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퀘스트(제한, 주의사항 확인 필수): https://www.evernote.com/shard/s662/sh/59db09c1-abb9-4df4-a670-52dd26f63be6/49de0535f7f231ed9b12ba175272cf44
10. 웹박수: https://forms.gle/mss4JWR9VV2ZFqe16
situplay>1596260248>228 17일 00시까지 진행되는 미니이벤트 입니다!
' 건 이 개XX야!!!!!! ' ' 와!!!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곤이 쫓아온다아아!!!! ' ' 저렇게 꾸며지는 건데 취향이 다르면 화를 내는 것도.. 역시 인간은 귀엽구나, 하게 돼! ' ' ...... 사감 중에 정상인은 왜 찾기 힘든거죠...? ' '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쩌나. '
지금껏 소중하게 여긴 것을 버린 적은 없었다. 세월이 무색하게 떠나보낸 것이 있다면 모를까, 그가 직접 너는 여기서 자유를 찾아 나가라 한 적은 없었다. 타니아는 의지를 존중해 떠나보냈으니 예외였다. 당신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흐. 그는 간지러운지 눈을 감고 움찔 떨었다. 더운 숨결이 닿았기 때문이다. 몸이 움츠러들고 가늘게 눈이 뜨였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 하는 걸까. 괜히 얄미운 느낌이 들었다.
"보기보다 짓궂구나."
다리로 허리를 꽉 안고 당신을 끌어안았다. 잔망스럽게 행동했던 당신에 대한 작은 복수다. 품속에서 볼을 가볍게 부빈 뒤 고개를 든다. 울혈의 흔적과 여운이 느껴진다. 당신의 제안에 그는 마치 친애를 표현하는 고양이처럼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당신이 가진 것이 없어 다행이다. 타인의 온기는 여전히 소름이 끼치지만 당신의 온기가 닿는 상황은 환영이다. 작은 욕망이 고개를 내밀고 불쑥 튀어나왔지만 그는 잠시 대답을 고려하다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는 입가에서 시작돼 천천히 온 얼굴로 퍼진다.
"내 어찌 거부하겠니, 아가."
작게 웃고 레이스를 매만지는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당신은 현재 있는 것을 얘기했지만 그에게는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여러 의미로 다가왔다. 당신에게 언젠가는 말해줘야 한다. 비극은 청천벽력처럼 다가오고, 슬픔을 끌어안는 건 당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건 싫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번 바라본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곧 돌아오지 않을까 싶구나."
그리고 잠시 한 호흡.
"하지만 머지않아 이렇게 하얗게 물든 모습으로 살게 될 지도 모르지. 혹시 마음에 들지 아니하니?"
이 재앙의 변덕스러운 장난 중에, 신체의 나이가 많아지는 기믹이 있다면 그 반대도 있다는 걸 그녀가 과연 몰랐을까. 아니, 알았다. 알고 있었다. 첫 유리병으로 약 10년 후의 육체를 경험한 것과 바깥을 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예상이 아니라 확신을 했었다. 절대로 그 반대도 있구나.
그러나 워낙 다양한 변화가 있다보니 그녀답지 않은 방심을 해버린게 화근이었다. 처음 이후로 연 유리병들이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상한 환상만 연달아 봤더니 되려 사리분별 하기만 어려워졌다. 그래서 리치가 몰고 온 유리병을 보고도 아무 생각 없이, 경계 없이 열어 그 사단을 불러 일으켰다.
나중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걸 노린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성적인 생각을 못 하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변화를 겪을수록 당황의 교차는 커지고 그만큼...혼란스러워 할 테니까.
"꺅...!"
퐁, 하고 유리병이 열린 순간, 어른의 신체가 될 때와 다르게 몸이 이질감에 휩싸여 줄어드는 것에 그녀는 놀라 작게 비명을 냈다. 이미 변한 목소리가 한없이 낯설게 들린다. 변화는 한순간이었겠지만, 그녀는 그 순간마저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대로 잠시 웅크리고 있었다.
