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탈은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안에 들어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 월병이네요.
' ........ '
그는 말 없이 월병을 들어서 입에 물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곧이어, 그는 비릿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 왔어!? '
비명을 지르는 소년과 그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갓을 쓴 청년의 말에 할미탈이 그 둘의 사이를 가로막듯 섰습니다. 비명을 연신 지르던 소년은 최대한 힘을 짜내서, 할미탈의 바짓단을 붙잡았습니다. 불결한 손으로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더 이상 월병을 먹을 기분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쉽네요, 오랜만에 먹는 고향의 과자였는데.
' 어쩐 일이야? 결벽증이 있는 할미탈이 더러운 손으로 자신을 만져도 내치지 않는 건 또 처음보네? ' ' ..... 주인님의 신분이 되어주는 아이니까. 굳이 갇혀있던 걸 왜 꺼낸 건데? '
그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양반탈이 물었습니다. 변화가 생긴 걸까, 싶었던 것입니다. 눈 앞의 누추한 아이를 만질 생각은 없었던 듯 할미탈은 백정탈에게 턱짓을 했습니다. 백정탈은 순순히 아이를 데리고 안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 넌, 네 과거를 지울 거면 제대로 지워. 이걸 받았으니까. ' ' ! 야, 그거...!! '
태피스트리 조각. 자신의 얼굴 쪽에 붉게 새겨진, 천인공노할 죄인이라는 단어에 양반탈이 미간을 확 찌푸렸습니다.
' 그리고 초랭아. ' ' 엉? ' ' *크루시오 ' ' 씨X!!!!!!!!!! '
*용서받지 못할 저주. 고문용으로 쓰이며, 죽이지는 않으나 굉장한 고통을 주는 주문이다.
자신의 바짓단을 더럽히게 한 원인을 제공했던 초랭이탈을 향해, 할미탈은 용서 받지 못할 저주를 날렸습니다. 곧이어, 초랭이탈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어떤 대답을 주고받더라도 변화가 없던 단태의 섬찟하리만치 침침하게 가라앉아있던 붉은 암적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호기심이었다. "규격이상의 수단?" 하고 물음을 던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느물거렸지만 능청스러운 기색은 없는 상태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도 곧 가라앉았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그런 사이에 의미는 있는건가.
"이해하라는 말은 권유라던가 제의는 아니었어."
그 사실이 맞았기 때문에 단태는 담담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주양의 시선을 말끄러미 응시하다가 피식, 하고 짤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꼭 놀란 것 같은 눈빛이여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웃었을 것이다. 주양의 이어지는 말에, 단태는 그 낄낄거리는 웃음이 잦아드는 얼굴로 암적색 눈동자를 깜빡였을 뿐이다. 팔짱을 끼고 눈을 깜빡이고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왜, 아닐거라고 생각해? 지금 보여주는 모습에 대해서도 짐작만 했을 뿐이지 확신하지는 못했잖아?"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주로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불편하고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자주 해보였다. 지금도 그런 식의 대답이었다. 당연하게도 주양의 말이 맞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화와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이해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체 하고 있던 상황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끊어지고는 있어도 나름 대화가 잘 이어지고 있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단태가 주양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내기에 대한 이야기로 끌어갈 이유는 없었지만 대화는 몇번이고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거리를 진지하게 대화에 끼워서 나누고 있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아야했다. 아니 사실은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먼저 납득이 안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자신도, 그녀도. 장난인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행동을 해보인 뒤에 단태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주양의 목뒤를 잡은 손으로 가볍게 눌러준 뒤 손을 떼어내고, 걸음을 뒤로 물려냈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관심은 없지만 탈들과 만났을 때 네가 쓰던 마법들이 유난히 불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관심있게 보고 있어."
