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아야할 이유도 없잖아. -뭐, 졸업할 때까지 학원에서 시끄러워지기 싫어서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라면 할 수 있는 걸 참고 있는 게 더 힘들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중얼거림이었다. 눈썹 한쪽을 찡그리면서 중얼거리던 것을 멈췄다. 약을 먹은 뒤의 증세들은 완화될 뿐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었지만 단태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계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마음 먹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은 주양이 말했던 나쁜 짓에 관련된 것이었다. 찡그려졌던 단태의 눈썹이 다시 평소대로 되돌아온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해봤자 네가 들어줄 일이 없을테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네가 이해해. 나는 감정에 의거해서 이야기를 해봤자 납득은 커녕 이해를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나주 본가에서나 써먹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억센 억양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아서 단태는 잠시 말을 중간에 끊어먹고 자신의 입안을 혀로 훑어낸 뒤에 끊었던 말을 이었다. 아주 짧은 침묵이여서 티도 나지 않았다. "나한테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하면 안되지. 내가 널 원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옷자락을 여미는 것처럼 단태는 예의 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문장을 덧붙히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능글맞은 것도 아닌 것이 꼭 머글 동화 속에 나오는 빨간망토를 향해 침대에 숨어서 이죽거리는 짐승이 지을 법한 섬찟한 웃음이었다.
"날 내기에 걸면, 그 상대의 숨을 끊어버려도 상관없는거겠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르겠다고 일관하면서 무미건조하게 굴던 단태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보름의 광증과 비슷한, 하지만 어딘지 다른 분위기로 주양의 말에 대꾸하면서 목 뒤를 감싸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가 주양의 턱을 붙잡아서 예고 없이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접촉 사고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지만 단태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고개를 틀어서 주양에게 속삭였다.
"자기야. 나는 자기가 그렇게 과거에 목을 매는 사람인 걸 몰랐는데.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후회라도 하는 거라면 관두는 게 좋아. 난 그런 이야기에 흥미없어."
>>21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근 생으로 씹어먹어도 맛있을거야 아마..? 실제로 씹어먹어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면 헉 오 옴마나 하면서 당근을 살살 흔들었겠지만~ 아슬아슬하게 틀었으니까 패스다~! :D 아니 왜 한번 더 깨려고 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ㅜ 일단 후딱 이어야겠다..!
>>212 원래 그런 접촉은....상대에게 의건을 물어야하는 게 옳...기는 하지만 친구 사이니까(??) 트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틀었지. 체엣, 당근을 살살 흔들었다면 그렇게 썼어야했는데(쭈주:나가) 앟 천천히 줘:P 아마 이번 답레를 받으면...내가 기력이 다해서 잡담 기력밖에 없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o<-< ((껌땃쥐))
"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지만~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참을줄도 알아야지. 그때 이용할 수단이, 규격 이상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자신이 참고 넘어가는 것은 다양했다. 선비탈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반박하며 나선 금지된 저주 마법이나, 이후 배운 만큼 써먹어볼 예정인 규격 외의 화염마법인 핀드파이어와 프로테고 디아볼리카. 그리고 이미 한번 들었던, 잊을 수 없는 달콤한 제안까지.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초면인 사이라도 상관없는 산제물 서른을 바치기만 한다면 그 무엇이든 이루어 주겠다는 그것의 제안을. 주양 자신은 반박하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받아들였다. 허나, 그 대상이 적어도 이곳이.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이 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젠 그 생각마저 무엇을 위해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지도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 하나의 안위를 위한 보험인가.
"어머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적어도 원하는게 있기는 했던 모양이네? .. 아하핫.. 이해하라니. 이미 너도 우리의 사이에 대해 잘 알면서. 우린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할거야. 지금까지도 그랬고~ .. 아마 앞으로도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감고 히죽거리던 주양은 곧 들려오는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조금. 놀랐다는 느낌을 담아 당신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멀이 끝날 때까지 당신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던 주양은 다시 웃어대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렇게 치고 들어올줄은 몰랐는데? 이게 또 이렇게 될 줄이야. 역시 이래서, 어디로 튈 지 모를. 종잡을수 없는 사람은 참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흥미. 그리고 더 큰 재미. 오직 그것만을 느끼며, 웃음을 가라앉힌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
"음흠~ 날 당황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아주 잘했어! 꽤 놀라운걸? 설마 다른것도 아니고 나를 요구받는 경우의 수가 나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보야가 그러지 않을거라는 건 잘 아니까. 그치?"
