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흐흥, 그렇지만 우리 달링들~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타이밍도 그렇고 너~무 잘 맞아서 굉장히 친해보이는걸?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미운 정도 정이라구~"
단태는 이어지는 것처럼 대화하는 레오와 주양을 보다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중얼거린다. 낄낄- 하는 웃음소리가 목소리의 뒤를 이었다. 둘이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단태의 눈에는 그 모습이 사이가 좋은 친구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다. 미움에서 시작되는 것도 정임은 분명했다. 정말로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싫은 게 아니라면 이 호칭도 자주 써줄게. 허니버니~"
한명은 호적수라고 하고, 또 한명은 아파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가감없이 험한 말로 상대를 지칭한다. 이게- 라이벌이라는 건가. 그래도 사이는 정말 좋아보이는데. 한번만 더 그런 이야기를 하면 볼을 꼬집어버리겠다는 주양의 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태가 입을 딱 다문 뒤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였다. 그 바람에 기대고 있던 고개가 흔들리고 단태는 주양의 어깨에 뺨을 문지르게 된다. 곧 흔들던 고개를 들고 레오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달링, 자기야~ 레오. 정신차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돼?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을까. 우리 레오?"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말과 병동과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인지 주단태는 주양에게 매달리듯이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옆으로 돌아가더니 주양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미안하다면 병동까지만 정신 차리고 있자." 그 모습이 꼭, 어린 아이에게 하는 것과 똑같았다. 어르고, 달래고. 익숙하다는 듯이 주양에게 안겨 있는 레오의 뺨을 몇번 보듬어주는 행동 모두가.
"으으. 여보야, 잘 들어둬. 미운 정은 정일지 모르지만 왠수는 왠수야! 이야기나 타이밍은.. 뭐. 보시다시피 이 꼬맹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니까. 라이벌끼리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곗지 아마도!"
틀렸다. 이미 한번 그렇게 인식당한 이상 이 인식을 끝낼 방법은 딱히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볼을 꼬집어버리겠다는 이야기가 유효했다는 것이다. 그것까진 좋았으나 그 이후는 꽤 기분이 오묘했다. 한쪽 어깨는 당신이 뺨을 문지르게 되어버려 간질간질하고. 다른 한쪽 어깨는 자신이 안고 있는 기숙사 후배가 아까보다 더욱 세게 붙잡는 바람에 슬슬 아파왔고.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통증과 감각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바윗덩어리는 아니었다. 고통에 찬 숨을 내뱉고 이를 꾹 악물어 참아낼 뿐이었다. 그나마 옷이 두꺼운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기는 하지만.
"좋아. 앞으로도. 자주 써주면 내가 고마울거야~? .. 하, 그리고 꼬맹이를 꼬맹이라고 하지 뭐라고 더 하겠어! 자꾸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거야? 확 여기다가 내려놓고 도망쳐버린다~?"
뭔가. 극과 극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아수라 백작이 되어있는거 아닐까. 쑬데없는 생각은 얼른 날려 보내고서 주제를 모른다는 이야기에 별다른 대꾸 없이 헹 하고 당치도 얺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역시 팩트 앞에서 똑부러지게 반박하지 못하고 아무 말 못하는 채 부가설명을 피하는 것은 시비충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의 주양처럼 말이지. 그러다 결국에는 입을 열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내가 개밥이면 너는 새밥!... 아냐. 됐다 됐어. 자꾸 그렇게 쫑알쫑알거리면 상처 더 벌어진다, 꼬꼬마?"
더 언성을 높이게 하는 것은 지금으로썬 썩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일단은 이 쯤에서 물러나자. 더 세세하고 구체적인 시비를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일 뿐이다. 호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양은 걸어가는 속도를 한층 높였다. 그래봐야 역시 초콜릿 박스를 들고 왔다갔다하던것보다 속도가 덜 나는것은 어쩔 수 없었기는 하지만.
이윽고. 자신에게 둘러져있던 단짝의 팔이 거두어졌다. 뭐야. 꽤 잘 달래주잖아. 자신보다 훨씬 익숙하게 어르고 달래는 당신을 보며 주양은 짤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은 저런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맨정신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더더욱 놀랍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주양은 당신의 눈짓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져있다가 곧 한쪽 눈을 찡긋이며 화답했다. 그 눈짓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읽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이윽고 주양은 다시 씩 웃었다.
