이 없다.
먼저 말을 꺼내주길 기다리는 것인지, 단순히 화젯거리가 없는 것인지. 그저 입을 닫은채로 그녀의 옆을 따라 걷고 있다. 무언가 할 말이나, 하려는 행동이 있다면 사람이라면 으레 입술이 달싹거리든, 두 손을 꼼지락거리든 해야 하는 법인데 그런 행동의 전초조차도 없다. 그저 더 가까이도, 더 멀리도 떨어지지 않은채로 옆에서 함께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해인주를 콕 집어 인사를 아직 안 했군. 해인주 안녕! (쓰담쓰담) >>255 이 할미는 눈이 어두워서 저 세 가지 핑크를 구분할 수가 없구나... 홀홀홀.. >>256 ||<bgcolor=#nnnnnn> {{{#!html ...}}} ||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html 내부에서 style로 background 이미지를 설정하면 그게 위키 자체의 테이블 문법보다 위에 와서 bgcolor가 보이지 않는 구조인가 봐. 잠깐만 확인해 볼게!
주인에게 간식을 받아먹는 강아지마냥 눈을 빛내며 그녀가 포크로 떼어주는 솜사탕을 "아~앙."하고 받아 먹는다. 받아먹을 때마다 헤벌레 하고 웃는 것이 기쁜 것인지 아니면 그 솜사탕이 맛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랑이 먹여주기 때문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일지도.
"아~아! 치사해. 나도 먹여줄래."
하고 주원은 아랑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아마 컵솜사탕과 포크를 달라는 손짓 같다. 아랑이 저대로 혼자 먹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주원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 받는다고 한다면 기뻐하며 아랑에게 "아~"하고 컵솜사탕을 먹여주겠지.
"딸기 뷔페? 좋다!"
주원은 눈을 감고 딸기와, 딸기로 만든 온갖 디저트가 장식된 곳을 상상한다. 단 것을 좋아하는 주원이기에 그는 화색을 띄고 "가고 싶어!" 하고 적극적으로 외친다. 그리고 아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알. 하는 말에 "새콤달콤..." 하고, 두 알. 하는 말에 "달달 아삭아삭!" 하고, 세 알. 하는 말에 "달고 식감 좋은 초코맛 딸기..." 하곤 입맛을 다셨다.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 것인지 주원은 꼴깍 하고 평소보다 몇 배나 흘러나오는 침을 삼켰다. 점점 컵솜사탕이 사라지고, 마지막 한 입을 자신이 먹던 포크로 건네자 주원은 어깨를 살짝 늘어트리고 조금 실망한 눈치로 입을 벌려 그 솜사탕을 먹는다.
"예정은 없었어. 어제 새벽까지 만화책을 보고 쭉 자고 있었거든. 그러던 도중 아랑이 온거지! 음... 아, 아무튼! 완전히 비어있어. 완전히! 그렇지.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둘이서 뭘 할지 생각할까?"
하곤 자신의 옆자리의 소파를 톡톡 치며 그녀를 불렀다. 봄날의, 한낮. 아직 밤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262 복잡하군요! :3c.... 어디서 막혀 있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아! 호옥시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금 발견한 건데, transparent라고 하면 html 안에서는 투명색으로 기능하는 것 같은데 시도해 볼래? 이러면 뒤에 있는 bgcolor이 보이던데.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 위로 얊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 마. - 한강, 노랑무늬영원/밝아지기 전에 中
벚나무 아래 섰다. 최민규는 아직도 몇 년 전 맡았던 벚꽃 향을 잊지 못한다. 벚꽃한테 무슨 향이 있냐고, 길어봤자 일주일도 가지 못하는 꽃에게 무슨 향이 있냐고 말하는 내게 벚나무 가지를 꺾어 건네주던 이가 있었다. 꽃에 얼굴을 묻고, 온 정신을 집중해보라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 벚꽃에게서는 정말로 향기가 났다. 아주 연하고, 부드럽고, 선명한 향기가 났다.
자전거를 잠시 벽에 기대 세워놓았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로 걸어들어갔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향기가 나니? 아니, 잘 모르겠어.
넘어져 우는 저에게 다시 일어날 것을 종용하던 이가 있었다. 싫어, 나는 양이잖아. 양이래잖아. 목놓아 울던 아이가 있었다. 내가 노력하면 뭐 해, 어차피 훌륭한 선수도, 훌륭한 사람도 모두 늑대일텐데. 나는 그 발뒷꿈치에서 몸부림치며 허덕이다가 조용히 말라갈텐데. 노력은 거짓말이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타고난 재능을 노력이 메울 수는 없다. 어차피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 또한 나만큼 노력할텐데.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재능이 그 노력마저 효율적으로 만들어버릴텐데. 배신감에 치를 떨며 몸을 옹송그리던 새벽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닦아주던 사람이 있었다. 괜찮다고 말해주던 사람 또한 있었다.
최민규가 향기를 다시 믿기로 한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는 단순한 사람에 속했다. 단순한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거 들었어? 학교 정원의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주머니에서 꾸깃거리는 포스트잇을 꺼내 소원을 꾹꾹 눌러적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자. 소원을 빌자. 나는 이제 막연한 것들을 믿는다. 막연하고, 작고, 하찮고,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믿기로 했다. 그러니 기도를 하자. 나 뿐만이 아니라 순간을 스쳐간 모든 온기를 위해.
눈을 떴을 때는, 바람이 불어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자전거 소리.
규리주 어서와~!! 호련이도 빨리 소원을 정해야 하는데.... 며칠째 피곤보스라 일상을 시작도 못 했엉 선관이라도 열심히 구해야겠다 😅 >>282 로맨틱.... 인가! 인가..? 거기에는 조금 더 숨은 이야기가 있으니 채널고정! 어떻게 될지는 나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지! :3c >>283 원래 비 온 뒤에 풀빛이 푸르다는 말도 있듯이 다크다크한 캐릭터일수록 가장 파릇한 전개가 가능해지는 법이당... >:3
이정도 되면 노골적으로 피하는거라 봐도 되지 않을까? 그의 행동이나 어투엔 모르는척하는 느낌이 다분히 어려있었다. 한두번 그런다면야 그냥 천연이라며 넘긴다 해도... 이정도로 모른다 할 정도면 조금은 의심해볼 여지도 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으려나,
"흐응... 거짓말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말이죠. 뭐, 그부분은 그냥 넘어갈게요~"
의심스러운 눈초리, 조금 더 올라간 입꼬리가 살짝 꿈틀거리면서도 그녀는 정말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딱히 못믿을 이야기를 한건 아니다. 어떻게보면 당연하리만치 정형화된 이야기니까,
"그건 그렇네요~ 저마다 원하는게 다른만큼 그 바람의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르죠. 말에도 색이 스며들어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즐거움을 나눌 이가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일상이자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평범한 것들조차 가지지 못한채 혼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다만 그곳에 그녀를 대입하기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했다.
사람은 원초적인 고독감을 안고 살 것이고 그것은 평범한 인간도, 양도, 늑대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다만 그 고독의 행동반경이 어떻게 뻗어나가냐만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그녀 또한 양으로 태어난 이상 외로움을 필히 느낄 것이다. 다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뿐,
마치 생각할 시간이라도 주는건지, 아니면 딱히 할 말이 없거나 그녀가 말을 걸길 기다리는 건지,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그는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그저 나긋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입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을까? 작게 들려오던 웃음이 평범하게 흘려내는 웃음으로, 그리고 가끔씩 보여주던 배를 부여잡을 정도의 큰 웃음으로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침착해져선 한곳에 멈추어섰다. 그래도 웃은건 단순히 과장한게 아니었는지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혀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닦아보이는 것 또한 그녀의 천성이었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분이네요. 단순히 로망을 찾아 떠나는 살짝 푼수끼 있는 선배님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 심중도 꿰뚫어보시고...
조금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네요."
비어있는 손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대었기에 행여 뻥긋거린다 해도 입모양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얊게 뜬 눈매만큼은 확실하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보듬으려고만 하진 말아주세요. 고양이도... 입질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얼마든지,"
주원은 그녀의 의심하는 태도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 이어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대한 주원의 말에 슬혜가 대답하자
"말에도 색이 스며들어 있다라. 그거 좋다! 내 말엔 어떤 색이 스며들어 있을까. 스스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색이었으면 좋겠다."
하곤 천진난만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마지막 한 마디엔 굳이 주어를 붙이진 않고서.
봄비 냄새 남은 거리를 둘이서 말 없이 걸어가는 시간. 그러던 와중 그녀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슬혜는 작게. 그리고 점점 크게 웃기 시작했다. 주원은 고개를 돌려 점차 크게 웃는 그녀를 바라보다 점차 크게 웃고, 이내 배를 부여잡고 웃는 모습까지 보이자 걱정이 되었는지 손을 뻗으려다, 그 손을 거둔다. 이내 그녀가 침착해지자 갈 곳 잃은 손을 다시 완전히 자기쪽으로 거둔다.
"꿰뚫어보다니. 난 그런거 못해. 그저 내가 하고 싶은걸 할 뿐인걸. 그리고 내가 가능한 만큼 상처주지 않는 선에서. 하지만 상처란건, 스스로 입는 것이기도 하니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
하고 자신은 그런걸 할 줄 모른다며, 겸손을 떠는 것인지 정말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태도로 대답한다.
"그래? 나도 슬혜에게 흥미 있어. 반대로 지금까지 흥미 없었단거야? 그건 조금 상처인걸."
모든 사람에게 흥미를 갖고 대하는 주원으로서는, 어쩌면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말하는 흥미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애초에 흥미의 의미를. 슬혜와 주원이 말하는 흥미의 의미를 깊게 파악하는 것은 스스로 각자밖에 없겠지.
이어 그녀는 손을 입가에 가져대고 얇게 뜬 눈으로 주원을 주시하며 말했다. 주원은 그런 슬혜의 말을 전부 듣고, 잠시 제자리에 멈춰선다.
"보듬으려고 한 적 없어."
라고. 차분하면서도 확실한 말투로. 그녀가 그것의 의미를 파악할 시간을 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내가 중1때, 작은 야생고양이가 지하실에 숨어든 적이 있어. 처음엔 뭣모르고 가까이 갔다가 엄청 할퀴어서 피가 났거든. 그래서 문 열어두고 빨리 나가길 바랬는데, 나가지 않더라구. 조금은 안타까워서 고양이 음식을 사서 갖다줬지. 내가 볼 땐 먹지 않다가, 나가면 먹더라? 그게 조금씩 이어지다, 어느새 내가 오면 울더라구. 중간중간 조금 친해졌다 싶었을 때 만지려고 했는 데 그 때마다 도망치더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렸지. 처음엠 밥만, 그 다음엔 조금 옆에 같이 있다가.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몸을 비비더라구."
주원은 갑자기 전혀 상관도 없는, 맥락도 이어지지 않는 중1때의 고양이와의 이야기를 슬혜에게 해주었다. 과연,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일지는. 그리곤
포크를 문 채로 샐쭉 웃었다. 포크를 내어줄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좀체 거리감 조절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이쪽에서 적절히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주원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면서도 암냠냠 먹었을 것이다.
“ 좋지요~ 겨울 딸기도 맛있지만, 봄 딸기도 맛있으니까요. ”
단 걸 좋아하니까, 딸기 뷔페도 좋아하겠지. 입맛을 다시면 따라 외치는 소리에 키득키득 웃었다. 이럴 때의 선배는 영락없이 어린애 같은지도. 잠에서 막 깬 모습은 좀... 낯선 늑대 같았는데. 이제는 좀 알고 있는 강아지 같다. 뭐, 실체는 강아지가 아니라 청소년기의 늑대겠지만.
...? 철저한 포크 구분에 실망했나?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게 더 위생적이잖아요. 선배. 포크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게 더 합리적이란 거예요.
“ 으응, 그럼 오늘은 만화책 읽기는 더 안 하려나요~ ”
왜 자고 있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완전히 비어있다는 말에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둘이서 생각할까라는 말에는 씨익 웃었다.
