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초간 뇌리가 정지된 듯한 그녀를 흘끔 보며 눈치를 살피다, 이내 그녀가 입을 열어 던진 폭탄에 나는 그대로 뿜을 수 밖에 없었다. ㅁ, 뭐? 방금 뭐라 했....
"자, 잠깐, 잠깐....춘심이에게 뭔가 들었어??"
나 그런 얘기 못 들었다고(당연합니다)!!! 이럴 수가. 부끄러워서 죽을 것만 같다. 춘심이 쪽에서도 나 처럼 '아, 나 사귀는 사람은 있어. 그렇지만 부끄러우니까 누군지는 말 안할래.' 기법을 썼던걸까??? 나는 지금 자폭한걸까??? 이럴 수가.....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올라선, 나는 이 참상에서 눈을 가리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짚고 웅얼 웅얼 거렸다. 자. 이 화제는 여기까지 하자. 나는 이윽고 그리 말하면서, 뻔뻔하게 강제로 셔터를 내리는 것이다.
"음, 확실히....서포터가 자기 호신을 할 수 있다면 워리어의 부담이 조금 정도 줄어들 순 있지만...."
그런건 보통 자기 의념의 활용으로 커버하지 않던가?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우기 시작하면, 서포터 본연의 업무와 병행하긴 꽤나 힘들텐데.....그 만큼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던건가. 나는 속으로 탄식과 감탄이 섞인 두가지 감상을 느꼈다. 아마 고된 길이 될테지만....아마 그녀도 각오하고 있던 일이겠지. 멋없는 소리를 하긴 싫어서, 응원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꼬셔지는건지 몰랐지.....어떻게 알겠어. 상식적으로."
직전까지만 해도 그냥 친근하게 다가오는 건 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배신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다가도, 양갈래 머리한 춘심이를 생각하며 조금 헤벌레 하다가....
"........................응? 왜 춘심이는 언니라고 부르는데, 나는 진화군이야?"
작은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감돌았다. 어라....이거 에릭이 정곡을 찔렸을 때 보이는 반응과 흡사한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흐름이 거치고 나선 상대는 대체로 자폭하던데. 화현이는 무슨 답변을 내놓을까. 그렇지만 이런 그림을 내놓을 정도니까, 분명히 그의 영성은 높을 것이고.....속이려면 감쪽 같이 속일 수 있겠지.
"엇....음.....그렇네."
여기도, 저기도, 이곳도! 저곳도! ....... 역시 창작자 본인이라 그런지, 아주 절묘하게 알고 있다. 참고로 내가 비슷하게 여기던 부분든 '여기도' 정도고, 그 이후로는 짚어주고 나서 보니까 아하. 하고 깨닫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연인이 그려진 작품을 한번 더 봤다. 아까 짚어둔 포인트를 의식해서 보고...여자애도 의심을 전제로 세워서 보고.....
태연하게 눈웃음 짓는 그녀가 어쩐지 무섭다. 그녀는 이 다음에 춘심이랑 만나게 되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그리고 그 대화를 나눈 춘심이는 내게 무슨 반응을 할까??? 이미 무섭지만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고, 주사위는 내 손을 떠나버렸다.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도록 하자. 미안해, 미래의 나.
"음. 그렇다면야."
그 부분을 알고 있다면야 뭐, 주의라던가 잔소리는 안해도 잘 할 것이다. 뒤이어진 농담에는 '기대할게. 그렇지만 그런일이 일어나면 대참사니까, 사실은 기대하면 안되지.' 라는 농담으로 대꾸해줬다. 하루에게 지킴 받는게 자존심이 상한다는게 아니라, 워리어가 서포터에게 보호 받을 정도면 이미 엄청난 위기니까....
"에에.....여자같은 반응이라니, 억울해."
그냥 상냥하게 웃어주고,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랬을 뿐이다. 그게 어째서 여자같은 반응이 되는 것인가. 상냥한 카운터 응대라고 생각함으로, 나는 납득하지 못하고 투덜 거렸다.
태연하게 들켰다고 말하는 그를 보고, 나는 다시금 경악했다. 아니 원래 좀 뻔뻔한 성격이란건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담대할 줄이야......뭐라고 더 따지려다가, 이어지는 맞는말의 연타에 나는 벌어진 입을 어물거리다가 다시 닫았다.
"어........그건, 그럴지도......"
설득 당했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런 멋진 그림을 그려줬으면 당사자가 기뻐하면 기뻐했지, 타인이 뭐라고 혼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왜 숨긴걸까.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쪽이 더 궁금하네.....그의 주장을 들으면서도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던 나는, 문득 무언가를 눈치채곤 고개를 기울였다.
팩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설득 당해서 그럴지도 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쿼드라 레몬 밤 사탕을 입에 넣었다. 키키키 여기서 더 뭐라 말한들 나에겐 총알은 많다. 결국 설득 당하는 쪽은 애초부터 호의를 받은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진실! 정의!
"대표작은 아니에요. 아직 대표작은 없어요.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둘 다 그릴 땐 만족스러웠으니까요.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저를 대표한다! 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죠."
하나는 내가 바라는 영웅을 그렸지만, 그림을 그렸을 적의 기술 면이나 감성적인 면에서 부족하다. 다른 하나는 기술은 훌륭하나 궁극적으로 나를 대표하진 못한다. 애초에 누군가를 담은 그림은 나의 대표작으로 할 수 없다. 내가 바라는 영웅도 그렇고, 내가 원하는 것도 그렇고 이곳에는 없으니까. 그래서, 오직 나의 힘만으로 그려낸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사비아: 306 어떤 것이 자신의 물건임을 알아보는 방법은 스티커에 이름 적어서 붙여놓던가, 아예 이름을 써놓기 때문에 잘 알아보는 편입니다. 특별히 쓰는 버릇이랄 건 없고(안 정해놨고)... 그 이외에 알아볼만한 특별한 방법은 딱히 없을 거에요. 238 캐릭터의 신발을 묘사해주세요 (색상, 디자인, 닳은 정도 등) 전체적으로 갈색에 바닥 부분만 흰색. 운동화. 끈은 리본 모양으로 묶여 있고, 전체적으로 많이 닳지 않았을까요. 발을 끌거나 했을 땐 옆쪽도 닳았을 거 같고. 찢어지거나 한 부분까진 없을 것 같지만? 294 빛과 그림자(어둠) 중 자신이 어느 쪽에 가깝다 생각하나요? 빛이네요. 색상으론 검은색이긴 하지만.
136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은? 짝사랑하는 상대... 있었을까? 만일 있었어도 짝사랑이라는 걸 자각하면 그 상대방은 본인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비명횡사 아닌가(?)(곰곰) 일단 호감표시라고 하긴 뭣하지만 조금 시선이 덜 가는 듯하려나요. 의외로 호감을 표한다기보다는 평소보다 시선이 덜해지는..정 떼려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70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나요? 다룰 수 있는의 정의가 소리를 낼 수 있냐라는 의미라면 피아노나 리코더는 다룰 수 있죠. 잘 다룬다. 라는 영역이라면 아니요.. 얘는 피아노 경험은 학교 음악실에서 몰래 도레미 정도 치는 게 전부였을 거야.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그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자신의 의견을 저렇게 유연하면서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별 다른 매도를 들을 이유는 없고, 오히려 장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렇게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주인에게 그려진 대상이 어쩌니 뻔뻔하니 어쩌니 길게 얘기하면 비난하는 꼴 밖에 더 되지 않겠나.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엑, 진짜? 이게 대표작으론 부족하다구? 와오우...."
난 한번 더 충격을 먹곤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인데. 특히 이 연인을 함께 그려놓은 작품은, 객관적으로 봐도 장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이런 작품도 스스로를 대표하기엔 부족하다고 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게 정말 예술가의 정신일지도 모르겠다. 만족하지 않고 더더욱 위를 노리는 향상심 같은거....따라서 나는 감탄하면서도, 그에게 '그럼 어떤 그림을 그리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솔직히 아주 궁금했다.
".....에에."
싸웠어? 라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싸울 때 같이 있었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가 절교하자던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와. 지금 눈치 없게 상대의 약점 관계를 후벼판게 되어버린건가....나는 조금 미안해져서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종종 카페일하면서 본 에릭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차라리 한대 시원하게 때리는건 어때? 나도 요즘 그 카페에서 일하는데. 몇번 싸워서 방패로 머리를 내려찍기도 했거든."
맞아야 정신 차리는 놈이니, 신경쓰이면 찾아가서 때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걘 너한테 좀 많이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타인이 이런 말을 하는게 화현이에겐 불쾌할지도 모르지만.....그래도 뭐랄까. 장부라던가 직원 회의 할 때 종종, 매니저 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너무 반응이 뻔하니까. 생각해보면 답답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하면 이 화제는 넘기도록 하자.
[너! ..아니, 크흠.] (쌀집아들이 은후인건 알고 있지만, 연인이 생겼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랬구나.] (일단 여기선 모르는척 하는게 국룰(?)인거 같길래 그냥 모르는 척 한다.) "은후쓰 너 이녀석! 날 선수치고.. 언제 한 번 보여달라고 해야지." (혼자 방에서 중얼거린다.)
▶ 반전반전 아이스크림 ◀ 게이트 너머의 어느 괴짜 개구리가 실험 도중 만든 실패작. 겉보기로는 평범한 초코 아이스크림같아 보이지만 절대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 먹는 순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 소모 아이템 ▶ 이런 일이 있게 될 줄은 나도 생각치도 못했어 - 섭취시 하루동안 일시적으로 반대 성별의 외양으로 변합니다. ▶ 하지만 맛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걸 - 섭취시 망념이 5 감소합니다. ▶ 누구...세요? -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D랭크 이상의 간파 기술이 없는 NPC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유진화씨 이거 있는데, 가쉬가 리벤지 하러 왔을 때 저거 먹은 상태면 이제 오해는 수습되지 않고......
"애초에, 갓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에게 자기 인생에서 제일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하고 물으면 뭐라 답하겠어요. 그거랑 비슷해요."
이것도 운이 좋았고, 근처에 좋은 선배가 있어서 이렇게 그릴 수 있었던 거지. 아무튼, 그림은 다 봤으니까 다시 통에 집어넣는다.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꼰 다음 아무 의미 없이 까딱까딱 흔들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약간 불만이 있는 듯 까딱거리던 발은 멈추었고 다소곳하게 두 발이 바닥에 닿게 자세를 바꾸었다.
"저는 그럴 성격이 아니라서요... 호전적이지 않아요. 불만 있으면 때려서 해결하는 편도 아니고.. 때려봐야 저만 손해일거란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라고 말은 하지만 진짜 때릴까.. 하고 고민하는 것은 비밀~
"미안해 하고 있다고요? 흐음..."
고개를 끄덕끄덕... 살짝 비릿하게 웃고는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고, 사과도 없고, 행동도 안 하고? 흐음.... 잘 알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에 따라선 오만할지도 모르지만, 눈 앞의 소년에겐 그걸 자신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기개가 있었다. 그야말로 젊은 예술가라는 느낌이구나. 그에 대한 인식을 내 안에서 수정하면서, 나는 박수를 치고 감탄하는 것으로 완전히 마무리 했다. 어쨌거나 좋은 작품을 봤으니, 그에 대한 감사는 표하는게 맞지.
"음....뭐 확실히,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할 이유는 없지."
누군가와 다툰다는 것은 상당한 심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그러니 대체로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싸울 바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만약 그런 선택을 고른다면, 이쪽에선 더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선을 긋는게 아니라, 이건 엄연히 에릭과 화현이의 일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에릭이 먼저 말했어야만 하는 일이니까.
아니 말하고 보니 어이가 없네. 왜 일을 저지른 본인보다 내가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내게 되는가? 그 일이 있고 나서 시간도 꽤 흘렀는데......
"........"
그리고 이 생각은 나만 했던게 아닌지, 화현이는 정확히 똑같은 발언을 했다. 그래. 저게 맞는 말이지. 나는 동의해. 맞는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면서 팔짱을 끼곤, 하늘을 올려보면서 으음, 하고 고민하곤. 이내 그를 보면서 아마도 유일한 이유로 추정되는 부분을 시원스럽게 말했다.
