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등교하는 것은 그녀의 습관 아닌 습관이었다. 다른 곳보다 체육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샤워실을 아침 일찍 쓸수 있기에 정신을 깨울겸 등교하자마자 가볍게 운동장 몇바퀴와 유산소 운동, 그리고 가벼운 몸풀기등만 하고서 샤워를 하고 교실에서 자습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하면 개운한 상태 그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었지만..... 너무 개운한 나머지 잠이 솔솔 온다는 것도 문제 아닌 문제였다는게 함정이리라.
"으으.... 너무 개운해서 잠이 온다....."
운동부들이랑 협의해서 운동부가 안쓰는 타이밍에 샤워를 한다는건 아주 완벽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완벽한 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뒤통수 맞고 X되기 전까지는 말이다.'란 말이 있다는걸 그녀는 뒤늦게 떠올리고는 자신 눈앞에 놓여진 사법고시용 문제집들의 문자배열이 어느순간 프로그래밍용 언어로 바뀌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침에 지진을 경험한 그는 또 다시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금 우려하며 학교에 도착했으나 다행히 지진은 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지진의 빈도와 세기가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벌써부터 어딘가에선 피난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한편 그것은 그거고 이건 이것이었다. 일단 그는 바로 자신의 교실로 향했고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졸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급생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졸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자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생각으로 천천히 앞으로 향해 자신의 자리로 가려고 했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가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의 책가방이 근처의 책상을 아주 가볍게 툭 건드렸고 그 때문에 그렇게 거슬리진 않으나, 그래도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의 작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순간 당황하며 윤재는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
깬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사과할 생각으로 그는 그녀가 있는 곳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위치에선 자고 있는지, 아니면 깬 것인지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근처까지 다가가며.
그렇게 한참을 꾸벅이던 그녀의 움직임이 커져 꾸벅이는 강도가 커졌고 이내 그대로 머리를 책상에 쾅! 박으며 굉음과 함께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크고 아름다운 혹을 하나 만들어 내었다.
"아파라....."
자신의 자업자득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마를 문지르며 솟아오른 혹을 쓰다듬는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느껴지는것인지 그녀는 살짝 바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히도 아침일찍 나왔기에 이런 추태를 보는 사람은 없겠지, 하고 안심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엥?"
있다, 누군가 있다. 이 추태를 본 누군가 있다. 그렇게 상대를 확인하자마나 그녀는 순식간에 아주 볼만한 표정이 되었고, 그 표정은 마침내 울먹임 반, 쪽팔림 반으로 일그러진다. 그리고 마침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그는 살며시 눈동자만 회피했다. 설마 저렇게 제대로 머리를 박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거 괜찮나?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가 울먹이자 그는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정말 제대로 박아서 많이 아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곧 입을 열었다.
"괜찮아? 보건실...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는데 일단 가볼래?"
물론 지금 시간에 보건실에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기에 그로서도 말을 꺼내면서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는 차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교무실에 가면 교사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그는 살며시 고개를 교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많이 아프면 얘기해. ...선생님 계시면 불러올테니까."
말을 마치며 그는 우선 책가방을 자신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허나 의자에 앉진 않으며, 일단 그녀의 상태를 살피려는 듯,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서 머리를 박은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려고 했다.
아픈게 아니라 쪽팔려서 부끄러운게 더 크다는 것일까, 그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윤재의 행동에 부끄러운듯이 반쯤 울먹이는 표정을 억지로 감춰가면서 자신이 먹으려던 날달걀을 이마에 문지르며 선생님을 부른다는 윤재의 행동을 만류한다. 이러한 꼴을 누구에게 보여주는건 단 한명으로 족했다.
"그냥 조용히만 해주세요.....다른 분들에게 이야기 하지 말아주시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겨우겨우 윤재를 진정시키며 자신은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해보인뒤 사법고시 문제집을 덮고는 그대로 숨을 돌리려는 찰나, 자신의 시선 안으로 윤재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렇게 가까이 남성이 있는건 아버지를 제외하고 처음인건지 그대로 뒤로 빠지려고 하였고....
조용히 해달라는 그 말에 윤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사자가 그것을 원한다고 하니 그로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허나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는지 그녀가 방금 부딪친 부위를 그는 가만히 바라보다 마침내 거리를 띄웠다.
"...그래? 미안."
이성에 대한 면역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경험이 없는 것인지. 얼굴이 붉게 변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스스로 혼자 납득을 하며 살며시 거리를 띄웠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자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고, 그 때문에 같은 반이라고는 하나 그다지 교류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2학년이 되고 나서 며칠 안 지나기도 했었으니까.
자리에 앉은 윤재는 이어 핸드폰을 꺼냈다. 별 생각 없이 메신저를 켠 후에, 들어온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하지만 딱히 자신이 보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말 없이 메신저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살며시 그녀에게 향했고 그는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살며시 가져가며 이야기했따.
"아까 일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 ...그건 그렇다고 쳐도 공부 열심히 하나 봐. 잘 못 봤지만 공부했던 것 같은데."
이런 아침 시간부터 공부라니. 정말로 열심히 하는구나 라고 혼자서 생각하다 살며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그는 말을 이었다.
조용히 해달라는게 여기서 조용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는 뜻이었는데 아마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게 화근이었으리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황급히 머리 앞부분을 잘 골라내 이마의 혹을 감추면서도 이내 오해를 풀기 위해서 서둘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그대로 이어지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그래도 남부끄러운 행동을 보인건 역시....."
뒷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으리라, 학기 초인데 이런 볼썽사나운 꼴을 보인거 자체가 상당히 쇼크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그녀는 사법고시 문제집을 책상 서랍에 집어 넣은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걱정해줘서 정말 고맙지만 사실 저.... 음, 그냥 말 놓을께요. 내가 존건 사실 책피고 얼마 안되서인걸....."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졸았던 것일까.