“ 날 좋은 봄날이니까 돗자리가 있으면 꽃구경하기 딱이겠네요~ 여기에 돗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오. ”
어느 한쪽이 몸을 기대지 않는 한 닿지 않는, 그러나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앉아서 별사탕 같은 목소리로 재잘댔다. 없으면 신문지라도 깔고 앉을까요~? 라고 물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문지는 없겠지만, 설문지라도 있다면. 그것을 깔고 앉아야 할까? 적당히 깔고 앉을만한 담요가 있는 게 현재로선 베스트일 것 같은데.
천장을 보던 눈이 맞은편으로 돌아온다. 질문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글쎄, 아직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낙서가 뭐라고, 미적지근하게 신중한 반응이다. 솔직한 대답이긴 했다. 하고 싶은지는 아직 스스로에게 안 물어봤다. 찾아보면 제 글씨로 쓰인 것도 있겠지만, 거의 친구들이 신이 나 먼저 적던 것에 몇 글자 보탠 게 전부였다.
"근데 너 저기까지 닿아?"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심지어 민규가 한 물음에 대답이 되지도 않는 것이다. 뱉고 난 뒤에야 깨닫고선 실실 웃는다. 뜬금 없음을 대충 웃음으로 무마해 볼 셈이다.
민규가 마저 채워나가는 주문서를 빤히 쳐다봤다. 직원이 와서 후식 볶음밥 볶아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집중이다. 그러다 날아온 질문에 미간을 좁혔다.
"으음……, 응."
얄팍한 양심이 이겼다. 다 적은 주문서를 가져다내려고 집어들다 민규가 적은 제 몫을 봤다. 배신감에 젖은 눈으로 장난스레 흘겼다.
"다섯 개 먹을 것처럼 굴더니!"
<나 이거 드리고 올게.> 장난은 짧았다. 금세 일어나 주문하고 온 사하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야무지게 물도 떠와 각자 앞에 놓아두었다.
산들고등학교. 그곳의 교정에는 큰 벚꽃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곳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그런 전설이 있다. 그리고 벚꽃이 필때쯔음 되면 많은 학생들이 소원을 빌러 벚꽃나무를 들르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생회실에 들렀다 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1학년 학생들이 들떠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은 보나마나 벚꽃나무에 관한 이야기겠지. 인사를 받아주고서 그들을 스쳐 지나가려하니 그들 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해인 선배, 벚꽃나무에 소원 안비세요? "
역시나 벚꽃나무에 대한 소원을 처음 들어보는 1학년들이 가장 들떠보였다. 나야 이제 세번째니까 별 감흥도 없기는 했지만. 손에 분홍색의 작은 메모지를 들고서 어떤 소원을 빌까 속으로 열심히 생각하고 있겠지.
" 나 두번이나 빌어봤는데, 역시 안들어주더라. 간절함이 부족했나봐. "
물론 벚꽃나무에 소원 따위 빌어본 적이 없지만. 적당한 말로 대답하고서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다시 나가려고 몸을 옮기려하는 내 앞으로 손이 쑤욱 들어왔다. 그리고 작은 분홍색 메모지 한장을 내민채로 나에게 말했다.
" 이번엔 꼭 이루어질꺼에요! 해인 선배도 한번 빌어보는게 어때요? "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쌓아놓은 이미지도 있으니 나는 웃으면서 메모지를 받아들었다. 벚꽃나무라, 앞을 지나다닌적은 많지만 소원을 빌어볼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전설은 전설일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서 받은 메모지를 주머니에 쑤셔놓고 그대로 학교를 나섰다. 하지만 한번 의식해버리고 난 뒤라서 그럴까, 크게 솟아있는 벚꽃나무가 자꾸 시선을 앗아간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벚꽃나무 앞으로 향하고, 그 앞에 서서 메모지를 만지작거렸다.
' ...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켠에서는 정말일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정말 이루어진적도 있다고하던데. 이젠 그 선배들 입장이 되었지만 주변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소문들로도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하니까.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슬며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어서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손을 콱 움켜쥐었다.
" 소원 같은건 옛날에도 많이 빌었어. "
나지막히 중얼거리고 구겨진 메모지를 던져버린다. 단 한번도 이루어준적 없는 소원을 이제와서 이루어준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교내에 꽃구경할만한 데가 있을까요, 지구주...? 😅 (역시 정원?) 정원 쪽으로 가면 소원벚꽃나무가 있을 것 같은데... 🤔 일상에서 소원비는 게 되는 거신가.. ? (지구주 보고 계신다면 제게 정답을 알려줘88) 주원주는 같이 꽃구경 가서 소원비는 전개가 좋으신가요, 아님 소원은 빌지 않고 꽃구경만 하시는 전개가 좋으신가요?
아랑이 포크와 솜사탕을 건네주지 않자 주원은 온 몸으로 소파에서 난동을 부리며 아이가 칭얼거리듯 울먹이며 말한다. 소파에서 몸부림을 치다 이젠 데굴데굴 소파에서 구르며 "나아아도오오 '앙'하고 싶었는데에에" 하고 그녀가 먹을동안 계속 난동을 피웠다.
"언젠가 딸기 뷔페도 같이 가자. 지금은 아니더라도. 꼭."
주원은 아쉽다는 말투로,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지나가는, 언젠가 잊어버릴 약속으로 두지 않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펴 내민다.
"약속. 도장까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듯 하다.
"오늘은 만화책 읽기는 끝. 읽고 있다고 해도 아랑이 있는데 만화책을 읽고 있을 순 없지."
주원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는 듯 콧김을 내뿜으며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그녀가 날 좋은 봄날이니 꽃구경이 어떻겠냐며 묻자 그대로 일어나 부실의 구석의 색바랜 락커로 걸어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락커를 열자 그 곳에는 군용 담요(!!!)가 하나 돌돌 말려있었다.
"원래는 내가 낮잠잘 때 쓰던거지만, 오늘은 부실 들어오자마자 쓰러져서 자서 못 썼거든. 평소에 내가 쓰던거라 냄새는 조금 날지 몰라도 이거라면 쓸 수 있을거야. 어때?"
하곤 돌돌말린 담요를 세로로 들곤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 담요에 가려진 얼굴을 옆으로 쏙 내밀어 그녀를 향해 "헤헷." 하고 기대 가득찬 반짝이는 눈을 하고 응시했다.
>>327 일상에서 소원 빌기.... 아랑주는 천재인가....?! 하지만 주원이라면 분명 무슨 소원을 빌었냐며 엄청 물어보겠지.... 함께 소원! 이런 전개를 놓칠순 없죠. 😋 주원이라면 어어어어엄청 물어보겠지만 왠지 아랑이라면 "안돼요." 하고 거절할 것 같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아랑이니까 결국 주원은 "궁금한데에에에에" 하고 머리를 부여잡고 뒹굴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시다!! 소원 비는 벚나무로!! 레츠고!!
사하의 질문에 천장을 한참 보며 높이를 가늠했다. 사실 가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 눈이 줄자도 아니고.
"글쎄다.. 그래도 점프하면 닿지 않을까?"
퍽 솔직한 대답이다. 키도 작은 편이 아니고, 농구를 하니까 점프력도 나쁘지 않다. 분식집 천장도 높은 편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곤 부엌 쪽을 흘깃 바라봤다. 아무래도 지금 시도하면 주인 아주머니가 뭐라 할 것 같다.
"나중에 내 거 달라고 해도 안 준다."
능청스레 답하곤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마 사하가 달라고 하면 줄 게 분명했다. 그거 오뎅 하나 더 먹는 게 뭐라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도 사람이야, 사람."
양 손을 들어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장난인 걸 아니 이러는 행동이기도 했다. 사하가 다녀오는 동안 식탁 위에 티슈 두 개를 깔고, 그 위에 수저와 젓가락을 놨을까. 티슈는 영 어색하게 접혔지만 못본 척 해주자. 사하가 돌아왔다. 최민규는 물을 받으며 고맙다 인사했다.
점프하면 닿는다는 말에 입술을 동글게 모았다. <오.> 짧은 감탄사를 위한 것이다. 점프해서 하나씩 글씨 쓰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점이나 콕, 혹은 선 하나 찍 긋고 내려오는 것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면 아예 펜촉이 들어가버리거나. 현실에 발 붙인 상상력은 역시 영 재미가 없다.
"역시 뭘 쓸 거면 벽에다 쓰는 게 낫겠어."
결국 재미없는 결론이 난다. 포기가 빠르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원래 안 되는 걸 붙잡고 있는 성격이 못됐다.
"고작 하나 더 먹는 애 거 뺏어먹을 생각 없다."
말투가 마치 <아빠 안 잔다––.>의 그것이다. 말투대로라면 입에서 나온 것과는 다르게 뺏어먹는 게 맞지만, 내용만큼은 진실됐다. 사실 지금 시킨 것도 다 들어갈까 모르겠다. 혼자보다 둘이 먹을 때 훨씬 많이 먹게 되는 건 맞는데… 요즘 양이 좀 줄어서. 나이 먹어서 그런가.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생각도 했다.
"밥 엄청 먹었지. 또… 엄청 누워있었지. 공부 좀 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장수하고 싶어서 안 했어."
안 하던 짓 하다가 갑자기 저승사자 와서 당신 갈때 됐소, 하면 어떻게 해. 어처구니 없는 핑계 같다고? 아주 정확하다.
“ 선배애, 선배는 유치원생 아니고 아무 데서나 누워서 떼쓰면 안 된다고도 했죠오? 안~ 돼요! ”
난동을 피워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주원도 이제 그걸 알고도 남을 나이였다. 언제까지나 떼쓰는 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랑은 주원의 떼를 들어주지 않았다. 어떡하지, 선배. 대학생 돼서도 아무 데서나 저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도 살짝 했다.
“ 그래요~ ”
언젠가 ~ 하자. 빈말인 약속도 많을 터인데, 어쩐지 주원은 빈말이 아닌 것 같다. ‘ 약속은 하겠지마안, 도장은 안 찍어 줄 거야~ ’ 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원 선배라면 찍어줄 때까지 버티고 있을 거 같지이. 아랑은 미소하는 얼굴로 주원의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순순히 걸고 도장까지 찍어주었을 테다.
“ 그 만화책이 너무너무 견딜 수 없이 재밌어도요~? ”
농담 투로 가볍게 물어봤다. 군용 담요... 별로 안 예쁘지만 크기가 크면 되었다. 이거면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담요에 살짝 얼굴을 가렸다가 기대 가득 찬 눈으로 응시하는 주원에게 다가가 까치발을 들었다. 퐁퐁, 가볍게 머리를 두드려 주거나 머리에 손이 안 닿을 것 같으면 어깨를 두드려 주었겠지. 그러고나선 손을 내리고 발도 내렸을 거다. 이걸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방금 너무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얼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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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을 나서서 정원을 걷다보면 벚나무가 줄지어 있는 게 보일 것이고, 그중에서는 조금 특별한 벚나무가 있을 것이다. 사이 좋게 정원 쪽으로 걸어가다가 벚나무를 보면 둘 중 누구 하나는 소원 나무를 생각하겠지.
“ 보니까 생각나네요~ 저어기 제일 큰 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소문이요오. 선배는 3학년이니까 이미 소원 빈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오늘도 학교는 활발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와 배경소리에 같이 들뜬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던 그는 가끔씩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띌 때면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주의를 주곤 했다.
저 애, 아까부터 계속 뛰어다니는데 저러다 넘어지진 않을까?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던 뛰어다니는 붉은머리를 발견한 그가 슬쩍 다가갔다. 2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배가 혼냈다고 우울해지게 만들진 않도록 주의하자! 속으로 다짐하며 바로 앞에까지 다가간 그가 뒤를 보고 멈춘 그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급제동을 걸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반사신경이 받쳐 주었기에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을 수는 있었다.
"아, 괜찮아. 너야말로 다친 곳은 없어? 아까부터 뛰어다니던데, 그러면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
지나가던 같은 반 학생이 괜찮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돌려 괜찮다고 웃으며 대답해준 그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다정한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로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사근사근 달래며 그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응? 절대 방어술?"
갑자기? 잠시 당황하던 그가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보여달라고 대답했다. 마치 어린 조카가 학교에서 배운 걸 자랑하는 걸 구경하며 호응해주는 삼촌 같은 말투였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잠시 기다리던 그가 뒤에서 연필이 날아오는 걸 발견하고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잠깐...! 황급히 소리치며 손을 들어 옆으로 밀치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듯 했다. 자신이 늦었다는 걸 깨닫고 안색이 거무죽죽해지던 그가 정말 다행이게도, 연필이 붙잡히고 그 모든 게 앞에 있는 아이의 장난이었다는 걸 깨닫자 힘이 풀린 다리를 덜덜 떨며 안도했다.