미소를 걸친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평소대로의 역극이었다면 모를까. 진실된 모습으로나마 그런 이야기를 속삭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역시 역극에서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을 조금 더 확실하게 구분짓기 위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땐 순수한 이해자인 척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될 필요가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그런 표정만을 내비치며.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마냥 주체할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역극과 지금의 이 경계가. 애매모호해질것만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주양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단태~ 잘 들어? 내기는 내가 하는거야. 내기에 걸린 내깃돈에게 행동할 권리는 없어. ... 뭐. 그렇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도 조금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는걸? 항상 가만히 있는 내깃돈만 보는 것보단. 감정 기복에 충실한 내깃돈이 더 좋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받아치는 와중에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자신의 도발이 생각보다 물렁물렁했나 하는 것이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평소에도 생각 없이 내뱉던 말과 늘상 하던 도발을 목적으로 던진 이야기였고, 내기 관련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요령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허나 그것을 느끼면서도 이미 자신은 어느정도의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남을 내깃돈으로 걸 생각이었냐면, 조금은 애매모호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더 하기로 한 채. 하마터면 접촉 사고가 일어날뻔한 이 상황에 조금 놀란 것이었는지 목이 살짝 뻣뻣해졌다. 허나 그뿐이었다.
"여보야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 말들을 해야할건 어째 나인 것 같은데? 이것도 싫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말장난으로 치부할 생각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거야?"
어째 그 질문조차도 다시 원점을 반복하는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었다. 루프물. 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대강 이런 느낌인걸까. 원하는 결과가 단 하나라도 도출될때까지,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비슷한 상황을 계속 되풀이하며 한없이 맴도는 것이. 답답한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은 정말 이 상황에서 무엇을 쥐어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뿐이었다. 이윽고. 비탄에 잠긴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 내가 일부러 과거를 멀리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후회는 아니지만~ 우리 여보가 관심 없어할만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지는 않은걸?"
과거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단지, 미련과 원망. 그리고 증오만이 한데 뒤섞여 기형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과거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정한 나아갈 길 조차, 과거의 자신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고만 있었으니까. 그때 입력해둔 정보 외에는 그 무엇도 계산 범위 내에 없었다. 그러니, 당신이 자신을 과거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 보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기도 했다.
>>21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침없이 접촉하지만 친구사이에 지킬 선은 지켜나가는 땃태.. 그리고 그렇게 이끌어간 땃주.. 아주 칭찬해! :D 아앟 맙소사 당근 살살 흔들줄 알았으면 진짜 그렇게 되는거냐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굉장히 몹시 당황하면서 정색하다가 의문 가졌다가 하는 고장난 쭈를 볼 수 있었을것..! (?)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늦기도 했으니까~! 히히 껌땃쥐.. 잡아먹는다.. 볼냠한다...! (볼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이것저것 쭈의 수다타임(?)같은 느낌으로 쓰다 보면 그렇게 된다 :D!! 응응 오케이~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나머지는 내일 이어보자구! 아무말 대잔치도 좋겠지만 제대로 이어가는것도 재미있는 법이니까 :)
아니 그리고 쳇 하는거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앟 쭈의 정색을 감당할 수 있다면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맞다...! 뭔가 좀 이야기를 이어가보려고 했으나 내가 예상한것보다 쭈가 훨씬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라서.. 흑흑 (눈물닦)()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 아무것도 안 한 이유는 지금을 위해서였지! 자 순순히 내 영양분이 되어라~~ (쮸와아아아아아아압)
이것저것 수다타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흑흑흑 요즘 난 땃태의 심리가 너무너무 어려운데 쭈주는 대단하구나(??) 오케이내일 최대한 틈틈히 써줄게:D
((아니 그냥 쳇일 뿐인데 왜요 므요))쭈의 정색...🙄땃태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오너가 상처받을테니(농담이다) 하지 않는 쪽으로 해야겠다. 아무리 합의가 된 사항이라고는 하지만 말이지:P 갑작스러운 말이었는데 답해줘서 고마워XD ((기력이 쪽 빨려서 종이조각이 되어버림)) 쭈주 용서못해...땃!
그나마 예전에 때렸을때보단 마법이 더욱 잘 통하는 듯 싶었다. 그래봐야 결과적으로는 잠깐 따끔하고 말 뿐인. 사람으로 치자면 모기가 와서 몇방 물고 날아간 정도의. 좋게 봐줘야 쐐기벌레에 스친 정도의 타격이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트롤은 아직 건재했으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빠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주양은 다시 모래를 한 웅큼 가득 쥐고 트롤에게 뿌렸다.