여전히 주단태가 던지는 말은 평범한 대화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있었다. 영 엉뚱한 소리를 하던 단태는 잠시 주양을 바라보고 고개를 기울여보였다. "너무 길지 않다면, 들어줄 수는 있어." 하는 대답을 내놓은 단태는 산책을 계속하자는 것처럼 주양에게 손을 내밀었다.
물음을 던지는 당신을 보며 주양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처음부터 이런 쪽의 이야기를 던지면서 반응을 조금 끌어볼걸 그랬나. 막연하게 선택지만 던지거나 선택할 기회를 다시 당신에게 패스했던 방금 전에 비해서 꽤 그럴싸한 반응이었기에,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자신은 이런 쪽에 대해선 꽤 불친절하기 마련이었다.
"뭐. 딱히 별것 없을지도 몰라~? 단지. 짧게는 탈들이 흔히 읊어대는 저주 마법부터~ 여보야가 상상한 것 이상의 무언가의 도움까지 포함된다는 것 정도야. 운 좋게도 나는 그 방법을 직접 전달받았을 뿐이고~ 그 방법을 지금 써먹었다간 탈 이상의 공공의 적이 될게 분명하고."
전달받은 방법이라는 것은 후자의 이야기였다. 저주 마법 정도야, 주양이 느끼기에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저, 이곳의 모두는. 그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은 채 아직도 남아있었다. 학교 내에서. 무해함을 지켜야하는 이 곳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아즈카반에 가버릴테고, 이곳 사람들이 하루살이마냥 오늘만 살고 죽는 게 아니라 각자의 미래 계획이 있을테니까. 당장 자신도 미래의 계획을 향해 안전하게 졸업하는 것을 최우선하고 있었으니, 남들이야 안 그러겠냐는 마음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융통성 있는 모습이지만, 결국 그 모습도 자기 자신이 느낀 생각이 최초 근원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즉.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기적인 마인드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굴 것은 없었다. 당신의 말대로. 그 어떤 뜻도 담기지 않은, 늘 자신이 쓰던것과 같은 느낌의 말이었을테니. 당장 자신도 그 어떤 이해나 납득을 바라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양해 바란다느니, 너가 이해하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자주 쓰기 마련이었으니. 그렇기에 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슬쩍 눈웃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분명 별 의미 없은 농담이었을 텐데. 내가 너무 단호했지? 하는 느낌으로. 이윽고, 당신의 웃음이 잦아들자 주양은 짤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가끔은 그런 도박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는 걸 조금 줄이자면, 내가 널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짐작하기만 할 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짐작을 진짜라고 생각해버리는 일이 잦았기도 하고~"
남에게 혹시? 하는 기대를 품는것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이 그렇게 멋대로 단정짓고 밀어붙이는 편이 더 익숙했다. 나중에 자신이 억측으로 밀어붙이던 사실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애매하게 둘러댈 수 있으며, 괜한 기대를 품지 않고 남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어렸을 적 품었던 하나의 어긋남은, 이미 성장해 다른 형태로 변질된 것도 있었지만, 가끔은 그때 처음으로 명명했던 의미를 한껏 담은 채 남아있기도 하였다.
".... 오호라. 적어도 그 모습이, 여보야의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뭐 그런 느낌이려나? 관찰력이 꽤 뛰어난걸~ 뭐. 그건 직계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언젠가는 싹 밀어버릴 놈들이지만, 어렸을 적에 그들의 사상과 방침에 어느정도 물들어버린 건 맞기도 하고.
자신이 뒤틀리지 않고 한 없이 맑았던 먼 과거부터, 뒤틀리고 말았을 시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마법사로써 재능을 붙일 일도, 이 학원에 입학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제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하는 마음 속 울림이 있었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장나기 전의 핵심 내용을 배제한. 가문원들끼리의 싸움 이후에 느낀 것을 풀어냈을 뿐이다. 이윽고 주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당신이 내민 손을 마주잡았다.
