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그렇구나. 미나즈키는 나를 예의상 선배라고 불러줬던 것이 아니다. 진짜로 선배인 줄 알았던거지....그는 내가 현재 성학교로 전학왔으며, 2학년에 머물러 있단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맙소사. 한 때 후배였던 아이에게 이걸 스스로의 입으로 설명 해야된다니, 현실은 너무 잔혹하다. 그리고 뒤이어진 의문도, 같은 청월 학생이라면 마땅히 가질만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청월이었다면 말이지. 아프란시아 고교는 청월보다 하교 시간이 2시간은 빠르다. 그래서 수업을 마친 뒤에 적당히 쉬다가 카페에 출근해도, 나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나는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망해서 얼굴이 불탈 것 처럼 붉어졌지만, 상냥한 마음으로 챙겨주는 자존심 때문에 속이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미나즈키. 나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성학교로 전학 갔어."
그리고.....지금은 2학년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선배도 아니야.....라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이며, 나는 고개를 떨궜다.
"아니요.. 사실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에요."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그게 깊은 관계를 보장하지 않으니 떠나가는 사람도 꽤 있다면서 말하고는 그래도.. 그러고 싶지 않은 분도 있고. 그게 시연 양이었지요.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묻는 것에 사과 케이크나 라즈베리 케이크의 맛을 말하면서 묘사를 기깔나게 합니다. 아삭하고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입을 씻어주는 객관적으로 매우 맛있는 케이크라고 말하면서 얼마나 맛있었으면 미식 스킬이 생기려고 했다니까요? 라는 농담성 말을 합니다.(*실제로 생김)
"그렇지만 역시 하나만 있는 걸 교환하는 건 조금 두렵네요.." 자신이 가진 3병은 스타후르츠 생과일 주스라면서 먹으면 하루정도는 매력이 조금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품 중에 신기하게도 마법소녀 복장...도 있다고 중얼거립니다. 그건 좀 부끄러웠던 걸까.
"글쎄요.. 몬스터에게는 너무 맛있어서 먹고싶다라는.. 정확하게는.. 욕망의 비대화로 인한 말로라고 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게이트 창작대회 같은 걸로 쓸까 하다가 내놓은 거라서 먹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게 함정적 요소였다나 뭐라나(대체)
"아 이게 맞네요." 분석 스킬을 써서 보너스라는 걸 알고는 조심스럽게 캐냅니다. 반짝거리는 투명한 유리 이파리같은 풀을 캐내고 다시 과일을 따야 하려나요.
확실히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과, 그게 깊은 관계로 이어지느냐는 별개의 이야기다. 다만 내 입장적으로는 일단 여러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시점에서 충분히 인기인의 자질이 있는 편이라고는 생각한다만. 뭐 이런건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임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넘어갔다. 그리고 뒤이어진 묘사에는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다. 너구리들은 요리를 잘하는게 종족 특성 같은걸까...
"음, 그건 그럴 지도."
아쉽게도 나는 중복 물품 자체는 없다....라고 생각하다가, 마법 소녀 복장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곤.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마법소녀가 되었을 때를 가볍게 생각해봤다. 어울릴 것 같아서 보고 싶다고 덧붙이는건 덤이다.
"무섭잖아...."
그렇게 말하니까 더 무섭다. 게이트는 게이트란건가....사람에게는 진짜 적용 안되는거 맞아?? 먹어도 되는거야??
"백.춘.심." 그 세 글자에 머리털이 쭈뼛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들으라는 듯이 또박또박 본명을 부른 짓궂은 사람을 한 대 때려주려고 주먹을 쥐었으나, 반가움이 가득한 장난스런 미소에 일단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이다. 분명, 예전에 아버지 공장에서 일손을 도왔던 남자애다. 한 달 정도 일하다 그만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거쳐간 이가 한둘이 아니라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얘는 워낙 잘생겨서 특별히 기억에 남아있었을 뿐이다.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헝클어뜨리곤 벤치 등받이를 훌쩍 뛰어넘어 옆자리에 앉는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그의 정강이를 세게 차주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주먹을 쥐어 그의 옆구리를 아프지 않게 쿡 찌르려고 했다.
"잘생긴 알바생."
아무래도 짓궂은 장난에 화가 나는 것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더 컸는가 보다. 언짢으려고 했던 기분도 금세 누그러진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능글맞은 건 여전하네."
그를 보니까 집 생각이 나서 약간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더 감상에 젖어버릴 것 같아서 픽 웃어버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버렸다.
사과하는 그에게 나는 애써 밝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래보여도 독특한 스킬도 얻었고, 연인도 사귀었으며, 최근엔 무시무시한 게이트에 참여해서 살아남았다던가. 등등. 요 근래 자랑할만한 일을 열심히 떠들어댄 기분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요 근래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성과라도 나와서 다행이다. 말할 꺼리가 없었으면 여기서 필연적으로 울적해지지 않았겠는가.
"음....난 괜찮은데. 미나즈키가 편한대로 부르면 되지 않을까?"
다른 학교 사람에다가 이젠 학년도 같으니, 엄연히 말하자면 선배는 아니지. 그렇지만 난 사실 그렇게 불리는게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고 할까.....오히려 반대로 미나즈키가 상쾌하게 '진화야! 우리 이제부터 같은 학년이네!' 라고 말하는게 심정이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같은 학년의 몇몇 나이어린 동급생이 '진화군' 이라고 날 부를 때 마다 상당히 묘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