주저앉으면 안 돼, 소리질러도 안 돼. 다른 아이들이 놀랄 거야. 어째서 까먹었을까. 아이는 때때로 해맑게 위험한 장난을 치곤 하는 걸.
"대단하네~. 그렇지만 실수하면 다치니까 앞으로 하지는 마? 누군가가 널 건드리거나 다른 사람이 맞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복도에서도, 어디에서도 네가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마."
그는 식은땀을 흘리는 창백한 안색으로 웃으면서 박수를 짝짝짝짝 쳤다. 이걸 연습하다가 얼마나 다쳤을까. 다른 아이에게 던져달라고 시킨 건 아니겠지? 그가 연필이 날아온 방향을 살폈다.
"미안해. 동생이 사이비는 들어가지 말라고 그래서."
주변에서 흘깃흘깃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그가 다시 흐림 한 점 없는 맑은 안색으로 돌아와 안타까운 듯이 웃으며 거절했다. 악의는 없고, 형이 사이비 포교인에게 끌려갈까봐 걱정한 동생의 천주교, 기독교, 불교도 포스터 준다고 따라가면 안 되지만 그 외는 다 '사이비'라고 부르는 것이고 그런 곳에서 오는 제의는 절대, 저얼대애!! 따라가지 말라는 동생의 가르침이 담긴 말이였다. 그래도 명함은 받은 그가 "이름이 연호였구나~. 성씨도 그렇고 좋은 이름이네. 불과 호랑이 같아서 잘 어울려. 이름 뜻이 뭐야?"라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따분하기만 한 수업 속, 하늘에서 눈을 돌려 내려다 본 정원에 커다란 뭉게구름이 함뿍 피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르고 만 것이다. 벚꽃에 파묻혀서 낮잠을 자 보자, 하고.
거추장스러운 신발과 양말은 나무 아래로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지 오래, 사방을 둘러싼 꽃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려 부서진다.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찬 교실 창문 너머로 아무도 없는 텅 빈 정원, 흐드러진 벚꽃나무, 높은 가지에 기대 누운 밀색 머리칼의 소녀. 깊게 마실수록 나른하게 눈을 감기는 벚꽃향이 꽤.. 마음에 든다. 가지 아래로 늘어뜨린 다리 하나가 힘 없이 불규칙하게 흔들린다.
그러고 보니 애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소원을 이루어 주는 벚나무 요정? 있잖아, 그거 굳이 종이로 써서 건네야만 하는거야? 진짜로 벚나무 요정이라면 여기서 외치는 걸로 대신해서 들어 주지 않을래? 거기에 벚나무 요정이 자기의 말을 듣고 있다는 확신조차 없는데도, 마치 옆에 있는 듯 조곤거리며 졸라 보는 것이다.
으응, 농담이야. 어차피 이런 건 속는 셈 치고 위안을 얻어 가는 것에 불과하잖아. 하지만 그런 점을 좋아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서 눈을 돌려 희망을 바라보는 건 중독되어 버릴 만큼 달콤하니까. 그러니 한번 더 속아 볼래. 여기까지 와서 이런 소리나 중얼거리면 너도 슬프지? 키득키득,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기대 있던 몸을 튕기듯 일으켜 아래를 본다. 투박하게 찢긴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것을 접어 기둥에 던져 넣고는, 두 손을 모아 올리는 아주 찰나의 기도. 뜬 눈에 나른한 웃음기가 가득하다.
“ㅡ!”
무어라 외치는 짤막한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이 금방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가지가 스치는 소리 사이로 아하하하, 하는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묻혀 울렸다.
주원이 난동을 부리고 떼를 쓰는 모습에 아랑이 안 된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것을 멈추고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훌쩍거린다. "아랑은 되지만 나는 안 된다니. 쿨쩍." 그 이유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주원으로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었나보다.
아랑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줄까. 조금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어주자 주원은 환히 미소지으며 "응!" 하고 대답했다.
"으, 윽. 물론이지.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나중에 혼자 읽을 수 있지만, 아랑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있는게 아니니까."
좀 더 길게 있었으면 좋겠지만. 하고 생각하면서도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했다간, 너무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이다! 주원은 이 귀여운 후배를 언제까지도 끌어안고 쓰다듬은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스스로는 거기까지는 들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미 훤히 드러났을지 몰라도. 이어 군용담요를 갖고 온 주원을 보고 아랑이 까치발을 들자 주원은 익숙한 듯 상체를 숙이고 그녀가 쓰다듬을 수 있는 높이로 머리를 낮춰주었다. 아랑의 작은 손이 주원의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자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것이 기뻐서인지 주원은 "으헤헤." 하곤 헤벌레 웃음짓는다.
그녀와 함께 부실을 나와 학교 정원쪽으로 향하니,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원은 벚나무들이 줄지어 잘 보이면서도 시선 정 가운데에 커다란 벚나무가 보이는 곳에 돗자리(가 아닌 군용담요) 를 반으로 접어 깔아둔다. 크기가 왠만큼 되니 반으로 접어도 둘이서 앉기엔 충분했다. 주원은 좀 더 접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좁히게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굳이 왜 더 접었냐며 혼날 것 같아 적당히, 양심적으로, 두 번만 접어 펼쳐둔 것이었다. 접지 안고 폈다간 엉덩이가 아플지도 모르니까.
주원은 앉아 봄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벚꽂 가득 매달린 벚나무들을 응시했다.
"좋다..."
그리곤 작게 중얼거린다. 스스로 의식하고 말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겠지.
>>407 인지도는 높은 편입니다 ㅎ▽ㅎ!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주 나오니까요 권력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다른 레스주와 차별을 두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ㅠ▽ㅠ 지구도 아무래도 학생회장인 편이 동아리 관리나 이벤트에 사용하기 쉬워서 그렇답니다.. 그래도 부회장이니까 동아리 관리 정도는 어느정도 할 것같네요
딱히 어떤 색이라 특정할수 없는 목소리지만 그나마 적당하다 싶은 색을 고르자면 그랬다. 게다가 그의 외모에서도 금빛은 가득했기 때문에, 얼추 맞지 않을까?
"그렇죠. 상처란게 그런 법이랍니다. 참 얄궂기 그지없죠... 나에게는 최선이었던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그런 일 제법 많지 않나요? 물론 거기에 상호이해의 관계라는 부수적인 보완책이 포함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그게 이루어지지 않은채 감정의 골만 깊어져가곤 했다. 그리고 그게 모두가 겪어본 일이고, 그녀 또한 겪어본 일일까? 다른 의미에선 무딘 자신의 자아가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나는 별로 크게 상처입지 않으니까,'라는 말로 덧칠된 위선이었다.
"글쎄요~? 어쩌면 다른 의미로서의 흥미가 아닐까요? 이를테면... 단순한 선후배, 친구의 관계에서 떨어져나와 그 사람의 본질을 알아간다는건, 저로서도 미지를 탐구하는 것과 같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그가 상처를 받았을런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듯 가지런히 내놓던 그녀는 그저 살짝 호를 그린 입으로만 웃어보였다.
보듬어주려한게 아닌, 보듬어지고 싶으면 스스로 오게 될거라는 이야기 이전에 그가 고양이와 만났던 이야기를 꺼내며 차분하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를 건네왔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있던 그녀도 마침 좋아하는 이야기인만큼 싱긋 웃어보였지만, 눈만큼은 평소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 하지만 전 사람이지 고양이가 아닌걸요? 선배님이 아무리 강아지와 비슷하다해도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글쎄요...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렇게 멀찍이 떨어지진 않은 거리, 딱 한발자국만으로도 바싹 달라붙을것 같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그녀는 딱 반절만 걸음을 띄우는가 싶다가도 코가 서로 맞닿을수 있을만큼 발을 들어 홍채의 주름마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그럴만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우리? 고양이로 치자면... 그렇네요. 이제 막 옆에서도 밥을 먹을까말까 한 정도니까요."
그녀만의 대답이 끝나자 그때서야 제대로된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의 품에 들이밀어지는건 아무리 보관용기 속에 있더라도 제법 정성스럽게 담겨진 무언가였고, 무의식적이든 아니든 그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었을 때서야 멀찍이 물러났던 그녀가 자연스럽게 뒤편에 있던 건물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Selamat Jalan, Kawan Saya."
부러 알수 없는 말을 내뱉고서 밝게 웃던 그녀는 그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듯 가볍게 문을 닫았다.
##내일은 좀 나갈 일이 있기도 해서 저녁이나 밤쯤 올거기 때문에 일단 이쯤 해두는 거야! 여기다가 답레로 막레를 달아줘도 좋구, 이걸 막레로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골댕이 일상 재밌었어! 매우메우 캄사합니다 선생님!
>>456 히히히... 😆 >>459 홍람색, 포도색 이라고 입력하면 안 나올 거야! 저 색상들은 아마 웹 색상 이름이 배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고... hex 코드 앞에 # 붙여서 입력해 봐. 아니면 혹시 html 구문 사용 중이라면 background: 빼먹었는지 잘 살펴 보고! 위키문법에서는 두 가지 이상 색상을 한 셀 안에 넣는 게 불가능할 거야. <bgcolor=#733e7f, #5d3462> 이렇게 입력해도 아마 안 나올 걸..? :3
부우웅ㅡ 하늘을 찢고 흰 구름을 만들며 날아가는 비행기, 하늘을 수놓는 새털구름, 눈꺼풀 새를 파고드는 햇살 조각. 투명하게 빛나는 초록빛 눈동자에 비치는 것들. 맥없이 늘어져 있던 두 손을 뻗어 사각형을 만들면 구름 한 조각, 햇살 한 조각, 청명한 하늘 한 켠을 조각내어 가둘 수 있었다. 그 광경은 하늘을 온전히 손 안에 붙든 것 같겠지만 손을 뻗어 움키면 금방 사라져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수업 중인 교사는 고요했다. 이따금씩 창문을 열어 둔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소리가 웅얼거리며 흘러나오긴 했지만ㅡ딱히 귀를 기울여 들을 정도로 흥미롭지도, 귀에 박힐 만큼 선명하지도 않았다. 허공을 꿈질거리던 손이 다시 옥상 바닥과 부딪혔다. 등허리에 닿는 콘크리트 바닥은 제법 딱딱하고 차가웠지만, 오히려 조금의 불편함이 가미된 이 감촉이 좋다. 새슬은 홀로 옥상에 오면 종종 대자로 드러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어떠한 의미는 없었다. 그냥, 그냥 좋으니까.
하늘은 매번 똑같은 법이 없다. 하늘의 색도, 구름의 위치와 모양도, 가끔씩 예고 없이 시야에 날아드는 새나 비행기 같은 장식들까지. 그런 소소하고 느릿한 변화를 관찰하는 게 그저 좋았을 뿐이다. 마음에도 없는 성적을 챙기기 위해 책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나, 미래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이 쪽이 훨씬 낫다. 적어도 새슬은 그렇게 생각했다. 뭐, 대부분의 친구들은 새슬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았지만. 다들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도 좋을 텐데. 그치? 눈을 꿈뻑이며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자신을 미련하다 칭하거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마주하는 건 새슬에게 전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했으나, 역시 아무도 없는 옥상에 홀로 앉아있는 것은 종종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 외롭다고 교실에 앉아 있던 반 친구를 냅다 끌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 남들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으니, 슬며시 피어나는 외로움의 싹은 저 혼자 꾹꾹 짓밟아 삭이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누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인형이라도 데려다가 앉혀 놓으면 좀 나아질까? 홀로 인형과 대화하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쿡쿡거리다가,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뭐어ㅡ아마 오늘의 운이 좋다면 누군가가 오거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지.
슬혜가 말의 색을 말 해갈 때마다 주원은 "응응." 하고 색 하나 하나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거 그냥 내 머리색 아냐?" 하곤 의심스러운 대답을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맞는 것일지도. "그래도 금색이라면, 기쁜걸. 응. 나도 좋아하는 색이니까." 하고 그는 미소를 띄우고 대답한다.
