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보고 결정하겠다. 그것이 릴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루 씨를 노동착취하고 있으며, 사장이라는 자는 숙청여제의 사역마로 세뇌당했던 이 가게의 처우는 먹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 릴리의 선택이었다. ※세 번 불지옥 대폭발 물약※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될지 말지는 순전히 이 가게 제품의 맛에 달려 있었다.
충분히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를 제공한다면 이 가게 사장의 이성과 의지는 보다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강한 상승의 결의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해하고 얌전히 물러날 것이었다. 하지만, 맛이 개차반이라면…….
하지만 고민되는 것은 무엇을 주문할지였다. 평소라면 카페오레와 크라상 또는 아무 페이스트리 하나를 시켜서 시간을 죽였겠지만 오늘은 보다 엄격한 품평의 시간이다. 어떤 디저트로 이 가게를 판단하게 될지는 순전히 메뉴판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동아시아의 카페에는 메뉴가 너무 많아……!
그런 이유로 릴리는 카페에 들어와 팔짱을 끼고 까치발을 들어 위를 올려본 채로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방금 노예라고 하지 않았나? 분명히 노예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엇보다 말은 정정했어도 눈빛은 여전히 날 노예로 보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드는걸.....사실 알바 시절엔 몰라도, 노동 혁명을 일으켜 방패로 에릭의 머리를 내려 찍은 이후 부턴 월급도 발언권도 개선되어 노예는 아니지만....저 뒤에서 일하고 있는 춘덕이는 그런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아니 애초에, 오해 맞나??
"아....기존 메뉴로는 딸기 파르페가 가장 인기 있어. 내 생각에도 그게 제일 맛있는 메뉴야. 조금 독특한걸 원한다면, 요즘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랑 교류하면서 내가 개발한 당근케이크와 당근마카롱이 있겠네."
이종족 토끼를 위하여 만든 메뉴로써, 괴식은 아니고 평범한 디저트 메뉴라고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설명해주었다. 적어도 다른 차원의 사람들에게는 호평이었으니까....아직 정식 메뉴로 올리진 않았지만 말이다.
".....마음에 든다면야.....!?"
뭐, 뭐야....뭐지....!? 눈 앞의 이 작은 소녀는 감찰관이었던 것인가? 식품위생청이나 노동청에서 파견 온? 도대체 릴리는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74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정훈이가 손끝키스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둘 다 선 채로 은후의 손을 입가까지 가져와 손등키스를 할 듯이 싶다가 손끝으로 내려와서 이 손끝이 아니라 네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는 듯 가깝게 쳐다보면서 한다는 묘사가 정석인가, 아니면 기사가 아가씨한테 하는 키스 같은 구도로 은후는 서 있고 정훈이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손이 교차가 되도록 손바닥을 맞잡고 키스한 후 올려다보지만 올려다보는 게 아닌 것처럼 은후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는 묘사가 정석인가. 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게가 바쁘지 않고 한산한 때였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파르페를 준비하며 물었다. 아이스크림과 생크림과 딸기 과육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층속에서 깊게 배어든 단맛과 부드러움이 서로 다른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미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딸기 파르페는, 우리 가게의 메인 메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맛있음을 100면체 다이스로 결정했을 때 97 이 나오는 맛이라고 할까.
"자, 여기. 딸기 파르페."
인기 메뉴인 만큼 주문도 자주 들어오기 때문에, 어느정도 숙련이 되었다. 나는 그녀를 오래 기다리지 않고 푸짐한 딸기 파르페를 하나 대접하면서도, 지난번 카페 직원들의 사고에 휘말렸던 소소한 사죄로 당근 마카롱 두어개를 서비스로 같이 내어주는 것이다.
"음.....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어려운데. 일단은 철이 덜든 어린애?"
이곳의 사장이자 머리 하얀 칼잡이라고 하면, 아마 에릭을 말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리 여기면서도 애매한 대답에 일단 딱 떠오르는 감상을 말했다. 조그마한 그녀가 발꿈치를 들고 애써 어깨를 벌리려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지만, 내 경험상 이러한 유형은 이런 흐름에서 귀엽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속상해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스스로의 감상으로만 남겨두고 말이다.
정중하게 음료를 거절한뒤 창가 자리로 가서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뭐라고 할까 학자로써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외견상 귀여움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지만....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궁금해지네. 부디 저 진지한 분위기로 고려하는 대상이 우리 카페에 대한 처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서빙 한 뒤에 잠깐 자리를 떠나지 않고, 쟁반을 공손하게 든체로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엄격한 분위기와 각오를 풍기는 그녀가 어떠한 맛 평가를 내릴지, 솔직히 말해 엄청나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요리를 대접한 녀석은 누구냐 - !!' 하고 그릇을 뒤집어 엎기라도 한다면, 바로 옆에서 빠르게 무릎을 꿇을 각오를 해두던 참이었으나.....
다행히도, 합격이라는 것 같다. 무슨 시험이 있던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위기를 넘긴 것 같아 한시름 놓은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가? 그럴지도....다만 그 애는 엄연히 말하자면 탐욕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마음이 여리고, 서툴러서, 애써 허세를 부리며 잘해보려고 하지만 헛발을 짚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가 정말 사악하고 탐욕적인 성격이었으면, 솔직히 말해서 이런 카페에 정을 붙이고 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점은....뭐랄까 자신만만하고 오만해보이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실제론 상당히 어리숙한 놈이라는 점이랄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그런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를 필사적으로 해보려는 그 허세가, 어쩐지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아 친근감이 간다. 나는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글러먹은 점이, 몇몇 사람들에겐 챙겨주고 싶어지는 걸지도 모르지."
여자친구인 하나미치야씨가 그를 좋아하는데에는, 그런 이유도 아마 적지 않게 들어가있지 않을까.
눈을 감은 채 파르페를 입에서 우물거리다가, 한 쪽 눈을 떠서 엉거주춤 서 있는 진화의 모습을 살폈다.
‘……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지?’
뭐,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이니까. 하고 릴리는 맛을 느끼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앗, 파르페 사이에 오는 당근 마카롱의 은은한 단맛이 펀치를 날려 주고 있어. 특이한 풍미 덕분에 파르페의 강렬한 단맛에도 지지 않는군.
“그런가……. 보물을 찾겠다며 의욕에 불탈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가까운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릴리는 의욕이라는 것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설령 정말로 천박한 것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목적이 없는 인간보다는 낫다. 하물며 돈쯤이야.
“…… 그래서 하루 씨도 빚을 갚겠다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건 그냥 그이가 워낙에 심성이 착해서인가.”
파르페 잔 깊이 숟가락을 꽂고 퍼올리자 크림과 시럽과 딸기가 뒤섞인 호화로운 한 숟갈이 되었다. 릴리는 곧바로 그걸 입에 넣는다. 릴리가 아는 카페 몽블랑의 사장의 모습은, 보물지도를 해독하고 나서 엄청나게 들떠하던 모습이나 바로 며칠 뒤 숙청기사가 되어 있었던 모습뿐이니까, 증언이 곧 그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탐욕스러운 놈인건 맞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우호적으로 여겨주고 있었단걸 자각하면서, 나는 빠르게 평가를 수정 했다. 카페에 쓸 돈이 부족하다고 월급을 최대한 깎아먹으려는 주제에 그 돈으로 자신의 장난감을 구매한다거나, 새로운 인재를 원한다면서 일단 납치로 데려올 생각을 하는걸 보면 글러먹은 놈인건 확실하다.
"하루는 뭐.....착하기도 하고. 둘이 서로 친하기도 친한 것 같더라고."
하루도 사실 에릭에게 나름대로 마음의 빚이 있긴 하겠지. 자신이 자해 했던 사진이 한 때 에릭이 그녀를 다치게 한 것 마냥 퍼져 카페에도 그에게도 안좋은 소문이 돌게 했으니까. 다만 이런 사정을 남에게 함부로 퍼트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얼머부렸다. 어쨌거나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네.
"..........응? 어.....나도 아까 말한 '챙겨주고 싶어진 사람' 중에 하나라서?"