이르미 쥬가인 가쉬에 대해서 은후가 설명하자면…. 아니, 은후가 설명한다고 해도 그에 대해 호의적인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다면 말이다. 가디언 칩을 통해 온 메시지를 확인한 청년은 한숨을 내쉬고, 기숙사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유 진화에 대해서 은후가 설명하자고 해도, 그리 긴 이야기는 나오진 않겠다만, 양심적으로, 아는 사이인 그에게 이런 모진 일을 당하게 할 순 없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청월을 나서서, 이제는 익숙해지려고 하는 카페 몽블랑의 문을 열고 은후는 저벅저벅 진화가 있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진화군,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평소의, 얼빠져 보이는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건 이야기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라는 포스를 내보이는 은후의 모습은, 진화로써는 조금 낮 설을 수도 있으리라.
>>233 릴리: 우리 엄마 이름이 결혼 전에는 메를린 플라멜이었다는 것이고…… 릴리: 우리 할머니 이름은 결혼 전에는 엘로이즈 시빌르였다는 것이지 릴리: 왜, 신 한국이랑 달리 유럽이나 마도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아내의 성이 바뀌잖아? 릴리: 할머니 이름까지 가르쳐 줬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대충 넘어가도 괜찮아.
>>245 오케이!!! 어떤 상황이 좋겠수!!! 정 없다면 릴리 기록실 문서에 있는 주제를 써도 괜찮아! 예전이었다면 화기 개량에 도움을 주는 일상이었을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어떠려나? 🤔
오늘도 즐거운.....즐거운? 카페 몽블랑.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간단히 흥얼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딸랑, 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고, 나는 마침 아는 얼굴이었기에 밝은 얼굴로 인사하려 했다. 그런데....그는 착잡해보이는 얼굴로 망설임 없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엄청나게 진지하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히, 히엑....그, 시, 시간은 괜찮은데...."
나는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도, 도대체 뭘까....내가 그에게 뭔가 잘못한게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무언가 떠오르는 것은 없는데....너무나도 진지한 그의 박력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나는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으, 응. 지금이면 괜찮을 것 같아. 손님도 없고......그런데 무슨 일이야?"
솔직하게 말해서 평소엔 유들유들한 사람이 더할나위 없이 진지해니까 엄청 무섭다. 없던 잘못도 생겨나는 기분이다.
가쉬주 : 지금 굉장히 고민중인게, 어제 새벽부터 고민해왔던 커플 음식 챌린지! 그러니까, 가쉬와 릴리가 식사를 함께 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커플 제한으로(물론 시간대론 아직 그.. 애매한(?)사이.)"누, 누가 커플이래!"(얼굴은 잔뜩 벌개짐) 라는 느낌? 으로 우승하면 3달간 무료 식사 이용권을 주는 챌린지에 도전하게 되는거지. 진행 방식은 다이스! 특정한 횟수동안 특정한 숫자까지 가쉬와 릴리가 식사다이스를 굴려서, 그 숫자까지 가게 되면 성공. 오늘 가쉬와 진화같이 조금 웃긴고 코믹한 씬을 써보는 것도 즐거울까? 해서. 가령 가쉬가 "먹어! 먹으라고!" 하고 강제로 릴리의 입에 음식을.. 물론 이런게 싫다면 제외할테지만! 다이스로 제한을 둬서 일상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씬까지! 해서.. 그런데 자신은 없어. 어떨..까? 그리고 아니면..(이거 아니면 사실 생각나는건 단 하나다.)(알겠지만.)(뭐 다른것도 괜찮지만.)(만약 릴리주가 나와 같은 마음이고, 지금 이 상태에서 좀 더 오래.. 애매한 사이를 유지하는게 좋다면, 그것도 좋고.)(빨리 스텝업(?)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고.) 가쉬 : 😧 가쉬 : 왜 우리에게 그런걸 시키는거야.
어째서인지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진화의 모습에 은후는 약간의 의문을 가졌지만, 자신의 지금 모습이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하고, 가쉬가 사고를 쳐서 그 후폭풍으로 분노에 몸을 떨고 있으리라고 넘겨짚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지만, 유감스럽게도 청년은 주변 인물이 두 명이나 엮일 위기에 평정심을 쉬이 찾을 순 없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손님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 빈 자석들을 둘러보다, 입을 연다.
"얼마 전에 이 카페 몽블랑에 키가 진화군보다 아주 약간 크고, 검은 눈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고, 옷을 성의 없이 입고 있으며, 잘생겼지만 행동은 이상하기 그지없는, 16살, 성학교 1학년의 이르미 쥬가인 가쉬군이 손님으로 와서 당신에게 실례를 저지르지 않았나요?"
노기로 가득찬 그의 박력에 압도되어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급한 말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그를 이렇게 까지 급하게 만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당황해하면서도, 뒤이은 그의 말을 경청했고.... 이윽고....
눈의 생기를 잃고 고개를 떨궜다.
"아....그....혹시.....나를 여자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걸던 애를 말하는거니....이름이 이르미 쥬가인 가쉬군이구나. 하하..."
........
하하, 하고 떠오르니 어이가 없어져서 웃었다. 그래도 그 일은 내가 씩씩 거리며 분노의 방패 내려치기로 끝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왜 따지러 온걸까. 말하는걸 보니 친구인거 같은데, 너무 많이 때렸다고 항의하러 온걸까....나는 아직 영문을 잘 모르겠음을 느끼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귓가에 이후에 '좋은 시간' 보내자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열이 올라서 방패로 두들겨 패서 내쫓았는데.....혹시 너무 과했다고 혼내러 온거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미 끝난 일에 어째서 저렇게 진지한 태도로 온건지 짐작할 길이 없어서....나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걸로 혼나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가 그렇게 불공평한 태도를 취할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짐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256 가쉬다노프, 상황을 바라보는 거다. 지금 이 주식 곡선에 올라탄 개미들이 보이나? 그들이 사면…… Dump it. 나는 전적으로 가쉬주의 템포에 맞춰 줄 테니까, 슬슬 줄타기를 끝내야겠다 싶을 때가 오면 언제든 나아가도 좋아. 😏
하지만 말이지…… 오늘은 일단 평행선을 그리는 차트를 유지하도록 하자구…… 크/크/킄…… 이것이 전문가의 주가조작이다……
>>258 오호. 릴리 정도면 전교생의 이름까진 아니라도 얼굴을 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다른 학교 사람인 걸 알아볼 수도 있겠고망. 뻥─이요!!! 를 했다가 일상반영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고치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수습할 수 있는 전개는 하나 생각나니까 괜찮을 것 같고 말이지……!!
불쌍한 진화군…. 풀 죽은 진화의 목소리에 은후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그 바보 자식은 몇 대 더 맞아도 괜찮아요."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고 덧붙이며 손을 자신의 이마로 가져다 댄 청년은, 지나치게 많은 열을 낸 반동으로 그 자리에서 잠시 휘청거리고 말았다.
"지나간 일을 문제 삼을 생각도 없고요. 중요한 건 미래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 이야기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은후는 나름대로 진지한 사명을 지고 이 카페 몽블랑에, 진화를 향해 찾아왔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질러, 약간 거칠어진 목소리가 목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 바보, 제가 진화군은 남자라고 말해도 전혀 믿지 않더라고요. 조만간 여기에 진화군을 꼬시러 또 가겠다고 했어요. 같은 학교 학생을 죽여버리면, 아무리 성학교라고 해도 최소 자퇴잖아요? 그러니, 다른 직원이 있으면 시간표를 교체하세요. 당분간 나오지 마시란 이야기에요." //5
틀린 이야기라곤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맞을만 하다고 생각하니까. 친한 사이인데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랐을 뿐. 아니지, 잘 생각해보면.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친한 사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
"으.....음? 미래?"
나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 되었다. 대체 그와 미래에 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눈 앞의 그는 사소한 것으로 호들갑을 떠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영성은 상당히 뛰어나고, 분석과 관찰력은 훌륭한 편에 속한다. 그러니까 나는 온갖 과정을 상상하곤.....
그 상상 이상을 들었다.
" ㅇ ㅔ ㅅ ? "
뇌가 이해가 안되서 정지한 기분이다. 인생을 살면서 TOP3 에 빠지는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 나오곤. 잠깐 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아니, 그......미안한데, 내가 이해를 조금 잘못 했나봐. 그으.......다시 차분하게 설명해줄래?"
이런 사태만 아니었다면 좀 더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와의 관계라던가. 아는 사람의 새로운 면모에 나는 잠깐 감탄했지만, 그것은 이런 비참한 상황속에선 현실 도피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윽고 한숨을 내쉬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얘기했다.
"아니, 잠깐 기다려줄래?"
지금 일하는 직원이, 적지는 않다. 에릭....은 일을 안하지만. 춘덕이, 나, 다림, 정훈, 하루......그러니 솔직히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빠져도 일이 안돌아가진 않겠지만. 지금 나는 다림이와 같이 카페의 주요한 멤버중 하나인지라, 그리 쉽게 빠지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의 말이 당장엔 납득이 잘 안간다.
"나 그 때 남자라고 미친듯이 소리치면서 방패로 내려찍었는데? 그런데도 여자로 오해할 수가 있단 말이야?"
가디언 넷을 보다가 우연히 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닌 한 레스토랑에서 '커플 푸드 챌린지' 를 한다는 것이었다. 커플도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푸드 챌린지를? 하고 생각한 나는 그 광고를 눌러보았다.
1달간 무료 식사권? 이건 못 참지. 하지만 왜 나는 커플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나는 왜 그 작은 털뭉치를 생각해낸 것일까. 아냐, 그렇지 않아. 그런게 아냐! 그냥, 하필 요즘 알고 지내는 여성 - 여성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 이 그 털뭉치 밖에 없을 뿐이다.
이건 식사권을 위한 것일 뿐이고? 벼, 별로 커플이란 단어는 신경쓰이지 않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 헤실거리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식사권을 상상하고 기뻐졌을 뿐이니까.
나는 저번에 그녀에게 받은 가디언 넷의 연락처로 연락을 했다. [어이, 애늙은 꼬맹이. 피자 좋아하냐?] [음식 챌린지 한다는데. 그.. 남녀 혼성이 아니면 안 된대. 보상은 1달간 무료 식사권. 관심 있어?]
"으아아아!"
먼저 연락을 보내놓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베개로 머리를 싸맸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거절한다면 내 자존심에 엄청난 상, 처. 가..
사실 자존심은, 그다지 관계 없었다. 그저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울 뿐. 나는 낮잠에 빠질 듯 말 듯 한 사람의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걸터 앉았다. 요즘따라 기분이 이상하다. 뭘 해도 그 분홍색 털뭉치가 내 머릿속에서 뽈뽈거리며 뛰어다니고, 평소의 악몽에선 그 분홍색 털뭉치가 나를.. 구해주는 꿈을 꾸었다. 괴상한 약물로 말이지.
이 감정은...
...아냐 생각하지 말자. 그런게 아니다. 애초에 무엇보다, 걘 내 타입이 절대 아니다. 절대! 애초에 난 쭉쭉빵빵한 누님이 좋다고. 그런 쬐깐한 털뭉치따위.. ..젠장!
그렇다. 가디언넷에서 『폭발 물질 연구 개발을 위한 동료 연구원을 모집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게시판의 누군가와 의기투합해서, 함께 공용 도서관에서 폭발물 제조를 위한 연구 서적을 탐독하기로 약속한 것이 오늘이다. 릴리는 도서관의 입구 근처 자리에 앉아, 『발파해체공법의 미학 ~ 철거를 거의 아트의 경지로 ~』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본디 릴리에게 파괴적인 취미는 없었다. 금과 영약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가열하고 제조하는 데 열심이었으면 열심이었지, 이렇게 폭발과 불꽃이 번쩍이는 레시피를 만드는 데 열중하게 되리라고는……. 따지고 보면 이것도 모두 그 작자 때문이다. 카페 몽블랑의 사장. 그 양반을 위한 특제 레시피로 ※ 세 번 불지옥 대폭발 물약!(임시) ※이 필요하게 되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은 그 물약을 쓸 생각은 없지만…… 그때 머릿속으로 가볍게 스케치하듯 생각해 둔 레시피에는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발전의 여지가 있었다. 마치, ‘나를 개량해 주세요’ 하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기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어!’
폭발물은 여러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할 때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다음의 3가지다. ①폭발물 자체의 신뢰성. 즉,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터지는가. ②폭파 대상과의 반응성. 폭약의 성형 상태에 따라 특정한 구조에 잘 듣는 폭발물이 된다. ③폭발물에 대한 통제성. 원치 않을 때 원치 않는 방법으로 폭발해 버리면 곤란하다.
이 책은…… 주로 건물을 통째로 송두리째 흔적도 없이 무너뜨리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위 3가지 가운데서는 ②에 가까운 내용이다. 흥미롭군. 독서에 몰입한 릴리는 말도 없이 문을 등지고 한참을 앉아 있다.