"역시 우리 여보야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니까. 그럼.. 이제. 우리 꼬꼬마 달래주는 건 다 했지? 그치? 이제 슬슬. 병동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거지~?"
딱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먼저 안겨있던 기숙사 후배를 조금 더 안전한 느낌으로 들쳐안았다. 이 정도라면 최대한 덜 흔들릴테니. 격하게 뛰더라도 고통이 심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뒤이어서. 자세를 낮추고 단짝까지 다른 쪽 팔에 들쳐안았다. 그래. 이래야. 이래야 일이 조금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지금은 멀쩡한 사람이 체력을 쏟아부을 차례다. 아까 다 풀지 못한 울화를 다시 떠올린다면 지금만큼은 아드레날린의 도움을 받아 중간에 뻗지 않고 무사히 병동까지 내달릴 수 있겠지.
"자, 숙녀분들. 안 떨어지게 꽉 잡아! 너네 팔이 안전띠나 마찬가지니까! 중간에 떨어져버리면. 다시 찾으러 오는 일은 없을거라고~?!"
당신의 눈짓이 과연 이런 뜻이었나. 그것까지 차마 떠올릴 새도 없이, 주양은 냅다 병동을 향해 빠르게. 시원시원한 보폭을 한껏 이용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한다면. 훨씬 빠르게 병동까지 도착할 수 있을테니.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했던 기숙사 후배. 즉 라이벌에 대한 주양의 아주 최대한의 배려.. 같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배려였다. 정작 둘을 들쳐안은 데다가, 걷지 않고 뛴다는 것은 주양이 예상한것 이상으로 버거운 일이었으나 아랑곳 않고 달리고. 또 내달렸다. 덕분에, 병동까지의 거리는 금방금방 좁혀졌을지도 모른다.
".. ㅂ. 병동 도착..! 부인. 계세요..?!"
예의에 어긋나 보이는 행동이겠지만 부디 양해해주길. 지금은 손이 남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양은 발로 양호실의 문을 홱 열어재꼈다. 둘을 침대까지 안전하게 옮겨주고 나서야 주양은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적당한 장소 아무데나 푹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구나. 뒤늦게 제 단짝은 침대까지 데려다줄것 없이 가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며 주양은 안도하며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 주궁 5년차 짬이 낯부끄럽지 않겠지.
"원래 계시를 해석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이런 고민을 점성술 수업 말고 다른 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게 진심으로 통탄스러울 지경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더 나았을까? 진솔하게 밝히자면 후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들어버린 일을 돌릴 수 없으며 알아버린 이상 평화로운 일상을 찾아 도피할 수도 없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무언갈 깨달은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쥐는 하나가 아니라 했죠. 그렇다면 두 분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를 도울 쥐와 그렇지 않을 쥐가 별개로 나뉘어져 있다든지…?"
이것 역시 가능성 있는 가정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것들이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다. 부족한 정보로는 추리의 한계선이 명확했다. 하지만 한계에 닿았더라도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저 두려워하다 체념할지, 엉성하게나마 활로를 찾아다닐지, 둘 중 하나를 택하려면 후자가 나으리란 것은 재어보지 않더라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역시 그렇겠죠. 그럼 아직 의심하지 않는 사이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요."
정말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의심하려 드는 것은 오히려 피해망상에 가까운 행동일 테니 그것은 그 역시 동의하는 바다. 그렇다면 당위 있는 의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들의 목적이나 잠입 시기까지 온통 알 길이 없으니……. 생각이 진전되지 않고 꼬여가기에 괜히 그는 편안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라쉬의 옆구리를 휙휙 쓰다듬었다. "지금 우리끼리만 얘기해서 심심하지는 않지?" 라쉬는 눈을 감았지만 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난스런 입질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주고받는 대화의 경중이 무색하게 한동안 라쉬는 바닥에서 구르고, 그는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장난질을 벌였다. 오래지 않아 승패가 갈렸다. 팔 하나를 희생하여 라쉬의 입에 물려준 채, 그는 남은 손으로 제 목덜미를 매만지며 겸연쩍게 말했다.