놀라하면서 따지는 그녀를 보고, 나는 역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되묻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격렬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더 의아 해졌다.
역시는 역시다. 하루 씨를 노동착취하는 그 인간이 정상일 리가 없어. 세 번 불지옥 물약을 꺼낼 가능성이 약소하게나마 올라갔다. 물론 파르페를 한 숟가락씩 더 떠먹을 때마다 그 확률은 도로 낮아졌다.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말이지…….”
자신이 미처 찾아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켕기는 듯했다. 하루 자체도 릴리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숨기고 있는 눈치였고. 숨긴다는 말은 곧 알려지기 싫다는 말이니 릴리도 관심을 품지는 않고 있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큼은 심증으로 짐작하고 있기는 하였다.
그래도…… 신경써 무엇하랴. 릴리는 두 뺨 가득 파르페를 채우고 우물거리는 데 바빴다. 한참을 우물거리고 나서야 파르페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크흠, 크흠, 실례……. 아니, 가디언이잖아?! 혹시 당신도 착취당하고 있거나 그런 거 아니야?”
꽤나 큰 목소리이긴 했지만 걱정이 제법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아무래도, 사장에 대한 불신의 골이 상당히 깊은 것이겠지……. 무엇보다 그 너구리도 있고! 중국 요리하는 너구리!
그 때를 떠올리니 기가 막혀선 나는 드물게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항의 했다. 본인 말로는 공격적 사업 개발 이라는데, 진짜 물리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분명 에릭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옹호하는 발언도 많이 하지만, 결국 끝엔 이런 부분에 분을 터트리게 되는 것 같다.
"뭐어, 둘의 사이는 복잡한 것 같더라구. 더 정확히는....카사 알아? 하루의 여자친구. 에릭이 그 애와 깊은 관계거든."
어쩐지 내켜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왠지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고민해 하다가.....말해도 괜찮을 것 같은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좀 더 정보를 제공했다. 에릭과 하루가 실컷 싸우고 치고 받은 원인은, 솔직히 말하자면 당사자들 외엔 아마도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둘의 관계도에는 카사라는 늑대와도 같은 여자애가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둘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 지난번에 사태는, 그녀를 두고 공통분모가 겹친 두 사람의 다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학업에 지장가지 않는 선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매니저도 마찬가지로 학생이야? 점장도 학생이고. 그리고....착취....당할 뻔 한 적은 있지만."
팔짱을 끼곤 주변을 둘러보고, 요 근래 카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생각해 본다음. 고개를 기울인다.
"이제와선 날 착취랍시고 괴롭게 할만큼의 권력이 점장에겐 없어. 수 많은 사고를 친 끝에, 내가 발언권을 압수해버렸거든."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 근래 카페 일하는 비중을 보건데 나, 다림씨, 춘덕이 셋 중 한명이라도 빠지면 이 카페는 망할 것이다. 그리고 슬슬 익숙해져서, 점장이 월급 감봉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면 방패로 후려쳐 정신차리게 만드는 노하우를 익혔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던 릴리는, 가만히 테이블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침묵했다. 릴리의 정신은 기억의 궁전에 있었다. 방금 들은 일들이 담겨 있는 파일을 든 채였다. 이 파일을 사건 목록에 추가해 놓는다면 릴리는 두뇌의 일부를 다치지 않는 한 그 정보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 하지만 릴리는 그 파일을 세로로 찢어 바람에 날려 버렸다. 날아간 파일들은 궁전에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더니, 새하얀 그대로 구름의 일부가 되듯 사라졌다. 기억해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루가 이 일을 릴리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자기 고통을 오롯이 스스로 감내하기 위한 것. 그리고 릴리에게는 그 사건에 관여할 권리도, 하루의 삶에 참견할 자격도 없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도, 릴리는 하루에게 있어 ‘남’이었다. 고로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얽히려고 해서도 안 됐다. 그게 『예절』이니까다.
“…… 씁쓸하지만 잘된 일이군.”
이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릴리가 방금 내린 결정에 대한 코멘트였다.
“말에는 무게가 1그램도 없지. 하지만 말을 빼앗긴 인간은 사나워지니까 조심해. 언젠가 악착같이 벌어 모은 돈으로 역습할지도 모르니까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야.”
"연애 고수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 사람을 영입해 상담 이벤트를 하자는 것 까진 나도 동의 했는데...."
스카웃 방법이랍시고 불러 낸뒤에 워리어 둘이서 습격한 다음 기절시키고 자루에 담아오자고 말했을 땐 기겁을 했다고 나는 덧붙였다. 심지어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하나미치야라는 여우귀 소녀와 사귄 직후에 제안한 아이디어라는 부분이다. 연인을 사귄 직후에 다른 소녀를 폭력적으로 납치해오자니, 사고하는 세계가 다르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릴리는 내 이야기를 듣곤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을 품었다가, 이내 씁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까부터 하루가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하는데, 하루와 친분이 있었던 걸까. 그게, 지금 여기서 점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묻는 계기 중 하나가 된걸까. 지금 씁쓸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언가 그 계기와 모종의 연관이 있는걸까. 머릿속에선 여러 의문들이 들었지만, 나는 그걸 캐묻기 보단 어딘가 처연해보이는 그녀에게 달콤한 과자 몇개를 좀 더 서비스로 건네기로 했다. 호기심으로 그런 일을 캐묻는 것은 좋지 않다. 내 일관된 신조였다.
"확실히.....잘 새겨둘게. 그런데 에릭이 그 만큼 철두철미한 녀석처럼 느껴지지는 않네."
사실 그런 짓을 저지를만한 녀석이었으면, 애초부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웃었다.
그렇게 해서 연애 상담 이후에 이어진 커플에게는 추가적으로 서비스도 주는 이벤트가 있다~ 라던가.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직감했다. 연애 상담에 반응하는 그녀의 반응이.....어쩐지, 굉장히 흥미가 있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치 내가 앞에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나 또한 그걸 보며 속으로 무언가를 고민했다.
어라라? 이거.....설마....이 반응은........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벤트는 현재 진행형이야!"
이용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그 물음을 기다렸기 때문에 마치 미끼를 던지자마자 물어올린 물고기처럼 서둘러 대답하는 것이다. 실제로 에릭에게 전해 듣기로 에미야에게 납치가 아닌 건전한 방법으로 영입을 성공했다고, 곧 출근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반응은....역시....나는 이 시점에서 설마설마 했던 가정을 거의 확실시 했다.
"......연애에 대한 고민이라도 있는거야?"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롭다. 설마 사귀고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인가? 아니,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그렇지만 적어도 연애 상담에 흥미가 있다는 것은, 호의적으로 마음에 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어쩐지 두근두근해지는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그릇을 치우며 물어보는 것이다.
확실히, 릴리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성격은 아니다. 문제의 문턱에서 해답의 벼랑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두고 결론을 내지 못해 오래 고민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릴리 본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이미 책과 학문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결혼한 학문이 너무 많아서 일반적인 윤리관으로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타락의 극을 달리는 수준이지. 인간에게 사랑받기는 포기한 지 오래인 몸이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인간에게 인기 있나 없나 정도는 들어 두고 싶은 것 아니겠어?”
팔을 뒤로 뻗어 머리를 받치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진화 씨는 애인이 있나? 애인이 없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니까, 이건. 평생을 고독 속에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 이 고독에서 벗어날지를 애매하게 가늠하며 사느니보다도 고독에 미리 대비해 둬서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야.”
그렇게…… 장황하고…… 아주 살짝 배배 꼬인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치맛단을 털었다. 툭 툭 투둑 툭.
"뭐어, 그렇지. 애초에 카페에서 하는 이벤트 같은거니까,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고. 가벼운 마음으로도 좋다고 생각해."
물론 상담을 받는 시점에서 적게나마 고민이란 범주에 자연스럽게 속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굳이 입으로 내뱉어서 그녀와 설전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아니라고 얘기한다면 아닌 것이겠지. 물론 흥미는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녀의 뒷말을 듣는 것이다.
"음.....인기,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귀엽다고 생각하고. 성격적으로도, 남에게 쉽게 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잖아."