"맞아. 그런 경험은 나도 있으니까. 상처가 걱정돼서, 도움이 될까 하고 건넨 치유의 말이 상대에겐 독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힘들지.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원은 포기하지 않는 쪽이었다. 설령 상처 받는다고 하여도, 상처를 준다 하여도. 결국 함께 그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을테니까. 하고.
"본질을 알아간다. 라..."
주원은 그것을 작게 따라 읊조렸다. 그리곤 스스로 무언가를 납득하듯 몇 번 고개를 몇 번 끄덕인다. 어쩌면 주원이 지금까지 하려고 했던 것을, 이제서야 슬혜도 시작해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건 그렇지. 너도 나도. 비슷할 뿐, 슬혜는 슬혜고 나는 나니까."
하고 대답하는데, 그녀는 살짝 거리를 떨어트리는가 싶더니 발을 들어 코가 닿을만큼, 숨결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가까이 맞대었다. 신비로운 보랏빛과 검은빛 섞인 눈동자. 보라색은 신비스러움. 그리고 우울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검은색이 더 짙은 그녀의 보랏빛 눈은, 어쩐지 어둡게만 보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울하고 차가운 매력에 빠지 할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렇네."
주원은 뒤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눈에 빠지지 않게, 그녀와 반대로 밝은 보리밭과도 같은 황금빛 눈으로 슬혜의 눈을 응시했다. 대답 뒤 그녀는 미소지어보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본 미소중, 가장 진심이 드러날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그녀는 음식의 보관용기를 주원에게 건네주곤 멀찍이 사라지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건넸다. 작별인사. 의 외국어일까? 영어의 good bye라던가, 일본어의 さようなら같은 그런. 주원은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주원은 그녀에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고양이. 그렇게 친해지고 언제나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 문을 계속 열어둔 탓이었겠지. 아직 중학생인 주원은 아주 당연하게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허나 그 고양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 어쩌면 먹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그대로 도망쳐버린 것이었다.
며칠간 그 고양이를 찾아 헤매고, 길거리에서 비슷한 고양이를 보면 곧장 달려가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도망칠 뿐 그 지하실에 며칠 머물렀던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주원은 생각했다. 고양이는, 믿을 수 없다고.
고양이는 고양이. 개는 개. 그리고 현슬혜는 현슬혜이고, 남주원은 남주원이다. 아무리 동물에 빗댄다고 한들 인간이며, 결국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주원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그 고양이와 슬혜가 겹쳐보이는 것이었다.
그녀가 해준 요리는 조리법을 아주 정확히 지켰는지 한 번 데워서 먹는 음식임에도 고기는 아주 부드럽고 소스의 맛은 고기의 끝까지 베어있어 한 입 베어무는 것 만으로도 소스와 육즙이 입안으로 퍼져 금방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이었다. 당근과 감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주원이지만, 그 갈비찜의 당근과 감자도 소스에 절여져 부드럽고 소스의 맛을 머금고 있었기에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요리를 할 줄 모르잖아. 그러니까, 다르지. 응."
주원은 별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납득을 하며 그녀가 만들어준 갈비찜을 싹 비우고도 양이 부족했는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중에 다시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주원이었다.
그가 말 했던가? 아니,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테다. 그가 항상 입에 달고사는 말이었으니까. 그는 지루함을 싫어했다. 혐오하는것 까지야 아니더라도, 지루함을 느끼면 곧잘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여느때처럼 지루하게 앉아서, 지루한 목소리를 들으며, 지루한 책을 펴고, 지루한 샤프를 움직여 필기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지루함은 도를 넘었다. 이래선 안돼.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는 끄적이던 샤프를 필통 속에 고이 집어넣고서 벌떡 일어났다.
" ...? "
열심히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잠시 그를 놀란 눈초리로 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수업 도중에 지루함을 느끼고 도망가는거야 일상다반사였다. 그의 신체능력을 따라잡기란 힘든 일이었으니, 모두 괜한 힘 빼지 말고 그가 나가는 것이나 기다리는 거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평범하게 나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문이 있는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의 지루함은 오늘 도를 넘었다. 그래. 지루하다는 말이 벌써 몇번이나 나왔던가. 아무튼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을 테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겠지.
드르륵,
하며, 미닫이로 된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다들 별 생각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아, 쟤가 더웠나보구나' 라며 아무 일 아닌 것 처럼 넘기려고 했을 테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일어난 일은, 선생님의 입장에서 볼 때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 하하하!! 굿바이, 아듀, 사요나라다!! "
어딘가의 명대사를 읊으며 그는 창문을 넘어 위로 사라졌다. 다행히 뛰어내리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아무튼 창문을 넘었다는 것 자체가 뒤집어질 일이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멍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몇몇 행동력이 투철한 아이들은 이미 창문에 달라붙어서 그가 벽을 잘 타고있는지 감상했다.
-
그가 옥상까지 벽을 타고 올라가는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옥상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마자 보이는, 하얀 머리의 여자아이를 확인하고는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섰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더니, 머리부분을 그녀에게로 겨누었다.
그로부터 한참, 고요하기만 했던 옥상의 공기에 자그마한 이변이 생겼다. 창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와 함께 저 아래에서 무언가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따르는 호쾌하게 웃음소리, 굿바이, 아듀, 사요나라다ㅡ!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다. 대탈출극이라도 찍기 시작한 걸까? 그게 아니면 누군가 드디어 괴도가 될 결심을 굳혔나. 숨을 삼키는 누군가의 음성이 경악에 가까운 것을 보아,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했나 보다. 뛰어내리는 건 재미있지만, 어딘가 하나라도 부러지면 썩 즐겁지 않던데.
여전히 드러누운 자세로 귀로만 상황을 파악하던 새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의 난간에서 알 수 없는 움직임이 느껴진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도 고양이나 새가 아닌 틀림없는 사람의 기척이!
“아앗ㅡ, 살려주세요, 저는 억울합니다~.”
전혀 긴급하지도, 억울하지도 않아 보이는 느릿한 말소리. 새슬이 나른한 웃음을 실실 흘리며 허공에 두 손을 내밀어 뻗는 시늉을 하고는, 냉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네, 아무래도 운이 좋은 날이었나 봐.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머리칼이 오늘따라 유독 반가운 이유는 왜일까. 헤, 하고 헤벌레 웃는 얼굴로 연호를 응시한다.
“호야, 오늘은 대담하네에ㅡ. 나도 다음엔 창문으로 올라와 봐야지.”
오늘은 무슨 수업이었어? 시덥잖은 이야기를 키득거리며 주고받는 땡땡이 동지에게 자, 내려와~ 하며 손바닥을 뻗는 모습이 퍽 천연덕스럽기 그지없다.
"딱 좋은 시간에 왔네. 봐봐ㅡ. 저기에 귀여운 구름이."
느릿하게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는 몽글한 구름이 한 덩이. 뭐가 귀엽다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새를은 구름을 가지고 이것저것 상상하며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민규도 덩달아 점프하며 글 쓰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퍽 우스꽝스러운 꼴이었다. '여기 떡볶이 맛있어요'가 아닌 'ㅇ• _\ ㄱ ㅣ ••'. 천장 위에 의미없는 펜자국이 쿡쿡쿡. 닳아버리는 펜촉까지 다다른 최민규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5년만 어렸다면 진짜 점프해서 천장에 글을 쓰려 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다시 벽에 시선을 짧게 두었다.
"벽에 아무거나 써볼래?"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그저 미련에 불과하다. 아무리 1년이 한참 남았다 해도, 1년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은 아쉬워지기 마련이었다.
"세상에, 자비로우셔라.."
옅게 웃으며 주인집 아주머니가 떡볶이며 순대, 오뎅, 튀김을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떡볶이는 당연히 식탁 정 중앙에 자리잡았다. 사하 앞에 앞접시를 놔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부하면 뇌세포 죽는대."
시덥잖고 근거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면 오히려 똑똑해지지 않을까- 하는 괴상한 논리도 함께 펼쳤다. 결국엔 그래도 잘 지냈다니 다행이네, 하며 결론맺었다. 종종 잘 못 지냈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동급생들도 몇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가 꺼내들고있는 그 사탕은 아무래도 민트초코맛인 모양이다. 참고로 필자는 민초와 연을 끊고 산지 벌써 몇년째다. 아무튼.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뻗어주는 손을 붙잡고 난간 아래로 폴짝 내려왔다. 원래라면 이 정도 높이는 내려가는데에 있어 문제가 아니다. 혼자 내려가는 거여도 점프해서 공중제비를 3바퀴 정도는 돌고 착지까지 할 수 있울 정도다. 하지만 오는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주의로써, 기꺼의 그녀가 내밀어준 손을 잡고 내려온 것이다.
" 안 돼. 안전장치가 없어서 위험하다고? "
내로남불이란 이런걸 두고 이야기 하는걸까. 하지만 위험한 것도 맞는 말이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안낼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서 이리 태연한건 배짱 덕분일까.
" 역사. 덕분에 수업중에 지루하다고만 100번은 생각한것 같아. "
사실 역사가 아니었어도 그는 지루해했을거다. 어떤 수업이든 지루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였지만, 어째 날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지루함의 정도도 달랐다. 참고 버틸 수 있는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다면, 오늘처럼 못참고 뛰쳐나오는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느 구름을 정확히 짚고있는진 모르겠지만....
가방을 열어 한참 뒤적거리더니 책 사이에서 굴러다니는 네임펜을 꺼냈다.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자랑스러운 듯 웃는다.
"이걸로 쓰면 어디에 써도 잘 보일걸."
이미 낙서로 빼곡한 자리는 조금 힘들겠지만, 구석자리를 공략해 잘만 쓰면 나중에 와서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졸업하고도 남아있으면 재밌겠다.>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마음은 2학년인 것 같은데, 어쩌다 3학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간 지나면 먹는 게 나이라곤 하지만.
"그치, 머리 너무 많이 쓰면 안 돼."
선생님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에 더한 말로 맞장구쳤다. <땡큐.> 앞접시에 가볍게 인사하고 포크를 들었다. 제일 먼저 먹는 건 떡볶이다. 역시 청소하고 난 다음엔 떡볶이지. 고개를 끄덕이다 민규를 빤히 쳐다본다.
"…너 은근히 부지런한 거 배신감 느껴지는 거 알아?"
민규가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꽤 잘 하는 것도 알지만, 제게 운동이란 다분히 생산적으로 느껴지는 행위였기에. 난 방학동안 최선을 다해 숨쉬는 것 말곤 안 했는데! –반쯤은 장난인– 배신감을 표출하며 김말이 하나를 먹었다. 떡볶이 국물에 콕 찍어서.
"겨울산이면 눈 쌓인 것도 봤어?"
눈 쌓인 풍경을 꽤 좋아했다. 높은 데서 보는 눈 쌓인 풍경이라, 상상하니 꽤 낭만적이었다.
딱히 물건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 건 아닌데 책에 이름 쓰는 건 좋아했다. 특히 새학기에, 새 책 받았을 때. 한 해에 고작 두 번뿐인 일에 그런 정성을 쏟는 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몇 번 없는 일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니까.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은 좀 길다."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뱉다가 멈췄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런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니라 스쳐가는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이 평화롭다. 그래도 둘이 머리를 모으면 좀 낫지 않을까. <너는 뭐 쓰고 싶은 거 없어?> 궁금한 눈치로 묻는다.
"맨날 실수해서 잔소리 듣다가 성적 칭찬 받으니까 신선하네."
성적이 나쁜 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잘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변동폭이 꽤 있었다. 똑같이 긴장을 해도 어떤 날엔 긴장해서 잘 풀었고, 또 어떤 날엔 긴장해서 연달아 틀렸다. 딱히 특출나게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으니 공부라도 해서 선택의 폭을 늘리자는 전략이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숟가락으로 삶은 계란을 떠서 앞접시로 옮겼다.
"좋아하기만 해? 잘하기도 하잖아."
