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은... 의념으로 강화된 몸이라서요. 그러니까 의념으로 강화된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그게 스테이터스를 강화하는 일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몸은,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도 않았고, 어지간한 상태 이상은 가볍게 무시했으니까 말이다. 강찬혁은 이렇게 변해버린 몸을, '의념에 의해 강화되었다' 가 아니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고블린들의 조잡한 독침은 물론이고, 어쩔 때는 응고제를 투여했는데, 몸이 응고제를 "온 몸의 피를 굳게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독"으로 인식해서 과다출혈을 막지 못해 죽을 뻔한 적도 있으니까. 강찬혁은 동아리나 수련장을 자주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세네요. 이게 비효율...적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워서요. 그리고 뭐... 이런 땀내나는 근육질만 모인 곳에서는 운동하기 눈치보이기도 하고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테로이드를 치사량으로 투여한 것 같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강찬혁은 혀를 내둘렀다.
"아하....그래도 스테이더스 수련을 원하시는거면 의념을 쓰시는게 아마 효율이 좀 더 좋지 싶어요."
그는 보아하니 유달리 튼튼한 체질의 소유자인 것 같다. 나는 스스로가 워리어이며 그런 체질에 대해서 부럽다고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역시 스테이더스 수련을 원한다면 의념을 쓰는게 좋지 않을까 조언했다. 물론 훈련을 어떻게 할지는 결국 개인의 마음임으로, 솔직히 감나라 배놔라 참견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말이다.
"아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남자다워서 조금 멋있다고 생각해요."
근육질 남성의 운동에 혀를 내두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질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 방금까지 당신을 주변에서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분명 실례가 되겠지....그리고 가끔 덩치도 크고 근육질인 남성을 보면, 그야말로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흘끔 하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 체형 때문에 숱한 오해를 받고 있기도 하고....
"다음부터는 그래야죠. 그런데, 제가 어떤 게이트에 갈 때, 의념을 완전히 봉인당하는 미친 상황이 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상한 거 씹어먹고, 악으로 깡으로 오르다보니까 참 체력이 절실해지더라고요."
열대우림에서 있었던 일은... 그래. 참으로 끔찍했다. 물안개가 잔뜩 낀 지역에 들어갔더니만 의념기는 물론이요 의념 사용까지 완전히 봉인당했다. 그 상황에서, 강찬혁은 평소 같았으면 의념을 사용해서 꿀밤 한 방으로 제압했을 멧돼지를 피해 죽도록 도망쳐야 했고, 들어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머릿속에서 유전자에 각인된 원시인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서, 트랩을 만들어 겨우 죽여야 했다. 강찬혁은 그 때의 트라우마도 남아있었다. 그때 강찬혁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멧돼지의 가죽을 창으로 뚫을 힘마저 없었다면...?
"그쪽은 남자다운 걸 좋아하시나 보네요. 요즘... 저런 미친 근육은 여자한테 딱히 인기가 크게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 그래도 누군가는 좋아하죠. 똥배 나온 것보다야 근육이 나으니까.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강찬혁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매우 큰, 매우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실제로 게이트에 들어가서 의념이 봉인되는 상황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게 아주 미련한 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내 방어력은 의념과 스킬, 장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개가 막힌다면 무척이나 허약......아니 저런 전제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걸 헤쳐나온 눈 앞의 사람이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존경의 눈빛을 담아 봤다.
"네? 네....아무리 그래도 전투중엔 저런 남자다운 사람이 좀 더 의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확실히 저런 근육은 여자한테 요즘에 와선 징그럽다던가 그런 말을 듣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래도 역시 전투를 같이 할 땐 덩치도 크고 근육도 가득한 워리어가 언뜻 보기에도 믿음직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나에게는 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상대방의 말에 대한 위화감을 눈치채지도 못한체 태연하게 대답했다.
"게이트는 '그래도 내가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한데...' 같은 걸 신경쓰지 않더군요. 그건 참 악의적인 수준이지만."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상대방을 슬쩍 훑어보았다. 저 사람은... 생긴 거로만 보면 강찬혁과는 마치 양 극단과도 같이 다른 인물이었다. 퉁퉁 부은 강찬혁의 몸과는 대비되는 얇은 몸. 딱히 전문적인 피트니스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단련된 노가다근육과는 달리 가는 잔근육조차 없는 유려한 곡선. 그리고 갱단 전쟁부터 괴물과 싸우는 지금까지 온갖 적과 싸우며 생긴 잔상처와 흉터와는 달리 깨끗한 몸. 강찬혁은 그 모습을 보고, 분명 랜스나 서포터일 것이라 생각했고... 워리어라는 이야기에 놀라는 것은 조금은 당연했을 것이다. 강찬혁은 눈을 크게 뜨고, 얼떨떨하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워리어요? 그, 그렇군요."