물론 그녀에게 괴짜 기질이 충만한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어설프게 아니라고 말해봤자,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빈 말로 들릴 것이 뻔하니까. 그러나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인기가 없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외견은 스스로는 콤플렉스일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충분히 귀엽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그녀는 괴짜 기질이 있으되,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나는 최근에 사귀게 된 사람이 있지만....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직전까진 단 한번도 경험이 없었고, 내가 누군가와 연애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실로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정말 누군가와 사귀어도 괜찮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거를 수집하는 탐정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약 부정적인 결론을 유도하는 근거가 그녀의 안에서 충분히 모인다면, 아마 그녀는 별 다른 미련 없이 누군지 모를 그와의 연애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다.
다만....그렇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누군지 모를 그와 눈 앞의 그녀가 이어지기를 바랬다.
"그러니까 경험자로써 말하자면, 스스로는 연애 가망이 없다고 확신해도 어떻게 좋아해주는 사람은 나오는 법이더라. 그리고 자신이 연애를 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없더라도, 눈 앞의 상대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냥 사귀어보는 것도 좋더라."
의자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마중나가면서, 나는 솔직한 경험담을 전했다. 별로 그녀에게 사귀어라 사귀지 마라 간섭하거나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스스로 겪건데, 상대를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사랑에 빠지지 않더라도,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연애는 시작될 수 있고. 그러한 감정으로 시작된 연애가, 꼭 가볍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전하고 싶었다.
>>265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놓쳐서 버스 타려고 3시간 걸음 + 버스타고 20분 해서 집에서 어느정도 거리 있는 백화점에 도착 + 거기에서 방향을 잘못 잡아서 집과 반대 방향으로 끝임없이 걸음 가족이 왜 애가 집에 안 오나 싶어서 11시쯤에 전화 걸었고 아버지 차 타고 집에 오니 새벽 1시더라고요 최고 반전 : 학원 바로 앞에 집 앞으로 바로 가는 버스 있었음. 그거 타고 30분 거리
버스 처음 탔을 때 방향 잘못 잡아서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에 못 가서 종착지에 멈춘 버스에서 우리 집쪽 아니니까 내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지도 못하고 어떡할지 몰라서 자는 척을 했다가 기사님이 깨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도움 받아서 잘 돌아오긴 했지만. 그 외에도 있다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거에 놀라서 허겁지겁 내려야 할 곳도 아닌 역에서 내려버린다거나 버스카드 찍었는데 잔액이 없어서 지갑 뒤지면서 눈총받거나. 나쁜 기억(흑역사)가 많다...
그래도 저 경험 이후로는 길 찾기를 잘 하는 사람으로 자랐는데 대만 여행을 갔을때 공항에서 타이베이로 이동하는 버스 탈때 1번 게이트 적힌곳에 넣어야 할 여행가방을 2번 게이트라 적힌 곳에 넣어서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다른쪽에 가방을 넣어뒀다고 버스기사와 실랑이를 하는게(은후주 특징 : 0개 국어 구사자임) 흑역사로 남은
지금이야 데이터 가지고 맵을 찾아보고 지도 앱을 찾아보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때 쓰던 걸로는... 지도 앱은 커녕 몇 번 검색만 해도 데이터는 간당간당하고 도저히 지도 앱이며 버스 알림 앱이며 하는 걸 못 깔 만큼 저장공간도 적었거든요. 정말 맨몸으로 모르는 곳에 내던져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 어조는 자조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연애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 방금 거 좀 라임이 좋았어.’
…… 아무튼.
‘연애에 연연, 그걸 위해 받을 상담을 상상. 감정 간질간질 마음은 막막─’
아무튼!!!
“결국 나의 문제를 두고 타인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건 신탁을 받거나 점을 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 그걸 듣고 모든 것을 내맡길 이유도 없지만…… 들어 둠직해. 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신중한 사람이니까,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을 얻고 싶은 거야.”
헝클어 놓은 머리를 가다듬으며, 가디언칩으로 계산을 하고 문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점잔빼는 자세로 길게 목례하고 나서,
그러고보니 지나가듯 흘려들은 얘기론 분위기가 괜찮은 카페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책을 읽곤 싶은데, 어디서 읽을까 고민하던 나는 괜찮은 자리도 찾아볼 겸, 커피도 마셔볼겸 - 잘 알지는 못하지만 - 카페를 찾기로 했다. 소문으로 듣기론 너구리가 요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섬에서야 너구리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이상하진 않지만, 너구리가 만든 커피는 어떤 맛일지 조금 신경쓰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위치는 청월학교와 가깝댔던가? 걸어야 하겠지만, 걷기 싫은 날씨도 아니니 문제는 되지 않겠지.
오늘은 버스킹이 아닌 단순한 독서가 목적이기에, 기타는 매고있지 않다. 작은 가방엔 하모니카와, 공책과, 읽을 책, 필기도구 등 정도. 어느덧 그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몽블랑..."
아무래도 맞게 찾아온 것 같다. 나는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커피향이 맘에 드는 곳이다. 두리번거리다가 카페 메뉴판을 찾은 나는 그곳에 서서 무얼 마실까 고민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커피는 잘 모르는데.
오늘도 평화로운 카페 몽블랑.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기분이다. 손님이 우글 거리진 않아도 꾸준히는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릴리에게 연애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 뒤에 그녀를 보낸 후, 카운터에 앉아 쉬고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와. 잘생겼다.
무심해보이는듯 오똑한 인상이 특출나게 잘생긴 애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저 정도의 외모는 하루 정도인데. 어쨌거나 그는 두리번 거리다가 메뉴판 앞에서 고민에 잠겼다.
요즘 느끼는건데, 메뉴가 너무 많거나 복잡한걸까. 메뉴판 앞에서 고민하는 손님이 부쩍 는걸 느끼는 나는, 직원 회의 때 이에 대해서 상담해야겠다 싶으면서도 그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커피에 대해 조금 찾아보기라도 할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온다. 지금까지 카페에 가본 적이 없는 탓에 커피는 검은 물이다(?)라는 것 밖에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돌아가서 다시 알아본 다음 올까 고민하는 와중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로 와 필요한게 있냐며 물었다.
장발의 금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의 머리. 따스한 인상을 주는 붉은 색의 눈. 키는 나보다 살짝 작은정도지만, 비슷한 정도의.. 여성? 하지만 목소리가 좀 허스키 했는데 말야. 나는 잘 됐다 싶어 미소지으며 점원양에게 몇 걸음 다가가 사람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허락하는 것 보다 살짝 깊은 거리까지 가까이 걸어갔다.
"아 마침 잘됐네. 귀여운 점원씨. 여기 맛있는게 뭔지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커어피에 대해선 문외한이라서 말야."
그렇게 말하며 카페를 한 번 둘러보곤 그녀(그)를 향해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게 주로 보이는 잘 먹혀들어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쉬가! 진화를! 꼬신다!(물론 가쉬주는 진화가 남캐에 연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길! 그저 이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멋지게 생긴 소년은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뭔가 조금 가까운 거리에서 상쾌한 미소를 지어왔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다가, 일단은 손님이니까 마주 상냥히 웃어주는 것이다. 뭐 특별히 무례한 소릴 한 것도 아니고, 화내거나 위협하는게 아니라 상쾌한 미소를 지으니 나도 싫진 않았다.
평소 끼지 않던 장갑의 너머,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구멍이 뚫린 상자의 겉면은, 리본으로 묶으면 된다. 포장지로 상자의 겉면을 한 겹 감아,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상대가, 이미 그 구멍 사이로 내용물을 들여다보았다면, 포장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청년의 입에서 빠져나온 말은,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거나 하는, 이 상황에서 당연히 나와야 할, 그리고 때론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조합은 아니었지만. 장갑 안쪽의 손가락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도 이미 알고 있는 당신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전 언제나 봄을 기다릴 거예요."
키 차이가 제법 나는 남학생 둘이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남이 본다면 꽤 우스울지도 모르는 광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을 품에 안고자 다가온 정훈의 등 뒤로 양손을 돌려 부드러운 회색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당신이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해도, 다시 둘이서 벚꽃을 보러 돌아오리라 믿으며…."