초대형 게이트 '안후미네의 정원' -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5개의 초대형 게이트 중 하나. 거미와 신탁, 준비된 죽음을 상징하는 외신 '안후미네'가 거주하고 있는 차원. 2024년 당시 아프리카에 직접 강림하여 서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지역을 초토화시킨 몬스터는 단 한마리로 현재의 기준으로는 채 70레벨도 되지 않아, 숙련된 가디언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추측되나 당시 의념 각성자의 수준이 미약하였기에 토벌에 실패하였고 오랜 기간 축적된 힘에 의해 결국 게이트가 붕괴, 붕괴 초대형 게이트로서 그 위엄을 펼쳤다.
>>379 가쉬 : 큰 일이라니! 그런거 안 생기니까. 내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서 그래?(사실 기분파라 왔다갔다 함) 가쉬 : 가쉬 : 뭐 확실히 무겁지 않을진 몰라도 친구의 얘기를 퍼트리고 다니진 않는다고. 가쉬 : 하지만 반대로 친구가 말하기 싫다는걸 강요할 순 없지. 오케이. 더 묻지 않을게.
보기 좋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의 그런 모습도 충분히 괜찮다고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그....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거지."
이럴 수가. 그도 에릭처럼 '생각하는게 다릅니다' 의 분류인가? 나에게 방패를 맞은 녀석들은 다 그런 녀석들인가? 나 치고는 울분을 담아 필사적으로 소리쳤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 그래도, 연인이 있다는 말에는 분명히 한 수 접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가지며 말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이미 내가 연인이 있다는걸 알고 있는 은후는 그에게 이미 말을 했고....상식이 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뻐끔거리며....간신히 입을 여는 것이다.
처음 가디언넷에서 그 글을 보았을 때에는, 이거 혹시나 테러방지법 같은걸로 인해서 '선도부다! 문열어!' 같은 상황에 처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게이트에서 전투를 해야하고, 강도 높은 폭약 등도 전략적 상황하에서 운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선뜻 나서진 않았다. 아마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있겠지. 이런데 나서는 주인공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법이다. 그런 마인드로 그저 그 가디언넷의 이야기를 넘겼다.
...하지만 쓸데없이 신경이 쓰였기에, 나는 될대로 되라 하는 느낌으로 말을 걸었고 결국엔 이렇게 약속까지 잡히고 말았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건 내 의념에 대한 연구도 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처음 저쪽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생각난 것은 단 한마디였다.
"열압력탄이네."
흔히들 말하는 바로는 기화폭탄. 액체, 보다는 기체 화합물이 주가 되지만 폭발성 시약 운운하는것을 보니 아마 그쪽에 가까울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쪽은, 실전 기록을 보기로 했다. 주로 베트남 전쟁때 밀림 지형의 특징을 극복하기 위해 썼다고 하는데... 이건 뭐, 끔찍하구만.
"...난 잠깐 휴식. 토가 나올 수준이야."
열압력화기에 대한 설명 자체는 그럭저럭 잘 되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전쟁에 대한 적나라한 자료들이 있었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잠시 쉬면서... 정리를 좀 해봐야겠어."
책에 몰두하고 있는 저 쬐끄만 동업자이자 고용주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로, 나는 일단 휴식을 선언하며 가볍게 공책을 들어 조사한 사항을 기록해나가기로 했다.
요즘은 집에 썩어나게 많이 있는 인형보다도 애완 돌에 빠져 있다. 기숙사 침대에 앉아 애완 돌멩이를 쓰다듬다가, 가디언칩의 연락이 도착하자 심드렁한 얼굴로 알림을 확인한다. 애완 돌을 쓰다듬느라 바쁜데 누가 연락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연락을 보낼 만한 사람이 있던가. 가평 씨는 자기 일로 바쁠 테고…… 부장은…… 미친 사람이니까. 애초에 연락처도 없고. 그럼 남은 후보는…….
…… 뭐야, 미소년이잖아.
[ 누가 꼬맹이라는 거냐. 피자? ] [ 먹기야 먹는데, 응. ]
창틀에 애완 돌을 내려놓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답장을 시작한다. 피자……? 당장 무언가를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새삼 피자라는 말을 듣고 나자 아침부터 굶어 왔던 릴리는 배가 고파 오는 것을 느낀다.
[ 남녀 혼성이 아니면 안 된다고……? 구세대적이구만, 그거. 간다. ]
모로 돌아누워서, 보낸 답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이 있다. 이를테면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백합이라거나, 장미라거나, 이런저런 꽃의 이름이 붙은 사랑이 있다. 그럼에도 남녀 페어만 참가 접수를 받는 푸드 챌린지의 주최측에게는, 우리처럼 쿨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혼쭐을 내 줄 필요가 있다고, 릴리는 생각했다. 물론, 장정 두 사람이 찾아와서 가게를 거덜내고 식사권까지 받아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푸드 챌린지에 참가하기 위한 명분은 그것만 있어도 충분했다. 릴리는 곧바로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물병을 세게 탕! 하고 내리쳤다. 병 안에 들어 있던 물은, 아래부터 부글부글 끓듯 기포가 솟구치더니 연한 살구색의 액체로 변화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기가 막혀선, 나는 일단 얼음이 가득 담긴 시원한 컵에 아이스트를 한잔 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둘러서 달려온 그를 위해서도 한잔 타서 건네주는 것이다. 어처구니, 어처구니가 없네....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 것은 결코 싫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그래, 호의에도 상식이 있지 않은가??
"그....도대체 어떤 애야? 가쉬는....."
나는 어이가 없음을 느끼면서도, 아이스티를 한모금 가볍게 쪼옥 빨면서 흥미를 가졌다. 도대체 그는 어떠한 인물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전에 짐작했듯, 학교에 팬티차림으로 등교하거나 도서관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거나 하는 정신나간 녀석이 있다는 소문을 전학오고 알음 알음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여태까진 그게 부풀린 거짓말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면 그냥 화로의 관리자중 하나가 최종보스일텐데 생각보단 싸울만 할거야. 매 턴마다 화상도트뎀에 시간 지날수록 대미지가 증가하고 매 턴마다 육체의 정화(아군 중 하나에게 화상대미지가 집중됩니다.)같은 게 걸리고 마도를 사용하고 피 떨어지면 열망의 화로(적 하나를 보스가 지목합니다. 적이 자폭하며 자폭 시 보스의 HP가 회복되며 회복된 HP의 일부를 적에게 화상 대미지로 전환합니다)같은 패턴이 준비되어 있어.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남녀가 아니더라도 커플이기만 하면 상관 없는 듯 하지만 - 가디언 넷에서 보기로는 - 일부러 남녀 혼성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가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지 몰라도,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다! 젠장. 이건 무슨... 아니 됐다. 더 생각하지 말자. 지금 중요한 것은 1달 무료 식사권이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2시간쯤 뒤에, 장소는[********]늦으면 꿀밤.]
세팅한다고 이것 저것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30분 내로도 나갈 수 있었지만. 나는 갖고 있는 옷들 중에서도 빈티지보단 그나마 깔끔한 옷을 골라 평소와 다름 없는 차림으로 밖으로 나섰다.
나는------------------
.dice 1 2. = 2 1-문제 없이 시간 내에 도착한다. 2-길을 해메다가 3분정도 지각한다.
1의 경우.
나는 해당 장소까지 문제 없이 도착해 그녀를 찾았다. 그 핑크색 비숑프리제같은 꼬맹이는 보면 금방 찾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인파들 사이에 가려지면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키에 시선을 맞춰 인파들 사이를 둘러보았다.
2의 경우.
젠장! 길을 잘못 들었다. 여유롭게 나왔는데 아무래도 지각할 것 같다. 괜히 악기샵에서 구경하며 시간을 쓴 것이 불찰이었다. 여유롭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이것 저것 보다보니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가디언 칩을 보니 약 3분정도 늦은 것 같다.
이미 있는 아이디어인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실용화의 문제였다. 릴리가 의념으로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약물을, 버너 위의 플라스크에서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그 역시도 의념으로 손쉽게 구사할 수 있는 폭발을 재래식 폭발물을 통해 재구성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비슷한 로망이다.
“사실, 처음 생각에는 백린이나 네이팜을 권하려고 했지만…… 게이트에서는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당신 성격을 보아하니 그런 건 영 안 맞을 것 같더군.”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말한다.
“펑, 콰쾅, 우르르 쿠─웅. 타탕─.” 도서관이니만큼 이 의성어를 최대한 소리 죽여 말했다. “이걸 원하는 거지. 시각적인, 청각적인, 그리고 열감각적인 충격으로 압도할 만한 녀석을. 달리 말하자면…… 더 많은 고폭약, 더 많은 고폭약. 아니야?”
릴리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마주 앉은 진석의 앞에 내려놓으며, 잔의 주둥이를 톡, 톡 건드렸다. 그러자, 물이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정작 충격요법에는 불과 연기만큼 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게 없단 말이지……. 대인, 아니 아니 대 게이트 용으로 사용할 작정이라면, 나는 오히려 소이제를 첨가하는 쪽을 추천하는데 말이야……. 알다시피,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대한 폭발은 보통 기름을 흩뿌려서 폭연을 부풀린 것에 불과하니까.”
『발파해체공법의 미학 ~ 철거를 거의 아트의 경지로 ~』의 페이지가 한 쪽 넘어갔다. 두꺼운 책장 거의 다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싸늘하다. 뇌관에 전기가 날아와 꽂힌다…….】
나는 침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누군가 내 과거를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결코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그게 친한 친구더라도, 아니,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겠지. 그런 부분에서 분노를 터트리고 욕을 해대고 있지만, 가쉬라는 인물이 은후에게 꽤나 중요한 인물이란건 다시금 알 수 있었다. 그렇단건 그도 근본이 나쁜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으응? 약점?"
무시무시한 말에 나는 절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것이다. 약점이라니, 도대체 뭘까. 그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깊게 파고들기는 애매한 부분 일 것 같지만....일단 미래에 있을 가쉬에 대한 고민을 밀어두고, 기왕 찾아와준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은후는 요즘 어떻게 지내?"
그렇게 물어보면서도...생각해보니 지난번 숙청 여제 때도 그와 함께 다림이를 찾으러 갔던 것이 떠올라서, 나는 고개를 기울이곤 묻는 것이다.
"혹시 요즘 다림이랑 만나 봤어? 지난번 일로 많이 힘들어하던 것 같던데."
나는 나대로 달래러 가서, 그런대로 성공? 했다고 생각하지만. 다림이는 은후랑도 친해보였으니, 그도 무언가 신경써준다면 조금 회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동료를 위해 작지만 참견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반드시 성립한다고 알려져 있는 법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이다.
“오우─. 3분 12초 48만큼 지각이야.”
승리감에 가득 찬 오렐리 샤르티에의 목소리가 헐레벌떡 약속 장소에 도달한 그를 먼저 반겼으니까 말이다. 인도 한가운데에 나 있는 난간 위에 올라타서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흔들거리던 릴리는, 가쉬를 발견하자 폴짝 뛰어내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바이칼 호까지 진격한 곽거병 장군보다 훨씬 더 우쭐한 표정으로.
“가쉬 군. 분명히 늦으면 꿀밤이랬지?”
씨익─ 하고 웃음짓는 입술에는 명백히 화장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칠해진 상태였다. 보통 복숭아꽃 정도의 색을 띠던 것이 오늘은 홍매화 정도의 색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거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속눈썹이나 말갛게 반짝이는 뺨을 보아도 릴리가 자기 얼굴에 무슨 짓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소위, 화장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자, 먹기도 전부터 꿀밤으로 배를 채우고 시작할 테냐? 어디 보자, 요놈! 어디에다 꿀밤을 놓아 버릴까─!”
1승을 적립하고 출발하는 하루는 대단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평소 입는 것과 같은 검은 드레스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릴리는 꿀밤을 놓을 준비를 했다. 왜 평소와 옷차림이 같은지는 묻지 말도록.
‘옷장에 있는 게 검은 겨울용 드레스, 검은 여름용 드레스, 검은 코트, 청월 교복 말고 어떤 종류의 옷도 없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치욕스러우니까…….’
당연히 상식적인 소리다. 사람간의 관계에는 함부로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란게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이 상황속에서, 가쉬는 상당히 나의 선을 넘고 있는 기분도 들지만. 그에게 아마....악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별개의 이야기라고 치자. 응...
"앗, 그래? 연인이 생겼어? 그건 멋진 일이네. 혹시 누군지 물어봐도 괜찮아?"