강찬혁은 상대방을 계속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워리어도 있을 것이다. 스테이터스는 외견으로 보이는 근육량과는 차이가 있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겉모습만 보면 두개골을 붙잡아서 한 손으로 파쇄해버리게 생긴 아프리카 출신의 키가 2.5m에 달하는 오우거같은 유학생이, 실은 서포터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강찬혁은 자신의 이름도 밝혔다.
[매 년 바다에 익사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있었어요.] [매일같이 드나드는 해녀들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외지인들이나 주의사항을 듣지 않은 이들이 희생당하는 그런 곳이었지요.] [그래서 바다에서 수영 금지같은 걸 표지판으로 붙였지만. 그럼에도 빈발했어요.] [A라는 사람은 바다에서 누군가 손짓을 한다며 말리는 사람들도 뿌리치고 뛰어들었다네요] [그래서 어떤 외지에서 온 이가 호기심에 알아보며 주의사항을 숙지하지 않고 그냥 바다를 가봤다고 해요.]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빌려서 잠수했는데. 미역이 너울대고 백화한 산호가 나뒹구는 창백한 바다가 있었어요.] [미역에 발이 붙잡힌 알려지지 않은 익사자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게 움직여서 뽀그르르 숨을 내뱉으며 너절거리는 눈으로 뭐라 말하며 잠수자를 붙잡으려 했어요] [잠수자는 기겁해서 빠져나오려 했는데. 어느 순간 미역이 발을 휘엉키고 산소통에서 바다 향이 나기 시작했지요.] [그 때. 해녀 한 분이 미역인 줄 알았던 수많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칼로 잘라서 구출해주고 뭔가를 확 뿌렸더니 익사자의 불어터진 눈과 보라색으로 너절한 것이 터져나가 흰 뼈가 드러나서 멈칫했고 잠수자는 겨우 살아났어요] [해녀 님이 말하기를. 물귀신이 끊임없이 끌어들여 양분삼는다고 하며 무모하게 도전하지 말고 어디 무당집에 가서 부적을 사서 붙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그 잠수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이 이야기를 적은 뒤 다시 바닷가를 걷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에 잡혀 질질 끌려간 자국만 남은 채 바다속에 끌려들어가는 걸 어린 아이가 목격했다네요.] [결국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구나. 라는 평을 했을까요]
"게이트의 악의는 꽤 유명하니까요. 얼마전에도 기회가 있어서 고레벨의 게이트에 다녀와봤는데, 어후....난리도 아니더라구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방에서 번개가 울려치고, 거대한 거인들이 수십이 몰려 달려오며, 보스였던 번개의 신의 고위 사제는 또 어땠던가. 강력한 아군에 의해 사실상 "버스" 라고 불리던 얻어타는 게이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떨렸다. 그러다가 나는 상대방의 시선을 눈치챘다. 조금 얼떨떨해하는 기색에서 보건데, 익숙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자면....역시나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렇게 작고 가녀린 몸으로 워리어라고 하니까. 그게 내가 방금전 근육질 남성을 그런대로 부러워 한 이유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나보고 여자라고 오해하지 않는게 어디인가(사실은 오해하고 있지만).
"이래보여도 방어력만이라면 상당히 튼튼하답니다?"
아마 상대는.....내가 특히나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내고 버티는데 특화된 방어 중심의 워리어란걸 알게 되면 더더욱 놀라하지 않을까. 그 점이 조금 서운하면서도 재밌어서, 나는 얼떨떨해하는 상대방에게 볼을 부풀리며 살짝 토라진 티를 냈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이 정도 오해는 이제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워리어셨군요. 저는 솔직히 랜스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내가 조금 놀랄 차레였다. 싸움에 상당히 익숙한 기색과, 지금은 정중하지만 사나워보이는 투기를 보건데 솔직히 말하자면 성현씨와 비슷한 격투계 랜스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워리어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