그러니, 두 사람의 생명이, 사랑이, 곧 저물 저 꽃들과는 달리 오래가길 기도하면서.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일순간 불어온 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은후는 미소 지었다. 기어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주 안은 이의 온기를 만끽했다.
//21 글이........ 하나도 안 써져......................................(다시 기절하러 감)
eques_auream: [ ‘정글에 어서 오시길’이라는 게이트를 알아? ] [ 아마 실제로 본 적은 없을 거야. 왜냐면 이 게이트는 환상의 게이트거든. 극소수의 가디언들에게만 표시된다고 하는…… ] [ 이야기는 길어. 아카데미 수석 졸업을 앞둔 어떤 가디언 후보생이 있었는데, 동기 중의 차석과 3석과 사이가 좋아서 항상 함께 게이트를 클로징하고 다녔대. ] [ 그 세 사람은 프로 가디언 못지않은 활약을 하면서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지. ]
[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사람의 가디언칩에 나타나는 의뢰의 수가 줄기 시작했대. ] [ 의뢰의 종류도 소형, 심지어는 안개형 게이트 같은 허접한 의뢰들만 나타나기 시작했고. ] [ 고장인가 싶어 가디언칩 수리점에 찾아가 봐도 이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지. ] [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무리 의뢰를 찾아도, 가디언칩에 계속해서 ‘정글에 어서 오시길’ 게이트의 클로징 의뢰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
[ 그 사실을 삼총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니나다를까 나머지 두 사람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지. ] [ 점점 수입은 줄고, 실적도 줄어들어서 답답해진 그들은 갈등하기 시작했어. ] [ 의뢰를 찾을 때마다 나타나는, ‘정글에 어서 오시길’. ‘정글에 어서 오시길’. ] [ 그건 마치 치명적인 독사에게 물리고 나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찾아왔지. ] [ 가장 초조했던 건 역시 학년 수석인 그 사람이었어. 졸업과 동시에 대형 게이트를 멋지게 클로징하고, 정식 가디언으로 데뷔하면서, 연애 중이었던 차석 가디언 후보생에게 청혼할 계획이었으니까. ]
[ ‘정글에 어서 오시길’, ‘정글에 어서 오시길’. ] [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 그 의뢰는 계속해서 나타났어. ] [ 하지만 동료 가디언들에게 물어봐도 금시초문이라는 듯 모르겠다는 대답만이 돌아왔지. ] [ 게이트 크기는 소형, 의뢰 보상은 0GP. ] [ 삼총사는 소형 게이트를 닫는 싸구려 의뢰만을 반복하며 버텼어. ] [ 하지만, 결국은…… ] [ 피할 수 없었어. ]
[ 삼총사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지. ] [ 결국은, 그깟 소형 게이트 따위 닫아 주겠다고 나선 거야. ] [ 따지고 보면 이 의뢰가 나타나면서부터 실적이 꼬이기 시작한 거니까. ] [ 그래서 세 사람은 게이트에 입장했어. 클로징 조건은 간단했어. 정글에 숨은 두 사람의 광인을 찾아내 처치하는 거야. ] [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진 채 수색을 시작했어. 가장 먼저 학년 수석이 광인을 찾아내었고, 몇 달 동안 실력 발휘를 못 해서 근질근질했던 나머지 곧바로 죽여 버렸지. 그 사실을 통신기로 보고하자 차석의 대답이 들려 왔어. ]
[ 그리고 수석은 뒤이어 다른 한 사람의 광인을 찾아냈어. ] [ 그와 동시에 차석도 광인을 발견했지. ] [ 학년 최고의 인재였던 그는, 소형 게이트만 닫고 다니느라 근질근질했던 나머지, 곧바로 모든 포화를 쏟아부어 광인을 죽였어. ] [ 그리고 그 사실을 통신기로 보고했지만, 이제는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 ] [ 수석은 소중한 연인인 차석에게 통신기를 통해서 이야기했어.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고생은 끝이고, 결혼해서 앞으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 [ 하지만 그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어. ] [ 오직 광기에 가득 찬 자기의 목소리만, 방금 쳐죽인 광인이 지니고 있던 통신기에서 울려퍼지고 있었지. ]
[ 그 게이트는 성공적으로 닫혔어. 왜냐하면, 게이트 속 두 명의 광인을 죽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 [ 게이트 속 광인은, 바로 게이트에 들어간 가디언들이 서로에게 비치는 모습이었던 거야. ] [ 그 학년 수석은 몸이 너무 근질근질했던 나머지, 가디언칩의 망념 리미터를 깨부수고 수천이나 되는 망념을 써 버렸어. 곧바로 망념화가 일어난 그는 게이트 너머의 존재가 되었고. ]
[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는 다행이었을지도 몰라. ] [ 가장 소중한 인간을 죽이고 생존한 이에게, 망각보다 나은 결말이 어디 있을까. ] [ 생각해 봐. ] [ 만약 당신의 가디언칩에 이 의뢰가 나타난다면, 당신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 같아? ] [ ▶ 정글에 어서 오시길. ]
아무리 사소하고 당연한 것이라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거리감을 줄여준다. 단걸 싫어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도 않겠지만,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며 나누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거기에 단걸 좋아한다며 얼굴을 붉히고 말하는 모습... 귀여운 것은 둘째 치고, 이 점원씨도 싫은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확신을 느꼈다.
"귀여운 점원씨 커피에 대해서 잘 아시는구나. 대단해."
카페의 점원인 이상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부분을 분위기에 맞게 칭찬한다. 이런 작은 점 하나 하나가 이런 승부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다.
내가 뒤로 가서 어깨를 잡자 굉장히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쯤 머릿속이 새햐얘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겠지?(아님) 이런 연약(아님)하고 귀여워보이는 아이도 나쁘지 않다.
이어 귓가에 작게 목소리를 속삭이자 그녀(그)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곤 작게 말했다. 캬라멜, 뭐?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걸 표현해선 안 된다.
조금 밀어붙이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단걸 좋아한다며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지은 점이나,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점 등을 봐서 지금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지금이 바로 기회인 것이다...!
"난 우리 귀여운 점원씨가 내려준 커피라면 뭐든 좋아. 아, 미안. 내가 너무 가까웠나? 음~ 혹시 오늘 알바 끝나고 시간 있어? 커피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좀 배우고 싶은데... 오늘 [알바 끝나고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면 놓아줄게. 어때?"
나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어깨를 가볍게 안마 하듯이 지그시 눌러주며 더욱 진화의 귓가에 가까이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는 조금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인 그와 점원이 내가 서로 단걸 좋아한다고 한들, 무슨 연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일단 다행이라고 하니 부정적인 소리는 아니다 싶어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실은 저도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거라서....그렇게 자세하진 않아요."
카페에서 일하기 위해서 급하게 배운 지식들이기 때문에, 그런 칭찬을 들으면 솔직히 부끄럽다....그치만 칭찬 자체에 기분 나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나 나는 더더욱 칭찬에 약한 타입이라, 나도 모르게 헤헤 웃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하긴. 요즘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나름대로 익히기는 했지.
....
그렇게 좋아하던 나였으나, 그가 어깨에 좀 더 힘을 싣고 알바 끝난 뒤에 약속을 잡는 흐름이 되고서야 뭔가 위화감을 눈치챈다. 사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아서 눈치를 못챘지만, 이거....종종 다림이한테 관심을 가진 남자들이 작업걸던 패턴 아닌가? 아니 그렇지만, 나는 엄연한 남자이지 않은가. 같은 남자인 그가, 무슨 연유로 나에게 작업을 건단 말인가?
나는 드물게도 카운터에 앉아서 볼을 부풀리곤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화를 내고 있다고 해야할까. 스스로의 남자 다움을 표출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근엄한 기색으로 있다면 그 누구도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으리라.
"아. 어서와. 하루야."
에릭과 어떤 이야기를 나눈건지, 요 근래 근무하기 시작한 하루를 보면서도 나는 평소처럼 활짝 웃으면서 반기기 보단 마찬가지로 남자 다운(??)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무게감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별 일......있었어."
