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뭐라 할 틈도 없이 민트색 막대사탕 위에 붉은 소스가 흩뿌려졌다. 아주 잠깐의 정적, 흘러내리는 소스를 응시하는 나른한 눈빛.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경악보다 호기심에 가까운 것을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두어 번 눈을 끔뻑이며 당황한 연호와 사탕(이제 저걸 사탕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을 번갈아 보더니 씩 눈웃음짓는 것이다.
“호야는 대담한 시도를 하네~, 아직 입에 안 대봤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르지이.”
먹을 거야? 호야가 먹을 거야? 호야가 안 먹으면 내가 먹을래. 연호의 공작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간 듯, 여전히 새슬의 시선은 막대사탕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본다면 쟤는 불닭소스라는 걸 애초에 접해 본 적은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지나치게 태평한 얼굴이었다.
“치사하다아~.”
한 층밖에 안 되는데. 평소에 오르는 나무보다도 어쩌면 간단할 것 같은데! 작게 툴툴대며 난간 밖으로 내밀었던 상체를 당겨오며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느끼는가 싶더니, 금방 난간 위로 훌쩍 뛰어올라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럼 지금은 호야가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배시시 웃어 주고는,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린 채 두어 걸음을 걸었다. 그닥 위태로운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운이 안 좋아서 떨어진다고 해도 잘 구르면 어떻게, 괜찮지 않을까? 운동장을 바라보며 터무니없는 말을 마음속으로 삼킨다.
“오늘은ㅡ 글쎄, 호야는 뭐 하고 싶어?”
난 여기서 계속 구름을 봐도 좋고, 그냥 이야기를 해도 좋고, 다른 곳으로 가도 좋은데. 아, 다이너마이트가 진짜 있으면 호야가 이야기한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실패하면 조금 슬프겠지만. 한 발짝, 두 발짝, 좁은 난간 폭을 내딛는 자신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아, 그러고보니 싸가지 없어 보이니 같은 반의 한 여자아이가 후배들한테 함부로 반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게 뒤늦게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다. 지구는 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그의 입이 떨이지길 가만 기다렸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인상이 찍혔으려나. 2학년 사이에 안좋은 소문이 돌으려나. 그다지 상관은 없었고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으니 헛수고라고 미리 말을 해주어야 할까. 무정한 얼굴에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 아이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에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떨떠름해 보이는 그의 대답 덕에 지구는 죄책감을 느끼며 하늘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내 탓인가.
보통은 새로 사준다고 한다면 냉큼 좋아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좀 달랐다. 왠지 짜증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가 쏘아붙이자 지구는 입을 꾹 닫고 가만 경청했다. 그렇구나. 이 정도는 조금 수선하면 괜찮아지는구나. 평소에 옷에 담배빵이 생겨도 그저 신경쓰지 않고 산 탓에 무지했다. 지갑은 도로 넣고 어깨에 들쳐 메었던 담요를 펼쳐보며 자국이 난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런 담요 뒤에는 앓는 소리를 내는 세인이 있었지.
"그러면 내가 가지면 될까요, 한세인 후배님."
자국을 살펴보고 다시 담요를 손에 쥐었더니 사양하고 있는 세인이 보인다. 목소리는 온화한데, 보기엔 무언가 감정을 꾹 누르고 있는 듯한. 소년. 지구는 그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 건지 공감하기 어려워 뒷머리를 긁적였다가 그런 말을 지껄였다. 나 준다는 얘기 아니었나. 더럽혔으니 너나 가져 같은. 지구는 입이 무거웠으니(정확히는 입술끼리 떨어지는 게) 세인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며
"미안."
그러고보니 어느 쪽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에. 이런 쪽에서도 눈치가 없을 만큼 사회생활에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힘들었지, 어른들은 단순했으니까.. 아무튼 담요를 맞은 건 이쪽이지만. 누가 담요를 맞추던 배구공을 때리던 학교에서 담배나 피고 있던 쪽이 잘못이겠지. 반박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허리를 약간 숙였다.
