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는 건 단둘이 오붓하게 있을 때 하는 걸로 할게. 달링~ 물론 자기가 증명해주는 애정표현은 지금도 환영이지만?"
사레라도 걸렸는지 한참을 쿨럭거리던 주양에게서 평소와 똑같은 반응이 되돌아오자, 단태는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보이고는 맞장구라도 치는 것처럼 그 말에 대꾸하며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대답을 되돌려줬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한국식 엿을 손가락으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행동들을 해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단태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도발. 시비. 그리고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내기. 이 정도면 둘의 말처럼 웬수가 아니라 그냥 친한 친구 사이에서 보일 법한 가벼운 장난 수준 아닌가. 근데 두 사람은 또 아니라고 하니 원. 주단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렇지? 자기가 날 잘 모른다고 했다면 굉장히 슬펐을거야~" 끝까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기어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단짝의 말에 그렇게 답해야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단태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레 중얼거리다가 자신에게 달라붙는 레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팔을 붙잡고, 부비적거리는 모습에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다. 단태는 이런 어리광에 가까운 행동에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예쁜이. 내 조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구한 선함. 아무 잘못이 없는 그 어린 아이. 과장스러운 반응과 대놓고 도발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 놓여있던 단태는 자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부인과 함께 나가는 레오의 모습을 보다가 주양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도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네. 혹시 질투하는 건 아니지 자기야?" 과장스러운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단태는 작게 주양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라는 대답이 되돌아올거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의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뻔뻔한 태도였다.
"응? 허락을 받았다니? 우리 자기들, 나랑 기숙사 다르지 않아? 아니면 내가 주궁으로 가야하는거야? "
오늘은 딱히 리치가 보챈 것도 아니고 따로 시간 죽일 일이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산책삼아 걷다보니 다다른 곳이 학교 앞 숲이었고, 멀뚱히 서 있는 그녀의 시야에 때마침 니플러를 쫓는 학생이 보였을 뿐이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그건 운명이라 하던가.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온 김에 한번 더 하지, 뭐.
아씨오로 장갑을 가져와 끼고 성큼 숲 안으로 들어갔다. 서벅서벅 수풀을 스치고 걸어가며 생각한다. 저번처럼 소리를 지를까 어쩔까. 이미 썼던 방법은 왠지 안 통할 것 같아 패스하기로 한다.
적당한 깊이까지 들어간 다음 근처에서 돌을 하나 주워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쩐지 뭔가 숨어있을 듯한 수풀더미를 찾아 눈을 가늘게 뜨고 거리를 가늠해보다가, 정확히 수풀 한가운데를 노려 돌을 던진다. 빠르게 던져진 돌에 무언가 빡! 하고 맞는 소리가 나고 삑! 하는 짧은 비명도 난다. 그에 이어 몇몇이 도망가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있네 있어~"
도망간 녀석들은 재쳐두고 수풀로 가서 열어보자 기절한 니플러가 한마리 있었다. 그녀는 실실 웃으며 녀석을 들어 거꾸로 들고 배주머니 근처를 간질였다. 기절까지 했는데 터는 건 역시 좀 미안해서 말이다.
"좋아~ 서로서로 그렇게 한다면, 실망할 일도 없겠다! 그래도 너무 큰 기대는 말고~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클테니까. 그냥 이 대화를 나누기 전처럼만 행동한다면 그걸로 오케이야~"
간혹 상대를 너무 신뢰하고 노력을 보여주었는데 그에 응당한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은 원래 느끼는 실망보다 더 큰 실망을 느끼기 쉬웠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평소대로의. 이 이야기를 나누기 전의 생각을 쭉 유지하며 나아가는것이 훨씬 나았다. 차라리 그렇게 기억 저 켠으로 밀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는거지. 그러면 실망이 치명적으로 커져 돌이키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 일도 없을테니까. 다른 한 켠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적어도 당신과 자신은 쥐가 아닐거라는 그런 묘한 느낌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아무래도 말이야. 고민하고 걱정하는걸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고 해도 그 걱정을 멈추지 않을 수는 없잖아~? 오히려 더더욱 크게 고민이 될 뿐이지!"
그것 역시도 주양이 충분히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걱정해서 나아질 상황이라면 차라리 걱정을 짧게나마 하겠지만은. 걱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서 사람이 더더욱 초조해지고 고민거리가 많아지면서 또 그 고민이 깊어지는 법이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규격 외의 일을 마주했을 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라던가,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까 같은 생각들이 제일 먼저 들기 마련이니까. 즐긴다고 표현한 주양 자신도 막상 그런 상황 앞에서는 분위기에 휘둘리며 이런저런 깊은 생각들에 잠기게 될 것이다. 분명히.
이윽고 주양은 털털한 웃음을 흘렸다. 맙소사. 그렇게 느꼈다니. 자신은 지나치게 가벼웠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지금은 그 가벼움과 경박함이 독이 아닌 득으로 다가왔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사실을 모르는 주양에게는 꽤 의외의 일이었다. 진중한 이야기에 너무 가볍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아오는 것 대신, 이런 반응이 돌아오게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분이 꽤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 나아져서 다행이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주양은 라쉬의 머리를 토닥토닥거리며 저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 후. 아냐. 그럴 것 없어~ 너의 마음을 진정시킨 것도. 내 말을 도움이라고 느낀 것도 결국에는 너가 스스로 한 일이야. 나는 뭐랄까~ 옆에서 그냥 조잘조잘 떠들어대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얹어가면서, 장난 정도만 친 거랄까~?"
그러니까. 그렇게 큰 의미 두지 않아도 돼. 모래를 짚을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꽤. 꽤 이상야릇한 느낌이다. 칭찬이라는 건, 가볍게 받을 땐 웃으면서 넘길 순 있어도, 이렇게 또 받는건 굉장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그렇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난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친 것이었으니만큼, 재미있었다는 것 까지만 들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맙다고 여길 것까진 아니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앞에서는, 한없이 단호해지는 주양의 비틀린 성격이 다시 빛을 발했다. 허나 여전히 나쁜 감정은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의 행동을 크게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 아무튼. 너의 말에 동의해~ 고민하고 불안해하라고 알려주신 게 아닐거야. 그 힌트를 지지대 삼아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도록 알려주신 거겠지. 비록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단서가 없어 망설이지만~ 분명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으면 되겠지~?"
그러니까. 한번 열심히 힘내보자고.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을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당신과 악수를 해 보이는 주양이었다.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거라는 것이 이렇게 안심되는 적은 또 없었다는 것도 느끼면서.
자, 이것도 세번째로 얻은 물을 가지고 주궁으로 간다. 이쯤 되니 빨리 갖다주고 기숙사 가서 씻고 누워버리고 싶다. 누워서 리치 끌어안고 자고싶어. 자고싶다. 그 생각이 또렷하게 쓰인 얼굴을 하고 주궁으로 들어가니 더위고 뭐고 모르겠다. 빠르지만 뛰지 않는 걸음으로 곤 사감을 찾아가 얻어온 물을 건네드린다.
어허 이거 왜이래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잡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분위기 싣는 걸 잘 못 하겠어서 최소한 읽는 거라도 편하게 읽히는 걸 목표로 하다보니까... 그와중에 떡밥은 착실하게 심었지 히히 문제는 나도 어디에 뭘 심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