툭. 도르르르...
작아진 그녀의 손에서 유리병이 떨어져 방구석을 향해 굴러간다. 그 병을 가져왔던 리치는 굴러가는 병을 따라 쪼르르 가버리고, 귀여운 토끼가 되어 같이 방에 왔던 그는 아직 있었던거 같다. 적어도 오늘이 가기 전까진 보내주려 하지 않았을테니까. 그가 당황했을지 그 상황을 즐겼을지는 모르겠다. 예민한 토끼 귀를 잔뜩 가지고 놀아졌던 그다. 그러니 그녀도 당황스런 상황에 처하는 걸 보고 웃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유쾌하지 않았다. 단순히 놀림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이 모습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몸, 이 나이를 그녀는 기억한다. 허나 언제까지고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
"......"
시간이 얼마 지나서야, 천천히 웅크린 몸을 들고 또 얼마가 지난 뒤에야 눈을 뜬다. 눈을 뜨고도 잠시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서야 제 상태를 파악한다. 일단 팔을 이리저리 들어보다가, 느릿느릿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 직접 모습을 본다. 모습을 비추는 그 속엔 지난 날의 그녀가 생생한 실체를 갖고 그 너머에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여린 몸뚱이에 넘어지면 부러질 듯 가는 팔다리. 창백한 피부에 똑같이 창백한 얼굴. 아이용 원피스의 긴 소매나 옷깃 사이로 얼핏 보이는 붕대. 전신을 훑어보며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은 어린아이 특유의 진한 속눈썹이 가뜩이나 흐리멍텅한 금안에 그늘까지 드리워 낯빛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곱슬거리는 은발은 검은 리본으로 예쁘게 묶였지만 은빛보다 잿빛에 가깝다. 만지면 부드럽다기보다 푸석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현재의 그녀를 상상하기가 몹시 어려울 만큼,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 "아, 아. 이거 안 걸리려고 조심한다는게 그만 방심했네요. 리치는 정말, 어디서 이런 것만 주워오는 거야..."
아니길 바랐지만, 목깃 뒤로 감긴 붕대를 보고 정말로 그 때 그 시절 몸이라는 걸 인지한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종알거리며 그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몸만 바뀐거지 의식까지 그 때로 돌아간 건 아니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작은 발로 타박타박 걸어가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모습으로 그에게 재롱이나 떨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 분명, 그 때랑은 다를 거야. 같지 않을거야. 커졌을 때도 별다른게 없었으니까, 지금도, 분명히...
그런 불확실한 기대는 그녀의 무릎이 꺾이는 순간 같이 꺾여버리고 말았다.
털석...
"어?"
몇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발에 뭐가 걸린 것도 아닌데, 걷다 말고 갑자기 풀석 주저앉아버린다. 의도한게 아니라는 건 놀란 표정과 순간적으로 나온 소리가 반증했다. 잠시 멍해져 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작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는 전혀 그녀의 의지를 들어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잘 움직이고 있었으면서, 지금은 그냥 장식인 것 마냥 늘어져 움직여주지 않는다.
"ㅇ...아냐, 아닐거야, 아... 아니야, 이건. 아니, 아니어야 하는데...?"
생각과 다르게 다리에 전혀 감각이 없는 것을 깨닫자 그녀의 얼굴에서 그나마 있던 생기와 함께 미소가 사라진다. 동시에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내 바닥을 짚은 손마저 바들바들 떨리고, 어떻게든 아닐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현실은 몇번이고 그녀의 바람을 꺾어놓는다. 다리에 이어 팔마저 감각이 끊기며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쿵.
작은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에 눈 앞이 핑 돌았다. 그 탓인가 비명은 커녕 작은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점점 흐릿해지는 눈 앞을 바라보게 된다. 색도 윤곽도 전부 뭉개지는 시야는 그녀의 어릴 적을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멀쩡히 놀다가 갑자기 쓰러지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받아 방으로 데려가고, 푹신한 침대에 눕혀 휴식을 취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여긴 그녀의 어머니가 없다. 달래줄 어머니는 없지만, 고통은 똑같이 찾아왔다.
