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평화로운 수업날. 다시 지금의 이 평화를 누리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으며, 개중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일도. 그리고 한껏 투지를 불태웠던 일도. 혼란이 함께했으나 더없이 즐거웠던 일도 있었다. 지금은 다시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 이 일상을 한껏 즐기는 것이 남았으니. 시간표를 간단히 훑어보며 주양은 고민했다.
"흐으음~ 뭐가 좋을까나. 역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 제일 낫기는 할텐데~"
차라리 자신의 몸이 7개로 분열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수업 하나씩 다 듣고 와서, 수업 정보를 그대로 담은 채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모든 수업을 다 들은 기분을 즐기고 싶다. 쓸데없이. 그리고 의외로 성실해보일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아는 게 곧 힘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지만.
".. 으으음~ 그래도. 초청 교수님이 얼마나 수업을 잘 하시는지 한번 감상해보고는 싶은데~"
더워서 한참 허덕이고 있는 청은 눈에도 안 들어오는지, 한참동안 그 뙤악볕 아래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청의 날개싸대기가 날아오자 정신을 차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평소 안 들어본것도, 한번 들을 가치는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주양은 살짝 키득거렸다. 왠지 저 분이라면 이 더위 속에서도 전혀 안 더울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교실 안도 시원한 공기가 맴도는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주양은, 찻잔으로 점을 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 찻잔으로 점을 치는 것도 있었던가.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평소 실습 위주로. 그러니까, 거의 예체능 특화 느낌으로 비행술을 집중적으로 듣기만 한 주양으로써는 지금의 이 분위기가 썩 색다르게 다가올수밖에 없었다. 마치, 머글 학교에 늘 한둘씩 있는 운동부가 된 듯한 느낌으로 주양은 너무 앞도. 그렇다고 너무 뒤도 아닌 딱 중간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주양의 호기심과 흥미는 딱 지금 저 찻잔에 가서 꽂히고 말았다. 앉으면서도 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 설녀님은 이번 수업이 처음이었지. 지렁이 젤리 가져다달라고 한 것 외에는 학생들 앞에 자주 모습을 비추지 않았으니까 충분히 머뭇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양은 키득키득 웃었다.
"와~ 교수님, 저 질문 있어요~! 그러면 차 엄청 많이 마시면 더 많은 미래도 볼 수 있는건가요?"
굉장히 꿀맛 수업일것같다는 예감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한번에 하나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차를 물 마시듯 마시면서 바라는 것을 다 떠올려가며 점을 친다면 자신은 분명 소문난 점쟁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저런거 다 집어치우고, 무명의 점쟁이로 조용히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쏠쏠한 돈벌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다시 그 꿈을 과장해서 점점 키워나가며 주양은 방긋 웃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이걸 마시고 엎어놓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예상 와로 복잡하지 않은 방법에 주양은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헌데. 무엇을 떠올리면 좋을까. 찻잔이 조금 더 많았으면 이 모습이고 저 모습이고 다 떠올리면서 미친 스펀지마냥 찻잔을 죄다 비웠을테지만, 지금은 하나 뿐이니. ..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나갈 생각이었기에 미리 확인한다면 뭔가 허탈해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과연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시 탈들이 쳐들어올지를 알고 싶다고 상상하며, 주양은 찻잔을 깔끔히 비워내고 엎었다.
' 찻잔의 손잡이를 기준으로 찻잎의 위치가 왼쪽이면 과거의 일, 오른쪽이면 미래의 일입니다. 찻잎이 어떤 도형이냐에 따라서 길조와 흉조로 나뉘어져요. 별, 하트 같은 누가 봐도 좋은 모양이면, 길조. 단검, 부숴진 막대 같은 누가 봐도 불길한 모양은 흉조로 나뉩니다. 한 번 열어보세요. 그리고 모양을 확인해보세요. 단추나 개 모양이 나왔다면 절 부르세요 '
"아니에요. 응." 하고 스베타는 말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해서, 아닌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리 여기고 싶다면야, 더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런 마음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과는 오늘 밤이 첫 만남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해 못 할 당신의 그 믿음은 분명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럴만해요. 다들 부끄럼쟁이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그랬다고 들었어요."
스베타는 고개를 저으며 당신의 호기심에 답한다. 부끄럼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결국 이유는 보는 눈 때문이었다. 지금의 당신처럼, 한 명의 관심은 가볍지만. 그 수가 많고 지속적이게 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입학식 때 기린궁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걸. 기린궁에 들어오고 나서야 이해 하고, 알 수 있었다. 스베타는 두 팔로 감싼 무릎에 제 턱을 얹고 당신을 건너다보다, 당신의 학년을 듣고선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악몽을 꾼 날은 어쩐지 몸이 무겁고 묘하게 나른해서 움직이기 싫어지지만 그래도 수업은 들으러 가야 했다. 거기다 오늘은 간만에 지정 수업이 아닌 날이다. 한번에 모이는게 아니라 윤과 같이 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듣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아쉬움이 덜하다. 딱 5분 더 누워있고 싶은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수업 들으러 갈 준비를 한다. 머리 손질을 대충 했더니 여기저기 뻗쳐서 보기에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냥 가기로 한다. 귀찮으니까.
"......"
설렁설렁 수업표가 있는 곳으로 가 오늘의 수업을 보니 빠진 것도 있고 새로 보이는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들을 생각은 없었으니 한번 슥 보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로 향한다. 걸으며 발을 끄는게 좋지 못한 행동인 건 알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다리가 무거워 저절로 걸음이 끌린다. 지익지익. 다소 듣기 좋지 않은 소리를 내며 교실로 들어가 안을 한번 둘러보고 적당히 빈 자리에 앉는다.
하긴. 정말 이 미래 저 미래 가리지 않고 죄다 볼수 있었다면, 그리고 해석이 다 한결같다면 그땐 다른거 필요 없이 너도나도 찻잔 점성술 보면서 미래에 미리 대비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주양은 마냥 키득거렸다. 꽤 재미있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를텐데, 조금은 아쉬웠기도 하니까.
"음? 단추나 개 모양은 어째서 열외인가요 교수님~ 그건 다른 모양들처럼 딱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닌가요?"
의문을 가지며, 주양은 제 찻잔을 들기 전 먼저 교수님의 찻잔으로 잔뜩 시선을 주었다. 과연 설녀는 이 찻잔 점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것들이 꽤나 궁금했던 나머지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곧게 펴서 그렇게 떠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제 찻잔도 뒤집었을까.
"미래일까, 과거일까~ 그리고 과연 길조일까 흉조일까~"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괜히 쿵짝짝 쿵짝짝 하고 입브금을 넣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간단한 흥얼거림과 함께 찻잔을 열었다.
발 끄는 소리에 놀라다니, 저 교수님은 대체 어떻게 이 수업의 교수가 됐는지 의문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비뚜름한 자세로 오늘도 심약한 에반스 교수를 보았다. 무슨 수업을 할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교수가 어떤 서류 가방을 꺼냈고, 달각거리는 소리에 왠지 무슨 수업인지 알거 같았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
에반스 교수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지난번 보았던 백호 패트로누스를 떠올렸다. 그 패트로누스도 말을 했었지. 한마디 뿐인게 별거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선 꽤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숙달해서 나쁠 건 없겠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턱을 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