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작전을 확인하자 나는 "뭐, 뭐어. 그런거지." 하고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조금 의외의 반응이었다. 부끄러워 하거나, 그런걸 어떻게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일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평온했다. 설마 나를 일말의 그런 쪽으로도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 자꾸 무슨 생각을 하는거람? 나는 얼굴을 찌푸리곤 고개를 휙 휙 흔들었다.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이렇게까지 신경쓰는건 나답지 않다.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그녀는 도로 장갑을 끼고 팔을 앞으로 뻗은 채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뭘 하려는거야. 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그녀는 팔을 나의 팔꿈치 아래 팔뚝에 걸어 팔짱을 꼈다. 그 일련의 행동에는 그 어떠한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 뒤 한 손으로 내 얼굴을 꾸우우욱 누르고 어떻게든 이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반응을 본 사람, 특히 나를 아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왜 그런 연애, 아니. 스킨십 처음 해보는 사람 마냥 반응을 하냐고. 팔짱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아득히 높은 단계의 스킨십이라고 할 만한 것의 경험은 전부 이전에 끝낸 상태지만, 지금 이것은, 그런 것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나의 마음을 몽둥이로 후드려 패는 것 처럼 감추기 힘든 두근거림과 어질어질함을 경험시켜주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나에겐 심장병은 없다.
사랑의 묘약. 그런거라도 뿌리고 온거 아냐?
이어 그녀가 자기 쪽으로 나를 강하게 끼우자,
...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니까?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그래. 그냥,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고만 하자. 응. 그냥, 부드러웠다고만 하자. 그 이상으로 내 머릿속엔 가득 차있지만 그걸 묘사했다간.. 아냐, 응. 넘어가자. 내 마음 속의 분홍색 털뭉치가 몽둥이로 나를 두드려 팰동안 바깥의 털뭉치가 나에게 연인끼리 어떻게 행동하냐며 물어왔다.
"그, 어, 연인 끼리 행도옹?"
긴장한 나머지 노래도 아닌데도 음이탈을 내어 이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크흠! 아. 이, 이걸로 충분할거다. 응. 가자. 전진!"
나는 말이 끝나자 마자 내 얼굴을 감추려 한 걸음 성큼 걸었다가, 그녀와의 보폭을 생각해 걷는 속도를 늦추어 그녀와 함께 팔짱을 끼운채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베이지 톤의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여성이 와 주문을 받아주었다.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하얀 마스크와.. 굉장히 각진 선글리스까지. 도저히 카페의 점원으론 보기 힘든 차림이었다. 내가 잘 모를 뿐이지 본래 카페엔 이런 사람이 있는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누가 봐도 수상하다. 혹시 이 카페, 이 여성에게 '하이재킹' 당하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그러니까, 이 카페를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원래 있던 점원들을 모두 묶어 어딘가에 가둬놓고 숨겨둔거지.
"..."
하하 그럴리가 없지.
"어, 캬라멜 마끼아또. 있나요?"
일단 나는 저번에게 들었던 음료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지나가듯 "다른 점원들은요?" 하고 물었다. 확실히 이.. 수상한 여성 혼자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이 카페가 '하이재킹' 당했다거나.. 하는 그런 가능성을.. 아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은가. 별로 이 카페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신경쓰였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전부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웃는 낯으로 손님께 대답하며, "다른 점원분들은 사정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우셨답니다. " 라는 말을 덧붙였답니다. 사실 저도 다들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답니다. ...아, 마침 저기 오고 계시는 분이 보이시네요. 우리의 주방장 씨!
"그럼 Sir~ 카라멜 마끼아또로 주문 맞으시지요? "
재빨리 계산을 위해 기계를 톡톡 두드리며 재차 확인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좋습니다, 주방장 님이 계시니 제가 음료를 만드는 불상사는 없겠군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릴리의 기분은 굉장히 묘했을 것이다. 면사포와 티아라 대신 은도금된 왕관을 쓰고, 허리춤에는 부케가 아니라 연금술을 위한 물병 꾸러미를 차고 있으니……. 이제 아치 밑으로 걸어가서 피자를 마주본 다음 가쉬를 돌아보면서 ‘아버님, 다년간 감사했사옵니다’ 하고 인사를 올려야 하는 건가?