"죄송하니까 보상하겠습니다."
무정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사과에 낯선 사람같진 않아보였다. 뭐든 그런 일이 잦았는지 알 바는 아니겠지만. 일단 신분을 떠나서 일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었으니까 확답을 듣기 전까진 담요를 건네주고 싶진 않았다. 지구의 어두운 눈이 깜박인다.
주원이 난동을 부리고 떼를 쓰는 모습에 아랑이 안 된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것을 멈추고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훌쩍거린다. "아랑은 되지만 나는 안 된다니. 쿨쩍." 그 이유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주원으로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었나보다.
아랑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줄까. 조금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어주자 주원은 환히 미소지으며 "응!" 하고 대답했다.
"으, 윽. 물론이지.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나중에 혼자 읽을 수 있지만, 아랑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있는게 아니니까."
좀 더 길게 있었으면 좋겠지만. 하고 생각하면서도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했다간, 너무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이다! 주원은 이 귀여운 후배를 언제까지도 끌어안고 쓰다듬은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스스로는 거기까지는 들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미 훤히 드러났을지 몰라도. 이어 군용담요를 갖고 온 주원을 보고 아랑이 까치발을 들자 주원은 익숙한 듯 상체를 숙이고 그녀가 쓰다듬을 수 있는 높이로 머리를 낮춰주었다. 아랑의 작은 손이 주원의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자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것이 기뻐서인지 주원은 "으헤헤." 하곤 헤벌죽 웃음짓는다.
그녀와 함께 부실을 나와 학교 정원쪽으로 향하니,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원은 벚나무들이 줄지어 잘 보이면서도 시선 정 가운데에 커다란 벚나무가 보이는 곳에 돗자리(가 아닌 군용담요)@ 를 반으로 접어 깔아둔다. 크기가 왠만큼 되니 반으로 접어도 둘이서 앉기엔 충분했다. 주원은 좀 더 접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좁히게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굳이 왜 더 접었냐며 혼날 것 같아 적당히, 양심적으로, 두 번만 접어 펼쳐둔 것이었다. 접지 안고 폈다간 엉덩이가 아플지도 모르니까.
주원은 앉아 봄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벚꽂 가득 매달린 벚나무들을 응시했다.
"좋다..."
그리곤 작게 중얼거린다. 스스로 의식하고 말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겠지. 이어 아랑이가 소원에 관해 묻자
"응. 1학년 때 한 번. 2학년 때 한 번. 두 번 다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빌었어. 아랑이와 만난덕에 2학년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말한다. 또, 아랑이의 폭신하고 귀여운 분홍 머리를 쓰다듬으려 오른손을 뻗다 안 된다고 혼날까봐 "으으!" 하고 아쉽다는 듯 괴로운 신음을 흘리곤 손을 거둔다.
그는 사탕을 바러보며 생각티 잠겼다. 의외? 맛있어?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그가 내린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야 민초에 불닭이다! 어찌 그게 맛있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민트의 시원한 맛에 불닭의 매운맛이 곁들여지면 입 속의 격통은 배로 부풀려질 것이 뻔했다. 과연 인간이 이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조차도 그것은 단언하지 못했다. 그녀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일그러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 ......맛있는거라면 내가 먹을거다. "
그래서, 그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 고통은 자신이 받는 것으로 족했다. 친구에게 죽음을 선사하고서 편히 있을 수는 없을것. 당연하게도 그것을 버린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음식가지고 장난을 친 것만으로도 중죄인데, 음식을 먹지않고 버린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심한 죄일테니까.
" 후우.... "
그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서 성호를 긋더니, '넌 목숨 한번 빚진거야' 같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문답무용으로 사탕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으드득, 으득 하며 사탕이 으깨지는 소리가 잠시 주변을 메웠다.
