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전에 부끄러운게 어디 다 사라진 듯 이제는 좀 개운한듯 그녀는 편안한 신색을 유지하며 가만히 윤재의 말에 대답했다. 확실히 한번 졸고나니 조금이나마 피로가 가신 듯 아까전보다는 한결 나아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부에서 만큼은 확실히 페이스 조절을 해야하기에, 그 상황속에서도 피곤함을 떨쳐내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리라.
"아으, 못볼꼴 보였네, 미안해."
하지만 부끄러운건 부끄러운 것인지 그대로 쑥스러운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나름 생체리듬은 잘 조절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빈틈을 보이다니 아직 자신이 미숙하다는 걸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고나서는 윤재에게 다가선다. 항상 교복 아니면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갸름한 얼굴과는 다른 둔탁한 몸이 언밸런스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부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단련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럼, 같이 가자. 어차피 이쯤 되면 공부는 물 건너 갔거든."
이미 수포자에 과포자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그래도 문과쪽으로 갈래를 잡은 덕에 성적은 의외로 여유로웠고, 학교 수업 이상으로 공부를 진행하려다 보니 이런 상황이었지, 보통이었으면 학교에 나와서 딴짓이라도 했을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윤재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살며시 양 옆으로 저었다. 애초에 미안할 일이 뭐가 있고 못볼꼴은 또 무엇이겠는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이 확실하게 뜻을 밝히며 그는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같이 가자는 그 말에 그가 보인 행동은 고개를 짧게 세 번 끄덕이는 것 정도였다.
"...편한대로."
이어 짧게 말을 하며 그는 닫혀있던 교실 뒷문을 연 후에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뭘 마시면 좋을까. 그녀에게 커피를 이야기하긴 했으나 자신은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자판기에서 파는 커피는 그의 입에 맞지 않았다. 집에서 카페를 하기 때문인지 기준이 자연히 그쪽으로 맞춰진 것을 스스로 인식하며 왼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없이 웃은 그는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 따라왔으면 내가 샀겠지만, 따라 나온다면 각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말을 꺼낸 것은 나니까 내가 사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네가 사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냐는 듯이 그렇게 대꾸하며 그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 매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판기가 있는 곳은 그곳이었기에.
"...지진 피해, 너희 쪽은 없어? 나는 등교하다가 2층 창문에서 화분이 떨어지는 것을 봤어."
그리고 일단 조금 더 지켜보다가 말을 할까 했는데 예미주도 말을 하셨던 것도 있고 해서 저도 말을 하자면...
사실 스레가 지속되려면 잡담과 일상 등의 활동도 필요한 사항이에요. 물론 정말로 내가 바빠서 활동할 겨를이 없을 정도라면 제가 뭐라고 말을 할 수 없긴 한데... 정말로 조용히 있기만 하면 제가 아무리 활동하고 대기하고 있어도 스레가 금방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조용히 있지만 말고 잡담이나 일상, 혹은 썰이라도 풀면서 스레에서 활동을 해주셨으면 하고 바래요.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저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스레가 유지될 순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도 다음주부터는 다시 일해야하니 저녁 시간이 되어야만 올 수 있고..(눈물)
이제는 부끄러운게 전부 가라앉은듯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걸음을 재차 옮겼다. 그러고보니 최근들어 남하고 어울리는 일이 자신답지 않게 잦아졌다고 해야하나, 그녀는 해가 서쪽에서 뜰거 같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것은 안 비밀. 그간은 일과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침 6시 즈음의 학교는 이정도로 조용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윤재의 뒤를 따라 걷는다.
"뭘 그래, 내가 사도 돼, 미래의 변호사가 쏘는건데?"
물론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법률쪽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상, 무엇이다로 될 자신이 있었다. 아니 되고 싶었다. 인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항상 몸을 단련하고 또 공부를 한 것이니까, 길에 좌절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으리라. 항상 그렇게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자판기 앞에 다다르기 직전 의외의 화제에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뜬다.
"지진??"
그러고보니 실제로 오늘 아침 새벽같이 움직일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자고 있느라 못느꼈겠지만, 자신은 그때쯤 깨서 아침을 가볍게 먹을 타이밍이었으니까, 어머니도 최근 들어 자주 흔들린다고 말은 했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당장은 피해가 없는데.... 어.... 솔직히 걱정이 안되면 거짓말이려나?"
어제 당장 진혁이랑 대화했던 내용도 있었기에 걱정이 안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냥 가볍게 반 친구를 응원하는 가벼운 톤으로 대답하며 윤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변호사가 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녀가 정말로 변호사가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차피 누구나 꿈은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별다른 말은 더 잇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 매점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길로 발을 내딛으며 그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나도 그래. 원인불명이라고 하는데 원인불명치고 좋은 것은 없었어. 뭔가 불길해."
뭔가 가슴이 속에서 두근거리는 듯한 느낌임을 살며시 덧붙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곧 잊으라고 짧게 말을 덧붙이며 그는 자판기 앞에서 멈춰섰다. 가만히 음료수를 눈으로 흘겨보다 콜라 하나를 뽑은 그는 그녀가 뽑을 수 있도록 살며시 자리를 비켰다.
"지금 이게 계속되면 피난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물론 우리 집은 카페를 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갈 수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