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 있고... 누군가와 비슷해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애매모호한 답변. 휴우... 위험해... 진짜 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면 꽤 위험해질지도 몰라. 네놈!! 하면서 검으로 날 죽이려고 할지도 호들호들 연약한 서포타는 무서운 거시와요. 이럴때는 빠르세 화제를 돌려야 하지. 그림을 무서운 속도로 통에 집에넣고, 다음 그림을 꺼낸다. 이번에는 나의 영웅의 형상 시리즈. 태양왕 게이트에서 본 것을 그려서 형상 시리즈를 갱신할 예정이었지만... 너무 오래 됐어...
"이것은 제가 본 것을 그린 거예요. 솔직히.. 이걸 처음 봤을 때... 진짜 끝내줬어요. 제가 원하는 그 느낌, 그 분위기... 최악의 상황에서 등장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모두를 살리고 꺼져버린 불꽃처럼 사라져버린 그...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그 풍경을... 그 광경을... 히히. 태양왕때에도 꽤 좋았지... 게이트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은 건 안 좋았지만. 아무튼, 이 그림을 보면 뭔갈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진화 씨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금 사귀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내비치자, 나는 얼굴을 붉히고 볼을 긁적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가 카사랑 사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번 부끄럽다고 거절한 이유, 한번 더 한사코 거절하려니까 어쩐지 그녀를 신뢰하지 못하고 따돌리는 듯한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결국 말하고 만 것이다. 사실 최근 청천이에겐 밝혔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청천이에겐 말해줬으나 자신에겐 철저히 비밀로 한다면, 상처받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엑. 검술? 하루는 치료사 아니었어?"
평범하게 들리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의외의 말이 나왔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하루는 어딜봐도 치료에 철저히 집중한, 뭐라고 할까. 전형적인 메딕이었는데. 검술을 배웠다니.......정말 의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걸까? 싶어서 나는 놀란 얼굴로 하루를 봤다.
"그렇게 말해주면 기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있진 않았으면 좋겠네.......그리고 변화라. 그러고 보면 아까전 양갈래 머리는 확실히 귀여워서 좋았다고 생각해."
매력은 연인에게 어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더불어 동성에게 어필되어도 곤란해. 진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까전 양갈래 머리를 한 하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평소엔 조금 어른스럽다는 이미지인데, 어쩐지 그렇게 하고 귀여운 복장을 입어도 어울린다. 사실 아마 뭘 해도 어울릴 것이다. 미모란 최고의 옷걸이니까.
에릭 아니야? 라고 말하려던 나는 그의 재빠른 말에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예술의 장인이 담은 의도는 그러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예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왈가부가 하는 것은 멋이 없다. 일단 감탄하기로 했다. 이 그림을 본 것만으로도 여심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들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헤에.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네."
그게 그가 바라는 영웅의 상인가. 하긴 지난번에도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 등장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모두를 살린 뒤에 사라진 인물.....인가. 하긴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영웅이라 불려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좀 더 흥미로운 눈으로 그림을 지켜본다. 보지만.....으음. 뭐라고 해야할까. 분명히 멋진 그림인 것은 확실했지만, 나에게 확 꽂히는....그런 무언가는 없었다. 그 때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는 영웅의 상과는 달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감탄은 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거 에릭 아니야?"
거기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이, 아까전에 연인들의 그림에서부터 이어져서, 나는 고개를 기울이곤 나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 춘심 언니요...!? 정말...!? 춘심 언니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 사람이 진화군이었구나...!? "
하루는 얼굴을 붉히고 답하는 진화의 대답을 듣곤 한순간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굳은 체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곤 몇초간의 뇌내 정리 시간을 갖은 후에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어렴풋이 설마설마 하고 있던 것이 이렇게 완전히 이어지게 되자 놀랍기 그지 없는 하루였다. 춘심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진화였다니, 이제야 완전히 수긍하는 하루였다.
" ..뭐어, 누군가를 지키는 검술이니까 랜스 같은 것이 되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 몸이나 동료 정도는 아주 급할 때에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
하루는 놀라는 진화에게, 그리 놀란 건 없다는 듯 상냥하게 대답을 돌려준다. 진화도 그렇고, 에릭도, 지훈도, 카사도... 하나같이 앞에 서서 다쳐나가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싫었기에 익힌 검술이었다. 물론 본분을 다하다 어쩔 수 없을 때에 쓰게될 기술이겠지만, 분명 도움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하루였다.
" 아하하, 자주 있으면 곤란하긴 하겠네요. 그래도 그럴 때는 깔끔하게 '저 남자입니다' 하고 바로 말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 그리고 귀엽다니 고마워요, 그런 말 들으려고 양갈래로 한거니까 보람있네요. 후후. 나중에 춘심 언니도 해줘야지. "
하루는 진화의 말에 고맙다는 듯 방긋 웃어보이다, 씨익 웃고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윙크를 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