그녀의 가볍게 꺼내는 근황에....나는 고민하다가도, 이내 하소연 하듯 말을 털어놓았다.
"왠 잘생긴 남자애가......나한테 와서 이것저것 묻거나 맞장구 치길래 성격이 그냥 좋은 줄 알았는데...."
왠지 평소와 다르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화를 발견하곤 의아한 생각을 품던 하루는 무언가 쌓여있던 모양인지 쏟아지는 하소연을 듣곤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다급하게 손으로 틀어막아 멈춰세운다. 한순간 아슬아슬하게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지만, 아마도 반은 성공적으로 웃음을 멈춰세운 것 같았다.
" ....어, 그거 일단 축하부터 할게요. 확실히 진화군이 그만큼 예쁘게 생겼다는거니까. 뭐, 남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잖아요? "
가볍게 박수를 쳐주며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해석해주려는 하루였지만, 하루도 말을 하면 할수록 오묘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애초에 사내인 진화가 예쁘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러모로 생각이 갈리는 부분이었으니까.
" 그래서..음... 단호하게 거절하신건가요? 아니면 차분하게 설득..? "
일단 진화가 누군가와 사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하루였기에, 조심스럽게 물음을 이어간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은 큰일이라 생각하는지 여전히 하루의 손은 자신의 입가를 슬며시 가리고 있었다. 마치 손님들도 진화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새어나온 웃음소리는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내게 불쌍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시점에서 애초에 웃고 있다는건 명백하다....나는 울상이 되어선 그녀에게 따지고 드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면, 나 또한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전혀 축하받을게 아니야! 좋은게 좋은게 아니라구! 나는 남자야! 심지어 여자친구도 있는 남자!"
아예 박수를 치며 말하는 그녀의 위로 아닌 위로에, 나는 결국 방방 점프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잘 생겼다라던가, 멋지다라던가, 미모에 대한 칭찬은 대체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귀엽다는 명목으로 남자에게 유혹 당한 내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뭐?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를 자르던가 핑크색 가디건 같은걸 입지 말라고? 내가 왜! 세간의 편견 때문에 어째서!!
".........."
따라서 나는 어떻게 대응했냐는 그녀의 질문에도, 입술을 삐죽 내밀곤 턱을 괸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침묵으로 응대하는 것이다.
입술을 삐죽 내밀곤 턱을 괸 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루는 슬그머니 목을 가다듬더니 진화의 시선이 움직인 쪽으로 몸을 옮겨선 장난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린다. 그런 하루의 움직임에 맞춰, 양갈래로 묶은 새하얀 머리카락이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진화군, 진화군. 잠깐만 제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실래요?"
살짝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낮춘 하루가 진화가 턱을 괸 테이블에 살며시 손을 올려두곤 얼굴을 올려둔 뒤 미소를 띈 체 입을 연다.
"제가 웃을 수 밖에 없던 건.. 진화군이 많이 변한게 느껴져서 그래요. 제가 처음 진화군을 봤을 때랑은 많이 달라져서요. "
하루는 상냥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간다. 친구가 이렇게 뾰루퉁해지게 내버려두고 일을 하더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테니까. 기왕이면 다시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은 하루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저한테 분통을 터트리면서 말을 하는 진화군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었단 말이에요. 이것도 성학교에서의 생활이, 그리고 여자친구 분이 만들어준 변화겠죠? " " 물론 여자로 오해받는 것이 꽤나 자존심이 상하실 부분이라는 것도 알지만, 제가 아는 진화군은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워리어니까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세요. 네? "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남에게 가르쳐주며 배우는 법이니까. 난 우리 귀여운 점원씨한테서 배우고-? 우리 귀여운 점원씨는 나한테 가르쳐주면서 더욱 익숙해지고. 일명 win-win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우리."
칭찬에 수줍게 웃는 모습까지, 마음 속의 가학심과 욕망을 자극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누가 가슴을 나뭇가지로 콕콕 찌르는, 그다지 날카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로 가슴을 쿡쿡 찌르는 그런 기분이 든다. 죄책감? 왜? 귀여운 여자아이 꼬시는거야 평소의 일인데.
분위기가 무르익고 그녀(그)에게서 대답을 기다렸다. - 사실 난 여기서 확신하고 있었다.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네...하고 -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네...하고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네...하고
가 아니라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네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여자' 로 생각하고 작업 거는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걸 눈치채곤 있었단 말인가? 그러니까, 작업을 걸리는 상대는 자기가 작업 걸리고 있는 것도 보통은 깨닫지 못하고 넘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다. 일단은 자각했다는 것이군.
"어... 들켰네. 맞아. 나 우리 귀여운 점원씨한테 작업 거는거야. 들켰으니 어쩔 수 없지만... 어때. 그다지 나쁜 제의는 아니잖아? 나 나쁜 사람 아니라구. 그냥 같이 얘기 하고, 식사도 하고, 놀고. 어때?"
여자로 보고 작업 거는게 당연하지 않나. 혹시, 별로 자신감이 없는 타입인걸까? 자신이 타인에게 여자로 보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그렇다면 이 기회에 자신감과 함께 여러가지 경험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앗, 흠....하루주, 가쉬주. 아까 질문에서부터 조금 생각해봤는데 이러면 다음 진화랑 가쉬 답레로 먼저 이쪽 일상을 마무리 하고 돌리는게 어떨까요? 저기서 가쉬를 쫓아내는걸로 일단 마무리 한다음에, 가쉬랑은 조금 쉬었다가 다른 시간에서 시작하는게 서로 덜 헷갈릴 것 같은데.
688넘... 넘 졸림... 데박... 상태의 은후(8쨜) - 방금 일어난 가쉬(7쨜)
(eb1BP.Avk.)
2021-07-17 (파란날) 21:43:01
불행하게도, 예민한 의념 각성자의 신경은, 가쉬가 오랫동안 생각에 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이불이 움직이며 낸 부스럭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을 뜬 아이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잠깐 생각하며 한 눈으로 푸른 눈을 비비다- 가쉬와 눈이 마주쳤다.
"이…. 이…!"
노여움인지, 안도일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은후는 오른쪽 팔을 쭉 뻗어, 소년의 볼을 잡아당기려고 시도하며 외쳤다.
"바보바보야!!!"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이런 말은 전혀 필요 없었다. 바보라는 말 하나로 충분하니까. 뭐가 그리 분했는지, 그렇게 말하고서도 한참을 눈물 맺힌 눈으로 가쉬를 바라보며 씩 거리던 아이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아까 일어난 반동으로, 의자가 넘어지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좀 어때? 아직도 아파?"
순순히 대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신나서 얘기하는 그를 보며, 나는 죽은 눈동자로 웃었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 밖에 안나온다던데, 그 말 은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귀엽다던가, 여자애 같다던가, 솔직히 그런 얘기는 신물날 정도로 들었다. 진지하게 여자 취급을 받은 적도 사실 적지 않다. 그러나....그렇다곤 해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진지하게 남자에게 꼬셔질 정도란 말인가, 나는.....
상대는 이런 나의 기색에 조금의 위화감을 느낄 뿐, 가장 큰 위화감. 그러니까 꼬시고 있는 상대의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만큼은 죽어도 눈치를 못채겠는지, 뭐라 뭐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날 여자애라고 생각한다는 가정 하에 귀엽다 귀엽다 연호하는걸 보니 상당한 플레이 보이인가보다. 솔직하게 고백할까. 내가 평범한 여자애였으면 조금 정도는 두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손님. 제 이름은 유 진화라고 해요. 성 아프란시아에 다니고 있고..."
나에게 관심이 아주 많아보이는 그에게, 최소한의 예의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깨에 올려진 손을 조심스럽게, 부드럽고 갸냘펴서 망할 여자로 보이는 내 손으로 붙잡곤, 조금의 화풀이를 담아 신체 A 와 건강 S 에 빛나는 스테이더스로 으스러지게 붙잡은 후. 상대가 놀라 근육이 경련하려는 순간에, 팔꿈치로 뒤에 달라붙어있던 명치를 짧게 퍽 후려쳤다.
"나는.....나는......"