나는 나와 비슷한 새로운 커플의 탄생에 조금 기뻐하면서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물어보았다. 부모님의 이야기는.....뭐 저렇게 말한 시점에서 평범하지 않은 부모란 것은 짐작이 가지만, 상대가 '약점' 이라고 표현하면서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부분에 대해 캐묻는 것은 아니다 싶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지만 말이다.
"음. 역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나는 턱을 괴곤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하긴 안나올리가 없지. 그렇게 울적하게 다니면서, 그 때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고개도 들지 못한체 계속 사과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괜찮나 걱정될테니까.
"음.....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는게 어때? 은후는 다림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혹은 그렇지 않아?"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어쩐지 초조해보이던 그가 손가락을 물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걸 보곤 조금 감탄했다.
“추구하는 폭발물의 목적을 논의해 보자구! ※ 세 번 불지옥 대폭발 물약!(임시) ※은 공포와 파괴적인 이미지를 자아내는 데 특화된 제품이야. 실제 폭발력과는 무관하지만, 폭발력이 강하면 강할 수록 좋지. 이걸 써서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의 영업장을 한 줌의 재로 바꿔 버린다거나,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을 한 줌의 재로 바꾸어 버린다거나 할 수 있다구. 그것도 절망에 휩싸인 채로 말이지. 게이트 너머의 자식들도, 자기 몸이 불타는 꼴은 보기 싫을 거 아니야?”
이것을 서포터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할지…….
릴리가 유리잔을 들어올리자, 잔에 차 있는 공기가 둥글게 뭉치며 지나는 상을 왜곡시키는 듯하더니 이윽고 잔에 고인 물로 변했다.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자, 이번에는 퐁, 하면서 흰 연기가 작게 피어오르며 물이 기화해 사라졌다.
“내 건 됐고…… 반면에, 당신의 목표는 물리력이야. 내가 지금 도와주려는 게 그거고. 비의념성 재래 폭발물을 갖고, 의념으로 형성할 수 있는 것만큼 강한 충격량을 얻고 싶어하는 거잖아. 알겠어? 로망과 효율은 따로 사는 게 아니야. 다른 조건은 모두 무시하고 효율과 성능만을 추구하는 게 진짜 로망이라구.”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인 책상에 엎드리며, 손가락 끝으로 탁자에 무언가를 그리다가 진석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한다.
“소형 수소폭탄 같은 건 어때……?”
참상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토믹 파워의 등장이다.
“충격량 하나는 죽여주잖아. 핵분열 장치 그거, 에너지 드링크 몇 병 마시고 끄적끄적하면 괜찮은 설계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죽어라고 뛰어왔는데, 결과는 지각이다. 나는 두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힌 채 거칠게 숨을 골랐다. 그래도 먹기 전에 좋은 운동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릴리는 벌써 여유롭게 도착해 나를 기다렸다.
"허억, 초랑, 허억, 그 밑, 단위, 허억, 까진, 허억, 필요 없다, 고...!"
나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가슴 속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하나 거르지 않고 그녀에게 쏟아냈다. 저 꼬맹이, 사람 놀리는 재주 하나 만큼은 천재급이라니까?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들자 그녀는 난간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가. 아래에선 안 보이니까 난간에 서서 날 찾고 있던 것인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릴리 특유의 우쭐한 표정을 보자 그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이어 내가 그녀에게 말했던 '벌칙' 을 상기시켰다.
"..아하하,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말은 안 했지. 다만 가디언 칩으로 연락을 했을 뿐이지. 구두약속은 발뺌하면 그만일지 몰라도, 이미 가디언 칩에 기록은 다 남아있어 그 이상의 반론을 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자 평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속눈썹은 평소보다 조금 길게 위로 말아 올려져 있었으며 볼터치를 했는지 뺨은 옅은 복숭아와 같은 분홍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무엇보다, 오물거리는 그 작은 입술은 핫핑크 색으로 윤기를 띄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했구나. 하고 난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스스로의 치장에는 관심 없는 나지만, 모종의 이유로 여성이 화장하는 장면은 자주 보았던 나였기에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나의 반응을 나 스스로 단어화 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녀의 메이크업을 깨닫는 시간동안, 난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주위의 소음이 닫힌 채, 스스로의 행위를 깨닫지도, 그 시간을 알지도 못한채 그저, 한동안. 혼자 그 시간에 갇혀서 말이다.
얼마나 지났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우쭐한 표정으로 어디에 꿀밤을 놓을까 하고 이야기했다. 평소와 같으면 거기에 가타부타 소란을 벌였을 나지만, 나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 마냥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사실, 고개를 숙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으니까. 한 대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것은 벌칙의 꿀밤이 아닌, 정신을 차리고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한 꿀밤이었다.
게이트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정도는 흔한 사연이 되어버린게 우리 시대다. 그러니까 그걸로 얼마나 상처 입었다 한들 진정으로 따스하게 위로해줄 사람은 많지 않고, 어린 나이에 그저 울만큼 울고 나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티를 한모금....
....아이스티 뿜을 뻔 했다. 푸헥, 하고 사레들려서 대찬 무례를 하지 않고, 잠깐 멈췄다가 애써 태연하게 한모금 마셔낸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예상외의 방향이었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깜짝 놀랐으나. 눈 앞의 은후의 성격상, 그리고 내가 아는 정훈의 성격상, 둘이 사귄다면 절대 장난삼아 사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나는 축하해주기로 했다.
"...축하해. 솔직히 조금 의외였지만. 나는 검귀 파티 때 부터 둘과 인연이 있었으니까. 행복해졌다면 좋겠네."
둘이 어떤 계기와 과정을 거쳐서 사귀게 되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궁금하지만....내 경험상, 당장엔 풋풋하면서도 부끄럽고, 주변의 시선 보단 서로의 감정을 느끼며 즐기고 싶을 때가 아닐까 싶었다. 사실 상대도 내가 그려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인물이라 믿었기 때문에 털어놓아 준 것이 아니겠는가. 눈치없이 'WA!! OH!!!' 거리면서 분위기를 초치지 말자. 천천히 물어봐도 되겠지.
"자기 잘못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얼마전에 한번 찾아갔어. 라고 웃으며 덧붙이곤, 이후에 이어지는 어딘가 자신감이 없는 그의 말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이스티잔을 흔들다가, 마저 마시며 말했다.
"조금 들었어. 과거에 여러....일들이 있었다고. 나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정확하게는 모르니까, 어쩌면 은후가 지금 생각하는게 더 이치에 맞을지도 몰라. 그래도.....때때로는, '도와주고 싶다' 라는 강한 마음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불우한 환경과 그에 이은 자괴감에 대해. 무엇을 도울 수 있겠는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도와주고 싶다' 라고 강하게 밀어붙여서, '너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안심만을 주는 것만으로도, 구원받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녀에게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그 기구하고 불우한 운명에도 개의치 않고, 너와 가까이 지낼 것이라고 말이다.
"......잘 어울려. 무척이나. 아마도 준비할 때 많이 고심했겠네."
시선을 돌리고 귀가 붉어진 그의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다. 그러나 이상하냐고 물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반응을 보건데 누가 주었는지는 너무나도 명명백백 했으나, 나는 멋없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축복이 담긴 순수한 칭찬과 더불어, 거기에 담겨있을 마음을 모른체 넌지시 훈훈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이어진 것도 예상 외였다만, 저런 모습을 보건데....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싶다.
아니 물론 나도 연애에 능숙한 사람이 아닌데 남의 커플을 걱정한다던가 상당히 잘난 소리지만 말이다...
보기 좋게 지각이구나. 역시, 30분 전에 나와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성심껏 준비한다면 반드시 상대가 실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섭리는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을 가져다 주는 법이니까. 그 섭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나름대로 기쁜 일이었다.
“우리 가쉬 군이, 자기가 한 말을 잘 기억 못 하고 있나 본데…… 정신이 번쩍 드는 물약이라도 먹여 줘야 하나?”
릴리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만약 가쉬가 엄청난 몸놀림으로 릴리의 꿀밤을 모조리 회피해 버린다고 해도, 그 전에 실컷 놀릴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놀리기 승부에서 승률이 더 낮은 쪽은 릴리였으니까, 이럴 때 충분히 점수를 따 놓지 않으면 오렐리 샤르티에의 이름이 빛바래는 꼴이 된다. 릴리는, 분명하고 명백하고 확실하고 진실되고 틀림없이 화장을 한 얼굴로 가쉬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묻은 게 맞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화장을 이렇게 써먹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런데…… 대답이 없다. 그는 넋을 잃은 것처럼, 아니, ‘빼앗긴’ 것처럼, 멍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이리로 넘어져 엎어질 것 같은 불안한 균형으로, 릴리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뭘 잘못 먹었나 싶어 릴리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푸드 챌린지를 하는 데 뭘 먹고 올 정도로 가쉬가 허당은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며, 둘째로 뭘 잘못 먹었다면 굉장히 속이 불편할 테니까, 라는 이유였다. 다행히 가쉬는 쓰러지지는 않았고, 무릎을 꿇었을 뿐이었다.
“…… 푸흡…… 뭐야……. 실패하기도 전에 실신하지 말라구. 1달 무료 식사권을 따러 온 거잖아.”
릴리는 장갑을 벗고 주먹을 쥐었다. 네일이 되어 있지 않은 손이었다. 이어 엄지손가락을 나머지 손가락 안으로 말아 쥐는 잘못된 주먹을 쥐고, 꿀밤을 먹일 곳을 가늠하는 듯 한쪽 눈을 감은 채 그의 이마를 겨누더니…….
“딱딱한 호칭은 관두시라구. 고용주라니…… 우리는 동지지. 그리고, 나는 딱히 물약을 만드는 데 의념을 쓰든 화학 성분을 쓰든 신경 안 쓰니까…… 당신의 폭탄을 완성하는 게 우선이야.”
릴리는 그 끔찍한 전쟁의 참상이 진석의 검열을 한 번 거쳐 최대한 순화되어 있는 글을 접하고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원어 그대로 접했어도 몸서리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릴리는 냉혈한…… 아니, 지나치게 이성이 발달한 헛똑똑이였으니까.
“총을 선호한다면…… 총류탄 같은 거? 데이비 크로켓 같은 녀석으로는 성이 안 찬다고 말하는 건가…….”
다섯 손가락을 붙인 채 얼굴 앞에 가져다 놓고 릴리는 눈을 감은 채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역발상을 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대형 핵폭탄을 개인화기로 만들 수 있을까?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당신이 추구하는 건 구동 체계에서 일체의 의념조차 쓰지 않는 완전한 의념-프리 무기를 만드는 일인가?”
손에 권총을 걸고 빙빙 돌리는 시늉을 하며 릴리는 이어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의념의 힘을 빌리되 화약이 주가 되는 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나? 코스트의 성질을 생각해 봐. 『파괴되지 않는다.』 즉, 외부 물리력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지. 의념과 마도로 그것 비슷한 밀폐 역장을 구성해서, 그 내부에서 핵탄두를 터뜨린다고 하면 국소 범위에서만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어?”
이번에는 주먹밥을 쥐는 것처럼 손을 펼치다가 오므려 쥐는 모양새다.
“당신 의념속성은 폭발이잖아. 반응장갑을 거꾸로 둘러친 것처럼, 역으로 폭발을 일으켜서. 안 되려나?”
말 없이 무릎을 꿇고 눈을 질끈 감은 뒤 꿀밤을 기다리는데, 조금 준비 시간이 길다. 계속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머리를 향해 꿀밤을 날아오진 않고, 톡. 하고. 무언가 이마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 눈을 뜨니 꿀밤 대신 그녀는 검지로 나의 이마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아니, 나 정신 차리고 싶다고. 왜 계속.... 그렇게.... 이어 그녀가 얼른 들어가자며 내 이맛살을 살짝 꼬집은 감촉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지만, 이젠 괜찮다. 아마도.
"크, 흠. 아 맞다.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말해둘게 있다. 작전회의 같은거지."
나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이건 우리의 '승부' 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꼬맹이 너와 나의 '공동전선' 인 것이지. 오늘 하루 우린 동맹 맺고 저 피자집. 정확힌 1달 무료 식사권을 위해 함께 싸우는거야."
나의 표정은 전쟁에서 제 3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원래 적이었던 세력에게 동맹을 신청하는 병사처럼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말했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야 저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크흠, 말 해두진 않았지만.."
그 만들어낸 진지 뒤에, 나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다음 소식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남녀 혼성이라고 했잖냐? 그러니까.. 그건 맞는데.. 그.. 그것 뿐만이 아니란 말이지? 단순히 남녀 혼성이 아니라.."