"으, 아윽.. 흐으, 으, 악...!"
감각이 끊겼던 몸에 일제히 감각이 되살아나며,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늘어진 몸이 이번엔 발작하듯 퍼덕인다. 생애 마지막인 양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에 곱게 묶은 머리가 흐트러지고 고운 옷이 구겨진다. 바닥을 긁는 팔다리로 인해 올라간 소매와 치마자락 밑으로 칭칭 감긴 붕대가 보이고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가는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작은 몸이 괴로워하는 그 모습은 마치 죽어가는 동물을 찔러 마지막 발악을 일으키는 듯 하다.
그것만이면 좋으련만. 아, 정말 그저 아픈 것만이 전부였다면 그녀는 참을 만 했을 것이다. 차라리 너무 아파 정신을 놓을 정도라면 더욱 좋았겠지. 그러나 이번에도 현실은 매정하게 그녀를 내쳤다.
전신을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절대 기절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한순간 소강상태가 된다. 몸의 감각이 돌아온 채로 통증 만이 싹 가시며 머릿속이 맑아진다. 세찬 파문이 일제히 가라앉은 순간 같다고 할까. 그래도 통증의 여운이 남아있어 쉽게 움직이지 못 하고 가는 숨만 몰아쉬다가 겨우 상체를 일으키면, 그 때를 노린 듯 새롭게 떨어지는 충격이 다시 그녀를 무너지게 한다. 정확히는 지금이 되야만 자각하는 것 때문에 그녀는 겨우 일으켰던 몸을 다시 웅크려야만 했다. 저번 수업 때 그랬던 것처럼 양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으면서.
약초학 수업 때, 그녀가 뽑았던 맨드레이크가 내던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이한 소리가 머릿속으로 직접 흘러들어온다. 한시도 쉬지 않는 모령의 목소리는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맨드레이크 다섯이 동요를 부르던 것처럼. 그러나 이 환청은 시시때때로 음색을 바꿔 두개골을 터뜨릴 듯 들리기에 계속 들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귀를 막아도 머릿속으로 들리니까 막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귀를 막는 건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발악이었다. 과거의 그녀가 아닌 현재의 그녀는 그 노래의 의미를 너무나 생생히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멈춘 것처럼 미동도 없던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그것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윽. 하고 짧은 탄식과 함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사람에 한해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자신의 기세가 짓눌리는 느낌은. 겉잡을 수 없이 거대한 기를 가진 무언가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이라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면서 불쾌했다.
".. 하.. 하하, 재밌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그래야 당신이 창조신이라고 불렸던 이유가 되지 않겠어..?"
그럼에도 여유를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주양의 덧없는 오기 때문이었다. 이미 상황 파악은 적당히 한 뒤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당당하게 굴며,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해 보이는 것이다. 지금껏 이런 규격의 무언가는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위에 뭔가를 둔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이해할수 없으며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이윽고, 주양의 시선은 다시 주변을 슥 둘러보다 그것에게로 향했다.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자신도 진실을 알고 싶어서 그렇게나 하늘의 흐름을 뒤쫓았으며, 정보 역시 공유했던 것이 아닌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무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겠지. 이럴 때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땐 최대한 그것의 성격을 긁지 않는 게 옳은 선택일지도 모를텐데.
"그. 그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말야~ MA님.. 뭐라고 해야 하려나.. 그래. 응. 나는, 나는 그땐 그것까지는 몰랐던 상황이었다고..? 어쩔수 없는 일.. 젠장. 더, 더 오기만 해봐..!"
그것이. 자신에게로 훅 다가오자 저도 모를 위압감에 짓눌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허나 그뿐이었다. 지금 자신의 작디작은 모습으로는 절대 물러날수도. 어떻게 맞설수도 없다. 아니. 설령 자신의 몸이 원래 같았더라도 맞설 수 없이 무력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으름장을 놓으며 호기롭게 그것을 쏘아보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정신을 잃고 기절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 만큼 그것이 주는 위압감은 다른 무언가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아아. 차라리 탈들을 수백번 마주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탈들이 다시 안 쳐들어와주나. 크루시오 두방 맞으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릴 것 같은데.