당연히…… 그런 일은 없겠지. 눈을 뜨자 요행히도 이곳은 결혼식장이 아닌 레스토랑이었다. 주위에는 푸드 챌린지에 도전하러 온 커플들인지, 아니면 릴리와 가쉬랑 마찬가지로 커플인 척하는 사람들인지, 하여튼 제법 숫자가 되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거나 줄을 서 있거나 했다. 릴리는, 차분한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전력 분석이었다. 이윽고 영성 S의 천재적인 시각으로 ‘경쟁자’들을 가만히 분석한 결과, 릴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아무도…….”
그 다음 말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앵무새처럼 속사포로 튀어나왔다.
“아무도팔짱을끼고있지는않구만그럼어서이건푸는게나을까가쉬군!”
릴리는 이렇게 낯선 경우에는 자기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비상하게 늦다. 다시 말해서, 누구 팔짱을 껴 본 적이 없었으니 커플들이(또는, 적어도 커플인 척하는 사람들이) 꼭 팔짱을 끼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자마자 자기반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쉬가 풀기 전까지는 팔짱은 계속 낀 채였겠지만 속사포로 튀어나오는 말은 여전했다. 빨간 얼굴로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마치 과열된 주전자 같다.
상대가 여성이라면 곧바로 능글맞은 부분이 나오는 나지만, 아무리 상대가 여성이라도 더렇게 흰 마스크에 각진 선그라스를 끼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수상할 정도니까. 다른 점원에 대해선 사정이 생겨서 자리를 비웠다고 말한다. ...더 수상하잖아! 마음 속에서 의심이 불씨가 점점 커지는 사이 주방장이라고 부르는 너구리가 왔다. 아무래도 여기 직원인 것 만은 사실인가보다.
"네. 맞아요."
나는 주문에 고대로 대답하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음, 묻고 싶은 걸을 묻지 않는건 도리 - 나의 도리 - 에 어긋나지.
대답과 함께 저는 어찌저찌 계산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려 했습니다만..... 예상치 못한 손님의 질문이 제 발목을 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어쩜 좋죠? 이걸 어떻게 대답드려야 할지 정말 곤란하답니다. 하지만 이 마스크와 선글라스가 없으면 저는 제 정체를 다 드러내고 일하게 되는 셈이라 어쩔 수 없는데요!! 애시당초 '사오토메 에미리' 가 아닌 'Emiyaguggizzada' 로써 일하고 있으니까요!!
"Sir~ 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말씀드리자면, 이건 다른 분들과 저를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랍니다. "
애써 친절하게, 당황한 티가 전혀 없이 답변드리며, 저는 카운터를 나서서 제가 원래 있을 자리로 향했습니다. 상담을 위해 Crei 씨께서 마련해두신 자리였지요. 다른 자리와 다르게 여기 테이블에는 <상담석>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Sir. 저는 이곳의 상담사인, Emiyaguggizzada 라고 한답니다~ "
빙그레 웃으며 저는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도트모양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벗지 않고 있었기에 제 표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짤막한 답을 마지막으로 미나즈키는 입을 다물었다. 에미리라면 '그 사건'이 뭘 뜻하는 말인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고, 설령 모르고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무슨 일 때문에 슬펐는지(정말로 '조금' 슬픈 일이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언급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었으므로, 그는 에미리가 말한 '조금 슬픈 일'이 실제로는 꽤 심각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설명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겠지.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네."
유우토 형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고. 계속 침울해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그는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농담을 덧붙였다.
