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학교 건물로 다이안은 숨어들었다. 그리고 교내의 벽에 기대어 교정을 바라봐 멍 때리기 시작했다. 멍 때리며 드는 생각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잡념들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특히 미래의 걱정이라던지.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지만 흐음- 코로 날숨을 크게 내뱉더니 무표정, 이라기엔 근심걱정,특유의 인상 때문에 보기 좋은 태는 아니였다.
" ... "
그것도 폐문과 미세요 라고 적힌 문. 그 문 앞을 막아선 다이안의 근심걱정 타임은 기어코 5분이 넘어가도 배후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모를 터. 주기가 빨라지는 한숨이 더욱 공기를 무겁게 만들더니 으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주먹 쥔 손날 부분으로 벽을 꿍꿍 아프지 않게 두어번 내리쳤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쉽게 쉽게 풀리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전에 들은 다림이의 과거라면, 인간 관계에 더욱 어려워 할만도 하다. 그런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는 친구는 분명 좋은 애겠지. 나는 속으로 잘 풀리길 응원했다.
"분명히 잘 어울릴걸. 혹은 의외성이 더해져서 매력적일지도 모르지."
나는 아하핫 웃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죽었다 깨어나도 마법소녀 복장을 입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닌 그녀지만, 그런 만큼 뭔가 밝고 큐티한 마법소녀 복장을 입으면 갭이 더해져서 귀여울지도 모른다. 만화에선 자주 그랬다.
"그건 조금....염치가 없는걸."
공짜로 받는건 어쩐지 너무 뻔뻔한 것 같아서, 그건 그거대로 나도 망설여졌다.
"음~ 그렇네....."
나는 나무를 옮겨갈 때 마다 부동일태세를 시전한 뒤에 굳건히 버텨 다가오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대답했다. 지금은 저렇게 온순하고 겁이 많은 편인 녀석들이 욕망에 부풀면 사나운 괴물이 되는건가. 그렇게 말하니 어쩐지 인간도 다를바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고.
"...그러고 보면, 다림이는 사람들이랑 거의 다 존댓말로 대하는 느낌이네."
무심코 말했는데 행운, 이라고 하니까 그녀가 신경쓸만한 소재인 것 같아서. 나는 적당히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진화가 잘 지낸다면 그걸로 된 일이겠지만. 이걸로 에미리도 아프란시아고, 지훈도 아프란시아고, 이걸로 진화 선배도 아프란시아가 되는 건가. 어쩐지 같은 학교 학생보다 아프란시아 학생을 더 많이 알고 지내는 것 같아 기분이 미묘해졌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따지고 싶진 않았기에 이쪽은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러면 계속 선배라고 부를게요. 그게 편하기도 하고..."
여태 계속 선배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진화야. 나 왔어.' 같은 말을 하기에도 어색했고. 이렇게 고민도 해결됐으니 이제 공부를... 까지 생각하며 책 쪽으로 고개를 돌린 미나즈키는, 진화가 성학교로 전학을 갔다면 시험공부를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좌절했다.
"의뢰라고 해서 쉽지는 않지만요." 천천히 해야 하는 것도 있고. 천천히 해서는 결코 안되는 것도 있지만. 의뢰가 후자라면 사람간의 관계는 전자일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다림은 예쁘장한 과일을 들어보고는 잘 어울린다는 말에 떨어뜨릴 뻔합니다. 얼굴에 살짝 홍조가 도는 게.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그냥 받으셔도 상관은 없지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안을 거두어들입니다. 그리고는 그렇다는 말을 하면서 쫓아내는 것을 보며 과일을 따냅니다.
