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니플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귀엽게 생겼지만 아주 끔찍한 녀석들이다. 학교생활 6년, 니플러에게 헌납한 모노클만 수십개.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달링을 위해 준비한 작은 장신구도 모조리 뺏겼으니 싫어할만도 했다.
"오늘은 복수란다. 달링. 내 사랑스러운 피앙세, 장의사의 뮤즈야."
달링의 머리와 부리를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그는 금화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전쟁이다. 그는 니플러가 금화에 꼬이자 손을 뻗었다. 넓은 소맷단에서 검은 새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고, 부리로 텁 니플러를 물어챘다. 소맷단 안을 비집고 나온 달링이 날개를 펼치며 발톱을 세웠다. 부리에 문 니플러를 던지며 포효한다. 던진 니플러를 잡아채며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 것을 뺏겼으니 어지간히 성질이 났나 보구나.
길게 말하는건 힘든 상태다. 레오는 발톱을 세워 바닥에 끄적였다. 제 얼굴을 내어준 레오는 가만히 단태를 바라보았다. 되게 조그맣네. 한 입에 먹을수 있을 정도로 조그맣다. 낮게라도 울음소리를 내었다간 본의아니게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겠다 싶어 레오는 얼굴을 가까이 하고 볼을 두어번 핥아보았다. 몸을 낮추고 단태를 태우고는 변신술을 연습하던 장소로 이동했다. 걷는 속도로 천천히 이동하다보면 으슥하고 인적이 끊긴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기다려. 이 쪽으로 오면안돼. '
발톱을 세워 바닥에 글씨를 쓰곤 톡톡 쳐서 읽으라고 사인을 준 뒤 레오는 꼬리를 흔들고 어슬렁거리며 변신술을 연습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집중하고 눈을 감고 내가 변하고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변하지 않는다. 역시 아직 많이 미숙하네. 몇 번이고 더 집중한 뒤에야 레오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상자에 잘 담아뒀던 옷을 꿰어입고 레오는 다시 총총거리며 돌아왔다.
" 짜잔-! "
나 맞지? 레오는 그렇게 말하며 왼쪽 눈에 흉터를 톡톡 건드렸다. 어디부터 설명해줘야할까 싶다가도 이 조그마한 단태를 보고있으면 그런 생각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쪼그려 앉아서는 쿡쿡 하고 웃었고 손을 뻗어 뭔가에 홀린것마냥 볼살을 만지작거렸다. 부드럽고 말랑거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선 레오는 왼손을 뻗어 손을 잡으려했다.
" 어디부터 설명해야할까.. 나, 원래 애니마구스가 되는게 꿈이었어. 그것 때문에 약을 만드는데만 3년을 썼고. 칼 교수님이 애니마구스잖아? 그래서 이번에 물어봤지. 그리고 특별지도를 받으려고 생각중이야. 등록은 아직! 이제 연습을 시작한 단계니까.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아직도 흥분감과 고양감에 휩싸여있었다. 아픈것도 잊을 정도로. 그 정도로 평생의 꿈을 이룰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했겠지만 이 정도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삐익! 니플러는 불만스럽게 울었다. 그는 어느새 니플러의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은으로 된 반지를 갖고 싶어서 뽀르르 몸을 타고 오는 니플러와 손을 위로 들어 제지하는 그. 도끼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은 달링...그는 달링이 니플러를 쪼려는 듯 성큼성큼 다가오자 다른 손으로 능숙하게 부리와 목, 머리를 쓰다듬었다. 숲 입구에 앉아 신비한 동물, 그리고 큰 까마귀와 이렇게 노는 모습을 본 한 현궁 학생이 눈을 부볐다.
이 얄미운 여우. 그녀는 눈을 흘기면서도 다정하게 그를 어루만져주었다. 이런 여우짓마저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머글과 혼혈을 잡초에 비유하며 전부 없애야 한다 말하는 것도 그녀의 애정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그는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지켜볼 뿐.
"과연 그 불이 화단과 정원수는 태우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요. 아, 여기를 고른 이유가 그거였어요? 에이, 단순하긴."
이유만 보자면 정말 흔하고 단순하기에 그녀는 솔직한 감상을 말하면서 웃었다. 분명 그녀의 양친도 여기가 특이해보이니 한번 보내보자 생각해서 보낸 거라고 했었다. 여기도 저기도 목적 따위를 제쳐두고 보면 별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전부 인간인 걸.
"뭐어, 그 기분 모르는 건 아니니까, 그만두라고 하진 않을거에요."
그녀가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둘 그가 아니란 걸 잘 알기도 하고. 그래도 나직히 중얼거리며 더 파고들 곳이 없는데도 파고들려 하는 그를 원하는대로 하게 두었다. 이 몸도 언제까지일지 모르니 가능한 그가 바라는대로 해주고 싶었다. 떨어지지 않게 꼬옥 안아주다가, 얄미우면서도 귀엽게 소곤소곤하는 말에 작게 쿡쿡 웃었다. 그리고 똑같이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토끼가 되어주면, 방으로 데려가서 잔뜩 이뻐해 줄게요."
장난스레 말하고 다시 웃는 얼굴이 평소와도 같았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같이 있기를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비췄을지는. 그리고 그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지는 당사자들 외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단태는 표범-인 레오-의 털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동물 특유의 털의 감촉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핥아오는 감촉이 느껴지자 마자 눈을 깜빡이며 바라봤다. 표범이 고양이과였나. 까슬까슬한 감각에 낄낄거리며 웃는 모습이 딱 그 나이대의 아이처럼 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양이가 핥는 기분이였어. 자기야~" 레오의 몸에 올라탄 뒤에 목을 슬쩍 감싸안은 뒤 단태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으슥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해서 올라타고 있던 단태의 몸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안착했다. 어려진 지금의 작은 몸뚱이로 큰 불편없이 바닥에 설 수 있었고 단태가 바닥에 쓰여진 글씨를 읽었다. 눈을 깜빡이며 레오가 사라진 위치를 바라보던 단태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레오가 돌아온다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두커니 서 있는 주단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곧 짜잔- 하는 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서있던 단태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야, 아무리 내가 어리게 변했다고는 하지만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너무 애취급은 하지 말아줘?"
쪼그리고 앉은 레오가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흘끗 암적색 눈동자를 움직여서 행동을 응시하던 단태의 말이었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조금 진지한 반응을 내비쳤지만 그뿐이다. 결국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면서 레오에게서 슬그머니 두어발 물러난다. 아프지는 않지만 왠지 기분이 묘했다. 진짜로 어린 아이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서.
"응- 자기야? 지금 태클을 걸고 싶은 게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 중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고 될까?"
손을 잡으려는 듯 내미는 레오의 손에 단태는 자신의 손을 올렸다. 애니마구스가 되는 게 꿈이였다는 점에 태클을 걸어야할지, 아니면 약을 만드는데 3년을 썼다는 점인지 꽤 진지하게 고민하던 단태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칼 교수님이 애니마구스이신지 나는 몰랐는걸?" 하고 가장 중요해보이는 점에 태클을 걸고 나서야 단태가 잡고 있는 레오의 손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