"뭐, 길진 않을거야~ 과거에 내가 아끼던 사촌동생이. 직계랑 방계의 싸움으로 영영 못 볼 사람이 되었거든. 그때 내가 직계를 싹 다 내 앞에 꿇려버리겠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분명 그 과정 중에선 피바람이 불겠지? 과거가 불행해도 결국 남의 피를 내 손에 묻혀야 하니까. 그래서 난 나쁜 년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동시에 더 악독하게 굴려고 했던거고~"
이제야 조금. 자기 자신에 대해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민들레마냥 노란 머릿결이 참 고왔던 그 아이. 아직도 잊지 못할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그때 그 죽음 앞에서 가졌던 자신의 다짐과 미래의 계획. 자신이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천조각을 덕지덕지 엮어붙인 모양의 싼티나는 조각보와도 같은 모습이었을 테지만, 주양은 그 조각보 하나만을 가지고 여기까지 넘어왔던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을 품어도. 그리고 중간에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도, 그 어긋남을 바꾸려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누구도 바로잡지 않았으니, 그저 자신이 믿는 것만이 진실이고 참인 것이라고 느낀 채.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남들한테 과거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해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미련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이야기 끝!"
과연 그 사실이 미련이라고 할 수 있는지. 미련이라기보다는 그저 그때의 다짐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주양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냥 위화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쓸데없이 경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며, 주양은 다시 방긋 웃었다. 당신이 자신에게 보여준 것에 비해, 너무 많은것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았던 것일테다.
두어번을 더 버둥거리고 나서야 레오는 체력이 소진되었음을 깨달았다. 평소보다 더 격하게 싸운 것도 있고 동물로 변신했던것들이 체력을 더 빼먹은 것이다. 정말 지쳤는지 레오는 가만히 누워서 주양의 발목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만 있었다. 어쩌면 치우고 싶어도 자신이 치우지 못하게 막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꼭. 발을 치우고 나서야 레오는 두 어번정도 마른기침을 뱉고 후-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 진짜 힘만 더럽게 세네.. 너 잘났다! 이거나 먹어! "
그리곤 가운데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어차피 규칙따위는 없는 싸움이었다. 이것도 허용되고, 저것도 허용되는 그런 싸움. 딱 하나의 규칙이라면 먼저 쓰러트리는 쪽이 이긴다는 것. 있는 규칙에 충실하면서 싸웠기 때문에 후회는 남지 않는다. 오랜만에 땀을 빼서 오히려 개운한 느낌. 뒤이어 레오는 옷을 거꾸로 입었다는 말에 또다시 얼굴이 확 붉어졌다.
" ..알고 있었으면 알려줬어야지!! 이 싸움은 무효야! 무효! 옷도 거꾸로 입어서 목도 졸리고 숨도 막히고 그러니까 힘도 제대로 안나오고 방심하게 되고 또..또... 아무튼 무효야! 이 치사한 개밥아!! "
어쩐지 목이 졸린다 싶었고 어쩐지 옷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내밀어주는 손이니까 잡긴 해야겠지. 레오는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곤 더러운 것을 만지기라도 한 것 처럼 으으- 하고 손을 탁탁 털었다. 옷 거꾸로 입었다고 했지. 레오는 고개를 내려 옷을 확인하곤 정말 거꾸로 입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괜히 발을 구르면서 두 팔을 빼 옷 속으로 집어넣곤 천천히 옷을 돌려 입었다. 뭐라도 복수를 해야하는데. 뭐라도..
" 휴... 뭐. 끝난건 끝난거니까. 자. 악수. "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인지 레오는 이히히, 하고 조금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좋은 생각이라면, 주양이 손을 잡는 순간 자신쪽으로 확 끌어당겨 무게중심을 잃게 만들고 그 틈에 끌어안아서 어디 한 군데를 물어버릴 생각이었다. 잠깐 물고 놓아준다면 꽤나 아플테니까 그 정도라면 소심한 복수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