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너는 잘 모를 것이다. 네게 동조해주고 웃어주는 것 자체가 아주 좋은 사람인데 왜 부정하는 걸까 싶은 것이다. 아마 눈앞의 손님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넌 순수하게 무엇이든 믿고 신뢰하며, 단지 이사람이 그렇게 선택했을 뿐이라 이해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다리를 한번 교차하듯 굴러보고는 새하얀 치열이 드러나도록 미소를 지었다. 너의 대답이었다. 손님을 신뢰하고, 보름달에 대한 것도 신뢰하는 것이다. 문카프는 반드시 올 것이다.
"두통?"
너는 이해하듯 손을 내린다. 머리가 아픈 건 싫다. 누군가 아픈건 더 싫다. 내린 손을 잠시 빤히 쳐다봤다. 손님이 아프면 치료를 해주는게 후부키 가문의 사람들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땅한 재료도 없거니와 이유없이 찾아오는 두통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장죽을 소중하다는 듯 바라본다. 타들어가는 쑥의 연기가 바람결의 실타래처럼 흔들렸다. 금세 공기를 타고 사라져버리는 연기처럼 너의 대화도 빠르게 끝난다. 너는 손님에게 질문하고는 대답을 듣자 환히 웃었다.
"기린! 이노리는 기린 학생을 처음 봐요? 다들 기숙사가 안 보여서 찾아갈수도 없어요. 신기해- 거기도 눈안개에 덮여있나요?"
너는 궁금한지 고개를 기울였다. 기린궁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알고있다. 마치 후부키처럼 찾아야 하는 곳일까. 그곳도 그리운 눈안개가 있을까. 너는 마냥 순수하게 질문한다. 그 속에 담긴 뼈는 이미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으니까.
"아-! 아! 나는 이노리에요? 후부키 이노리야. 누리라고 불러도 돼요? 이름이 두개거든. 현궁이에요? 6학년! 너는요?"
주양의 손을 잡고 걷는 단태의 걸음걸이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와 같았다. 걸음걸이는 그대로이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꾹 주며 단태는 주양을 자신의 곁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려했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전혀 알수는 없지만 이해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날 때는 몰랐던 어둠은 자라면서 주변의 빛까지 집어삼켜서 그 몸을 부풀려냈다. 본성은 그렇게 자라왔다. "우리네 가문 사람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든." 걸음을 옮기면서 단태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주양의 말에 대꾸한다.
"흥미가 끌린다면 지금까지처럼 계속 이해하는 척해주길 바랄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이, 딱 그것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자신과 주양의 관계는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끝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 이미 서로의 일부를 알게 됐으니 더이상 이해하는 척 할수도 없는 사이. 관계를 이어가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유지한 채 그저 서로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수 밖에 없는 관계일 뿐이기 때문에 단태의 중얼거림은 아마 자신과 주양의 관계의 정답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 자기가 워낙에 예뻐야지?"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이 되돌아왔다. 단태는 뻔뻔하게 웃으며 주양에게 대꾸했다. 허무한 무표정을 짓던 표정은 평소와 같다. 늘 그렇듯, 뻔뻔스러울만치 능글맞았다. 자신은 쌍둥이의 죽음에 화가 났는지, 슬펐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이어지는 주양의 말은 단태의 걸음을 아주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재차 움직이게 만들었다. 민폐를 끼친다는 건 누가 결정하는건가. 나쁜 사람이라고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섬찟하게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를 몇번 깜빡이며 단태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여전히 주양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배가 고픈 짐승이 무고한 생명을 해쳐서 배를 채우는 걸 누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던가. 서주양. 목적을 이룰 수단이 있다면, 그 수단을 사용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거야. 단태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움직여서 주양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가까이 맞대려했다. 너는 나쁘지 않아 라는 말대신이었다.
그렇게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소동이 막을 내렸다. 원래 이런 게임에서는, 망가지는 게 재미라고들 하지만 주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걸리지 않은 사람이 최후의 승자라는, 극히 이기적인 마인드. 그 마인드를 밀고 나갈 수 있는건 자신이 왕으로 뽑힌건 있어도 벌칙 수행자로 뽑힌건 없었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자신은 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아무튼, 한바탕 눈호강과 눈요기가 끝난 뒤 주양은 얼른 당과점으로 향했다. 당과점 문 닫기 전에, 오늘도 지렁이 젤리를 사주어야 한다-라는 일종의 직업 정신이 열일한 탓이었다.
