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 원내 생활이 어지간히 재밌는지 이젠 라온에도 나오질 않는군 그래. 최근에 기이한 시체가 몇 있던지라 이리 편지 올리네.
금지된 마법으로 인해 죽은 시체가 유독 많네만, 자네의 원내 생활은 안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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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아뢰오니 벗에게 편지 올리오.
편지의 요지는 심심한데 나타나지도 않으니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겠다 그 말이오? 원내에 추종자가 있던지라 소란스러워 쉬이 접선할 수가 없을 뿐이지 아직 명줄이 다하지 않았네만.
이번엔 무슨 일인지? 망자에 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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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벗에게
눈치 빠른 자를 이래서 참 좋아하네. 다만 그것 참 아쉽군! 죽었으면 참 좋았을 게야. 자네 머리카락을 담을 유발함을 내 직접 만들었으니 말입세. 박제는 어떤가? 그것보다 이젠 추종자가 뭔지는 좀 아는가보군?
다름이 아니고 인카서러스 마법을 예술적으로 쓸 수 있음을 알게 됐네. 쓸 때 손목을 원을 그리듯 휘면 포물선으로 날아가던 줄이 손목을 향해 꺾이는데, 조금 더 응용하면 매달 수도 있겠어. 나무를 향해 팔을 포박해보고자 하는데 자네가 도와줄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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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아뢰오니 친애하는 양파에게.
내 죽을 날은 멀었으니 포기하시지. 유발함에 내 머리카락이 들어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박제는 거절하겠소. 자네의 비스크돌 목록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니 말입세. 그것보다 질리게 배울 줄 누가 알았겠는지? 아직도 선악을 구분하긴 어렵지만.
나는 자네의 그 뒤틀린 성벽을 알고 싶지도 않고 도와주고 싶지도 않네. 제발 좋은 건 혼자 알았으면 좋겠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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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낙엽에게.
사람 일 모르는 법이네. 나보다 자네가 빨리 죽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무슨 목록인가? 내 아직 사람 하나 죽여본 적 없는 아주 착한 장의사인데. 선악을 구분지을 필요는 없네. 선이고 악이고 파헤쳐보면 다 엿같은 것 뿐인데 무얼 구분짓나.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밀어놓고 품는것이 취향인 누군가보단 낫지 않나. 그간의 정이 있으니 돕기나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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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의사에게.
내 그 치를 찾을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도 죽지 아니할 것이네. 신에게 빌고 공물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자네의 의견에는 동의하나 파헤치지 않아도 잘 알 것 같네만, 이 사안에 대해선 이만 말 줄입세.
지금 내 얘기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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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에게.
자네도 참 독한 자야. 이노리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군 그래.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버티고 살아온겐가? 나였다면 진즉 미쳤을 게야. 자네의 의견은 잘 알았네. 입다물고 있도록 하지.
오! 자네 얘기는 아니었네만..혹시 찔렸나? 그런 취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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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벗에게 삼가 아뢰오니.
무슨 소리. 이노리는 곧 나고 나는 곧 이노리일세. 선택을 종용하였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지.
한번만 더 입을 놀린다면 자네도 벼랑 끝에서 밀릴 줄 알게.
사흘 뒤 해가 숨어버린 날 시계의 뻐꾸기가 세번 우는 때 라온으로 나오길 바라며 이만 총총.
"잘 가려무나."
나는 편지를 달링이라 불리는 큰까마귀에게 물려주고 창문을 열어준 뒤 생각에 잠겼는데, 편지를 주고받는 벗에 대한 것이다. 이 벗은 나에 대하여 모든것을 알고 있으며 나도 벗에 대해 알고 엤는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향한 결핍이나 상처가 있는 것은 같으나 받아들이는 태도와 현재의 성격의 대를 세운 생각이 또 다른 것이다. 그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이해하였는데, 내가 전주 이씨의 사람들과 맞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것엔 내 부덕함도 있는데, 나는 살고 싶어서 고모님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후부키로 도망칠 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후부키로 돌아가면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라 더욱 이러는 것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나는 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버니가 아닌 다른사람이 물었더라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대답했을것이다. 뒤에 나오는 말이 조금 달랐겠지만.