눈이 마주치면 한 번 웃어준다.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칭찬. 어쩐지 뿌듯하다. 제가 민규를 키운 것도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곤 국물을 떠 먹었다. 입에 남아있던 매운기가 사라진다.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아, 러브레터. 그 장면 생각날 정도면 눈 엄청 왔었나 보네. "
하얀 설원에서 외치는 여자의 모습이 생각났다. 온통 눈으로 하얀 세상에, 화면도 좀 뿌옇게 흐렸던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였다. 학기 초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네임펜을 빌리던 게 생각났다. 하나쯤은 필통에 넣고 다녀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게 벌써 11년이 지났다. 마지막 1년 정도는 가지고 다녀볼까.
사하의 대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뭐로부터 달아나는 거야', 하는 사족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곧 이어진 사하의 질문에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잠시 머리를 굴렸다. 생각을 쥐어짜느라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글쎄... 최민규, 은사하 왔다감..?"
머릿속이 마냥 평화로운 건 이 쪽도 마찬가지였나보다. 한참 고민하다가 가장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저도 머쓱했는지 뒷목을 긁적였다. 하지만 정말 생각이 안 났는걸.
"사람이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뭐."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제 눈에는 싫은 것들을 꾹 참고 그 일에 열중하는, 그러니까, 정확히는 공부를 하는 동급생들이 대단해 보일 뿐이었다. 최민규는 그런 성격이 못 되었다. 정확히는 그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좋아하는 건 있어도 하고 싶은 건 없었다.
"그냥 자주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머쓱하게 웃었다. 괜히 쿨피스나 한잔 더 마셨다.
"그거 제목 러브레터구나. 나는 그 장면밖에 기억이 안 나서... 응, 눈보다는 서리가 더 많았지만. 눈도 많긴 했어."
아주 추운 겨울산. 친척이 빌려준 장비를 둘둘 싸매고 산에 올랐었다. 입 근처에는 하얗게 김이 서리고, 숨은 벅차오르고. 눈 탓에 발걸음은 무겁고. 몸을 움직일수록 땀은 배어나오는데, 정작 옷을 벗으면 저체온증에 걸린단 이야기에 당장이라도 패딩을 벗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었다. 하지만 결국 다다른 산 정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저 하얗기만 한 세상은 오히려 눈이 부셨다. 홋카이도는 이럴까, 하고 잠시 영화 생각을 했더랬다.
>>584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 제가 눈치는 빠른 참치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기전까진 다른분이 어떤 마음이신지 알수가 없어요 😥 물론 가슴속에 혼자만의 소설을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요. 그럼 편한 시간이 되신다면 다시 한번 여쭤볼게요. ˊᗜˋ 나중에 만나요! >>586 >>592 이현주, 주원주 어서와요! 바쁘시면 어장에 못들르는게 당연한거에요 이현주 😆 괜찮아요. 주원주는 더위라도 드신건가요? ㅜㅜㅜ 한여름에 아프시다니.. 빨리 나으시길 바라요.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고 설렁설렁 일어서는 사라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야간자율학습을 건너뛸 특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작년도 2학기 기말고사 및 올해 초의 모의고사에서 쉽게 전과목 만점을 달성한 그 성적 때문이었다. 산들고등학교의 2학년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꼽으라면 배사라가 그 첫 번째로 꼽힐 만했다.
그러나 공부 능력과는 별개로 그녀는 평소에 꽤 산만한 편이었는데, 그녀는 늑대였고 그녀의 재능이 뇌의 학습능력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조금만 골똘히 생각해도 능력 누수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소에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생활습관을 길러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건성건성 가방을 싸고 나서는 길에, 교사 한편의 커다란 벚꽃나무 근처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수업 끝났냐고-이 시간이면 해인도 수업을 마쳤을 것임을 알면서도- 톡을 보내보았다. 몇 차례의 메신저가 오간 뒤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되었다. ...딱히 뭘 할 것도 아니면서 사라는 종종 다른 이와 함께 하교길을 공유하곤 했다.
돌아온 대답도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무난한 선택을 하면 절반은 가는 법이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니어도 대체로 사하의 선택에 있어 기준이 되긴 했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나? 보통의 선택을 하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날짜도 적자. 저어기 학교 폭파 얘기 옆에 자리 조금 있다."
완전히 깨끗하진 않고 파란 볼펜으로 낙서가 되어있긴 했다. 그래도 네임펜을 이길 수는 없지.
"선생님들이 너 반만큼만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3학년이라고 압박을 주는데, 하는 말들이 거기서 거기라 더 지겨웠다. <3월 모의고사가 수능 성적이다.> 같은 말들.
"꾸준히 하는 거 어렵잖아. 조금 더 자신을 기특해하도록 하세요, 최민규 어린이."
검지로 민규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남한테 좋은 말은 잘만 하면서 은근히 자기한테는 야박하다. 괜히 음료수 마시는 게, 민망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좀 더 놀려줄까 하다가 말았다.
"제일 유명한 장면이잖아. 핵심 알면 다 아는 거지. 겨울 추워도 눈 오면 용서 되던데, 네 얘기 들으니까 나도 욕심난다. 엄청 예쁠 것 같아."
말 마치곤 떡볶이 하나 입에 쏙 넣었다. 슬슬 매워져 국물도 한 번 떠 먹고, 순대랑 오뎅도 한 입씩 먹었다. 종류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게 어디서 편식한다고 한소리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메로나 먹고 싶어."
종류를 콕 찝어 얘기한다. 매운 거 먹고 달짝지근한 메론 맛 아이스크림으로 내리면 그렇게 좋더라.
>>641 사라주하고 썰 나눈건 기억나니까 걱정마세요 🤗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당장 내일도 있구요(소근) 사실 갈 시간도 가까워졌고 ㅜㅜㅜㅜㅜㅜ 그나저나 엄청나게 무해해보이는 당근이네요.. 부른 사람 망치로 한대 칠것 같아 ;_; >>644 호련주 어서오세요 😊 10분전에 인사 나눴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 제가 이제 곧 가야하거든요. 조금만 더 시간이 났어도 야무지게 선관어장에서 파닥거릴수 있었겠죠?? 내일은 꼭 시간대가 맞아서 같이 선관 시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수업도 끝이 났다. 오늘은 특히나 어려운 내용이 평소보다 많아서 수업을 따라가질 못했고 정신없이 받아적기만 하다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있었다. 끄응, 늑대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데 난 잘난게 없어서 문제다. 나도 머리나 좋았으면 성공하기 더 쉬웠을텐데. 순식간에 딴 생각으로 흘러가는 생각은 어릴 때의 기억을 불러왔고 그 기억에 휩쓸릴뻔한 나를 건져준건 핸드폰의 진동이었다.
[지금 끝났지.]
수업이 끝났냐는 사라의 톡이었다. 어차피 학년이 달라도 끝나는 시간은 같은데, 굳이 물어보는 이유는 집에 같이 가자고 하려는 것이겠지. 역시나 예상은 적중해서 집에 같이 가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알겠다는 답을 보내놓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평일임에도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었는데 아르바이트가 펑크가 났을때 내가 가서 서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 보상으로 쉴 수가 있었다. 점주님이 평소에 너무 많이 일하는게 아니냐면서 특별히 쉬게 해준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 꼬맹이 배사라씨,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
오늘은 학생회에도 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1층으로 바로 내려가서 사라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나오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기 키에 관해서 놀리는걸 싫어하는 사라였지만 꼬맹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하던 말이라서 최근엔 반응이 별로 없다. 슬슬 다른 별명을 생각해야하나?
"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잘 지내셔? "
어릴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부모님도 자주 뵙곤 했었다. 어릴땐 유복한 집안의 사라가 부러워서 가는게 싫었지만 크면서는 별 생각이 없어져서 자주 가던 때도 있었지.
최민규는 글씨를 적기 전에 그 아래의 낙서를 한번 읽어보았다. 강 모 선생님의 시험 난이도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강 모 선생님, 저한테 고마워하십쇼. 속으로 중얼거리며 '최민규, 은사하 왔다감. 2xxx.04.xx.'를 적었다. 최대한 노력해 '예쁜 글씨체'로 써내는 데에 성공했다. 나름 뿌듯했는지 네임펜을 사하에게 다시 건넨 뒤에도 두어 번 벽을 다시 힐끔거렸다.
"선생님들은 전교 1등한테도 잔소리할걸."
사실 전교 1등이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른다. 전교 꼴등은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겸손도 떨어둘 수 있을 때 떨어두랬잖아."
쿨피스 담은 컵을 매만지며 옅게 웃었다. 그래도 웃는 걸 보아하니 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기분 좋은 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중에 수능 끝나고 갈래?"
위험하니까 아주 낮은 산으로 가야겠지만. 덧붙였다. 슬슬 분식도 바닥나고 있다. 세상에, 이걸 다 먹을 수는 있구나. 하는 짧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고등학생의 위장은 무한하다지만, 최민규에게도 꽤 많은 양이었나보다. 그러고도 아이스크림을 생각하자 다시 배 한구석이 허전해오는 자기 자신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메로나 좋지."
그리고 아이스크림 내기는 최민규가 가장 자신있는(가위바위보는 미지의 영역이긴 했다) 종목이기도 했다.
>>649 지구캡틴 어서오세요 🥰 매번 오랜만에 뵙는것처럼 반가워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하지만 그만큼 반갑다는 말씀! 😉 그런데 이제 가야한다니 너무 아쉽네요 ㅜㅜㅜㅜㅜ.. 양호쌤이랑 학회장님이랑도 일상 선관 해보고 싶은데 ㅠㅠ 언젠간 기회가 되겠죠? >>650 🤣 더이상 긴말 필요 없겠죠? 24시간 후에 봬요 😄 다음엔 무해한 당근을.. >>657 혹시 저때문에 괜히 일찍 시간을 맞추시는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 선관 짤 기회는 아직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고마워요, 호련주도 좋은 밤 되세요 🥰 >>656 >>658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진단 제 마음속에 저장하고 떠나갈게요 ˊᗜˋ 모두 안녕!
>>652 련이의 바보력이 있다면 초스피드로 친해질 수 있을 거야 😉 >>656 첫사랑.. 같은 학교..!? 앗 아앗 >>660 피구력 53만인 련이한테 공이 머리카락이라도 스칠 정도면 페로몬이 극심하게 고갈되어 있거나 그만큼 상대방이 우수하다는 것이니 깔끔하게 승복하고 수비 라인으로 간다!
글씨를 적어나가는 민규를 본다.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조금 웃었다. 꽤 공들인 것 같은 글씨는 제법 그럴 듯하다. 양손 엄지를 모두 세우고 가볍게 박수도 쳤다. 만족의 표시다. 다음에 와서도 이 자리에 앉게 되면, 아니 다른 자리에 앉게 돼도 은근하게 낙서를 찾게 될 것 같다.
"전교 1등 그래서 안 한다니까. 1등 하고도 잔소리 들음 얼마나 기분 나빠."
제가 말하고도 웃겼는지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웃음참기 대실패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도 1등과는 거리가 꽤 됐다. 질투도 해본 적 없다. 못 할 거라는 거 알아서.
"어허,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면 그런 줄 아세요."
짐짓 엄한 선생님 흉내를 내며 말한다. 곧바로 2차 웃음참기를 실패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빤하다.
"수능 끝나면 할 것도 없을 텐데 학교 빠지고 갈까."
나름 합법적인 땡땡이 아닌가. 대놓고 빠질 정도로 용감하지는 않아도, 수능 끝난 이후라면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초심자 배려 차원인지, 낮은 산으로 간다는데 냉큼 물 수밖에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근데 쟤가 나 데리고 간 거 후회하면 어떡하지. 잠깐 고민하다… 힘내보기로 다짐한다. 몇 개 안 남은 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키고 나서부터 좀 많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용케 많이도 비웠다. 배는 엄청나게 불렀지만 간식용 위는 따로 있는 법.
평균보다 주어진게 적으니 평균에 맞추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좀 더 여유롭게 살듯이. 평균은 항상 일정하고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라고 말하면 너무 삭막한 느낌이긴 하지만. 부족한 사람이 더 일해서 맞추는건 원래 당연한 얘기지.
" 항상 하는 일인데 과로까지야. 오늘은 쉬니까 바로 집으로 가려고. "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10시까지 하고나서 집에 도착해 씻으면 11시 정도가 되어있는게 보통이다. 다음날 등교를 위해서 적어도 한시까지는 자야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두시간 남짓. 점주님이 챙겨주시는 폐기도시락을 먹고 그날 배운 것들을 몇번 훑어보고나면 주어진 시간은 다 지나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면 학교를 갈 시간. 정신없이 하루를 사는지라 시간도 굉장히 빠르다.