"뭐, 라고...? 아냐. 잠깐만. 내가 충분히 무례했어! 그, 그리고 시건방진 것도 인정해.. 감히, 내가 감히 MA님이 그딴 탈들과 한 패일거라고 의심한것도 미. 미안하고.. 그러니까. 기억만큼은 부디...!"
이윽고. 검은자가 순간 좁혀졌다. 아아. 절대. 절대 놓아보릴 수 없는 기억인데. 이 기억만큼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들인데. 그렇게 평생 간직하면서, 자신의 방향성을 판가름지을 기억이. 순식간에 그것의 장난에 의해 지워지고 변조되어 버리는 것은. 기록과. 기억과. 개념을 간직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바뀐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이를 꽉 악물었다. 선명하게 이 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것은 그저 비는 것밖에는 없었다.
"당신의 배려에 대해서도.. 그래. 날 생각해서 그릇의 몸을 빌려 나타난것에 대한 그 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탈들에 대한 힌트를 준것도..!"
비는 와중에도, 그릇이라는 말에 대해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MA의 추종자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기 사감님이 그릇이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허나. 거기에 대한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또 자신을 믿지 못한다며 화를 입을지도 모를 것이다. 일단은, 그것은 뒷전으로 미뤄두기로 하자.
"그때 같이 자게 된거는 몽고메리 부인의 허락이 있었고 학생 대표가 같이 있었잖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니까 어렵다고 생각해. 자기야."
걸음을 옮기면서 단태가 한 말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을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편하게 입고 나오는 건데. 문득 스치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 단태의 걸음걸이가 겉으로 보이는 나이답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낫다. 단태는 자신의 룸메이트가 유리병을 열었다가 어른이 되어버렸던 모습을 떠올리며 손으로 자신의 입근처를 가렸다. 발이라도 밟힌 오리처럼 꽥 하고 내지르던 비명이 생생했다. 그런 일은 진짜 사양이다. 형광색으로 몸이 번쩍번쩍해지는 것도. 토끼 귀가 솟아나는 것도. 자신의 질문에 꽤 오래 고민하는 레오 덕분에 단태는 쓸때없는 생각들은 계속 이어졌다.
"- 네 말대로야. 달링. 그러니까 방금 자기가 했던 말처럼 잊어줄게. 왜냐면 나는 이해 못하겠거든. 어째서? 나를 공격했고 그 공격에는 명백하게 살의가 있었잖아? 우리네 가문에는 적에게는 자비롭게 굴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 말이야. 자기 말대로 내가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워."
그들은 적이었다. 그 순간순간마다 그들은 명백히 살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그들을 적으로 배제했다. 그래서 단태는 그들을 공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입근처를 가렸던 손이 짧은 축에 속하는 자신의 머리를 한번 헝크러트리듯 헤집으며 단태가 레오에게 말했다. 레오의 상태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해하고 납득하는 상황이기는 했다. 얼떨결에 단태는 병동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목적지가 병동이었으면 처음부터 말했으면 됐을텐데. 단태는 기다려달라는 레오의 말에 흘끗 시선을 한번 줬다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레오가 붕대를 갈고 나오자, 단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달링? 그러니까- 주양이라던가? 기숙사도 같으니까 나보다는 나을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그냥 미소지었다. 바보처럼. 적에게 자비롭게 굴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레오는 그럼 자신의 가문은 어떤 말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 Wie ein Stahl... "
강철처럼. 그것이 가문이 하는 말이었다. 지조있고 강하게 서있으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주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라는 뜻이었다. 추운 곳에서는 차가워지고 불에 닿으면 뜨거워지는 강철처럼 유순한 상대에게는 유순하게, 적의를 드러내는 상대에게는 똑같이 적의를 드러내라는 뜻이었다. 레오는 어깨를 으쓱하곤 붕대가 제대로 잘 감아졌는지 쓰다듬어보았다. 깨끗하고 새하얀 붕대가 썩 맘에 들었다.
