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서론에도 개의치 않던 당신이 초면일때의 전형적인 인사치레를 보내며 악수를 건네왔다가, 이내 거꾸로 있단걸 깨닫고 자세를 바로잡자 그녀 역시 손을 뻗어 청해진 악수를 받았답니다. 악수하는 것은 그만큼 체력낭비지만, 어디 권해오는 것을 거절할 수 있겠나요? 그것도 초면인 이에게? 그녀가 그정도까지 냉혈인인건 아니랍니다. 군데군데 붙여진 반창고가 까끌하니 신경쓰일만도 한데 용케도 잘 맞잡고 있네요.
"그러면, 상관없고..."
얼마나 익숙해졌으면 거꾸로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녀는 마음속에서나마 감탄을 금치 못했답니다. 대체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 저런 기예를 벌일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당신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요?
"음악가... 들어본적 많을지도,"
약간 허공에 말하는듯하던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는 것 없이 한손을 가볍게 말아쥐어 입가에 가져다대었답니다. 확실히 음악가란 직업은 그녀에게 있어 간접적인 매체로서 접하는게 대부분일뿐, 어쩌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다종족 음악가들을 본적은 의외로 자주 있었죠.
"하지만 '그 음악가(Musician)'라면 얘기가 다르겠지."
전설에 의하면 잘 어우러진 곡조 그 자체가 형상화되어 생명을 가지게 된 존재가 있다고 했죠. 그녀가 전설에 대해 그렇게 박식한건 아니지만, 한명의 예술인으로서의 기본적 지식은 갖추고 있었답니다. 무엇보다... 평범한 뮤지션들은 거꾸로 뒤집힌채 둥둥 떠다니거나, 환각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주변에 음표를 흩날리며 연주를 하진 않거든요.
"...에칭. 저기서, 가게 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이름을 말해오는 당신에게 답하듯 그녀 역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곤 몸을 살짝 틀어 손으로 건물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답니다. 그저 이름과 자신의 직업 정도만 말하는 극히 사회적인 대화엔 좀이 쑤셨지만 마음 속에선 그런 감정보다도 당신에 대한 호기심의 크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답니다.
"그리고... 글래스고."
굳이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반투명한 비늘이나 깃털같은 것들이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제 존재감을 나타내려 반짝이고 있었답니다. 그것만 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란걸 알수 있겠죠. 물론 거의 은둔자처럼 살고 있기에 딱히 역사서같은 것에 눈길을 두지 않는 이들이라면 그녀를 포함한 종족들에 대해 알턱이 없겠죠? 만약 그렇다면 조금은 유감스럽겠지만요.
간단한 인사의 악수를 끝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건물을 보면, 대충 그곳이 공방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의 손에 반창고들은 이해가 갔다. 무슨 일을 하는지까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손이 저런걸 봐서야 날카로운 것들을 접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 했을 뿐이다.
상관 없다는 말에는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어차피 정말로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
" 어라, 알고계셨군요? "
그저 대중적인 음악가라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아무튼 음악가라는 종족을 아는 사람을 그리 많지 않았다. 분포가 많지 않았으니까. 나만 해도 나와 같은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천성이 음악을 연주하는 직업이었지만, 음악에 관한 직업은 많은 사람이 몸담고 있는 직업이니까. 그만큼 찾기 힘들었던 것도 있고, 정말로 유명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음악가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건 오랜만이었다.
" 가게라! 어떤 가게인가요? "
문득 그녀가 가게를 언급하자 호기심이 동해 그쪽을 보았다. 아까도 봤지만 어떤 공방인지, 어떤 가게인지는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안에 들어가거나 직접 듣는게 아니고서야 확실히 알아내기란 힘들겠지.
" 글래스고? "
조금은 놀란 눈이 그녀를 직시했을 것이다.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보려 이래저래 책같은 것들을 뒤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스쳐지나가듯이 글래스고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책에도 그리 정확히 나와있는건 아니어서, 또 내 기억력이 그렇게 신뢰가 가는 것은 아니어서 반짝거리는 사람. 이라는 조촐한 명사 정도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나는 조금 주의깊게 그녀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에 또 호기심이 동했다.
" 오오, 처음봐요. 듣던대로 반짝거리는걸요? "
그녀를 살피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얼른 시선을 그녀의 눈으로 돌렸다. 그녀도 나와 비슷하게 수요가 적은 종족임을 알아차려서 그런걸까, 묘한 동질감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 글래스고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옛날에 잠깐 책으로 보긴 했었는데,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어서요. "
그래봤자 역사가 말해주는 정도의 지식밖에 알지 못하니까요. 그녀나 당신과 같은 희소종족에 대한 정보를 이리저리 살필 정도의 여유도 가지지 못했을뿐더러 부러 찾아다닐 정도로 발이 넖거나 그만큼 외향적인 성격인 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눈길로 바라보면서 당신을 무안하게 만드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는게 다행이었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공예품들 이것저것..."
