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하게 시선을 돌려 자신의 표정을 안본듯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방면으로 생각해도 의도적인 회피로 비추어졌다. 거기에 첨언하듯 항상 그래왔다는 그의 태연스러운 대답은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들어졌지만... 어찌 되었던 둘중 한명을 이상한 사람이라 지목해야 한다면 그건 분명 그녀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피하는듯한 행동까지 보였건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의미인지, 아니면 그정도 행동은 보일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는지 마주 피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안해하는 것도 없는 그의 반응과 행동은 전혀 이해못할 것들로 그녀에게 와닿았다. 비단 감정의 문제뿐만이 아닌, 그런 부수적인 것들로 인해서 누락되어버린 타인에 대한 이해도 한몫 했으려나? 어찌되었건 이해할수 없는 행동과 단어들은 그녀에게 혼란을 주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럼 달리 무어라 생각하겠나요?"
한쪽으로 쏠려 살짝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찰나, 마치 예상된 대답을 내놓았다는듯 잠깐 뜸을 들이던 그가 비어있던 손을 잡고선 방금 전까지 들고있던 우산을 쥐어주고는 내달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당혹스러움 반, 놀람 반인 채 살짝 치켜올라간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딱히 즐거움을 느낄만한 포인트도 없었건만 그렇게 비내리는걸 즐기는 강아지처럼 팔까지 쭉 피고서 비에 젖어드는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몇번이나 봐온 그의 돌발행동 중에서도 가히 충격적이라 할수 있었다.
"....."
뭐가 그리도 좋은건지, 뭐가 그리도 행복한 건지, 그것에 딱히 큰 의미가 담겨져있진 않다는 것쯤은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안다고 하는 것도 지식의 선에서일뿐, 공감하고 이해하는건 논외로 따져야 할 부분일까? 마치 같은 언어로 적었어도 전혀 이해할수 없는 철학서적처럼 말이다.
아무리 봄비라 한들 뛰면 뛸수록 더 맞는다는 과학적인 말도 있듯 금새 흠뻑젖어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못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비맞는거 좋아하는 대형견마냥 구셔도, 선배님께 득이 될 건 없어요."
이미 저만치 앞서가버렸으면서도 집의 위치를 묻는 그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는지 입가에 미소만큼은 지우지 않고서 그가 뛰어간만큼 다시 거리를 좁히기로 했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진 이해과 세계 안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뿐. 그렇기에 분명 주원은 슬혜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고, 슬혜의 이해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주원은 그런 사람들과는 구태여 교류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해'라는 재능은 곧 노력하기 전 '노력의 의미'를 예상할 수 있는 척도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빠른 주원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테지. 단순히 재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달리 무어라 생각하겠나요?"
주원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것 이외에 답이 있냐는 물음. 주원은 그저 미소지을 뿐, 그것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둘의 대화는 맞물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것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빗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놓고 그저 봄비를 맞는 주원. 마치 자유를 찾아 감옥에서 도망쳐 자유의 비를 맞는 사람과 같이 해방감 가득한 미소를 띠고 떨어지는 봄비를 맞이한다. 이것이 주원의 대답인 것일까?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쓰고 간다는 것'에 대한?
빗속에서 자유를 즐기던 주원은 그녀가 못말리겠다는 듯 미소지으며 득이 될 것 없다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한다.
"득? 이미 득 되고 있는걸. 푸하, 후아, 후우우우아아아아."
그는 봄비가 싣고 오는 봄 내음을 몸 가득 담으려는 듯 숨을 가득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의 코를 비에 실린 라벤더 향이 간지럽히고, 그는 행복을 주체할 수 없는듯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녀가 주원이 나아간 만큼 거리를 좁히자 그는 그 곳에서 가만히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내리는 봄비에 머리가 다시 축 가라앉아 오른손으로 턱부터 머리 끝까지 빗물을 쓸어넘긴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렇지만, 즐거운걸? 행복해. 응. 나 지금 되게 행복해!"
주원은 슬혜에게 넘긴 우산에 들어가지 않고 굳이 우산의 바깥쪽에서 그녀를 따라 걸었다. 충족감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로.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주원에겐, 그저 이 시간과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할 뿐일 테니까.
과하게 무미건조한 사람, 또는 과하게 역동적인 사람.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이렇게 유지되어온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지속된 것일 수도 있으며 그에겐 이해할만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별 의미 없는 동정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며 작게나마 변해가는 모습 때문일 수도 있었다. 몇분씩 늦어지는 시계도, 반대로 빨라지는 시계도 언젠간 원래대로의 시간을 맞춰간다는 건지 미묘하게 틀어져있는 관계에서도 어디선가 맞물린점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간혹 정 반대인 사람 둘이 오히려 잘 맞아떨어진다는 말을 하는 이가 있었는데, 정말 그런지는 알수 없었다. 아무렴, 그녀는 독심술사가 아니었으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금방 읽어낼수 있는 재능을 가진 늑대같은 것도 아닌데다 오히려 약하다면 약한 양에 불과했다.
"그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참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네요. 선배는..."
학교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특이점을 찾는 모습이나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나 어딜 봐도 얽매여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고리타분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아니면 별 의미 없어도 즐거운 것이 청춘이라 불리는 것인지, 너무 일찍 세상을 받아들인 눈에선 다소 황당한 인간군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그가 먼저 떨어져나가기 전에 그녀가 밀쳐냈을 수도 있으니,
"어련하실까요~"
살풋 웃어보인 표정은 그녀에게 있어 작위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도 없었다. 나자신같이 느껴지지 않아도 웃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란 명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영원한 안티테제는 없다고, 언젠간 합이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그녀는 그 말을 딱히 믿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정론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흔해빠졌고 유치한 행동이라 해도 진실된 행동이라면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듯, 마음 속의 공허함을 채울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