너는 교수님의 말에 새하얀 치열이 드러나도록 미소를 지었다. 공감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냥함이 과연 온전하게 돌아올까? 누군가의 상냥함은 순수한 악의일 수도 있다. 자신도 악의인 줄 모르는 상냥함은 독이 되어 스며들 것이다. 버티는 것은 타인의 몫이다. 네 몫은 이미 응당한 값을 치르고 없어진지 오래지 않은가. 너는 생각을 금세 치워버리고 빗자루를 두 손으로 꽉 붙든다.
"무식한 방법이요? 교수님도 빗자루한테 인센디오 쓴다고 협박했어요?"
그러니까 네 비행 실력이 아직도 제자리인 건 끝내 모르는 것 같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빗자루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퍼프스캔은 옹기종기 모여있다. 참 영리하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비행을 한다. 행복한 일이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방울이 바람결을 타고 요란하게 딸랑였다. 너는 안정적인 공기의 흐름을 타고 들리는 삐약거리는 소리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지된 숲에 도착하고 빗자루에 내렸을 때, 네 머리는 바람을 타고 산발이 되어 있었다.
너는 손을 들어 머리를 손으로 긁어 빗어내린다. 날카로운 손톱이 두피를 긁었다. 그리고 빠르게 뒤로 돌아 물통에 든 주스를 마셨다. 예의를 챙기는 일이다. 하도 활짝 웃었더니 바람이 입천장을 바싹 말렸기 때문에 주스를 한모금 삼키고 뒤로 돌았다. 그리고 네가 와아- 하고 감탄한다. 아! 세스트랄이다. 너는 세스트랄이……
"아-! 예뻐! 너는 정말 예쁜 남색이구나?"
보이는 사람이었다. 너는 대뜸 가면을 벗어 지팡이와 같이 하오리의 안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죽은 사람같이, 마치 백내장을 앓는 사람처럼 새하얀 눈동자에 세스트랄을 가득 담는다. 세스트랄은 가면을 써서 좁아진 시야로 보면 안 되는 귀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너는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말에 고개를 휙 돌린다. 아주 기쁜 표정이다. 눈을 접어 미소를 짓고 활짝 웃었다.
가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며, 주양은 마냥 웃었다. 허나,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이 관계가 워낙 재미있을 뿐이었다. 변화구를 던질 필요조차도 없을 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주양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공통선상 위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 공통점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겉도는 상황이라는 것은. 그저 한 없이 황홀할 뿐이다.
"원하던 바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서로가 서로를 감싸지 못한 채 겉돌고 말거야. 하지만, 너나 나나 그걸 바라고 있는 거니까~ 지금처럼 계속 함께하자?"
졸업 전까지. 라는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은 채, 주양은 씩 웃었다. 그런 당연한 것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확인사살 겸 꽂아넣듯이 말할 수도 있었으나 그건 상대가 끝까지 이 관계를 납득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나 할 일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선.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 허나 그 마음가짐이 어디까지 갈 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변덕스러움이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주양 본인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아직 당신에 대한 세세한 것을 전부 전해들은것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언젠가 또 다시 변화구를 던질 날은 찾아오게 될 것이다.
"하여튼~ 우리 여보야도 참 짓궂어.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는 그 말이 진실인줄 알고 말거야? 뭐, 기분은 썩 괜찮기는 하네~"
다시. 평소에 굴던 것처럼 히히덕거리면서 당신과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혀왔다. 허나 그 태도만큼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예전처럼 지나치게 과장되고 거짓된 가면은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가 판단했으니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내면의 변화였다. 마냥 순수하고 수줍게 굴던 모습이, 조금은 더 노골적이고 능글스럽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속에 담겨있는 의미 하나만큼은 같았다. 그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이해하는 척 하며 다시금 이 거짓된 역극을 이어나가는 것. 단지, 자신이 쓴 가면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당신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가던 주양은, 잠시 멀뚱히 당신을 바라보았다.
"..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 여보. 나는 조금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나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는거지, 그치?"