사실 재료에 유리만 있다면 모두 취급하는데다 그 외의 것들도 어느정도는 만들수 있는 재주가 있었으니까요. 도자기를 빚는 사람이 항상 항아리만 만드는게 아닌 것처럼요. 조금 호기심이 동한건지 당신이 건물쪽을 바라보자 그녀는 늘 그래왔듯 살짝 눈을 내리깔고서 흘러내린 옆머리를 손으로 살며시 쓸어넘겼답니다.
- 글래스고?
돌아온 목소리엔 눈빛에서부터 알수 있는 놀란기색이 담겨져있어 그녀는 고개가 살짝 옆으로 돌아가면서도 시선 만큼은 당신에게 제대로 고정해두고 있었답니다. 그리고선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겠죠. 자신을 향한 주의깊은 시선이 여러개의 상으로 맺히는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는지 눈 주변이 살짝 붉어졌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변한게 없었답니다. 시큰둥하거나 무미건조한 목소리도 여전했구요.
"그것 말곤, 딱히 없지만."
끈질긴 생명력이라던가 무언가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건 모든 종족들의 공통점인지라 그녀의 말도 딱히 틀린건 없었답니다.
"그냥, 공예품들 이것저것..."
마치 데자뷰라도 느껴보란 건지, 그녀의 조악한 의사소통은 방금했던 말을 반복했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하기엔 무성의하게 느껴졌는지 살짝 입을 오물거리다가 말을 이어갔죠. 어차피 호구조사 하듯 기원과 개체종류를 읊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게 나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원하신다면... 부디,"
냉담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귀빈을 접대하는 메이드처럼 정중한 제스처와 함께 그녀는 자신의 쉼터이자 일터로 당신을 안내했답니다. 물론 그래봤자 이끈 곳은 공방에 불과하기에 짐을 대신 들어줄 이도, 화려한 유흥거리도 없었지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공예품들과 자극적이지 않은 다과들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주기엔 충분하겠죠.
/뭐했는데 벌써 5시지! 사실 밤 새고 싶지만, 난 내가 오래 가봤자 이정도인 사람인걸 알기에 이어주는 답레는 내일 보고 달수 있을까?? ˛૧(˵¯͒▱¯͒˵) 준새벽러지만 새벽러가 되고 싶어! 론도주의 밤샘클럽에 함께하지 못하는건 아쉽지만 꿈나라에서라도 론도주가 튼튼한 체력으로 버텨주길 기도할게!
" 적당히라도, 음악가를 아는 사람은 적으니까요. 아는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은걸요. "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것에 화답하여 등 뒤에서 작은 음표 한두개가 주변으로 흘러나와 하늘하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건 정말 힘들었다. 가끔 만났어도 그 뿐. 그 때의 나는 정착을 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결국에는 얼마 못가 헤어지곤 했다. 그래도 여기서는 오랫동안 정착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 그런가요? 저는 손재주랑은 거리가 멀어서요. "
예컨대 공예품들은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공방 같은 곳을 갈 일도 없었고, 장인들과 만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시간적 여유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으니 한번 관심을 기울여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다. 손재주야 안좋다지만 그래도 감상 정도는 할 수 있을것 아닌가? 나는 음악 감상에도 특출난 재능이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공예품 감상은 고작 글자가 몇 개 바뀐건데, 설마 뭔가 특별할게 있겠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한번 타일러봤다.
" 그렇게 따지면 저도 그냥 음악가라는거 말곤 딱히 없는걸요. 저희 둘 다 희소종족이라는 점에서 보면 좋은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구요? "
실제로 나는 내가 음악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쓸데없는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그거 하나로도 살아가는데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쓸데없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모처럼의 음악가라는 종족이 삶의 대한 의지를 잃고 나쁜 선택이라도 해버린다면 역사가 울 터다.
" 어... 괜찮은가요? "
공예품을 감상하는것, 뭐 이건 좋았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한치 망설임 없이 YES 라고 할 수 있는 남자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꽤나 늦었다. 글래스고는 약하다고 들었다. 물리적으로 약한건지 정신적으로 약한건지는 몰라도, 낯선 남자를 이렇게 어두운 밤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들이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가? 하고 내 양심이 물어보았다.