" 또 그 신상품 먹여볼라는거지? 얼마전에 나온 그거. 그거 절대 안먹어. 절대! "
하굣길에 편의점에 가자는 제안에 나는 질색팔색하면서 얘기했다. 이미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나는 절대 입에도 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는데. 물론 진정 음료를 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한 나는 교정에 일렬로 죽 늘어선 벚꽃나무들을 보았다. 신학기라서 그럴까 중앙의 큰 나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 너도 저 벚꽃나무에 대한 전설 알지? 소원 빌어본적 있어? "
사라라면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실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안빌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끌고가서 빌었으려나. 물론 나는 소원을 빌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반박할 수가 없는 논리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누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저 말 해야지, 하고 가슴 속에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잠시 말에 뜸을 들였다.
"말하면서 웃으면 멋없어요."
그리고 자기도 웃어버린다. 이 말 하기 직전까지 웃음을 꾹 참았던 모양이다. 소리내서 웃는다 해도 퍽 작은 웃음소리다. 오히려 소리없이 웃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 때 학교 빠지는 건 결석도 아니래."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다. 애초에 교칙이 엄한 편도 아니다. 수능 끝나고 빠지는 것 정도는 너그러이 넘어가주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게다가 아주 건전한 활동 아닌가. 체력 단련, 우정 도모, 자연과의 공감... 최민규마저도 그럴듯하게 꾸며낼 수 있는 수식어를 찾아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겨울 산행이라 해도 낮은 산이면 덜 위험하고.
아참 해인주! 답레를 쓰다가 "중학교 때 철모르고 내가 받는 용돈을 반 나눠주겠다고 했다가, 해인한테 꿀밤을 얻어맞고 며칠 정도 해인이 말을 받아주지 않은 적이 있었다." 라는 문장을 쓰게 됐는데 이 부분 피드백 괜찮을까..? 적폐캐해라 매우 긴장됩니다... 캐붕/관계붕괴 등의 위험이 있다면 꼭 말해줘, 수정할게!
선생님 흉내는 처참하게 망했는데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따라온다. 조금 놀란 눈이 됐다. 곧 그럴 필요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칭은 이 공격을 위해 추진력을 얻으려는 목적이었군. 말이 공격이지 유쾌하기만 했다.
민규의 말에 불편하지도 않았던 마음이 더 편해졌다. 생존확인 겸 학교에서 연락을 돌리는 일은 있다던데, 그때 연락만 잘 받으면 되는 것 같았다. 친구랑 등산하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칭찬 받는 거 아닐까.
"좋아, 그럼 빠지자."
굳은 결심이 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하진 않았지만, 인생 첫 무단결석을 할 생각에 조금은 두근거렸다. 좋은 쪽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정작 일탈 같은 일탈은 기를 쓰고 막는 어른들이니까. 그렇게 말리는 일을 할 정도로 의욕이 있지는 않아서 여태 안 했는데, 무의식 중에 원하고 있었나?
"─…" 사라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철모르고 내가 받는 용돈을 반 나눠주겠다고 했다가, 해인이 한 달 동안이나 삐져버리는 바람에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그땐 속모르고 해인이 마냥 원망스러웠는데, 고등학생이 됐다고 어설프게 머리가 굵어서 그때 해인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이젠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다. 해인이 아둥바둥 사는 것에 별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어설픈 이해의 한 맥락이었다.
"아둥바둥하다가 앓아눕거나 다치지 마시고. 병원비 나간다." ...그렇지만 걱정되는 것은 걱정되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쉰다니 다행이네."
해인이 철벽을 치자, 사라는 들으란 듯이 혀를 쯧 하고 찼다.
"고추튀김맛 프라이칩을 먹여보려고 했는데 거 참 아깝게 됐네."
그 무슨 끔찍한 혼종! 그러나 사라는 끝끝내 그 끔찍한 혼종을 먹일 심산인지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편의점은 꼭 들리자구."
하고 발걸음을 떼려던 사라는, 떼어놓던 발을 원위치시켰다. 해인이 자신을 따라 발을 움직일 기색이 없이 어딘가로 시선을 두고 있었던 탓이다. 사라 역시도 발걸음을 멈추고는 시선을 돌린다. 교정에 만발한 벚꽃이 참 아름답다. 1학기에서도 며칠 정도만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다. 예쁘다- 하고 무심결에 중얼거리던 사라는, 해인이 툭 꺼낸 말에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엥? 어... 그런 게 있었어?"
...그러나 이것은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라 작년 이맘때에도 거의 똑같이 나눴던 대화다. 구구단을 25단까지 외워뒀다면서 뭐지 이 바보는?
물론 얼마전에 몸이 아팠던건 비밀이다. 아무리 학생이라 팔팔하다지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보면 몸이 축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크게 아프지 않게 관리는 하고 있지만 하루 정도 몸살이 나는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집에 가서 약 먹고 푹 자면 낫는 것은 역시나 팔팔한 고등학생이라 가능한 일이다.
" 절 . 대 . 안 . 먹 . 어 . "
강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그걸 끝내 먹일 심산인것 같았다. 그리고 이 밀당의 결과물은 결국 내가 져서 한입 먹게 될 것이다. 항상 같은 레퍼토리였으니까. 그리고 내 말을 들은 사라의 눈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 깜빡인다. 이것 봐라?
" 허어? 내가 작년에도 말해줬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이야? "
맨날 구구단을 25단까지 외웠냐느니 다음엔 더 외워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배사라씨. 그럼에도 이런 쪽에는 영 기억력이 없는듯했다. 아니 기억력이 없는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머리에서 지웠다는게 더 정확하겠지. 이미 학교에서 배울게 없는 수준인데 기억력을 논하는게 무의미한 수준이다. 나는 벚꽃나무를 가리키면서 다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저기 저 큰 벚꽃나무 보이지? 저기에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거기에 소원이 담긴 쪽지를 넣고 간절히 빌면 이루어준다는, 그런 전설이 있다고 하더라. 주변 친구들이 들떠서 얘기해주고 그러지 않아? "
아마 말해줬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거나 그런 것이겠지. 나는 벚꽃나무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세인은 오늘따라 날씨가 좋은 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되도 않는 소리로 답지도 않게 낮잠도 자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나, 교실에서 나와, 아예 본관 건물 밖으로 나와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시작한 것을 막심이 후회했다. 저에게도 좋은 날씨는 남에게도 좋은 날씨인 것을, 반찬투정을 하는 아홉 살 꼬맹이나 반려견을 데리고 걷는 노인 남녀노소 그러니까... 제 눈앞의 대한민국 수도권 산들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에게도 날씨는 좋았을 것이다. 그래, 빌어먹을 담배 피우기 좋은 날씨지.
아아, 들리나요?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 제우스 오딘 브라흐마 ... 들리십니까 똑똑? 신은 계십니까? 벚나무 안에 계신 겁니까?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에 거주 중인 열여덟 살 한세인은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나무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뒤뜰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회장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적어도 다 피우고 난 후나 막 피우려던 참이면 모른척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지금도 그냥 못 본 척 지나갈 수도 있겠으나 곤란하게도 담배를 문 학생회장과 눈을 마주친 동시에 마치 영화처럼 거센 바람이 한번 불었고, 자유를 원하는 담요가 힘 빠진 팔에서 벗어나 펄렁하고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양아ㅊ... 아니 학생회장의 쪽으로 스트라이크! 정확한 조준이었습니다!
"..... 아니, 저, 그, 때리지 말, 아니, 일부러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당황스러움과 억울함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니 담요는 여기서 왜 날아간 것이며 학생회장은 왜 뒤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류은(동생)이가 좋아하는 담요인데 담배 냄새 배는 거 아냐? 동시에 서브컬처 중독인 한세인의 뇌에서는 수십 개의 담배를 문 양아치가 뒤뜰에서 학생을 폭행하는 수십개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사라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엄마를 축소복붙한 스타일인 잔소리꾼 여동생 사라한테 그런 종류의 일을 눈치채이는 것은 퍽 피곤한 것이었다. 어찌됐건 간만에 쉬는 날이 돌아왔으니 뭔가를 더 하려고 하기보단 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라였기에, 아마 오늘 귀갓길에도 사라는 부득불 진정음료 한 캔을 사서 해인에게 쥐어줄 것이다.
"논 자유에 모미 아냐."
라는 말로, 사라가 사주려는 것이 진정음료가 아니라 고추튀김맛 과자일 것이라는 해인의 오해에 장난스레 기름을 부으면서 말이다. 사라는 해인의 추궁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랬던가아─…"
어쩌면 그렇게 관심사에 없는 화제를 말끔하게 지워버리는 것도 저 놀라운 두뇌가 갖춘 고급 편의기능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그것이 사라를 멍청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지만. 여하간, 이렇게 지목이 되었으니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2년에 걸쳐 두 차례 강조되는 이벤트라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인지도 모르니까.
호야는 싫어해? 민트초코. 역시나 새슬에게는 눈 앞에 들이밀어진 민초사탕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사실 이것저것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는 새슬의 입장에서, 자신을 ‘민초맛 사탕형’에 처한다는 것은.. 입이 심심한 차에 간식거리 하나를 쥐어주는 고마운 일이나 다름 없을 터. 새슬의 시선이 천천히 사탕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한 층 정도는 괜찮잖아아. 지금 호야가 했던 것보단 나을 걸.”
3층에서 올라왔잖아? 호야랑은 나무타기 시합을 해도 재미있겠다. 어느새 난간에 쏠랑 붙어서서는, 자신이 있을 교실과 옥상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듯이 고개를 슬쩍 내밀어 살피는 시늉을 한다.
“백 번밖에? 나라면 오백 번은 했다.”
대체 다른 친구들은 그걸 어떻게 참지? 아리송한 얼굴로 머리를 싸매보아도 도저히 새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참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미래를 사는 것은 미래의 나이지, 현재의 내가 아닌데. 허리를 반쯤 난간에 걸친 퍽 아슬아슬한 자세로, 콘크리트 덩어리에 가려진, 학생들이 있을 그 너머를 응시하며 눈만 껌뻑이는 것이다. 그래도 다들 행복해? 진짜로?
“아ㅡ 그건 선인장이었는데.”
헤ㅡ ( ᐛ ). 하지만 호야가 그렇다면 동물인 걸로 하자. 토끼? 토끼 어때? 태연스럽게 눈웃음치며 웃는다.
“하늘은 맨날 바뀌니까 괜찮아. 그러는 호야도 또 땡땡이잖아?”
교실 책상은 숨 막히고 답답해서 싫어. 창가가 아니면 햇볕에 데워지는 따뜻한 맛도 없잖아. 옥상에 누워 있는 편이 오백 배는 낫다, 뭐. 시답잖은 소리를 해 대며 키득거렸다.
댕.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지구는 볼일을 보러 간다며 친구들을 제쳐두고 3학년 교실과 가까운 1층의 뒤뜰로 익숙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 건물의 뒷편치고는 꽤 그늘지고 구석진 곳이라 학생들이 굳이 찾아오지 않는 장소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발치에는 여러 학생들의 꽁초가 가득했고. 날씨가 맑고 적당히 화창했으나 지구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원체 하늘 따위나 일기예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고 날씨가 우울하든 맑든 그런 것따위에 영향받을 무른 인간이, 늑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 가지의 기분이 평생토록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내려온 이유는 단지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또 깊은 생각을 태워버리기 위해서. 간단했다. 학교 건물에 등을 기대서고 막대를 입에 물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멀리서부터 들렸으니 귀찮게 할 인물은 없다고 판단했고, 손으로 바람을 막고 불꽃은 칙 소리를 내었다. 지구나, 학생회장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있고 또 그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면 담배 냄새가 가끔 난다거나 땡땡이를 치고 불량스럽게 어디든지 누워있다거나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기에 알 사람들은 알았다. 지구는 개의치 않았고. 그럼에도 선생들이 사실을 묵살하고 학생회장 자리에 앉혀놓고 있는 이유는 어른들의 이야기일까. 교실로 돌아갈 땐 손이나 깨끗하게 씻고 근처 자리 여자아이에게 핸드크림이나 바르면 되는 것이다. 연기가 탁하게 피어오르며 흩어 사라지는 것만 좇고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이내 담요를 두르고 있는 남학생이 놀란 기색을 보인다. 그 모습이 근처 토끼장에 토끼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번 훑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는데. 커다란 바람이 불었고, 곧 커다란 형체 모를 것이 펄럭이며 지구의 얼굴을 명중했다. 시야가 검게 가려진 지구는 좋지 않은 예감을 확신했고.. 한가롭게 불량스러운 짓을 하던 중에 방해를 받게 된 것에 화가 난다기 보다는.
