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멈뭄미를 뽐내는 그의 발랄한 행동에 그녀는 더 얼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이정도로 강아지 같을수 있는가
마치 하루종일도 할 수 있다는 파란 쫄쫄이의 방패든 사나이가 생각나는 기백이었다.
"음~ 그건 또 어떨까 싶네요~ 칼로리 이전에 나트륨이 문제 아닐지..."
물론 그것만 먹으란 법은 없겠지만, 게다가 고기는 그녀라 해도 거부할수 없는 무언가지만 매일매일 먹는건 글쎄, 금전적인건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위장에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게 어지간히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방방 뛰기까지 하던 그가 돌연 차분한 태도를 보이며 나름 스스로와 조율을 하는듯 말하자 그녀 역시 살풋 웃으며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도 좀 어떨까 싶긴 하지만~ 그만큼 선배님께서 고기에 진심이신건 알겠네요~"
이미 분위기 자체는 에스코트라기보단 그냥 동네산책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녀는 딱히 개의치 않아했다. 밤산책은 이따금씩 했으니까, 물론 마음놓고 나가려면 매일같이 신경써야 하는 억제제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라도 자유를 느낄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래봤자 일생일대에 먹을 약이 하나만 늘은것 뿐이니까,
"...아, 비가 오네요?"
천천히 내리기 시작하는 봄비를 보는것 치곤 별 감흥이 없는 목소리였다. 계절이 계절이니 흔한 일이었고 내리는 비 좀 맞는다 한들 감기가 걸리는 체질도 아니었기에, 물론 세탁은 좀 번거로운 일이 되겠지만 어차피 세탁기가 할 일이니 아무 생각이 없던 그녀는 옆에 있던 그가 갑자기 우산을 꺼내들고선 이쪽으로 씌워오자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담아둔 음식들이 눅눅해지는걸 걱정하시는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행동일것 같은데요?"
누가 봐도 1인용인것 같은 우산엔 기껏해봤자 사람 한명 반정도일까? 그런데도 기분탓인지 이쪽으로 기운듯한 우산에 그녀는 태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주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물론 베풀어 오는 호의에 대해 대놓고 면박을 주는 성미는 아니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거부감은 자연스레 조바심이 날수밖에 없도록 재촉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만큼은 그에 대해 오래 알고 있었건 아니건,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부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원은 슬혜의 완곡한 거절에도 별 신경쓰지 않는 듯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라는 것은 그것 이외에도 무언가 더 있다는 것이 아닌가? 허나 주원은 굳이 그것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다. 그저 그것에 대해 대답할 의향은 없다는 듯 가벼운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주원은 슬혜를 따라서 봄비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부활동이 끝난 봄날의 늦은 오후는 어느새 점점 저물어가고, 노을빛이 비추고 있었다. 주원을 닮은 색깔의 태양이 반쯤 고개를 내밀고 서서히 저물어간다.
"불편? 뭐가?"
주원은 슬혜가 조바심을 내는 것을 눈치 채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슬혜의 말투에서는 아까보다는 조금 더 속내가 보이는, 불편함을 어느정도 드러낸 거절이 보였지만 주원은 그저 슬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눈빛 너머론 가라앉는 노을과 비슷한 색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슬혜의 발걸음에 맞추어, 우산을 조금 기울인 채로 그녀를 따라 걷다 문득 주원이 슬혜에게 말을 걸었다.
"슬혜야.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쓰고 간다는 것 말이야. 그건, 뭐라고 생각해?"
주원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즐거움과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 분위기와 목소리는 무게를 잡고 어느 특정한 관계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닌, 마치 절대 정답을 맞추지 못하리라는 수수께끼를 내는 소년과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넌 절대 못 맞출걸!' 하는 생각이 깔려있는, 그런.
그것도, 라고 운을 떼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의미 또한 있겠지만 그녀가 그 뜻을 알아도 부러 무시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태연하게 굴 그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의미로 보면 의도적인 말흐림이었기에 어찌보면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면서도 어째 뻔뻔하단 느낌이 들었는지 그녀는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는 대체 이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완곡하게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해야 하나 고민까지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본의아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씁쓸한 말을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단 생각이 조금은 들기 시작한 그녀였다.
"아뇨, 오늘따라 선배님 답지않게 뻔뻔해보여서 말이죠."
일부러 닿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가 있는 반대편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그녀는 여전히 동그란 눈과 함께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쉴 뿐이었다. 물론 실제로도 날숨이 좀더 긴 느낌이었지만,
노을빛은 언제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건만, 이런 때만큼은 괜시리 심란해지는 빛깔을 띄고 있었다.
"...바보같은 질문을 하시네요."
여느때와같이 즐거움,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걸어오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내는 것이 재밌는 건지, 아니면 그런 행동 자체가 재밌는건지 그녀가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대답이 정답이던 아니던 개의치 않고 말할만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산이 있는쪽 사람이 없는쪽 사람을 신경쓴단 거겠죠. 그게 자신에게 득이 되건 해가 되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말이죠."
부질없는 행동이다. 머릿속에 그런 말이 스쳐지나가자 그녀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스스로가 그런 말을 생각해낸다는 것도 불쾌했지만 그것을 인정해버리는 다른 자신이 있다는 것또한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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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의 뻔데기 3통은 해치운 듯한 뻔뻔한 태도에 슬혜는 주원을 얼빠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주원은 그런 시선으로부터 아주 능숙하게 눈을 돌리고 일부러 다른 곳을 보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의도는 명백했지만.
"답지 않다니, 나는 언제나 이런 느낌인걸."
슬혜의 머리카락을 넘기는 모습은, 어떻게든 주원과 닿지 않으려는 느낌이 들어 온 몸으로 주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눈치챌 수 있는 분위기를 그가 모르지도 않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이쯤 되면 슬혜의 그 분위기에 억눌려 우산만 건네주고 간다던가, 아무 말 없이 그저 목적지까지 걷는다거나 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거기에 깊은 한숨까지 곁들이자, 만약 주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아마 어색과 거북함 섞인 분위기에 필시 도망치고 말았으리라.
주원의 질문 후 슬혜는 바보같은 질문을 한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주원은 그 대답을 듣곤
"흐~~흥.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곤,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어!'같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주원이 생각한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말야. 바로."
주원은 정답을 말해주려는 듯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그녀의 음식보관함을 쥔 반대쪽 손을 홱 잡아채어 자신이 들던 우산을 쥐어주곤 그대로 우산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우산 밖으로 나간 주원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해맑은 미소로 봄비 내리는 거리를 달리고, 멈춰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뒤 고개를 쳐들었다. 상냥한 봄비라고 해도, 금방 주원의 옷과 머리, 얼굴 등을 적셔가고 주원은 고개를 든 채 입을 벌려 내리는 봄비를 받아 마셨다. 그리곤 비로 젖어 축 가라앉은 머리를 양 손으로 뒤로 밀어올린 뒤 슬혜를 향해 손짓했다.
"집 어-디-야? 어느 방향으로 가야돼-?"
그의 행동이, 비오는 날 혼자 좋아 날뛰는 골든레트리버 같았다는 것은 구태여 보탤 필요도 없으리라. 봄비 내리는 거리에서, 주원은 굳이 슬혜에게 자신의 우산을 건네준 뒤 달려나가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는다. 그 이유는, 글쎄. 단순히 봄비가 좋아서 일수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