" 내... "
그가 입을 다시 연것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 내 입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
대가는 처참했다. 그는 입 속에서 불닭의 매운 맛이 퍼지자마자 민트의 시원한 맛이 매운맛을 배로 올려버린다. 그것이 계속해서 중첩되며 그의 입속에서 정말 불이 나는것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 치사하다니! 난 너에게 죽음을 허락한 적이 없다!! "
그럼 자기는 괜찮고? 따위의 항의는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을테지... 그녀가 난간 위로 올라서자 최소한의 타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것은 역효과다. 10의 위험도를 막아냈다면 5의 위험도 정도는 허용해야 했다. 그마저도 막아버린다면 내로남불을 넘어서서 그냥 폭거일 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속박할 마음은 없었다. 대신 그는 난간에서 슬쩍 내려와 그녀의 주변을 조금씩 맴돌았다. 그것이 최소한의 허용이길 바라면서.
" 글쎄. 너랑 있으면 뭐든 재밌을것 같긴 한데. "
그의 입장에선 한 사람보다야 둘이 훨싼 좋았다. 혼자 노는것에는 큰 제약이 따랐다. 그의 신체능력 덕분에 혼자 하는 공놀이나 배드민턴 같은것은 가능하다지만, 의사소통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것은 혼잣말로 이어지고, 혼잣말 이후에는 공허함이 남을 뿐이다. 그는 공허함이나 지루함 같은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아, 그 전설 이야기인가.. "
그는 벚꽃나무의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하던데, 솔직히 그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는 직접 보지 않고서야 믿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무교인것도 그 영향을 받아서였다.
" 나는 아직. 그래도 언젠가는 빌어보긴 하겠지? "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새슬의 근처에서 난간을 통해 학교를 내려다보았다.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이 미니어처처럼 작았다. 그는 원래 비생산적인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원이라는 점에서 해볼만 하다고는 생각했다. 어차피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빌어서 이루어지면 좋은거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냥 '역시나~' 라며 넘기면 되는 것이다.
" 너는? 빌었어? "
그는 새슬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워낙 새슬이 마이웨이를 즐기는 것이어서 그럴테다. 그리고 그는 그런 불규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만사 마음대로, 예상대로 되는건 없다' 면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재미없는 일이니까.
아쉽게도, 연호가 만들어내고 만 궁극의 레시피는 맛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호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으드득, 와작와작. 연호의 입 안으로 모습을 감춘 사탕이 갈라져 으깨지는 소리. 저런, 깨물어 먹는 건 이빨에 안 좋은데. 영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자니, 연호의 낯빛이 확연하게 변해가는 것이 시야에 스친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오, 저런. 아무래도 그리 맛있진 않았나 봐.
“푸핫, 아하, 아하하하하! 그게 뭐야~, 아하핫ㅡ”
내 입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희생양의 단말마. 도저히 평범한 미각을 지닌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을 레시피에 도전한 결과는 연호에게 그야말로 처참한 것이었겠으나, 연호 입 안의 상태를 도저히 알 수 없을 새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광경일 뿐이었다.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옥상 한 켠을 채웠다. 그러기를 한참, 실컷 웃어제낀 뒤에야 고인 눈물을 걷어내며 후련한 얼굴로 헤 웃는 것이다. 아~ 역시 호야는 재밌다니까. 불꽃놀이라니, 멋진 표현이네! 그치만 역시 직접 맛보고 싶었어. 그건 좀 아쉽다. 하나만 더 만들어 주면 안 돼? 장난스레 졸라 본다.
“음~ 안 죽을, 걸? 아마도오.”