"아무튼 전해들은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이렇게 추려지네요. 나머지는 비교적 사소한 것들이고……. 혹시, 제가 대뜸 알려줘놓고선 이렇게 묻는 건 좀 이상하긴 한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와중에도 개의 이빨이 아프지 않도록 잘근잘근 팔뚝을 씹어대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니 넘어가자. 주양은 매구의 생존, 어쩌면 귀환이라 해도 좋을 그것을 확인하고서도 여전히 여유로운 것만 같다. 오히려 그것을 반가운 자극으로 받아들인 듯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그것마저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 마냥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만 계속하던 그로서는 놀랄 만한 일이다.
아까부터 춥고 졸린것이 가시질 않는다. 자면 정말 편할것같은데. 레오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떨쳐내야함을 알고있었다. 추운 것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고 졸린 것도 같은 맥락일것이다. 여기서 잠들어버린다면 그 때는 정말 끝임을 잘 알고있었다. 여기서 그렇게 죽어버리면 여기까지 달려준 사람에게 미안..하지는 않고 복수할 기회마저 사라지는 꼴이니까. 레오는 말을 줄이고 숨쉬는데에 집중했다.
" 너 진짜 그러다 개밥된다? 진짜 쳐죽여버린..! 크하아... "
괜히 소리질렀네. 레오는 한 차례 언성을 높였다가 마치 술을 한 잔 마신것마냥 목을 긁으며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구겼다. 덕분에 정신이 조금 돌아온 것 같으니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았달까. 잠깐 멈춰서자 레오는 잠깐 안정을 찾기 위해 숨을 느리게 쉬었다. 심호흡을 잠깐 한 후에 들쳐매는 것의 충격으로 또 죽는 소리를 내곤 꽉 잡으란 말에 이를 악물고 잡고있던 왼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 아, 아아! 살살! 살살뛰어! 나 진짜 아프다고!! 너 쳐죽인다 진짜!! 아, 아아!! "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임을 레오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아픈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 원망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레오는 꼭 쥐고 있는 왼손에 힘이 점점 빠짐을 느끼고 있었다. 눈 앞이 흐려지는 것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도 느꼈다. 정말 더 이상은 한계라고 생각했다. 잠깐, 잠깐만 눈을 감자. 잠깐은 괜찮을거야. 그걸로 아픈게 사라진다면 나쁘지 않을거야. 꼭 쥐고 있던 왼손이 스르륵 하고 풀려 맥없이 떨어졌다.
" 뭐야.. 나 죽은거야..? "
눈을 떴을땐 새하얀 빛이 보였다. 마지막 기억이라면 너무 힘들어서 눈을 감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레오는 이렇게 죽었다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인지 허,참. 하고 숨을 뱉고는 킥킥대고 웃었다. 그 다음에 느껴진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고 주변을 둘러본 후에야 자신이 병동에 들어와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 ...그렇지! 내가 죽을리가 없지! 이 개새끼들아! 내가 왜죽어! 난 안죽어! 못죽어! 그 탈쟁이 새끼들 다 쳐죽여버릴.. 갸아악... "
살아있다는 것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 기뻐서인지 레오는 자기 몸상태를 신경쓰지 못하고 또 큰 소리를 냈다가 또 다시 밀려오는 통증에 인상을 잔뜩 구겼다. 전후 사정을 들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기적이라는 말을 여러번 들은걸로 기억한다. 보통이었다면 이미 죽어서 실려왔을것이라고. 레오는 몸 상태는 어떻냐고 묻는 말에 왼손을 슬쩍 들어 엄지손가락을 세우곤 이히히, 하고 웃었다.