그리곤 그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는 장식용으로 놓아둔 거대한 방패를 집고는.....높게 들어올리며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한, 새빨개진 얼굴로, 빼액 소리치는 것이다.
"나는 남자야 - !!! 남자 - !!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아아아아 - !!!"
이라고 말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손을 잡았다. 벌써 손부터 잡자고? 보기완 다르게 솔직하고 엉큼한 아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잡은 손이 점점 강해진다. "어, 조금. 아픈.. 아야.." 점점 힘이 강해지더니 그것은 수줍은 애정에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의지가 느껴져 왔다. 신체C, B, A 상승합니다! 마치 눈 앞의 적이 엄청난 파워업을 하는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면서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명치를 향해 정면으로 스트레이트가 '퍼억' 소리를 내며, 박혀왔다.
"커헉."
분명 어디에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터인데. 나는 그대로 깔끔한 클린히트를 당하며 침을 토해냈다. 내가 격투D가 아니었다면 죽..진 않더라도 피를 토해낼 법한 깔끔하고 강력한 펀치였다. 아직 머릿속이 눈 앞의 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눈 앞의.. 귀여운.. 아니는.. 갑자기 장식용의 거대한 방패를 들더니
"나는 남자야 - !!! 남자 - !!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아아아아 - !!!"
몸이 으스러지는 격통과 동시에 자신이 남자라고 외치는 괴리감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그저 머리 위로 '???' 를 띄우며 쳐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남자라고? 그러니까, 저 아이가?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남자아일리가 없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먹은거냐! 아니 그것보다 아파! 방패 아파! X나 쎄잖아!
안되겠다. 지금 이 상태에선 죽도 밥도 되기도 전에 내가 시체가 되겠어. 나는 그대로 허둥지둥 꼬리를 말고 카페에서 도망쳐 나왔다. 다시는 가나 봐라 저 카페! 나는 카페에서 나온 뒤에도 날 죽이려 결심하고 따라오지 않을까 두려워 한동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힐끔 힐끔, 나는 토라진 기색으로 하루가 무슨 얘길 하나 계속 들었다. 그녀는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달랠려고 애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징징거리는 아이를 대하는 듯한 어머니 같아서 모성을 느끼게 하는....
....아니 잠깐, 내가 연상일텐데 왜 아이 달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거야? 아까는 여자애 취급을 받고, 이번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뭐랄까 이건 이거대로 정말이지 묘한....묘한 분위기다. 그러나 아까에 비해 정말 교묘하게 설계 되어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고, 그 내용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화낼 건덕지는 조금도 없어! 화내고 싶지도 않다.
결국 이 흐름에서 아이취급을 벗어나기 위해선, 어른스럽게. 요컨데 화낸 기색을 풀고 정상적으로 그녀를 대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게 다 계산된 행동이라면 실로 무서운 화법이다. 괜히 마성의 여자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카사가 이런식으로 계속 넘어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카사는 눈치조차 못 챘을 것이다...
"그래....알았어. 알았어. 화 안낼테니까."
일단 나는 부동일태세(ver. 삐짐) 을 해제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아까 대답을 피했던 화제로 돌아가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말했다.
눈 앞의 소년의 이유 없는 배려에 스스로 죽을 날을 기다리는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왔던 벽이 무너져 내려감을 느꼈다. 7살의 아이가 벽을 만든다면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정도, 였던 것이다. 스스로도 더이상 밀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옆의 소년이 계속 재잘대며 무얼 말하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와 같이 귀가 점점 멍해지며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잃을 것 같은게 아닌,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소년은 느꼈다.
은후는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며 가쉬에게 말해주다,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접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손을 잡아주자, 아직 7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은.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웃지도, 울지도, 찡그리지도 않던 소년이 눈물을 터트렸다. 스스로 흙을 쌓아 올렸던 댐이, 어떻게 쌓아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감정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쌓아올렸던 담이 더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소년은 그저 종이를 쥐어주려던 은후의 손을 잡고 그저 꺼이꺼이 눈물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꼭꼭 감춰두었던 부분까지 전부. 가쉬는 은후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한동안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슬픔을 부정할까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건이라고 치부해버릴까봐, 더 상처받을까봐 두려웠던 그 모든 감정을 감춰두고 미뤄두었던 만큼 벌을 받듯이. 그것이 모두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리듯이.
오케이, 진화군도 이걸로 넘어가주는 모양이에요. 하루는 마음속으로 기쁜 미소를 지어보였고, 겉으로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기쁜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악의가 없는 말은 삐져버린 사람의 마음도 녹여버리는 모양이에요, 하는 아주 좋은 경험을 한번 더 마음 속에 새겨넣은 하루는 입을 열어 대답을 이어나간다.
" 다행이에요, 진화군 기분이 풀린 것 같아서. 기분 망치려고 했던 말은 아니니까요 . "
친구랑 싸우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하루는 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시 친구랑 대판 싸우는 것은 에릭의 일로 족하다는 생각이 강해진 하루였다. 물론 또 그럴 일이 있다면 그렇게 움직이겠지만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 .... 그건 되게 의외네요. 진화군이 때릴 줄은 몰랐어요. "
방패로 때려서 쫓아냈다는 말을 들은 하루는 놀란 듯 눈이 커진다. 확실히 진화가 누구를 때렸단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 그... 뭔가 그 분이 좀 더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던 모양이네요... 진화군이 폭력을 쓸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는건데.. 그렇게 충격이 크셨구나.."
급 아련해진 눈으로 잠시 진화를 바라보던 하루는 이내 다독이는 듯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여준다.
" 그래도 그렇게 쫓겨난 후에 뭔가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거 보면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네요, 그쵸? 뭐.. 기억엔 오래오래 남아버리겠지만.. "
좋아, 바보가 깬 것도 봤으니까 이것만 손에 쥐여주고 집에 가야지- 하던 은후의 다짐은, (그로선) 갑작스러운 가쉬의 울음에 그만 저편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어, 어…."
왜 우는 거냐고, 말을 하려던 찰나에 이어지던 말에,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지만.
"내가 미안해…. 응…?"
그러니까, 그만 울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로. 자기 손을 잡은 소년의 손은, 힘이 별로 들어가 있지 않아, 쉽게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은후는 그저 눈물을 흘리는 소년을 보고, 당황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잡히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 어깨나 등을 두드려주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단지 운이 좋아서, 게이트의 마수에서 부모님을 잃었지만 혼자서는 살아남은 소년과, 단지 운이 좋아서, 게이트의 마수에서 자식을 지켜낼 수 있는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공중인사도 대단합니다.. 착 착지하는 것에 살짝 흔들리지만 별 문제 없이 균형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다가 서포터니까요 라는 말에 엣.. 하면서..
"서포터라서 신체능력이 약하다기보다는..." 반박을 시도하려 해보지만 음. 서포터라서를 빼면 다림이 원래 연약해서or뭘 못먹고 다녀서or스테이터스 분배가 망해서 같은 게 되어야 하므로 말을 못 잇고는 침묵을 유지합니다.
"그..그.... 저번에는 죄송했어요." 그래서 화제를 돌리려 합니까? 저번에 싸우게 된 일을 사과하려 합니다. 그래도 어쩐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편한 느낌입니다. 뭐라고 해야하지. 언제나 밝은 것 같은..? 물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보이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니까요.
"으... 서..서포터라도 자..잠재치는 높다고 들었는걸요.."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마지막으로(애초에 그 잠재치 만큼 스테이터스를 올릴 수 있을까가 문제 아닐까?) 그것에 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 제가 티아라를 쓰고 전투를 한 거요..." 뭐가요? 라고 되물어질 줄 몰랐는지 잠깐 어물어물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피해를 입힌..(따지고 보면 지배당해서 아군오사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것인 만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다른 여러 분들에게도 사과를 하러 다녔던 것이지..
"그래서.. 요즘.. 사과를 하려 노력중이에요." 성현 씨도 도움을 주셨고요.. 라고 하면서 음료수 드실래요? 라고 물어봅니다.