작은 여자아이를 옆에 끼운 채 로보트가 걷는 것 마냥 다리를 직각으로 내밀고 다음 발걸음으로 향하고. 그런 우스꽝스런 모습이 레스토랑까지 이어진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그냥 피자를 먹으러 온 일반 손님도 있고, 굉장히 큰 대형 피자를 눈 앞에 둔 남녀, 남남, 여여의 두 쌍도 꽤 있었다. 아무래도 도전하는건 우리만이 아닌 듯 싶었다. 당연하겠지. 피자 한 달 무료 이용권인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우리처럼 팔짱을 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이상한 모습으로 팔짱을 낀 사람들은 없었다. 라는 것이다.
...
그것을 깨달은 릴리는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하더니,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ㅁㅁㅁ뭐? 뭐?"
나는 속사포 랩을 쏟아내는 모 래퍼와 같이 말을 쏟아내는 릴리를 보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뭐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대단히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뭐라는.." 하고 말을 끝내기 전에 그녀는 방금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리고 더 빠른 속사포 랩으로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팔짱을 풀자는 것 같은데.. 마치 잘 익은 것 같은 대추 같이 새빨간 얼굴을 하고 나에게 팔짱을 풀자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잇 알았..아니 안돼!"
나는 팔짱을 풀려다 오히려 홱 하고 그녀의 팔을 내쪽으로 당겨 아까보다 더 가까이 그녀를 당겼다. 그 이유는, 우리를 향해 이 레스토랑의 오너로 보이는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굉장한 풍채에 '나 이탈리안 요리사요.' 라고 말하는 것 마냥 큰 콧수염이 나 있는 인상 좋은 남성이었다. 키는 거의 180후반~190초반정도? 몸무게는 입은 쉐프 유니폼 위로 배가 나올 정도였으니 굳이 말 할 필요도 없겠지. 아무튼 후덕한 인상의 거구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넸다.
"Buona pomeriggio. 두 분께선 혹시 커플 챌린지를 하러 오신 것이 맞는지?"
남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느끼할 정도였다.
"아, 예. 물론입죠! 저희 커플 맞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어떻게든 커플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 에 그만 잘못된 대답을 했다.
"예? 두 분께서 una coppia innamorato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잘못된 대답을 한 탓에 풍채 좋은 레스토랑 오너는 도끼눈을 뜨고 자기의 콧수염을 매만지며 나에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심으로 una coppia innamorato가 맞으신지…? 안타깝지만 저희는 bugiardo에게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고, 우리를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승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게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그런거 안해도 얼굴 보면 다 구분 되잖아.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갑자기 묘하게 굉장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불이 붙었다. 의문에 불이 붙은 이상 무엇이 어찌되건 나는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질문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어 그녀는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게 <상담석>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에..미야국기..짜다..?"
...
조크 같은건가?
나는 개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왜 그 선그라스랑 마스크를 하고 계세요? 그런거 안 써도 구분 되잖아요."
이름은 뭐든 상관 없다. 내 호기심에 불이 붙어버린 이상 나 스스로도 날 말릴 수 없었다...!
>>764 미나즈키 군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아니,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선 저도 전해 들은 바 있기 때문에 굳이 안 좋은 일을 들춰낼 필요는 없단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이유와 똑같았습니다.
"정말이지~🎵 미나즈키 군, 확연히 구분하실 수 있지 않은지요! 유우토 오라버니랑 저는 키와 피부색부터 다르답니다~ "
장난스레 덧붙이신 말에는 똑같이 장난스레 받아쳤습니다. 이제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기에 확실히 시무룩해져 있다는 걸 보실 수 있으시지 않을까 싶답니다!
"자아, 자~ 그건 그거고 일단은 한 젓가락 드시는 건 어떠신지요? 이러다가 저희 카레 우동이 다 불어버릴지도 모르겠사와요~ "
어찌저찌 잘 넘긴 줄 알았는데 집요하게 파고드시는군요! 저 손님께서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시는 분이란 인상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건간에 저는 제 본래 신분을 감추고 일하기로 한 만큼 마스크와 선글라스만큼은 기를 쓰고 사수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만약 벗어달라고 하면 두말 없이 거절하겠다는 마음을 굳건히 하기로 했습니다. 절대로 선글라스만은 안됩니다. 절대로!!!!!!!!!!