"자~ 넌 이미 한번 당했을테지만 또 당해주길 바래! 그래야 내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거든~!"
그 다음 과정은, 당연하게도 기숙사로 냅다 내달리는 것이다. 이런 치고빠지기도 능수능란해져야 이득을 보기 쉬운 법이니까, 이번 기회에 한껏 익혀두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담 잇고 답레 쓰고 하다보니까 퀘스트 완료하는것도 깜빡 잊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1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이 좋아 수다타임이지 거의 아무말대잔치 느낌이랄까? 흑흑 대단한건 아니야 지금 중립고삐 놓으면 수다타임이고 뭐고 미쳐 날뛰는 시뻘갱이()를 볼 수 있을거라구.. 좋아좋아~! :)
(따지는 땃주도 귀여워)(쳇 한것도 귀여워)(그러나까 또 볼냠)(????) 사실 정색에 대해서는.. 고장남 반응에 포함해뒀던 말이라서 만약 진짜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렇게 했었을거야 :) 땃주가 상처받는건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 상처받으면 쭈를 저 멀리 패대기치려고 했는데~! (순순히 바닥에 쭈 내려놓기)(?????) 아앟 고맙긴! 실제로 일어났으면 재밌을것 같을 모먼트라 대답했을 뿐인걸~ :D 후후후 종이조각이 된 땃주는.. 나를 이길 수 없을걸..? 어디한번 지금 볼냠하면 또 어떤 식감(?)일지 해봐야지 히히 (볼냠)
당신에 대한 첫인상은... 물끄러미 당신을 본다. 얼굴의 반을 가린 그 가면 때문일까, 어딘지 모르게 동양극의 한 인물 같다는 인상이었다. 매우 낯설었지만, 강렬하고 나쁘지 않았다. 뭐든... 평범하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물론 고작 이런 인상 따위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어진 당신의 말로 하여금 당황스러우니, 당신은 마치 수수께끼 같아서. 아무리 애써도 당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방울 소리가 생각을 끊는다. 하늘에 분명히 달이 뜬 밤이지만, 예쁜 아침이라는 당신의 인사를 두고서 스베타는 지적하는 대신, 웃는 당신을 따라서 조금만 입꼬리를 위로 휘어 냈다. 당신이 장죽을 입에서 떼어내자 다시 알싸한 연기가 허공에 퍼진다. 분명히 연초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여전히 무엇을 태우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신이 손으로 연기를 훑자, 연기는 공기 속으로 풀어지며 서서히 날아간다. 그 끝에서 희미하지만 마냥 탁하지 않은 향을 맡은 것 같기도 했다.
"트롤 때문에 다 도망갔군요."
스베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줍음 많은 문카프들이 그리 겁을 먹고 도망쳤다면, 아무래도 오늘 밤 안에 관찰 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이었다. 이 숲을 또다시 찾아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통이 치밀어 관자놀이를 꾹 누르다가 당신의 손짓에 빈 옆자리를 채운다. 양피지와 깃펜은 바위 위에 조심스레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장죽에 관심을 두었던 것을 안 것일까. 스베타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내용물의 정체가 쑥이라는 것을 듣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떠냈다. 당신의 권유에는 고민하는 눈치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 민족성 때문에 술만큼 담배 또한 익숙하고, 관대하여 자주 보아왔지만. 직접 접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이 연초가 아닌 쑥이라 하여도.
"사양할게요. 대신.. 무슨 이유로 쑥을 피우는지 알려 줄 수 있나요? 맛이 특별하거나, 무언가 효능이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발렌타인 샬럿 언더테이커는 오늘도 일거리에 치였다. 할 일이 산더미다. 이런데도 학교니 뭐니 한다니, 말이 안 된다! 가문원들에게 맡기고 학업에 열중하라 했지만 그의 눈에 차지 않는 무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유능한 자신이 여기서 계속 일하는게 낫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가문의 어른들은 극구 말렸지만 가정교사를 초빙해 붙이겠다는 말에 한시름 놓는 분위기였다. 대신 그도 계약 조건을 붙였다. 일이 없는 날에 수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다들 그의 꾀에 속았다며 난리가 났다. 일이 없는 날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어르신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휴가를 줘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았다. 당연히 그는 엿먹으란 식으로 남의 일을 뺏었다. 오늘도 그렇다. 수업 없이 일을 하는 날이다. 오늘의 손님도 뺏었다. 캐서린은 울면서 자기 일을 뺏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한번만 더 망발을 지껄이면 내 머글의 지팡이를 공수해올 줄 알게. 내놔." "싫어요! 안 돼! 그럼 제 사인은 두부손상이겠네요!! 머리가 날아간다면 염하기 제일 힘들겠어요!!" "오, 일에 찌들어서 당신 사인까지 예측하게 됐나봐요, 캐서린? 내가 보기엔 당신은 대퇴부 동맥 파열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의견도 없이 멋대로 사인을 정한다라?" "정정하죠. 가주님 눈을 봐선 총기난사로 인해서 벌집이 될 게 분명해요." "오, 그래. 오늘 한 번 실험해봐? 당장 엉클 잭을 불러와야겠어." "꺄악! 크리스틴! 살려줘요!" "알아서 살아남아요, 캐서린! 아니면 일을 떠맡기든가요!" "그렇지만 블랙번 가의 어르신들이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몰라요!!" "닥치고 일거리 내놔. 오늘 손님은 누구길래 이렇게 막아대?"