" 으, 그 녀석은 싫어. ...싫다기보단 안돼. 그리고~ 나랑 같이 잤던 애들은 다 도망갔다고 해야하나. 잠버릇이 좀 이상해졌나봐. "
레오는 잘 모르겠다는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된다는건 안되는거지. 레오는 가볍게 마음을 접었다. 그만갈까? 하고 습관처럼 머리를 쓰다듬고 쪼그리고 앉아 단태의 볼을 만지작댔다. 작고 여리고 순수하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서 같이 잘 수 없는거야. 레오는 덜컥 정신이 들었는지 '헙' 하고 숨을 삼켰다.
" 역시 생각해보니까 혼자 자는게 낫겠다. 내가 뭐 애도 아니고. 그렇잖아~ "
차라리 혼자 자는게 나을지도 모르지. 자다가 허공에 마법에 날릴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야. 몽유병을 겪는것처럼. 레오는 다시 생각해보니 혼자자길 잘했다는 생각이 세 번도 더 들어서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기숙사로 데려다주고 방으로 돌아가자. 조금 있으면 익숙해지겠지 뭐.
지금의 독백은 +10살 어른이(?) 땃태에 대한 떡밥 겸 오너의 개인 만족을 위한 독백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몹시 짧음 주의.
유리병을 처음부터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
토끼 귀가 튀어나오질 않나, 기분 나쁜 어떠한 환상을 보지 않나. 어려지질 않나. 청궁의 장난꾸러기들도 이정도로 질나쁜 장난은 하지 않을 게 분명했는데 사람이라는 게 참 궁금하면 참지 못하기 때문인지 주단태는 이번에도 유리병을 열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이미 비어버린 유리병이 손 안에서 가차없이 박살나고 부서졌다. 자극적인 이질감이 손끝에서부터 날카롭게 신경들을 전부 건드린다. 손바닥 안에 쥐어져서 박살난 유리병으로 만들어낸 파편의 날카로운 감각이 아니었더라면 정신을 차리는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어려지는 것처럼 나이를 먹는 것도 있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야, 자신의 룸메이트가 경험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나한테 생길 줄은 몰랐지. 시야에 손가락만 드러난 붉은색 장갑을 낀, 유리병을 손으로 박살내버린 탓에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낯선 손이 들어왔다. 곧, 그게 내 손임을 인지했다. 장갑의 색과 피의 색깔이 똑같다. 그 뒤에 인지한 것은-
와륵- 시야를 잔뜩 가릴 정도로 쏟아져내리는 자신의 하늘색에 가까운 푸른빛 머리카락이다. "염병허네." 다른 손을 들어서 쏟아져내린 머리카락을 한움큼 쥐어 넘겨내며 단태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낯설고, 피부에 스치듯 닿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혀 있는 것 같은 굳은살의 감각이 낯설었다. 체격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단태의 눈이 휙- 굴러서 손목을 바라봤다.
있어야할 것이 그곳에 없었다.
검은 뱀의 팔찌가 없었다. 단태는 고개를 들고 혀를 한번 쯧- 차며 욕실로 걸음을 옮겼고, 거울에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쏟아져내린 머리를 대충 집어서 넘겼기 때문인지 엉망이었다. 처음보는 모습. 그러니까 어른인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비춰지고 있었다.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가 익숙했다. 8살일 적의 자신도 이런 눈빛이었는데. 대신 단태는 여전히 반장갑을 끼고 있는 손으로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비춰지는 부근을 손마디로 훑었다.
관자놀이를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진 흉터가 손끝에 맺혔다. 흉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손에 있는 흉터들은 10대였을 때도 있던 것이었지만 본래 팔찌를 끼고 있던 손목에는 불에 데인 것 같은 화상자국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됐구나."