사실 남녀 혼성도 아니다. 남남, 여여도 아무런 상관 없었으니까. 다만, 그렇게 말 해두지 않으면.. 크흠! 어찌됐든.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커플..이어야 한단거지. 아니! 그러니까! 그런게 아니라!"
나는 뒤로 물러나며 두 팔을 허공을 향해 휘적휘적 휘저었다. 저 멀리 아주 멀리 점처럼 보이는 사람을 향해 손짓하는 사람마냥 거대한 손짓으로.
"그러니까 '커플인 척' 해야 한다는거지. 승리하기 위한 '위장' 일 뿐이다. 너도 이해해주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커플 놀이.. 를 하자는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걸 하고 싶다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위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것으로 해줘. 제발.
//화장1타 이마 누르기 2연타.. 사실 1타 더 왔으면 가쉬는 여기서 넉아웃 했을 것.. 그건 그렇고, '도장 찍기' 이거 제가 생각한 의미 맞습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내가..과잉해석 한거겠..지?
음습한 욕망들로 빼곡히 찬 공간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는 듯 사방을 넓은 유리창으로 채워 바깥의 빛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은 어둠으로 가득했으니 사내는 그저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자신이 존재하는 장소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으려 할 뿐이었다. 도시에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은 대부분 이 건물보다 한참 낮았기에 사내는 그런 도시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 장소는 과연 정말로 동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지.
뭐,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사내는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을 일축하며 시선을 그보다 더 멀리 던졌다. 이 건물보다 한참 낮은 대부분의 건물들, 하지만 몇몇 건물들은 이 건물과 비견될 정도로 높았으니... 예를 들면 저 멀리 햇빛을 비추는 높은 빌딩이라던가. 잠깐,
" 햇빛이.. "
사내의 눈에 보이는 빌딩은 유리창이 아닌 콘크리트로 덮인 투박한 빌딩이었다. 분명 저런 둥그런 반사광을 비출 이유는 없는.. 눈을 찌푸리면서 손을 치켜들자, 사내의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화려한 공간에서 약에 찌든 남녀들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함과 동시에 남자가 주시하던 빌딩에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화살 한 대. 어지간한 가디언들조차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날아오는 그 화살을 사내가 인식했을 때, 사내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이 아는 이름을 읊조릴 수 밖에 없었다.
" 신정훈(停暈)? "
강력한 결계로 뒤덮여 있는 건물이지만 날아오던 화살은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채로 가볍게 외벽에 꽂히고, 사내는 무언가가 자신을 부드럽게 내리누르는 느낌에 이를 악물고 시선을 다시 예의 빌딩으로 돌립니다. 그곳에 있던 빛무리는 이미 사라져, 부드럽게 열리는 방문과 함께 이 공간으로 옮겨옵니다.
" 신정훈(正訓)이거든요! 남의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함부로 바꿔서 말하지 마세요! "
크다고는 할 수 없는 키에,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 말투. 회색빛의 가디언은 등 뒤에 옅은 광륜을 띄우며 이 자리에 서서 사내를 향해 웃어보입니다.
" 여기 계신분들 전부 현행범으로 체포고,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당사자의 확인이 있으면 더 좋으니까, 협력해 주시죠? "
게이트의 토벌만으로도 바쁠 가디언이 어째서 이런곳에서 마약사범들을 소탕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사내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습니다.
" ...벌써 벚꽃이 필 때가 된건가? "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신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가디언. 처음에는 누구도 그 이유를 몰랐지만, 해마다 계속 되는 그 행동에 뒤를 캐던 범죄자들은 결국 어이없는 진실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잡범에서, 의념 범죄자까지 여러 범죄자를 닥치는대로 잡아들이던 가디언이 점점 자신의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이 정치판에 연관된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이유.
그 귀여운 소년.. 이 아니라, 자신을 남자라고 말한 - 그리고 여자 아이일 것이 분명한 - 진화를 만나러 온 것인데, 아무래도 그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 쉬는 날인가보다. 그러면 어떠랴. 이왕 온 김에 커피나 마시고 가자. 그러고보니 저번에는 방패에 맞고(...)쫓겨나느라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기도 했고. 허나 나에게 주문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캬라멜 마끼아또. 잘은 모르지만, 단맛의 커피인 듯 하다.
릴리의 머릿속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이었다. 「자비로운 나는 가쉬 군을 쥐어패는 대신 지문을 남기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응─. 작전 회의. 말해 주세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다. 놀리는 것으로 시작했으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가 말하는 대로 승부가 아니고 ‘공동전선’이었으니 고분고분한 태도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늘의 오렐리 샤르티에는, 이른바, 그거다! 이르미 쥬가인 가쉬의 충실한 부관이자 파트너!
“아하, 그러니까 남매는 안 되고 부녀나 모자도 안 되고. Mon petit ami et ma petite amie. 잘 이해했어. 그러니까, 요컨대……?”
커플이어야 한다! 아하, 그런 것이었군. 릴리는 깊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 릴리가 처음 가디언넷 메시지를 받았을 때부터 짐작했던 것처럼 이건 일종의 커플 이벤트이고, 가쉬 군은 식사권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애인 대역으로 릴리를 선택했다는 것이 되겠다. 이제는 남녀 커플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이 이벤트는, 애인 없는 인간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로 이루어져 있다. 쳐부숴 주겠어. 릴리의 눈동자가 고요히 타올랐다.
“…… ‘척’?”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렸다.
“요컨대 그거네. 우리가 연인인 것으로 가장해서 경쟁자를 모조리 쳐부숴 버리고 식권을 따낸다. 음, 마음에 드는 작전이야.”
릴리는 가쉬의 이마를 꾹 누르느라 벗었던 오른손의 장갑을 도로 끼면서, 팔을 앞으로 뻗은 그대로, 가쉬의 옆구리를 향해 전진했다. 키가 한참 짧은 릴리의 팔은 그의 팔꿈치 아래 팔뚝에 와서 걸려 팔짱을 낀다. 표정에는 일체의 미동도 없다. 그의 팔을 자기 겨드랑이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겨 끼우며, 그를 올려다보고 말한다.
딱딱한 칭호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친분을 쌓을 시간과 노력보다는, 눈 앞에 당면한 과제를 학술적으로 해결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친구 만들거면 이런거 안했다.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탄환이야. 아직까지 그정도 단계는 무리이기에 지금은 해봤자 도수운용이 가능한 발사관 정도의 선이지만..."
그리고 그런 개인화기로, 고도의 숙련된 가디언이 아닌 일반 병사들이 약간의 훈련과 장비만으로 게이트 너머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면... 전장의 구도는 좀 달라지겠지. 물론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군가 의념을 미리 부여하거나, 그러한 의념이 함유되어 있는 자재를 통해서 제품을 만들어 의념 각성자가 아닌 병사들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역시 힘들거고."
볼펜을 들어 그 끝을 책상에 두어번 두드리고서는, 그것을 휙 하고 던져 책 더미 위에 얹고는 대답했다.
"하지만 반응장갑의 아이디어는 어려워. 반응장갑 자체가 폭발을 통해 성형작약탄의 메탈제트나 폭발력을 상쇄하거나 왜곡시키는건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상쇄하려면 비슷한 위력의 폭발을 의념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정도의 사거리, 정확도, 위력으로 그 폭발을 낼거면 차라리 의념만으로 싸우는게 낫겠지."
"결국 반응장갑은 그 장갑 패널이 날아가서 관통자를 저리 치우거나, 메탈제트의 방향을 휘거나 하는 정도일 뿐이야. 폭발로 폭발을 상쇄시키는건 꽤 어려워."
길게 양갈래로 땋은 머리, 하얀 원피스에 하얀 에이프런, 하얀 마스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8bit 선글라스. 혹시 무슨 수상한 코스프레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면 전혀 아닙니다. 에미리의 이 몽블랑 카페에서의 출근복이랍니다! 물론, 저는 상담을 하는 것이지 음료를 내리는 쪽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복장이 가능한 거랍니다. 하여튼간에 이런 옷을 입고 지금 막 출근을 하였습니다만, 웬일인지 다른 점원분들은 보이지 않았답니다. 검은 머리의 손님 한 분만 카운터에 서계셨을 뿐이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Sir! "
뭔가 너구리 직원님도 보이지 않는 듯해 하는 수 없이 종종걸음으로 카운터로 들어가 저는 손님께 죄송하단 말씀을 건네었습니다. 같은 애기같은 하이톤으로 바꿔 말하였지만 내용물은 유창한 영어였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굳이 일본어를 써서 저라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흙을 두고 모래로 그릇을 굽는 듯한 논의에, 적어도 릴리는 미궁으로 말려드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말려드는 방향은 미궁의 바깥쪽이 아닌, 가장 가운데였다. 보물이 있기를 기대할 수는 있으나, 사실 조난자의 해골 아니면 미노타우르스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다.
“동지, 동지…….”
이러니 굉장히 묘한 말투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릴리는 호칭을 바꾸기로 했다.
“진석 동무, 세상은 요지경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날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코스트를 보면 그런 것따위 어린애 장난처럼 해내는 물건들이 더러 나오기도 한다구. 이 바닥을 얕봐서는 될 게 아니야.”
비 의념 각성자들의 대 게이트 무장. 가디언 후보생이 되기 이전에는 게이트와 하 관계 없는 삶을 살았으니 그쪽 방면으로 어떻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었으나, 적어도 민간인들이 스스로를 방위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면 가디언과 헌터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게이트로 뛰어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 나도 휴식할래.”
그러면서, 릴리는 서가 쪽으로 가서 다른 책 한 권을 더 뽑아 왔다. 『폭발예술학: 동양편』이었다.
그녀가 작전을 확인하자 나는 "뭐, 뭐어. 그런거지." 하고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조금 의외의 반응이었다. 부끄러워 하거나, 그런걸 어떻게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일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평온했다. 설마 나를 일말의 그런 쪽으로도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 자꾸 무슨 생각을 하는거람? 나는 얼굴을 찌푸리곤 고개를 휙 휙 흔들었다.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이렇게까지 신경쓰는건 나답지 않다.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그녀는 도로 장갑을 끼고 팔을 앞으로 뻗은 채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뭘 하려는거야. 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그녀는 팔을 나의 팔꿈치 아래 팔뚝에 걸어 팔짱을 꼈다. 그 일련의 행동에는 그 어떠한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 뒤 한 손으로 내 얼굴을 꾸우우욱 누르고 어떻게든 이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반응을 본 사람, 특히 나를 아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왜 그런 연애, 아니. 스킨십 처음 해보는 사람 마냥 반응을 하냐고. 팔짱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아득히 높은 단계의 스킨십이라고 할 만한 것의 경험은 전부 이전에 끝낸 상태지만, 지금 이것은, 그런 것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나의 마음을 몽둥이로 후드려 패는 것 처럼 감추기 힘든 두근거림과 어질어질함을 경험시켜주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나에겐 심장병은 없다.
사랑의 묘약. 그런거라도 뿌리고 온거 아냐?
이어 그녀가 자기 쪽으로 나를 강하게 끼우자,
...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니까?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그래. 그냥,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고만 하자. 응. 그냥, 부드러웠다고만 하자. 그 이상으로 내 머릿속엔 가득 차있지만 그걸 묘사했다간.. 아냐, 응. 넘어가자. 내 마음 속의 분홍색 털뭉치가 몽둥이로 나를 두드려 팰동안 바깥의 털뭉치가 나에게 연인끼리 어떻게 행동하냐며 물어왔다.
"그, 어, 연인 끼리 행도옹?"
긴장한 나머지 노래도 아닌데도 음이탈을 내어 이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크흠! 아. 이, 이걸로 충분할거다. 응. 가자. 전진!"
나는 말이 끝나자 마자 내 얼굴을 감추려 한 걸음 성큼 걸었다가, 그녀와의 보폭을 생각해 걷는 속도를 늦추어 그녀와 함께 팔짱을 끼운채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베이지 톤의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여성이 와 주문을 받아주었다.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하얀 마스크와.. 굉장히 각진 선글리스까지. 도저히 카페의 점원으론 보기 힘든 차림이었다. 내가 잘 모를 뿐이지 본래 카페엔 이런 사람이 있는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누가 봐도 수상하다. 혹시 이 카페, 이 여성에게 '하이재킹' 당하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그러니까, 이 카페를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원래 있던 점원들을 모두 묶어 어딘가에 가둬놓고 숨겨둔거지.
"..."
하하 그럴리가 없지.
"어, 캬라멜 마끼아또. 있나요?"