"사실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나와서 운동을 하는데..... 운동 끝나고 운동부 샤워실을 내가 쓰거든. 근데..... 그거 있잖아. 샤워 끝나고 몸이 노곤노곤해지는거."
..... 이제야 머리에 상황이 그려질 것이다. 가장 황당하지만, 가장 납득이 가는 부분,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는게 당연한 것이겠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윤재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운동을 하고 샤워까지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일찍 나온 것일까.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부지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대단하네."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짧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슬쩍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거나 학생들이 등교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물론 이미 등교한 학생들도 있을테고, 이곳으로 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 교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조금 자는게 어때? 노곤노곤하면 쉬는게 제일이잖아."
이어 다시 한 번 시계를 힐끗 바라보던 윤재는 깍지를 낀 후에 두 팔을 위로 쭈욱 뻗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 쪽으로 천천히 나갔다. 그러다가 잠시 멈춰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커피 좋아해? ...음료수 하나 뽑는 김에 좋아하면 하나 뽑아오게."
어디까지나 자신의 것을 뽑는 김에 하나 더. 그런 느낌을 살려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아까전에 부끄러운게 어디 다 사라진 듯 이제는 좀 개운한듯 그녀는 편안한 신색을 유지하며 가만히 윤재의 말에 대답했다. 확실히 한번 졸고나니 조금이나마 피로가 가신 듯 아까전보다는 한결 나아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부에서 만큼은 확실히 페이스 조절을 해야하기에, 그 상황속에서도 피곤함을 떨쳐내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리라.
"아으, 못볼꼴 보였네, 미안해."
하지만 부끄러운건 부끄러운 것인지 그대로 쑥스러운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나름 생체리듬은 잘 조절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빈틈을 보이다니 아직 자신이 미숙하다는 걸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고나서는 윤재에게 다가선다. 항상 교복 아니면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갸름한 얼굴과는 다른 둔탁한 몸이 언밸런스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부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단련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럼, 같이 가자. 어차피 이쯤 되면 공부는 물 건너 갔거든."
이미 수포자에 과포자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그래도 문과쪽으로 갈래를 잡은 덕에 성적은 의외로 여유로웠고, 학교 수업 이상으로 공부를 진행하려다 보니 이런 상황이었지, 보통이었으면 학교에 나와서 딴짓이라도 했을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윤재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살며시 양 옆으로 저었다. 애초에 미안할 일이 뭐가 있고 못볼꼴은 또 무엇이겠는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이 확실하게 뜻을 밝히며 그는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같이 가자는 그 말에 그가 보인 행동은 고개를 짧게 세 번 끄덕이는 것 정도였다.
"...편한대로."
이어 짧게 말을 하며 그는 닫혀있던 교실 뒷문을 연 후에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뭘 마시면 좋을까. 그녀에게 커피를 이야기하긴 했으나 자신은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자판기에서 파는 커피는 그의 입에 맞지 않았다. 집에서 카페를 하기 때문인지 기준이 자연히 그쪽으로 맞춰진 것을 스스로 인식하며 왼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없이 웃은 그는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 따라왔으면 내가 샀겠지만, 따라 나온다면 각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말을 꺼낸 것은 나니까 내가 사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네가 사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냐는 듯이 그렇게 대꾸하며 그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 매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판기가 있는 곳은 그곳이었기에.
"...지진 피해, 너희 쪽은 없어? 나는 등교하다가 2층 창문에서 화분이 떨어지는 것을 봤어."
그리고 일단 조금 더 지켜보다가 말을 할까 했는데 예미주도 말을 하셨던 것도 있고 해서 저도 말을 하자면...
사실 스레가 지속되려면 잡담과 일상 등의 활동도 필요한 사항이에요. 물론 정말로 내가 바빠서 활동할 겨를이 없을 정도라면 제가 뭐라고 말을 할 수 없긴 한데... 정말로 조용히 있기만 하면 제가 아무리 활동하고 대기하고 있어도 스레가 금방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조용히 있지만 말고 잡담이나 일상, 혹은 썰이라도 풀면서 스레에서 활동을 해주셨으면 하고 바래요.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저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스레가 유지될 순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도 다음주부터는 다시 일해야하니 저녁 시간이 되어야만 올 수 있고..(눈물)
이제는 부끄러운게 전부 가라앉은듯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걸음을 재차 옮겼다. 그러고보니 최근들어 남하고 어울리는 일이 자신답지 않게 잦아졌다고 해야하나, 그녀는 해가 서쪽에서 뜰거 같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것은 안 비밀. 그간은 일과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침 6시 즈음의 학교는 이정도로 조용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윤재의 뒤를 따라 걷는다.
"뭘 그래, 내가 사도 돼, 미래의 변호사가 쏘는건데?"
물론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법률쪽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상, 무엇이다로 될 자신이 있었다. 아니 되고 싶었다. 인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항상 몸을 단련하고 또 공부를 한 것이니까, 길에 좌절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으리라. 항상 그렇게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자판기 앞에 다다르기 직전 의외의 화제에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뜬다.
"지진??"
그러고보니 실제로 오늘 아침 새벽같이 움직일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자고 있느라 못느꼈겠지만, 자신은 그때쯤 깨서 아침을 가볍게 먹을 타이밍이었으니까, 어머니도 최근 들어 자주 흔들린다고 말은 했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당장은 피해가 없는데.... 어.... 솔직히 걱정이 안되면 거짓말이려나?"
어제 당장 진혁이랑 대화했던 내용도 있었기에 걱정이 안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