단태의 손이 목에 걸려있는 이리모양 팬던트를 움켜쥐었다. 피가 났던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무뎠다. "그래, 이렇게 됐어." 기숙사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단태가 히죽- 하니 웃었다.
네 적에게 무자비하게 굴어라.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레오를 보는 단태의 눈빛은 섬찟하게도 암암리에 가라앉아 어둑했다. 그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단태는 눈과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몇번 눌렀다가 눈썹을 치켜올려서 히죽- 하니 평소같이 웃어보였다. 동양인이다보니 레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단태는 그것을 되묻지 않았다.
"그때보니까 사이 좋아보이던데? 아- 물론 자기들은 서로 사이가 안좋다고 이야기할 거 알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말다툼을 한다는 건 사이가 좋다는 뜻 아닐까?"
재잘재잘.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뻔뻔한 태도로 중얼거리던 단태는 레오의 말에서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는지 눈을 깜빡이며 잠버릇? 하고 되물었다. 그때 같이 잤을 때는 별다른 잠버릇이 없던 것 같았는데. 잠버릇이 생기기라도 한건가.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리는 레오의 손을 슬쩍 붙잡았다. 주단태는 그 눈빛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자신이 조카를 보는 눈빛과 같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을 잡은 뒤에 뒤로 고개를 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작고 여리고 순수하고 무구한 것을 보는 눈빛을 마주한 단태는 웃음기를 조금 거둔 상태였다.
"잠버릇이 걱정이라면 공격할 만한 걸 다른 곳에 두고 자보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달링."
유리병이 만들어낸 마법이 풀렸다. 18살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주단태가 레오의 손을 잡은 채로 웃음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곧, 헤죽- 웃어보였다. 이상하리만치 감정의 기복이라던가가 심해보였을지도 모른다.
" 사이가 좋기는. 불쌍하니까 내가 놀아주고 있는거야. 자기는 그런줄 모르겠지만! 근데 요새 자~꾸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른단 말이지.. 그러다 정말 개밥이 되는 수가 있는데 말야. "
죽고 못사는 사이는 맞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에서였다. 세기의 라이벌이나 숙적같은 의미였지. 사실 그 쪽에다 부탁을 하면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라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두 번째로는 갑자기 자신이 어려졌을때 그 모습을 들켜선 안되는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 돼버리기도 하고. 잠버릇같은 것은 다음의 문제였다. 허공에 마법을 날리려고 할 때 마법이나 피지컬로 제압할 수 있는사람. 아무런 지체없이 막을 수 있는거라면 그 녀석이 최고기야 하겠다만 걸리는 점이 너무 많았다.
" 오 - 원래대로 돌아왔네? "
조금 사라진 웃음기를 감지할만큼 레오는 예민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것말고도 신경쓸 것이 많았으니까. 공격할만한 다른 것이라. 레오는 별달리 대답하지않고 '응. 그럴게.'하고 말하면서 웃을 뿐이었다. 문제도, 답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안고가야할 문제라는 것도 알고있다.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품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오는 원래대로 돌아온 모습을 보며 푸흐흐, 하고 웃고는 손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 마냥 볼을 만지작 거리다 손을 놓았다.
" 신기하다. 이렇게 돌아왔는데도 아까 그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 "
감정의 기복이 심해보이는 것. 그것마저도 감지하지 못했다. 조금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라면 알지도 모르지만.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으면서 자신의 눈동자에 단태를 담았다. 아까의 그 어린 모습이 겹쳐보여서 여전히 작고 여린, 그리고 무고하며 순수한 무언가를 보는 눈빛이었다. 그만 가자. 레오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두 세 걸음을 걸어나가고 시야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레오는 허억 하고 깊게 숨을 마시곤 뒤를 돌아 단태의 옆자리를 차지했고 손을 잡았다. 팔을 만지작 거리고 몇 번이나 올려다본 후에야 가슴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네가 여기 있는게 맞는지 확인한다는 것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