일단 나는 저번에게 들었던 음료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지나가듯 "다른 점원들은요?" 하고 물었다. 확실히 이.. 수상한 여성 혼자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이 카페가 '하이재킹' 당했다거나.. 하는 그런 가능성을.. 아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은가. 별로 이 카페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신경쓰였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전부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웃는 낯으로 손님께 대답하며, "다른 점원분들은 사정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우셨답니다. " 라는 말을 덧붙였답니다. 사실 저도 다들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답니다. ...아, 마침 저기 오고 계시는 분이 보이시네요. 우리의 주방장 씨!
"그럼 Sir~ 카라멜 마끼아또로 주문 맞으시지요? "
재빨리 계산을 위해 기계를 톡톡 두드리며 재차 확인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좋습니다, 주방장 님이 계시니 제가 음료를 만드는 불상사는 없겠군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릴리의 기분은 굉장히 묘했을 것이다. 면사포와 티아라 대신 은도금된 왕관을 쓰고, 허리춤에는 부케가 아니라 연금술을 위한 물병 꾸러미를 차고 있으니……. 이제 아치 밑으로 걸어가서 피자를 마주본 다음 가쉬를 돌아보면서 ‘아버님, 다년간 감사했사옵니다’ 하고 인사를 올려야 하는 건가?
당연히…… 그런 일은 없겠지. 눈을 뜨자 요행히도 이곳은 결혼식장이 아닌 레스토랑이었다. 주위에는 푸드 챌린지에 도전하러 온 커플들인지, 아니면 릴리와 가쉬랑 마찬가지로 커플인 척하는 사람들인지, 하여튼 제법 숫자가 되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거나 줄을 서 있거나 했다. 릴리는, 차분한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전력 분석이었다. 이윽고 영성 S의 천재적인 시각으로 ‘경쟁자’들을 가만히 분석한 결과, 릴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아무도…….”
그 다음 말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앵무새처럼 속사포로 튀어나왔다.
“아무도팔짱을끼고있지는않구만그럼어서이건푸는게나을까가쉬군!”
릴리는 이렇게 낯선 경우에는 자기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비상하게 늦다. 다시 말해서, 누구 팔짱을 껴 본 적이 없었으니 커플들이(또는, 적어도 커플인 척하는 사람들이) 꼭 팔짱을 끼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자마자 자기반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쉬가 풀기 전까지는 팔짱은 계속 낀 채였겠지만 속사포로 튀어나오는 말은 여전했다. 빨간 얼굴로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마치 과열된 주전자 같다.
상대가 여성이라면 곧바로 능글맞은 부분이 나오는 나지만, 아무리 상대가 여성이라도 더렇게 흰 마스크에 각진 선그라스를 끼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수상할 정도니까. 다른 점원에 대해선 사정이 생겨서 자리를 비웠다고 말한다. ...더 수상하잖아! 마음 속에서 의심이 불씨가 점점 커지는 사이 주방장이라고 부르는 너구리가 왔다. 아무래도 여기 직원인 것 만은 사실인가보다.
"네. 맞아요."
나는 주문에 고대로 대답하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음, 묻고 싶은 걸을 묻지 않는건 도리 - 나의 도리 - 에 어긋나지.
대답과 함께 저는 어찌저찌 계산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려 했습니다만..... 예상치 못한 손님의 질문이 제 발목을 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어쩜 좋죠? 이걸 어떻게 대답드려야 할지 정말 곤란하답니다. 하지만 이 마스크와 선글라스가 없으면 저는 제 정체를 다 드러내고 일하게 되는 셈이라 어쩔 수 없는데요!! 애시당초 '사오토메 에미리' 가 아닌 'Emiyaguggizzada' 로써 일하고 있으니까요!!
"Sir~ 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말씀드리자면, 이건 다른 분들과 저를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랍니다. "
애써 친절하게, 당황한 티가 전혀 없이 답변드리며, 저는 카운터를 나서서 제가 원래 있을 자리로 향했습니다. 상담을 위해 Crei 씨께서 마련해두신 자리였지요. 다른 자리와 다르게 여기 테이블에는 <상담석>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Sir. 저는 이곳의 상담사인, Emiyaguggizzada 라고 한답니다~ "
빙그레 웃으며 저는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도트모양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벗지 않고 있었기에 제 표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짤막한 답을 마지막으로 미나즈키는 입을 다물었다. 에미리라면 '그 사건'이 뭘 뜻하는 말인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고, 설령 모르고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무슨 일 때문에 슬펐는지(정말로 '조금' 슬픈 일이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언급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었으므로, 그는 에미리가 말한 '조금 슬픈 일'이 실제로는 꽤 심각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설명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겠지.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네."
유우토 형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고. 계속 침울해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그는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농담을 덧붙였다.
작은 여자아이를 옆에 끼운 채 로보트가 걷는 것 마냥 다리를 직각으로 내밀고 다음 발걸음으로 향하고. 그런 우스꽝스런 모습이 레스토랑까지 이어진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그냥 피자를 먹으러 온 일반 손님도 있고, 굉장히 큰 대형 피자를 눈 앞에 둔 남녀, 남남, 여여의 두 쌍도 꽤 있었다. 아무래도 도전하는건 우리만이 아닌 듯 싶었다. 당연하겠지. 피자 한 달 무료 이용권인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우리처럼 팔짱을 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이상한 모습으로 팔짱을 낀 사람들은 없었다. 라는 것이다.
...
그것을 깨달은 릴리는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하더니,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ㅁㅁㅁ뭐? 뭐?"
나는 속사포 랩을 쏟아내는 모 래퍼와 같이 말을 쏟아내는 릴리를 보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뭐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대단히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뭐라는.." 하고 말을 끝내기 전에 그녀는 방금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리고 더 빠른 속사포 랩으로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팔짱을 풀자는 것 같은데.. 마치 잘 익은 것 같은 대추 같이 새빨간 얼굴을 하고 나에게 팔짱을 풀자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잇 알았..아니 안돼!"
나는 팔짱을 풀려다 오히려 홱 하고 그녀의 팔을 내쪽으로 당겨 아까보다 더 가까이 그녀를 당겼다. 그 이유는, 우리를 향해 이 레스토랑의 오너로 보이는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굉장한 풍채에 '나 이탈리안 요리사요.' 라고 말하는 것 마냥 큰 콧수염이 나 있는 인상 좋은 남성이었다. 키는 거의 180후반~190초반정도? 몸무게는 입은 쉐프 유니폼 위로 배가 나올 정도였으니 굳이 말 할 필요도 없겠지. 아무튼 후덕한 인상의 거구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넸다.
"Buona pomeriggio. 두 분께선 혹시 커플 챌린지를 하러 오신 것이 맞는지?"
남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느끼할 정도였다.
"아, 예. 물론입죠! 저희 커플 맞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어떻게든 커플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 에 그만 잘못된 대답을 했다.
"예? 두 분께서 una coppia innamorato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잘못된 대답을 한 탓에 풍채 좋은 레스토랑 오너는 도끼눈을 뜨고 자기의 콧수염을 매만지며 나에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심으로 una coppia innamorato가 맞으신지…? 안타깝지만 저희는 bugiardo에게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고, 우리를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승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게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그런거 안해도 얼굴 보면 다 구분 되잖아.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갑자기 묘하게 굉장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불이 붙었다. 의문에 불이 붙은 이상 무엇이 어찌되건 나는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질문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어 그녀는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게 <상담석>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에..미야국기..짜다..?"
...
조크 같은건가?
나는 개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왜 그 선그라스랑 마스크를 하고 계세요? 그런거 안 써도 구분 되잖아요."
이름은 뭐든 상관 없다. 내 호기심에 불이 붙어버린 이상 나 스스로도 날 말릴 수 없었다...!
>>764 미나즈키 군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아니,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선 저도 전해 들은 바 있기 때문에 굳이 안 좋은 일을 들춰낼 필요는 없단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이유와 똑같았습니다.
"정말이지~🎵 미나즈키 군, 확연히 구분하실 수 있지 않은지요! 유우토 오라버니랑 저는 키와 피부색부터 다르답니다~ "
장난스레 덧붙이신 말에는 똑같이 장난스레 받아쳤습니다. 이제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기에 확실히 시무룩해져 있다는 걸 보실 수 있으시지 않을까 싶답니다!
"자아, 자~ 그건 그거고 일단은 한 젓가락 드시는 건 어떠신지요? 이러다가 저희 카레 우동이 다 불어버릴지도 모르겠사와요~ "
어찌저찌 잘 넘긴 줄 알았는데 집요하게 파고드시는군요! 저 손님께서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시는 분이란 인상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건간에 저는 제 본래 신분을 감추고 일하기로 한 만큼 마스크와 선글라스만큼은 기를 쓰고 사수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만약 벗어달라고 하면 두말 없이 거절하겠다는 마음을 굳건히 하기로 했습니다. 절대로 선글라스만은 안됩니다. 절대로!!!!!!!!!!
"Sir, 저는 이곳의 연애 상담사랍니다. 그렇기에 다른 분들과 확실히 구분될 필요가 있답니다! "
맙상에 세소사, 지금 릴리의 머리 뚜껑이 과열되어 날아가게 생겼는데 이 상태로 커플이 아니라는 걸 들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 분위기는 어찌할 것인가! 릴리는 간당간당하는 정신을 붙잡고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 셰프에게 대꾸했다. 문제는 정신이 조금 간당간당하고 있어서 튀어나온 것이 한국말도 프랑스 말도 아니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Sì, sì! Siamo amanti! Ci frequentiamo da ieri, quindi è ancora un po' imbarazzante! Grazie!»
허점 투성이 cuoco 같으니! 생판 남이라도 가게에 들어올 때 사귄 다음에 가게를 떠날 때 헤어지면 터무니없이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하지만 릴리는 지금 자기를 봉변에 처하게 만든 요리사 양반에게 신경쓰기에는 정신이 모자랐다. 너무…… 가깝단 말이야! 이렇게 가까이 팔짱을 끼고 붙어 있으면 피자는 먹을 수 없어!
오만 논리를 이루지 못하는 생각이 흘러가며 릴리의 정신은 아득해져 갔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겠으므로 가쉬의 팔뚝에 얼굴을 파묻고 기댄다. 검귀를 때려잡고 숙청여제를 교육해 줄 때도 멀쩡했던 릴리의 정신이, 지금은 폭풍에 깎이는 눈밭보다도 빠르게 갉아먹히고 있었다. 빨리…… 빨리 자리에 앉고 싶어.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셰프와의 이성적인 대화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가쉬뿐인지도 몰랐다.
«Trentatré Trentini entrarono a Trento, tutti e trentatré, trotterellando…»
간신히 주제를 바꾸려 하였습니다만 이렇게 또 물어오시다니 정말이지 곤란하네요!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요? 저 집요하게 물어오시는 손님에게서 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어떻게 사수하면 좋을지요??????? 저는 솔직히 정말로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애써 친절한 말씨로 설명하기를 계속하려 하였습니다. 아주아주 매끄럽게 말입니다!
"Sir, 상담사란 직업은 본래 내담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 집중해야 한답니다. 중요한 점은 그 내용이 어떻던간에 상담사는 격양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아주 침착한 태도로 내담자를 대해야 한단 것이에요. 제 얼굴과 표정을 드러내는 게 상담에 있어 꼭 중요할까요? 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또, 상담사가 누군지 전혀 모르게 함으로써 내담자 분들이 좀더 편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실 수 있기도 하답니다. 성당에 고해성사를 하러 갈때 신부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굉장히 편하게 말이 나오지 않던가요? 뭔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숨겨두었던 말들이 꺼내지지 않던가요? "
굉장히 의기양양하게 제 마스크를 가리켜보이며 저는 이렇게 되묻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저는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상담하는 것이랍니다. 어떻게 이걸로 궁금증이 해결되셨을까요, Sir? "
거짓말도 청산유수라고 진짜 이유는 '제 진짜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이지만 아무튼 어떻게 답변은 드렸습니다! 에미리는 할 만큼 했사와요!!!!!
"Mamma mia! una bambina carina. 이 남성이 정말 당신의 una coppia innamorato가 맞나요?"
릴리가 이탈리아어로 대답하자 쉐프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쭈구려 앉아 릴리를 보곤 질문했다. 허나 릴리는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내 팔뚝에 작은 얼굴을 파묻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탈리아어, 겠지? 릴리가 나에게 가까이 붙을 수록, 그리고 내 팔뚝에 기대고 있는 만큼 나의 정신도 날아가버릴 것에 가까웠지만, 반대로 이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무래도 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모 게임의 食いしばり(이악물기)스킬을 쓰듯 이미 정신력은 0에 달했으나, 쓰러질 수 없었다.
