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짝 웃었다.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건 나지. 청월에서 쫓겨나듯 도망쳐, 선배였다가 전학간 동급생이 된 지금의 내 처지는 솔직히 말하자면 미나즈키가 날 얕보거나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와 같이 의뢰를 가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게 기뻤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칭찬이나 기대가 너무나도 기쁘고,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노력하고 싶은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그와 조만간 갈 의뢰도, 힘껏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지. 나는 늦은 시간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카페도 마감하고 나도 돌아가봐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 같네. 공부하려고 온 그를 자꾸 말거느라 방해한 모양새가 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조심해서 들어가, 미나즈키. 다음에 또 보자."
심심할 땐 언제든지 연락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앞치마를 멘 차림으로 그를 마중해주었다.
사람이 오지 않을 법한 공터. 즉 반대로 말하자면 혼자 산책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너무 스스로만 생각한 듯 싶다. 충분히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후회해봤자 뭐하랴. 익히 알고 있던 소녀는 내 눈 앞에서 둥둥 떠 있었는데. 고의가 아니다. 정말로.
"믿어줘! 나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그, 지금, 긴장해버려서.." 이어 그녀가 속옷을 보고 싶은게 아니냐고 묻자 나는 나도 모르게 3초쯤 침묵한 뒤 "그, 그럴리 없잖아! 난 그런.. 파렴치한 놈이 아니라고!" 하고, 대답했다. 지금의 침묵으로 신뢰를 잊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나는 공중으로 띄어오른 다림을 위로 힐끗 보고곧바로 고개를 홱 숙인 뒤 정신을 집중했다.
.dice 1 3. = 3 1 = 그대로 공중에서 아주 느리게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킨다 2 = 슈퍼맨 자세에서 아주 느리게 내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고 회전하게 한다. 3 = 그대로 90도 회전시킨다.
그래, 동정이었다. 어쩌면 그 애가, 나한테 '친구'의 일을,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 걱정되어서. 아니, 걱정이 아니지. 이건 내 편협함이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네가 착각한 게 아니라고 증명해보라는 동시에, 처음부터 잘못된 마음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대해줄 테니 평범한 친구로 돌아가자고. 그런 비겁한 제안을 했다.
" 진화야. "
심신을 가라앉히고 자칭 170cm의 쓰다듬기 좋은 머리카락을 팔을 뻗어 쓰다듬으면서 따스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네 영성이 B인 것 같았는데. 좀 더 잘 써봐.
" 적극적이...려나. 그런 쪽으론 경험이 많이 보이긴 하지. " //💕💕💕💕💕💕💕💕💕💕💕💕💕💕💕
"산책하기 나쁜 곳은 커녕 오히려 좋지 않나요?" 인적이 드물긴 하지만 적당히 다니기 좋은 인프라가 있고.. 아늑한 길.. 이라고 하면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게다가 혼자가 되고 싶다면 딱 좋잖아요.
"정말 그러시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3초간 침묵했다고 하여도 다림은 일단 믿어줄 겁니다. 그리고 힐끗 본 것도 일단은 믿어는 드립니다. 네.. 절대로 루비의 그 색이라던가 그런 건 다림이는 모르는 일이라고요. 그렇죠? 네? 그리고 가쉬가 행한 일은... 90도 회전이군요.
"...." 90도 회전이 어떤 방향인지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180도 회전이라 뒤집히는 것보단 낫겠지... 그러면 붙잡는 것도 한계니까 흘러내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가쉬에게 스테이터스 150의 차이만큼 저주를 해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이르미 씨. 이게....최선인가요..?" 덤덤하기는 하지만. 원래 그랬지만 한결 더 신뢰가 사라진 말투입니다.
"그, 그러네. 좋은 장소네." 확실히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 불찰이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을 만한, 그리고 산책하기 좋지 않은 장소를 골랐어야 했다. 그건 둘째치고, 이번에도 또 실패해버렸다! 그녀는 90도로 천천히 회전해 사람이 옆으로 누울때의 그 각도가 되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다행히다, 오히려 여기선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안 보여서 다행이라는거다!
"그게, 지금, 컨트롤 하려고 하고 있어. 최선을 다해서! 날 믿어줘. 정말이야!"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왠지 지금까지 쌓아왔던, 미비하다고 하면 미비할지도 모르는 그녀와 나의 신뢰가 점점 금이 가고 깨져가는 것이 그녀의 목소리부터 느껴져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 모르겠는데, 이건 정말, 실수라고! 대참사! 그러나 마음 속 어딘가에선 '해버려 가쉬! 해버리라고!' 하는 외침이 완전히 없다곤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온 정신을 다해서 그녀를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했다.
.dice 1 10. = 7 1~5 = 다림이가 아까보단 낮게 조금씩 내려온다. 허나 완벽한 착지는 아님. 6~9 = 90도 회전한 것이 원래의 각도로 돌아간다. 10 = 그대로 90도 더 회전해 180도가 되어버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와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고백에 나올만한 감정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진심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것은 그녀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동정할 권리도 있는걸까.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눈썹을 조금 찌푸리면서도, 어딘가 걱정되는 시선으로 내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에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무언가 통한 것이겠지. 아니면 서로 통했다고 생각하면서 지독한 오해가 생기고 있거나....다만 이 문제는 별로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난 그녀의 사생활을 여기저기 퍼트릴 생각 같은건 추호도 없으니까.
"으-음....?"
여자 유혹의 경험이 많다고? 조금....바람둥이 같은 애인가? 내 주변 사람중에 그런 애는 지훈이.....아니지. 최근엔 가쉬도 늘었지. 그 둘 밖에 없는데. 비아처럼 성실한 타입은 그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타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방금부터 얼굴을 붉히거나, 연애 서적을 참고로 찾을 정도면 분명 흔들리고 있는 것일테니.
"정말 아무도 안 찾는 데를 가려면 본인을 띄워서 호수 한가운데라던가..." 가 나쁘지 않았을지도요? 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영도 정도의 크기라면 사람 없는 곳도 있긴 있지... 대충 해양대 정도의 느낌일까.. 같은 생각을 하다가 가쉬의 말을 듣습니다.
"일단...은 믿어드려요. 믿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느릿느릿하게 말하며 90도에서 원래 각도로 돌아온 것을 봅니다. 근데 생각보다 높고.. 생각보다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얼굴색은 변하지 않지만 속으로 설마.. 라는 생각은 할 수 밖에 없어요! 대참사가 일어날 뻔한 것 하나. 실제로 대참사가 일어남이 되어버리는 건가! 해버리는 거냐 가쉬!
"...최선을 다하는 걸로 보고 싶.네요..." 정말로 빙글빙글 돌린다거나 그런다면 제가 제 스테이터스와 이르미 씨의 스테이터스 차이만큼... 불운하여라.. 라고 말해버리겠지만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원래도 그렇지만 차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