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짗궃은 캐묻기에 나는 결국 얼굴을 밝히곤, 손으로 눈가를 가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 했다. 이상하다. 나도 바뀌었단 느낌은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땐 하루도 그렇지 않은가?
".....솔직하게 그렇네. 에릭 이후로 사람을 이렇게 때려본건 처음이야."
이것도 어느 의미론 친밀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에게도 나에게도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특별한 관계' 가 되는 데에는 성공 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고 보면 이름조차도 못 들었다.....짐작 가는 녀석은 있는데. 조사라도 해볼까....
"시끄러워...."
스스로가 여기고 있는 감상을 정확하게 찔러들어오는 하루에게, 나는 고개를 돌리곤 툴툴 거렸다. 역시......라고 무언가 말하려고 고개를 되돌려 그녀를 바라보려던 찰나, 갑자기 머리 모양을 바꿔서 작업을 거는 그녀를 눈을 크게 뜨곤 깜빡 거리면서 바라보았다. 우왓. 엄청나게 의외.....잠깐 할 말이 없어서 벙쪄있다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곤 답한다.
"내가 달라졌다고 얘기했는데....그렇게 따지면 하루도 꽤 달라진거 아니야?"
전이었으면 이런 농담은 안했을 것 같다. 좋게도 나쁘게도 장난기가 늘었달까, 요망해졌달까....마찬가지로 연애의 영향일까.
"고마운 걸까요.." 그렇게 여기신다면 그럴 뿐이겠네요. 라고 답하면서 캔을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마셔버려서 그런가? 다행이라는 말에 성현 씨도 건강하세요. 라고 답합니다. 건강.. 하지 않는다면 이상해보이는 것이긴 해도 이정도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편이 아니라 같은 쪽에서라면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합니다. 사실 성현 씨 주먹에 맞으면 짜부될 것 같았단 감상은 말하지 말자... 물론 권역쟁탈전에서 만나면.. 어.. 일단 미래의 일은 그만두고!
"저는 고양이 조금 보러 온 거라 곧 학교로 가야 할 건데요." 성현 씨는 뭐 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봅니다.
싱글벙글 웃는 그녀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리 말했다. 물론 솔직하게 정말 싫은 것은 아니었다. 놀림거리가 되는 것도, 친한 사람에게서라면 그럭저럭 즐거운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날 놀리는 그녀는 요 근래 봤던 모습 중에선 특히나 즐거워 보여서, 그녀를 친구로써 소중히 여기는 나로썬 따라 웃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게 아니야! 애초에 연인 있다구!"
심지어 이렇게 굴게 만든게 처음인 것도 아니다. 처음은 에릭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무엇보다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이런일로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면 그건 순정 만화가 아니라 이미 질척한 어른의 드라마지 않은가. 시청률은 확보될지 몰라도 현실에선 그런건 사양이다.
"음....그렇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어떻게 지내?"
나는 고개를 기울이면서 그녀의 근황을 물어봤다. 그러고 보면 일하면서 종종 마주치긴 해도, 그 외에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겪었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녀에게 변화를 주었던 것일지, 개인적으론 흥미가 있었다.
"....참고로 그 애는 나한테 손을 강하게 잡힌 후에 명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방패로 두들겨 맞았어."
장난스럽게 웃는 하루에게, 나는 웃으면서도 어깨를 으쓱이곤 그 때의 호신술(?)에 대해서 말해준다. 조심하라는 경고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뭘 해도 그녀에게 손댈 생각은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놀랐다. 그가 알면 괘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심 '얼마나 잘그리는지 한번 보자!' 라는 감정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본 그림은, 말 그대로 장인의 작품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서로를 좋아하고 위하면서도 아직 솔직하게 이어지지 않은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 관계가....그림속에 완벽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보러올 걸.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그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어째 아는 사람 같은데...."
....장인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아무리 봐도 내 근처에 있는 커플인 에릭 하르트만과 하나미치야 이카나씨를 떠올리게 해서,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너무나도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인 탓에, 근처에서 가장 비슷한 커플을 연상해서 보게 만드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기엔, 너무 생생하게 그 둘의 광경이 그려지는 것만 같은데......
"아, 고마워."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림을 보면서도, 그가 건낸 사탕을 고맙다고 대답한 뒤 받아서 입에 물었다. 새콤달콤한게 꽤나 맛있다.
하루는 너무 짓궂게 굴지는 않겠다는 듯 상냥하게 대답한다. 장난도 정도를 넘어서면 기분이 나빠지는 법이니까, 그리 많이 할 생각은 없었다.
" 아하하, 알죠, 알죠. 그런데 정말 궁금하네요. 우리 진화군이 사귀는 사람 말이에요. "
진화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 하루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몇번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역시 누군지 들은 적이 없기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하루였다. 혹여 진화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사람이라면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물론 진화가 그런 것도 걸러내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친구로서의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