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 련이의 바보력이 있다면 초스피드로 친해질 수 있을 거야 😉 >>656 첫사랑.. 같은 학교..!? 앗 아앗 >>660 피구력 53만인 련이한테 공이 머리카락이라도 스칠 정도면 페로몬이 극심하게 고갈되어 있거나 그만큼 상대방이 우수하다는 것이니 깔끔하게 승복하고 수비 라인으로 간다!
글씨를 적어나가는 민규를 본다.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조금 웃었다. 꽤 공들인 것 같은 글씨는 제법 그럴 듯하다. 양손 엄지를 모두 세우고 가볍게 박수도 쳤다. 만족의 표시다. 다음에 와서도 이 자리에 앉게 되면, 아니 다른 자리에 앉게 돼도 은근하게 낙서를 찾게 될 것 같다.
"전교 1등 그래서 안 한다니까. 1등 하고도 잔소리 들음 얼마나 기분 나빠."
제가 말하고도 웃겼는지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웃음참기 대실패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도 1등과는 거리가 꽤 됐다. 질투도 해본 적 없다. 못 할 거라는 거 알아서.
"어허,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면 그런 줄 아세요."
짐짓 엄한 선생님 흉내를 내며 말한다. 곧바로 2차 웃음참기를 실패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빤하다.
"수능 끝나면 할 것도 없을 텐데 학교 빠지고 갈까."
나름 합법적인 땡땡이 아닌가. 대놓고 빠질 정도로 용감하지는 않아도, 수능 끝난 이후라면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초심자 배려 차원인지, 낮은 산으로 간다는데 냉큼 물 수밖에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근데 쟤가 나 데리고 간 거 후회하면 어떡하지. 잠깐 고민하다… 힘내보기로 다짐한다. 몇 개 안 남은 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키고 나서부터 좀 많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용케 많이도 비웠다. 배는 엄청나게 불렀지만 간식용 위는 따로 있는 법.
평균보다 주어진게 적으니 평균에 맞추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좀 더 여유롭게 살듯이. 평균은 항상 일정하고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라고 말하면 너무 삭막한 느낌이긴 하지만. 부족한 사람이 더 일해서 맞추는건 원래 당연한 얘기지.
" 항상 하는 일인데 과로까지야. 오늘은 쉬니까 바로 집으로 가려고. "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10시까지 하고나서 집에 도착해 씻으면 11시 정도가 되어있는게 보통이다. 다음날 등교를 위해서 적어도 한시까지는 자야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두시간 남짓. 점주님이 챙겨주시는 폐기도시락을 먹고 그날 배운 것들을 몇번 훑어보고나면 주어진 시간은 다 지나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면 학교를 갈 시간. 정신없이 하루를 사는지라 시간도 굉장히 빠르다.
" 또 그 신상품 먹여볼라는거지? 얼마전에 나온 그거. 그거 절대 안먹어. 절대! "
하굣길에 편의점에 가자는 제안에 나는 질색팔색하면서 얘기했다. 이미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나는 절대 입에도 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는데. 물론 진정 음료를 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한 나는 교정에 일렬로 죽 늘어선 벚꽃나무들을 보았다. 신학기라서 그럴까 중앙의 큰 나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 너도 저 벚꽃나무에 대한 전설 알지? 소원 빌어본적 있어? "
사라라면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실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안빌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끌고가서 빌었으려나. 물론 나는 소원을 빌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반박할 수가 없는 논리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누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저 말 해야지, 하고 가슴 속에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잠시 말에 뜸을 들였다.
"말하면서 웃으면 멋없어요."
그리고 자기도 웃어버린다. 이 말 하기 직전까지 웃음을 꾹 참았던 모양이다. 소리내서 웃는다 해도 퍽 작은 웃음소리다. 오히려 소리없이 웃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 때 학교 빠지는 건 결석도 아니래."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다. 애초에 교칙이 엄한 편도 아니다. 수능 끝나고 빠지는 것 정도는 너그러이 넘어가주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게다가 아주 건전한 활동 아닌가. 체력 단련, 우정 도모, 자연과의 공감... 최민규마저도 그럴듯하게 꾸며낼 수 있는 수식어를 찾아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겨울 산행이라 해도 낮은 산이면 덜 위험하고.
아참 해인주! 답레를 쓰다가 "중학교 때 철모르고 내가 받는 용돈을 반 나눠주겠다고 했다가, 해인한테 꿀밤을 얻어맞고 며칠 정도 해인이 말을 받아주지 않은 적이 있었다." 라는 문장을 쓰게 됐는데 이 부분 피드백 괜찮을까..? 적폐캐해라 매우 긴장됩니다... 캐붕/관계붕괴 등의 위험이 있다면 꼭 말해줘, 수정할게!
선생님 흉내는 처참하게 망했는데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따라온다. 조금 놀란 눈이 됐다. 곧 그럴 필요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칭은 이 공격을 위해 추진력을 얻으려는 목적이었군. 말이 공격이지 유쾌하기만 했다.
민규의 말에 불편하지도 않았던 마음이 더 편해졌다. 생존확인 겸 학교에서 연락을 돌리는 일은 있다던데, 그때 연락만 잘 받으면 되는 것 같았다. 친구랑 등산하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칭찬 받는 거 아닐까.
"좋아, 그럼 빠지자."
굳은 결심이 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하진 않았지만, 인생 첫 무단결석을 할 생각에 조금은 두근거렸다. 좋은 쪽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정작 일탈 같은 일탈은 기를 쓰고 막는 어른들이니까. 그렇게 말리는 일을 할 정도로 의욕이 있지는 않아서 여태 안 했는데, 무의식 중에 원하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