"네. 아무래도 그게 편하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받으면서 화제를 천천히 돌립니다. 존댓말.. 그건 역시 힘들지 않습니다. 그저.. 일종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어릴 적부터 습관인 걸지도요..." 예외적인 몇...이었더라. 많지는 않았지만. 반말로 대한 사람은 있긴 했지만요? 라고 말하지만 지금 존재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벽련사계신공闢聯四季神功(SSS) - 아주 먼 과거 왕검조선이 건국되던 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 풍백과 운사, 우사가 스스로의 몸을 지키지 못하고 지배받던 인간들에게 내린.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단 중 하나. 포악하고 위협적인 계절의 힘을 육체에 쌓는 것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만든 신공이다. 오직 왕검조선의 제사장들에게만 전수되어 왔으며 완성한다면 하늘과 땅. 그 모두를 이을 수 있는 위대한 신선의 일각이 된다 평가받는 무공이다. 현재는 신 한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모든 내공 기술은 벽련사계신공에 합쳐진다. 평범한 방법으론 숙련도를 올릴 수 없다. - 벽련사계신공 일본 강림闢聯四季神功 一本 降臨 : 자신보다 약한 적들에게 존재만으로도 강한 위압감을 주며 일정 단계 이하의 적인 경우 살의만으로 적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위의 의념을 통제할 수 있으며 영향권 안에 놓여진 모든 적은 레벨이 15 감소하는 패널티를 받게 된다. - 벽련사계신공 이본 춘입闢聯四季神功 二本 春入 : 생명이 깃들고 봄이 찾아오는 강대한 자연의 힘을 신체에 받아들인다.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에 면역이 되며 의념을 방출하는 것으로 본인과 상대의 생명을 치료할 수 있다. 자연지물을 스스로 피워내거나 잠재우는 것도 가능해지며 신선 급 이하의 상대에게 입선入仙으로 취급받게 된다. - 벽련사계신공 삼본 수하闢聯四季神功 三本 繡夏 : 모든 것을 불태우고 늘어지게 하는 강대한 자연의 힘을 신체에 받아들인다. 화火 속성 카테고리를 포함하는 공격에 대부분의 대미지를 흘리게 되며 감정 중 분노를 발현하는 것으로 주위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방출하게 된다. 거대한 의념을 불태워 일시적으로 주위 공간을 여름의 지배 하에 둘 수 있으며 이 공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신선 급의 상대들에게 초선初仙의 경지에 든 것으로 판정되며 선계의 입구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된다.
밝은 계열의 붉은 빛 머리와 연한 분홍빛의 눈. 귀엽다고 하면 귀엽지만 여간 사내답지 않은 행동과 귀염성 없는 태도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한 달 동안 일 할 때도 그녀는 묵묵하게 망치를 두드리고, 그라인더로 갈고, 무거운 것도 별 불만 없이 옮기는 모습이 인상에 남아 있었다. 장난스레 머리를 헝크러트리자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그래, 저 눈이지. 제철소에서도 가끔 장난치면 저런 눈으로 죽일 듯이 쏘아보곤 했으니까. 등 뒤가 따끔따끔 해오는게 보통 스릴 있는게 아니라니까. 이내 그녀가 주먹을 쥐고 옆구리를 쿡 찌르자 "아야야야야." 하고 아픈척을 하며 오버된 행동으로 옆으로 넘어졌다가 오뚜기처럼 다시 돌아온다.
"헤헤.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고맙구만."
잘생겼다는 이야기는 순수하게 기분이 좋다. 짜릿해. 늘 새로워.
"나도. 뭐, 그 땐 의념 각성도 하지 못했던 때고."
학원도 바깥에서 알던 사람을 또 학원도에서 만난다는 것은 꽤나 각별하다. 은후도 그런 경우지만 은후는 어릴적부터 알아온 친구니 예외이고.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늘 저런 식이었으니까.
"뭐. 그럭저럭. 어찌됐든 죽지 않고 살아있다. 아, 그래. 소장님은 잘 계시고? 아직도 일 할 때 호통치시고 그러냐? 상상만 해도 귀가, 머릿속이 아주 쩌렁쩌렁 울린다. 가쉬! 허리 힘을 쓰라고 했지, 허리 힘을! 사내놈이 말라 비틀어져가지곤!"
어쩐지 미나즈키는 석연찮은 기색이었지만 납득하려는 기색이 강했다. 나도 어쩐지 씁쓸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 애써 달콤한 음료와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 넘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청월에서 지내던 긴 시간에 비해 정말 많은 인연을 쌓고 달라지고 있음을 떠올려 뭐라고 해야할까 기쁘면서도 복잡한 기분이 들긴 했던 것이다.
"응. 그래준다면 고맙고."
여태까지 대해주었던 태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야 기쁘다. 갑자기 '뭐야. 이제 청월도 아니야? 퉷.' 같은 발언이 나오거나 했다면 아무리 그래도 마음에 큰 흉터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가 공부하는 것을 흘끔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로 했다. 시험을 알려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난 직후인데 곧바로 공부라니, 열심히 하네. 의뢰는 잘 다니고 있어? 실기도 중요한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