캐서린은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또래 아이요..."
"환멸이 나는군. 다 나가." "도움은 필요 없으세요?" "머글의 지팡이로 머리를 쏴버려야 내 말을 들을 겐가?" "아뇨..가요, 크리스틴." "아, 맞다." "네?" "부검은 했나?" "아뇨." "왜? 유가족이 원치 않았나?" "그것도 있지만 직접 보시면 아실 거예요." "독살은 아닌가보군." "네."
두 사람이 빠져나가자 발렌타인은 덮인 천을 휙 들췄다. 그리고 탄식했다. "끔찍하군."
참 끔찍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들어온 시체도 그렇지만 유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해야하는데, 가문 안에 들어온 유가족이 그의 또래였기 때문이다. 검은 한복을 입은 유가족은 울 힘도 없는지 허공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상자를 들고 유가족을 향해 다가갔다. 유품이다. 유가족은 상자를 받아들고 멀뚱멀뚱 그를 쳐다본다. 그는 유가족의 눈동자를 마주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건 유품일세. 잘 세탁해두었네. 자, 이제 보내주어야지." "내가 가져도 돼?" "자네가 아니면 가질 사람이 누가 있나?" "아니. 고마워." "혹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할 일이나 말이 있나?"
유가족은 한참을 망설인다. 검은 한복의 소맷단을 입가로 가져다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 "—?" "응. 필요해.." "…혹시 —도 필요한가?" "응, 난 이틀 뒤에 학교에 가서,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못 받아.." "안타깝군. 그래, 준비하는 동안 혼자 있게 해주지. 오래는 못 기다리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는 경우는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큰 사고는 흔치 않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는 유가족이 시신의 뺨을 쓸어주고 눈을 감겨주는 것을 흥미롭게 본다. 그는 눈을 감겨주지 않는 사람이다. 유가족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것이 마지막 자비였다.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잔인한 행동이기도 했다. 현실을 마주하면 다들 오열하고 쉽게 눈을 감겨주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가족은 오하려 덤덤했다. 눈을 감겨주고 뺨을 몇번 쓸어주는게 끝이다. 제대로 된 슬픔을 표출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것이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의 일을 예상하면 과연 마냥 불쌍하다고만 생각 해야하나 고민했다. 유가족이 고인들의 곁에서 떨어지고 캐서린이 눈치껏 준비를 하자 지팡이를 들어 유가족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가 질문했다. "만족하나?"
"응." "그럼 차 한잔 합세. 대접하도록 하지." "작은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건데." "글쎄? 내 마음에 들 기회는 흔치 않으니 영광이라 생각하겠지. 난동을 부려도 내 알아서 할테니 따라오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유가족에게 손을 뻗었다. 유가족은 고인의 유품을 그새 손가락에 끼고 그의 손을 잡았다. 색실반지가 흰 손가락에 꼭 맞았다. 그는 유가족의 검은 머리카락을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이 아주 마음에 든다. 학교에 가지 않는게 후회가 들었다. 저렇게 재밌는 사람을 볼 수 없다니! 이건 좀 아깝다.
"그래, 자네 이름이 뭐지?" "후부키..이노리." "그래, 이노리. 자네를 위해 사람 없는 곳에서 차를 마셔야겠어. 달은 좋아하나?" "아주 좋아해." "그럼 정원으로 가지. 차는 어떤 걸 좋아하나?" "말차." "이런, 말차는 없는데." "홍차도 좋아해." "자네가 좋아하나?" "아니, 내가 좋아해." "고인이 이 모습을 영영 못 보니 참 아쉽게 됐군 그래."
