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100km 를 달성한 그를 보며 나는 조금 질겁했다. 솔직히 말해서 의념을 사용한 기준이라면 나도 비교적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의념 없이 순수한 신체 조건만으로는 솔직하게 말해서 3km 를 뛸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부끄럽지만 내 본연의 신체 능력은 성인 남성 보다 훨씬 아래를 웃돌고 있으니까...
"그...훈련? 하시는거에요? 보기에는 의념...안쓰시는 것 같던데..."
한번 해보라는 조언에 간단히 뛰면서도, 미칠듯이 호흡을 몰아내쉬던 그가 걱정되었던 나는 런닝 머신을 멈추고 그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 의념을 쌓지 않으면 기술의 숙련도, 스테이더스의 상승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걸 위한 활동에서 의념의 사용은 필수적이지만, 괴물같은 기초체력으로 악에 받쳐 운동하는 그가 조금 멋있어 보인 것도 사실이다.
"아. 저는 보통은 동아리나 수련장을 자주가요."
나는 스테이더스 보단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파라, 이런 체력 단련실에 오는 일은 드물다...라고 일단 물어보는 그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답변하는 것이었다.
"제 몸은... 의념으로 강화된 몸이라서요. 그러니까 의념으로 강화된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그게 스테이터스를 강화하는 일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몸은,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도 않았고, 어지간한 상태 이상은 가볍게 무시했으니까 말이다. 강찬혁은 이렇게 변해버린 몸을, '의념에 의해 강화되었다' 가 아니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고블린들의 조잡한 독침은 물론이고, 어쩔 때는 응고제를 투여했는데, 몸이 응고제를 "온 몸의 피를 굳게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독"으로 인식해서 과다출혈을 막지 못해 죽을 뻔한 적도 있으니까. 강찬혁은 동아리나 수련장을 자주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세네요. 이게 비효율...적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워서요. 그리고 뭐... 이런 땀내나는 근육질만 모인 곳에서는 운동하기 눈치보이기도 하고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테로이드를 치사량으로 투여한 것 같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강찬혁은 혀를 내둘렀다.
"아하....그래도 스테이더스 수련을 원하시는거면 의념을 쓰시는게 아마 효율이 좀 더 좋지 싶어요."
그는 보아하니 유달리 튼튼한 체질의 소유자인 것 같다. 나는 스스로가 워리어이며 그런 체질에 대해서 부럽다고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역시 스테이더스 수련을 원한다면 의념을 쓰는게 좋지 않을까 조언했다. 물론 훈련을 어떻게 할지는 결국 개인의 마음임으로, 솔직히 감나라 배놔라 참견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말이다.
"아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남자다워서 조금 멋있다고 생각해요."
근육질 남성의 운동에 혀를 내두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질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 방금까지 당신을 주변에서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분명 실례가 되겠지....그리고 가끔 덩치도 크고 근육질인 남성을 보면, 그야말로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흘끔 하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 체형 때문에 숱한 오해를 받고 있기도 하고....
"다음부터는 그래야죠. 그런데, 제가 어떤 게이트에 갈 때, 의념을 완전히 봉인당하는 미친 상황이 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상한 거 씹어먹고, 악으로 깡으로 오르다보니까 참 체력이 절실해지더라고요."
열대우림에서 있었던 일은... 그래. 참으로 끔찍했다. 물안개가 잔뜩 낀 지역에 들어갔더니만 의념기는 물론이요 의념 사용까지 완전히 봉인당했다. 그 상황에서, 강찬혁은 평소 같았으면 의념을 사용해서 꿀밤 한 방으로 제압했을 멧돼지를 피해 죽도록 도망쳐야 했고, 들어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머릿속에서 유전자에 각인된 원시인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서, 트랩을 만들어 겨우 죽여야 했다. 강찬혁은 그 때의 트라우마도 남아있었다. 그때 강찬혁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멧돼지의 가죽을 창으로 뚫을 힘마저 없었다면...?
"그쪽은 남자다운 걸 좋아하시나 보네요. 요즘... 저런 미친 근육은 여자한테 딱히 인기가 크게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 그래도 누군가는 좋아하죠. 똥배 나온 것보다야 근육이 나으니까.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강찬혁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매우 큰, 매우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실제로 게이트에 들어가서 의념이 봉인되는 상황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게 아주 미련한 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내 방어력은 의념과 스킬, 장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개가 막힌다면 무척이나 허약......아니 저런 전제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걸 헤쳐나온 눈 앞의 사람이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존경의 눈빛을 담아 봤다.
"네? 네....아무리 그래도 전투중엔 저런 남자다운 사람이 좀 더 의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확실히 저런 근육은 여자한테 요즘에 와선 징그럽다던가 그런 말을 듣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래도 역시 전투를 같이 할 땐 덩치도 크고 근육도 가득한 워리어가 언뜻 보기에도 믿음직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나에게는 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상대방의 말에 대한 위화감을 눈치채지도 못한체 태연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