"Sir, 저는 이곳의 연애 상담사랍니다. 그렇기에 다른 분들과 확실히 구분될 필요가 있답니다! "
맙상에 세소사, 지금 릴리의 머리 뚜껑이 과열되어 날아가게 생겼는데 이 상태로 커플이 아니라는 걸 들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 분위기는 어찌할 것인가! 릴리는 간당간당하는 정신을 붙잡고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 셰프에게 대꾸했다. 문제는 정신이 조금 간당간당하고 있어서 튀어나온 것이 한국말도 프랑스 말도 아니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Sì, sì! Siamo amanti! Ci frequentiamo da ieri, quindi è ancora un po' imbarazzante! Grazie!»
허점 투성이 cuoco 같으니! 생판 남이라도 가게에 들어올 때 사귄 다음에 가게를 떠날 때 헤어지면 터무니없이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하지만 릴리는 지금 자기를 봉변에 처하게 만든 요리사 양반에게 신경쓰기에는 정신이 모자랐다. 너무…… 가깝단 말이야! 이렇게 가까이 팔짱을 끼고 붙어 있으면 피자는 먹을 수 없어!
오만 논리를 이루지 못하는 생각이 흘러가며 릴리의 정신은 아득해져 갔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겠으므로 가쉬의 팔뚝에 얼굴을 파묻고 기댄다. 검귀를 때려잡고 숙청여제를 교육해 줄 때도 멀쩡했던 릴리의 정신이, 지금은 폭풍에 깎이는 눈밭보다도 빠르게 갉아먹히고 있었다. 빨리…… 빨리 자리에 앉고 싶어.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셰프와의 이성적인 대화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가쉬뿐인지도 몰랐다.
«Trentatré Trentini entrarono a Trento, tutti e trentatré, trotterellando…»
간신히 주제를 바꾸려 하였습니다만 이렇게 또 물어오시다니 정말이지 곤란하네요!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요? 저 집요하게 물어오시는 손님에게서 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어떻게 사수하면 좋을지요??????? 저는 솔직히 정말로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애써 친절한 말씨로 설명하기를 계속하려 하였습니다. 아주아주 매끄럽게 말입니다!
"Sir, 상담사란 직업은 본래 내담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 집중해야 한답니다. 중요한 점은 그 내용이 어떻던간에 상담사는 격양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아주 침착한 태도로 내담자를 대해야 한단 것이에요. 제 얼굴과 표정을 드러내는 게 상담에 있어 꼭 중요할까요? 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또, 상담사가 누군지 전혀 모르게 함으로써 내담자 분들이 좀더 편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실 수 있기도 하답니다. 성당에 고해성사를 하러 갈때 신부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굉장히 편하게 말이 나오지 않던가요? 뭔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숨겨두었던 말들이 꺼내지지 않던가요? "
굉장히 의기양양하게 제 마스크를 가리켜보이며 저는 이렇게 되묻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저는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상담하는 것이랍니다. 어떻게 이걸로 궁금증이 해결되셨을까요, Sir? "
거짓말도 청산유수라고 진짜 이유는 '제 진짜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이지만 아무튼 어떻게 답변은 드렸습니다! 에미리는 할 만큼 했사와요!!!!!
"Mamma mia! una bambina carina. 이 남성이 정말 당신의 una coppia innamorato가 맞나요?"