"후배."
담배를 건드리지 않은 손으로 담요를 걷어낸 지구의 얼굴은 정말로, 평소랑 다를 바 없었다. 좋게 말하면 평온한, 나쁘게 말하면 무정한 얼굴. 그런 얼굴로 담배를 꼬나물고 웅얼거리듯 세인의 명찰 색을 확인한 지구가 그를 나른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담요를 대충 훑어보던 지구는, 갑작스레 담요를 일자로 길게 쥐고 한쪽 어깨 위로 걸치고서 시선을 세인에게로 옮겼다. 정말 태운지 얼마 안 된 것이고, 아직 상당히 부족하지만. 저쪽의 후배님이 꽤 싫어하는 것 같았으므로 피던 것을 발치에 던지고 불씨를 짓밟았다. 꽤 거리가 있는 그를 이쪽으로 부르면.. 회장 주제에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으니까. 지구는 직접 행동하며 세인의 쪽으로 다가가려했다. 아직 담배냄새가 조금 나려나, 그다지 오래 핀 것이 아니니 금방 빠졌으면 하고.
"한세인?"
가까워진 거리에 그제서야 명확하게 보이는 명찰 속 세인의 이름을 부르며 세인의 얼굴을 건너보았다. 지구의 표정엔 딱히 감정이랄 게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까.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닌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친구를 한두명 데려올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며 지구는 습관적으로 뒷머리를 헝클이듯 긁었다.
"담요 새로 사줄게."
지구는 교복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검은 반지갑을 꺼내서 현금을 세어보고 현금이 낫나,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설명할 생각이 없는 건지 그의 행동은 그 정도가 다였다. 굳이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자면 담배를 피던 중에 담요가 얼굴 쪽으로 날라온 탓에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불씨 끝에 연약한 담요가 붙은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회색의 동그란 모양에 담배빵이 남는 것이겠지. 지구는 말 주변이 없어 어떻게 이 상황을 순탄하게 해쳐나가야 할지 곤란했다. 그래서 한숨이 푹 떨어지고. 차가운 색의 눈동자는 세인을 지켜본다.
아저씨는 성공했기에 가족들과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때부터 사라네 집의 분위기를 부러워했고 커가면서 가족이 생긴다면 절대 우리집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불행에 의해서 불행을 물려주는 연결고리를 내 손으로 끊어버리고 싶었다. 늑대의 재능은 필요 없이, 오롯이 나의 노력으로만.
" 그랬던가? 아주 남이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들으셨네요? "
속 편하게 하는 말을 듣고서 열불이 터지는척 가슴까지 두드려가면서 얘기했지만 사실 사라랑 알고 지낸게 몇년인데 이런 일로 속이 터지면 아마 속이 남아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사라가 꼬맹이라는 말에 면역이 된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비단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 소원이라도 빌려고? "
가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벚꽃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정 아래로 학생들이 오고가는게 보인다. 누군가는 쪽지를 소중히 들고있고 누군가는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있다. 모두가 간절하게 이루고픈 소원을 담아서 쪽지에 써놓았겠지. 그런 학생들을 한명 한명 보면서 벚꽃나무 앞에 가서 섰다.
" 과연 이 나무가 소원을 정말 이루어주는걸까? 그냥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아닐까? "
정말 이루어주는 거라면 모두를 이루어줘야지 굳이 몇명만 이루어주는 이유는 서로의 간절함 대결을 보기 원해서일까? 가장 간절한 사람 몇명만 골라서 소원을 이루어주는걸까.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사실 다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을테니까.
그는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 민초라는 것은 치약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 이 사탕을 건네버리면 그녀에겐 포상이 되어버릴 테다. 애초에 새슬은 아무것도 안했으니 포상이고 뭐고 할것도 없지만, 아무튼 그는 초조해졌다. 그래서 실수를 저질렀다.
" 그, 그, 그럼 불닭맛 소스는 어떨까?! "
사탕을 까고는 그 위에 불닭소스를 들이붓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죄질이 무거운 것으로 소문이 자자한(?) 음식으로 장난치기! 그는 훗날 지옥에서 저 끔찍함 음식을 직접 맛봐야하는 고통에 몸부릴칠 것이다.
본인도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 새슬과 사탕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번갈아가면서 봤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새슬의 입장에선, 그대로 방관하고 있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안 돼. 적어도 내가 있는곳에서 해. 삐끗하기라도 하면 내가 구해줄 수 있을거야. "
그는 본인이 다치는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남이 다치는 것엔 민감해했다. 이 무슨 모순인가 싶지만 그는 이유같은건 설명하려 들지 않고 '아무튼 그럼!' 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난간에 올라 걸터앉았다. 그녀만큼 위태한 모양새였지만 서로간에 그런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건 일상다반사였다.
" 토끼랑 선인장이라... 공통점이 많으니까 그런걸로 하자! "
과연 어떤 공통점이 둘 사이에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갈까마귀와 책상만큼은 공통점이 있겠지.
" 그건 맞지! 탁 트인곳이 훨씬 좋기는 해. "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야외수업을 해도 좋을텐데.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중얼거리며 난간에 눕듯이 했다.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하는 몸짓이었다.
" 오늘은 뭐할래? 멍때리기? 구름 수 세기?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학교가 부숴지지 않도록 누가 안전하게 던지나 내기하기? "
어째 마지막에 정신나간 내기가 튀어나온 것 같ㅈ만 무시하도록 하자. 안전하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노벨상을 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건 지나가는 돌멩이도 알 사실이다.
얼굴에 담요를 뒤집어쓴 게 제법 웃겨서 잠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는 것은 생략하고, 저를 '후배'라고 부르는 것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 이래도 되나? 만 19세 이하 청소년이 재학 중인 학교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선배고 학생회장인데. 한세인의 안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유교 보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 아니 학생회장이고 뭐고 알게 뭐람. 학생회장 그러니까 3학년 붉은 명찰을 달고 계신 온지구 선배님을 쳐다보며 한세인의 뇌는 빠르게 그리고 정신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담배를 피고 있는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아니 그 전 어제 일본 양키 영화를 보았을 때부터 문제였을 지도. 한세인은 최근에 본 영화와 지금 상황을 겹쳐서 보고 있었으니까. 담배를 끄는 장면은 조금 클로즈업 하고, 불쌍한 어린 양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카메라를 조금 멀리해서...
"아, 옙."
그런 도중 불려오는 제 이름에 정신을 차렸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소 떨떠름해 뵈는 목소리가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학생회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분노는 없다는 점? 그리고 그 한치의 흔들림 없는 차분함이 한세인을 더 두렵게 하는 데 있었다. 보통 화를 더 안내는 놈이 무섭고 잔인한 최종 보스 같은 거 아니었나, 그래 어제 본 영화에서 그랬지.
"아니 거 자국 좀 난거 가지고 수선 맞기면 되는 걸 새로 사라는... ..."
젠장. 담요 그거 얼마 한다고 발끈해서 생활감 넘치는 말이 튀어나간 거냐고. 사실 얼마 피우지도 않은 장초를 짓밟을 때부터 신발 바닥의 상태까지 온갖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세인은 넘쳐흐르는 자괴감에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와중에도 한편에서 만화 속 제벌 3세가 재수 없는 대사와 함께 돈을 뿌리고 쌩 가버리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꼭 여기서 주인공은 돈은 됐으니 사과하라며 붙잡지... 한세인은 딴색각들을 떨쳐내려 애쓰며 할 수 있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집에 담요가 많아서요, 별로 그러시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학생회장 선배님."
아~, 뭐라 할 틈도 없이 민트색 막대사탕 위에 붉은 소스가 흩뿌려졌다. 아주 잠깐의 정적, 흘러내리는 소스를 응시하는 나른한 눈빛.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경악보다 호기심에 가까운 것을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두어 번 눈을 끔뻑이며 당황한 연호와 사탕(이제 저걸 사탕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을 번갈아 보더니 씩 눈웃음짓는 것이다.
“호야는 대담한 시도를 하네~, 아직 입에 안 대봤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르지이.”
먹을 거야? 호야가 먹을 거야? 호야가 안 먹으면 내가 먹을래. 연호의 공작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간 듯, 여전히 새슬의 시선은 막대사탕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본다면 쟤는 불닭소스라는 걸 애초에 접해 본 적은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지나치게 태평한 얼굴이었다.
“치사하다아~.”
한 층밖에 안 되는데. 평소에 오르는 나무보다도 어쩌면 간단할 것 같은데! 작게 툴툴대며 난간 밖으로 내밀었던 상체를 당겨오며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느끼는가 싶더니, 금방 난간 위로 훌쩍 뛰어올라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럼 지금은 호야가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배시시 웃어 주고는,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린 채 두어 걸음을 걸었다. 그닥 위태로운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운이 안 좋아서 떨어진다고 해도 잘 구르면 어떻게, 괜찮지 않을까? 운동장을 바라보며 터무니없는 말을 마음속으로 삼킨다.
“오늘은ㅡ 글쎄, 호야는 뭐 하고 싶어?”
난 여기서 계속 구름을 봐도 좋고, 그냥 이야기를 해도 좋고, 다른 곳으로 가도 좋은데. 아, 다이너마이트가 진짜 있으면 호야가 이야기한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실패하면 조금 슬프겠지만. 한 발짝, 두 발짝, 좁은 난간 폭을 내딛는 자신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아, 그러고보니 싸가지 없어 보이니 같은 반의 한 여자아이가 후배들한테 함부로 반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게 뒤늦게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다. 지구는 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그의 입이 떨이지길 가만 기다렸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인상이 찍혔으려나. 2학년 사이에 안좋은 소문이 돌으려나. 그다지 상관은 없었고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으니 헛수고라고 미리 말을 해주어야 할까. 무정한 얼굴에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 아이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에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떨떠름해 보이는 그의 대답 덕에 지구는 죄책감을 느끼며 하늘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내 탓인가.
보통은 새로 사준다고 한다면 냉큼 좋아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좀 달랐다. 왠지 짜증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가 쏘아붙이자 지구는 입을 꾹 닫고 가만 경청했다. 그렇구나. 이 정도는 조금 수선하면 괜찮아지는구나. 평소에 옷에 담배빵이 생겨도 그저 신경쓰지 않고 산 탓에 무지했다. 지갑은 도로 넣고 어깨에 들쳐 메었던 담요를 펼쳐보며 자국이 난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런 담요 뒤에는 앓는 소리를 내는 세인이 있었지.
"그러면 내가 가지면 될까요, 한세인 후배님."
자국을 살펴보고 다시 담요를 손에 쥐었더니 사양하고 있는 세인이 보인다. 목소리는 온화한데, 보기엔 무언가 감정을 꾹 누르고 있는 듯한. 소년. 지구는 그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 건지 공감하기 어려워 뒷머리를 긁적였다가 그런 말을 지껄였다. 나 준다는 얘기 아니었나. 더럽혔으니 너나 가져 같은. 지구는 입이 무거웠으니(정확히는 입술끼리 떨어지는 게) 세인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며
"미안."
그러고보니 어느 쪽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에. 이런 쪽에서도 눈치가 없을 만큼 사회생활에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힘들었지, 어른들은 단순했으니까.. 아무튼 담요를 맞은 건 이쪽이지만. 누가 담요를 맞추던 배구공을 때리던 학교에서 담배나 피고 있던 쪽이 잘못이겠지. 반박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허리를 약간 숙였다.
"죄송하니까 보상하겠습니다."
무정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사과에 낯선 사람같진 않아보였다. 뭐든 그런 일이 잦았는지 알 바는 아니겠지만. 일단 신분을 떠나서 일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었으니까 확답을 듣기 전까진 담요를 건네주고 싶진 않았다. 지구의 어두운 눈이 깜박인다.