물론 떨어져도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만큼 멀쩡하려면 운이 아주아주 좋아야겠지만, 이 정도 높이는 괜찮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살짝 몸을 굽혀 저 멀리 바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보면 너 미쳤니? 할 만큼 위험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혹여나 떨어질 것 같으면 연호가 틀림없이 낚아 채 주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믿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소녀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치만 너무 신경쓰이게 하면 싫어할 것 같으니까, 슬슬 그만 두어야지. 마지막으로 저 멀리 심겨진 커다란 벚꽃나무를 흘기듯 바라본 뒤, 새슬은 다시 훌쩍 뛰어 난간에서 내려왔다.
“안 알려 줄건데에ㅡ.”
창문으로 올라오지도 못 하게 하고, 사탕도 안 줬으니까, 나도 안 가르쳐 줄 거야. 장난기와 나른함이 뒤섞인 눈빛. 작고 짧은 하품을 흘리며 늘어져라 기지개를 핀 뒤, 다시 난간에 아무렇게나 기대 선다.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 대가. 그것을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그라고 해도, 그런 엄청난 음식을 먹고서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입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감당하고 난 뒤에도 길게 느껴지는 여운으로 인해,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새슬에게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낸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였다. 때마친 그녀의 웃음도 잦아들었다.
" 내가 널 위해 희생했는데.... 그래도 친구가 웃을 수 있으니 난 기쁘다... "
어쩐지 하얗게 불태운 목소리였다. 하얗게 불탔다고 한다면 그의 입가는 하늘의 구름처럼 새하얘져있었겠지. 하나 더 말들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진짜 만들어줘? 그래도 새슬이가 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
그는 그녀의 태평함을 나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태평함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이런것쯤 버티는건 아무런 타격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방금의 그것은 너무나 강렬했다. 태평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그녀에게도 버티기는 무리가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전의 가설들을 논파한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뒤적여봤는데 아까 그 민초맛 사탕이 하나 더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 아, 안돼...! 이런걸 먹으면 죽고 말거야...! "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으로 친구를 죽이는 일이라니. 지옥에서 이 사탕을 백번정도 더 먹을 죄악이 쌓일테다. 그는 불닭맛 소스를 꺼내는 것 대신에 일단 사탕만 내밀었다.
" 이거라도... "
하지만 불닭맛 소스가 주머니속에 채 전부 들어가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가 신경쓰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뺏어내기란 쉬울테다.
" 대신 어디 하나는 못쓰게 되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숨만 붙어있을 수도... "
그는 별 효과가 없을거라는걸 알면서도 일단은 부정적인 결과를 내세웠다. 아니, 꼭 부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나? 무료함을 싫어하는 새슬이 움직이기 불편한 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그런 결과를 절대 바라지 않았다. 그런 바램이 먹혀들었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새슬은 난간에서 내려왔다. 새슬이 몸을 숙이고 있는것을 본 그가 근처에서 유심히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하다가, 그제야 안심하고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의 질문에 새슬이 알려주지 않겠다는 대답을 핳때 그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새슬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을텐데, 그걸 사전에 막아버린 그로써는 설사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그녀의 입장에선 반대일수도 있으니까.
" 에그타르트? "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에그타르트라니! 그는 지금까지 엄청난 소원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책이나 영상 매체들을 통해서 본 소원이라는 것은 하나같이 엄청난 보상을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렇다보니 그는 딱히 원하지도 않는 엄청난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휩싸여있었던 것이다.
" 그럴까? 어쩐지 재밌는게 생각났어. "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새슬처럼 자신에게 유용한 소원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실현되기만 한다면 꽤나 재미있는 상황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는 평소처럼 창문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려 자세를 잡다가, 옆에 새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만두었다. 새슬이라면 분명히 따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억지를 부려서 '넌 계단으로 내려가있어!' 라고 해봤자 그녀가 따라줄 리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쪽지도 써야하니 교실에 들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일단 옥상의 문을 벌컥 열었다.
" 가보자. 너도 하나 더 빌어봐. 들어줄지도 모르잖아? "
아마 안될것 같기도 했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무언가가 짠돌이가 아니라면 에그타르트를 하나 더 원하는 소원정도는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