"흐음...Non ci posso credere...
릴리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쉐프는 의심의 눈초리를 유지한채로 일어나 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가까이 붙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릴리. 나를 의심하는 눈 앞의 거구의 쉐프.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고개를 쳐들고
눈을 감은채로
"저희는!!!!!!!!!!!!!!!!!!!!!!!!!!"
"커플!!!!!!!!!!!!!!!!!!!!!!!!!!!!"
"입니다!!!!!!!!!!!!!!!!!!!!!!!!!!"
"사귄지!!!!!!!!!!!!!!!!!!!!!!!!!!"
"얼마!!!!!!!!!!!!!!!!!!!!!!!!!!!!"
"안됐지만!!!!!!!!!!!!!!!!!!!!!!!!"
"사랑하는!!!!!!!!!!!!!!!!!!!!!!!!"
"사이!!!!!!!!!!!!!!!!!!!!!!!!!!!!"
"입니다!!!!!!!!!!!!!!!!!!!!!!!!!!"
하고, 오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훈련소에서 각종 얼차려 뒤 정신이 끊어질 정도로 악을 쓰며 내뿜는 복무신조마냥 레스토랑이 떠내려갈 정도로, 아니 접시가 깨질 정도로 큰 몬소리로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Ok, l'ho capito.."
쉐프는 나의 외침에 당황한 듯 두 손으로 그만 하란 제스쳐를 취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인지 이게 진짜 나의 육체인지 아니면 저 멀리 우주에서 또다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릴리를 챙겨야 한다.' 라는 것만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한 그녀의 등을 부축해주어 어떻게든 자리로 안내했다.
>>783 정말이지 유우토 선배란 말씀을 들었을 때 이렇게 사람이 당황할수도 있구나 싶었답니다. 아니 어떻게 머리색도 피부도 키도 생김새도 애초에 성별부터 전혀 다르신 분과 저를 헷갈리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저희가 5년이나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말이어요!!!!!! 아무리 미나즈키 군이어도 말이어요!!!!!! 유우토 오라버니와 저를 헷갈리시는 건 사양이랍니다!!!!!! 제 머리는 오니기리가 아니라 크로와상인 것이와요!!!!!! 아 시 겠 지 요!!!!!!!
"괜찮사와요, 괜찮사와요~🎵 사람은 한번쯤 헷갈리거나 할 수 있답니다! "
아무튼 눈물이 나긴 하였지만 제 어릴 적 친우인 만큼 이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답니다. 카레우동 비우듯 넘어갈 수 있답니다!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저는 가볍게 한 젓가락 들어 입에 담았습니다. 으음, 적당히 뜨겁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게 먹음직하여요. 미미랍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가게가 성학교에서 가까울 줄 몰랐사와요🎵 미나즈키 군의 기숙사는 여기서 가까우신 편이신가요? 아니면 굉장히 머신 편이신가요? "
면을 완전히 삼킨 뒤에 말하면서도 저는 당연히 좀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단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자기숙사에서 오는 거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 제노시아나 청월 쪽이시겠지만 역시 청월이시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말이어요, 미나즈키 군과 제노시아는 전혀 매치가 안된다거나 하여서 말이어요......이상한 자판기가 튀어나오시는 곳과 미나즈키 군이라니 전혀 상상이 안 된답니다.....??
집요하게 질문하자 그제서야 자칭 연애상담사는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표정을 들켜서도 안 된다고. 그리고 상담사가 누군지 모르게 함으로서 내담자가 좀 더 솔직하게 말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들으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거기에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 얘기까지. 구구절절 듣는다면, 맞는 말 처럼 들릴지 몰라도..
답변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어떻게 피해내야 합니다!!!!!!!! 선글라스만은 어떻게 사수하여야 해요!!!!!!!!!!!!! 제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알려져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런 간절한 마음을 품고 신속을 강화하여 피해 손님으로부터 제 선글라스가 벗겨지는 걸 막으려 하였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에 의념을 쓰나 싶지만 다행스럽게도 신속을 강화한 덕인지 선글라스는 지킬 수 있었습니다! 살았사와요!!!!!!!!!
"초면에 다짜고짜 숙녀의 얼굴에 손을 대시는 것은 실례랍니다, Sir! "
자아 어떠냐! 아무튼간에 나는 피해내었다! 는 의미로 브이를 해보이며 저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제 자리에 도로 앉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요...어떻게....살았네요....또 강화할 일이 생기지는 아니하겠지요......??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의자에 가만히 앉은 처지가 되자, 릴리는 혼이 빠져나간 상태로 힘 빠진 가필드처럼 숨을 내쉬었다. 가쉬의 팔에 부비적거린 앞머리가 왼쪽으로 꼬여서 들려 있었다.
“…… 가쉬 군……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게 음식을 먹는 파트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아……. 배고파졌어.”
이건…… 어쩌면 아직 서로 쑥스러워하는 커플들을 골리기 위한 오너의 장난기였을 수도 있겠다. 애초에 이벤트의 명제부터가 ‘커플 푸드 챌린지’였으니 말이다. 아, 그런 거였군. 조금 맑아진 머리로 생각하자 금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레스토랑을 나오자마자 헤어지기로 약속한 한 쌍이라도 저 양반에게 걸리면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맞습니다’라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구조였던 거야.
빤히 가쉬를 바라보다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탈진했는지, 릴리는 테이블 위에 털푸덕 하고 엎드렸다. 그리고 엎드린 실뭉치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작게 웅얼거린다.
“…… .”
그 얼굴빛은 엎드려 있었으므로 당연히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그것이고, 이제는 정말로 공동전선의 목표에 맞게 활동할 시간이 왔다. 1개월 무료 식권을 위해 식사결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가쉬가 밥값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릴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 되었으므로, 그를 측은하게 여겨서라도 꼭 이겨 줄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이 몸집이 작은 릴리를 푸드 챌린지의 파트너로 선정했다는 건…… 그 정도로 대안이 심각하게 없었다는 말이 되니까. 릴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엎드려 있는 릴리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테이블과 평행하게 빼꼼 들었다. 그 오너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방에서 열심히 도우를 회전시키고 있는…….
“……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애정행각을 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읽은 책에 나온 커플들은 보통 안 그러던데?”
『커플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도 같지만…… ‘그건 가쉬 군이 그렇게 설명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릴리의 생각은 대강 이랬다.
오늘 일어난 일이 앞으로 10년쯤 놀림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에미리는요, 미나즈키 군이 저를 오라버니로 착각할 정도로 그렇게 오라버니를 각별히 여기는 줄 몰랐... 이건 너무 갔는데. 미나즈키는 생각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홱홱 젓고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조금 멀지. 청월이니까."
다른 학교는 애초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누나는 청월 학생이었으므로, 뭐라도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도 청월에 입학해야 한다고 여겼으니까. 꽤 비약이 심한 사고였지....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의외로 성학교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긴 했다. 제노시아는 그놈의 자판기 때문에라도 절대 가고 싶지 않았고.
"아아. 동감이야. 그냥 넘어갈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되어버릴 줄이야.... 배고프다-아..."
나는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 채 고개를 쳐들어 레스토랑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진 빠지고 기운 빠지는건 정말, 아니 이런 적이 있던가? 온 몸의 힘이 방금의 외침과 함께 사라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애초에 내가 처음부터 잘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릴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진 몰라도, 우리 다음에 오는 커플들은 어렵지 않게 테이블로 안내 받고 있었다. 뭐지? 왜 하필 우리만? ..역시 내가 대답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가?
그렇게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는 와중에, 릴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철푸덕 하고 테이블에 얼굴을 박는다. ..아쉽잖아. 화장한 얼굴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굳이 입으로 내진 않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려 뭐라고 하는진 인식하지 못했다. 배고프다고 한 것 같다.
"나도 배고프다."
나는 그 웅얼거림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튼 드디어 전선에 선 것이다. 방금 그렇게 소리를 질러서까지 이 곳으로 온 이유는 1개월 무료 식권을 위해서였으니까! 진이 빠졌기 때문에 나의 배는 더욱 음식을 바라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문제 없이 클리어 가능하다! ..사실 진짜 1개월 무료 식권을 위해서라면, 은후쓰와 짜고 왔어도 됐을지도 모른다. 남남커플로 보이는 것은 뭐, 크게 문제 되지도 않고. 내가 굳이 릴리를 고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튼, 언제 음식이 나오려나 기다리는데 그녀가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해야 할 필욘 없지 않겠냐며 물었다.
"그럴 필욘 없어. 음.. 확실히 말 할 순 없지만, 그럴 필욘 없을거야. 아마도. 애초에 푸드 챌린지 자체가 주어진 음식을 주어진 시간 내에 먹느냐니까, 실제 커플이라고 해도 먹으면서 애정행각을 할 시간은 없을 거야. 뭐어, 이 레스토랑에서 '이상한 룰' 같은걸 넣어두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릴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설마 애정행각 1회당 시간 추가 그런 룰이 있을리 없잖아. ...없잖아. ...없지? 응? 제발! 난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려 했다. 그러던 와중 아까의 거구의 쉐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그것은
피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컸다.
"에..?"
"Hai aspettato molto tempo. Questa è la pizza per la sfida di coppia che hai ordinato."
쉐프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 피자 어쩌고 하는걸 보니 피자는 맞나보다. - 을 하곤 우리 테이블 위에 '쿵' 소리가 날 정도의 거대한 피자를 올려두었다. 이거, 인간이 먹는거 맞아? 내가 피자를 인식하기도 전에 쉐프는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1시간 이내."
"완식하신다면 여러분의 승리와 함께 1달의 무료 식권이 주어집니다."
"특별 룰로 두 분이 연인의 애정을 제대로 표현 해주신다면, 최대 3회에 걸쳐 시간을 조금씩 추가 해드리겠습니다."
1. 각각 레스를 작성하기 전에 다이스를 굴려. 굴릴 땐 알기 쉽게 이름에 커플 피자 푸드 챌린지를 붙여두는게 좋겠지. 다이스는 1~20의 다이스를 굴려. 값을 보면 알겠지만 1은 제대로 먹지 못한것 20은 굉장히 잘 먹고 있는 것. 이야. 각각 다이스 값에 따라 묘사하면 돼.
2. 시간은 핑퐁으로 8레스. 각각으론 4레스. 나와 릴리주의 다이스를 총합해서 100이 나오면 완식. 나오지 못하면 챌린지에 실패하게 돼.
3. ...여기서 특수 룰로, 가쉬나 릴리가 애정행위를 표현해서 쉐프를 [인정] 시켰을 경우에, 한 번 다이스를 더 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최대 3번.
4. 즉 가쉬와 릴리는 8+3의 기회를 갖고 1~20의 수로 100을 채우면.. 승리! 라는거야. 물론.. 실패했을 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옥의 접시 닦이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이…… 이 세상에는 기아와 기근으로 굶주려 죽어 가는 아이들이 많거늘, 이런 식량의 무지막지한 포화라니……!
이…… 이 동네 사장들은 전부 노동력 착취하는 게 취미이기라도 한가! 환경부담금도 아니고 접시를 닦아야 한다니!
이…… 이탈리아 놈들! 이런 건 이미 음식이 아니고 카펫의 영역이잖아! 이러면 테이블을 만든 의미가 없다고!
그것은 그야말로 마르게리타의 대평원과 같았다. 드넓게 펼쳐진 토마토 소스의 바다에 모차렐라 치즈의 섬이 떠 있고 곳곳에 바질로 된 배들이 항해하고 있었다. 『바다』라는 비유를 든 것은 그야말로 그 넓이가 바다에 필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도우를 구울 수 있는 화덕은 존재할 리가 없었으므로, 의념으로 구워낸 것이 아니라면 여러 도우를 이어붙여 만든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보면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새빨간 토마토 소스의 바다가 복잡하게 깔린 토핑의 초원으로 뒤바뀌는 곳이 존재했다. 페퍼로니, 올리브, 양송이버섯, 그리고 녹아내린 슈레드 치즈의 향연이 카니발의 풍경처럼 뒤섞이는 대륙…… 콤비네이션 피자였다. 릴리는 고개를 번쩍 들고 부엌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이탈리아어를 쓰는 이탈리아의 셰프였을 터. 그런데 이 『미국식』 콤비네이션 피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르게리타를 이만큼 먹으면 질려서 죽어 버릴 게 분명한 희생양들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친히 신대륙의 맛을 남겨 놓았다는 것인가?