주원이 난동을 부리고 떼를 쓰는 모습에 아랑이 안 된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것을 멈추고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훌쩍거린다. "아랑은 되지만 나는 안 된다니. 쿨쩍." 그 이유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주원으로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었나보다.
아랑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줄까. 조금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어주자 주원은 환히 미소지으며 "응!" 하고 대답했다.
"으, 윽. 물론이지.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나중에 혼자 읽을 수 있지만, 아랑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있는게 아니니까."
좀 더 길게 있었으면 좋겠지만. 하고 생각하면서도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했다간, 너무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이다! 주원은 이 귀여운 후배를 언제까지도 끌어안고 쓰다듬은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스스로는 거기까지는 들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미 훤히 드러났을지 몰라도. 이어 군용담요를 갖고 온 주원을 보고 아랑이 까치발을 들자 주원은 익숙한 듯 상체를 숙이고 그녀가 쓰다듬을 수 있는 높이로 머리를 낮춰주었다. 아랑의 작은 손이 주원의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자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것이 기뻐서인지 주원은 "으헤헤." 하곤 헤벌죽 웃음짓는다.
그녀와 함께 부실을 나와 학교 정원쪽으로 향하니,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원은 벚나무들이 줄지어 잘 보이면서도 시선 정 가운데에 커다란 벚나무가 보이는 곳에 돗자리(가 아닌 군용담요)@ 를 반으로 접어 깔아둔다. 크기가 왠만큼 되니 반으로 접어도 둘이서 앉기엔 충분했다. 주원은 좀 더 접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좁히게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굳이 왜 더 접었냐며 혼날 것 같아 적당히, 양심적으로, 두 번만 접어 펼쳐둔 것이었다. 접지 안고 폈다간 엉덩이가 아플지도 모르니까.
주원은 앉아 봄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벚꽂 가득 매달린 벚나무들을 응시했다.
"좋다..."
그리곤 작게 중얼거린다. 스스로 의식하고 말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겠지. 이어 아랑이가 소원에 관해 묻자
"응. 1학년 때 한 번. 2학년 때 한 번. 두 번 다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빌었어. 아랑이와 만난덕에 2학년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말한다. 또, 아랑이의 폭신하고 귀여운 분홍 머리를 쓰다듬으려 오른손을 뻗다 안 된다고 혼날까봐 "으으!" 하고 아쉽다는 듯 괴로운 신음을 흘리곤 손을 거둔다.
그는 사탕을 바러보며 생각티 잠겼다. 의외? 맛있어?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그가 내린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야 민초에 불닭이다! 어찌 그게 맛있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민트의 시원한 맛에 불닭의 매운맛이 곁들여지면 입 속의 격통은 배로 부풀려질 것이 뻔했다. 과연 인간이 이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조차도 그것은 단언하지 못했다. 그녀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일그러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 ......맛있는거라면 내가 먹을거다. "
그래서, 그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 고통은 자신이 받는 것으로 족했다. 친구에게 죽음을 선사하고서 편히 있을 수는 없을것. 당연하게도 그것을 버린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음식가지고 장난을 친 것만으로도 중죄인데, 음식을 먹지않고 버린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심한 죄일테니까.
" 후우.... "
그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서 성호를 긋더니, '넌 목숨 한번 빚진거야' 같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문답무용으로 사탕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으드득, 으득 하며 사탕이 으깨지는 소리가 잠시 주변을 메웠다.
" 내... "
그가 입을 다시 연것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 내 입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
대가는 처참했다. 그는 입 속에서 불닭의 매운 맛이 퍼지자마자 민트의 시원한 맛이 매운맛을 배로 올려버린다. 그것이 계속해서 중첩되며 그의 입속에서 정말 불이 나는것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 치사하다니! 난 너에게 죽음을 허락한 적이 없다!! "
그럼 자기는 괜찮고? 따위의 항의는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을테지... 그녀가 난간 위로 올라서자 최소한의 타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것은 역효과다. 10의 위험도를 막아냈다면 5의 위험도 정도는 허용해야 했다. 그마저도 막아버린다면 내로남불을 넘어서서 그냥 폭거일 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속박할 마음은 없었다. 대신 그는 난간에서 슬쩍 내려와 그녀의 주변을 조금씩 맴돌았다. 그것이 최소한의 허용이길 바라면서.
" 글쎄. 너랑 있으면 뭐든 재밌을것 같긴 한데. "
그의 입장에선 한 사람보다야 둘이 훨싼 좋았다. 혼자 노는것에는 큰 제약이 따랐다. 그의 신체능력 덕분에 혼자 하는 공놀이나 배드민턴 같은것은 가능하다지만, 의사소통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것은 혼잣말로 이어지고, 혼잣말 이후에는 공허함이 남을 뿐이다. 그는 공허함이나 지루함 같은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아, 그 전설 이야기인가.. "
그는 벚꽃나무의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하던데, 솔직히 그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는 직접 보지 않고서야 믿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무교인것도 그 영향을 받아서였다.
" 나는 아직. 그래도 언젠가는 빌어보긴 하겠지? "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새슬의 근처에서 난간을 통해 학교를 내려다보았다.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이 미니어처처럼 작았다. 그는 원래 비생산적인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원이라는 점에서 해볼만 하다고는 생각했다. 어차피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빌어서 이루어지면 좋은거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냥 '역시나~' 라며 넘기면 되는 것이다.
" 너는? 빌었어? "
그는 새슬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워낙 새슬이 마이웨이를 즐기는 것이어서 그럴테다. 그리고 그는 그런 불규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만사 마음대로, 예상대로 되는건 없다' 면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재미없는 일이니까.
아쉽게도, 연호가 만들어내고 만 궁극의 레시피는 맛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호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으드득, 와작와작. 연호의 입 안으로 모습을 감춘 사탕이 갈라져 으깨지는 소리. 저런, 깨물어 먹는 건 이빨에 안 좋은데. 영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자니, 연호의 낯빛이 확연하게 변해가는 것이 시야에 스친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오, 저런. 아무래도 그리 맛있진 않았나 봐.
“푸핫, 아하, 아하하하하! 그게 뭐야~, 아하핫ㅡ”
내 입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희생양의 단말마. 도저히 평범한 미각을 지닌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을 레시피에 도전한 결과는 연호에게 그야말로 처참한 것이었겠으나, 연호 입 안의 상태를 도저히 알 수 없을 새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광경일 뿐이었다.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옥상 한 켠을 채웠다. 그러기를 한참, 실컷 웃어제낀 뒤에야 고인 눈물을 걷어내며 후련한 얼굴로 헤 웃는 것이다. 아~ 역시 호야는 재밌다니까. 불꽃놀이라니, 멋진 표현이네! 그치만 역시 직접 맛보고 싶었어. 그건 좀 아쉽다. 하나만 더 만들어 주면 안 돼? 장난스레 졸라 본다.
“음~ 안 죽을, 걸? 아마도오.”
물론 떨어져도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만큼 멀쩡하려면 운이 아주아주 좋아야겠지만, 이 정도 높이는 괜찮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살짝 몸을 굽혀 저 멀리 바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보면 너 미쳤니? 할 만큼 위험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혹여나 떨어질 것 같으면 연호가 틀림없이 낚아 채 주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믿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소녀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치만 너무 신경쓰이게 하면 싫어할 것 같으니까, 슬슬 그만 두어야지. 마지막으로 저 멀리 심겨진 커다란 벚꽃나무를 흘기듯 바라본 뒤, 새슬은 다시 훌쩍 뛰어 난간에서 내려왔다.
“안 알려 줄건데에ㅡ.”
창문으로 올라오지도 못 하게 하고, 사탕도 안 줬으니까, 나도 안 가르쳐 줄 거야. 장난기와 나른함이 뒤섞인 눈빛. 작고 짧은 하품을 흘리며 늘어져라 기지개를 핀 뒤, 다시 난간에 아무렇게나 기대 선다.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 대가. 그것을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그라고 해도, 그런 엄청난 음식을 먹고서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입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감당하고 난 뒤에도 길게 느껴지는 여운으로 인해,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새슬에게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낸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였다. 때마친 그녀의 웃음도 잦아들었다.
" 내가 널 위해 희생했는데.... 그래도 친구가 웃을 수 있으니 난 기쁘다... "
어쩐지 하얗게 불태운 목소리였다. 하얗게 불탔다고 한다면 그의 입가는 하늘의 구름처럼 새하얘져있었겠지. 하나 더 말들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진짜 만들어줘? 그래도 새슬이가 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
그는 그녀의 태평함을 나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태평함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이런것쯤 버티는건 아무런 타격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방금의 그것은 너무나 강렬했다. 태평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그녀에게도 버티기는 무리가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전의 가설들을 논파한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뒤적여봤는데 아까 그 민초맛 사탕이 하나 더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 아, 안돼...! 이런걸 먹으면 죽고 말거야...! "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으로 친구를 죽이는 일이라니. 지옥에서 이 사탕을 백번정도 더 먹을 죄악이 쌓일테다. 그는 불닭맛 소스를 꺼내는 것 대신에 일단 사탕만 내밀었다.
" 이거라도... "
하지만 불닭맛 소스가 주머니속에 채 전부 들어가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가 신경쓰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뺏어내기란 쉬울테다.
" 대신 어디 하나는 못쓰게 되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숨만 붙어있을 수도... "
그는 별 효과가 없을거라는걸 알면서도 일단은 부정적인 결과를 내세웠다. 아니, 꼭 부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나? 무료함을 싫어하는 새슬이 움직이기 불편한 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그런 결과를 절대 바라지 않았다. 그런 바램이 먹혀들었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새슬은 난간에서 내려왔다. 새슬이 몸을 숙이고 있는것을 본 그가 근처에서 유심히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하다가, 그제야 안심하고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의 질문에 새슬이 알려주지 않겠다는 대답을 핳때 그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새슬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을텐데, 그걸 사전에 막아버린 그로써는 설사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그녀의 입장에선 반대일수도 있으니까.
" 에그타르트? "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에그타르트라니! 그는 지금까지 엄청난 소원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책이나 영상 매체들을 통해서 본 소원이라는 것은 하나같이 엄청난 보상을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렇다보니 그는 딱히 원하지도 않는 엄청난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휩싸여있었던 것이다.
" 그럴까? 어쩐지 재밌는게 생각났어. "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새슬처럼 자신에게 유용한 소원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실현되기만 한다면 꽤나 재미있는 상황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는 평소처럼 창문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려 자세를 잡다가, 옆에 새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만두었다. 새슬이라면 분명히 따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억지를 부려서 '넌 계단으로 내려가있어!' 라고 해봤자 그녀가 따라줄 리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쪽지도 써야하니 교실에 들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일단 옥상의 문을 벌컥 열었다.
" 가보자. 너도 하나 더 빌어봐. 들어줄지도 모르잖아? "
아마 안될것 같기도 했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무언가가 짠돌이가 아니라면 에그타르트를 하나 더 원하는 소원정도는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87 그러게요.. 😥 정말 일이 있지 않고서야 주말땐 한번쯤은 가능하겠죠!! 새로운 시트라니 너무 좋다.. ☺ 예쁜 아이가 하나 더 생긴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하네요. 아무튼 이제 가볼 시간이 다 됐어요 ㅜㅜㅠㅠㅜ 슬혜주 주원주 다들 안녕히 계세요 😭 꿀잠 주무시구요!
아니면 겨울 등산이라는 말에 잔소리 폭탄을 들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탈'이 일상 중 일부가 된 지 오래인 최민규로서는 퍽 당당했다. 학생이 공부에 지쳐 가끔 스트세스를 풀 구석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공부를 언제 했냐고 그러냐, 하는 질문은 안 받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정했다.
"상당히 비장한데.. 혹시 한번도 땡땡이 안 쳐 봤어?"
똑같이 가위를 냈다. 비겼다. 작게 탄식을 했다.
"마음 너무 잘 통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기도 양손 잡고 팔 얽어서 모양 본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이런 내기는 진심이어야 재밌으니까."
그래서 최민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라도 보려 애썼다. 자꾸 보인다 생각하니 뭔가가 보이는 성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