나는 떠나가는 그를 보며 쫓아가서 더 때릴까 싶다가도, 이내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에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프란시아.....같은 학교....나중에 학교에 알아보고 찾아가던가 해야될까. 자세히 생각해보니, 우리 학교에 유별나게 정신나간....아니, 독특한 신입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외모가 굉장히 뛰어난 남학생이라고 한거 보면.....혹시.....
"에휴!!"
나는 결국 속상한 마음에 가슴팍을 두들기며, 후배일 가능성이 높은 그 녀석과의 재회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그녀는 착한 아이고......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음이 여리다. 진심으로 화를 낼 만한 일이 아닌 이상엔, 괜한 것으로 마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어쨌거나 그 정도 노력이면 더 화낼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아이취급 받고 있는 기분은 든다만....아마 그녀의 본의는 아닐 것이다.
"....그, 그러네. 생각해보면 나 답진 않았네."
누군가를 울분에 차서 전력으로 방패로 때린건, -에- 이후로 처음이다. 나 치곤 정말이지 드문일이 아닐까. 굳이 비유하자면 토끼가 분노해서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 것과 흡사한 상황이니.
"아....그게....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알바 끝나고 시간 있냐고.....좋은 시간 같이 보내자던가....그런 얘기 하더라고."
말하고 보니 또 기가 차서, 나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듣기론 같은 학교 애랬는데....솔직히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얼굴은 진짜 잘생긴 편이었어...."
잠깐, 오해하지 마라.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던거지, 마치 로맨스물의 싸가지 없는 남주인공을 대하는 왈가닥 여주인공의 평가 같은 것이 아니니까.
상점가 입구 근처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그림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아가지고 원래라면 제노시아 미술부 동아리에 걸려 있으니 그거 보라구~ 하겠지만, 타학교. 거기다 다른 모든 그림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실시간 관람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 지금은 기다리는 중인데 꽤 지루하네... 두리번... 의념으로 의자를 구현해내 거기에 앉아서 가디언칩을 조작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신이 가져온 그림은 액자 안에 소중히 넣고 그 액자를 또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구현해 거기에 넣어서 이중 포장!! 내 소중한 그림..
"빨리 전시공간 늘어나면 좋겠다...."
돈인가... 돈으로 사야 하나... 학원도에서 부지 하나를 구매한 다음 거길 내 그림으로 채운다라던가.. 키키.. 상상만해도 좋군.. 하지만 내 그림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기다리기 지루하네.."
...잠깐 멍 때리다가 심심해서 가디언 칩으로 애니메이션을 관람... 교묘한 각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건 필수~
성현이와 청천이와 의뢰를 가기로 약속한 나는, 상점가 입구 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테베로스의 장화를 구매하고 나선 기분 좋게 쫑쫑 거리며 장소로 향하던 나는....입구에 한번 낯익은 소년이 그림을 걸어놓고는 앉아있는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와. 길거리 전시회인가? 솔직히 얘기만 들었지 그의 작품은 본적 없는 터라, 나는 흥미를 잔뜩 품고선 쫑쫑 걸음으로 다가가 아는체를 했던 것이다.
"안녕! 전시회라도 하는 중이야?"
그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옆에 있는 그림으로 시선이 흘끔 흘끔 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화현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라면, 자신의 특색을 작품에 담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을 관람하는게 어쩌면 그를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싶어서, 나는 눈빛이 반짝이는 상태였다.
성현이와 청천이와 의뢰를 가기로 약속한 나는, 상점가 입구 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테베로스의 장화를 구매하고 나선 기분 좋게 쫑쫑 거리며 장소로 향하던 나는....입구에 한번 낯익은 소년이 그림을 걸어놓고는 앉아있는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와. 길거리 전시회인가? 솔직히 얘기만 들었지 그의 작품은 본적 없는 터라, 나는 흥미를 잔뜩 품고선 쫑쫑 걸음으로 다가가 아는체를 했던 것이다.
"안녕! 전시회라도 하는 중이야?"
그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옆에 있는 그림으로 시선이 흘끔 흘끔 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화현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라면, 자신의 특색을 작품에 담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을 관람하는게 어쩌면 그를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싶어서, 나는 눈빛이 반짝이는 상태였다.
슬그머니 진화의 말에 가벼운 태클을 걸 듯, 하루의 대답이 돌아왔지만 활짝 웃고 있는 표정을 본 진화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했다면 미안하다는 듯 장난기가 섞인 미소를 지어보였겠지만.
" 굉장히 진화군 답진 않았죠. 진화군이 방패로 누굴 때린다는건... 에릭 정도 밖엔 상상이 안 되어서. "
점장님이지만, 점장님이기 때문에 바로 떠오를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아마도 그의 잠시 삐뚫어졌던 생각 탓에 일어난 일이 있어서, 아예 머리속에선 지워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 방금 되게 소설 속 여주인공이 할만한 대사였어요, 진화군... "
한순간 진화의 모습에 꽤나 여주인공 같았던 것은 분명 하루만이 아니라,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그대로 느꼈을 감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진화가 들은 말들이 꽤나 재밌어 보였는지 양갈래로 묶고 있던 머리를 잽싸게 깔끔하게 똥머리로 말아서 묶는다. 왠지 남장을 한 듯 깔끔한 모양새가 된 하루가 슬며시 몸을 기울여 진화에게 가까이 한다.
" 알바 끝나고 시간 좀 있어요, 진화군? 좋은 시간 보내고 싶은데... 시간 있으면 제게 조금만 나눠주시겠어요? "
하루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대담하게 진화에게 작업을 건 사람을 흉내내며 상큼한 윙크를 더해보는 하루였다.
음... 청천 씨, 꽤 늦네... 한숨... 지루해서인지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군것질 거리를 사왔다. 막대 사탕이라던가 막대과자 같은 것. 그것을 먹으며 멍 때리다가 자신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 눈을 움직였다. 저 사람은... 그.. 누구였지.. .이름이.. 그래, 그래, 진화. 진화 씨구나. 뭐.. 괜찮겠지. 아는 사람이니까. 조금은 껄끄럽지만,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전시회는 아니고... 누가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 기다리는 겸 해서 이러는 거예요."
그녀의 짗궃은 캐묻기에 나는 결국 얼굴을 밝히곤, 손으로 눈가를 가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 했다. 이상하다. 나도 바뀌었단 느낌은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땐 하루도 그렇지 않은가?
".....솔직하게 그렇네. 에릭 이후로 사람을 이렇게 때려본건 처음이야."
이것도 어느 의미론 친밀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에게도 나에게도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특별한 관계' 가 되는 데에는 성공 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고 보면 이름조차도 못 들었다.....짐작 가는 녀석은 있는데. 조사라도 해볼까....
"시끄러워...."
스스로가 여기고 있는 감상을 정확하게 찔러들어오는 하루에게, 나는 고개를 돌리곤 툴툴 거렸다. 역시......라고 무언가 말하려고 고개를 되돌려 그녀를 바라보려던 찰나, 갑자기 머리 모양을 바꿔서 작업을 거는 그녀를 눈을 크게 뜨곤 깜빡 거리면서 바라보았다. 우왓. 엄청나게 의외.....잠깐 할 말이 없어서 벙쪄있다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곤 답한다.
"내가 달라졌다고 얘기했는데....그렇게 따지면 하루도 꽤 달라진거 아니야?"
전이었으면 이런 농담은 안했을 것 같다. 좋게도 나쁘게도 장난기가 늘었달까, 요망해졌달까....마찬가지로 연애의 영향일까.
"고마운 걸까요.." 그렇게 여기신다면 그럴 뿐이겠네요. 라고 답하면서 캔을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마셔버려서 그런가? 다행이라는 말에 성현 씨도 건강하세요. 라고 답합니다. 건강.. 하지 않는다면 이상해보이는 것이긴 해도 이정도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편이 아니라 같은 쪽에서라면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합니다. 사실 성현 씨 주먹에 맞으면 짜부될 것 같았단 감상은 말하지 말자... 물론 권역쟁탈전에서 만나면.. 어.. 일단 미래의 일은 그만두고!
"저는 고양이 조금 보러 온 거라 곧 학교로 가야 할 건데요." 성현 씨는 뭐 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봅니다.