" 오히려 더 버텨줬으면 했는걸. 더 살아있었으면했어. 계속 아파하는게 보고싶고.. 계속 살려달라고 비는게 보고싶었고 그리고 계속 계속 아파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지. 픽 죽어버리면 너무 싱겁잖아. "
솔직한 감상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이 사람에게는 그 때 당시의,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솔직한 감상을 말할 수 있었다. 그 탈은 자신을 아프게 했었다. 무시했고, 기만했으며 욕보이고 지옥같은 고통을 줬으니 적어도 그에 몇 배에 달하는 고통을 맛보게 하기 전에는 죽어버려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레오는 또 이히히.. 하고 웃었다.
" 노력은 해볼게, 노력은.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
선비탈이라면 그 때의 그 녀석인가. 그 자리에서 아즈카반으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또 탈옥했구나. 레오는 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즈카반, 어쩌면 굉장히 물렁한 곳일지도 모른다. 아즈카반이란 단어를 듣자 레오는 또 다시 자신이 세워놨던 가설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버니의 집이 불타고 모든 구성원이 죽은 것부터 특별사면-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탈옥,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른다-이 전구 매구의 계획이었다는 자신의 가설.
" 신경쓰이지않는다면 거짓말이지. 나, 그 교수님 꽤 좋아했거든. 신비한 동물도 좋고. 사람도 좋아보이고.. "
레오는 다시 슬쩍 손을 잡고 입으로 가져와 입술에대고 부- 하고 바람을 불면서 조금은 정신사납게 장난을 쳤다. 초콜릿 향기와 딸기향이 난다. 도넛의 향이구나.
" 그 사람하고 내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불편한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은 탈을 썼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러고 있고.. 그 사람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탈을 썼다고 하고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저주를 배웠고. 그 둘 사이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아니,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수틀리니까 거짓말 한걸수도 있잖아. 그치? "
레오는 자기 눈 위에 덮어둔 버니의 손을 살짝 치우고 눈을 뜨고 올려다보고는 다시 눈을감고 손을 눈 위에 얹었다. 극심한 인지부조화. 불쾌감이 계속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자꾸만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레오는 파- 하고 한 숨을 쉬었다. 불편한 진실과 달콤한 거짓중 무엇을 따를지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길이겠지만 지금으로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으니 무조건 스스로가 맞다고 믿는 수밖에.
라온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인카서러스 마법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묶거나 목에 초커를 매주는 등, 자신의 사람임을 표시하는 걸 좋아하는 기묘한 성벽에 어울려주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필히 만나야만 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여러 죽음을 마주해서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너도 치료사 가문의 사람인지라 여러 응급처치는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사인을 꿰뚫는 그라면 조금 더 자세한 지식도 당연히 있을 테니 누군가 다쳤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약속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새벽 3시는 어려울 것 같네만 뻐꾸기 여덟번 우는 시각은 어떤가.] [전날 약속을 바꿔버리는 사람이 세상 어디 있나.] [나도 일이 이렇게 생길 줄은 몰랐네. 시체가 세 구나 들어왔어. 금방 처리하고 오지.]
하지만 죽음의 앞에서는 아무리 천방지축인 너라도 조용해진다. 너는 군말없이 라온의 뒷골목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것이다. 늘 그렇듯 귀곡탑 근처의 골목이다. 너는 이곳은 인적이 드문 걸 잘 알고있다. 여기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저번엔 마노 경을 만났다. 추종자는 그래도 상처를 치료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른 탈을 만나보니 아니었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너는 돌멩이를 발끝으로 톡 때렸다. 머글이니 혼혈이니 다 어려운 말이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지 않은가. 친구는 운 좋게 품종교배가 잘 된 녀석들이 짐승의 삶을 우월하다고 으스대는 것이 꼴보기 싫다 했지만 너는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어려운 고민을 떠안던 그때 인기척이 느껴지자, 너는 조심스럽게 그림자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왔ㅇ.."
헉. 너는 깜짝 놀라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후다닥 숨는다. 다른 사람이다!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한 너는 그 목소리에 걸맞게 수줍은 행동을 보였다. 고개를 빼꼼 내민 너는 누군지 알아보곤 입을 우물거렸다. 탈과 조우했을 때, 하마터면 공격을 맞을뻔한 친구였다. 너는 가면이 없는걸 깨닫고 얼굴을 잠깐 더듬더니 눈을 내리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