그리고, 넓게 펼쳐진 마르게리타와 콤비네이션 피자 사이에 한 조각 ─ 그마저도 보통 피자 한 판에 필적하는 사이즈였지만 ─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 한국풍 피자의 구역이었다. 콤비네이션 피자보다 한 술 더 떠 고구마 무스니 통새우니 불고기니 하는 잡다한 토핑이 쏟아지듯 올라가 피자로서의 근본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구역. 이 부분은…… 솔직히…… 이 부분만 다 먹어도 릴리는 체할 것 같은데…… 가쉬가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릴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 Le pain d'hier est rassis, le pain de demain n'est pas cuit, merci Seigneur, pour le pain d'aujourd'hui… »
지금 상황에 참 지독하게 들어맞는 식전기도다. 릴리는 마르게리타 부분을 우선 공략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피자는 한 가지 맛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조각에 따라서 토핑이 바뀌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피자에서 그나마 여러가지 맛을 즐기라는 의미... 인가. 마침 지금의 나는 꽤나 배가 고픈 상태였고, 눈 앞의 피자가 얼마나 거대한들 얼마든지 먹어치울 자신이 있었다. 마르게리타 피자와 콤비네이션 피자 사이에 한 조각. 한 조각이라고 하기엔 꽤 거대했지만 근본을 잃어버린 일명 K-피자가 자리해 있었다. 조각이라곤 하나, 피자의 사이즈가 워낙 압도적인 탓에 평범하게 피자 한 판의 크기는 되어 보였다... 저거 하나를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처음에는 좀 느끼한 것으로 시작하자. 지금이라면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이럴 때에 최대한 저 K-피자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고구마 무스와 새우, 불고기, 그리고 파인애플 등 한국의 여러 피자에 끼얹을만한 온갖 토핑을 끼얹은 피자의 조각을 떼네어 한 입 베어물었다. 베이스의 치즈맛과 함께 고구마 무스의 단맛. 그리고 이어 새우의 통통, 아삭한 식감과 불고기 특유의 금방 질리는 강한 소스의 맛이 느껴졌다. 이것이 이 곳의 전략인 것인가. 우선 크기로 압도시킨 후, 강렬한 맛으로 질리게 한다. 이런 맛이라면 금방 질려버릴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나의 공복은 채워지지 않았고, 얼마든지 먹을 만 했다. 힐끗 릴리쪽을 보자, 그녀는 마르게리타 피자 부분을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는데, 내가 먹는 속도와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저번에 같이 식사하면서도 느꼈지만, 의외로 잘 먹는군. 하고 생각하며 나는 별 말 하지 않고 눈 앞의 K-피자를 천천히 해치워 갔다.
릴리는 직감한다. 이거, 이대로라면 물린다…… 최대한 꼭꼭 씹어 먹고는 있지만 말이 『피자 한 판』이지 사실상 몇 판씩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질리지 않도록 맛을 바꾸는 것이다! 피자가 놓인 쟁반을 빙그르르 돌려서 콤비네이션 쪽을 자기에게 가까운 쪽으로 끌고 온다. 역시 막막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지만 겁먹지 않고 가는 거야. 시간은 1시간. 부족하지만, 충분하다.
피자 커터가 도우의 위를 달려 점선을 내며 가르고, 떨어져나온 조각이 치즈를 길게 늘이며 접시에 얹힌다. 피자는 생각보다 도우의 비중이 몹시 큰 음식이다. 체감상 토마토 소스 조금과 치즈를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절반 이상이 빵으로 이루어져 배를 꽉 채우는 식품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음료는…… 자살행위! 빵을 불리므로 포만감이 몇 배 빠르게 찾아온다! 릴리는 천재적인 두뇌로 그것을 생각해냈다!
>>871 헐 독일인도 만나보셨구나 에릭주 인더내셔널!!! 그냥 전에 외국인별 특징으로 그런 이야길 들었었는데 좀 기분나쁨 질문이었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미안합니다!!@ 머리는 기분이 내키면 묶습니다! 나름 꾸미는 행위라서ㅋㅋ! 그럼 에릭에 대한 질문!! 머리가 하얗고 눈이 빨간데, 호의적인 느낌으로 토끼를 닮아서 귀엽다는 말을 들었을때 반응이 궁금하네요!!
이거 꽤나 물리네. 맛있다고 조금 빠른 속도로 먹었더니 급속하게 속이 니글거려오기 시작한다. 사실 독이나 그런게 들어있는건 아닐까? 강제적으로 배가 부르게 한다던가? 제대로 씹어 삼키기보단 그냥 대충 삼킬 수 있을 때 삼키고 있었는데, 이런 방식으론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으...."
나는 괜히 느릿한 손짓으로 밍기적 거리며 피자를 잘랐다. 뭐라도 해야하지만, 지금은 먹는 것 만큼은... 우웁. 순간 올라올 것 같아 표정을 구기고 고개를 숙인다. 아직 괜찮, 지 않아. 조금만 쉬어야겠다. 뭐라도 마셔야지 하고 나는 옆의 물을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릴리는 굉장히 계획적으로 피자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은 먹는데도 머리를 잘 쓴다 이건가.
"어어... 나도 좀... 우웁."
남말 할 처지가 아니다. 릴리는 속도가 반쯤 늦어졌다 뿐이지, 나는 한 입 먹곤 계속 깨작거리게 되었다...
시계는 30분을 지나 40분으로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다. 바보 가쉬 군이 갑작스럽게 체하는 바람에 릴리 혼자서 피자를 돌돌 말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나마 주효한 전략은 그나마 기름기가 덜한 마르게리타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치우고 나머지(그러니까 K-피자) 부분을 자극적인 맛의 힘을 빌어 그대로 해치우는 것이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분발했을 때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점쳐 두어야 한다. 가쉬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이제 와서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 저 아저씨 앞에서 하는 것이라면 이미 질릴 만큼 했으니 사양해 두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반칙』을 써야겠다. 릴리는 자기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 소화 촉진에 도움이 되는 성분! ※
뱃속의 수분을 용매로 하여 위 성분을 생성해 냈다! 떨리는 손으로 피자 한 조각을 덜어내 차곡차곡 접어서 입에 물고 말한다.
시간은 이제 40분쯤 지났고 눈 앞의 피자는.. 거의 10분의 6정도가 해치워져 있었다. 아예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불가능에 점쳐지는 상황.. 이라고 생각할 동안에 입을 움직여야 하지만 좀처럼 내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쉰 탓에 어느정도 먹을 수는 있게 됐지만 처음에 먹었을 때처럼 술술 입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에비해 릴리는 굉장히 잘 먹고 있었다. 그녀의 먹는 방법을 전부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체계적인 방법에 따라서 계획을 세우고 먹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다 K-피자를 먹는 것으로 담백&자극을 번갈아가며 해치우고 있었다. 좋은 방법이다. 나도 따라해야겠어. 난 남은 콤비네이션을 먹다 K-피자를 줄이는 것으로... 다행히 K-피자는 끝이 났다. 남은 것은 마르게리타와 콤비네이션인가. 가능해. 할 수 있어. 갑자기 식욕이 돋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어떻게든 피자를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먹는게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그녀는 먹으면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고 나에게 뭐라고 했다. 아마 조용히 하고 먹으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들리는게, 뭔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초대했는데 내가 릴리보다 제대로 못 먹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해. 나는 이를 악물고(그럼 못 먹잖아)어떻게든 피자를 흡입하려 했다.
…… 원래 릴리는 대식하는 편이 아니다. 미식하는 편이지. 궁극의 한 조각을 먹고 난 다음에는 일주일은 굶어도 괜찮은 그런 성격인 것이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꼬였다.
녹말을 당으로 분해해 가느다란 실 형태의 수크로스로 합성하는 마도를 통해 피자를 입 안에서 솜사탕으로 바꾸는, 솔직히 반칙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편법을 써서, 2할 가량을 한꺼번에 먹어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갑자기 가쉬가 허기에 미쳐 날뛰지 않는 이상 시간 내에 완식은 불가능하다. 솔직히 말해서, 릴리는 이미 한 달치 식사를 끝마친 기분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쩔쩔매는 가쉬 군을 보아하니 측은하달까…… 보호심이 솟는달까…….’
유일한 해결책은 알고 있다.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도 알고 있다. 셰프가 만족할 만한 애정행각을 하라는 거지. 알겠어. 하지만 어떻게? 애초에 『애정행각』이란 뭐지? 애정행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단어로서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니야? 대표적인 애정행각이 도대체 뭐가 있지?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생각한다. 틴트와 토마토 소스가 닦여 나갔다.
그 순간, 릴리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 어이, 가쉬 군…….”
어렸을 때, 지독하게 들었던 노래…….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 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못 먹겠다. 더이상은 못 먹겠다. 이젠 죽을 때까지 피자라면 거절할 것이다. 이래서 한 달 무료 식권을 건 것이구나 하고 나는 깨달았다. 실패하면 이득이고, 성공해도 한 달 동안은 피자를 먹으러 오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우린... 아니 나는... '함정'에 빠져 있던 것이다...!
눈 앞의, 평소에 꼬맹이라고 불렀던 소녀는 정말로 위대(胃大)한 속도로 피자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애초에 씹고 삼키는건가? 하고 조금 걱정이 될 정도로 피자를 '흡입' 해갔다. 나는 먹던것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쉐프 또한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표정이 조금 이상한다. 도끼눈을 뜨고 릴리를 응시하는게 무엇인가를 '의심' 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릴리... 연금술을 사용한 것인가? 가령 입에서 음식이 사라지게 하는 표션이라던가? 그런게 정말 있을까 싶지만, 연금술이라면.... 아니, 지금은 릴리가 부정을 저질렀던 아니던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먹는 것' 이다. 조금이라도 먹어서 그녀를 도와야 한다. 이젠 완전히 릴리가 주가 되었고, 나는 거의 거드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포지션이 바뀌어 버렸다.
무리다. 이대로 더 먹는다고 해도 시간이...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갑자기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애정의 증명' 으로 인한 시간 추가!
그녀는 나에게 각오하라고 말하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그 작은 몸을 뻗으며 장갑 낀 손으로 내 앞머리를 걷어 올렸다.
...지, 진짜? 하려는거야?
릴리는 크고 도전적인 목소리로 쉐프를 부른 후, 더욱 몸을 내밀고, 그대로 몸을 더욱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붙여, 자신의 손으로 걷어 올린 나의 이마로 더욱 다가왔다. 분명 시간을 들여 공들였을 메이크업. 그것이 무슨 이유든, 그녀는 메이크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함께 피자를 먹어주었다. 내가 부탁했기 때문에. 오직 단 하나 그 이유만으로. 피자를 먹는 와중에도, 내가 제대로 먹지 못해도 그녀는 그것을 비난하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성공하려 했다. 내가 먹지 못해 쩔쩔매더라도,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가 지원하여 기회를 벌어들이려 했다.
단순히 이마에 그녀의 입술이 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의 부탁을 불만 하나 표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돕는것이 아닌 이 상황을 주도하여 어떻게든 성공시키려 했다. 거기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 주어질지 어떨지도 모르는 기회를 향해 온 몸을 던져 손을 뻗었다.
반했다.
이젠,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그녀는 그 육체의 크기를 뛰어넘는 거대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의 소유자.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답을 갈구하며 불확실한 기회를 향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대단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도돌이표가 되더라도 이해하길 부탁한다. 지금의 내 머릿속엔, 이것 밖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che bella vista..." 우리의 식사를 지켜보던 쉐프도 그녀의 그 거침 없는 행동에 감명 받았는지 무어라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은 뒤 그녀에게 인정한다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뭔가, 눈 앞의 적을 쓰러트린다던가 그러고 있었던가?
아, 적. 있지. 피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피자든 그렇지 않은, 이 상황은 '어디에서든 똑같이 적용될 것.' 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작고 귀엽기만 한 아이가 아니다. - 그렇다고 귀엽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 릴리는, 도망치고 주저앉는 나따위와는 달리, 나아가고, 벽을 부수고, 쟁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 작은, 귀여운 색의 틴트가 피자 소스와 함께 휴지에 닦여나간 입술이 나의 이마에 닿았다. 부드럽다. 그리고, 따뜻하다. 이대로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의념기를 사용해 시간을 멈추고 되도록이면 가능한만큼 이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은 그 순간 만큼은, 온 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저도 가쉬의 생각 그대로 입니다... 릴리는 진짜... 귀여운 것도 귀여운데 너무 멋지다. 뭐 길게 말 하지 않아도 위에 주저리 주저리 써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