" 저기 근데.. 제 친구 한 명이랑 개밥 하나가 같이 있을텐데.. 어디있나요? 같이 들어왔을텐데.. 아니 진짜 개밥은 아니고 개밥같은 사람..은 아니고 개밥같은 사람이하의 어떤 그런게 하나 있을텐데.. "
"지금까지 만나 본 인간 중 네가 제일 인정한 사람은?" 주단태: 아직은 그런 사람이 없네. 인정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어떻게 할래?" 주단태: 컨디션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 물론 조금 의외라고 생각은 할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주는 제일 큰 애정 표현은?" 주단태:이런 질문을 할 때 먼저 해야하는 질문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키스라도 해주지 않을까?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게 제일 큰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786 벨챤.. 저는 그러다가 흑역사를 마구 갱신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ㅇ... 어서 쉬는검당...!! >>788 집착아닌 집착을 하는 그런 것일까요.. 정 안된다면 깔끔하게 포기함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너의 제일 친한 친구라도 하게해줘 같은 :ㅇ.. >>789 그래도 안고 달려줬는데 너무했나 싶네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의 말에 맞장구치며, 주양답지 않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언제 한번 날 더울때를 잡아서 다시 물이라도 갖다바쳐야겠다. 그렇게 해서 좀 더 자세한 신탁을 듣지 않으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할것만 같았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라고들 하니까.. 한번. 힘내볼까나. 그러다 당신이 가설을 내놓는 것을 듣고 뭔가 풀린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이거지. 아주 조금 나아간것일지도 모르나 지금 중요한건 나아간 거리가 아니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뗄수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기쁜 것이다.
"그럴것 같은데! 무기 사감님이나. 주작님이나. 학생에게 굳이굳이 뻥수작을 쳐 가면서 말을 돌릴 분들은 아니니까~! ... 뭐. 그렇게 된다면 왜 굳이 다 똑같은 쥐라고 했는지 의문이지만.. 그건 일단 미뤄두자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기라도 했나보지!"
하나 풀리면 또 하나 생기고. 그것을 풀면 또 다른 하나가 생기고. 주양이 수수께끼와 의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무슨 마트료시카나 양파마냥 까도 까도 더 튀어나오고 끝이 보이지 않는것은 딱 질색이었다. 자고로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 하거늘. 같은 쥐라고 칭한 것도. 꼭 그렇게 두 파를 나누어 숨어들게 해야 했는지도 또 다른 의문으로써 남을 뿐이었다. 그래서 주양은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지금 상황을 바라보기로 했다. 일단. 도울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니까. 그 도움이 자신을 향할지 아닐지는 전혀 별개의 일이기는 하다만. 일단 충분히 좋고 긍정적인 일이라는 사실임은 변함이 없는 것일테니.
"좋아. 그러자구~ 실망같은 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테니까. 뭐~ 내가 실망할 일이 있겠냐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양은 다시 키득거렸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천방지축인 귀여운 라쉬의 모습을 보며 조금 분위기가 완화된것이 크게 한 몫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은. 자신이 듣기에도 우스웠던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실망했다고 떳떳하게 선포할 만큼 가치 있는 사람도 아닌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했구나 싶은 자조적인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실망할 일은 있을지라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실망을 할 일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주양 역시도 라쉬에게 손을 뻗어 털을 매만져주며 히죽거리다가, 당신의 말에 음 하고 짧게나마 고민하는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사실 그렇게 뜸을 들이는 것은 정말 잠깐이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반응이 튀어나오기는 했다만.
"나는 그냥 평소에 하던대로 할거야~ 지금처럼 그저 그 아찔함을 즐기면서. 찾아올 위험에 대해 기대해보기도 하고~? 그 상황이 닥친다면, 상황에 맞게 휘둘려보기도 하고~ 그런 현실을 알았다고 해서 내 걸음이 멈춰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절대. 절대 멈춰설 수 없었다. 과거. 자신은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깊은 앙심을 품고 지금까지 이 질기디 질긴 명줄을 악착같이. 설령 미끄러져 손바닥 거죽이 쓸려나가 피를 본다고 해도 끝까지 붙들어맨 채 버틸 테니까. 잡을 게 없을 땐. 적어도 자신을 파멸으로 몰아간 놈의 모가지를 단단히 비틀어쥔 채 같이 떨어질테니까. 절대 멈춰서지 않고, 그저 평소 자신이 하던 대로 즐길 뿐이었다.
"질문이 왔으니 되돌려주는게 역시 인지상정이겠지~ 패대기 잘 치는 엘로프 친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야?"
조금은 낯설었지만. 분위기가 분위기니만큼 이름을 입에 담아보며 주양은 살짝 웃었다. 앞에 뭔가 이것저것 붙기는 했지만, 일단 그것은 넘기도록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