싱글벙글 웃는 그녀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리 말했다. 물론 솔직하게 정말 싫은 것은 아니었다. 놀림거리가 되는 것도, 친한 사람에게서라면 그럭저럭 즐거운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날 놀리는 그녀는 요 근래 봤던 모습 중에선 특히나 즐거워 보여서, 그녀를 친구로써 소중히 여기는 나로썬 따라 웃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게 아니야! 애초에 연인 있다구!"
심지어 이렇게 굴게 만든게 처음인 것도 아니다. 처음은 에릭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무엇보다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이런일로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면 그건 순정 만화가 아니라 이미 질척한 어른의 드라마지 않은가. 시청률은 확보될지 몰라도 현실에선 그런건 사양이다.
"음....그렇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어떻게 지내?"
나는 고개를 기울이면서 그녀의 근황을 물어봤다. 그러고 보면 일하면서 종종 마주치긴 해도, 그 외에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겪었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녀에게 변화를 주었던 것일지, 개인적으론 흥미가 있었다.
"....참고로 그 애는 나한테 손을 강하게 잡힌 후에 명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방패로 두들겨 맞았어."
장난스럽게 웃는 하루에게, 나는 웃으면서도 어깨를 으쓱이곤 그 때의 호신술(?)에 대해서 말해준다. 조심하라는 경고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뭘 해도 그녀에게 손댈 생각은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놀랐다. 그가 알면 괘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심 '얼마나 잘그리는지 한번 보자!' 라는 감정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본 그림은, 말 그대로 장인의 작품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서로를 좋아하고 위하면서도 아직 솔직하게 이어지지 않은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 관계가....그림속에 완벽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보러올 걸.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그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어째 아는 사람 같은데...."
....장인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아무리 봐도 내 근처에 있는 커플인 에릭 하르트만과 하나미치야 이카나씨를 떠올리게 해서,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너무나도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인 탓에, 근처에서 가장 비슷한 커플을 연상해서 보게 만드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기엔, 너무 생생하게 그 둘의 광경이 그려지는 것만 같은데......
"아, 고마워."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림을 보면서도, 그가 건낸 사탕을 고맙다고 대답한 뒤 받아서 입에 물었다. 새콤달콤한게 꽤나 맛있다.
하루는 너무 짓궂게 굴지는 않겠다는 듯 상냥하게 대답한다. 장난도 정도를 넘어서면 기분이 나빠지는 법이니까, 그리 많이 할 생각은 없었다.
" 아하하, 알죠, 알죠. 그런데 정말 궁금하네요. 우리 진화군이 사귀는 사람 말이에요. "
진화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 하루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몇번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역시 누군지 들은 적이 없기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하루였다. 혹여 진화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사람이라면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물론 진화가 그런 것도 걸러내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친구로서의 걱정이었다.
"그렇게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 있고... 누군가와 비슷해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애매모호한 답변. 휴우... 위험해... 진짜 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면 꽤 위험해질지도 몰라. 네놈!! 하면서 검으로 날 죽이려고 할지도 호들호들 연약한 서포타는 무서운 거시와요. 이럴때는 빠르세 화제를 돌려야 하지. 그림을 무서운 속도로 통에 집에넣고, 다음 그림을 꺼낸다. 이번에는 나의 영웅의 형상 시리즈. 태양왕 게이트에서 본 것을 그려서 형상 시리즈를 갱신할 예정이었지만... 너무 오래 됐어...
"이것은 제가 본 것을 그린 거예요. 솔직히.. 이걸 처음 봤을 때... 진짜 끝내줬어요. 제가 원하는 그 느낌, 그 분위기... 최악의 상황에서 등장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모두를 살리고 꺼져버린 불꽃처럼 사라져버린 그...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그 풍경을... 그 광경을... 히히. 태양왕때에도 꽤 좋았지... 게이트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은 건 안 좋았지만. 아무튼, 이 그림을 보면 뭔갈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진화 씨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금 사귀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내비치자, 나는 얼굴을 붉히고 볼을 긁적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가 카사랑 사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번 부끄럽다고 거절한 이유, 한번 더 한사코 거절하려니까 어쩐지 그녀를 신뢰하지 못하고 따돌리는 듯한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결국 말하고 만 것이다. 사실 최근 청천이에겐 밝혔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청천이에겐 말해줬으나 자신에겐 철저히 비밀로 한다면, 상처받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엑. 검술? 하루는 치료사 아니었어?"
평범하게 들리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의외의 말이 나왔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하루는 어딜봐도 치료에 철저히 집중한, 뭐라고 할까. 전형적인 메딕이었는데. 검술을 배웠다니.......정말 의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걸까? 싶어서 나는 놀란 얼굴로 하루를 봤다.
"그렇게 말해주면 기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있진 않았으면 좋겠네.......그리고 변화라. 그러고 보면 아까전 양갈래 머리는 확실히 귀여워서 좋았다고 생각해."
매력은 연인에게 어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더불어 동성에게 어필되어도 곤란해. 진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까전 양갈래 머리를 한 하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평소엔 조금 어른스럽다는 이미지인데, 어쩐지 그렇게 하고 귀여운 복장을 입어도 어울린다. 사실 아마 뭘 해도 어울릴 것이다. 미모란 최고의 옷걸이니까.
에릭 아니야? 라고 말하려던 나는 그의 재빠른 말에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예술의 장인이 담은 의도는 그러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예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왈가부가 하는 것은 멋이 없다. 일단 감탄하기로 했다. 이 그림을 본 것만으로도 여심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들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헤에.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네."
그게 그가 바라는 영웅의 상인가. 하긴 지난번에도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 등장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모두를 살린 뒤에 사라진 인물.....인가. 하긴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영웅이라 불려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좀 더 흥미로운 눈으로 그림을 지켜본다. 보지만.....으음. 뭐라고 해야할까. 분명히 멋진 그림인 것은 확실했지만, 나에게 확 꽂히는....그런 무언가는 없었다. 그 때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는 영웅의 상과는 달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감탄은 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거 에릭 아니야?"
거기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이, 아까전에 연인들의 그림에서부터 이어져서, 나는 고개를 기울이곤 나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 춘심 언니요...!? 정말...!? 춘심 언니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 사람이 진화군이었구나...!? "
하루는 얼굴을 붉히고 답하는 진화의 대답을 듣곤 한순간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굳은 체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곤 몇초간의 뇌내 정리 시간을 갖은 후에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어렴풋이 설마설마 하고 있던 것이 이렇게 완전히 이어지게 되자 놀랍기 그지 없는 하루였다. 춘심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진화였다니, 이제야 완전히 수긍하는 하루였다.
" ..뭐어, 누군가를 지키는 검술이니까 랜스 같은 것이 되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 몸이나 동료 정도는 아주 급할 때에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
하루는 놀라는 진화에게, 그리 놀란 건 없다는 듯 상냥하게 대답을 돌려준다. 진화도 그렇고, 에릭도, 지훈도, 카사도... 하나같이 앞에 서서 다쳐나가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싫었기에 익힌 검술이었다. 물론 본분을 다하다 어쩔 수 없을 때에 쓰게될 기술이겠지만, 분명 도움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하루였다.
" 아하하, 자주 있으면 곤란하긴 하겠네요. 그래도 그럴 때는 깔끔하게 '저 남자입니다' 하고 바로 말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 그리고 귀엽다니 고마워요, 그런 말 들으려고 양갈래로 한거니까 보람있네요. 후후. 나중에 춘심 언니도 해줘야지. "
하루는 진화의 말에 고맙다는 듯 방긋 웃어보이다, 씨익 웃고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윙크를 해보인다.
잠깐의 침묵. 흠,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으려나... 이래뵈도 영성은 높다! ...나름. 일단은.. 맞긴 맞지? 하지만... 이건 그.. 가능성을... 끌어온 거니까... 이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의 영역 아닐까? 마치,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정의할 수 있는 관측의 영역이지. 즉... 이거야 말로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하지만 이건 방금 써먹었지 음...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이 많다.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에 말하자면 현재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 분명!
"아니요.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이 부분 잘 보세요. 비슷한 부분이라곤 여기 밖에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