이걸 듣고도 괜찮다는 반응이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니라면, 그저 더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자신을 끌어가려는 또 다른 악마의 유혹인가.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차라리 자신이 어설프게 악인으로써 정립하지 않는 편이 더더욱 속 시원하고 개운하며 가끔씩 받던 형용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분을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주양은 입꼬리를 올린 채 맞대어진 볼을 살살 부볐다. 스스로가 악인으로써 정립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칭 나쁜 사람이면 무엇 하는가. 그저 별 의미따위 없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늑대의 탈을 쓴 양마냥 구는 것 뿐인데. 그런걸로 애쓰는 건. 참 어리석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 덕분에, 더더욱 망설임 없이 악셀을 밟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의도치 않게 우리 여보야한테 크게 한 가지 배워가는 기분이기도 하고~ 지금 나한테 이야기해준 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이용할 수 있는건 최대한 이용하는 것.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나의 길. 그러니, 앞으로는 그 무엇이 오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겠노라고 생각하며. 주양은 다시 웃음을 흘렸다. 물론 진짜 그렇다고 융통성 없게 굴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테니, 상황을 가려가면서 판단해야하기는 하지만. 이젠 더이상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언 하나하나가 자신을 위한 것인것만 같았다. 그렇게 또 한껏 왜곡하면서, 주양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우리 여보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게 조금 궁금해졌어. 우리 여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어? 아니. 그 전에, 졸업 이후의 목적은 정해뒀지?"
"너의 가장 작은 꿈이 뭐야? 사소한 것들." 이노리: 제로콜라가 마시고 싶어. ((청년의 목소리로 말해요!))
"네 성격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이노리: 이노리는 섞여있어요?
"그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한 거야?" 이노리: 이거! 친구가 잘라줘요? 친구는 장의사 일 할때만 부르지 굳이 이런 걸로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이노리한테 먼저 세스트랄 꼬리털 필요하다 했어요? 루가루 털도 친구가 뺏어갔어? 친구 싸가지 없어-? ((저 멀리서 누군가 "자네나 잘하지?" 하고 불퉁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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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의 진단이에요! 첼이의 진단도 냠냠 먹어요!😋 쿨한 첼이 너무 좋아요..냉정한 미녀라는 건 첼이를 위한 말이 아닐까요?
택영은 한밤중, 난데없이 들이닥친 기숙사 친구에게 끌려 영문도 모르고 붙잡혀 숲 앞으로 끌려나왔다. 문카프 관찰 의뢰를 하기 위해 금지된 숲 쪽으로 가야 하는데 혼자 나가기엔 무섭다나 뭐라나. 그 말을 꺼낸 친구는 쫄보였고, 그 친구의 친구인 설택영은 안타깝게도 그보다 더한 쫄보였다. 쫄보가 둘 있더라도 음수가 제곱되어 양수가 되는 결과값은 도출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걸 어쩌겠나! 문카프 관찰이라 하면 좋지 않은 기억부터 떠올라서 마음이 영 심란했다. 문카프를 관찰한다며 혜향 교수를 따라나갔다가 난데없이 반 시체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과 조우한 후, 택영은 기분이 심히 저조해져서 삼일 동안 밥맛이 없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그 문제가 아니고서도 어두운 숲은 그 자체로 으스스한 장소였다. 인기척을 내지 않기 위해 불을 끄고, 흉흉한 소문이 자자한 밤의 숲 인근을 거니는 일은 사람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반, 그러면서도 제 쪽에서 선뜻 친구를 버리지는 못해 같이 가주려는 마음이 반. 택영은 친구의 허리를 꽉 붙들고 질질 끌려가다시피하며 걷고 있었다. 울상을 하고선 목소리가 잔뜩 울적하게 처졌다.
"니… 니 진짜 너무한 거 니도 알제. 설명은 해줬어야 되는 거 아이가. 내 버리고 가기만 해봐라, 놀래 죽어가 유령 돼서 니 저주해뿐데이." "야이씨, 불길한 소리 하지나 마. 불편하니까 이것 좀 놓…… 저기 나왔다. 야, 빨리 하고 얼른 가자."
빨리 끝내면 빨리 기숙사로 갈 수 있다! 그것을 아니 그는 냉큼 손을 놓았다. 정말로 빨리 처리하는 데만 집중하려는 심산인지 수첩에 글을 쓰는 친구의 손놀림이 줄 치듯 흐늘흐늘했다. 얼떨결에 끌려오긴 했어도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숙제 한다 생각하면 되겠지. 그도 펜을 꺼내 관찰한 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요한 숲은 여전히 으스스하고 선득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이는 문카프의 얼굴은 귀여웠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아서, 그는 조금쯤 열의 있는 태도로 기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