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고 설렁설렁 일어서는 사라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야간자율학습을 건너뛸 특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작년도 2학기 기말고사 및 올해 초의 모의고사에서 쉽게 전과목 만점을 달성한 그 성적 때문이었다. 산들고등학교의 2학년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꼽으라면 배사라가 그 첫 번째로 꼽힐 만했다.
그러나 공부 능력과는 별개로 그녀는 평소에 꽤 산만한 편이었는데, 그녀는 늑대였고 그녀의 재능이 뇌의 학습능력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조금만 골똘히 생각해도 능력 누수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소에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생활습관을 길러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건성건성 가방을 싸고 나서는 길에, 교사 한편의 커다란 벚꽃나무 근처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수업 끝났냐고-이 시간이면 해인도 수업을 마쳤을 것임을 알면서도- 톡을 보내보았다. 몇 차례의 메신저가 오간 뒤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되었다. ...딱히 뭘 할 것도 아니면서 사라는 종종 다른 이와 함께 하교길을 공유하곤 했다.
돌아온 대답도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무난한 선택을 하면 절반은 가는 법이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니어도 대체로 사하의 선택에 있어 기준이 되긴 했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나? 보통의 선택을 하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날짜도 적자. 저어기 학교 폭파 얘기 옆에 자리 조금 있다."
완전히 깨끗하진 않고 파란 볼펜으로 낙서가 되어있긴 했다. 그래도 네임펜을 이길 수는 없지.
"선생님들이 너 반만큼만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3학년이라고 압박을 주는데, 하는 말들이 거기서 거기라 더 지겨웠다. <3월 모의고사가 수능 성적이다.> 같은 말들.
"꾸준히 하는 거 어렵잖아. 조금 더 자신을 기특해하도록 하세요, 최민규 어린이."
검지로 민규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남한테 좋은 말은 잘만 하면서 은근히 자기한테는 야박하다. 괜히 음료수 마시는 게, 민망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좀 더 놀려줄까 하다가 말았다.
"제일 유명한 장면이잖아. 핵심 알면 다 아는 거지. 겨울 추워도 눈 오면 용서 되던데, 네 얘기 들으니까 나도 욕심난다. 엄청 예쁠 것 같아."
말 마치곤 떡볶이 하나 입에 쏙 넣었다. 슬슬 매워져 국물도 한 번 떠 먹고, 순대랑 오뎅도 한 입씩 먹었다. 종류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게 어디서 편식한다고 한소리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메로나 먹고 싶어."
종류를 콕 찝어 얘기한다. 매운 거 먹고 달짝지근한 메론 맛 아이스크림으로 내리면 그렇게 좋더라.
>>641 사라주하고 썰 나눈건 기억나니까 걱정마세요 🤗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당장 내일도 있구요(소근) 사실 갈 시간도 가까워졌고 ㅜㅜㅜㅜㅜㅜ 그나저나 엄청나게 무해해보이는 당근이네요.. 부른 사람 망치로 한대 칠것 같아 ;_; >>644 호련주 어서오세요 😊 10분전에 인사 나눴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 제가 이제 곧 가야하거든요. 조금만 더 시간이 났어도 야무지게 선관어장에서 파닥거릴수 있었겠죠?? 내일은 꼭 시간대가 맞아서 같이 선관 시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수업도 끝이 났다. 오늘은 특히나 어려운 내용이 평소보다 많아서 수업을 따라가질 못했고 정신없이 받아적기만 하다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있었다. 끄응, 늑대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데 난 잘난게 없어서 문제다. 나도 머리나 좋았으면 성공하기 더 쉬웠을텐데. 순식간에 딴 생각으로 흘러가는 생각은 어릴 때의 기억을 불러왔고 그 기억에 휩쓸릴뻔한 나를 건져준건 핸드폰의 진동이었다.
[지금 끝났지.]
수업이 끝났냐는 사라의 톡이었다. 어차피 학년이 달라도 끝나는 시간은 같은데, 굳이 물어보는 이유는 집에 같이 가자고 하려는 것이겠지. 역시나 예상은 적중해서 집에 같이 가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알겠다는 답을 보내놓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평일임에도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었는데 아르바이트가 펑크가 났을때 내가 가서 서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 보상으로 쉴 수가 있었다. 점주님이 평소에 너무 많이 일하는게 아니냐면서 특별히 쉬게 해준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 꼬맹이 배사라씨,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
오늘은 학생회에도 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1층으로 바로 내려가서 사라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나오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기 키에 관해서 놀리는걸 싫어하는 사라였지만 꼬맹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하던 말이라서 최근엔 반응이 별로 없다. 슬슬 다른 별명을 생각해야하나?
"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잘 지내셔? "
어릴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부모님도 자주 뵙곤 했었다. 어릴땐 유복한 집안의 사라가 부러워서 가는게 싫었지만 크면서는 별 생각이 없어져서 자주 가던 때도 있었지.
최민규는 글씨를 적기 전에 그 아래의 낙서를 한번 읽어보았다. 강 모 선생님의 시험 난이도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강 모 선생님, 저한테 고마워하십쇼. 속으로 중얼거리며 '최민규, 은사하 왔다감. 2xxx.04.xx.'를 적었다. 최대한 노력해 '예쁜 글씨체'로 써내는 데에 성공했다. 나름 뿌듯했는지 네임펜을 사하에게 다시 건넨 뒤에도 두어 번 벽을 다시 힐끔거렸다.
"선생님들은 전교 1등한테도 잔소리할걸."
사실 전교 1등이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른다. 전교 꼴등은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겸손도 떨어둘 수 있을 때 떨어두랬잖아."
쿨피스 담은 컵을 매만지며 옅게 웃었다. 그래도 웃는 걸 보아하니 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기분 좋은 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중에 수능 끝나고 갈래?"
위험하니까 아주 낮은 산으로 가야겠지만. 덧붙였다. 슬슬 분식도 바닥나고 있다. 세상에, 이걸 다 먹을 수는 있구나. 하는 짧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고등학생의 위장은 무한하다지만, 최민규에게도 꽤 많은 양이었나보다. 그러고도 아이스크림을 생각하자 다시 배 한구석이 허전해오는 자기 자신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메로나 좋지."
그리고 아이스크림 내기는 최민규가 가장 자신있는(가위바위보는 미지의 영역이긴 했다) 종목이기도 했다.
>>649 지구캡틴 어서오세요 🥰 매번 오랜만에 뵙는것처럼 반가워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하지만 그만큼 반갑다는 말씀! 😉 그런데 이제 가야한다니 너무 아쉽네요 ㅜㅜㅜㅜㅜ.. 양호쌤이랑 학회장님이랑도 일상 선관 해보고 싶은데 ㅠㅠ 언젠간 기회가 되겠죠? >>650 🤣 더이상 긴말 필요 없겠죠? 24시간 후에 봬요 😄 다음엔 무해한 당근을.. >>657 혹시 저때문에 괜히 일찍 시간을 맞추시는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 선관 짤 기회는 아직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고마워요, 호련주도 좋은 밤 되세요 🥰 >>656 >>658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진단 제 마음속에 저장하고 떠나갈게요 ˊᗜˋ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