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탈의 도발에 주양은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오. 맙소사. 이렇게 정신 아찔하게 도발해주는 사람은 또 처음인데? 이렇게 된다면 자신이 전의를 불태워야 할 것은 양반탈 따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나~ 이거 참 재밌어라. 마음 같아선 교수님들이 보든 말든 싸버리고 하지! 누구는 저주 마법이나 펑펑 쏴대는데, 누구들은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애써 완급조절 하고 있는 상황이 참~ 억울하거든?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못 쓰는게 아니라 안 쓰는건데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억울하지 않은 표정으로 킥킥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학생으로써. 옳은 마법사로써 그 길을 걷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자신이 이미 재앙에 휘둘리고 있을 때부터 자신이 정말 옳은 마법사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는 했으나, 애초에 양심 따지는 건 주양이 아니었기에 금방 떨쳐낼 수 있었다.
"근데~ 내가 너네처럼 허접하고 수준 낮은 저주마법을 읊어서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니? 천-만에!"
어디까지나 눈에 뵈는 게 없는 주양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전혀 허접하지도, 수준 낮지도 않은 저주라는 걸 확실히 하겠다. 뻔뻔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던 주양은, 마침 가까이 와서 잘 되었다며 선비탈에게 더 고개를 가까이했다.
"... 가까이 온 김에 너한테만 속삭여줄게. 내가 산제물 서른 명만 모으면, 그땐 탈이고 주인님이고 뭐고 다 끝나는거야. 알겠어? 지금껏 너희가 상상도 못했을 그런 절망과 공포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안겨줄게?"
목소리를 작게 줄이고 낮게 깐 채 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정말 그렇게 만들 날은 자신이 졸업하고 난 후. 그러니까 아득히 먼 미래가 될 터였으나, 상관 없었다. 그때까지 몸 성하게 탈 쓰고 다니는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계획은 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탈이 뒤를 돌아봤다. 그 어떤 저주 마법보다도 더 확실한 두 글자. MA를 부르려는 목소리가 목구멍 밖까지 튀어나오려다 간신히 억눌러졌다. 조절. 잘 해야 하니까.
"쓸 곳이 없는 자네..오..미안하네. 쓸 수도 없는 것보단 훨씬 쓸만한 것인지라..미안하지만 개소리는 걸러 듣는 재주를 다시 써야겠군. 들리지 않았네. 아가, 이 치가 뭐라 했는지 들었니?"
그는 백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지팡이를 아무데나 휙 내던졌다. 귀한 재료만 엄선해서 만든 이번 지팡이도 결국 들개에게 던져주는 막대기 취급이 됐다. 그는 상황을 다시금 지켜본다. 이번엔 붉은 머리의 학생을 향해 도발하는 건가? 그는 이것 만큼은 쓰고싶지 않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했다. 이렇게 말 많은 사람과 엮이면 하루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와중에 들렸던 경고에 그가 잠시 당신을 쳐다본다.
적어도 다섯은 볼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적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등 뒤로 손을 모으고 한 손가락을 남몰래 까딱인다. 철제 의자가 손에 날아 붙었다. 이건 그의 어머니가 선물한 것이다. 언젠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우가 생기면 뒷일은 걱정 말고 머리를 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휘두르는 법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방학 중 어머니께 동화책으로 여러번 맞아봤고, 때리는 법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겉보기에 빌빌대는 약골이었지만 이미 지팡이를 한번 부러트린 전적이 있다. 무엇보다 장의사는 힘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는 스투페파이를 맞은 탈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 못 믿은적 없는데? 적어도 반응이 와으니까 진짜긴 하겠구나-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
제대로 한 방이 들어가고 레오는 씨익 하고 미소지었다. 둘 다 아파보이네-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선비탈은 엄연한 적이다. 공격하는데 있어서 지체가 없으며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윤은? 같은 학교 학생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따로 만난 적도,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닌 완벽한 '타인' 이었다. 아마 저 사람하고 친분이 있다거나 했으면 얘기가 달랐겠지. 오며가며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무언가를 교류한 적은 없었으니까.
" 사람 쉽게 안죽어. 내가... 내가 당해봐서 알아. ....이 개새끼들. 안되겠다 너. "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크루시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너무 많은 지금 그랬다간 아즈카반에 끌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그 날, 그 시간 이후로 혼자 있는게 무서워졌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다가 허공에 마법을 난사하며 깨어나는 일도 있었다. 전부, 전부 네 놈들 때문에.
화, 분노, 증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으면서 지팡이를 꾹 쥐었다. 무슨 감정인지 알고있다. 어떤 감정이고 이 부정적인 에너지가 어떤 힘을 발현할 수 있는지는 선배님한테 배웠지.
이번에도 빼앗지 못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방에선 계속 공격이 날아들고 봄바르다의 불길이 선비탈을 감싸자 뒤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온다. 분노, 원망, 자책, 절망... 온갖 시커먼 감정들이 목끝까지 차올라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입을 벌리면 욕지기든 상소리든 튀어나올까봐 입술을 뜯어버릴 듯 물고 목표에만 집중했다.
"읏....!"
불길도 비명도 잠깐은 잊고서 손에 닿는 걸 움켜쥐자 선명히 느껴지는 촉감이 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로켓의 감촉. 그녀는 누가 보기 전에 서둘러 손을 거두고 성한 소매 안쪽으로 로켓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돌아 윤의 곁으로 돌아갔다. 선비탈이 누구에게로 무슨 말을 하던, 누구에게 뭘 맞던 일절 신경쓰지 않은 채 윤에게로 돌아가 웅크린 그를 감싸안는다.
"미안해요. 이제 괜찮을테니까."
거친 움직임에 피가 멎을 줄 모르는 팔로 그를 와락 감싸안고서 싸늘한 시선으로 선비탈과 그 외 학생들의 행동을 본다.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두 눈에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