양피지를 펼치고서 고개를 든다. 차갑게 맑은 밤하늘이 깊고, 그 끝을 모를 듯 넓게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 본 밤하늘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구름의 형태는, 저 별의 반짝임에는. 자신이 읽지 못하는 어떠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걸까. 깃 펜을 들어, 점멸하는 별의 내용을 양피지에 적기 시작하며. 그 메시지를 전하는 이가 누구일지 문득, 스베타는 궁금해졌다.
너는 좋은 사람이라 판단했다. 지적하지 않고 같이 미소를 지어줬기 때문이다. 네게 동조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게 네 장점이었다. 그만큼 너는 솔직했다. "너 좋은 사람이에요." 하고 대뜸 말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선인으로 단정짓고는 쾌활하게 답했다. "응. 도망갔어요? 그렇지만 걱정 마. 곧 보름달이니까, 예쁜 춤을 추러 올 거예요?"
보름달이 뜨면 구애의 춤을 출 것이다. 네 기준이서는 아주 좋은 일이다. 흔한 것을 기술하기 보다 구애의 춤을 적어내는 것이 더 멋지기 때문이다. 문카프 대신 사람을 관찰하듯 손님에게로 시선이 꽂힌다. 관자놀이를 누르는 모습을 따라하듯 한 손을 들어 관자놀이 주변을 더듬는다. 방울이 손가락에 채여 딸랑거렸다.
"이유? 좋은 사람인 너는 그게 궁금한 것이어요?"
너는 장죽을 내려다본다. 쑥의 맛은 특별하지 않다. 연기가 독하고 오래 갈 뿐이지 다를 것이 없다. 가면 속의 공허한 눈을 감고 너는 다시 그날을 떠올린다. 봄결 햇살 만연한 숲, 문 앞을 서성이던 히포그리프가 쑥뜸 냄새에 코를 찡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던 단란한 하루.
"효능? 이노리 아는 건 쑥이 유령 쫓는 것밖에 없어요."
순전히 유령을 놀려주기 위해 피울 때도 있었다. 삶에 미련이 남은 존재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너는 날지 못하고,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그들은 빗자루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네 입장에선 부럽고, 심통이 났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집에선 늘 쑥 냄새가 났어- 집에 가고 싶은데 기숙사 점수도 없어요..그래서야. 맵지만 집 냄새가 나-"
너는 학교 냄새는 싫다고 투덜거린다. 추억 위에 새 추억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두 개나 있는건 싫다. 마법약 냄새가 배기라도 하는 날엔 집요정에게 떼를 썼다. 너는 고개를 기울인다. 손님의 노리개가 금색이다.
그녀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잠자코 잔을 비웠다. 그녀를 포함한 학교의 인원들이 방해가 되는데도 이 상황을 방관한다는 건 윤 나름의 생각이 있을거라 여겼으니까.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을 굳이 지금 머리 싸맬 이유는 없다. 그러니 무언으로 흘려보내다가, 키득이며 하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동시에 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래저래, 꽤나 깊게 들어와있었네요."
그녀도 만났고 학생들 대부분도 만났다면 후보자는 소수로 좁혀진다. 그러나 그 중에서 누구 하나를 특정할 생각은 없다. 이매탈이 누구든 상관없었다. 공격한다면 맞대응할 뿐이고 질투한다면 더 보란듯이 굴어줄거다. 자기만이 충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연적으로라도 취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주머니를 챙기자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건은 끝났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자기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며, 이 이상은 윤에게 확인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싱긋 웃었다.
"묻는다고 순순히 알려줄 것 같진 않지만, 한번 물어나볼게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샤오 씨."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다가 아차, 한 듯 멈춰서 주머니를 가리킨다.
"그거, 샤오 씨 입에 맞으면 드시고 아니면 버니 선배나 멜리스 씨 주세요. 같이 들어있는 건 꼭 좀 전해주시고,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적에게 안부라니, 싶지만 그녀는 전에 말했듯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차례 더 종알거린 후에야 이제 정말 용건은 끝이라는 듯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주막을 나간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길로 몸을 틀었다.
어차피, 목적은 이뤘으니까.
빈 손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그녀의 얼굴엔 드물게도 즐거운 웃음이 피어있었다.
//이걸로 막레 할게~~ 수고했어 캡틴! 참고로 주머니 안에 든건 월병 한 꾸러미랑 멜리스의 태피스트리 조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