" 에칭만 괜찮다면야... "
하지만 나의 양심은 빌어먹을 녀석일게 분명했다. 비도덕적이라던가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놈의 공예품이 뭐길래. 이런 밤중에 사람의 호기심을 잔뜩 동하는건지 모르겠다. 나는 내 호기심에 이길 도리가 없었으므로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의 빌어먹을 양심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었는지 상대에게 괜찮냐고 동의를 먼저 구했다. 어차피 에칭은 이미 허락했지만, 의례적인 동의 구하기였다.
확실히 자신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는건 어떤 의미에선 좋은쪽으로 작용할수 있었답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다소 거북한 말이 되겠지만, 적어도 정말 보기 드문 존재라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신에 대해 의식하는 이가 하나둘쯤은 있다는 말이니까요. 당신도, 그녀도 이런 말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그런 반가움 때문이겠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자그마한 음표도 한두개정도 흘러나와 천천히 가라앉자 그녀는 신기한 것을 눈에 담아내듯 완전히 바닥에 닿을 때까지 지켜보았답니다.
"누구나 있으니까. 제대로 사용할줄 모를뿐,"
손재주와는 거리가 멀단 당신의 말에 고개가 살짝 기울여졌답니다. 물론 음악을 만들어낸 이들의 손재주가 좋은 것이지 음악 자체의 손재주가 좋은거라 할수 없는 부분에선 그럴만도 하겠지만, 원체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그녀같은 존재들에게 있어 손재주가 없다는 말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단어였으니까요.
"......"
희소종족이라는 점에서 보면 좋은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당신의 말은 누가 봐도 자부심 가득한 의사표현이었기에 그녀는 나름 신선한 충격을 받은듯 했답니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었지만 당신만큼 당당하진 못했거든요. 분명 몸을 식히러 나왔을텐데, 아직은 더운 날씨인 것도 아닌데 마음속의 무언가가 자극이라도 받았던 건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답니다.
"응, 상관없으니까."
물론 그녀답게 금방 사그라들어선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대답했지만요. 굳이 따지자면 인적이 드문 늦은 시간이야말로 그녀가 활동하는 때였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낮엔 비실거릴지언정 밤에는 제법 쌩쌩했으니까요.
물론 체력이나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측면에서 당신이 조금 주저할거라는건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시간대가 아니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일도 그리 없을뿐더러 성별은 그저 개인의 취향이자 늘 만드는 공예품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 글래스고들에겐 어째서 한밤중에 낮선 남자를 들이면 안되는지 알 길이 없거든요.
다들 그런것을 터부시하는 입장이니 자신도 따르는 것일뿐더러, 행여나 나쁜 마음을 먹은 이라고 해도 퇴치할만한 수단은 얼마든지 많았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기를 간직한 용해로 안에 들어있는 유리는 불을 다루는데 익숙한 그녀라도 인간의 몸을 입은 이상 가끔 다칠만큼 위험한 물건이니까요.
"문제 없음."
시니컬한 말투, 여전한 무표정,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엄지를 치켜올린 제스처는 어떻게 보면 우쭐해진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죠. 애초에 당신이 그럴만한 이가 아닐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답니다. 제대로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저하거나 몇번이고 되묻지도 않겠죠. 세상엔 언제나 예외가 있겠지만, 적어도 당신은 그 예외를 벗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으려나요?
바로 앞이기도 했으니, 살며시 문을 열어 당신에게 먼저 들어갈 것을 권유했답니다. 별거 없지만, 이라도 덧붙이긴 했어도 형형색색의 유리들로 겹쳐진 등이나 색유리창, 가지각색의 크기인 조형물들은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겠죠. 제법 심플해보이는 외관과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오히려 건물 바깥도 이랬다면 더 요란하지 않을까요?
에칭에게 고백이란 앞으로의 삶을 위한 하나의 원동력이다. 에칭의 표정에 미소가 짙어진다. 겨우 이 순간에 와서야 작게 벌어진 입술이 잘게 떨리고 있다.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shindanmaker #고백의_형태 https://kr.shindanmaker.com/916383
뭐지? 평생 공방 직원으로 굴려먹겠단 건가? 🤔 시급 2만원으로? 난 만들테니 너는 녹이거라. 다만 거부하면 너를 직접 녹여서 공예 재료로 써주마.
에키드나에게 고백이란 더없이 비굴한 것이다. 에키드나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있다. 이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왜 이제서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걸까." #shindanmaker #고백의_형태 https://kr.shindanmaker.com/916383
숨기려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거니 더없이 비굴하면서도 그만큼 에키드나에겐 자존심을 버리더라도 진심을 던지는 행위 흐으으