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념을 발동할 때마다, 붉게 물든 시선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실 같은 진리의 설계도. 정신의 각성 상태가 풀리고 나면 그것이 물에 담근 솜사탕처럼 사라져 버리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보았다. 아직도 재현은 실패 중이다. 의념의 도움을 빌어서 복제약을 만들어내는 데 급급하고 있을 뿐이다. 실패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정도이지만…… 그런 걸 밝힌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겠는가.
“…… 헤, 헤헹! 그렇지.”
무엇보다 칭찬을 듣는 게 더 좋으니까 지금은 넘어가기로 했다.
한 차례 보았던 완성품의 편린을 얼빠지게 쫓아 다니는 꼴이 꼭 책 속의 남자와 똑같구나, 하고 릴리는 스스로 생각한다. 남자의 모습을 연금술사인 자신의 메타포로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릴리가 찾고 있는 것은 철학자의 돌의 조제법이었다. 책을 읽고 얼빠진 자기 모습을 재확인한다고 해도 그다지 도움 될 것은 없다.
‘더구나…… 이 남자에게는 『사랑』이 모자라.’
집중하는 입이 가만히 우물거린다. 영락없이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다.
“후훙. 겪어 보고 나면 알겠지, 영원한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불사란 것은 세계를 지배한 대왕들부터 진흙을 파고 사는 빈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더구나 언제나 목숨이 위험한 전장에서 살아가는 가디언이라면 충분히 원할 만한 것이었지만…… 의외로 릴리 본인도 그렇게까지 ‘오래 살기’라는 세속적인 욕망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그 눈동자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정한 욕구란 무엇일까. 손가락이 책장 모서리를 사뿐히 짚고 부드럽게 쪽을 넘긴다. 눈 앞의 이야기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릴리는 옅게 웃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그렇지. 그래서, 나도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어.”
채근하는 그의 재촉에 따라 책장을 다시 넘겼다. 확실히, 지금은 그의 말이 더욱 현명했다.
책 속의 남자는 계속해서 여행을 다녔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진리를 캐내느라 고심하지 않는 릴리의 눈은 책의 내용을 담으며 반짝거렸다. 본래 독서가는 이런 종족이라는 듯이, 깊게, 깊게 책에 빠져든다.
나의 칭찬을 들은 작은 소녀는 콧대를 높이며 자랑스러워 했다. 칭찬하면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구만. 귀여운 구석이 많은 아이다. 어느새 서로 책을 읽는 타이밍에 익숙해진 것일까, 그녀는 절묘하게 내가 다 읽은 타이밍에 책을 넘겨주었다. 이것도 연금술? 아니, 관계 없겠지.
"난 겪고싶지 않은걸. 영원한 삶 따위."
나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연히 내가 무슨 영원한 삶에 대해 알고 있으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영원한 삶을 갈구하고, 영원을 손에 넣었지만, 그와 동시에 영원한 고독에 빠졌다는 이야기. 그것 때문이지 나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연금술로서의 성과로서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는, 내가 알리가 없지. 하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은 책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이야기에 빠져들기로 했다.
책 속의 남자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곳,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며 어느새 꿈 속의 그녀를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된 그는 자신이 그린 그녀의 그림을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물었다.
꿈 속의 여자를 찾기보단,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다고 말하는 쪽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기 쉽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여동생을 찾는다며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도중, 동일 인물은 아닐지 몰라도 비슷하게 생긴 여성을 보았다는 사람과 만난 것이었다. 설산 너머의 작은 마을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채비를 마치고 설산을 향했다. 눈보라는 그를 밀어내고, 깊게 쌓인 눈은 다리를 끌어당기는 늪처럼 그의 발걸음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히 꿈 속의 여성을 찾는, 그것을 넘어, 어느새 이 여행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순례길이 된 것이었다.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남성의 필사적인 마음 만큼은 어딘가 내 마음 속에 와닿은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나는 가슴 속으로부터 진심으로 이 남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부디, 이대로 설산에서 쓰러지거나 하는 가슴 아픈 결말은 아니길.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몸을 완전히 그녀가 쥔 책 쪽으로 기울여 이젠 문장이 아닌 눈 앞에서 재현되는 영화와도 같은 장면을 계속 좇고 있었다.
그 외에 릴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쩐지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꺼낼 수 없었던 것이거나.
책에 잔뜩 몰입한 것은 릴리도 마찬가지였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글자를 읽는 데 깊이 빠져서 주위에 오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이 책장에만 시선을 딱 고정한 채 쪽을 넘기고 있었다. 옆머리가 흘러내리자 귀 뒤로 보내 놓고, 점점 결말로 향해 가는 이야기를 뚫어져라 읽는다.
모든 이야기는 무언가를 화소로 삼은 직물이고 무언가를 상징하는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꼭 연금술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담 남자의 여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남자의 성공은, 또는 실패는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등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등대지기처럼 릴리는 멀찍이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설산에 오른다.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아아…….”
릴리는 짧은 소리를 내뱉었다. 결말을 직감하기라도 한 듯이.
호흡을 가다듬고 책장을 넘겼다. 소리가 나지 않게 침을 삼키고 위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옆에 앉은 이의 몸이 이쪽으로 와 있는 것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의 릴리는, 그저, 다음 내용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