릴리가 이탈리아어로 대답하자 쉐프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쭈구려 앉아 릴리를 보곤 질문했다. 허나 릴리는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내 팔뚝에 작은 얼굴을 파묻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탈리아어, 겠지? 릴리가 나에게 가까이 붙을 수록, 그리고 내 팔뚝에 기대고 있는 만큼 나의 정신도 날아가버릴 것에 가까웠지만, 반대로 이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무래도 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모 게임의 食いしばり(이악물기)스킬을 쓰듯 이미 정신력은 0에 달했으나, 쓰러질 수 없었다.
"흐음...Non ci posso credere...
릴리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쉐프는 의심의 눈초리를 유지한채로 일어나 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가까이 붙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릴리. 나를 의심하는 눈 앞의 거구의 쉐프.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고개를 쳐들고
눈을 감은채로
"저희는!!!!!!!!!!!!!!!!!!!!!!!!!!"
"커플!!!!!!!!!!!!!!!!!!!!!!!!!!!!"
"입니다!!!!!!!!!!!!!!!!!!!!!!!!!!"
"사귄지!!!!!!!!!!!!!!!!!!!!!!!!!!"
"얼마!!!!!!!!!!!!!!!!!!!!!!!!!!!!"
"안됐지만!!!!!!!!!!!!!!!!!!!!!!!!"
"사랑하는!!!!!!!!!!!!!!!!!!!!!!!!"
"사이!!!!!!!!!!!!!!!!!!!!!!!!!!!!"
"입니다!!!!!!!!!!!!!!!!!!!!!!!!!!"
하고, 오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훈련소에서 각종 얼차려 뒤 정신이 끊어질 정도로 악을 쓰며 내뿜는 복무신조마냥 레스토랑이 떠내려갈 정도로, 아니 접시가 깨질 정도로 큰 몬소리로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Ok, l'ho capito.."
쉐프는 나의 외침에 당황한 듯 두 손으로 그만 하란 제스쳐를 취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인지 이게 진짜 나의 육체인지 아니면 저 멀리 우주에서 또다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릴리를 챙겨야 한다.' 라는 것만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한 그녀의 등을 부축해주어 어떻게든 자리로 안내했다.
>>783 정말이지 유우토 선배란 말씀을 들었을 때 이렇게 사람이 당황할수도 있구나 싶었답니다. 아니 어떻게 머리색도 피부도 키도 생김새도 애초에 성별부터 전혀 다르신 분과 저를 헷갈리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저희가 5년이나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말이어요!!!!!! 아무리 미나즈키 군이어도 말이어요!!!!!! 유우토 오라버니와 저를 헷갈리시는 건 사양이랍니다!!!!!! 제 머리는 오니기리가 아니라 크로와상인 것이와요!!!!!! 아 시 겠 지 요!!!!!!!
"괜찮사와요, 괜찮사와요~🎵 사람은 한번쯤 헷갈리거나 할 수 있답니다! "
아무튼 눈물이 나긴 하였지만 제 어릴 적 친우인 만큼 이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답니다. 카레우동 비우듯 넘어갈 수 있답니다!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저는 가볍게 한 젓가락 들어 입에 담았습니다. 으음, 적당히 뜨겁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게 먹음직하여요. 미미랍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가게가 성학교에서 가까울 줄 몰랐사와요🎵 미나즈키 군의 기숙사는 여기서 가까우신 편이신가요? 아니면 굉장히 머신 편이신가요? "
면을 완전히 삼킨 뒤에 말하면서도 저는 당연히 좀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단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자기숙사에서 오는 거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 제노시아나 청월 쪽이시겠지만 역시 청월이시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말이어요, 미나즈키 군과 제노시아는 전혀 매치가 안된다거나 하여서 말이어요......이상한 자판기가 튀어나오시는 곳과 미나즈키 군이라니 전혀 상상이 안 된답니다.....??
집요하게 질문하자 그제서야 자칭 연애상담사는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표정을 들켜서도 안 된다고. 그리고 상담사가 누군지 모르게 함으로서 내담자가 좀 더 솔직하게 말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들으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거기에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 얘기까지. 구구절절 듣는다면, 맞는 말 처럼 들릴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